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뚝배기로 발롱도르-122화 (123/176)

122화

[레알 마드리드, ‘엘 클라시코’ 3-2 승리]

[‘승점 6점짜리 경기’ 승리하며 독주 체제 완성한 레알 마드리드]

[정백강 해트트릭... 승리 일등공신 등극]

시종일관 압도적인 경기를 펼친 바르셀로나였으나 아무 의미가 없었다.

꾸레들은 경기가 끝난 캄 노우에 남아 한동안 믿을 수 없는 결과에 황망해 했다.

침통한 표정으로 인터뷰에 나선 패장 펩 과르디올라는 짧게 소감을 밝혔다.

“승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정말, 너무나도 아쉬운 경기였다. 다음 격돌 때는 반드시 승리하겠다.”

생각보다 겸손했던(?) 과르디올라 감독에 비하면 주장 사비의 발언은 좀 과격했다.

“우리의 점유율은 압도적이었다. 우리는 90분 내내 게임을 마음대로 컨트롤했으며, 레알 마드리드는 거기에 전혀 저항하지 못했다. 축구라는 스포츠에는 결과만 보면 절대 알 수 없는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

정말 사비답다고 해야 할까.

대체 저런 발상은 어떻게 하면 나오는 건지.

“힘든 경기였지만 우리는 이겨냈고, 승리를 쟁취했다. 열심히 뛰어준 선수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과르디올라 감독 상대로 2연승을 거둔 무리뉴 감독은, 싱글벙글한 얼굴로 선수들에게 공을 돌렸다.

어우, 눈부셔.

무리뉴 감독에 이어 내가 단상에 오르자 카메라 플래시가 미친 속도로 터졌다.

압니다, 알아요.

- 캄 노우에서 뛴 첫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기분이 어떤가?

“유서 깊은 경기장에서, 또 최대의 라이벌을 상대로 해트트릭이라니. 말해 뭐하겠는가. 정말 환상적이다. 그리고 팀이 승리를 거뒀기 때문에 기쁨이 두 배다.”

- 딱 3번의 슈팅으로 3골을 기록했다. 이런 엄청난 결정력의 비결이 뭔가?

“첫 골과 마지막 골은 패스가 워낙 훌륭했다. 케빈과 크리스는 세계 최고 수준의 킥력을 자랑하는 선수들이다. 그냥 점프를 하니 공이 눈앞에 딱 와 있었다. 두 번째 골은 상대 수비보다 나의 집중력이 좀 더 높았던 게 주효했다.”

이렇게 동료들 기도 살려주고 하는 거지.

호날두는 몰라도 더브라위너는 엄청 좋아하겠다.

- 오늘 해트트릭으로 리가 13경기에서 무려 23골이다. 2위 메시와의 차이도 10골까지 벌어졌다. 사실상 득점왕이 확정적인데?

“늘 말하지만 득점왕 같은 타이틀은 부차적인 문제다. 포인트는 정말 중요한 경기를 우리가 잡아냈다는 것, 그래서 승점 차가 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직 시즌은 절반이 훌쩍 넘게 남아 있다. 우승을 위해 달리다 보면 득점왕도 따라오지 않을까?”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흠, 고민이다.

그냥 좋게좋게 넘어갈지, 아니면 콱 들이받을지.

분란을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영 거슬리네...

에라 모르겠다.

“아까 존경하는 사비 선수가 축구는 결과만으로 이야기할 수 없다고 했다. 뭐, 선수 발전이 중요한 유소년 클럽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우리는 프로다. 그것도 엄청나게 많은 연봉을 받는 선수들이다. 팬들이 비싼 돈을 치르고 경기장을 찾는 이유는 ‘점유율 쇼’가 아닌 ‘승리’를 보고 싶어서라고 생각한다. 경기를 지배했다고 자화자찬하기 전에, 패배에 대해 팬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 * *

- 와 ㅋㅋㅋ 개사이다 ㅋㅋㅋㅋㅋㅋ

- 사비 졸지에 아마추어행 ㅋㅋㅋㅋㅋㅋㅋ

- 제대로 한 방 먹었눜ㅋㅋㅋㅋㅋㅋㅋ

- 근데 좀 예의는 없었던 것 같지 않음??

- 예의는 무슨 얼어죽을 예의야 ㅋㅋ 맞는 말 했구만 뭐 ㅋㅋㅋ

- 사비 예전에 파뿌리한테 DNA 드립 쳤을 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는데 졸라 통쾌하네 ㅋㅋㅋ

- 레알 ㅋㅋ 솔직히 쳐발렸으면 아닥해야지 점유율 타령을 왜 함?

- 근데 솔직히 바르샤가 경기 지배한 건 맞잖아

- 여기 악성 꾸레 하나 추가요!!!

