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뚝배기로 발롱도르-129화 (130/176)

129화

[레알 마드리드, 샬케 꺾고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 8년 만의 쾌거]

[결국은 정백강... 이번 시즌 챔스 2호 해트트릭]

[벤제마 멀티골 맹활약, 호날두 공백은 없었다]

‘2차전이 끝나면 알아서 닥치게 될 것’이라던 무리뉴 감독의 예언은 그대로 현실이 되었다.

언론들은 곧바로 ‘우디르급’ 태세 전환에 들어갔다.

언제 비난했나 싶게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정백강과 무리뉴에 대한 찬양 기사들.

호날두를 기용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쏙 들어갔다.

명단 제외에 대한 분노로 아예 샬케에 오지 않은 호날두는, 아마 마드리드에서 경기를 지켜보다가 리모콘을 집어던졌을 것이다.

우리와 함께 빅 이어를 두고 다투게 될 나머지 세 팀도 결정되었다.

확정된 4강 대진은 아래와 같았다.

레알 마드리드 VS 바르셀로나

바이에른 뮌헨 VS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신선한 돌풍을 일으켰던 샤흐타르는 바르셀로나의 티키타카에 숨도 못 쉰 채 농락당하며 합산 스코어 1-6으로 완패했다.

비교적 잘 싸운 토트넘도 끝내 뮌헨의 관록을 넘지 못한 채 2-4로 패하며 짐을 쌋다.

가장 관심을 모았던 매치업인 맨유와 첼시의 대결에서는 의외로 맨유가 2연승을 거두며 3-1로 승리했다.

특히 2-1로 승리한 2차전에서는 박지승 선배가 멋진 하프발리슛으로 결승골을 기록하며 한국팬들에게 기쁨을 선사했다.

결국 첼시는 2007-2008 챔스 결승 패배를 갚아주는 데 실패.

이번 4강 대진에 대해 축구팬들은 ‘올팀올’, 올라올 팀이 올라왔다는 반응을 보였다.

세리에의 몰락으로 새롭게 3대 리그로 떠오른 스페인, 잉글랜드, 독일의 최강팀들이 전부 살아남아 진검승부를 펼치게 됐으니 말이다.

4월 16일 라리가 32라운드

4월 20일 코파 델 레이 결승전

4월 27일 챔스 4강 1차전

5월 3일 챔스 4강 2차전

진지하게 트레블을 노리고 있는 스페인의 두 거인이 앞으로 맞붙어야 할 경기 목록이었다.

말 그대로 미친 일정.

이쯤 되면 피케 얼굴에 점이 몇 개나 있는지 외울 수도 있을 듯하다.

유럽 최정상급 팀이 자국의 라이벌일 때 생기는 비극이었다.

* * *

“캄 노우에서의 패배는 뼈아팠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죽음의 4연전’의 전초전 격인 라리가 32라운드를 앞두고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 밝힌 각오였다.

현재 라리가 순위표는 아래와 같았다.

1위 레알 마드리드 29승 2무(승점 89점)

2위 바르셀로나 27승 3무 1패(승점 84점)

3위 발렌시아 18승 8무 5패(승점 62점)

경기가 꽤 남아 있었지만, 이미 우승 후보는 두 팀으로 굳어진 상황.

바르셀로나의 1패는 나의 해트트릭으로 인해 홈에서 2-3으로 패했던 엘클라시코였다.

거의 승점 100점 페이스로 달리는 중인데 2등이라니.

바르셀로나 입장에서는 좀 억울할 만도 했다.

오히려 발렌시아의 만족도가 가장 높을지도?

“승점으로 봤을 때 우리가 유리한 것은 맞다. 만약에 지더라도 여전히 우리가 선두니까. 그러나 리가 우승 경쟁을 오래 끌 생각은 없다. 반드시 승리한 뒤 더 중요한 다음 일정에 집중할 생각이다.”

무리뉴 감독 역시 홈팬들을 위해 선물을 할 준비를 마쳤다.

그렇게 격돌한 엘클라시코 제1차전은 예상대로 엄청나게 화끈했다.

기선을 제압한 건 원정팀 바르셀로나였다.

전반 22분, 사비의 스루패스를 받은 이니에스타가 우리 수비라인을 붕괴시키며 20m 거리에서 프리킥을 얻어냈고, 메시가 절묘하게 사각을 찌른 감아차기로 선제골의 주인공이 되었다.

