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뚝배기로 발롱도르-84화 (85/176)

84화

- 벵거가 좀 실언을 한 것 같다 ㅠㅠ

- 실언은 무슨, 그 정도 얘기는 할 수 있지 ㅋㅋㅋ

- ㅇㅇ 아니 솔직히 챔스에서 경기당 2골 가까이 넣는데 세계 최고가 아니라면 말이 됨?

- 근데 그렇게 따지면 게르트 뮐러>>>마라도나임. 포지션이 다른데 골만 가지고 논하면 안되지 ㅋㅋ

- 마라도나는 대놓고 미드필더고 ㅋㅋ 메시는 사실상 공격수잖아 ㅋㅋㅋ

- 정백강은 플레이메이킹이 아예 안 되는데 ㅋㅋㅋ 헤딩 말고 뭐 할 줄 아는 게 있나??

- 메시가 1골 1어시할 때 정백강은 해트트릭을 박는데 ㅋㅋㅋㅋ 축구는 골 넣는 스포츠 아님요?

- 자기 팀 상대로 2경기 7골 넣은 선수한테 립서비스는 할 수 있는 거잖아 왜들 싸우고 그래

- 립서비스라기에는 너무 태도가 진지했음;;

- 싸우지 말고 누가 야짤이나 좀 올려봐

- 이건 또 무슨 신개념 ㅂㅅ이야 ㅋㅋㅋㅋ

아르센 벵거 감독의 발언은 역시나 후폭풍이 거셌다.

한국의 축구 커뮤니티에는 ‘제23차 정메대전’이 제대로 발발했다.

물론 한국만 시끌시끌해진 건 아니었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스포츠 관련 언론들이 모두 달려들어 엄청난 양의 기사를 쏟아냈다.

물론 이탈리아에서는 나를, 스페인에서는 메시를 추어올리는 쪽으로 논조를 잡았다.

그리고 이 진흙탕 싸움에 중립국(?)인 잉글랜드가 참전했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축구잡지 <<포포투>>에서는 특집 기사를 내놓은 것이다.

제목이 무려 <정백강 VS 리오넬 메시, 당신의 선택은?>이었으니.

거의 불닭볶음면만큼 자극적이었다.

전문가 3명이 참여한 대담 기사였는데, 초대된 패널의 면면이 장난 아니었다.

EPL 통산 최다 득점 기록 보유자인 앨런 시어러.

잉글랜드의 월드컵과 유로 4강을 이끈 천재 미드필더 폴 개스코인.

아스널과 잉글랜드의 슈퍼 레전드 센터백 토니 애덤스까지.

기사 내용은 대략 아래와 같았다.

사회자 : 아르센 벵거 감독이 ‘정백강이 세계 최고’라고 공언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이에 대한 여러분들의 생각을 듣고 싶다.

애덤스 : 논란? 논란은 기자들이 만드는 거지. 벵거 감독은 축구인의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의견을 얘기한 것뿐이다.

사회자 : 그럼 당신의 의견은 어떤가? 정백강이 최고인가? 포츠머스 시절에 당신이 수석코치로 지도하기도 했던 선수인데.

애덤스 : 포츠머스 시절의 정백강도 엄청났다. 강팀이라고 하기 힘든 곳에서 득점왕을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지금은 더욱 발전했다. 놀라운 일이다. 내 대답을 원한다면 ‘예스’다. 정백강이 명실상부한 넘버원이다.

개스코인 : 글쎄, 난 좀 회의적이다.

사회자 : 왜 그렇게 생각하나?

개스코인 : 우리가 위대하다고 칭송하는 선수들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자. 펠레나 마라도나, 요한 크루이프 등의 얼굴이 떠오른다. 이들과 비교해 보면 정백강의 한계는 너무나 명확하다.

사회자 : 한계라고?

개스코인 : 축구에서 보여줄 수 있는 기술적 측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의 드리블이나 볼 컨트롤, 그리고 킥력은 냉정히 말해 수준 이하다. 수많은 약점을 헤더 능력 하나로 덮고 있는 상황인데, 이렇게 결함이 많은 넘버원이 있을 수 있는가?

시어러 : 내가 폴 말에 반박할 차례가 돌아온 것 같다.

사회자 : 드디어 정백강과 같은 포지션이었던 앨런이 입을 열었다.

시어러 : 하하, 개인적으로는 정백강이 인테르로 이적해줘서 고맙다. 덕분에 내 최다득점 기록이 안 깨졌으니까. 뭐, 시답잖은 얘긴 여기까지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자. 폴이 방금 펠레, 마라도나, 크루이프와 정백강을 비교했지만 이건 온당치 않다.

