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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장 - 전략무기
어찌 보면 무척 무례하게 들릴 수도 있는 말이다.
하지만 이클립스가 말하는 말이라면 그냥 곧이곧대로 들으면 된다.
그는 그런 솔직한 사람이니까……
“물론입니다. 원하는 데로 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제가 요구한 것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지구의 상황이 어려우니 지원을 해달라고 하셨죠?”
“그렇습니다.”
“당장 지구를 유니언에 정식으로 가입시키는 것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클립스는 조심스럽게 서진의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하지만 서진은 이미 이렇게 될 줄 짐작하고 있었다.
지구는 지금 과거와 같은 상태가 아니었다.
더군다나 대한민국은 이제 갓 마수의 위협에서 간신히 숨을 돌린 상태였다.
이런 전력으로 당당히 유니언의 한축이 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하지만 서진을 유니언의 옵서버로 참여시킬 용의는 있습니다.”
“옵서버요?”
“그렇습니다. 당장 지구가 유니언에 정식으로 가입할만한 자격이 있는지 증명이 되지 않았으니 서진을 옵서버로 참여시키겠다는 겁니다.”
“옵서버가 되면 제게 무슨 권리와 의무가 있습니까?”
“서진이 옵서버로 참여하게 되면 지구라는 행성의 대표가 아니라 개인자격으로 유니언에 정식 등록됩니다. 호드와의 전쟁에서 유니언을 위해 싸워야하고 유니언은 서진의 대 호드전쟁을 지원해야합니다. 자세한 것은 유니언 의회에서 제정한 옵서버 규정이 있으니 참고하시면 됩니다.”
이미 유니언의 옵서버에 대한 권리와 의무는 줄줄 꿰고 있었다.
서진은 잠시 고민하는 척하다가 넌지시 물어봤다.
“제가 대한제국의 황제라는 것은 알고 계시죠?”
“그렇습니다. 유니언과의 교류는 오직 저만 가능한 건가요?”
“일단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국가나 행성차원의 교류는 안 된다는 겁니다. 하지만 대한제국 황실까지는 가능할 겁니다.”
“유권해석입니까?”
“뭐 그렇다고도 볼 수 있죠. 중요한 것은 그것보다 얼마나 서진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요?”
“제 능력에 따라 유니언의 조건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말이네요?”
“그렇습니다.”
이클립스가 솔직히 얘기하자 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몇 가지 선결조건이 있습니다.”
“말씀해보세요.”
“제가 지구에서 온지 정확히 나흘째입니다. 총 일주일을 넘길 수 없습니다.”
“일주일이면……. 앞으로 사흘이내에는 지구로 돌아가셔야한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습니다. 대한제국의 주변국에서 자꾸 시비를 걸어와서 제가 꼭 있어야합니다.”
이클립스는 서진의 말의 진의를 파악하느라 잠시 생각을 해봤다.
그리곤 어깨를 슬쩍 위로 치켜들었다.
“황제가 자신의 제국을 지킨다고 하는데 그것을 막을 수는 없지요. 대한제국 황궁에 차원게이트를 설치하면 오고가는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입니다.”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어차피 서진이 옵서버로 유니언에 참여하게 되면 개인용 이동게이트 하나 정도는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걸 조금 확대해서 영구 차원게이트로 만들면 될 겁니다.”
“하루는 대한제국, 하루는 유니언, 이렇게 움직이면 되겠네요.”
“그래주시면 감사하죠. 그러나 모든 것에 앞서 테스트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물론이죠.”
“그럼 그렇게 합의를 본 것으로 알고 테스트를 하러 갑시다.”
“좋습니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합니까?”
“카산드라 전선입니다.”
“카산드라 행성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럼 마족을 만나겠군요.”
“아마 그럴 확률이 높을 겁니다.”
서진은 이클립스의 말에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안 그래도 신성일 때문에 마족에 대한 악감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그는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갑시다.”
“그러시죠.”
둘이 바로 서로 의기투합을 하자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아리아나가 급히 나섰다.
“저도 가겠어요.”
“아리아나……도요?”
“네, 괜찮죠?”
“물론입니다.”
이클립스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듯 환영의 뜻을 표했다.
세 사람은 빛의 막으로 둘러싸여있는 중앙성으로 들어갔다.
그들의 모습은 곧 푸른 물이 넘실거리는 차원게이트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 * *
카산드라 행성 아가멤논 대륙 미케네요새.
산과 언덕이 하나도 보이는 않는 넓고 넓은 대평원!
