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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장 - 재회
여기는 마치, 시간이 멈춰진 곳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넓은 동굴 길을 따라 동굴 밖으로 걸어 나왔다.
새파란 하늘에 대비되는 선명한 하얀 색깔의 구름!
너무나도 뚜렷한 대비를 보여주고 있다.
밝게 비치는 태양!
그 반대편 하늘에 걸려있는 붉고 노란 두 개의 크고 작은 달!
이곳이 어디인지를 명확하게 가르쳐주고 있었다.
시원한 산들바람이 불어오자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그의 시선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암녹색의 숲의 바다가 끝없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강줄기를 찾아 뗏목을 타고 이 숲을 빠져나왔었다.
그러고도 모자라 200km의 거리를 마수들을 뚫고 달리던 기억이 새롭다.
그러나 지금은 굳이 그런 수고를 끼칠 필요가 없었다.
마수존 제로에서 라인하르트 캐슬까지 일직선으로 900km 남짓.
와이비를 타고 날아가면 1~2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다.
“와이비 소환!”
팍!
와이비가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꾸앙!”
서진의 얼굴을 보자마자 반갑다는 듯 울음을 터트린다.
그는 아래로 낮춰진 와이비의 옆얼굴을 손으로 한번 쓰다듬고는 바고 목 뒤로 올라탔다.
“날아라! 와이비!”
꾸와아앙!
와이비는 서진의 명령에 고개를 번쩍 치켜들고는 날개를 활짝 펴고 퍼덕거렸다.
펄럭 펄럭 펄럭 펄럭!
와이비의 동체가 하늘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서진은 발로 툭툭 차서 라인하르트 캐슬을 향해 방향을 잡았다.
“와이비! 최대속도로 날아봐!”
“꾸앙!”
와이비는 서진의 말에 자신감이 가득한 울음소리도 대답했다.
파란 하늘에서 노를 젓듯, 거침없이 날갯짓을 하자 공기가 찢어지는 파공성이 터져 나왔다.
쐐애애애애액!
와이비의 비행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어느 순간 거의 음속에 가깝게 날아가고 있었다.
1시간이 조금 넘자 마이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와이비의 비행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습니다. 일반 와이번보다 훨씬 빠른 속도입니다. 아무래도 비행과 은신에 특화된 소환수로 변화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
자신의 능력을 보완해주는 소환수의 변화를 그는 긍정적으로 봤다.
-라인하르트 캐슬에 거의 도착했습니다. 슬슬 속도를 줄이는 것이 좋겠습니다.
“알았어.”
서진이 와이비의 목을 발로 툭툭 쳤다.
꾸와아앙!
그러자 와이비가 나름 길게 포효를 지르더니 속도를 천천히 줄였다.
거대한 평원!
그 중앙에 우뚝 서있는 거대한 하얀 성이 보인다.
그의 첫 번째 목적지인 라인하르트 캐슬이다.
‘과거에 비해서 조금 더 확장된 건가? 예전엔 이렇게 넓지 않았는데…….’
확실히 예전에 비해 라인하르트 캐슬의 규모는 세배 가까이 확장되어있었다.
암녹색 숲의 반대방향으로 외성을 넓힌 모습이다.
안쪽에는 자급자족이 가능할 정도로 넓은 논과 밭이 잘 가꾸어져있었다.
그에 비례해 라인하르트 캐슬을 공격하고 있는 마수들의 공세도 더욱 거칠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위상배열 레이더를 통해 살펴보니 마수들의 등급이 많이 올라가있었다.
10년의 세월동안, 호드의 공세도 더욱 강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대목이었다.
[와이비! 저기 아래에 보이는 내성으로 내려가자.]
[꾸앙!]
혹시나 해서 마음속으로 와이비에게 의지를 전달해봤다.
역시 사이먼처럼 와이비와도 굳이 말을 하지 않고도 마음만으로도 대화가 가능했다.
후욱! 휘이이익!
와이비가 내성의 성벽을 빠르게 지나가자 그는 곧바로 허공에서 뛰어 내렸다.
쿵!
서진이 내성 성벽 위에 무사히 안착했다.
그 순간, 내성의 대공마법방어시스템이 작동했다.
펑 퍼퍼펑 펑펑펑!
번쩍! 파츠츠츠츳!
파이어블레스트와 기가썬더가 동시에 날아가는 와이비를 향해 쏘아져갔다.
“와이비 소환해제!”
서진은 즉시 와이비를 소환해제했다.
빈 허공을 스쳐지나간 파이어 블레스트와 기가썬더가 하늘 높이 날아올라가더니 구름 속으로 들어가 산산이 흩어져 버렸다.
후다다다다닥!
두두두두두두!
