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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장 - 정벌
“그놈의 공기 한번 참 더럽네.”
-괜찮으십니까?
“나야 괜찮지. 미켈란아머를 장비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저 아래 베이징(北京)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절대 괜찮지 않을 거야.”
서진의 목소리에 절로 짜증이 섞여 나왔다.
도시의 대기오염 수준이 정말 극악이었다.
당연히 하늘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고 뿌옇게 퇴색되어 있었다.
왠지 숨을 많이 쉬면 쉴수록 수명이 단축될 것만 같은 기분.
2152만 명이 살아가는 중국의 수도 베이징은 정말 공기가 더럽게도 더러웠다.
-마스터, 베이징군구를 장악하고 있는 장쓰벌 군구사령관과의 비밀협상은 결렬되었습니다.
“그럼 플랜 B로 가야겠군.”
-그렇습니다. 장쓰벌 군구사령관과 치열하게 권력투쟁을 벌이고 있는 정치위원 유발년의 손을 들어줘야할 것 같습니다.
“유발년을 믿을 수 있을까?”
-다행히 그는 친 대한제국파로 분류되는 인물입니다. 물론 제어장치는 미리 만들어뒀습니다.
“나노로봇과 메디봇인가?”
-나노로봇은 발각당할 확률이 높아서 아예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메디봇을 투여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잘됐군.”
와이비의 목 뒤에 앉아 베이징 상공을 넓게 선회하고 있는 서진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그럼 곧바로 작전명 ‘북경오리’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래.”
-유발년의 요구대로 베이징 군구사령관 장쓰벌과 그의 추종세력을 일거에 제거하는 것이 이번 작전의 핵심입니다. 제거대상을 허드에 표시하겠습니다. 마스터께서 살생부에 기재된 자들을 모두 처리하시면 곧바로 클론볼들이 감시하고 있던 중국 인민해방군 로켓군의 탄도미사일 생산시설과 사일로 그리고 이동식발사대를 제거해나가겠습니다.
마이키는 자신감이 넘치는 목소리로 작전의 시작을 알려왔다.
서진은 허드에 나타난 붉은 점 중에서 1번을 골라 위치를 확인했다.
그곳은 베이징 시에 있는 베이징 군구 사령부였다.
위상배열 레이더를 켜고 정신을 집중하자 베이징 군구사령관 장쓰벌이 회의를 주제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민간인이 너무 많으면 곤란한데…….’
서진은 오늘 수백 명을 죽여야 한다.
대한제국을 징벌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켜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는 베이징 군구의 강경파 놈들을 싹 쓸어버려야 하는 것이다.
대한제국을 일으킨 장본인이자 대한제국의 황제로써, 그는 대한제국의 미래를 위해 이 작전을 직접 주도하기로 결정했다.
누군가의 손에는 반드시 피를 묻혀야하는 작전이다.
기왕 이렇게 된 것, 그는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아무리 대한제국을 위한다고 해도, 아무 죄도 없는 민간인을 죽이는 것은 영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그는 허드에 뜬 지도를 크게 확대해봤다.
다행히 붉은 점 수십 개가 같이 모여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숫자를 확인해보니 척살대상 1번인 장쓰벌 군구사령관을 시작으로 2번에서 20번까지 거의 스무 명이나 모여있었다.
‘잭팟이군.’
그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그려졌다.
“시작한다.”
-네, 마스터.
‘매직미사일! 가랏!’
쏴아아아아!
하늘에서 죽음의 비가 뿌려졌다.
예전과는 달리, 그 어느 때보다도 작고 귀여운 매직미사일이었다.
손바닥만 한 작고 귀엽게 생긴 반투명한 매직미사일!
그러나 능력자가 아닌 척살대상자들에게 죽음을 내리기에는 차고도 넘치는 무기였다.
퍼퍼퍼퍼퍽 퍼퍼퍼퍼퍽…….
사람의 머리와 심장이 뚫리는 소리가 섬뜩하게 들려왔다.
베이징 군구사령부에서 회의를 열고 있던 장쓰벌과 그의 직계 부하들의 머리통과 심장에 구멍이 숭숭 뚫린 것이다.
꺄악!
꺄아악!
차를 나르던 여자부관들이 그 모습을 뒤늦게 발견하고 일제히 비명을 질러댔다.
후에 ‘베이징의 시민혁명’이라고 불리게 될 사건은 그렇게 시작됐다.
베이징, 텐진, 허베이성, 산시성, 내몽골자치구를 아우르는 베이징 군구의 절대 권력자가 하루아침에 머리를 잃고 권좌에서 떨어졌다.