나의 작심 발언을 접한 한국 팬들의 반응은 대체로 ‘시원하다’는 것이었다.

팬만큼이나 안티도 많은 구단 중 하나가 바르셀로나.

그동안 악감정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 내게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바르셀로나 팬들은 분하긴 했지만 경기에서 졌기 때문에 크게 힘을 쓰지 못했고.

스페인 내에서의 반응은, 당연히 극과 극이었다.

우리 팀에 우호적인 언론은 나를 옹호하면서 사비의 발언을 비판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반대로 친 바르셀로나 쪽 기자들은 나에게 ‘오만하고 무례하다’는 표현을 쓰며 마구 까댔다.

뭐, 억울하면 이겼어야지.

지고 나서 부들대는 모습은 그리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

난적 바르셀로나를 원정에서 꺾은 우리 팀의 앞길에는 거칠 것이 없었다.

리가, 코파, 챔스를 가리지 않고 승리, 또 승리.

밀란전 패배 이후 파죽의 14연승을 이어갔다.

그리고 새해가 밝았다.

* * *

차에서 내리기 전에, 복장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점검했다.

주머니에 펜이 제대로 꽂혀 있는지도.

“감사합니다.”

기사님에게 인사를 드리는 타이밍에 맞게 경호원들이 문을 열어젖혔다.

“줭붹깡이다!”

누군가의 외침을 시작으로 기다리던 팬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 꽂혔다.

“너무 멋있어요!”

“팬이에요!”

“위대한 머리!”

내 이름이 마킹된 유니폼, 내가 표지모델로 나온 잡지, 내 시그니처 축구화까지.

그냥 백지뿐만 아니라 온갖 물건들이 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거 주최 측에서 펜까지 준비해준 이유가 있었구만.

진입로가 그렇게 길진 않았는데, 사인하느라 입장이 한참 걸렸다.

“끼야아아아아아악!”

나와 악수를 나눈 여성팬 한 명이 자지러지게 비명을 질렀다.

오늘의 날짜는 2011년 1월 10일.

내가 있는 장소는 스위스 취리히에 위치한 콩그레스 하우스였다.

약 1년 2개월 만에 다시 찾은 이곳에는, 내가 2009 피파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던 추억이 서려 있었다.

여기 온 이유는, 피파 발롱도르 수상식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백강!”

“다들 오랜만이야.”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인테르의 옛 동료 3인방, 스네이더-마이콘-루시우가 나를 발견하곤 반색했다.

“오늘 다들 멋진걸? 상 받으러 와서 그런가?”

이 3명은 올해의 월드 베스트 11로 선정된 멤버들이었다.

“제일 큰 상은 네가 받을 예정이잖아.”

마이콘이 씩 웃으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에이, 그건 아직 모르는 거지.”

내가 손을 내젓자 루시우도 한마디 했다.

“이렇게 겸손한 친구가 사비를 그렇게 대차게 깠단 말이야?”

흠, 그게 또 그렇게 되나?

“통쾌하고 좋았어.”

스네이더가 내 칭찬을 하다니.

흔치 않은 일인데.

이거 혹시...

“웨슬리, 혹시 발롱도르 후보에 못 들어서 사비한테 악감정이라도 있는 거야?”

“흥, 그런 거 아냐.”

입은 아니라곤 하지만 얼굴은 솔직했다.

피파 발롱도르 최종 후보 3인은 나와 메시, 그리고 사비.

사실상 수상 확률이 99% 이상인 나는 논외로 하고, ‘메시>스네이더’, ‘사비>스네이더’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았다.

세 명을 비교해 보면,

클럽 성적 : 스네이더>메시=사비

국가대표 성적 : 사비>스네이더>메시

스탯 : 메시>스네이더=사비

위와 같이 정리해볼 수 있었다.

클럽에서야 트레블을 달성한 스네이더가 우위.

국대는 월드컵을 먹었으니 사비가 1등.

스탯은 당연히 메시.

가중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오더라도 전혀 이상할 것은 없었다.

그래서 스네이더의 옛 스승인 무리뉴 감독은, 최종 후보가 발표되자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

“감독님!”

양반은 못 되시네.

무리뉴 감독을 발견한 스네이더가 먼저 다가가서 살갑게 인사를 건넸다.

원래 저렇게 친했던 건지, 자신 편을 들어준 게 고마워서 그러는 건지 헷갈린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진행 요원이 입장을 재촉했다.

뭐, 어차피 밤은 기니까.

밀린 수다는 나중에 떨도록 하자.

* * *

“다른 곳에 앉으면 안 되겠죠?”

“네, 안 됩니다.”

거 단호하시네.

이럴 줄 알았으면 인터뷰를 좀 조심스럽게 할걸.

자리 배치가 최악이다.

