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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장 - 집으로
바로 서진이었다.
그는 호드의 여섯 동맹행성을 은밀히 돌아다니며 각 행성의 마왕들을 잡아 죽였다.
나중에는 그것도 모자라 마왕에 준하는 마스터급 존재인 초마수, 투왕, 데스킹, 초마인, 뱀파이어킹 등을 찾아내 착실히 숫자를 줄여갔다.
기본적으로 그는 종전협정 따윈 믿지 않았다.
그가 신뢰하는 것은 힘의 균형이었다.
절대비교를 해본 결과, 호드의 힘이 유니언의 힘을 확실히 능가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호드의 무력 최상층부에 있는 마왕과 그에 준하는 마스터급 존재들을 잡아 죽인 것이다.
죽은 마왕의 사체와 초마수, 투왕, 데스킹, 초마인, 뱀파이어킹 등 그에 준하는 마스터급 존재들의 사체는 리치왕 사이먼에게 넘어갔다.
사이먼은 이들의 사체를 이용해 제법 많은 흑마왕와 마스터급의 언데드 키메라를 만들어 자신의 군단에 배치했다.
사이먼은 이제 팔마왕을 동시에 상대하고도 남을 막강한 전력을 보유하게 됐다.
마왕 탈론과 지온 그리고 미켈란을 제외하면, 아마 단독으로 그를 상대할만한 적수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유니언과 호드의 전쟁을 끝낸 서진은 모리티아의 유니언 본부로 돌아왔다.
마수로 인해, 아니 호드의 침략으로 인해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지구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다.
서진은 자신의 욕망을 위해, 미래의 지구를 그냥 이대로 내버려두고 과거로 혼자 쌩하고 도망가는 무책임한 짓을 벌이고 싶지 않았다.
예전처럼 강자들의 눈치를 봐야하는 상황도 아니고…….
서진에게는 지구를 도울만한 충분한 힘과 능력이 있었다.
물론 그가 전면에 나서서 설치지는 않았다.
대신 유니언 상원의장 미켈란과 상원의원 등 그의 소환수들을 적극 앞장세웠다.
유니언 상원이 열렸다.
지구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도움을 주자는 지구지원법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유니언 하원도 열렸다.
유니언 의회 상원의장과 상원의원들의 강력한 지지로 인해, 결국 하원에서도 지구지원법을 절대다수로 통과시켰다.
서진은 지구로 돌아왔다.
유니언의 적극적인 지원과 도움을 등에 업은 그는 재빠르게 대한제국을 정비해나갔다.
특무대 대장 지흥수, 한정수 총리, 이명호 정보부, 손병희 내무장관, 강서희 외무장관, 김종무 국방장관 등 기라성 같은 대한제국의 인재들과 함께 대한제국의 국력을 무시무시한 속도로 끌어올렸다.
특히 아리아나의 고향에 있는 엘프들을 대거 영입해, 대한제국의 검찰과 경찰, 감사원과 부패방지청을 맡기는 초강수를 뒀다.
이는 대한제국이 두 번 다시 부정부패로 얼룩지지 않게 하려는 서진의 강한 의지와 배려였다.
종족의 고유스킬, 진실의 눈을 가지고 있는 엘프!
시간이 지나자 그들이야말로 이런 사정기관에 가장 적합한 자들이라는 것을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했다.
유니언과 호드의 전쟁이 종식되자 지구에 열렸던 모든 차원의 균열이 닫혔다.
목구멍까지 숨이 차오르던 지구는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이제 남은 것은 던전화가 된 차원게이트들 뿐이었다.
마수들은 몹시 놀라서 요동쳤다.
차원의 균열을 통해 흘러나오던 마기와 근원의 힘이 단절되자 마수들의 힘이 한풀 꺾이고 불안에 떨어댔다.
서진은 대형마수와 중대형마수를 중심으로 마수사냥에 나섰다.
아니 서진과 대한제국 특무대는 전 세계를 상대로 실력행사를 시작했다.
서진과 그의 소환수들은 가공할 무력을 화려하게 선보이며 지구촌을 종횡무진 누비고 돌아다녔다.
인류는 그들의 이타적인 행위에 아낌없는 박수와 찬사를 보냈다.
서진과 그의 소환수 그리고 특무대가 검색어 순위 1위에서 3위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지구촌 사람들은 서진과 그의 소환수 그리고 특무대가 존재함으로 인해 더 이상 마수들의 위협과 공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이들의 열렬한 팬과 지지자가 되어갔다.
