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89 / 0225 ----------------------------------------------
제48장 - 정벌
차가운 요동의 바람이 불어온다.
왠지 커피의 맛이 더 달게만 느껴진다.
호르륵!
제일 좋아하는 하와이산 코나커피는 아니지만…….
아직도 이렇게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는 것이 감사하다.
“맛있어요?”
슬쩍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뭐가 그리도 추운지, 코트로 몸을 단단히 감싼 아리아나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커피를 맛으로 먹는 것은 아니지.”
“그럼요?”
“문화를 마신다고나 할까?”
자신이 생각해도 별로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별 다방이나 콩 다방을 찾는 많은 현대여성들이 과연 커피의 맛을 제대로 알고 마실까 생각해보면, 그건 역시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커피 마시기 싫으면 엘프차를 내오던가.”
“어떻게 매일 엘프차를 마셔요.”
“하긴 그렇게 흔한 차였으면 내가 이렇게 커피를 마시지도 않았겠지.”
서진의 말에 아리아나는 괜히 미안해졌다.
아무래도 엘프의 숲에 가서 엘프차를 좀 더 구해 와야 할 것 같다.
그녀는 그의 한쪽 팔에 팔짱을 꼈다.
탄탄한 팔뚝이 왠지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아리아나의 입가에 찬란한 미소가 떠올랐다.
서진은 그녀의 입술에 부드럽게 키스를 했다.
쪽!
“크흠!”
뒤쪽에서 괜한 헛기침소리가 들려왔다.
몸을 돌리자 부동자세로 서 있는 특무대 대장 지흥수와 이명호 정보부장관 그리고 김종무 국방부장관의 애가 닳은 모습이 보였다.
“어휴! 그렇게 똥마려운 강아지 표정 좀 짓지 말라니까.”
“아이고, 급한 것을 어떻게 합니까?”
지흥수는 서진의 말에도 불구하고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잘됐다는 듯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뭐가 그렇게 급한데?”
“만주정벌작전이 한창 진행 중이니 당연히 급할 수밖에요.”
“그럼 또 보고를 들어야해?”
“네, 그렇습니다.”
귀찮다는 티를 역력한 서진!
그 모습에 오히려 미소 짓는 지흥수!
아리아나는 상반된 두 남자의 표정이 재미있기만 하다.
“전권을 줬잖아. 그럼 알아서 해야지. 왜 또 나한테 보고를 해?”
“하하하,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중요한 일은 보고를 하고 같이 의논을 해야지요.”
“흐음, 할 수 없군. 그럼 짧게 가자.”
“네, 마스터.”
선양시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훈허강 앞 벤치.
서진은 그곳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리아나는 눈치 빠르게 산책을 하고 오겠다며 강가를 거닐었다.
그 모습에 서진이 도끼눈을 하고는 지흥수를 노려봤다.
“간만에 데이트 좀 하려고 했더니, 그새를 못 참고 달려와?”
“죄송합니다. 하지만 대한제국 황제이시잖습니까? 대한제국과 일본의 국방과 외교는 엄연히 대한제국 황실에 속해있으니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
“알아서 소신껏 하라고 했잖아.”
“당장 중국과 러시아에서 전쟁을 하겠다고 나오는데요?”
“그래?”
서진은 처음 듣는 소리에 호기심이 생겼다.
그걸 깨달은 이명호 정보부장관이 얼른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일단 보고부터 드리겠습니다.”
“으음.”
서진은 결국, 꼼짝없이 앉아서 그들의 보고를 들어야만했다.
지흥수와 이명호는 물론이고 김종무 국방부장관이 신나게 떠들어댔다.
서진은 그들의 보고를 한쪽 귀로 들으면서 지난 일을 떠올렸다.
카산드라 행성, 아가멤논 대륙 사령관 제이코를 죽이고 부사령관인 슈마스와 카에락을 생포한지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유니언으로부터 두 번의 임무를 더 받아 해결했다.
임무는 다름 아닌 폭격!
공평하게 레무리아와 카산드라에 각각 한 번씩 다녀왔다.
덕분에 하이엘프의 명장이 만든 ‘위그드라실의 귀걸이’와 신수가 봉인되어 있는 ‘해태장갑’을 대가로 챙겼다.
‘최상급 아티펙트를 두 개나 얻은 것도 큰 소득이다. 하지만, 유니언 상원에서 신성일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해준 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큰 소득이야.’
서진은 절로 회심의 미소가 그려졌다.
그는 유니언과의 약속을 지켰다.
꾸준히 임무를 받아 성공적으로 해결해온 것이다.
마찬가지로 유니언도 서진에게 약속한 정보를 알아봐줬다.
