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 아스날 멸 to the 망 ㅋㅋㅋㅋㅋ
- 아무리 그래도 홈에서 5 대 떡은 너무 심했다
- 어디 가서 구너라고 말하면 안되겠다 ㅠㅠ
- 진짜 벵거는 무링요한테 꼼짝을 못하네 ㅋㅋㅋ
- 와 근데 정백강은 진짜 미친 거 아님??
- 4골 1어시 ㄷㄷ 이게 사람 기록이냐
- 정백강!!! 정백강!!! 정백강!!!
- 진짜 챔스의 신이다 ㅎㄷㄷ
- 이번에 빅이어 들면 그냥 정백강 시즌임
- ㅇㅈ 메시고 나발이고 개인기록 차이가 넘사벽
- 챔스 2시즌 31골임 ㅋㅋㅋ 올해는 아직 경기 많이 남았고
한국에도 팬이 많은 아스널인지라 경기 후폭풍은 더욱 컸다.
[큰 경기에 더욱 강한 정백강, 그 비결은?]
[우리는 정백강의 시대에 살고 있다]
[‘챔스의 왕’ 정백강의 16골 전격 분석!]
조금은 민망한 제목의 관련 기사도 엄청나게 쏟아졌다.
우리가 4강전 진출을 사실상 결정 지은 다음날, 같은 포트에 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바이에른 뮌헨의 경기가 펼쳐졌다.
장소는 올드 트래포드.
통산 8번째 맞대결이었다.
역대 전적은 2승 4무 1패로 뮌헨이 근소하게 앞서 있었지만, 그 1패가 유명한 ‘캄 노우의 기적’이었다.
때는 1998-1999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전반 6분 선제골을 넣은 뮌헨은 압도적인 경기력을 선보이며 맨유를 몰아붙였다.
하늘이 보우하사 추가 실점은 없었지만 어느새 시계는 90분을 가리켰다.
뮌헨이 우승컵을 거머쥐기 일보 직전.
코너킥 2방이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91분 동점골, 93분 역전골.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은 맨유가 거둔 집념의 승리였다.
그리고 이 우승으로 맨유는 트레블까지 달성했으니...
여러모로 역사에 남을 수밖에 없는 명경기였다.
딱 한 번 진 게 엄청나게 컸다는 이야기지.
“백강 씨는 누가 이길 것 같으세요?”
오늘의 경기 시청 장소는 에투네 집.
에투의 아내인 조르젯이 내 의견을 물어 왔다.
어려운 질문인걸?
“음... 글쎄요... 무승부?”
나의 조심스러운 대답에 즉각 태클 들어오는 에투.
“에이, 무승부는 재미없잖아. 시ㅂ...간 아깝고. 나는 맨유 승.”
“나도.”
“저도 한 표 얹습니다.”
오, 의외로 일방적인데?
최근 몇 년간 맨유의 챔스 성적이 워낙 좋았기 때문에 가산점이 붙은 듯하다.
“내기할까요? 승자 예측, 100유로.”
오늘 멤버 중 막내인 다비데 산톤의 당돌한 제안.
“난 찬성. 더 재밌을 것 같은데.”
“100유로는 너무 짜다. 500유로 가자.”
“콜.”
취합한 결과 나와 문타리 부부만 무승부에 걸고, 나머지는 전부 맨유 승리에 걸었다.
흠... 도박은 한방이지.
“그러면 전 뮌헨 승으로 바꿀게요.”
“정말? 후회 없겠어?”
“갑니다. 한국에 이런 속담이 있어요. ‘못 먹어도 고!’”
이번 시즌 뮌헨이 절대 호락호락한 팀은 아니다.
원정이라는 게 좀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지.
“시작한다.”
맨유의 선축.
웨인 루니가 폴 스콜스 쪽으로 공을 빼줬다.
공을 잡자마자 전매특허인 롱패스를 시도하는 스콜스.
맨유를 떠난 호날두랑 국적만 같은 나니가 공을 차지하기 위해 맹렬한 기세로 뛰어갔다.
퍼억-
마르틴 데미첼리스의 슬라이딩 태클에 나동그라지는 나니.
“어이고, 저거 아프겠다. 달링은 눈 감아. 아이한테 너무 거친 모습을 보여주면 태교에 안 좋댔어.”
문타리가 돈코르를 끌어안으며 호들갑을 떨었다.
아니, 그냥 축구를 안 보면 되는 거 아냐?
코너 에어리어 부근에서 맨유가 프리킥 찬스를 맞았다.
“이거, 골.”
“응?”
“골이라고.”
“설마.”
“보면 알아.”
페널티킥 방향에 이어 새로운 능력을 뽐내려고 하는 스네이더.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 들어갑니다! 웨인 루니의 득점! 프리킥을 얻어낸 나니가 어시스트까지 기록합니다!
