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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장 - 말살
포항여객터미널.
“야! 쪽발이들! 어서 와라!”
지흥수가 천둥처럼 큰소리를 쳤다.
관광객을 가장하고 있던 일본의 능력자들은 순간 크게 동요했다.
“네놈은 진격의 거인 지흥수?”
“응, 맞아. 나야.”
“어떻게 알았지?”
“뭘 어떻게 알아? 우리 잡겠다고 그렇게 난리 블루스를 쳐놓고. 그리고 망했다고 소문이 자자한 나라에 유람선 타고 들어오는 놈들이 요새 어디 있냐? 그것도 외교관계도 없는 일본에서……. 머리도 좀 쓰고 살아라!”
“으음.”
유람선에서 내린 일본 능력자들은 뭔가 일이 틀어졌다는 것을 직감했다.
지흥수의 앞으로 콧수염을 한 중년 사내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그래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콧수염! 네가 일본 능력자협회 회장이냐?”
“그렇다. 이번에 새롭게 선출된 일본 능력자협회 회장 후지다. 그리고 너희 특무대를 징벌하기 위해서 온 신센구미의 조장이기도 하다.”
“아! 신선조(新選組)! 그래. 너 참 후지다.”
후지는 지흥수의 말뜻을 알아먹었는지 인상을 팍 썼다.
“그렇게 큰 소리를 칠만한 전력이 없을 텐데?”
“너희들이 타고 온 이 유람선을 우리가 미사일로 쏴버렸다면 어떻게 됐을 것 같아?”
후지의 무시하는 말에 지흥수는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받아쳤다.
“으음, 왜 그렇게 하지 않았지?”
“왜 미사일을 쏘지 않았냐고?”
“그래. 만약 그렇게 했다면 우리 신선조의 능력자들이 큰 피해를 입었을 텐데…….”
“우리 황제폐하의 배려 때문이다. 너희들 다 죽이면 일본이 마수천국으로 변할 테니까…….”
호언장담하는 지흥수의 말투에 후지의 미간이 파르르 떨렸다.
“너희들에게 과연 그럴 능력이 있을까?”
“그렇게 계속 주둥아리만 나불거리지 말고 저쪽으로 가서 한판 뜨자.”
지흥수는 한손을 들어 자신의 뒤쪽을 가리켰다.
후지는 지흥수 어깨 너머로 보이는 영일만 해수욕장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싸우러 왔으니 싸워야지. 그런데 혹시 지뢰나 크레모아 같은 것 설치하고 그러진 않았겠지?”
“동북아초인전쟁 때 너희가 한 짓거리를 우리도 하지 않았냐는 거지? 우린 너희들과 달라! 그런 짓 안하고도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
후지는 지흥수의 말에 얼굴이 확 붉어졌다.
일본 능력자협회가 동북아초인전쟁 당시 어떤 비겁하고 치사한 짓을 했는지는 누구보다도 자신이 더 잘 알았다.
“일단 기습을 하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싸울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
“천만에! 따라와라.”
지흥수는 단신으로 와서 겁도 없이 그들에게 등을 보였다.
후지를 비롯해 850명에 달하는 일본 능력자협회, 아니 신선조의 능력자들이 아무 말 없이 지흥수의 뒤를 따라 영일만의 모래사장을 밟았다.
그들의 앞에는 330명의 특무대 대원들이 검은 색의 전신갑주를 입고 넓게 포진해있었다.
후지를 비롯한 일본의 능력자들은 그들의 모습에 흠칫했다.
하지만 숫자를 세어보더니 곧 다들 여유를 되찾았다.
“지흥수 대장, 이거 전력의 차이가 너무 심한 것 아닌가?”
“무슨 소리야? 여기 상급능력자 30명, 중급능력자 300명이나 있는 거 안보여?”
“푸하하하하!”
“껄껄껄껄!”
“우하하하!”
갑자기 신선조 능력자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트렸다.
후지도 지흥수의 말에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대한제국의 모든 상급능력자와 중급능력자가 다 여기 모여 있었군.”
“그쪽도, 일본의 모든 상급능력자와 중급능력자가 다 이리 기어들어왔군.”
“기어들어오다니? 그대는 눈이 멀었는가? 정녕 여기 일본의 상급능력자 50명과 중급능력자 800명이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일국의 능력자협회 회장이라는 자가 어찌 힘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가?”
후지는 지흥수에게 마치 호통을 치듯 말했다.
지흥수는 후지의 말에 새끼손가락을 자신의 귓구멍에 푹 쑤셔 박더니 마구 후볐다.
그리고는 자신의 입 앞으로 가져와 훅 불었다.
“거 새끼 더럽게 말 많네. 열도에서는 싸움을 입으로 하냐? 아니면 머릿수 세보고 싸워? 개소리 작작하고 어서 들어와!”
