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둠레이더-224화 (224/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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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장 - 새로운 삶

끼익!

검은 색 광택이 번쩍거리는 최고급승용차 한 대가 커피전문점 스타더스트 앞에 섰다.

운전석의 문이 열리자 명품의 향기가 줄줄 흐르는 검은색 정장을 입은 중년의 미남자가 밖으로 나왔다.

길을 걸어가던 주변의 사람들이 이국적인 외모의 남자를 쳐다보며 눈을 빛냈다.

하지만 검은 정장의 중년남자는 조금도 주변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고 서둘러 뒷좌석의 문을 열었다.

탈칵!

문이 열리자 승용차 안에서 검은 선글라스를 낀 건장한 체격의 사내 한 명이 밖으로 나왔다.

은은한 네이비블루 톤의 명품정장을 잘 차려입은 모습이 유난히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들였다.

“여긴 나 혼자 들어간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

“네, 마스터.”

서진은 사이먼을 쳐다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사이먼은 정중히 그에게 고개를 한번 숙이고는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자신이 낄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뚜벅 뚜벅 뚜벅!

서진은 커피전문점 스타더스트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정문으로 다가가자 투명한 유리로 된 자동문이 양쪽으로 스르르 밀려났다.

그는 한손으로 선글라스를 살짝 들어 올리고 안을 빠르게 한번 훑어봤다.

‘어디가 제일 좋을까?’

서진은 어디에 앉아야할지 몰라 잠깐 고민했다.

아무래도 정문에 누가 들어오는지 가장 잘 보이는 좌석이 좋을 것 같았다.

그는 정문에서 벽을 타고 중간쯤 되는 좌석으로 걸어갔다.

선글라스를 벗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그는 몸을 돌려 주문을 하러갔다.

그의 앞에서 나름 한껏 멋을 낸 꽤 예쁘장한 젊은 여자 하나가 마치 마법의 주문을 외우듯 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 있었다.

“카라멜 프라프치노 벤티 사이즈에 헤이즐럿 시럽과 카라멜 드리즐 뿌려주시고 휘핑 얹어주세요”

서진은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이게 지금 어느 나라 말이지?’

분명히 같은 나라 말을 사용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그녀의 말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신기한 것은 주문을 받고 있는 커피전문점 여직원은 그녀가 하는 외계어를 용케도 잘 알아듣는다는 것이다.

“다음 손님!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

외계어에 능통한 아가씨가 주문을 하고 옆으로 빠지자 커피전문점 여직원이 밝게 웃으면서 서진을 쳐다봤다.

그는 머릿속으로 ‘굳이 주문을 도와줄 필요가 있을까?’생각하며 입으로는 차가운 도시의 남자처럼 언제나 같은 주문을 했다.

“아메리카노 한잔이요.”

“아메리카노 말씀이십니까?”

“네.”

“사이즈는 어떤 것으로 하시겠습니까?”

“이걸로 해주세요.”

서진은 손가락으로 가장 작은 컵 사이즈를 가리켰다.

커피전문점 여직원은 곧바로 그의 주문을 컴퓨터에 입력하며 환하게 웃었다.

역시 주문은 한국어로 해도 되는 것이었다.

계산을 마친 그는 옆으로 이동해 아메리카노 한잔을 받아들고 위풍당당하게 자신의 좌석으로 돌아와 앉았다.

테이블 위에 놓인 선글라스가 홀로 햇빛에 반짝이며 그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는 차도남처럼 시크한 표정을 지으며 의자에 몸을 기대고 앉았다.

한쪽 면 전체가 통유리로 되어있어 마치 뻥 뚫려있는 것처럼 보였다.

사람들이 웃고 떠들며 오가는 모습이 눈에 훤하게 들어왔다.

‘올 때가 됐는데…….’

아메리카노를 홀짝마시며 마시고 있던 서진의 시선이 오른쪽 벽에 걸린 시계를 향했다.

그러자 그의 시선과 마주친 젊은 여자들이 ‘앗 뜨거워라!’  놀라며 급히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얼굴을 붉혔다.

‘자식들……. 보는 눈은 있어가지고.’

큰 키, 건장한 체격, 젊고 잘생긴 얼굴, 명품 정장에 카리스마가 넘치는 분위기까지…….

눈이 제대로 달린 여자라면 한번쯤 서진의 모습을 훔쳐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서진은 여유롭게 미소를 지으며 다시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그때, 기다리고 있던 연서가 차에서 내리는 모습이 포착됐다.

‘왔다.’

서진은 몸을 살짝 옆으로 기울여 다리를 꼬았다.