큰 강을 사이에 두고 하나의 거대한 도시와 큰 요새가 서로 마주보고 있다.
“미케네요새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클립스가 자부심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서진과 아리아나는 라인하르트 캐슬보다 족히 10배는 더 크고 단단해 보이는 거대한 요새를 둘러보며 눈을 빛냈다.
“미케네는 요새도시로군요.”
“잘 보셨습니다. 강 건너 아이아스를 상대하기 위해 유니언에서 심혈을 기울여 세운 요새이자 도시입니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전쟁을 벌이고 있네요.”
“네, 그렇습니다. 겉보기와는 달리 카산드라 전선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곳이 바로 이곳 미케네전장입니다.”
이클립스가 그렇다니까 그런 줄로 알아들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정말 평화롭기 그지없는 풍경이었다.
“적은 어디에 있습니까?”
“적은 사방에 존재합니다. 땅속에 참호를 파고 숨기도 하고 유사인류나 수인족으로 위장을 하고 미케네로 들어와 테러를 하기도 합니다. 가장 큰 전투는 역시 시도 때도 없이 벌어지는 공성전이지요.”
“여기서도 공성전이 벌어지는 군요.”
“물론입니다. 아마 곧 라인하르트 캐슬에서 겪은 전투와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서진은 이클립스의 말을 한쪽 귀로 들으면서 강 건너 아이아스를 쳐다봤다.
겉으로 보기에는 참 아름다운 도시였다.
“제가 처리할 마수는 어디에 있습니까?”
“여기는 마수가 거의 없습니다.”
“그럼 미케네요새로 누가 쳐들어온다는 겁니까?”
“마족이 이끄는 마인들이 쳐들어옵니다. 아주 지능적이고 교활한 놈들이지요. 하지만 미케네요새는 그동안 단 한 번도 함락되지 않았습니다. 몇 번 위기가 있긴 했지만 난공불락의 요새라는 이름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럼 저에게 원하시는 것이 도대체 뭡니까?”
“오늘 저녁 이곳 하늘에 레드문이 뜹니다.”
“레드문이요?”
어디서 많이 들어본 스토리였다.
레드문이 뜨면 인간이 늑대로 변한다던가, 마족들의 힘이 더 세진 다던가…….
서진의 예상대로 이클립스는 비슷한 소리를 했다.
“레드문이 뜨는 밤은 마족과 마인들이 힘과 능력이 증폭됩니다. 특히 폭력성과 성적욕구가 대폭 늘어나 미케네요새를 공격해오거나 정신없이 교미를 합니다. 서진은 오늘밤 미케네요새에서 공성전을 치르던가 아니면 아이아스로 침투해서 적을 살상하시면 됩니다.”
“여기서 공성전을 치르는 것은 문제가 없는데, 아이아스라는 도시로 침투하는 것은 좀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서진을 적진 한가운데로 혼자 보낼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언제든지 위험하면 바로 도망칠 수 있도록 특공대를 붙여드리겠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도망치는 것만큼은 아주 선수들입니다.”
“그래요?”
서진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도망치는 것이 뭐 그리 큰 자랑이라고 이클립스가 저렇게 호언장담을 하는지…….
하지만 그의 의구심은 나중에 확실하게 풀리게 된다.
“일단 점심식사를 같이 하시면서 얘기를 나누시죠.”
“네, 좋습니다.”
“그래요.”
안 그래도 슬슬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다.
서진과 아리아나는 이클립스를 따라 한 고급식당으로 이동했다.
그곳에 드나드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로브를 입고 있었다.
“여긴 마법사들만 오는 곳인가요?”
“그렇다고 볼 수 있죠. 미케네요새의 장군과 장교들도 올 수 있지만 그들에게도 장교식당이 따로 있으니 이쪽으로는 어지간해서 잘 안 옵니다.”
“그렇군요.”
이클립스는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아 서진과 아리아나를 대신해 주문을 해줬다.
뭐가 맛있는지 몰라서 둘은 모든 주문을 그냥 이클립스에게 맡겨버렸다.
“미케네요새는 클리프 행성의 마탑에서 설계했습니다. 그냥 무식하게 크기만 한 것이 아니라 요새전체에 마법진이 거미줄처럼 깔려있습니다. 그래서 천하의 시드라 마족들도 이곳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혹시 장교와 병사들도 클리프 행성 출신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같은 행성의 출신들끼리 있는 것이 서로 말도 잘 통하고 동질감이 있어서 전투능력이 상승된다는 연구결과가 있었습니다.”