그의 부하들과 추종세력들이 일제히 숙청당했다.
대신 새로운 권력자가 그 권좌를 차지했다.
정치위원 유발년!
민간정부라는 이름으로, 시민혁명이라는 달콤한 말로 포장한 그와 그의 추종세력은 단숨에 베이징 군구의 권력을 접수해 나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손을 댄 것은 당연히 군부였다.
27 집단군, 38 집단군, 65 집단군, 북경군구공군, 베이징위수구 사령부…….
이미 머리가 모조리 잘려나간 군부는 큰 반항없이 조용히 유발년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그 사이, 중국 인민해방군 로켓군은 조용히 세상에서 지워지기 시작했다.
탄도미사일 생산시설과 각 부품공장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대형화재가 일어났다.
화마는 삽시간에 주변을 뜨거운 불로 집어 삼켜 잿더미를 만들었다.
사일로 안에 잠자고 있던 탄도미사일이 일제히 폭발했다.
창고 안에 저장해둔 탄두들도 일제히 유폭을 일으켰다.
이동식발사대가 고장을 일으키는가 싶더니 갑자기 탄도미사일이 자동으로 발사됐다.
하늘로 치솟은 탄도미사일은 각지에 있는 중국 인민해방군 로켓군 주둔지에 떨어져 쑥대밭은 만들었다.
단 하루!
베이징 군구의 절대 권력자가 바뀌고 중국 인민해방군 로켓군이 세상에서 사라진 시간이었다.
-마스터, 작전명 ‘북경오리’가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중국이 더 이상 대한제국에 위협이 되지는 않겠지?”
-일단 유발년은 우리와 약속한대로 베이징 군구를 하나의 독립국가로 만들어가기로 했습니다. 나라이름은 ‘명’ 민주공화국이 될 것 같습니다.
“흐음, 중국을 사분오열로 찢어 고착시키는 작전이군.”
-그렇습니다. 대한제국 정보부는 앞으로 중국의 군벌들이 각각 독립을 해서 나라를 세우도록 유도해나가기로 했습니다.
“정말 그렇게만 된다면 한 100년 동안 두발 쭉 뻗고 편히 잠잘 수 있겠군.”
서진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현재 대한제국은 빠르게 국력을 키워나가고 있습니다. 일본을 보호국으로 만들었고 만주와 연해주를 수복했습니다. 일본과 만주의 인구를 합치면 1억 명이 넘어가는 인구가 됩니다. 자체적인 내수시장으로도 경제를 발전시킬 토대가 만들어진 것이지요.
“그건 정말 환영할 만한 일이야.”
-일본의 과학자와 기술자를 받아들여 각종 첨단기술을 확보했고 유니언의 마법사들과 연합하여 마도공학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앞으로 양산될 대한제국의 탄도미사일은 지구의 그 어떤 나라도 막을 수 없는 강력한 위력을 보이게 될 것입니다.
마이키의 설명에 서진은 가슴에 크고 무거운 짐을 하나 내려놓은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과거로 돌아가더라도 미래의 대한제국은 아마 계속 발전해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없는 대한제국의 미래를 지금부터 철저히 준비해 놓아야한다.’
서진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다.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과거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렇다고 아무런 준비나 대비도 없이 그냥 떠날 생각은 없었다.
최소한 100년간은 한민족의 부흥과 영화를 누릴 수 있도록 기초를 탄탄하게 세울 생각이었다.
베이징 상공을 떠나 서해를 건너는 와이비가 갑자기 캑캑대기 시작했다.
최상급 마수, 아니 최상급 소환수 와이번도 베이징의 심각한 대기오염에는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심복지환을 없애버린 서진은 가벼운 마음으로 와이비의 목을 가만히 두드려 위로해주고 있었다.
* * *
“100만 이라고요?”
“그렇습니다.”
“그래도 그건 너무 많군요. 10만이라면 모를까?”
“10만을 누구 코에 붙입니까? 시드라 행성을 공략하기 위해선 그 정도의 병력이 필요합니다. 도와주십시오.”
서진은 골치가 아파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유니언의 파병요청!
예전 대한민국 시절, 미국의 요청에 의해 월남에 파병을 했을 때가 생각났다.
월남파병을 계기로 대한민국은 경제발전의 동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물론 그로 인해 흘린 젊은이들의 피는 그 무엇으로도 보상할 수 없었다.
그는 당시 월남파병을 결정했던 대통령의 고뇌가 조금은 이해가 갔다.
‘과거와는 달리 유니언에서 아주 화끈하게 파병을 해달라고 하네. 파병대가가 혹할 정도로 크기는 한데……. 왠지 인명피해가 걱정된다.’
