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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장 - 영혼까지 털어보자.
[사이먼! 이놈의 몸을 얼려라! 아무래도 목부터 얼리는 것이 좋겠군.]
[네, 마스터.]
사이먼은 마법 ‘프로스트 노바’로 미켈란의 몸을 차갑게 얼려갔다.
일단 목이 꽁꽁 얼자 서진은 미켈란소드를 꺼내들었다.
에이션트 드래곤 미켈란이 자신의 뼈를 뽑아서 만든 드래곤본소드!
서진은 미켈란소드에 오러를 있는 대로 때려 넣고는 세차게 휘둘렀다.
철썩!
아이러니하게도 미켈란은 자신이 직접 자신의 뼈를 추출해 만든 드래곤본소드로 자신의 목이 잘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는 미켈란소드를 열 번도 넘게 휘둘렀다.
아무리 미켈란소드라고 해도 단번에 에이션트 드래곤, 미켈란의 목을 자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쿵!
결국 거대한 에이션트 드래곤의 목이 잘려나갔다.
[사이먼! 미켈란의 대가리를 잘 보관해라!]
[네, 마스터.]
얼굴에 차갑게 서리가 잔뜩 내린 미켈란의 머리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숨이 다 막히게 만들었다.
사이먼은 아공간을 열어 수정으로 만든 커다란 마법상자를 꺼냈다.
미켈란의 머리는 조심스럽게 마법상자 안으로 들어갔다.
촥촥촥! 촤악 촤악 촤악!
또다시 미켈란소드가 가로세로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미켈란의 꽁꽁 얼어버린 가슴이었다.
다른 소드였다면 깡깡 소리를 내면서 튕겨나갔겠지만 드래곤본으로 만들어진 미켈란소드는 미켈란의 가죽과 뼈를 마치 고기 썰듯이 쉽게 베어냈다.
알래스카의 에스키모가 살던 이글루 집처럼…….
커다란 각설탕 같은, 정육면체로 잘라낸 살덩어리들이 하나둘씩 밖으로 빠져 나왔다.
황소보다 커 보이는 미켈란의 심장!
사람의 머리만한 미켈란의 드래곤하트!
한참 만에 가슴 깊숙이 감춰져있던 미켈란의 심장과 드래곤하트가 서진의 손에 떨어졌다.
그는 미켈란의 심장과 드래곤하트를 잠깐 살펴보다가 사이먼이 새로 꺼내놓은 수정으로 만든 마법상자 안에 차례로 떨어뜨렸다.
퉁 투웅!
사이먼은 조심스럽게 마법상자를 닫고 자신의 아공간 안에 집어넣었다.
[마스터, 에이션트 드래곤의 사체는 어떻게 할까요?]
[사이먼의 아공간에 일단 넣어둬! 그리고 사체라는 표현은 잘못된 거야. 미켈란은 아직 죽지 않았어.]
[네?]
사이먼은 서진의 말에 깜짝 놀랐다.
이게 무슨 말인가?
분명히 드래곤의 심장과 드래곤하트를 떼어내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죽지 않았다니…….
[사이먼, 너도 드래곤의 몸은 처음 다뤄보는 거지?]
[네, 그렇습니다.]
[드래곤이란 생명체는 절대 보통이 아닌 것 같아. 난 확실히 느낄 수 있어. 언제든지 심장과 드래곤하트를 제자리에 가져다놓으면 미켈란은 다시 부활할 거야.]
[그럼 아예 사체를 조각내버리던가, 심장을 박살내야하지 않습니까?]
[내가 왜? 미켈란을 죽여 봤자 내가 얻을 이익은 얼마 되지 않아. 기껏해야 미켈란의 드래곤하트와 에이션트 드래곤의 사체뿐이야.]
[…….]
사이먼은 언제부터 미켈란의 드래곤하트와 에이션트 드래곤의 사체가 이렇게 평가절하 됐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멍하니 서진을 쳐다봤다.
[그럼 다른 자들도 모두 살려주실 생각이십니까?]
[일단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때까지 죽일 생각은 없어. 무슨 말인지 알겠지?]
[네, 마스터! 일단 산 채로 아공간에 잘 넣어놓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해.]
사이먼의 아공간은 하나가 아니었다.
죽은 사체나 언데드 군단을 넣어두는 아공간과 살아있는 생명체나 키메라를 넣어두는 아공간이 따로 존재했다.
영원한 삶을 사는 리치답게 생명체가 들어갈 수 있는 아공간을 따로 만들어가지고 있는 것이다.
[사이먼, 그 전에 이것들 싹 좀 벗겨!]
[네, 마스터. 탈탈 털어놓겠습니다.]
사이먼은 서진의 명령을 충실하게 받들었다.
그는 일단 아공간에서 데스나이트와 다크나이트를 몽땅 꺼내 유니언의 상원의원들과 호드의 마신과 마왕들의 옷과 방어구를 홀딱 벗겼다.