“네.”
이클립스는 미케네요새에 대해 여러 가지 재미나는 일화를 곁들여 설명을 했다.
덕분에 요리를 기다리는 시간이 그렇게 지루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나중에 서진의 능력이 검증이 되면 미케네요새로 지원을 요청할 심산인 것 같았다.
“이곳 레스토랑의 주방장은 클리프 행성에서도 꽤 유명한 특급요리사입니다.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이클립스의 말 때문에 요리에 대한 기대감이 절로 증폭됐다.
잠시 후, 웨이터들이 준비된 요리를 하나둘씩 차례로 가져오기 시작했다.
샐러드, 스프, 스테이크를 비롯해서 생전 처음 보는 신기하고 희한한 요리들이 가득했다.
얼마나 요리를 많이 시켰는지 그들이 앉아있는 넓은 테이블 위가 온갖 먹음직스러운 요리들로 꽉 찼다.
“많이 드세요.”
“잘 먹겠습니다.”
“고마워요.”
서진은 요리 몇 점을 먹어보고 눈을 크게 떴다.
마치 혀에서 온갖 요리의 재료들이 춤을 추는 듯한 느낌이었다.
‘맛있다!’
혀끝에서부터 일어난 맛의 향연이 입 안 가득 전해지고 몸 전체로 퍼지자 그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리아나도 예외는 아니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서진을 쳐다봤다.
그때부터 서진과 아리아나의 본격적인 먹방이 시작됐다.
“참 맛있군요.”
“이거 정말 기가 막히네요.”
“어떻게 이런 요리를?”
“아! 행복해요.”
“요리의 신이 만든 게 아닐까 생각되네요.”
“이것 축복이에요.”
서진과 아리아나가 너무 좋아하자 이클립스도 기분이 좋은지 껄껄대고 웃었다.
“무하하하! 제가 말씀드렸지요.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요.”
“네, 그 말이 맞네요.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르겠어요.”
“그거 지구에서 통용되는 말인가 보군요. 무척 재미있어요.”
서진과 아리아나는 올챙이처럼 튀어나온 배를 한손으로 만지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덕분에 정말 잘 먹었습니다.”
“천만에요. 잘 드셨다니 오히려 제가 더 기쁩니다.”
세 명 모두 만족스런 시간이었다.
이클립스가 조용히 일어났다.
“가까운 곳에 전망대가 있습니다. 우리 그곳에 가서 마법의 허브티를 한번 마셔보도록 합시다.”
“마법의 허브티요? 좋습니다.”
서진은 마법의 허브티라는 말에 절로 기대가 됐다.
“아차! 옆에 엘프이신 아리아나를 놓고 감히 차 얘기를 꺼냈네요.”
“아니 왜요?”
“차하면 역시 엘프차 아니겠습니까?”
“호호호, 그건 맞아요. 이렇게 맛있는 식사를 대접해주셨으니 제가 직접 제작한 엘프차의 맛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오오오! 이거 감사합니다.”
아리아나의 말에 이클립스의 발걸음이 최소한 두 배는 빨라졌다.
서진도 엘프차를 마셔본 적이 있어서 그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미케네요새의 중앙에 세워진 크고 높은 첨탑!
그 꼭대기에 멋진 카페가 하나 있었다.
1층에서 텔레포트 마법진을 타고 올라온 그들은 아이아스가 한 눈에 보이는 창가로 자리를 잡았다.
“멋진 곳이군요.”
“겉으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밤이 되면 그리 아름답지 않은 모습을 보이기도 한답니다.”
“원래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닌 세상이니까요.”
이클립스의 말에 서진도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예쁘장한 웨이트리스가 다가와 주문을 받았다.
이클립스는 허브티을 주문했다.
“마법의 허브티 세잔 주세요.”
“네.”
웨이트리스가 주문을 받아가자 아리아나가 자신의 허리에서 작은 마법의 주머니를 꺼냈다.
그녀는 안에서 나무로 깎아 만든 다기세트를 꺼내더니 엘프차를 만들었다.
곧이어 카페에 가슴을 시원하게 만드는 그윽한 향기가 퍼져나갔다.
“자 드셔보세요.”
“이게 아리아나가 제작한 엘프차군요. 영광입니다.”
“천만에요.”
엘프에게 엘프차를 얻어 마시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엘프는 특별한 일이 없다면 어지간해서는 엘프차를 손수 우려내지 않는다.
이클립스도 만약 앞에 서진이 없었다면 이런 호사를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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