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둠레이더-220화 (22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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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장 - 대천사 미카엘

주변 환경이 확 바뀌었다.

세상이 하얗게 변했다.

온 세상이 하얀 눈과 얼음으로 가득 뒤덮여 있었다.

아무래도 여긴…….

북극 같았다.

하늘에는 빛의 커튼처럼 오로라가 반짝였다.

그 사이로 무수한 별빛이 밝은 대낮인데도 마구 반짝거렸다.

신기한 것은 이곳이 북극임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춥지 않다는 것이다.

하긴 방금 우주의 한복판에 있었는데 숨쉬기가 전혀 불편하지 않았었다.

대천사 미카엘이 뭔가 신비한 능력을 발휘한 모양이었다.

스팟 스팟 스팟 스팟…….

손가락을 한번 튀기자 시계가 돌아가는 방향으로 허공에 서진의 소환수들이 하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신수 해태, 와이비, 리치왕 사이먼, 티탄 파울, 마신 탈론, 마신 지온, 마왕 한센, 듀크, 세스, 나홀, 다윈, 여러보한, 칠리스, 판테아, 에이션트드래곤 미켈란, 하이엘프 리엘, 신녀 이리나, 대마도사 루빈, 대마도사 이클립스, 대정령사 엘린.

마치 박제나 얼음처럼 딱딱하게 굳은 채…….

소환수들은 허공의 한 점에 각각 걸려 있었다.

그들 하나하나의 면면을 살펴봤다.

누구하나 어디 가서 명함을 내밀어도 절대 뒤질만한 존재들이 아니었다.

그제야 서진은 대천사 미카엘이 언급한, 스스로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말의 의미를 조금은 깨달을 수 있었다.

‘내 소환수가 이렇게 많았나? 무려 스물이나 되네! 그것도 하나같이 강자들이잖아. 나 진짜 소환수 부자였구나.’

서진이 자신의 소환수를 살펴보고 있는 사이, 대천사 미카엘은 서진의 소환수들과 의지를 전하는 고차원적인 방식으로 직접 대화를 나누어갔다.

“흐음, 흥미로운 일이군.”

대천사 미카엘은 한손으로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눈을 빛냈다.

“일단 너의 소환수 중 와이비와 사이먼은 남기로 했다. 설사 처음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너의 소환수가 되는 것을 갈망하고 있다는 말이다.”

“네에?”

서진은 깜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그가 들은 말은 정말 너무나도 놀랍고 감동적인 얘기였다.

와이비와 사이먼이 끝까지 자신과 함께하려 하다니…….

그는 순간 울컥해서 눈물이 찔끔 흘러나왔다.

“그럼 와이비와 사이먼은 처음으로 돌아가도 무조건 제 소환수로 남는 거죠?”

“그렇다.”

무슨 이유로 와이비와 사이먼이 자신을 선택했는지 모른다.

다만 그들의 결정이 가슴이 찡할 정도로 너무 고마울 뿐이었다.

서진은 와이비와 사이먼으로 인해 자신감을 회복했다.

‘가만 그런데 왜 대천사 미카엘이 나의 소환수들과 일일이 대화를 나눠야만 하는 거지? 그냥 나한테 명령을 내리면 되는 것 아닌가? 혹시 그래야만 하는 무슨 다른 이유가 있는 건가?’

서진이 의심을 시작하자 대천사 미카엘은 곧바로 그의 생각을 읽고 답했다.

“처음으로 돌아가도 한번 맺은 소환수와 소환사 사이의 맹약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어떻게든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지. 그래서 네 소환수들의 의지를 일일이 확인해야만했다.”

“그렇게 해야만 내 소환수들을 풀어줄 수 있게 되는 건가요?”

“그건 아니지. 소환수를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은 내가 아니라 바로 너다.”

“네? 내가 왜 그래야하죠? 그들을 얼마나 어렵게 얻었는데요. 전 제 소환수들을 풀어주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습니다.”

“네 부모를 살려준다고 했잖아.”

“아니죠. 제 부모님은 당연히 산다고 하셨습니다. 대천사 미카엘께서 저를 위해 해주는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대천사 미카엘은 서진의 말에 아까보다 더욱 진한 웃음을 지었다.

“호오, 눈치가 빠른 편이군.”

“설사 제 부모님을 미카엘님의 의지로 살려주신다고 해도, 두 마신과 팔마왕, 에이션트드래곤과 여섯 초인 등 제 소환수 모두와 바꾸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고 봅니다.”

솔직한 심정이야, 부모님과 모든 소환수를 맞바꾸라고 한다면 아마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이렇게 미카엘에게 언급을 하는 이유는 자신이 느끼는 부모님의 무게와 대천사 미카엘이 느끼는 무게가 결코 같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서진의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다.

“사실이다.”

