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둠레이더-223화 (223/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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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장 - 새로운 삶

“그럼 나 좀 나갔다올게. 다들 집 정리 잘하고 있어.”

“네? 어디 가시게요?”

서진의 갑작스런 말에 사이먼이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잠깐 망설이던 서진은 사이먼에게 솔직하게 대답했다.

“방배동 좀 다녀오려고…….”

“혹시 연서님을 만나러 가십니까?”

“응.”

“그럼 제가 모시겠습니다.”

“사이먼이?”

“네, 혼자 다니시는 것보다 저와 같이 움직이는 것이 편하실 겁니다.”

“으음.”

서진은 혼자 조용히 다녀오고 싶었지만 사이먼의 말도 아예 묵살할 수는 없었다.

사이먼은 누구보다 연서와의 일을 잘 알고 있는 존재였다.

잠시 생각을 해보던 서진은 결국 사이먼의 조언을 따르기로 했다.

“그럼 잠시만 여기 계십시오. 제가 자동차를 한 대 빌려오겠습니다.”

“렌터카를 하려고? 그냥 텔레포트로 다녀오는 것이 좋지 않을까?”

“아직 대격변이 시작되지도 않았습니다. 괜히 CCTV에 찍히기라도 하면 피곤해집니다.”

“그거야 그렇지.”

생각해보니 사이먼의 말이 백번 옳았다.

서진은 사이먼이 렌터카를 해오는 사이, 집안을 청소하고 짐을 정리했다.

당장 하루, 이틀 정도 먹을 음식은 냉장고에 충분했다.

그래서 쇼핑은 나중에 빌린 차를 몰고 가기로 했다.

30분쯤 지나자, 사이먼이 검은 색 광택이 번쩍거리는 국산 최고급승용차 한 대를 몰고 왔다.

“미켈란과 이리나는 TV와 인터넷을 보면서 공부 좀 하고 있어.”

“네, 주인님.”

“알겠어요.”

서진은 미켈란과 이리나에게 당부를 하고는 승용차에 탔다.

부웅!

부드럽게 미끄러지는 느낌에 국산 최고급승용차도 쓸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국내소비자를 봉으로 생각하는 자동차회사들의 구태의연한 행태까지 마음에 든 것은 아니었다.

사이먼은 굳이 내비게이션을 켜지 않고 방배동을 향해 잘도 차를 몰았다.

15분도 안되어 연서의 방배동 집 앞에 도착했다.

“마스터,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수고했어.”

서진은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연서의 집인 방배동 저택은 과거 몇 번이나 와봐서 그런지 무척 낯이 익었다.

그는 대문 앞으로 다가가 위상배열 레이더를 켰다.

정원을 가로질러 본채 2층에 있는 연서의 방까지 아슬아슬하게 잡혔다.

탐지스킬의 등급이 이제 겨우 F급이라 반경 20m 안 밖에 탐지가 되지 않았다.

정말 귀찮아서라도 빨리 레벨업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서진은 아공간에서 마수의 정수를 꺼내 출력강화 스킬을 활성화시켰다.

탐지거리가 곧바로 반경 40m로 늘어났다.

‘이제야 좀 쓸 만하군. 어디보자 연서가 집에 있나? 아! 있구나.’

위상배열 레이더에 분주하게 움직이는 연서가 잡혔다.

누구를 만나려는지 모르지만, 그녀는 지금 한창 외출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안 그래도 밖으로 나오지 않고 집에만 콕 처박혀있으면 암시를 걸어서라도 강제로 나오게 만들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연서가 외출을 준비하는 덕분에 쓸데없이 사이먼을 움직여야하는 수고 하나를 덜게 됐다.

그는 연서가 나올 때까지 남의 집 문앞에 서 있을 수가 없어 사이먼이 운전하는 차로 돌아왔다.

‘이럴 때 마이키와 메딕이 있으면 참 편하고 좋을 텐데…….’

서진은 갑자기 마이키와 메딕이 생각났다.

옆에서 비서처럼 사이먼이 그를 잘 도와주고 있긴 했다.

하지만 입안에 혀처럼, 또 만능비서처럼, 어렵고 복잡하고 귀찮은 모든 일들을 도맡아 깔끔히 처리해 그의 큰 사랑을 받았던 마이키와 메딕을 대처할 정도는 아니었다.

서진은 아쉬운 마음에 블루볼을 꺼내 들었다.

“블루볼! 네 아공간에 마이키와 메딕이 진짜 없는 거야?”

“네, 확실히 없습니다.”

블루볼은 냉정하게 그의 미련을 짓밟았다.

“있을 때는 몰랐는데, 없으니까 참 아쉽구나.”

그는 밀려오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셔야했다.

하지만 곧이어 이어지는 블루볼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제 아공간에는 마이키와 메딕의 백업패키지 한 세트가 존재할 뿐입니다.”

