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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장 - 탈탈 털자!
“식량창고를 관리하는 공무원들이 뒷돈을 받고 식량을 빼돌리는 부정을 저질렀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런!”
“으음.”
“이럴 수가!”
이승복, 지흥수, 권선한, 이명호, 김덕삼…….
회의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지금 대전성에서 마수를 막는 것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식량이다.
아마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이곳에 없을 것이다.
그들은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할지 막막했다.
걱정이 앞서자 절로 장탄식을 터져 나왔다.
본회의장은 절망으로 인해 마치 장례식처럼 빛을 잃어갔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절망에 허우적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서진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당당한 자세로 한정수를 쳐다봤다.
“그래서 지금 식량이 얼마나 남아있습니까?”
“1주일이 한계입니다.”
“알겠습니다. 그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해결하겠습니다.”
“네? 어, 어떻게?”
한정수는 서진의 자신만만한 말에 놀라서 말을 더듬거렸다.
“그 방법까지 내가 지금 여기서 말해야하는 겁니까? 그것보다 김덕삼 경찰처장과 상의해서 이번에 부정을 저지른 공무원들과 뒷돈을 주고 식량을 빼돌린 놈들을 모조리 잡아들이도록 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제가 꼭 잡겠습니다.”
한정수는 주먹을 꼭 쥐면서 대답했다.
하지만 서진은 당장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들을 잡는 것은 김덕삼 경찰처장의 일이니 협조만 해주시면 됩니다. 한정수 내무처장은 앞으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직의 기강을 바로세우고 관리를 잘하란 말입니다.”
“네, 마스터.”
“그럼 계속 다음 보고를 하도록 하세요.”
서진의 말에 한정수는 간신히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는 준비해온 보고를 차분한 목소리로 이어갔다.
보고는 광복군, 내무처, 특무대, 대전시, 정보처, 경찰처 순으로 이어졌다.
모든 부서의 보고가 끝나자 2시간이 지나있었다.
시계를 확인한 서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다들 수고하셨어요. 점심식사 맛있게 하세요.”
“네, 수고하셨습니다.”
“마스터, 수고하셨습니다.”
서진은 홀가분한 기분으로 대전광역시 의회청사 본회의장을 빠져나왔다.
그때, 권선한 대전시장이 그를 향해 헐레벌떡 달려왔다.
“마스터!”
“네, 무슨 일입니까?”
“당장 만나보셔야 할 분들이 계십니다.”
“그래요? 그럼 만나봅시다.”
서진은 시계를 한번 쳐다보고는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권선한은 반색을 하고는 그를 자신의 집무실이 있는 대전시청으로 데려갔다.
대전시청 시장 집무실.
권선한의 집무실에 도착하자 예쁘장한 비서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서는 권선한과 서진에게 꾸벅 인사를 하더니 얼른 문을 향해 종종걸음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친절하게도 방문을 손수 열어주며 밝은 미소를 지었다.
서진은 비서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방안으로 들어갔다.
권선한 시장 집무실 안에는 초로의 사내 두 명이 앉아 있었다.
편안하게 소파에 앉아 있는 모습이 마치 자신의 집이나 되는 듯 느긋하기만 했다.
서진과 권선한 시장이 안으로 들어오자 그들의 시선이 동시에 서진을 훑었다.
두 사람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서진에게 다가왔다.
“이분이 이서진 마스터입니다.”
권선한은 두 사람에게 서진을 소개했다.
서진의 시선이 자신도 모르게 권선한을 향했다.
자신에게 두 사람을 소개한 것이 아니라 두 사람에게 먼저 자신을 소개했기 때문이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로 인해 방안의 분위기가 요상하게 흘러갔다.
‘분위기가 참 묘하네.’
서진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어째 초로의 두 사내가 권선한의 상전처럼 느껴졌다.
그는 일단 권선한의 장단에 맞춰주기로 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서진입니다.”
“만나서 반갑소. 이지용이요.”
“반갑습니다. 박제순입니다.”
서진은 악수를 나눈 후, 권선한 시장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그러자 권선한은 ‘앗 뜨거워라!’ 놀란 눈을 하더니 과장된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이런 실수가……. 제가 마스터에게 아직 두 분에 대해 말씀을 드리지 않았군요. 이분은 이지용 국방장관입니다.”
보자마자 하오체를 썼던 단단한 체구의 각진 얼굴의 사내가 이지용 국방장관이었다.
“그 옆에 계신 분은 박제순 대통령비서실장이십니다. 두 분 모두 제주도에서 지금 막 헬기를 타고 도착하셨습니다.”