얼짱각도를 만든 그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향해 시선을 고정시켰다.

자동문이 열리며 연서가 커피전문점 스타더스트 안으로 들어왔다.

연한 분홍색 티셔츠에 주름이 진 하얗고 짧은 치마를 입은 연서!

그녀의 모습은 너무도 청순하고 생기발랄하고 아름다웠다.

연서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누군가를 찾았다.

“연서야! 여기야!”

그때, 연서를 찾는 목소리가 서진의 뒤쪽 테이블에서 들려왔다.

“지혜야!”

연서는 지혜라는 여자를 보더니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그때 서진과 연서의 눈이 허공에서 정면으로 부딪쳤다.

서진은 움직이는 연서의 얼굴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그 모습에 연서의 눈동자에 의혹의 빛이 서리기 시작했다.

‘나를 모른다.’

서진은 그녀의 눈빛을 본 순간 확신했다.

연서는 서진의 옆을 지나쳐 뒷좌석으로 가서 자연스럽게 앉았다.

그리고는 여느 젊은 여자들처럼 깔깔대며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그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혹시 내 모습이 변해서 못 알아보는 건가?’

서진은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글라스를 주머니에 집어넣은 그는 고개를 돌려 연서를 쳐다봤다.

마침 연서도 서진을 향해 시선을 돌리고 있는 중이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다시 한 번 허공에서 딱 마주쳤다.

서진은 이게 연서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는 한손을 치켜들며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 혹시……. 연서?”

“네? 저를 아세요?”

서진의 말에 연서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봤다.

연서의 옆과 앞에 앉아있던 그녀의 친구, 지혜와 다혜는 연신 고개를 양쪽으로 왔다 갔다 하며 흥미로운 표정으로 쳐다봤다.

“서상고등학교를 다녔던 민연서 아닌가요?”

“어어? 맞는데요. 절 어떻게 아세요?”

의혹에서 호기심으로 변한 연서의 눈빛에 서진은 속으로 고소를 지었다.

‘이런, 확실히 나에 대한 기억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구나. 대천사 미카엘이 내 부탁을 그대로 들어준 건가?’

그는 잠깐 어떻게 할지 고민을 했다.

‘이대로 그냥 나갈까? 아니면 다시 인연을 만들어볼까? 어차피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니 연서와 인연을 만들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한다. 이제 와서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연서와 의도적인 인연을 한번 만들어봤던 서진은 가볍게 고개를 내저었다.

인연을 억지로 만드는 것은 역시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사랑했던 기억이 남아있다면 모를까, 아예 리셋이 된 것처럼 자신에 대한 기억이 없는 그녀와 다시 시작한다고 잘된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는 결국 연서를 그냥 흘려보내기로 결정했다.

“사실은 저도 서상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 같은 반은 아니었지만 연서 씨를 몇 번 봤어요.”

“아! 그러셨구나. 그럼 연서와 동창이라는 얘기네요?”

분위기가 묘해지자 연서의 친구 지혜가 얼른 앞으로 나섰다.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연서와 그리 친하게 지내지는 않으셨나보네요.”

“아! 네.”

서진은 당돌하게 말하는 지혜의 눈을 쳐다봤다.

그녀는 뭔가 도전적인 눈빛을 하고 있었다.

오늘 소개팅을 한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지혜라는 여자가 주최자인 모양이었다.

“제가 실례를 한 것 같군요.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그럼 좋은 시간 보내세요.”

서진은 고개를 숙이며 정중히 사과를 했다.

그리고는 차갑게 몸을 돌려 밖으로 걸어나갔다.

“지혜야!”

“아, 아니 난 그, 그게 아닌데…….”

다혜가 날카롭게 지혜의 이름을 불렀다.

지혜는 갑작스런 사태에 크게 당황하며 연서를 쳐다봤다.

연서는 친구들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홀리기라도 하듯 서진의 뒷모습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 연서의 모습을 본 다혜가 지혜를 향해 더욱 매섭게 쏘아붙였다.

“지혜야! 너 왜 함부로 남의 일에 끼어들고 그래? 저분 기분 나쁘셔서 그냥 가셨잖아.”

“아니야. 난 아무런 잘못도 안했어. 그냥 동창이냐고 물어본 것뿐이잖아.”

커피전문점 스타더스트를 나가는 서진의 귀에 다혜와 지혜가 투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서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차를 향해 빠르게 걸어갔다.

사이먼은 서진이 다가오는 것을 귀신같이 알고 밖으로 나와 차의 뒷문을 열어 놓았다.

서진은 아무 말 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차에 올라탔다.