새하얀 피부로 돌아온 신녀 이리나의 몸도 예외 없이 홀딱 벗겨져 만천하에 부끄러운 부분을 그대로 드러났다.
그러나 누구하나 그녀의 유혹적이고 아름다운 몸매를 감상하는 이가 없었다.
데스나이트와 다크나이트들은 이들의 손가락과 발가락, 심지어는 항문까지 샅샅이 뒤져서 보유하고 있는 아티펙트를 몽땅 수거했다.
[두칸과 파넬은 어떻게 됐어?]
[저기 옵니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마왕의 마력탄에 정통으로 맞고 쓰러져 있던 두칸과 파넬이 멀쩡한 모습으로 걸어왔다.
터벅 터벅 터벅 터벅!
[이놈들은 어떻게 된 거야?]
[목적을 달성하면 굳이 다시 일어나 싸우지 말고 그냥 땅바닥에 쓰러져서 죽은 듯이 있으라고 했습니다.]
[하하하! 그랬어? 아주 잘했어.]
[감사합니다. 마스터!]
서진은 사이먼의 말에 파안대소를 했다.
그가 생각할 때 아주 시기적절한 명령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고개를 돌려 주변을 한번 쓰윽 훑어봤다.
유니언과 호드 양측에서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절대강자들의 발가벗은 모습이 그의 눈에 적나라하게 들어왔다.
에이션트 드래곤 미켈란!
마신 탈론과 마신 지온!
하이엘프 리엘, 신수 바하무트, 신녀 이리나, 대마도사 루빈, 대마도사 이클립스, 대정령사 엘린!
마왕 세스, 나홀, 다윈, 여러보한, 칠리스, 판테아!
사이먼의 아공간에 먼저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있는 마왕 한센과 듀크까지…….
이런 자들이 자신의 손에 들어왔다는 것이 선뜻 믿기지가 않았다.
[사이먼! 마왕 판테아만 남겨두고 모두 아공간에 집어넣어.]
[네, 마스터.]
사이먼은 서진의 명령에 유니언과 호드의 절대강자들을 모조리 자신의 아공간에 쓸어 넣었다.
물론 판테아는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남겨뒀다.
[마스터, 심문을 하시려면 이곳 말고 조용한 곳을 찾아 이동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래. 일단 이곳을 뜨자.]
[네, 마스터.]
서진은 사이먼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사이먼은 판테아까지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신수 해태, 와이비, 리치 사이먼, 골렘 파울, 소환해제!’
서진은 자신의 소환수들을 모두 소환해제했다.
시선을 돌리자 다 무너져버린 마신전 너머,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아있는 험준한 산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마이키! 저쪽에 조용한 동굴 같은 곳 없어?”
-하나 있습니다.
“그래? 어디야?”
-클린볼이 이동하다가 산중턱에 있는 동굴을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동굴의 위치를 허드에 표시하겠습니다.
“고마워!”
마이키가 서진의 허드에 동굴의 위치를 표시해줬다.
가상의 화살표를 확인한 서진은 생각보다 거리가 그리 멀지 않다는 것을 알고는 위상변화로 이동했다.
스팟!
그의 몸이 꺼지듯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휘이이잉!
을씨년스러운 바람이 불어와 폐허가 된 마신전을 날카롭게 휩쓸고 지나갔다.
그것은 마치 마신전의 미래를 보는 것 같은 처참한 모습이었다.
새들도 초토화된 주변의 모습이 생경한지 멀리 돌아가는 것을 선택하고 있었다.
* * *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동굴천장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손등을 차갑게 핥고 지나갔다.
“이름이 뭐야?”
“난 마왕 판테아다.”
“나이는…… 됐고. 네가 몽마의 왕 판의 후손이야?”
“그렇다.”
마왕 판테아는 조금도 기가 죽지 않은 얼굴로 서진과 사이먼을 노려봤다.
인간과 리치의 조합이 영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의 시선이 서진과 사이먼 사이에서 음란한 창녀의 눈길처럼 오갔다.
“너 신성일이라고 알아?”
“모른다.”
“그럼 곤란한데…….”
서진은 살짝 인상을 썼다.
판테아를 심문하면 바로 신성일에 대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보아하니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아니면 신성일의 이름이 따로 있다거나…….
“너 지금 거짓말 하는 거 아니지?”
“내가 뭐가 무서워서 너 같은 인간에게 거짓말을 해야 하지?”
“오오오! 자부심 아주 쩌는데?”
서진은 마왕 판테아의 자신만만한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아마 이런 놈은 부러지면 부러졌지 쉽게 굽히려고 들지 않을 것이다.
“나를 어쩔 셈이냐?”
“그냥 죽일까? 아니면 아예 소멸시켜버릴까? 둘 사이에서 고민 중이야.”