서진은 그제야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알 것 같았다.
권선한은 슬쩍 서진의 눈치를 보면서 소파를 가리켰다.
“자자, 다들 자리에 앉아서 얘기하시죠. 차는 뭐로 하시겠습니까?”
“난 커피.”
“홍차가 좋겠네요.”
이지용과 박제순은 권선한에게 편하게 차를 시켰다.
권선한은 그게 또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서진은 그 꼴이 좀 우스워 피식 웃음을 지었다.
“난 됐어요.”
“그럼 생수라도 가져다 드릴까요?”
권선한 시장이 눈치 없이 서진에게 재차 물었다.
서진은 고개를 강하게 좌우로 흔들더니 상체를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는 이지용과 박제순을 차례로 쳐다봤다.
“지금 내가 차나 마시면서 한가하게 노닥거릴 시간이 없습니다. 나를 보자고 했다던데……. 일단 용건부터 들어봅시다.”
서진의 냉랭한 말투에 이지용과 박제순의 얼굴에서 미소가 싹 사라졌다.
그리고 급속도로 방안의 분위기가 냉각되어갔다.
“크흠, 그럼 전 밖에 나가서 차를 가져오겠습니다.”
권선한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를 가져오는 것은 직접 가지 않고 비서를 시켜도 되는 일이다.
하지만 그는 굳이 직접 차를 가져오겠다고 밖으로 나갔다.
질식할 것 같은 무거운 분위기를 견디지 못했던 것이다.
또한 왠지 뭔 일이 터질 것 같아 피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다년간 자리보전을 해온 그의 관운과 생존력이 이번에도 빛을 발했다.
“거 젊은 사람이 성질 한번 참 급하구먼.”
이지용 국방장관이 서진에게 넌지시 훈계조로 말했다.
“내 성질 급한 것 따지러 여기 오셨습니까?”
서진이 곧바로 그의 말을 받아쳤다.
이지용의 얼굴이 금세 벌겋게 익어갔다.
그가 뭐라고 막 말을 하려는 순간,
박제순 대통령 비서실장이 얼른 끼어들었다.
“두 분 모두 진정하세요.”
박제순이 끼어들자 이지용은 일단 못이기는 척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러자 박제순이 서진을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별것 아닌 일로 말싸움이나 하자고 우리가 여기 온 것은 아닙니다.”
“알았으니까 용건이 뭔지 말이나 해보세요.”
박제순 비서실장이 자세를 바로 하더니 서진을 똑바로 쳐다봤다.
“정완용 대통령각하께서 이서진 능력자를 제주도로 초대하셨습니다.”
“각하요?”
“그렇습니다. 이서진 능력자는 영광스럽게도 각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각하? 영광? 부르심?
서진은 박제순을 쳐다보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아직도 대통령을 각하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군요.”
“각하를 각하라고 부르지 그럼 뭐라고 부르겠습니까?”
“그런가요? 그럼 나도 그렇게 부르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광복회인지 뭔지 하는 사조직의 회장으로 불러달라는 겁니까?”
박제순이 살짝 기분 나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기분이 나쁜 것은 오히려 서진이었다.
“광복회 얘기는 어디서 들었습니까?”
“우리가 그런 정보도 모르고 왔겠습니까?”
생각해보니 333만 명이나 되는 대전성 안의 인간 중에서 제주도 정부의 끄나풀 하나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질 않았다.
모르긴 해도 지금 자신이 대전성에서 하고 있는 모든 일이 실시간으로 전파되고 있을 것이다.
가깝게는 대구, 광주, 부산, 제주도!
멀게는 중국과 일본, 러시아와 미국에게까지 말이다.
“그렇게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사조직의 우두머리에 연연하지 마시고 제주로도 가셔서 각하를 만나보세요. 각하께서 이서진 능력자를 중용해주실 겁니다.”
“중용이라? 뭘 어떻게 절 중용한다는 거죠?”
“최소한 대한민국 능력자협회 회장 자리는 보전해드리겠습니다. 아직 확실하게 결정이 난 것은 아니지만, 각하와 얘기가 잘 되면 이번에 새롭게 개편되는 국토안전부의 장관이 되실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게 해서 내가 얻는 것이 뭡니까?”
“네에? 얻는 것이 뭐라니요? 대한민국 능력자협회 회장과 국토안전부의 장관이라고 말씀을 드리지 않았습니까?”
“그거 말고 주는 것은 없나보죠?”
“도대체 뭘 바라시는 겁니까?”
박제순의 목소리가 조금 차가워졌다.
