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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장 최상급마족
서진은 란돌프의 전신갑주 V2를 장비해제하고 블루볼에 처박았다.
대신 미켈란아머를 착용했다.
아무리 드워프의 명장이 만든 명품 전신갑주라고 해도, 에이션트 드래곤 미켈란이 직접 자신의 비늘을 이용해 만든 드래곤스케일아머에 비교할 수는 없다.
거기에다 각종 버프와 마법방어진으로 드래곤스케일아머 전체를 도배가 된 상황이었다.
‘올! 이건 정말…… 예술이다. 어떻게 이렇게 가볍고 편할 수가 있지? 거의 착용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잖아!’
서진은 도저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굳이 미켈란아머 등급을 매기자면 EX급은 확실해보였다.
그는 만족한 웃음을 지으며 이리나의 팔찌를 차봤다.
지잉!
슬쩍 마나를 밀어 넣었더니 평범한 은팔찌가 갑자기 반투명한 원형방패로 변했다.
마나를 더 밀어 넣자 원형방패의 크기가 조금 더 커졌다.
얼마나 더 커질지 궁금해서 계속 마나를 쑤셔 박자 자신의 몸 전체를 다 가리고도 남을 정도가 됐다.
‘이것도 괜찮네. 신성력이 가득한 것을 보니 결코 평범한 물건은 아니다.’
미안하지만, 디바인실드는 얼른 빼서 블루볼에 집어넣었다.
이리나의 팔찌같이 좋은 방패(디바인홀리실드)가 있는데 굳이 디바인실드를 고집할 이유는 없었다.
결국 란돌프의 전신갑주 V2와 디바인실드는 서진에게 버림받았다.
아니 예비물자로 분류되어 블루볼에 처박혔다.
“준비되셨으면 바로 출발하시죠?”
“네, 좋습니다.”
이클립스의 말에 서진은 두말없이 회의실을 나왔다.
그는 따라 밖으로 나온 아리아나에게 가볍게 키스를 했다.
“금방 갔다 올게.”
“조심히 다녀오세요.”
아리아나의 애정 어린 시선이 그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지는 듯 했다.
그는 환한 미소를 지어준 뒤 씩씩하게 복도를 걸어갔다.
유니언 본부 차원게이트 룸에 도착해서 카산드라 행성으로 가는 차원게이트를 탔다.
서진의 몸이 푸른 물결처럼 출렁거리는 차원게이트 속으로 풍덩 빠져들었다.
* * *
카산드라 행성 아가멤논 대륙 총참모부 회의실.
“제이코 사령관! 이대로는 안 됩니다.”
“맞습니다. 반드시 그 쥐새끼부터 잡아야합니다.”
“그놈 때문에 카산드라 각 전선의 사기가 지금 말이 아닙니다.”
“간신히 맞춰놓은 유니언과의 세력균형이 어느 순간 급속도로 기울고 있어요.”
“흐음!”
제이코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두 명의 부사령관이 돌아가면서 압박을 해대자 절로 얼굴 표정이 굳어졌다.
“그걸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잡을 수만 있다면 나라도 당장 달려가서 때려잡고 싶습니다. 문제는 그놈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나타날 줄 알고 전 전선에 트랩을 깔겠다는 겁니까?”
“전 전선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당장 이 총사령부와 주요 핵심전선에라도 트랩을 깔아야합니다.”
제이코의 반문에 슈마스 부사령관은 조금도지지 않고 말했다.
카에락 부사령관이 슈마스의 말에 힘을 실어줬다.
“트랩을 깔아서 그놈을 잡겠다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시간을 끄는 것이 목적입니다. 어디서 나타나는지만 안다면 텔레포트 마법진을 이용해 우리 셋이 신속히 현장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최상급마족인 우리 셋이 나서는데 설마 그놈 하나를 잡지 못하겠습니까?”
“뭐 그거야 그렇겠지요.”
제이코는 그들의 말을 부정하지 못했다.
아니 슈마스 부사령관과 카에락 부사령관이 워낙 강경하게 얘기하자 제이코 사령관도 슬그머니 태도를 바꿔 그들의 말에 동조하기 시작했다.
“그럼 트랩은 어떤 종류로 할 생각입니까?”
쿠쿠쿠쿵 쿠쿠쿠쿵 쿠쿠쿠쿵!
그때였다.
갑자기 밖에서 연속적으로 폭음이 울리더니 대지가 크게 진동했다.
“무슨 일이지?”
“설마 우리가 지금 말하고 있는 바로 그놈이 나타난 것은 아니겠지요?”
“아무래도 맞는 것 같은데요.”
“일단 나가봅시다.”
“그놈이 맞는다면, 오늘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때려잡아야합니다.”
그들은 급히 총참모부 회의실을 뛰쳐나가 주변을 살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기다렸던 그놈이 나타난 것이 확실했다.
“폭격입니다.”
“그놈이 맞는 것 같습니다.”