유니언과의 관계는, 아니 유니언 상원과의 관계는 더 이상 좋을 수 없을 만큼 좋은 상태다.
이제 남은 것은 마족의 행성이라는 시드라 행성으로 가서 직접 확인하는 것만 남았다.
물론 최상급마족과 마왕이 득실거리는 시드라 행성을 단독으로 침투할 생각은 없었다.
아무리 과거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중요해도 목숨과는 바꿀 수 없는 일이다.
레무리아 행성과 카산드라 행성이 곧 유니언의 손에 떨어질 것이다.
서진의 폭격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조만간 시작될 유니언의 전면적인 대공세!
그것은 호드의 여섯 동맹행성에 대한 직접적인 공략을 의미했다.
서진은 그때 시드라 행성으로 들어갈 계획이다.
쉽게 말해서 안전하게 유니언의 대군이 들어갈 때 같이 묻어가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돼서 현재 대한제국육군 제1지대와 제11지대는 요녕성으로, 제2지대와 제12지대는 길림성으로, 제3지대와 제13지대는 흑룡강성으로, 제4지대와 제14지대는 연해주로, 제5지대와 제15지대는 사할린 섬으로 진군하고 있습니다.”
“사할린 섬까지?”
서진은 사할린 섬을 거론하자 즉시 하던 생각을 멈췄다.
“봐서 여유가 되면 레나 강 동쪽의 시베리아 땅까지 점령할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라이름을 대한제국으로 지었더니 진짜 제국인줄 아나보네? 무슨 땅에 한이라도 맺혔어? 왜 그렇게 욕심을 내?”
이명호 정보부장관은 절제된 목소리로 차분하게 설명했다.
“지금 시베리아 땅은 마수들로 인해 무주공산이 된 상태입니다. 먼저 먹는 것이 임자입니다.”
“아까 나한테는 중국과 러시아가 전쟁을 하겠다고 나온다면서?”
“그것도 사실입니다. 중국과 러시아 정부가 각각 만주와 연해주로 진군하고 있는 우리 군을 즉시 뒤로 물리라고 통보해왔습니다.”
“안 물리면?”
“전쟁을 불사하겠다고 합니다.”
“음, 그럼 또 전쟁을 해야 하는 거야?”
서진의 말에 김종무 국방부장관이 대답했다.
“러시아는 이미 오래전에 시베리아를 비롯한 동부 영토를 포기했습니다. 그들은 유럽에 접한 자국 영토도 지키기 힘든 상황입니다. 그런 그들이 연해주와 사할린 섬을 수복하고자 전쟁을 할리 없습니다. 그리고 막상 전쟁을 한다고 해도 어떻게 러시아군을 머나먼 연해주로 보낼 수가 있겠습니까?”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의 거리가 대략 6,400km입니다. 병력을 보내는 것도 문제지만 보급이 불가능합니다. 러시아의 전쟁불사발언은 블러핑입니다.”
김종무 국방부장관의 말에 이어 이명호 정보부장관이 부연설명을 했다.
“그럼 중국은? 우리가 만리장성의 동쪽 끝인 산하이관까지 마수들을 정리하는 순간 대한제국과 중국은 영토가 이어질 거야.”
“그래서 이렇게 마스터를 찾아 뵌 것이 아니겠습니까?”
“나를? 내가 뭔가 또 해줘야할 것이 있다는 말처럼 들리는군.”
“그렇습니다.”
이번에는 지흥수 특무대 대장이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그동안 북한과 연해주 그리고 이 넓은 만주 땅까지……. 대형마수와 중대형마수는 거의 빼놓지 않고 다 잡아줬잖아. 그것도 특무대의 레벨과 실력을 높인다고 막타까지 양보해가면서 말이야. 그런데도 내가 또 뭔가를 해줘야하는 거야?”
“마스터,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당장 저희가 의지할 수 있는 분은 마스터뿐입니다.”
지흥수가 다 죽어가는 목소리를 했다.
서진은 한숨을 쉬었다.
“어휴! 못 말리겠군. 그래. 뭐가 문제야?”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서진의 시선이 이명호를 향했다.
이명호는 꿀꺽 침을 한번 삼키고는 빠르게 말했다.
“저희 정보부에서는 러시아와는 달리 중국은 전쟁수행능력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특히 각 지역의 군벌로 확실하게 자리 잡은 7개의 지역 군관구의 전력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마이키가 허공에 홀로그램을 하나 떠올려 중국의 7대 지역 군관구를 보여줬다.
베이징 군구(北京軍區)
선양 군구(瀋陽軍區)
지난 군구(齊南軍區)
난징 군구(南京軍區)
광저우 군구(廣州軍區)
청두 군구(成都軍區)
란저우 군구(蘭州軍區)
서진은 홀로그램을 보면서 이명호에게 물었다.
