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둠레이더-158화 (158/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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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장 - 리치 사이먼

사이먼은 사람의 시체와 피로 된 제단을 이용해 자신의 군단을 일으키려 하고 있었다.

“원하신다면 지금 즉시 군단을 일으키겠습니다.”

“군단을 일으키면 내가 어떻게 데리고 다녀?”

“그건 걱정하실 필요가 조금도 없습니다. 군단은 제 아공간에 들어갑니다.”

“그래?”

7서클의 앱솔루트 마법을 썼으니 리치 사이먼은 최소한 7서클이다.

7서클의 마법사가 가지고 있는 아공간이라면 결코 작은 크기는 아닐 것이다.

“군단을 일으키기 전에, 한 가지 봐줘야할 물건이 있어.”

“네, 마스터.”

서진은 마이키에게 맡겨둔 신성일의 목걸이를 꺼내 리치 사이먼에게 보여줬다.

“이게 뭔지 알겠어?”

“이건 라이프베슬입니다.”

리치 사이먼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마족도 라이프베슬을 가지고 다니나?”

“마족이 라이프베슬을 가지고 다닌다고요?”

“그래. 혹시 아는 것 있어?”

“글쎄요. 제가 한번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지.”

서진은 사이먼에게 신성일의 목에 걸려있던 라이프베슬을 넘겼다.

사이먼은 자세히 살펴보더니 단언하듯 말했다.

“이건 저 같은 리치처럼 영원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생명력을 봉인한 라이프베슬이 아닙니다.”

“그럼 뭔데?”

“주술이나 술법을 쓰기위한 매개체로 보입니다.”

“매개체라고?”

“이 라이프베슬 안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생명력이 들어있습니다. 족히 수만 아니 수십만 명이 있어야 만들 수 있는 양입니다.”

사이먼의 말에 서진은 눈을 찢어질 듯 부릅떴다.

평소에는 싸구려 목걸이처럼 보이던 라이프베슬!

사이먼의 손에 들어가자 푸른빛이 일렁이는 아름다운 보석으로 바뀌어갔다.

무서운 것은 이렇게 아름다운 빛을 내는 라이프베슬이 사실은 누군가의 생명력을, 그것도 수십만 명을 죽여서 생명을 갈취해서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새삼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진실을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이걸 보니 마족의 행성 시드라의 흑마탑에서 들은 전설 하나가 생각납니다.”

“뭔데?”

서진은 사이먼의 말에 급격히 호기심이 치밀어 오르는 걸 느꼈다.

“과거, 현재, 미래를 꿰뚫어 본다는 마신 구시온이 모든 비밀을 다 안다는 마신 아스타로드와 얘기를 하다가 결국 다투게 됐습니다. 서로 자신의 능력이 더 뛰어나다고 자랑을 하다가 그렇게 된 것이지요.”

“…….”

“그때 지나가던 몽마(夢魔)의 왕, 판이 우연히 끼어들게 됐고 결국 구시온과 아스타로드는 판의 중재로 내기를 하게 됐습니다. 과거로 사람을 보내 누구의 말이 맞고 더 정확한지 확인을 하자는 게 바로 이 내기의 요체입니다. 판은 인간을 한 순간에 다른 장소로 옮길 수 있는 마신 게압과 한 순간에 물체를 이동시킬 수 있는 마신 세에레를 불러 도움을 청했습니다. 마신 게압과 마신 세에레는 판의 말을 듣고는 바로 의기투합을 해서 사람을 과거로 보낼 수 있는 아티펙트를 제작하기로 했습니다.”

“게압과 세에레!”

서진은 게압과 세에레의 능력을 듣자 순간 가슴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두 마신의 능력으로도 그런 물건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악마들에게 온갖 술법과 학문을 가르치는 나베리우스를 부르고 우주의 천체와 과학기술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4차원적 악마 아미를 초청해 아티펙트 제작을 의뢰했습니다. 다행히 아미는 모든 악마들이 가지고 있는 보물에 대해 정통한 관계로 여기저기에서 보물을 가져와 조합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오랜 시간 끝에 아티펙트를 만들어낸 나베리우스와 아미는 마신 게압과 마신 세에레의 능력을 불어넣어 과거로 가는 아티펙트를 완성했습니다.”

“그래서?”

서진은 이제 침을 꿀꺽 삼키며 사이먼의 말에 빠져들었다.