“정말 듣던 대로 어디에서 폭격을 하는지 모르겠군요.”
“저쪽입니다.”
제이코가 한손을 들어 북쪽에 아스라이 보이는 언덕 하나를 가리켰다.
노란 광채를 띄고 있는 뭔가가 그곳에서 마구 솟구쳐 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갑시다.”
슈마스가 지체 없이 몸을 날렸다.
파앙!
공기가 찢어지는 듯한 파공성이 울려 퍼졌다.
“난 직할대를 끌고 갈 테니 먼저 가세요.”
“그러지요.”
카에락이 제이코에게 먼저 가라고 손짓을 했다.
그러자 제이코는 사양하지 않고 번개처럼 몸을 날렸다.
팍!
그의 몸이 허공에서 꺼지듯이 사라졌다가 몇 백 미터 앞에 나타났다.
다시 모습이 사라지고 나타나기를 반복하며 빠르게 이동했다.
아무래도 중간에 순간이동을 섞어 쓰는 모양이었다.
카에락 부사령관은 급히 총참모부 직할대를 불러들였다.
직할대 대장에게 북쪽 언덕으로 오라고 명령을 내린 카에락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 급히 날개를 활짝 폈다.
촤아아악!
펄럭 펄럭! 펄럭 펄럭!
박쥐의 날개 같은 피막으로 된 그의 날개가 마구 펄럭거렸다.
카에락의 몸이 허공으로 둥실 떠오르더니 쏜살같이 날아갔다.
날 수 있는 것은 마족이 가지고 있는 권능의 하나였다.
하지만 모든 마족들이 전부 나는 것을 즐기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이렇게 빠르게 상황에 대처하고 있는 그 짧은 사이에도…….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죽음의 비는 아가멤논 대륙 총참모부를 촉촉이 두들겨대고 있었다.
쿠쿠쿠쿠쿵 쿠쿠쿠쿠쿵 쿠쿠쿠쿠쿵!
아가멤논 대륙 총참모부 북쪽 10km 지점.
남쪽을 향해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는 서진이 크게 소리쳤다.
“온다.”
“결계를 세우고 물러나!”
“트랩을 작동시켜!”
“서진! 행운을 빌어요.”
린다와 메이코 그리고 케이트가 차례대로 한마디씩 소리치며 뒤로 물러났다.
그들이 앉아있던 자리에서 은은한 빛이 일제히 떠올랐다 사라져갔다.
결계와 트랩이 제대로 작동하는 것을 확인한 셋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언덕 아래로 도망쳤다.
서진은 그들을 힐끗 한번 쳐다보고는 심호흡을 했다.
“휴우우우!”
주사위는 던져졌다.
성공을 할지, 실패를 할지…….
오직 하늘만 알 것이다.
이제 언덕 위에 남은 사람은 오직 서진뿐이었다.
쿵쿵!
아니 서진의 앞으로 이동해 정면을 가로막아선 존재!
묵철의 골렘 파울도 남아있었다.
그는 위상배열 레이더를 통해 실시간으로 가까워지는 세 개의 존재를 확인했다.
최상급마족 셋!
하나라면 모를까, 둘이면 승패를 장담할 수 없는 강적들이었다.
셋은 말할 것도 없는 필패가 분명하다.
물론 일반적인 방법으로 싸운다면 말이다.
‘와이비 소환, 사이먼 소환!’
[꾸와앙!]
[마스터, 부르셨습니까?]
와이비와 사이먼이 차례로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강적이 나타났다. 최상급마족 셋이다. 내 바로 앞에 결계와 트랩을 깔아놓았으니 너희들은 신호를 하면 저들의 발을 묶어라.]
서진은 와이비와 사이먼에게 명령을 내렸다.
[꾸와앙!]
[예, 마스터.]
와이비는 대답을 하자마자 즉시 자신의 모습을 투명하게 만들고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사이먼도 서진을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이고는 마법으로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사라졌다.
서진은 상태창을 열어 활성화된 스킬들을 빠르게 확인했다.
‘위상배열 레이더, 탐지, 감지, 탄두강화, 다탄두, 출력강화, 방어막, 뇌정 인챈트, 뇌(雷)속성 인챈트, 사일로, 위상변화…….’
필요한 스킬이 모두 활성화되어 있자 그는 왼손을 위로 살짝 들어 마나를 주입했다.
이리나의 팔찌가 즉시 원형방패로 변하며 상체를 전부가릴 만큼 커졌다.
이리나의 팔찌가 디바인홀리실드로 변신한 것이다.
스르렁!
그는 팬텀소드를 꺼내 들었다.
날카로운 칼날을 보는 것만으로도 심리적인 안정감을 느꼈다.
텅! 텅!
자신의 가슴을 팬텀소드 손잡이 뒤쪽으로 두 번 쳤다.
마치 도자기를 두드린 것처럼, 미켈란아머의 청명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자신의 목숨을 지켜줄 믿음직한 소리였다.
‘마왕의 날개!’