“흥, 그렇게 말한다고 내가 눈 하나 깜짝 할 줄 알았다면 크나큰 오산이다.”
“누가 뭐라고 했어?”
서진은 마왕 판테아가 강하게 나오자 오히려 피식 웃음을 흘렸다.
어항에 갇힌 금붕어!
부처님 손바닥 위의 손오공!
주머니속의 공깃돌!
판테아가 제아무리 난리를 쳐봐야, 서진의 손아귀에 잡힌 힘없는 포로일 뿐이었다.
“사이먼, 이놈을 그냥 죽이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소멸시키는 것이 좋을까?”
“그것보다 소환수로 삼으시면 어떻겠습니까?”
“소환수?”
“네, 마스터를 위해 생명이 다하는 그날까지 소환수가 되어 충성하게 하는 것입니다.”
“흐음.”
서진은 사이먼의 말에 살짝 회가 동했다.
하지만 옆에서 듣고 있던 마왕 판테아는 정색을 하며 치를 떨었다.
“감히 그런 말도 참람한 생각을 하다니……. 내가 하찮은 인간 따위의 소환수가 될 수 있다고 보느냐? 차라리 그냥 죽여라!”
“죽는 게 그렇게 소원이라면 죽여주지.”
마왕 판테아의 말에 서진의 눈이 차갑게 변했다.
사이먼이 얼른 옆에서 끼어들어 서진을 말렸다.
“마스터, 정말 죽일 생각이시라면 차라리 저에게 주십시오. 마왕 판테아의 몸이라면 얼마든지 불사의 흑마왕을 만들 수 있습니다.”
“불사의 흑마왕?”
“안 돼!”
서진이 ‘불사의 흑마왕’이라는 사이먼의 말에 급 관심을 보이자 마왕 판테아는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쳤다.
마왕 판테아도 불사의 흑마왕이 뭔지 아는 모양이었다.
“사이먼! 불사의 흑마왕이 뭔데 저놈이 저렇게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거야?”
“일종의 언데드 키메라입니다. 쉽게 말해서 데스나이트 캡틴보다 상위 버전의 언데드 마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혹시 그게 본드래곤 같은 거야?”
“아닙니다. 그것보다 훨씬 상위차원의 언데드 키메라입니다. 저놈이 저렇게 발작을 하는 것은 불사의 흑마왕이 되면 이지를 상실하고 영혼이 갇히게 됩니다. 그러다 죽게 되면 영혼은 소멸하기 때문입니다.”
사이먼이 마왕 판테아를 차가운 녹색광망이 번뜩이는 눈으로 쳐다봤다.
마왕 판테아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며 목울대가 살짝 위로 올라갔다.
서진은 개구쟁이 같은 표정으로 마왕 판테아를 쳐다보며 계속 물었다.
“불사의 흑마왕의 파괴력은 어때?”
“마왕의 온전한 힘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뭐야? 그럼 마왕 급이라는 말이네?”
깜짝 놀란 서진의 입 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그렇습니다.”
“그럼 그걸로 가자.”
“네, 마스터.”
“안 돼!”
그제야 마왕 판테아의 동공이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렸다.
불사의 흑마왕인지 뭔지…….
언데드 키메라가 되어 기는 싫은 모양이었다.
서진은 슬쩍 팬텀소드를 꺼내들었다.
“그, 그건?”
마왕 판테아는 팬텀소드를 한눈에 알아봤다.
“천천히 다시 협상을 하자. 급할 것 없잖아?”
“협상? 차라리 그냥 죽여 달라며?”
“우리 사내답게 넓은 마음으로 얘기하면 안 될까?”
“너 아직도 네가 갑인 줄 아는 모양이구나. 부탁이나 애원을 하려면 그 말투부터 고쳐!”
“알았어. 아니 알겠습니다.”
“오호! 이제야 제대로 얘기를 할 생각이 드나보군.”
서진은 그의 전향적인 태도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반대로 마왕 판테아의 얼굴에는 썩은 미소가 그려졌다.
치욕적이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상대가 철저한 갑인 상황인데…….
죽는 것은 두렵지 않았다.
아무리 죽어도 시간이 지나면 마왕은 다시 부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멸은 두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언데드 키메라, 아니 불사의 흑마왕이 되어 이지를 상실한 채 부려지다가 종국에는 영혼이 소멸되는 일은 두렵다 못해 공포 그 자체였다.
마왕 판테아는 자신도 공포를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오늘 처음 알았다.
“나를 풀어주면 내 아공간에 모아놓은 보물을 모두 드리겠습니다. 거기에다 마신전 지하에 숨겨진 보물창고의 좌표를 알려주겠습니다.”
“그걸 지금 나한테 협상카드라고 내미는 거야?”
서진은 대놓고 비웃었다.
그러자 마왕 판테아는 입술이 바짝 타들어갔다.
“혹시 뭔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말씀하세요. 뭐든 다 들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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