그때, 내성 성벽 양쪽 방향에서 수인족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은색갑주로 무장을 하고 날선 창을 들이대는 수인족 병사들의 서슬이 시퍼랬다.
서진은 그들이 가까이 다가오자 두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저항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불곰만한 거구에 호랑이 얼굴을 한 사내가 대뜸 서진을 향해 호통을 쳤다.
“넌 누구냐?”
“혹시 티라무스?”
“어? 내 이름을 어떻게 알지?”
“난 이서진이다. 사정이 있어서 이렇게 내성으로 바로 내려왔다. 메탈리온 성주와 아리아나 부 성주를 불러줘!”
“우리 성주와 부성주의 이름을 아는 것을 보니 외인은 아닌 것 같은데……. 클리프에서 온 건가?”
“아니. 지구에서 왔어. 자세한 것은 메탈리온 성주와 아리아나 부 성주에게 말할게. 혹시 두 사람 여기 없는 것은 아니지?”
“두 분은 이곳에 계신다. 난 너의 무장을 해제하고 마법의 구속구를 채워야겠다.”
“당연히 그래야지. 어서 채워!”
티라무스의 말에 서진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두 손을 내밀었다.
이럴 줄 알고 미리 블루볼에 모든 무기와 장비를 다 넣어 놓았다.
철컥 철컥!
티라무스는 서진의 당당한 태도에 호감이 갔지만 그래도 내성을 무단으로 침입한 자라서 두 손과 두 발에 마법의 구속구를 빈틈없이 채웠다.
그 사이 티라무스는 전령을 보내 메탈리온 성주와 아리아나 부 성주에게 미리 연락을 해놓았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서진은 티라무스와 병사들의 감시를 받으며 이동했다.
보아하니 내성 1층에 있는 영빈관으로 데리고 가려는 모양이다.
아무래도 이들은 그를 유니언의 특급전령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영빈관 가장 끝에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방 중앙에는 마법의 구속의자가 놓여 있었다.
맞은편에도 여러 개의 의자가 놓여있었다.
티라무스는 서진을 방 중앙으로 끌고 갔다.
그를 마법의 구속의자에 앉혔다.
티라무스는 양쪽 손목과 발목에 구속구를 꼼꼼하게 채웠다.
“잠시 여기서 기다려라.”
“알았어.”
티라무스는 밖으로 나가려다 멈칫하더니 몸을 돌려세웠다.
“그런데 우리 어디서 만난 적이 있던가?”
“당연히 있지.”
“그런데 왜 난 너를 기억하지 못하지?”
“흐음, 그러니까 내가 널 본지는 아마 10년쯤 됐을 것이다.”
“그 정도 기간이라면 내가 기억하지 못할 만도 하군. 어쨌든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라.”
티라무스는 10년이라는 세월에 납득이 갔는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고풍스러운 영빈관에 혼자 멍하니 앉아있으려니 조금 심심했다.
하지만 5분도 지나지 않아 문이 활짝 열렸다.
짜리몽땅한 드워프와 눈부시게 아름다운 엘프 미녀!
서진이 만나고 싶어했던 메탈리온과 아리아나였다.
그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엘프 아리아나로 향했다.
한 폭의 미인도를 보는 것 같은 매혹적인 자태!
살 떨리게 예쁜 미소!
보기만 해도 심장이 쫄깃해지는, 미치도록 아름다운 얼굴!
서진은 그녀를 향한 시선을 억지로 떼어냈다.
“오오오! 메탈리온 반갑다. 아리아나 반갑워!”
“나를 아는가?”
“당연하지.”
서진이 대뜸 메탈리온과 아리아나를 아는 척하자 둘은 동시에 고개를 옆으로 살짝 갸웃거렸다.
“넌 누구지?”
“난 이서진이야. 지구에서 왔어.”
“지구? 설마 태양계에 있는 그 지구?”
“어? 알고 있었네.”
서진은 메탈리온이 지구에 대해 알고 있자 깜짝 놀랐다.
“이름만 한번 들어봤어. 호드가 침공해서 큰 피해를 입은 곳이라고 하더군.”
“맞아.”
“그런데 어떻게 라인하르트 캐슬로 오게 됐지? 유니언 본부로 안가고 왜 이리 온 거야?”
메탈리온은 서진을 보자마자 믿음이 가는지 대뜸 유니언 본부로 가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
생긴 것이 호드도 아니고 지구에서 왔다는 말을 단번에 믿어준 것일까?
아니다.
절대 그럴 리가 없다.
메탈리온이 이러는 이유는 한 가지.
종족의 피에 흐르는 고유능력 진실의 눈!
그것을 가지고 있는 엘프 아리아나가 가만히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서진이 거짓말을 했다면 대번에 그녀가 알아채고 나섰을 것이다.