“마신 구시온과 마신 아스타로드는 모든 마신과 악마들이 모인 가운데 자신들의 능력을 뽐냈고 판은 그들의 말을 공증해서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그리고 사람 한 명을 데려와 아티펙트를 주고 누구의 말이 맞는지 알아오라고 시켰습니다. 그 사람은 아티펙트를 쓰자마자 그 자리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리곤 내기는 그것으로 끝났습니다.”

“왜? 과거로 가서 누구 말이 맞는지 확인하는데 실패했어?”

서진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급히 물었다.

“아닙니다. 모든 비밀을 다 안다는 아스타로드도, 온갖 술법과 학문을 가르치는 나베리우스도, 과거, 현재, 미래를 꿰뚫어 본다는 구시온도 생각 못한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게 뭔데?”

“바로 한길도 되지 않는 간악한 인간의 마음입니다. 처음부터 그 사람은 과거로 가서 다시 돌아올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걸 몰랐으니 그들은 그저 계속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수십 년을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자 그들은 미래의 일을 가르쳐주는 마신 카미오를 찾아가 물어봤습니다.”

“카미오는 뭐라고 했는데?”

“한번 떠난 배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했죠.”

“아!”

맞는 말이다.

한번 떠난 버스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이니까…….

역시 이 진리는 어디에서도 통하는 구석이 있었다.

“그게 끝이야?”

“아닙니다. 반전이 있습니다.”

“반전?”

“네, 아무리 마신이나 악마라고 해도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단 한명은 그게 가능했죠. 바로 몽마의 왕 판입니다. 판은 과거로 간 인간의 꿈을 통해 그와 접촉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인간을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한 가지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약속?”

“네, 인간이 죽기 직전에 과거와 미래를 오갈 수 있는 그 아티펙트를 모종의 장소에 가져다 놓기로 한 것입니다.”

“그럼 결국 그 아티펙트는 판이 얻었겠군.”

“그건 아무도 모릅니다.”

“왜 몰라? 판과 약속을 했다면서?”

“그게 제가 들은 얘기의 끝입니다. 인간이 정말 판과 약속한 곳에 아티펙트를 가져다 놓았는지, 아니면 모든 비밀을 다 안다는 아스타로드나 과거, 현재, 미래를 꿰뚫어 본다는 구시온이 그런 사실을 알고 중간에 가로챘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답니다.”

“으음.”

서진은 살짝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인간을 한 순간에 다른 장소로 옮길 수 있는 마신 게압과 한 순간에 물체를 이동시킬 수 있는 마신 세에레의 조합이라면…….’

그는 뭔가 잡힐 듯 말 듯 잡히지 않는 생각을 하다가 사이먼을 쳐다봤다.

“그런데 갑자기 왜 그 전설얘기를 꺼낸 거지?”

“리치가 아닌 존재가 라이프베슬을 사용했다는 말을 듣자 그 생각이 났습니다. 전설 속에 과거와 미래를 오갈 수 있는 아티펙트의 모양이 바로 딱 이 라이프베슬과 같은 모양을 가졌다고 했거든요.”

“아!”

서진은 사이먼의 말에 절로 감탄사를 발했다.

이제야 신성일의 목에 걸려있던 라이프베슬에 대한 작은 실마리를 발견했다.

아예 모르는 것과 작은 실마리나마 찾아낸 것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있다.

앞으로 그 실마리를 쫓아가다보면 언젠가 과거로 다시 돌아갈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유니언에 가서 한번 수소문해봐야겠다. 분명히 거기에는 아는 자가 있을 거야. 유니언 의회의 상원의원들은 에이션트 드래곤과 신수, 성력을 가진 신녀라고 했으니 그들이라면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비밀을 알고 있을지 모른다. 만약 아무도 모른다고 하면 어떻게 하지? 직접 시드라 행성으로 가 봐야하나?’

잠시 고민하던 그는 더 이상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 백날 고민해봐야 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것보다 빨리 광복회의 일을 마무리 짓고 유니언으로 직접 가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전에 자신의 소환수가 된 리치 사이먼의 남은 일을 먼저 해결하기로 했다.

“군단을 일으킨다고 했지?”

“네, 그렇습니다.”

“그걸 하려면 사람을 잡아 죽이고 심장을 꺼내고 피를 뿌려야하는 거야?”

“아닙니다. 모든 의식은 이미 끝났습니다. 이제 그냥 주문을 외우고 군단을 일으키기만 하면 됩니다.”

“그래? 그럼 일으켜!”

“네, 마스터.”

서진은 누가 더 죽는 것도 아닌데 자신의 소환수의 힘이 되어줄 군단을 일으키는 일을 방해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리치 사이먼은 서진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제단 앞으로 가서 두 팔을 번쩍 들어올렸다.