그렇게 서진은 오대양(五大洋), 육대주(六大洲)를 돌아다니며 중급이상의 마수의 씨를 말려버렸다.
이 과정에서 유니언의 존재가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전 세계의 매스컴은 유니언과 호드의 실체로 인해 한순간에 뜨겁게 달아올랐다.
세계 각국은 대한제국이 차원이 다른 여섯 개의 행성연합인 유니언과 유일한 외교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알자 태도가 급변했다.
지구의 모든 재화와 물자가 점점 대한제국을 향해 몰려들었다.
대한제국은 유니언과의 무역을 독점해 엄청난 경제성장률을 보이고 있었다.
그로인해 대한제국과 제국민은 전 세계인의 부러움과 질시를 한 몸에 받아야했다.
그러나 지구의 그 어떤 국가도 감히 대한제국을 도발하거나 비위를 거스르려들지 않았다.
대한제국에 찍히면 당장 대한제국을 통한 유니언과의 중계무역에 심각한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또한 대한제국의 황제, 서진의 무시무시한 능력과 유니언의 강력한 비호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한제국 황실과 유니언의 밀착사실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 됐다.
주(駐)대한제국 유니언대사관에서도 그런 사실을 굳이 숨기려들지 않았다.
대한제국은 세계 각국과 유니언사이에 일어나는 중계무역만으로도 지금 엄청난 꿀을 빨아대고 있었다.
그에 비례해 대한제국의 국력도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한반도에서 만주와 연해주를 거쳐 동시베리아까지…….
일본을 보호국으로 삼고 동북아시아의 패권을 차지한 대한제국은 이제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강대국으로 발돋음하고 있었다.
대한제국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안정이 되자, 서진은 연인인 아리아나의 고향인 호미니드의 한 별장에서 조용히 살기로 선언했다.
대한제국의 핵심인사들이 모두 한목소리로 반대를 했지만 서진은 그들의 간청을 그냥 묵살해버렸다.
아마 속으로는 그가 은거하는 것을 더 좋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나온 것은 아니었다.
자신을 대신해 국정을 운영할 대리인을 한명 선정해 놓았다.
대한제국 황실이 보유한 대한제국의 외교와 국방을 아리아나의 오빠인 그란데에게 맡긴 것이다.
이미 검찰청장과 경찰청장, 감사원장과 부패방지청장 등 사정기관의 수장은 호미니드 출신 엘프들이었다.
이들 기관의 핵심보직과 주요 부서장들도 전부 엘프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거기에다 그란데까지 황제 서진을 대리하는 위치에 서자, 대한제국은 소수의 엘프들이 강력한 사정권한을 가지게 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하지만 누구하나 이런 일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이들 엘프들은 모두 대한제국의 황제 서진에게 직위와 직책을 받은 정통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로인해 대한제국은 하루가 멀다고 사정의 칼날이 전국을 휩쓸고 다녔다.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 없다!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그래도 이제는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들이 나라를 이끌게 될 것이다.
덕분에 대한제국은 조금씩 청정국가로 변모해나가고 있었다.
이렇게 서진은 대한제국을 강대국의 반열에 올려놓고, 지구를 회생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제 그에게 남은 일은 오직 하나뿐이다.
리턴(return)!
바로 과거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 * *
바람이 분다.
시원한 강바람이 그의 얼굴을 간지럽힌다.
바람이 분다.
은가루가 떨어질 것 같은 그녀의 아름다운 은빛 머릿결이 깃발처럼 휘날린다.
“같이 갈래?”
“어디를요?”
“몰라서 물어?”
“히잉!”
아리아나는 서진의 팔을 자신의 풍요로운 가슴에 묻으며 코맹맹이 소리를 냈다.
물컹하고 부드러운, 기분 좋은 압박을 느끼며 서진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여의도한강공원을 걸으며 바라보는 한강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큰 변화가 없었다.
“난 과거로 돌아갈 거야.”
“음, 역시…….”
“너도 같이 갈 거지?”
“물론이죠.”
아리아나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서진은 한손으로 그녀의 턱을 잡아 당겼다.
그는 그녀의 발갛고 투명한 입술에 가볍게 입맞춤을 하며 속삭였다.
“아리아나가 과거로 가면 잘못될 가능성이 있어.”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래도 난 서진을 따라갈 거예요.”
“죽을지도 모르는데?”
“서진과 함께라면 죽어도 좋아요.”
“영혼이 소멸될지도 몰라.”
“그래도 서진을 혼자 보낼 순 없어요.”
아리아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다는 표정으로 당당하게 말했다.