무슨 <세상에 저런 일이>도 아니고.
이게 가능해?
“웨슬리, 그거 혹시...”
“우리 팀 경기엔 해당 안 돼.”
그러면 그렇지.
* * *
스네이더 덕분에(?) 이른 시간 선제골이 터지면서, 경기는 엄청난 난타전 향상으로 흘러갔다.
맨유는 기세를 탄 김에 아예 쐐기를 박으려고 했고, 뮌헨은 어떻게든 동점을 만들 요량으로 공격을 외쳤다.
덕분에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꿀잼.
그 와중에도 가장 빛나는 선수는 뮌헨의 프랑크 리베리였다.
‘로베리’ 라인의 한 축을 담당하는 파트너 아르연 로벤이 ‘또’ 부상으로 이탈하는 바람에 사실상 팀 공격을 혼자 이끌다시피 했다.
35세, 어느덧 선수 생활 황혼기에 접어든 게리 네빌에게는 너무나 벅찬 상대였으니...
체감상 드리블 돌파 성공률이 90%는 족히 돼 보였다.
“가만, 뮌헨이 올라오면 또 마이콘이 매치업이잖아?”
리베리의 미친 활약을 지켜보던 캄비아소가 중얼거렸다.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하는 마이콘.
“리베리든 로벤이든 아무 상관 없어. 어차피 결국엔 내가 이길 거니까.”
자칫하면 재수 없어 보일 수도 있는 발언이지만, 마이콘이 하니까 좀 다르다.
내가 해트트릭한다고 공언하면 저런 느낌인가?
무수한 슈팅이 오고 갔지만 아쉽게도 골은 더 이상 터지지 않았다.
1-0으로 전반전 종료.
“백강, 어떡해? 돈 왕창 잃게 생겼네?”
에투가 음흉하게 웃으며 도발해왔다.
“아직 후반전이 통으로 남았으니 지켜보자고.”
최후의 최후까지 알 수 없는 게 축구라는 스포츠 아니겠는가.
양 팀 다 교체카드는 일단 아껴둔 채 후반전을 맞이했다.
어차피 2차전도 있고, 여기서 가진 패를 다 꺼낼 생각은 없겠지.
“이야! 죽이네!”
전(前) 동료에게 보내는 루시우의 감탄사.
후반 시작하자마자 뮌헨에게 결정적인 기회가 찾아왔다.
시발점은 역시나 리베리.
하도 드리블에 호되게 당하다 보니 맨유 수비진이 거리를 두고 막았는데, 그 틈을 제대로 찔렀다.
아웃프런트로 무심하게 찔러준 스루패스가 오프사이드 트랩을 깬 스트라이커 이비차 올리치에게 정확하게 연결되며 일대일 찬스.
하지만 올리치의 왼발슛이 에드윈 반 데 사르 골키퍼의 선방에 막혔다.
“야!!! 저걸 못 넣어???”
어우, 깜짝이야.
돈코르가 별안간 엄청난 성량을 뽐내며 올리치를 질책했다.
“다... 달링. 아이가 놀라요.”
“어머, 미안해요. 너무 흥분해서 그만...”
이게 바로 스포츠 도박의 무서움이다.
비록 놓치긴 했지만, 이 장면을 기점으로 해서 뮌헨의 공세가 더욱 거세졌다.
다음 타자는 토마스 뮐러.
골문 왼쪽 하단을 정확하게 노린 중거리포로 홈팬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쟤 나이는 어린데 괜찮게 하더라. 뭘 잘하겠는지는 모르겠는데 하여튼 잘해. 팀 훈련 때도 돋보였었어.”
역시 뮌헨 전문가 루시우.
‘뭘 잘하겠는지는 모르겠다’는 표현이 너무나 적절하다.
앞으로 뮐러가 어떤 커리어를 쌓게 되는지는 나밖에 모르니까 입 닫고 있자.
“오늘 반 데 사르 바쁘다 바빠. 좀 안쓰럽네.”
과부 마음은 홀아비가 안다고 했던가.
이 와중에 골키퍼 힘들 거 신경 쓰는 세자르 형님.
“벌써 70분이 넘었잖아? 경기가 너무 재밌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겠네.”
사네티 주장 말마따나 손에 땀을 쥐는 승부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아서 이제 내기에 이기기는 글렀나 싶었는데...
“어? 왔어! 왔어!”
호들갑을 떠는 문타리.
전반전부터 미쳐 날뛰는 리베리를 상대하느라 정신히 혼미해진 탓일까.
네빌이 올리치에게 전해지는 로빙 패스를 손으로 건드리며 어처구니없는 핸드볼 파울을 저질렀다.
오른발로 감아 차기 딱 좋은 위치에서 프리킥.
거리는 약 27m.
키커는 당연히 리베리였다.
“웨슬리, 이건 어때?”
“골이다.”