“הו! הלגיונות שלי! לְהִתְעוֹרֵר!”

사이먼이 알 수 없는 주문을 큰 소리로 외치는 순간!

제단 안으로 수많은 시체들이 일제히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후우웅! 촤아아아아아!

강력한 흡입력은 주변의 시체들뿐만 아니라 바닥에 흥건한 피와 살점조각까지 모조리 게걸스럽게 탐했다.

그러더니 제단이 마구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쫘악!

돌연 제단이 둘로 쫙 갈라졌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하얀 해골바가지들이 터벅터벅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해골들은 마치 전사라도 되는 듯이 뼈로 된 갑옷을 입고 한손에는 방패를 다른 한손에는 칼을 들고 있었다.

‘스켈레톤 전사?’

그게 시작이었다.

스켈레톤 전사가 백 마리쯤 걸어 나오자 이번에는 스파토이들이 쏟아져 나왔다.

드래곤의 뼈에서 생겨난다는 스파토이들은 스켈레톤 전사보다 확실히 덩치가 더 크고 강해보였다.

그 다음은 목 없는 기사 듀라한이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어둠의 기사 다크나이트들이 차례로 걸어 나왔다.

“저것들은 도대체 어디서 만들어져 나오는 거야?”

“흑마법과 소환진을 이용해서 만드는 것입니다.”

사이먼의 이해할 수 없는 말에 서진은 그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끝난 거야?”

“네, 마스터.”

“아직 제단 주변에 악령들과 사악한 혼백들이 가득 차 있는데?”

서진의 두 눈이 뇌정의 기운으로 인해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반쪽으로 쪼개진 제단주변으로, 악의에 가득 찬 악령과 어둠에 물든 혼백들이 사방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도 뚜렷하게 들어왔다.

“지옥에서 소환한 악령과 혼백들을 재료로 군단을 만들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으음, 그럼 사이먼은 이 제단에 더 이상 볼 일이 없는 거지?”

“네, 마스터.”

“그럼 됐어.”

서진은 사이먼의 말을 듣자마자 팬텀소드를 뽑아들었다.

그리고는 조용히 속삭였다.

“팬텀소드! 제단 주변에 있는 모든 악령과 어둠에 물든 혼백들을 전부 흡수해라. 단 내 소환수와 그의 군단은 건들지 말고.”

[네, 주인님.]

서진이 팬텀소드를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그러자 제단과 그 주변에 모여 있던 악령과 사악한 기운으로 물든 혼백들이 일제히 팬텀소드를 향해 끌려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마치 철가루가 자석에 끌려가는 모습 같았다.

끼야아악 키리리릭 크랄라라악…….

팬텀소드에 빨려 들어가는 악령들이 날카로운 비명을 토해냈다.

어둠에 물든 혼백들의 모습이 찌그러지며 귀청을 벅벅 긁어대는 괴성을 질러댔다.

이 끔찍한 현상에 리치 사이먼과 그의 군단이 모두 몸을 벌벌 떨며 무서워했다.

확실히 팬텀소드는 언데드 계열의 마수에게는 상극과 같은 치명적인 무기였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런 현상이 계속되지는 않았다.

일대의 악령과 사악한 혼백들을 모조리 빨아들여 포식을 한 팬텀소드가 만족한 목소리로 서진에게 보고했다.

[주인님, 임무를 완수했습니다.]

“그래. 수고했다.”

서진은 그 말을 끝으로 미련없이 팬텀소드를 검집에 집어넣었다.

상태창을 슬쩍 살펴보니 영력이 40이나 올라가 있었다.

남의 작업장에서 부스러기를 주어먹은 것치고는 엄청난 성과였다.

‘역시 될 놈은 되네.’

서진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는 몸을 돌렸다.

“사이먼! 이제 그만 가자.”

“네, 마스터. 군단을 집어넣겠습니다.”

사이먼은 아공간을 열어 자신의 군단을 집어넣었다.

그런데 하는 짓이 어쩐지 전보다 더 군기가 잘 잡힌 모습이었다.

“생각해보니 네가 일을 하나 해줘야겠다.”

“뭐든지 말씀만 하십시오. 마스터의 뜻대로 반드시 이루고야 말겠습니다.”

“꼭 그랬으면 좋겠다.”

왠지 사이먼의 의욕이 충만했다.

서진은 사이먼의 얼굴을 쳐다보며 그보다 더욱 사악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제단을 쪼갠 후유증인지…….

그의 입가에 걸린 미소는 보면 볼수록 섬뜩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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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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