거침없이 도발하는 지흥수로 인해 후지를 비롯한 일본 능력자들의 분위기가 싸하게 변했다.
후지는 슬쩍 고개를 뒤로 돌려 한 명의 잘생긴 청년을 쳐다봤다.
붉은 색의 전시갑주를 입고 있는 청년이 후지를 향해 씨익 미소를 지으며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후지는 그 모습에 안심한 표정으로 다시 지흥수를 쳐다봤다.
“쳐라!”
와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아!
후지의 명령이 떨어지자 신선조의 능력자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앞으로 튀어나갔다.
쿠쿠쿵 쿠쿠쿵 쿠쿠쿠쿵!
하지만 그들의 돌격은 특무대의 탱커들로 인해 그 자리에서 봉쇄됐다.
수십 개의 거대한 방패들이 일제히 세워지더니 빠르게 신선조 능력자들을 반원을 그리며 포위했다.
“공간을 넓혀라!”
후지는 특무대가 반원으로 자신들을 포위하며 조여오자 자신들의 활동반경을 염려해서 넓게 퍼지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신선조 능력자들이 모여 있는 모래사장 안에서 묵철의 골렘 파울이 커다란 동체를 일으켰다.
놀란 일능협 능력자들이 급히 뒤로 물러서더니 능력과 스킬을 난사했다.
붉은 화염과 푸른 번개가 떨어져 내렸다.
새하얀 얼음창과 날카로운 바람의 칼날들이 쏟아졌다.
쾅 콰콰콰쾅 쾅쾅쾅!
하지만 골렘 파울의 거대한 동체에는 흠집하나 나지 않았다.
그와아아아아!
골렘 파울이 크게 함성을 질렀다.
그리고는 두 팔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며 일본의 능력자들을 후려쳤다.
퍽 퍼퍼퍼퍼퍽!
콰지직 우두두둑 빠각!
“으아악!”
“크악!”
“아악!”
워낙 좁은 장소에 많은 신선조 능력자들이 몰려있었던 탓인가 보다.
골렘 파울의 무식한 공격은 의외로 그들에게 큰 피해를 일으키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피해는 역시 전열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능력자들의 특성 상 힐러와 보조계열 능력자는 항상 뒤쪽이나 가운데에 모여 있게 된다.
이들이 골렘 파울의 공격을 피하는데 급급한 바람에 같은 편 탱커들을 지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전력상승과 사기 면에서 큰 악영향을 미쳤다.
특무대와 골렘 파울이 안팎에서 공격을 해오는 통에 신선조 능력자들은 지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우왕좌왕 댔다.
만약 압도적인 전력차이가 없었더라면 아마 단번에 쓸려버렸을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 Simon, Simon Go! Lich! Simon G.o.L.i.c.h oh! oh! ♪]
그리고…….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처벅 처벅 처벅 처벅!
처벅 처벅 처벅 처벅!
동시에 발자국 소리가 전투하는 와중에도 귀에 똑똑히 들려왔다.
“이게 무슨 소리지?”
“바다 속이다.”
“뭐?”
바닷가 쪽에 있던 일본 능력자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봤다.
그들의 눈이 찢어질 듯 크게 부릅떠졌다.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푸른 동해바다!
그 바다 속에서 완전무장을 한 스켈레톤 전사들이 대열을 갖춰 걸어 나오고 있었다.
스켈레톤 전사들의 뒤로는 스파토이들이 보였다.
“이런 비겁한 놈들! 마수들을 이용하다니…….”
후지가 칼을 휘두르면서 지흥수에게 소리쳤다.
지흥수는 사무라이 흉내를 내고 있는 일본의 능력자 한 놈에게 전격의 구를 날리며 대꾸했다.
“너희들은 소환사도 없냐? 저게 마수들로 보여?”
“저게 전부 소환수라고?”
후지는 깜짝 놀라 특무대 능력자의 검에 팔 한쪽이 잘릴 뻔했다.
그는 급히 뒤로 물러나 탱커들 사이로 숨으며 말했다.
“소환사가 대체 몇 명이나 되기에 저렇게 소환수가 많다는 말이냐?”
“알갈켜줌!”
그걸 지흥수가 왜 가르쳐주겠는가?
지흥수는 속으로 고소를 지으며 열심히 전격의 구를 날려 신선조 능력자들을 지져댔다.
“으아아악! 살려줘!”
그때 신선조 능력자 한 명이 하늘로 휙 떠올랐다.
“뭐야? 저게?”
“귀신이다. 사람을 잡아 하늘로 올라간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본 능력자들을 패닉으로 몰아가는 일이 터졌다.
갑자기 뭔가가 휙 날아와 신선조 능력자를 하나씩 잡아 하늘로 올라가더니 팔다리를 전부 부러뜨리고 한쪽 모래사장에 처박아 버렸다.
워낙 신(神)도 많고 미신도 많은 나라라 이런 일이 일어나자 당장 귀신이라고 벌벌 떠는 놈조차 생겨났다.