사회자 : 온당치 않다?

시어러 : 그 사람들은 정백강처럼 헤더를 못 하지 않았나. 요컨대 정백강은 완전히 새로운 타입의 선수라는 얘기다. 드리블을 왜 하나? 그는 머리 하나로 경기를 지배할 수 있다.

사회자 : 경기를 지배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줄 수 있을까?

시어러 : 내가 숫자에 약해서 좀 적어 왔는데... 정백강이 이번 시즌 총 46경기를 뛰었다. 그런데 어시스트가 무려 27개다. 이미지와는 달리 무식하게 골만 넣는 선수가 아니란 이야기다. 사무엘 에투와 고란 판데브는 정백강의 능력 덕분에 엄청나게 많은 공격 포인트를 쌓고 있다. 정백강의 헤더는 팀의 공격력을 업그레이드하는 대단한 무기다.

사회자 : 자, 단적으로 말하자. 그럼 당신의 대답도 ‘예스’인가?

시어러 : 그렇다. 정백강이 현 시점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라고 본다.

사회자 : 센터백과 수비수는 정백강을 골랐고, 미드필더 출신인 폴은 부인했다. 이것도 굉장히 흥미로운데? 그럼 폴이 생각하는 최고는 누구인가? 리오넬 메시? 아니면 다른 누구?

개스코인 : 그렇게 묻는다면 ‘노(No)’다. 메시도 아직은 모자라다. 지금은 명확한 최고가 없는 시기라고 본다. 아마도...

사회자 : 아마도?

개스코인 : 이번 챔피언스리그를 통해 윤곽이 드러나지 않을까 싶다. 인테르나 바르셀로나 중 한 팀이 빅이어를 들어 올린다면, 이 지루한 싸움도 결말이 나지 않을까?

애덤스 : 오, 그 의견엔 정말 동의한다. 메시가 나와 앨런의 생각이 틀렸음을 증명할 수도 있겠지. 물론 백강이 폴에게 멋지게 한 방 먹일 수도 있고.

시어러 : 이하동문. 그래서 결승전 매치업이 인테르 VS 바르셀로나가 되길 원한다.

사회자 : 다른 두 팀의 팬들은 기분 나쁠 수도 있겠다.

시어러 : 그 생각은 미처 못 했다. 기사 나갈 때 내 얼굴에 모자이크 처리를 해달라.

애덤스 : 이렇게 떠들었는데 바이에른 뮌헨이 우승하면 굉장히 민망하겠다.

개스코인 : 그런 일이 벌어지면 그냥 아르연 로벤과 프랑크 리베리 중 하나를 찍으면 될 것 같다. 참고로 내 픽은 리베리다.

* * *

나와 메시의 일인자 논쟁과 상관없이 시즌 막바지 일정은 쉼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첫 성과.

[인테르, 세리에 A 5연패 위업 달성]

트레블의 첫 관문인 리그 우승이 확정되었다.

스타디오 주세페 메아차에서 열린 33라운드 피오렌티나전에서 2-0 승리.

승점 91점을 마크하며 남은 경기와 상관없이 다음 시즌 유니폼에 스쿠데토를 새기게 됐다.

우승 결정전이 된 이 경기에서 나는 1골과 1개의 어시스트로 또 한 번 ‘위대한 머리’의 위용을 뽐냈다.

“우와... 나 프로가 되고 나서 우승이란 걸 처음 해봐.”

경기 종료 후 가장 기뻐한 사람은 판데브였다.

비록 시즌을 처음부터 함께 하진 않았지만, 에투의 부상과 스네이더의 스캔들로 팀이 휘청거릴 때 판데브의 역할이 매우 컸다.

아이처럼 좋아하는 모습이 귀여워서 나도 한 마디 했다.

“기쁜 건 알겠는데 감정을 좀 남겨 둬. 아직 들 우승컵이 두 개 더 남았으니까.”

반대로 가장 목석같은 반응을 보인 건 무리뉴 감독이었다.

“원래 리그 결과가 나오고 나면 ‘아, 이제 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그러나 올해는 다르다.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라는 생각으로 남은 경기들에 임하겠다.”

우승의 들러리(?)가 된 피오렌티나는, 3일 뒤에 우리 팀을 다시 만났다.

이번 무대는 코파이탈리아 4강 2차전.

2개월 전 피오렌티나 홈에서 열린 1차전에서는 우리가 1-0으로 승리한 바 있었다.