카시야스 주장이 한껏 몸을 날렸지만 코스가 너무나도 완벽했다.

메시의 리가 34호 골.

누가 뭐래도 메시는 메시였다.

그러나 리드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전반 종료 직전 마지막으로 시도한 코너킥 기회에서 부주장 라모스가 헤더로 동점골을 터뜨린 것이다.

호날두가 없긴 했지만, 내가 어그로를 엄청나게 끌고 라모스가 마무리하는 우리의 세트피스는 여전히 강력했다.

1-1 동점 상황에서 맞은 후반전.

비교적 잠잠하던 정백강이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가 경기를 뒤집는 데는 딱 10분이면 충분했다.

후반 시작 4분 만에 벤제마의 크로스를 골문 오른쪽 상단에 통쾌하게 꽂아 넣으며 역전.

이어서 9분에는 아자르의 어시스트를 받아 챔스 8강에서 써먹었던 ‘알까기 슛’을 성공시켰다.

노이어가 못 막는 건, 역시나 발데스도 막지 못했다.

열과 성을 다해 나를 상대하던 피케는 압도적인 힘의 차이에 절망을 느끼며 한숨을 쉬었다.

굴욕을 당한 발데스도 멘탈이 나간 듯 멍한 표정을 지었고.

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를 가득 메운 관중들은 ‘Gran Cabeza(위대한 머리)’를 연호하며 세계 최고 선수가 자신의 응원팀에 있다는 사실을 만끽했다.

3-1까지 벌어지면서 쉽게 승리하나 했는데, 바로 이 시점부터 경기가 롤러코스터를 타기 시작했다.

확실히 라이벌은 라이벌.

엘클라시코에서 전패를 당할 순 없다는 바르셀로나 녀석들의 독기가 매섭게 뿜어져 나왔다.

그 독기의 결정체가 바로 후반 27분에 터진 푸욜의 추격골.

골문 앞 혼전 상황에서 부상의 위험을 무릅쓰고 몸을 날린 다이빙 헤더로 우리 골망을 꿰뚫었다.

푸욜은 실제로 페페의 축구화에 이마를 긁히면서 상처를 입었고, 출혈 때문에 남은 시간은 붕대를 감고 플레이하게 되었다.

주장이 흘린 뜨거운 피는 카탈루냐 전사들을 각성시켰다.

이후의 경기 내용은 심히 일방적.

바르셀로나의 패싱 게임에 철저히 농락당하며 정신 못 차리고 두들겨 맞았다.

피날레를 장식한 건 추가시간에 터진 ‘또 메시’의 버저비터.

아이러니컬하게도 과르디올라 감독이 가장 지양하는 공격 방식 중 하나인 중거리포가 천금 같은 동점골이 되었다.

이로써 골 폭죽이 터진 엘클 1라운드는 3-3 무승부로 마무리.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명승부를 연출하며 앞으로 벌어질 경기들을 더욱 기대하게 만들었다.

나와 메시는 나란히 두 골을 기록하며 다시 한번 양 팀 부동의 에이스임을 확인했고 말이다.

* * *

[호날두, 이번 시즌 끝으로 팀 떠난다]

[무리뉴와의 불화가 이적 결심 원인]

[“마드리드에서의 생활 끔찍하다” 호날두 고백]

호날두의 마지막 복수(?)는 코파 델 레이 결승 직전에 대외적으로 이적 결심을 밝힌 것이었다.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게 호날두의 이적이었지만, 굳이 중요한 승부를 앞두고 언론 인터뷰를 자청한 건 의도가 있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뭐, 안 됐다는 마음도 없는 건 아니지만, 떠나주는 게 서로에게 좋다는 사실만큼은 인정해야지.

호날두가 좀 더 둥근 성격이었다면, 그래서 나와 함께 오랫동안 공격진을 이끌었다면 아마 축구 역사를 새로 쓸 만한 콤비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사라는 게 어디 마음대로 되는 일이던가.

영화판에도 티켓 파워와 상관없이 ‘주연밖에 못 하는’ 배우들이 있는 것처럼, 호날두도 2인자로는 도저히 만족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인테르에서의 즐라탄도 마찬가지 케이스였다.

어찌 보면 두 선수 다 정백강이라는 ‘생태계 파괴종’의 피해자라고 부를 수 있었다.

한때 에이스였던 녀석의 이탈로 어수선해진 팀 분위기를 잡는 데는 카시야스 주장이 큰 역할을 했다.