내가 센터에, 양옆으로 메시와 사비가 앉았다.

오늘 시상식 예정이 거의 한 시간 남짓인 걸로 아는데, 정말 불편하고 괴롭겠다.

사비도 마찬가지인지 내 쪽으로 시선을 안 두려고 노력하는 중.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회자가 세상 힘찬 목소리로 진행을 시작했다.

“전 세계의 축구팬들이 기다리던 바로 그날이 왔습니다. 최고 권위의 축구상, ‘피파 올해의 선수’와 ‘발롱도르’가 통합되어 ‘피파 발롱도르’가 된 첫해, 그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작년엔 초대 푸스카스상을 받았었는데, 나는 ‘최초의 OO’와 궁합이 좋은 것 같다.

“자, 먼저 오늘 밤의 주인공이 될 피파 발롱도르 최종 후보 3인의 얼굴을 확인하시죠!”

무대 왼쪽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 공을 열심히 리프팅하는 세 사람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188cm인데 나머지 두 사람은 키가 작아서 구도가 꼭 ‘山’자를 닮았다.

“자, 다음은 올해의 베스트 일레븐을 발표하겠습니다. 이 특별한 명단을 공개하실 분을 모시죠. ‘스트라이커의 교본’ 마르코 반 바스텐 씨입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 속에 발롱도르 3회에 빛나는 전설 반 바스텐이 등장했다.

포츠머스 시절 스트라이커로 포지션 변경하고 반 바스텐 영상을 참 많이 봤었더랬다.

따라 할 수 있는 플레이는 거의 없었지만 말이다.

“다들 반갑습니다. 축구계의 거물들이 이렇게 한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니, 거물의 한 사람으로서 참 반갑군요.”

좌중에서 웃음이 터졌다.

골 감각만 뛰어난 줄 알았더니 유머 감각도 제법이시군요, 선배님.

“시간 끌지 않고 바로 발표하죠. 먼저 이케르 카시야스!”

카시야스 주장이 보무도 당당하게 무대 위로 올라갔다.

“카를레스 푸욜!”

레알 마드리의 주장에 이어 호명된 인물은 바르셀로나의 주장이었다.

뭔가 상징적인 장면.

이후로도 8명의 이름이 더 불렸다.

남은 자리는 하나.

“이 이름을 다들 기다렸을 겁니다. 정백강!”

GK : 카시야스

DF : 푸욜, 피케, 루시우, 마이콘

MF : 이니에스타, 사비, 스네이더

FW : 호날두, 메시, 정백강

2010년도를 대표하는 11명의 선수들이 나란히 서서 트로피를 든 채 기념촬영을 했다.

두 번째라 그런지 처음만큼 벅차진 않지만 그래도 기쁜 것만은 분명하다.

이후에 페어플레이상과 올해의 여자감독상 수상이 진행되었다.

다음은 올해의 남자감독상 부문.

치열한 걸로 하면 오히려 이쪽이 메인일 수도 있었다.

위대한 트레블을 달성한 무리뉴냐, 월드컵 우승의 비센테 델 보스케냐.

나머지 한 명인 과르디올라가 쩌리로 보일 정도였으니...

“주제 무리뉴!”

투표단의 선택은 무리뉴 감독이었다.

그의 수상 소감은 과연...

“감사합니다. 뛰어난 경쟁자들이 있었기에 더욱 가치 있는 상입니다. 델 보스케와 과르디올라 두 분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카메라가 언급된 두 사람을 번갈아 잡았다.

“다들 아시다시피 저는 지금 레알 마드리드 감독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서만큼은 인테르의 구성원으로서 이 상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웨슬리, 루시우, 마이콘, 백강, 그리고 이 자리에 오지 못한 선수들에게 이 영광을 돌리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크...

정말 멋진 수상 소감이다.

아무래도 미리 준비하신 것 같은데...

그런데 카시야스 주장 입장에선 좀 서운할지도 모르겠다.

작년에 내가 받았던 푸스카스상은 바이에른 뮌헨의 하밋 알틴톱에게 돌아갔다.

피파 올해의 여자선수상은 작년과 마찬가지로 마르타의 차지.

2006년부터 독식 중이니 5년 연속이다.

축하드려요, 마르타 씨.

저도 5년 연속 발롱 한 번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이제 정말 마지막 순서입니다. 2010년 한 해를 빛낸 최고의 선수, 초대 피파 발롱도르 수상자를 발표하겠습니다.”

제프 블라터 피파 회장이 수상자 이름이 든 봉투를 조심스럽게 열었다.

그리고 의미심장한 미소.

“오우, 이 선수가 받을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회장님, 장난치지 마시고 빨리요.

“또 이 이름을 부르게 되었군요. 축하합니다. 정백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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