서진은 그녀의 태도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는 확고부동한 의지를 읽었다.
그녀의 마음을 확인하고 나자 그는 더 이상 시간을 끌지 않았다.
“좋아. 그럼 같이 가도록 하지.”
“언제 출발할 거예요?”
“지금 당장!”
“네? 지금이요?”
아리아나의 아름다운 봉목이 커다랗게 변해갔다.
“응, 바로 지금이야. 떠날 준비는 모두 끝났어. 남은 것은 오직 아리아나의 결심뿐이었어.”
“그래요. 그럼 지금 같이 떠나요.”
“오빠한테 말 안 해도 돼?”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고 이미 오빠에게도, 집에도 다 얘기해놓았어요.”
“호오, 아주 단단히 작정을 하고 있었군.”
“뭐 그런 셈이죠.”
아리아나는 머리를 옆으로 살짝 기울이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서진은 그녀의 아름다운 미소가 참 보기 좋았다.
자신을 따라 과거로 가겠다고 결단을 내리자 더 예뻐 보였다.
‘그래. 이제 그만 돌아가자. 참 오래 걸렸다.’
굳이 시간을 따지자면 그렇게 오랜 기간도 아니었다.
하지만 심정적으로 꽤나 오래 걸린 것처럼 느껴졌다.
“사이먼! 여의도한강공원에 설치한 결계를 발동해!”
“네, 마스터.”
사이먼은 자신이 ‘리치’에서 ‘리치왕’으로 승격했다고 그를 보좌하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전보다 더욱 알뜰살뜰 그를 보살폈다.
우웅!
서진은 자신의 몸을 훑고 지나가는 강력한 마나의 파장을 느꼈다.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펴봤다.
여의도한강공원 전체를 아우르는 거대한 반구형의 반투명한 결계가 세워지는 것이 보였다.
사이먼이 감독을 맡고, 대마도사 루빈과 이클립스가 직접 노가다를 뛰어 만든 광역결계가 올바르게 잘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그는 품속에서 라이프베슬이 달린 튼튼한 목걸이를 꺼내 자신의 목에 걸었다.
신성일, 아니 마족 페이크가 자신을 미래로 소환할 때 ‘영혼의 아공간’을 이용해 빼앗은 다크드래곤의 라이프베슬이었다.
‘존재의 등가교환이 SS급의 저주라는 것을 몰랐을 때는 정말 시간을 회귀시키는 무슨 특별한 스킬이 따로 존재하는 줄 알았는데…….’
그의 입가에 절로 쓰디쓴 미소가 그려졌다.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라고…….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핵심열쇠인 라이프베슬을 손에 쥐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사용하는지조차 몰랐었다.
참 답답한 노릇이다.
그러나 이젠 이걸 어떻게 사용하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사용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라이프베슬에 마나를 꽉 채우기만 하면 된다.
다크드래곤의 라이프베슬을 다 채우려면 엄청난 마나가 필요하다.
하지만 서진에게는 결코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물론 라이프베슬만으로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반드시 라이프베슬과 한 쌍인 스킬, ‘존재의 등가교환’이 필요하다.
다행히 서진은 마왕 판테아로부터 이 스킬을 갈취하는데 성공했다.
이제 라이프베슬을 목에 걸고 이 스킬을 사용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SS급의 저주, 존재의 등가교환!
이 독특한 마스터급 저주는 어떤 메카니즘을 가지고 있을까?
알고 나면 참 쉽다.
말 그대로 과거로 이동하려는 존재가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면 된다.
대가는 등가교환의 법칙에 따라 반드시 생명은 생명으로 교환된다.
그렇다고 아무 생명이나 되는 것은 아니다.
반드시 사람이나 유사인류여야만 한다.
그것도 저주를 받아들일 수 있는 구체적인 대상이 꼭 필요하다.
서진이 걸려든 게 바로 이 케이스였다.
신성일 아니 마족 페이크의 암시에 의해 민연서는 서진에게 ‘존재의 인장’을 걸었다.
그리고 마족 페이크는 약속된 시간에 과거로 돌아오기 위해 ‘존재의 인장’을 받은 대상(서진)을 대가로 설정해버렸다.
그렇게 해서 억울하게 서진은 과거에서 미래로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옮겨오게 된 것이다.
이제는 이것을 반대로 응용하기만 하면 된다.
SS급 저주, ‘존재의 등가교환’을 받을 수 있는 구체적인 대상의 설정!
서진에게는 너무나도 간단했다.
바로 민연서와 함께 과거로 이동한 연어팀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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