예상외로 대천사 미카엘은 서진의 말이 옳다는 것을 솔직하게 시인했다.

서진의 부모, 즉 인간 둘의 목숨의 무게와 마신 둘과 팔마왕 그리고 에이션트 드래곤과 유니언의 여섯 초인의 무게는 당연히 다르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이제야 제대로 된 협상을 할 초석이 마련됐다.

“하지만 이대로 네가 처음으로 돌아간다면……. 그것이야 말로 내가 앞으로 해야 할 노력과 목적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일이다. 쉽게 말해서 온라인게임에서 말하는 밸런스붕괴가 일어난다는 말이지. 아니 네 자체가 바로 밸런스를 붕괴시키는 원인이자 요소다. 온라인게임에서 그런 인외요소를 어떻게 관리하는지 알고 있겠지?”

서진은 그의 서늘한 말에 다시 등골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대천사 미카엘과 이런 식으로 오래 협상을 진행하는 것은 너무 위험해보였다.

서로 간에 적당히 타협점을 빨리 찾는 것이 만수무강에 지장이 없을 것 같았다.

“저한테 솔직하게 말씀해주십시오. 제가 가질 수 있는 최대한의 소환수가 몇이나 됩니까?”

“질문이 틀렸다. 네 소환수들이 감당할 수 있는 최대인과율이 얼마나 되냐고 물어봐야했다.”

서진은 확실히 자신의 질문이 잘못됐다고 인식했다.

“그럼 다시 질문 드리겠습니다. 와이비와 사이먼을 제외하고 두 마신과 에이션트드래곤을 제 소환수로 데려갈 수 있습니까?”

“흐음, 아주 좋은 질문이군. 하지만 먼저 한 가지 새로운 소식을 전해야할 것 같다. 에이션트드래곤 미켈란은 어차피 너의 소환수로 남게 될 것이다.”

“네? 그건 왜죠?”

“너와 했던 약속을 끝까지 지키겠다는 미켈란의 신념 때문이지.”

서진은 대천사 미카엘의 말에 멍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곧 미켈란과 했던 약속이 떠올랐다.

미켈란이 자신의 소환수가 되어 준다면 앞으로 모리티아의 드래곤을 적대하지 않겠다고 했던 약속 말이다.

만약 대천사 미카엘로 인해 에이션트드래곤 미켈란이 그의 소환수 리스트에서 풀려난다면 서진도 굳이 미켈란과의 약속을 지킬 필요가 없게 된다.

간단히 말해서 서진은 얼마든지 다시 드래곤슬레이어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 된다.

에이션트드래곤 미켈란은 천년도 남지 않은 자신의 짧은 인생, 아니 용생으로 인해 모리티아의 모든 드래곤이 위협당하는 사태가 생기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서진이 자신의 소환수들과 함께 호드의 여섯 동맹행성을 돌아다니면서 마왕들을 무참히 잡아 죽이는 것을 목격한 것이 그의 결정에 큰 영향을 준 듯 했다.

아니 리치왕 사이먼의 아공간에 존재하는 무수한 흑마왕과 그에 필적하는 언데드 키메라가 가득한 것이 미켈란의 생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것 참 잘된 일이군요. 잘 알았습니다. 그럼 이제 제 질문에 대답을 해주십시오.”

“내가 어떤 대답을 할지 넌 짐작하고도 남았을 텐데……. 이미 리치왕 사이먼과 에이션트드래곤 미켈란을 소환수로 보유하고 있는 네가 두 마신까지 소환수로 거느린다면 그것 역시 명백한 밸런스붕괴다.”

“아!”

서진은 아쉬운 탄성을 내뱉었다.

대천사 미카엘의 말은 묘하게 설득력이 있어 반론을 제기하기가 힘들었다.

“많이 아쉬워하는군. 하긴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그걸 아시는 분이 무조건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좀 너무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가? 좋다. 그럼 너에게 절대소환석 두 개를 주기로 하지.”

“절대소환석이요?”

절대소환석이란 말에 서진의 귀가 쫑긋했다.

“누구든지 소환수로 만들 수 있는 절대적인 위력을 가지고 있는 아이템이다.”

“혹시 대상은 제 소환수였던 존재로만 국한되는 건가요?”

“그렇다. 처음으로 돌아가 네 소환수를 다시 만나게 되면 그 누구도 절대소환석의 부름을 거부하지 못할 것이다.”

“그건 나쁘지 않네요.”

대천사 미카엘은 서진의 말에 만족한 듯 생긋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서진은 끝까지 그냥 쉽게 넘어가 주지 않았다.

“그 제안은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럼 두 마신이 아닌 팔마왕과 여섯 초인 중에서 제가 몇 명이나 소환수로 데리고 있을 수 있는 겁니까? 물론 인과율을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질문입니다.”

