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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회 - 대한민국! 한번 살려보자.
“회장님!”
“그냥 마스터라고 부르세요.”
“네, 마스터.”
권선한 대전시장은 뭐가 그리 불편한지 연신 식은땀을 닦고 있었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광복회 특무대 대장 지흥수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쳐다봤다.
“뭐가 그렇게 좋아서 실실 웃는 겁니까?”
“대한민국 능력자협회가 해산되고 그 업무를 광복회 특무대가 맡았으니 이제는 제가 대한민국 능력자협회 회장이 된 셈이 아닙니까? 당연히 좋을 수밖에요. 제가 태어나서 감투 써본 중에서 이게 가장 큽니다.”
“참! 좋기도 하겠네요. 일이 첩첩산중으로 쌓여있는데…….”
“그거야 광복회 회장이신 마스터께서 잘 알아서 해결하시겠지요.”
진격의 거인 지흥수는 보기와는 달리 넉살이 무척 좋았다.
서진은 뻔뻔한 그의 태도에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관자놀이를 두 손가락으로 살짝 누르던 그는 지흥수의 옆에 앉아 있는 50대의 초로한 사내를 쳐다봤다.
“광복군 대장은 왜 아무런 말이 없어요.”
“군인은 그저 명령에 복종할 뿐입니다.”
“그래도 광복회 조직 후 첫 회의인데 좋은 아이디어를 내야하지 않겠습니까?”
“군은 정치에는 관여하지 않습니다. 저는 앞으로 광복군 활동에만 전념하고 싶습니다.”
고리타분한 얘기 같지만 사실 광복군 대장 이승복의 말이 정석이다.
군은 그냥 나라를 지키는 일에 전념하는 것이 맞다.
괜히 정치를 한답시고 군인들이 설쳐대면 나라가 개판이 된다.
명예를 먹고 산다는 군바리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나라를 뒤엎고 잘되는 꼴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마스터, 제가 한마디 드려도 되겠습니까?”
“말씀하세요. 한정수 내무처장!”
한정수 내무처장은 전 내무부차관으로 기획재정부에서 일한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권선한의 추천으로 현재 광복회 내무처의 수장을 맡고 있다.
오동통하게 생긴 몸과는 달리 상당히 눈빛이 예리한 그는 금테 안경을 위로 살짝 올리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일단 무엇을 하시던지 빨리 하십시오. 현재 대전에 333만 명에 달하는 인구가 몰려있습니다. 앞으로 30일 이상은 절대 버틸 수 없습니다.”
“식량문제군요.”
“모든 것이 다 부족합니다. 하지만 말씀하신대로 식량수급이 제일 큰 문제입니다.”
지금 상태로 간다면 마수들에 의해 죽는 것보다 식량 때문에 죽어갈 사람이 더 많이 생길 것이다.
서진은 아공간에 넣어둔 보급품 중 식량을 꺼낼까도 생각해봤다.
하지만 금세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건 아니지.’
지금 보급품을 꺼냈다간 하루도 안가 작살날 것이다.
333만 명의 입 앞에 그 어떠한 보급품도 무용지물이다.
근본적인 식량수급대책을 세워야만 한다.
“마수들로 인해 충청도는 이미 글러먹었고 올 가을 수확이 가능한 곳이 전라도뿐인가요?”
“그렇습니다. 그것도 광주에 본부를 둔 광능협(광주 능력자협회)에서 도움을 준다는 가정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광주에서 지금까지 대전을 지원을 해왔습니까?”
“그렇습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부산은요?”
“일부 탄약을 제외하고는 거의 지원이 오지 않고 있습니다.”
“이유가 있습니까?”
“부산으로 몰려든 사람들로 인해 그쪽도 식량이 모자라다고 하더군요.”
“그럼 제주도는 어때요?”
“크음, 전혀 지원해주지 않았습니다.”
멀쩡한 얼굴을 하던 한정수 내무처장이 제주도 얘기를 하자 똥 씹은 얼굴이 됐다.
그쪽과 뭔가 서로 잔뜩 꼬여있는 모양이다.
“제주도로 대한민국 정부가 이동했다고 하던데 전혀 지원을 안 해줬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오히려 이래라저래라 간섭만 받아왔습니다.”
대전시장 권선한이 옆에서 말을 거들었다.
“개판이군요. 하긴 그래서 나도 이렇게 독자노선을 걸으려고 한 겁니다만.”
서진의 말이 끝나자 지흥수가 슬쩍 던지듯 물어왔다.
“마스터, 앞으로 어떻게 하실 계획이십니까?”