“내가 제주도에 바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뭐라고요? 지금 각하의 부르심을 거부하시겠다는 겁니까?”
“제주도까지 날아가면 하다못해 무기와 식량이라도 지원하겠다는 말이 나와야하는 것 아닙니까?”
박제순은 서진의 말에 그제야 안색을 조금 풀고는 마치 어린아이를 타이르듯 말했다.
“제주도에 잠시 머물고 있는 정부에서도 당연히 대전성에 지원을 해주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현재 제주도로 몰려든 사람이 3백만이 넘습니다. 지금은 그들을 돌보는 것만으로도 행정이 마비될 지경입니다.”
“결국 제주도에서는 대전에 아무것도 지원을 해주지 않겠다는 말이군요.”
“지원을 해주지 않겠다는 말이 아니라 당장은 사정이 여의치 않아 지원을 해줄 수가 없다는 겁니다.”
서진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제주도에 갈 일은 없는 것 같네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네.”
박제순은 서진이 당당하게 말하자 점차 눈빛이 서늘해졌다.
“그럼 평생 범죄자로 낙인찍혀 교도소에서 살고 싶습니까?”
“아니요. 전혀 그럴 생각 없습니다.”
“대한민국 능력자협회 회장 이근택과 총무 권중현을 비롯한 능력자협회 간부들을 죽인 것만으로도 이미 당신은 범죄자가 되었습니다. 오직 각하께서만 사면을 해줄 수 있습니다.”
“나라를 망하게 만든 쓰레기들이 먼저 칼을 뽑았습니다. 그걸 법적인 용어로 정당방위라고 부르지요. 능력자 간의 분쟁은 오직 능력자끼리 알아서 해결해야한다는 것도 모르십니까? 사면이요? 죄를 지은 것이 있어야 사면을 받지요. 그리고 만약 사면을 받을 일이 있어도 제주도에다 사면을 요청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서진은 박제순의 말에 한마디도지지 않고 따박따박 대꾸했다.
그로인해 박제순의 얼굴이 조금씩 붉어지고 있었다.
“지금 당장은 가지고 있는 능력에 의지해 조금 득세를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절대 천년만년 가지는 않을 겁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마수를 물리치면 이서진 능력자는 평생 경찰의 군의 추격을 받아야할 겁니다. 그래도 좋습니까?”
“천년만년 갈 생각 전혀 없습니다. 딱 10년만 해먹고 손 털 겁니다. 그리고 제발 좀 마수들을 물리치세요. 그렇게 겁에 질린 닭처럼 제주도라는 구멍에 대가리 처박은 채 숨어 있지만 말고요.”
“아니 뭐라고요?”
“이 사람이 정말 말이면 다 말 인줄 아나?”
서진의 말에 열이 받은 박제순 대통령비서실장과 이지용 국방장관이 동시에 눈을 부라렸다.
하지만 서진은 조금도 놀라거나 위협을 느끼지 않았다.
개미새끼가 달려든다고 사람이 위협을 느끼지는 않는다.
그냥 손가락으로 꾹 눌러죽이지…….
서진은 등을 소파에 기대며 조용히 마이키에게 명령했다.
“마이키, 여기까지 해야겠다. 이놈들 끌어내.”
-네, 마스터.
쾅!
우르르르르!
마이키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방문이 부서질 듯 열렸다.
그리고 밖에서 건장한 청년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광복회 회장경호실 요원들이 들이닥친 것이다.
“이, 이게?”
“지금 뭐하자는 거야?”
박제순과 이지용은 놀란 눈을 하고는 서진을 쳐다봤다.
“뭐하고 있어? 끌어내지 않고?”
“네, 마스터.”
경호실요원들은 즉시 달려들어 박제순과 이지용을 제압했다.
“크악! 이거 놔! 내가 누구인줄 알아?”
“이서진, 당신 지금 실수하는 거야?”
이지용과 박제순은 동시에 고함을 쳤다.
“다들 지금 내 고막 터지는 거 보고 싶어?”
“죄송합니다.”
서진이 새끼손가락을 귀에다 넣고 말하자 눈치 빠른 경호실 요원들이 즉시 주먹으로 이지용과 박제순을 두들겨 팼다.
퍽 퍼퍼퍼퍽!
“악! 으악!”
“컥! 크윽!”
경호실요원 대부분이 육체강화계 능력자에다 탱커나 근거리딜러였다.
그러니 이지용과 박제순 같은 약골 좀 패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이지용과 박제순의 얼굴이 순식간에 호빵처럼 부풀어 오르고 고통으로 인해 눈에 공포가 흐르자 서진이 손을 홱홱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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