“호오! 그거 쉽지 않군. 두 마신과 팔마왕 그리고 여섯 초인은 모두 나를 도와줘야만 한다. 그럼 남는 것은 신수 해태와 티탄 파울 뿐이겠군.”

대천사 미카엘이 서진을 바라보며 슬쩍 한번 떠봤다.

하지만 서진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 배짱이 좋게 보였는지, 미카엘은 손가락 하나를 들어 신녀 이리나를 가리켰다.

“신녀 이리나가 그나마 제일 낫겠군.”

“감사합니다. 그런데 더 이상은 곤란한가요?”

“그렇다. 네 마음속에 생각하고 있는 그 소원을 이루려면 더 이상은 욕심을 내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신녀 이리나를 소환수로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대신 그녀의 기억을 손봐주십시오.”

“너의 소환수인 신녀 이리나의 기억을 손봐달라고?”

“예, 그렇습니다.”

대천사 미카엘은 서진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고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리나의 성격이 어지간히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군. 알겠다. 그 정도는 서비스해주도록 하지.”

“고맙습니다. 그럼 이제 제 소원을 얘기하겠습니다.”

“그래. 어디 한 번 들어보자.”

대천사 미카엘은 팔짱을 끼고 서진을 쳐다봤다.

서진은 대천사 미카엘을 상대로 차분히 자신의 생각을 얘기했다.

그러자 대천사 미카엘은 연신 고개를 흔들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둘의 의견차는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한참이나 이런저런 의견을 교환한 끝에, 결국 그들은 어렵사리 합의를 도출해냈다.

“서진, 이제 만족하지?”

“네, 그렇습니다. 약속하신 그대로 해주신다면 전 조금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좋아. 그럼 그렇게 합의하도록 하자.”

“예.”

“이제 남기기로 한 소환수들을 제외하고, 풀어주기로 한 너의 소환수들과의 맹약을 해지해주기 바란다.”

대천사 미카엘은 마지막으로 서진에게 그의 소환수들을 자유롭게 풀어줄 것을 요청했다.

서진은 와이비와 리치왕 사이먼, 에이션트드래곤 미켈란과 신녀 이리나를 제외한 모든 자신의 소환수와의 맹약을 해지했다.

“나 이서진은 마신 탈론, 마신 지온, 마왕 한센, 듀크, 세스, 나홀, 다윈, 여러보한, 칠리스, 판테아, 하이엘프 리엘, 대마도사 루빈, 대마도사 이클립스, 대정령사 엘린, 신수 해태, 티탄 파울과 맺은 맹약을 해지하기를 원한다.”

파칭!

대천사 미카엘의 중재자로 또한 증인으로 나선 상태라 서진과 그의 소환수들과의 맹약해지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마신 탈론과 마신 지온이 맹약의 족쇄에서 풀려났다.

팔마왕인 한센, 듀크, 세스, 나홀, 다윈, 여러보한, 칠리스, 판테아가 자유를 되찾았다.

하이엘프 리엘, 대마도사 루빈, 대마도사 이클립스, 대정령사 엘린이 자유의 몸이 됐다.

마지막으로 신수 해태와 티탄 파울이 그의 품에서 벗어났다.

‘참 시원섭섭하구나.’

각자 의지와는 상관없이, 억지로 그의 소환수가 됐던 두 마신과 팔마왕, 유니언의 다섯 초인을 풀어주자 왠지 모르게 시원하고도 섭섭한 이율배반적인 감정이 들었다.

딱!

대천사 미카엘이 손가락을 한번 튕겼다.

그러자 허공에 걸려있던 서진의 소환수가 모두 지우개로 지우듯 사라져갔다.

“제니와 아리아나는 내게 맡겨라!”

“네, 그러죠.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쓸데없이 나중에 원망은 하지 않기 바란다. 일단 시작하면 복불복인 것 잘 알지?”

“물론이죠. 저도 순리를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서진은 대천사 미카엘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이제 헤어질 시간이다. 한숨 푹 자고 깨어나면 모든 것이 처음으로 돌아가 있을 것이다. 너의 새로운 인생에 축복이 넘치기를…….”

“고맙습니다.”

“아니야. 고마운 것은 오히려 나지. 작은 선물을 하나 준비했다. 나중에 내 선물을 보고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구나.”

대천사 미카엘은 서진을 향해 한손을 흔들었다.

서진도 한손을 들어 그를 향해 흔들었다.

순간, 서진의 의식이 뚝 끊기며 그대로 암전됐다.

눈을 감은 서진을 바라보며 대천사 미카엘이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서진! 이번에는 어떤 삶을 살지 무척 궁금하구나.”

그는 36쌍의 날개를 활짝 펼치며 그렇게 작게 중얼거렸다.

대천사 미카엘을 중심으로 세계가, 아니 우주가 새롭게 재편되기 시작했다.

* * *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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