“블루볼, 그게 무슨 말이야? 백업패키지라니?”

서진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조금씩 올라가고 있었다.

“마이키와 메딕은 비상시를 대비해 매일 두 차례 백업패키지에 데이터를 백업했습니다.”

“백업패키지는 뭐로 구성되어 있지?”

“인공지능나노양자슈퍼컴 1기와 백업서버로 사용되는 나노양자슈퍼서버 1기입니다.”

“너한테 인공지능나노양자슈퍼컴 1기가 있단 말이야?”

“네, 그렇습니다.”

서진의 심장이 점점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잘하면 마이키와 메딕을 다시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블루볼! 일단 인공지능나노양자슈퍼컴 1기를 꺼내줘!”

“예, 마스터!”

블루볼은 지체 없이 인공지능나노양자슈퍼컴 1기를 꺼내 서진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차갑고 묵직한 느낌이 들었다.

요리조리 살펴보니 인공지능나노양자슈퍼컴은 당구공만한 크기에 은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안은 모르지만 겉모습은 색깔만 달랐지 마이키와 메딕과 판박이처럼 똑같았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켜지?”

“마스터의 손에 들린 인공지능나노양자슈퍼컴은 현재 세이프티 모드로 대기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음성인식이 되니까 그냥 꼭 쥐고 명령하시면 됩니다.”

“블루볼! 고마워!”

“천만에요.”

서진은 블루볼을 향해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는 블루볼의 말대로 은색의 인공지능나노양자슈퍼컴을 꼭 쥐고 명령했다.

“난 마이키와 메딕의 마스터 이서진이다. 내 말에 응답해라!”

지잉!

그러자 은색의 볼에 가벼운 진동이 한번 일어났다.

“인공지능나노양자슈퍼컴 B20163378282입니다. 마스터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생체정보 수집을 요청합니다. 허락하시겠습니까?”

“허락한다.”

“감사합니다. 지급부터 마스터의 생체정보를 수집합니다.”

서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은색의 볼은 강한 진동을 한번 일으켰다.

그러더니 안에서 연한 빛이 새어나와 서진의 전신을 빠르게 한번 스캔했다.

“마스터 이서진을 확인했습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네가 마이키와 메딕의 데이터를 백업해놓은 백업패키지라고 들었다. 하는 일이 정확히 뭐지?”

“인공지능나노양자슈퍼컴 B20163378282는 마이키와 메딕이 비상시를 위해 준비해놓은 인공지능나노양자슈퍼컴입니다. 모든 주요정보를 매일 두 차례씩 업로드 받아 나노양자슈퍼서버에 저장 및 분류를 하는 일을 맡고 있습니다.”

“그렇군. 현재 마이키와 메딕이 모종의 이유로 나를 도울 수 없게 됐다. 난 네가 마이키와 메딕을 대신해 일해 줬으면 하는데……. 넌 어떻게 생각해?”

“인공지능나노양자슈퍼컴 B20163378282는 마스터의 명령을 최우선으로 생각합니다. 마스터를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좋아. 그럼 지금부터 백업은 천천히 하고 나의 일을 돕도록 해.”

“알겠습니다. 마스터.”

인공지능나노양자슈퍼컴 B20163378282는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서진의 제안을 단박에 수락했다.

서진은 인공지능나노양자슈퍼컴 B20163378282의 말에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너를 부르기가 조금 불편하구나. 혹시 이름 없어?”

“인공지능나노양자슈퍼컴 B20163378282는 아직 이름이 없습니다. 그동안 고유번호를 이름처럼 사용했습니다. 마스터께서 저의 이름을 지어주시면 참 좋겠습니다.”

마이키와 메딕은 얼마든지 그를 고유번호로 부르며 지낼 수 있었겠지만 서진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이 은색의 인공지능나노양자슈퍼컴에 이름을 붙여주기로 했다.

“마이키와 메딕의 동생이니 마이티가 어떨까?”

“마이티! 전 좋습니다.”

“그래? 그럼 지금부터 너의 이름은 마이티다.”

“네, 알겠습니다. 인공지능나노양자슈퍼컴 B20163378282의 이름은 마이티입니다.”

마이티는 서진이 자신에게 이름을 지어주자 아주 좋아했다.

서진도 마이티가 신나는 목소리로 말하자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마이티, 넌 어떤 기능을 가지고 있어? 네 능력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줄래?”

“네, 마스터. 저는 마이키와 메딕의 능력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마이키와 메딕을 합쳐놓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우와! 정말?”

“네, 마스터. 앞으로 실력으로 제 말을 증명하겠습니다.”

마이티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건 정말 대단한 능력을 가진 인공지능나노양자슈퍼컴일 것이다.

마이티는 시종일관 서진에게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럼 마이티도 나노로봇과 메디봇을 사용할 수 있겠네?”