“일단 특무대에게 사흘을 주겠습니다. 그 안에 조직개편을 확실하게 하세요. 철저하게 능력과 등급에 따라 순위가 정해지는 사냥팀을 만들어야합니다.”
“사냥팀이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금부터 마수를 사냥합니다. 절대 전투를 벌이지 않습니다. 전투는 반드시 피해를 불러옵니다. 그러니 우리 능력자들부터 전투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합니다. 철저하게 마수들의 약점을 파고들어 그들을 공략합니다.”
“아!”
지흥수는 서진의 말에 신세계를 경험하는 기분이었다.
살짝 멍 때리고 있는 지흥수를 내버려두고 서진은 광복군 이승복 대장을 바라봤다.
“이승복 대장은 즉시 광복군 16만5천명을 징병하세요.”
“네? 지금 이 상황에서 병사를 16만5천명이나 징병하라고요?”
“그렇습니다. 반드시 그래야만 합니다.”
“보급은 어떻게 합니까? 16만5천명이 아니라 당장 1만5천명을 징병해도 보급할 물량이 없습니다.”
“뭐가 제일 문제입니까? 무기입니까? 탄약입니까?”
“당연히 탄약이지요. 부산과 안강의 방위산업체 공장에서 탄약을 생산하는데 일본의 압력 때문인지 점차 지원해주는 양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래놓고 어떻게 마수들을 방어하라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수도권에 있는 방위산업체 공장을 아예 통째로 뜯어서 가져왔으면 좋겠습니다.”
“일본의 압력이요?”
“모르셨습니까? 지금 부산은 일본에서 식량을 비롯한 원조가 들어오지 않으면 당장 굶어죽는다고 합니다.”
서진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다.
이 나라가 이 꼴로 변한 것이 누구 때문인가?
중국과 일본의 능력자들이 월미도던전과 해운대던전을 욕심내서 동북아 초인전쟁을 일으켰기 때문이 아닌가?
그런데도 적국이나 마찬가지인 일본에 목숨을 의존하고 있다니…….
“이건 좀 알아볼 필요가 있겠네요.”
-마스터, 클론볼을 부산으로 보내 상황을 알아보겠습니다.
마이키의 말에 서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명호 정보처장!”
“네, 마스터.”
지금까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던 40대 초반의 강직해 보이는 사내가 굵은 톤의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서진은 이명호의 의견을 물었다.
“광복회에서 탄약을 자체생산하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마스터의 능력이라면 수도권에 있는 방위산업체 공장을 아예 통째로 뜯어서 오실 수 있을 겁니다.”
“네에? 그건 내가 농담으로, 희망사항을 얘기한 것뿐입니다.”
이명호 정보처장의 황당한 대답에 이승복 대장이 놀라서 소리쳤다.
수도권은 이미 마수들의 영역이 됐다.
무슨 재주로 그곳에 들어가 공장을 통째로 뜯어온단 말인가?
“그게 제일 좋겠네요. 그럼 그곳이 어딘지 그리고 뭘 어떻게 뜯어 와야 하는지 정보를 규합해주세요.”
“네, 마스터.”
이명호 정보처장은 자신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내가 마수들에게 죽는 바람에 국정원 고위직에서 사임했던 이명호이다.
대전에 남아있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이제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스터, 정말이십니까?”
“그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이승복 대장은 일단 광복군 16만5천명부터 징병하고 훈련에 들어가세요. 현역이나 전역이나 당장 전투에 투입할 수 있는 전투병은 제가 책임지고 보급품을 지원하겠습니다. 그러니 따로 모아놓으세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승복은 서진의 호언장담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권선한 시장은 대덕연구단지에서 근무하던 박사나 연구원들 중에서 식량증산에 관계된 자들을 알아봐주세요. 마수의 정수와 사체를 이용하면 곡물공장을 세울 수 있습니다.”
“곡물공장? 그게 뭡니까?”
권선한 시장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쉽게 말해서 마수의 사체로 퇴비를 만들고 정수를 이용해 빠르게 자라게 하는 신 농법입니다. 예를 들면 곡물공장에서는 1년에 12모작을 할 수 있습니다.”
“네에? 정말 그게 가능합니까?”
그제야 권선한은 깜짝 놀랐다.
그게 사실이라면 대전에서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충분히 가능합니다. 방법은 내가 알고 있으니 공장과 일할 사람, 감독, 연구 및 개발을 할 사람을 뽑아주세요.”
“그런 일이라면 당장 일하게 해달라고 아마 줄을 설 겁니다.”
권선한 시장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동안 대전에서 잡은 마수들의 정수와 사체는 다 어디에 있습니까?”