하늘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귀신!
땅에는 묵철로 만들어진 무적의 골렘!
바다에서는 스켈레톤 전사와 스토파이 전사들!
하늘과 땅 그리고 바다!
이렇게 입체적으로 두들겨대는 특무대의 공격에 누가 봐도 더 강한 전력을 가지고 있는 신선조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후지는 급히 뒤로 물러나더니 붉은 전신갑주를 입고 있는 청년을 향해 소리쳤다.
“시바 료헤이(司馬良平)! 도와주시오.”
“알았어. 안 그래도 슬슬 움직이려고 했어.”
시바 료헤이는 후지의 말에도 느긋하게 목과 팔다리를 풀었다.
그것은 마치 육상선수가 달리기를 시작하기 전에 몸을 푸는 모습이었다.
일본에 단 한명밖에 없는 최상급능력자!
그가 움직이려 한다는 사실에 신선조 능력자들의 사기가 절로 충천했다.
차차차창 차차창 차차차창!
콰과광 쾅쾅쾅!
펑펑펑 펑펑펑!
파츠츠츠츠츠츳!
그가 몸을 푸는 사이에도 영일만 해수욕장의 모래사장은 특무대와 신선조의 한판 싸움으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었다.
시바 료헤이는 몸을 풀면서 특무대를 싸늘한 눈초리로 쳐다봤다.
‘압도적인 전력 차로 밀어붙여도 모자라는 판에 조센징들에게 우리 신선조가 이렇게 무력하게 밀리다니……. 아무리 소환수가 많아도 이건 아니지.’
시바 료헤이는 특무대와 신선조 모두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봤다.
그의 이런 눈빛과 여유는 자신의 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언제라도 전세를 뒤집을 수 있는 능력!
그것이 최상급능력자인 그가 가지고 있는 힘이었다.
‘그럼 시작해볼까?’
시바 료헤이가 천천히 두 팔을 들었다.
그의 두 손에서 새하얀 기류가 뿜어져 나왔다.
순수한 마나로 이루어진 기류!
그것은 순식간에 상아처럼 매끄러운 두 개의 환을 만들어 냈다.
강환(罡環)!
그것은 강기(罡氣)를 고도로 압축시켜 만든 환으로 무엇이든 다 부셔버리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첫 방은 역시 진격의 거인이라는 저놈이 좋겠군. 잘 가라!’
시바 료헤이의 입가에 잔혹한 미소가 어렸다.
그가 두 주먹을 동시에 앞으로 내밀었다.
어깨에서 시작된 선이 그의 주먹을 지나 이어진 끝에는 진격의 거인 지흥수의 얼굴이 있었다.
푸슈슝!
쐐애애애액!
그의 두 주먹에서 엄청난 속도로 두 개의 강환이 날아갔다.
마치 대물저격총으로 사람을 저격하는 것과 같은 기세!
지흥수가 강환에 맞게 된다면 분명히 사망에 이르는 중상을 입게 될 것이다.
카캉!
퍼펑!
지흥수의 바로 코앞에서 강철이 부딪치는 소리가 연속으로 터져 나왔다.
동시에 지흥수의 앞에 커다란 모래구덩이 두 개가 터지듯이 파였다.
하늘에서 모래가 소나기처럼 떨어져 내렸다.
놀란 지흥수는 급히 몸을 움직여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지흥수보다 더 놀란 사람이 있었다.
바로 시바 료헤이였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내 강환을 누가 막았지? 누가 감히 내 강환을 막을 수 있지?’
시바 료헤이는 급히 주변을 살펴봤다.
그때 그의 머릿속으로 차가운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야! 이 시발 새끼야! 최상급능력자라는 놈이 마수는 잡지 않고 여기서 백정처럼 사람이나 잡고 있냐?]
“누, 누구냐? 정체를 드러내라. 그리로 내 이름은 시발이 아니다. 시바 료헤이다.”
[그, 그래? 시바인지 시발인지 모를 놈아! 북쪽으로 달려와! 당장 안 뛰어오면 일본 능력자협회 소속 능력자들, 아니 신선조를 당장 몰살을 시켜버리겠다.]
꿀꺽!
시바 료헤이는 자신의 머릿속에 직접 말을 해대는 정체불명의 능력자로 인해 크게 긴장했다.
하지만 그는 누가 뭐라고 해도 일본 제일의 능력자이자 세상에 단 70명밖에 없다는 최상급능력자였다.
그의 자존심은 불안해하는 자신의 직감을 무시하고 결국 그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휘익!
다다다다다다다!
문제는 시바 료헤이가 갑자기 허공을 날아 무리 밖으로 뛰어 나가더니 북쪽으로 달려가자 신선조의 사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들은 모두 시바 료헤이가 도망을 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로인해 신선조 능력자들은 갑자기 맥이 쭉 빠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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