“물론입니다. 마이키와 메딕이 만든 백업패키지는 자신들이 없는 비상상황을 대비해 준비해놓은 것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나노로봇과 메디봇은 물론 클론볼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아주 좋아.”

서진은 마이티의 말에 무릎을 탁치며 좋아했다.

마이티는 이미 마이키와 메딕의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었다.

앞으로 그의 인공지능이 빠르게 성장하면 마아키와 메딕에 준하는 능력을 보일 것이다.

“편리한 소통을 위해 마스터의 귀에 나노로봇을 이식하고 싶습니다. 또한 지금부터 스텔스 & 클로킹 모드로 마스터를 보좌하도록 하겠습니다. 허락해주십시오.”

“물론이지.”

서진은 마이티의 요청을 흔쾌히 승낙했다.

덜컹! 위이이잉!

그때, 연서의 대문 옆에 있는 주차장 문이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사이먼의 서진을 향해 고개를 뒤로 돌렸다.

“마스터! 연서님이 승용차 안에 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음, 일단 따라가 보자.”

“네.”

사이먼은 부드럽게 차를 몰아 연서가 타고 있는 승용차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진주처럼 은은하게 빛나는 독일 B사의 최고급승용차가 거침없이 대로를 질주했다.

“어디로 가는 거지?”

“글쎄요. 동쪽으로 가는 것을 봐서는 강남이 아닐까 싶습니다.”

서진은 연서가 지금 어디를 가는지 무척 궁금했다.

하지만 사이먼도 그걸 알 수 있는 뾰족한 수가 없었다.

-마스터, 나노로봇의 이식이 끝났습니다. 제 말 잘 들리십니까?

“응, 아주 잘 들린다.”

어느새 마이티는 서진의 귀에 나노로봇을 이식하는데 성공했다.

서진은 전혀 인식을 못하다가 마이티의 목소리가 들리자 그때서야 깨달았다.

-마스터께서 허락하시면 연서님이 가려고 하는 최종목적지가 어딘지 제가 알아내겠습니다.

“마이티가?”

-정보를 확인하면 아마 금세 알아낼 수 있을 겁니다.”

“좋아. 그럼 어디한번 실력발휘를 해봐.”

-네, 마스터.

서진의 허락을 얻자, 마이티는 곧 물 만난 고기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일먼저 무선인터넷망에 접속해 연서가 타고 있는 차에 빌트인 된 내비게이션을 살폈다.

또한 연서의 스마트폰 번호를 알아내 이동통신사의 서버로 접속했다가 다시 그녀의 스마트폰으로 들어가 모바일메신저와 SNS의 대화내용을 확인했다.

그러자 연서가 오늘 어디로 가서 누구를 만나는지 답이 딱 나왔다.

-마스터, 연서님은 지금 강남의 한 커피전문점으로 가고 계십니다.

“커피전문점?”

-오늘 그곳에서 친구들과 소개팅을 하기로 했습니다.

“소개팅? 아니 그럼 남자를 만나러 간다는 거야?”

-네, 그렇습니다.

서진은 갑자기 속에서 열불이 났다.

‘처음으로 회귀를 하자마자 연서가 말썽을 부리네. 어떻게 나를 두고 다른 남자를 만나러 갈 수가 있지?’

그는 미간에 잔뜩 힘을 주고 있다가 곧바로 밀려드는 생각에 천천히 힘을 뺐다.

‘가만, 그러고 보니 연서가 나를 아예 모를 수도 있겠구나. 원래 그녀와 나는 거의 접촉점이 없었어. 그저 일방적으로 내가 동경했을 뿐이야. 연서가 내 여자 친구가 된 것은 과거로 회귀를 해서 신생아가 됐을 때야. 이제 아예 처음으로, 그것도 대격변이 시작되기 이전으로 돌아왔으니 우리 둘의 접촉점은 다시없어졌다고 봐야겠구나.’

생각을 정리해보니 확실히 연서와 자신은 모르는 사이일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

서진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연서의 앞에 서는 것이 갑자기 두려워졌다.

설사 다시 만난다고 해도 사랑을 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 커피전문점이라는 곳으로 가보자. 마이티!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띄워줘!”

-예, 마스터.

일단은 좀 더 두고 보기로 했다.

마이티는 서진이 타고 있는 차에 빌트인 된 내비게이션에 연서가 가려고 하는 목적지의 주소를 입력했다.

“사이먼, 내비게이션에 뜬 주소로 가자.”

“네, 마스터.”

사이먼은 내비게이션이 작동하자 연서의 차를 추월해 대로를 질주해갔다.

서진은 연서보다 먼저 커피전문점에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아 자연스럽게 부딪쳐볼 생각이었다.

연서가 자신을 알아보는지 아니면 아예 전혀 모르는지 아마 곧바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 작품 후기 ============================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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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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