“확실해?”
“난 틀리지 않아.”
나와 스네이더의 대화를 듣던 에투가 끼어들었다.
“어이, 웨슬리. 너도 맨유 승에 걸었잖아. 왜 그런 불길한 얘기를 하는 거야?”
“백강이 물어보니까. 진실을 말한 것뿐.”
“상식적으로 두 번이나 맞힐 리가...”
- 골! 골! 프랑크 리베리의 프리킥이 골문을 가릅니다! 이제 경기는 원점! 벽을 한 번 맞고 들어가며 반 데 사르를 완전히 무너뜨렸습니다!
“이예에에스!”
“다... 달링...”
“어머, 내가 왜 이럴까. 호호호.”
문타리가 돈코르를 말리는 사이, 나머지 사람들은 뜨악한 얼굴로 스네이더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렇게 대단하고 쓸모없는 능력을 두 가지나 가졌다니!
“뭐, 왜, 뭐. 골이라고 했잖아.”
원정 경기에서 골을 넣고 무승부라면 뮌헨 입장에서 최상의 시나리오.
이제는 맨유 선수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카메라가 32비트 리듬으로 껌을 짝짝 씹고 있는 퍼거슨 감독의 얼굴을 비췄다.
바로 선수 교체.
최악의 퍼포먼스를 선보였던 네빌을 불러들이고, 지난 시즌 포르투와의 시리즈에서 맹활약했던 디미타르 베르바토프를 투입했다.
오늘 경기는 무조건 잡겠다는 의지.
한편 루이스 판 할 감독도 가만있지 않았다.
로벤의 땜빵으로 나왔지만 활약이 저조했던 하밋 알틴톱을 빼고 장신 스트라이커 마리오 고메즈에게 골 사냥 임무를 맡겼다.
“야, 이 멍청한 맨유 놈들아. 뭐 좀 해봐라.”
“여보... 입!”
“아, 미안.”
에투가 혼나는 동안 루니가 코너킥을 얻어냈다.
“웨슬리, 이번엔 골이야?”
“코너킥은 몰라. 프리킥하고 페널티킥만 알 수 있어.”
발동 조건 한 번 더럽게 까다롭네.
라이언 긱스가 신중한 표정으로 코너킥을 준비했다.
“크, 긱스. 내가 선수 인정 잘 안 하는데, 긱스만큼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 실력, 커리어, 인성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잖아?”
“뭐라고? 인성?”
데얀 스탄코비치가 침까지 튀겨가며 긱스 예찬론을 펼쳤는데, 나도 모르게 큰 소리가 튀어나왔다.
“왜? 긱스 인성에 무슨 문제라도 있어? 이렇게 경력이 긴데 구설수 하나 없었잖아.”
“그... 그렇지. 후... 훌륭하지.”
빵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겨우 참았다.
곧 있으면 알게 될 거야 코비치 형.
라이언 씨가 어떤 사람인지, 그 실체를 말이야.
터어엉-
“아이고! 이게 안 들어가냐! 조ㅈ...금 짜증나네!”
에투의 탄식.
긱스의 날카로운 코너킥을 네마냐 비디치가 이마에 제대로 맞혔지만 야속한 공은 크로스바를 강타하고 말았다.
루즈볼을 멀리 걷어내는 필립 람.
의도한 패스는 아닌 것 같았지만, 볼은 고메즈에게 정확하게 연결되었다.
“뭐야? 뭐야?”
산톤의 두 눈이 땡그래졌다.
갑자기 하프라인 부근에서부터 단독 드리블을 시작하는 고메즈.
뒤쪽에서 루니가 붙잡았지만 힘으로 가볍게 떨쳐냈다.
스콜스 역시 추풍낙엽처럼 아웃.
마치 한 마리 황소를 보는 듯했다.
순식간에 페널티박스 앞까지 진격한 고메즈가 파트리스 에브라의 태클까지 뛰어넘은 뒤 그대로 대포알 슈팅을 날렸다.
파앙-
세자르 형님 피셜 ‘안쓰러운’ 반 데 사르의 놀라운 선방.
그러나 득달같이 달려든 올리치의 두 번째 슈팅까지는 막아내지 못했다.
- 역전! 후반 44분! 드디어 역전입니다! 원정팀 뮌헨이 올드 트래포드를 침묵에 빠뜨립니다!
드라마 같은 승부의 주인공이 된 올리치가 화끈한 상의 탈의 세리머니로 경고를 받았다.
발로텔리가 왔다면 아주 흐뭇해 했겠네.
삑- 삑- 삑--
경기 종료.
정말로 뜨거웠던 일전.
최종 승자는 뮌헨과 정백강이었다.
“하하, 이거 죄송하게 됐습니다.”
수금을(?) 마친 내게 에투가 으르렁거렸다.
“백강 너, 다음에 한 판 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