결승 진출을 향한 피오렌티나 선수들의 열정은 정말 굉장했다.

내가 전반 26분 헤더 선제골을 넣었지만 5분 후곧바로 프리킥 동점골을 터뜨리며 따라왔다.

후반 30분까지 유지되던 1-1의 균형을 깬 건 스네이더의 오른발.

상대 수비가 어설프게 걷어낸 공을 다이렉트 발리로 연결하며 환상적인 역전골을 터뜨렸다.

그대로 끝나는가 싶었는데, 2분 뒤 코너킥 상황에서 톨도 형님이 치명적인 볼 처리 실수를 하며 허무하게 동점골 헌납.

경기는 다시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다.

피오렌티나가 한 골을 더 넣어서 3-2로 승리할 경우 원정 다득점 원칙에 따라 우리 팀이 탈락하는 상황.

최후의 순간에 등장한 건, 지겹지만 또 나였다.

발로텔리가 현란한 드리블로 수비를 유린한 뒤 올려준 크로스를 ‘툭탁뻥’으로 마무리.

이번 시즌 코파에서 8번째 골이었다.

엄청난 접전 끝에 2-3으로 패한 피오렌티나는 안타깝게도 우리 팀 결승행의 제물이 되었다.

“챔피언스리그에서는 뮌헨에게 무릎을 꿇었고, 코파에서는 인테르의 벽을 넘지 못했다. 거대한 클럽에게 이긴다는 건 정말,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승부는 나 버렸으니. 피오렌티나의 시즌은 이렇게 마무리가 됐지만, 인테르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이왕이면 같은 이탈리아 팀인 인테르가 우리의 복수를 대신 해줬으면 한다.”

피오렌티나의 체사레 프란델리 감독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씁쓸하게 웃으며 우리 팀을 위한 덕담을 남겼다.

토너먼트에선 훌륭한 성적을 거뒀지만 리그에서는 10위권 밖으로 밀려난 피오렌티나.

프란델리 감독의 미소 속에는 경질을 각오한 듯한 체념이 엿보였다.

챔스 16강에 코파 4강.

절대 못 한 시즌이 아니건만, 정작 실속이 하나도 없었으니...

이럴 때는 정말 축구판의 비정함을 느낀다.

한편 로마와 우디네세가 맞붙은 4강의 반대 블록에서는 1승 1패 동률이 나왔고, 골득실에서 앞선 로마가 결승전에 진출했다.

리그 우승팀과 2위팀의 맞대결이 성사되면서, 인기가 없는 편인 코파이탈리아도 간만에 언론의 뜨거운 관심을 받게 되었다.

* * *

2010년 4월 19일.

캄 노우에서 챔스 4강의 시작을 알리는 첫 번째 경기가 열렸다.

디펜딩 챔피언 바르셀로나와 올림피크 리옹의 매치업.

앞서 16강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꺾었던 리옹은 또 한 번 스페인의 거함을 상대하게 되었는데...

레알과 바르셀로나는 좀... 많이 달랐다.

펩 과르디올라 감독의 2년 차를 맞아 더욱 원숙해진 티키타카는 리옹이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다.

리옹의 클로드 퓌엘 감독이 나름대로 ‘선 수비 후 역습’ 전술을 가동하긴 했지만, 바르셀로나의 치밀하고 조직적인 압박 때문에 전방으로 향하는 롱패스의 정확도가 형편없이 떨어졌다.

가뭄에 콩 나듯 찾아오는 찬스는 수비형 미드필더 세르지오 부스케츠가 얄밉게 톡톡 끊어냈고.

원정팀의 지옥인 캄 노우에서 리옹이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골을 먹히는 것밖에 없었다.

결과는 3-0.

바르셀로나는 압도적인 경기력을 과시하며 리옹을 거의 가지고 놀다시피 했다.

요즘 나와 함께 화제의 중심에 선 메시는 2골 1어시스트로 펄펄 날았고.

마치 ‘발롱도르 위너의 클래스가 이런 거야’라고 외치는 듯한 플레이였다.

“역시 메시는 다른 차원에 있는 선수다. 오늘도 그 사실을 훌륭하게 증명했다. 메시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더 높은 곳을 바라볼 수 있다.”

완벽한 승리에 도취된 과르디올라 감독은 자기 팀 에이스에 대한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다분히 벵거 감독의 발언을 의식한 것 같기도 하고 말이지.

메시야, 적당히 좀 하지 그랬어.

네가 그러면 나도 좀 부담이 생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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