“중국은 마수로 인해 사분오열된 상태라고 알고 있는데……. 아닌가?”
“맞습니다. 중국은 마수들로 인해 각 군벌별로 지역방어체제로 돌아선 상태입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서진은 손가락을 홀로그램 속의 선양군구를 가리켰다.
“선양 군구는 내가 해결해줬잖아.”
“맞습니다. 선양 군구는 황제폐하의 도움으로 이미 저희 대한제국군과 특무대에 의해 점령됐습니다.”
“그럼 뭐가 문제지”
“7대 지역 군관구 중 가장 막강한 전력을 가지고 있는 베이징 군구가 대한제국의 만주수복에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마이키가 홀로그램을 하나 더 띄우더니 중국인민해방군 베이징 군구의 전력을 알기 쉽게 도표로 표시해줬다.
서진은 슬쩍 한번 훑어보고는 입을 열었다.
“중화인민공화국 해군 북해함대는 우리의 상대가 되지 못해.”
“맞습니다. 일본의 함대 전체를 장악한, 대한제국해군의 서해함대만으로도 북해함대를 상대할 수 있습니다.”
“선양군구 공군은 이미 해결됐고, 베이징 군구 공군이 문젠가?”
“아닙니다. 일본의 전투기를 비롯한 모든 항공작전기를 가져온 대한제국공군은 베이징 군구 공군을 능히 막아낼 수 있습니다.”
이명호의 대답에 서진은 남아있는 베이징 군구 육군과 중국 인민해방군 로켓군을 생각했다.
“설마? 베이징 군구 육군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겠지?”
“물론 아닙니다. 대한제국육군은 제1지대에서 제10지대까지 이미 50만 명의 정예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다 제11지대에서 제20지대까지 빠르게 전력을 확충해나가고 있습니다.”
“그럼 곧 100만 대군이 되겠군.”
“그렇습니다.”
“모병이 쉽지는 않았을 텐데…….”
“아닙니다. 오히려 모병은 문제가 없었습니다. 전(前) 인민군과 일본군 출신 병사들이 대거 입대하는 바람에 오히려 숫자가 남아돌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럼 베이징 군구 육군 30만 명에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잖아.”
“그렇습니다. 문제는 로켓군 입니다.”
“역시 그거였군.”
중국 인민해방군 로켓군(PLA Rocket Forces)은 인민해방군 전략미사일부대로 예전에는 인민해방군 제2포병부대로 불렸다.
베이징에 본부를 두고 중국의 핵탄두 미사일을 비롯해 CBM(대륙간탄도탄), IRBM(중거리탄도유도탄), SRBM(단거리탄도유도탄), LACM(지상 공격 순항미사일) 등 다양한 종류의 재래식 탄두미사일을 운용한다.
“핵탄두가 무용지물이 되었다고 해도 재래식 탄두미사일을 운용하는 로켓군은 여전히 대한제국에 위협적입니다.”
“그래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뭔데?”
서진의 말에 이명호와 김종무가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 모습이 마치 고양이 목에 누가 방울을 걸어야 하는지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보다 못한 지흥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적의 미사일공격을 막아주셨으면 합니다.”
“그건 불가능해. 순항미사일이라면 모를까 대륙간 탄도미사일이라면 고도 1000km 이상을 비행할거야. 차라리 선제타격을 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야.”
“그러다가 적의 탄도미사일이 대한제국의 대도시에 떨어지기라도 하면 큰 인명피해를 불러올 것입니다.”
“전쟁을 하면서 피해를 안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난센스야. 전쟁을 아예 하지 않던가, 꼭 해야 한다면 최소한의 피해로 적의 심장부를 찔러들어가야지.”
“으음.”
각 군벌로 찢어져서 몇 개의 나라처럼 변해버린 중국은 여전히 대한제국에 위협적인 존재였다.
“한 가지 방법이 있긴 하지.”
“네? 그게 뭡니까?”
“베이징을 향해 만주와 몽골의 마수들을 밀어버리는 거지.”
“아!”
서진의 눈가가 옅은 살기로 빛났다.
지흥수와 이명호, 김종무는 서진의 말이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생각을 해보더니 절로 침을 꿀꺽 삼켰다.
“인명피해가 엄청나겠군요.”
“잘못하면 베이징 군구가 단번에 쓸려나갈지도 모르겠네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긴 한데…….”
셋은 각각 딴 소리를 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자신의 이름 앞에 각각 붙게 될 ‘학살자’라는 타이틀이 두렵기만 했다.
============================ 작품 후기 ============================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선호작, 추천, 코멘트, 쿠폰, 후원 고맙습니다!
유쾌한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