지난번 모두를 초대했던 식사 자리 이후로 주장은 확실히 변했다.

원래 약간 답답해 보일 정도로 말을 아끼던 사람이었는데, 보다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물론 사람의 성격이라는 게 금방 바뀌는 건 아니었지만, 부주장인 라모스는 할 말은 꼭 하고 보는 스타일이라 오히려 주장과의 궁합이 잘 맞았다.

시끄러웠던 상황들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서 나도 슬슬 팀에 정을 붙여가는 중이었다.

인테르에서는 어린 나이와 짧은 경력 때문에 선배들에게 귀여움을 받는 편이었다면, 현재의 나는 명실상부한 세계 넘버원으로서 리더십을 발휘하는 위치.

더브라위너, 아자르의 ‘벨기에 듀오’를 비롯하여 벤제마, 마르셀루, 나초 등 어린 선수들은 특히 나를 많이 따랐다.

나이 차가 크게 나지 않으면서 친절한 데다가 축구까지 잘하니.

‘좋은 선배의 표본’이라고 해도 모자람이 없었다.

다만 부작용은...

“이 양말 누구 거야?”

“엇! 저요!”(아자르)

“이 티셔츠도 내 거 아닌데?”

“그건 내 거, 미안!”(벤제마)

“...”

“아... 제 팬티네요. 죄송합니다.”

“나초야, 대체 여기서 속옷을 왜 벗는 거야?”

“노팬티가 건강에 좋다고 하더라고요.”

“...”

하도 같이 어울리는 시간이 길다 보니 어째 집안이 너저분해진다는 것이었다.

“근데 왜 항상 우리 집에서 모이는 거야?”

“형 집이 제일 크니까요. 연봉 1등! 집도 1등!”

더브라위너 녀석, 치사하게 팩트로 승부하다니.

다음에 청소해주시는 분이 오면 팁을 아주 두둑하게 드려야겠다.

* * *

‘리가의 왕 레알 마드리드, 코파의 왕 바르셀로나.’

스페인 축구 역사를 설명하는 문구 중 하나였다.

피파가 선정한 ‘20세기 최고의 클럽’인 우리 팀이었지만 이상하게 코파 델 레이에서만큼은 명성에 걸맞는 실적을 거두지 못했었다.

최다 우승팀인 바르셀로나가 25번의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동안, 우리는 17번 우승에 그쳤다.

이 기록은 심지어 2등도 아니었다.

우리와 바르셀로나 사이에 23회 우승의 아틀레틱 빌바오가 있었기 때문이다.

은근히 자존심 상하는 부분.

심지어 마지막 우승은 1993년이었으니...

그동안 얼마나 이 대회와 인연이 없었는지 바로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무리뉴 감독 부임 이후 첫 결승전.

워낙 트로피 수집욕이 어마어마한 사람이라 뭔가 특별한 걸 들고나오지 않을까 싶었는데, 과연 그랬다.

이번 시즌 내내 센터백으로만 뛰었던 페페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전격 기용한 것이다.

앞선 두 번의 엘클라시코에서는 아끼고 아끼다가 내놓은 필살기였다.

포르투갈 국가대표팀에서는 페페를 수미로 쓰는 경우가 왕왕 있었지만, 우리 팀에서는 알론소가 버티고 있으니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살기를 쓴 이유는 명백했다.

이번 시즌 바르셀로나의 핵심 전술인 ‘폴스 나인(가짜 9번)’에 대한 카운터였다.

바르셀로나식 폴스 나인의 핵심은 중원에서 최전방까지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골도 넣고 스루패스도 찌르는 메시의 존재.

팀 최고의 ‘지우개’인 페페를 센터백보다 운신의 폭이 넓은 수미로 배치함으로써, 메시를 완전히 지워버리겠다는 게 무리뉴 감독의 의도였다.

결승 대비 맞춤 전술을 들고나온 무리뉴 감독과 달리, 과르디올라 감독의 라인업은 평소와 똑같았다.

딱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골키퍼 자리에 발데스 대신 백업인 호세 마누엘 핀토를 넣었다는 것.

‘컵 대회에서는 무조건 후보 골키퍼를 기용한다’는 원칙을 결승전, 그것도 엘클라시코에서도 지킨 과르디올라 감독이었다.

소신을 지키는 건 좋은데, 과연 결과는 어떨지.

삑-

발렌시아의 홈구장인 에스타디오 데 메스타야에서 109번째 코파 델 레이 결승전의 막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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