그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유니언과 호드의 전쟁!
이것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당연히 파병을 해야 한다.
그것이 대의다.
하지만 대한제국의 황제로는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100만 명이나 되는 젊은 생명의 무게가 그를 짓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유니언의 존재를 공개하고 지구방위대를 창설할까? 아니야. 아직 유니언의 존재를 공개할 때가 아니야. 괜히 스파이들로 정신만 사나워질 거야. 유니언에 빨대를 꽂고 계속해서 단물을 빨아먹으려면 당분간은 독점을 해야 해.’
서진이 계속 생각에 잠겨있자 이클립스는 좌불안석이 됐다.
괜히 너무 크게 일을 키워서 서진이 크게 반발할까봐 걱정이 됐던 것이다.
“혹시 인명피해가 크게 날까봐 그러시면 제가 좀 조율을 해보겠습니다.”
“아!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이클립스의 말을 들은 서진의 얼굴이 밝아졌다.
“물론입니다. 이번 시드라 행성 공략작전에 가장 큰 역할을 하게 되실 분이 서진 폐하 아니십니까? 그러니 어느 정도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서진은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그래. 바로 이거야. 인명피해만 크지 않다면야 100만 명이던 200만 명이던 얼마든지 파병할 수 있다. 어차피 난 유니언에서 적극적으로 보호해줄 것이 분명해. 그러니 대한제국군 파병군을 최대한 후방으로 돌려야해.’
머릿속으로 계산이 끝나자 서진은 이클립스와 좀 더 디테일한 협상을 벌였다.
이클립스는 200만 명을 파병하겠다는 서진의 말에 놀라 결국 그의 뜻대로 비교적 안전한 전선으로 배정하고 대신 후방관리의 한 몫을 떠맡기로 했다.
이클립스가 유니언에 재가를 받으러 떠나자 마이키가 즉시 나섰다.
-마스터, 200만 명을 파병하는 것은 좀 무리가 아닐까요?
“전혀 그렇지 않아. 인명피해만 없다면 난 얼마든지 더 파병할 용의가 있어. 파병조건을 읽어봤어?”
-네, 그렇습니다. 상당히 좋은 조건이었습니다.
“그들은 유니언 정예군에 준하는 보수와 보급을 약속했어. 단 3개월만 되도 200만 명이 벌어들인 꿀물이 대한제국을 풍요롭게 만들 거야. 또한 실전을 경험한 200만 명의 군세라면 지구에 산재한 수많은 마수들의 영역을 제거하는데도 큰 몫을 할 거야.”
-그럼 앞으로 용병장사를 하겠다는 겁니까?
“굳이 따지자면 그렇게도 볼 수 있지. 하지만 호드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야 인류가 살 수 있다는 대의를 생각할 때 파병을 거부하는 것은 장기적인 안목으로 봤을 때 큰 패착이 될 수 있어. 보수로 보나 대한제국의 미래를 위해서나 유니언이 요구한 이번 파병은 분명히 우리에게 큰 기회가 될 거야.”
마이키는 서진이 이미 나름대로 복안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그래서 더 이상 따지고 들지 않았다.
다음날부터 대한제국 전역에 모병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 * *
쾅!
책상이 산산조각 났다.
화가 난 서진이 주먹으로 내려치자 그대로 부서져 버린 것이다.
“지금 나하고 장난하는 거야?”
“죄송합니다.”
“내가 중국 능력자들의 동향 항상 주시하라고 했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서진의 눈에서 살기가 뻗혀 나오자 이명호 정보부장은 두 다리를 벌벌 떨어야했다.
이를 갈던 서진은 그 모습에 고개를 돌려 지흥수를 쳐다봤다.
“넌 뭐하는 새끼야?”
“죄송합니다. 마스터!”
“특무대 대장 자리에 앉혀놓았더니 주지육림에 빠져서 눈구멍과 귓구멍까지 다 막아놓은 거야?”
“아,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요새 허구한 날 유흥가를 돌면서 구멍만 죽어라고 파고 다닌다면서?”
지흥수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
“특무대 대장하기 싫으면 지금이라도 말해. 얼마든지 사표수리 해줄게.”
“아닙니다. 앞으로 정말 잘하겠습니다.”
“그럼 가서 무슨 일이 있더라도 월미도던전 다시 찾아와.”
“알겠습니다.”
“내 지원은 꿈도 꾸지 말고.”
“네, 마스터.”
“실패하면 내가 직접 네놈을 죽여 버릴 테니까 그렇게 알아.”
“네에? 아! 알겠습니다. 목숨을 걸고 즉시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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