“어떻게 하다 보니 그렇게 됐어. 그것보다 나를 좀 도와줬으면 좋겠다.”
“신기하군. 너는 마치 나를 오랫동안 알고 지낸 것처럼 얘기를 하는데, 난 너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어.”
메탈리온의 말에 서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리아나를 쳐다봤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끝까지 들으면 아마 이해가 갈 거야.”
그때, 아리아나가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서진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잠깐! 어떻게 이런 일이……. 도대체 당신은 누구죠?”
그녀의 몸에서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는 꽃향기가 풍겨왔다.
“무슨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이건 도저히 불가능해! 어떻게 내 초혈(初血)이 묻어있을 수 있지? 거기에다 엘프의 맹세라니!”
아리아나는 경악했다.
마치 넋이라도 나가버린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서진도 그녀가 저렇게 놀라는 영문을 몰라 눈만 껌뻑거렸다.
메탈리온은 아리아나를 쳐다보며 무척 흥미로워했다.
어떠한 일에서 쉽게 흥분하지 않는 그녀의 모습이 무척 색달라 보였던 것이다.
“일단 내 얘기를 좀 들어주면 안 될까? 끝까지 들어보면 내가 누군지, 왜 여기에 왔는지 저절로 알게 될 거야.”
“좋아. 그렇게 하지.”
메탈리온은 일단 서진의 말을 한번 들어보기로 했다.
돈을 주고 일부러 음유시인의 노래도 듣는데, 공짜로 흥미진진해 보이는 얘기를 해주겠다니 호미니드 산(産) 맥주가 당기기 시작했다.
아리아나가 아직도 멍때리고 있자 메탈리온이 그녀에게 소리쳤다.
“아리아나! 잠시 진정하고, 일단 이자의 얘기를 좀 들어보도록 하자.”
“네, 그렇게 해요.”
아리아나가 순순히 메탈리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메탈리온과 아리아나는 서진의 앞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앉았다.
서진은 길게 한숨을 한번 쉬었다.
그리고는 빠른 속도로 그동안 자신이 겪었던 기이한 경험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대격변 이후, 마수에게 당해 안드로이드 전투로봇이 됐다가 연어팀의 포터로 과거로 회귀한 얘기, 과거로 돌아가서 갓난아기가 되어 살아온 얘기, 대격변이 시작되자 마수들의 침략에 맞서 싸운 얘기, 레무리아 게이트를 통해 라인하르트 캐슬에 와서 메탈리온과 아리아나를 만나고 유니언 본부로 간 얘기, 유니언 여섯 연합행성에 지구가 가입하고 난 후 교류를 했던 얘기, 마족의 농간에 의해 다시 과거에서 미래로 돌아온 얘기…….
서진은 거의 숨도 쉬지 않고 한꺼번에 빠르게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댔다.
“아!”
“이런!”
처음에는 긴가민가하던 메탈리온이다.
하지만 서진이 입고 있는 란돌프의 전신갑주 V2를 증거로 제시하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메탈리온은 지체 없이 드워프 공방의 자랑인 명장 란돌프를 불러들였다.
그를 통해 직접 확인을 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결과는 란돌프의 작품이 맞았다.
문제는 란돌프가 자신의 작품이 분명하기는 한데 이런 작품을 만든 기억이 없다는 것이다.
그 말에 모두의 가슴이 서늘해졌다.
아리아나에게도 증거를 보여줬다.
엘프 공방에서 업그레이드 한 레드볼!
아리아나는 레드볼을 보자마자 길게 탄식을 했다.
스스로 고안해서 개량한 마법진의 패턴이 레드볼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던 것이다.
이로써 레드볼은 엘프 공방, 특히 자신이 직접 인챈트 한 것이 분명했다.
당연히 그녀의 기억에도 없는 일이라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도저히 믿지 않으려고 해도 믿지 않을 수가 없군. 하지만 사람이 과거로 갔다가 다시 미래로 돌아왔다는 얘기는 내 평생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내게 한 가지 방법이 있어요.”
메탈리온이 고민에 빠지자 아리아나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리아나는 입술을 한번 꼭 깨물더니 메탈리온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메탈리온! 나 이 사람과 잠시 얘기를 나누고 싶어요. 자리를 좀 비켜주세요.”
“그, 그래? 알았어. 내가 밖으로 나가있을게.”
메탈리온은 평소와는 다른 행동을 보이는 아리아나의 요구에 말까지 더듬고 급히 밖으로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그만큼 아리아나의 목소리에 절박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메탈리온이 밖으로 나가자 아리아나는 서진을 향해 가까이 다가왔다.
그녀는 불쑥 고개를 숙여 그의 얼굴 앞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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