차문을 닫은 사이먼은 냉정한 분위기를 풍기는 서진을 보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차를 몰아 현장을 빠져나갔다.

부우웅!

그가 떠나고 나자 뒤늦게 연서가 커피전문점 밖으로 뛰어나왔다.

그녀는 서진을 찾는지……. 연신 이리저리 고개를 돌렸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그녀의 하얀 치마만 파르르 떨어대고 있었다.

* * *

인천 국제공항.

입국장의 자동문이 열렸다.

하늘거리는 베이지색 원피스를 입은 이국의 미녀 한 명이 당당히 걸어 나왔다.

순간 입국장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를 향해 쏠렸다.

남자들은 모두 입을 딱 벌리고 쳐다봤고, 여자들은 질투에 눈이 멀어 매서운 눈초리로 그녀의 단점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됐다.

하지만 이국의 미녀에게는 단점이라는 것이 보이지 않았다.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연한 금발에 갈색의 예쁜 눈을 한 그녀는 너무도 아름다웠다.

새하얀 피부와 늘씬한 다리의 각선미는 기본이었고, 라틴아메리카 미녀 특유의 폭발적인 가슴과 육감적인 몸매는 실로 압도적이었다.

이런 엄청난 이국의 미녀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

“서진!”

“제니!”

제니는 멋지게 정장을 차려입고 공항까지 마중을 나온 서진을 향해 거침없이 다가섰다.

그리고는 냅다 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개버렸다.

“아!”

“우와!”

“어머 저게 뭐하는 짓이야?

“제길, 개부러움!”

“누구지?”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입국장 주변에 모여 있던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갖가지 감정 섞인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남자들은 주로 부러워죽겠다는 표정이었고, 여자들은 남사스럽다고 난리를 치면서도 질투 섞인 눈을 절대 다른 곳으로 돌리지 않았다.

제니는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건 말건 열심히 서진의 입술을 탐하기 바빴다.

키스삼매경에 빠진 두 사람은 주변사람들의 야유 섞인 탄성에도 불구하고 한참동안 욕심을 채울 때까지 떨어지지 않았다.

이러다가 여기서 만리장성을 쌓는 것은 아닐까 기대감이 증폭되던 찰라, 서진은 이성을 챙기고 간신히 그녀의 입술을 떼어냈다.

“제니!”

“서진!”

“일단 여기서 나가자.”

“네.”

서진은 제니를 뜨거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속삭였다.

그녀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의 품에 폭 안겨들었다.

두 사람은 몸을 딱 붙인 채 보지도 않고 출입구로 걸어가는 신기를 보여줬다.

그녀가 남겨놓은 여행용 캐리어는 영원한 서진의 파트너, 사이먼이 잘 챙겨서 가져갔다.

부우웅!

인천국제공항을 빠져나와 고속도로를 탄 자동차는 바람처럼 빠르게 질주했다.

제니는 서진의 품에 안겨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서진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살짝 위로 쓸어 올리며 물었다.

“제니, 다 기억하는 거야?”

“뭘요?”

“이리 오기 전에 너 혹시 누구 안 만났어?”

“누구요? 대천사 미카엘이요?”

“오오오!”

제니의 대답에 서진의 궁금증이 한방에 풀려버렸다.

대천사 미카엘을 만난 것을 기억하고 있다는 말은 그녀가 온전히 기억을 가지고 회귀했다는 말이 된다.

그때 서진의 머릿속에 제니가 납치를 당할 뻔한 일이 떠올랐다.

“제니, 너 납치 됐을 때 누가 구해줬지?”

“그거야 오빠가 구해줬지요.”

제니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그제야 서진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 때문에 혹시 제니가 큰 곤욕을 치르지는 않을까 많이 걱정을 했었던 것이다.

“제니 지니 저니 마이 호(Jenney Genie Journey My Ho)!”

“우와! 오빠! 아직 그걸 기억하고 있네요?”

“당연하지. 누가 만든 랩(rap)인데…….”

서진은 기분이 좋아져서 그렇게 따라 하기 싫던 제니의 훅(hook)을 자신이 먼저 부르고야 말았다.

“제니 지니 저니 마이 호(Jenney Genie Journey My Ho)!”

“제니 지니 저니 마이 호(Jenney Genie Journey My Ho)!”

서진과 제니는 양손을 머리위로 들고는 어깨를 흔들면서 제니가 만든 랩의 펀치라인을 계속 반복했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자 제니의 가슴에 터질 듯한 행복감이 아귀까지 차올랐다.

============================ 작품 후기 ============================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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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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