촤라라라라라라!
마지막으로 날개를 펼쳤다.
그의 등 뒤로 반투명한 날개가 활짝 펴지며 흔들거렸다.
‘이로써 내가 쓸 수 있는 카드는 다 썼다.’
서진은 이를 악물고 이리나의 팔찌, 아니 디바인홀리실드를 치켜들었다.
그 사이에도 그의 머리 위에서 미친 듯이 소환되고 있는 매직미사일이 하늘로 솟구쳐 올라가 아가멤논 대륙 총사령부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타깃을 바꿔줘야 할 때가 다가왔다.
그는 새로 소환한 684개의 매직미사일의 타깃을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세 명의 최상급마족으로 바꿨다.
하지만 매직미사일을 발사하지는 않았다.
팍!
파앙!
제일먼저 제이코가 허공에서 툭 튀어나왔다.
그 뒤를 슈마스가 이었다.
멀리서 카에락이 열심히 날갯짓을 하며 날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네놈이구나.”
“이 쥐새끼 같은 놈!”
서진은 제이코와 슈마스가 자신의 20m 앞에 내려서는 것을 보고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조금도 티를 내지 않았다.
“참 예의가 없는 놈들이네. 보자마자 욕부터 해대다니…….”
“무하하하! 이런 찢어죽일 놈! 그동안 잘도 우리 호드진형을 쑥대밭으로 만들었겠다.”
“크하하하! 우리를 보고도 주둥아리를 놀려대다니 참 겁 대가리를 상실한 놈이구나.”
제이코와 슈마스는 서진과 정확하게 삼각형을 이루더니 앙천광소를 터트렸다.
그들의 태도는 마치 서진의 생명이 자신들의 손아귀 안에 들어있다는 태도였다.
펄럭 펄럭 펄럭!
척!
그 사이 카에락까지 날아와 그들 사이에 내려섰다.
“호오, 이놈이었군. 그동안 우리 속을 썩인 놈이.”
“원래 마족들은 그렇게 예의가 없니? 자기소개도 안하고? 하나같이 말이 무척 짧다.”
서진은 기다리던 최상급마족 셋이 도착하자 심장이 가슴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두근거렸다.
하지만 얼굴에 철면피를 깔고 그들과 대거리를 했다.
“어차피 죽을 놈이긴 하지만 용기가 참 가상하구나.”
“그렇다고 해도 넌 우리가 누군지 알 자격이 없다.”
“하찮은 인간에게 굳이 우리의 이름을 알려줄 필요가 없지.”
“역시 생각대로 싸가지가 없는 놈들이군.”
서진은 오만방자한 최상급마족 셋을 보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한 발짝 앞으로 나오면서 손가락을 흔들었다.
‘위상변화!’
순간 그의 몸이 그 자리에서 꺼지듯 사라져버렸다.
동시에 언덕 전체에서 햇빛을 능가하는 밝은 빛이 터져 나왔다.
제이코, 슈마스, 카에락이 밟고 있는 대지에서 우유빛 광채가 솟구쳤다.
“헉, 함정이다.”
“이게 뭐야? 성역결계!”
“마력결계?”
제이코, 슈마스, 카에락은 그제야 자신들이 함정에 빠진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전력을 다해 언덕을 벗어났다.
아니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그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언덕 전체에 마력을 무력화시키는 마력결계가 펼쳐져 있었다.
또한 안쪽으로 마족과 상극의 기운을 쏟아내고 있는 성역결계가 완성되어 있었다.
“크아아악!”
“아아아악!”
슈마스와 카에락의 피부가 검은 연기를 풀풀 뿜어내며 타들어가고 있었다.
성역결계에서 쏟아져 나오는 우윳빛 광채 때문이다.
‘제이코는?’
서진은 즉시 매직미사일을 발사했다.
쏴아아아아아!
언덕 상공 3km 지점에서 684개의 매직미사일이 일제히 떨어져 내렸다.
제이코는 간발의 차이로 마력결계와 성역결계가 펼쳐진 언덕을 벗어났다.
순간이동 능력이 위기의 순간을 벗어나게 만들어줬다.
“이놈!”
제이코는 거침없이 날아오르고 있었다.
서진의 위치를 확인한 그의 등 뒤에는 어느새 두 날개가 활짝 펴져 있었다.
중간에 움직이는 모습이 뚝뚝 끊어지는 것을 보니, 날아오르는 와중에도 순간이동 능력을 섞어 쓰고 있는 듯 했다.
[사이먼! 파울! 결계에 갇혀있는 놈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붙잡아라!]
서진은 사이먼과 파울에게 즉시 명령을 내렸다.
[네, 주인님.]
[예, 마스터.]
사이먼과 파울은 힘차게 대답을 했다.
사이먼은 자신의 군단을 소환해 언덕을 포위하고 화살과 투창을 이용해 원거리 공격을 퍼부었다.
파울은 바로 슈마스와 카에락에게 들러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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