“대부분 무기와 보급품을 지원받기 위해 대구와 부산으로 보냈습니다.”
“흐음, 그게 일본으로 넘어갔겠군요.”
“아마 그랬을 겁니다.”
일본이 해운대던전을 차지한 것으로도 부족해 한반도에 깊숙이 빨대를 꽂고 있는 모양이다.
침통한 표정을 짓는 권선한 시장에게 서진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럼 앞으로 일체 보내지 마시고 도축해서 비축해 놓으세요. 마수의 가죽으로 방어구를 만들고 뼈와 뿔로 무기를 만들 겁니다. 정수는 발전을 위해 쓰고 장기는 연구용으로 쓰겠습니다. 남은 사체부스러기는 전부 퇴비로 사용해서 곡물공장으로 보내세요.”
“우리에겐 무기와 방어구를 생산할 능력이 없습니다. 거기에다 발전이라니요?”
“관련자를 모집하시면 관련기술을 넘겨드리겠습니다.”
“아! 네.”
기술을 넘겨주겠다는 말에 그는 더 이상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다.
인공지능나노양자슈퍼컴 마이키에게는 당대 최고의 첨단기술들이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거기에다 라인하르트 캐슬과 유니언 본부에서 얻은 각종 정보와 제조기술, 마법지식도 꽤 많았다.
마지막으로 화염탑의 마법사들이 지구의 과학기술과 접목시키겠다고 연구했던 각종 마도공학의 기초이론과 실험들도 모두 보관해놓았다.
“대마수용탄약을 만드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재료의 수급입니다. 그런데 대전은 다른 그 어떤 곳보다 재료의 수급이 용이합니다. 앞으로 광주, 대구, 부산과는 원조나 지원이 아니라 철저히 거래를 하도록 하세요. 우리가 원하는 거래를 하지 않겠다면 아예 거래를 끊어버려도 좋습니다.”
“그러다가 당장 탄약보급이 끊기면 어떻게 합니까?”
“능력자들은 뒀다 뭐합니까? 이제는 특무대에 모두 배치되겠지만, 그들을 철저히 훈련시키고 중무장시켜서 마수들을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원래 그러라고 있는 게 능력자입니다. 그리고 대전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능력테스트를 진행하세요. 어린아이 한명도 빼놓으면 안 됩니다.”
“만약 싫다고 하면 어떻게 하죠?”
권선한 시장은 평화로울 때에 잘 어울리는 시장인 것 같았다.
얘기를 하면 할수록 원칙에 강하고 참 융통성이 없었다.
“그럼 배급에서 빼버리세요.”
“대전을 나가겠다고 하면 어떻게 합니까?”
“오늘부터 광복회가 허락하지 않는 사람은 대전의 모든 성문의 출입을 금합니다. 광복군이 직접 통제하겠습니다.”
“그러다가 폭동이 일어나면 어떻게 합니까?”
“왜 광복군을 16만5천 명씩이나 징병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거야 마수를 잡으려고…….”
“아닙니다. 마수는 능력자가 잡아야지요.”
“그럼 왜 그렇게 많이 뽑습니까?”
“당연히 능력자들을 지원하려고 그러죠. 그리고 그중의 1만5천명은 무장경찰입니다. 그들을 이용해 치안을 유지할 것입니다.”
“아!”
그제야 권선한 시장은 서진의 의도를 이해했다.
서진은 울화통이 터지려는 것을 꾹 참고 끝까지 차근차근 설명해줬다.
‘이놈 말고 밑에 좀 똑똑한 놈 없나?’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고 했다.
인재를 등용하는 것이 자신의 명줄을 늘리는 것이라는 것을 서진은 오늘 다시 한 번 절실히 깨달았다.
“저희는 그럼 어떻게 합니까?”
광복회 경찰처장 김덕삼이 조심스럽게 서진에게 물었다.
서진은 전 대전경찰청장 김덕삼이 정직하고 인품이 훌륭하다는 세간의 평을 듣고 그를 전격적으로 광복회 경찰처장에 임명했다.
“어떻게 하다니요?”
“대전경찰청 아니 광복회 경찰처는 해산하는 건가요?”
“아!”
서진은 그제야 그가 뭘 걱정하는 지 알 것 같았다.
“김덕삼 경찰처장!”
“네, 마스터.”
“1만5천명의 무장경찰은 경찰처에 배속됩니다. 전시에는 광복군에 차출되는 거고요. 이해하셨습니까?”
“네, 마스터. 감사합니다.”
김덕삼은 단번에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하긴 사단병력인 1만5천명의 무장경찰이 자신의 손아래에 놓인다면 누구나 기뻐할 것이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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