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뚝배기로 발롱도르-135화 (136/176)

135화

[레알 마드리드, 2010-2011 라리가 우승!]

[라리가·코파 델 레이 우승으로 더블 확정... 트레블까지 노린다]

끝까지 지독하게 따라붙던 바르셀로나가 드디어 나가떨어진 건 리가 37라운드였다.

36라운드까지의 성적은,

레알 마드리드 : 33승 4무(승점 103점)

바르셀로나 : 32승 4무 1패(승점 100점).

승점이 동률이어도 라리가의 ‘승자승 우선’ 규정에 따라 우리 팀이 우승하는 상황이었는데, 고맙게도 바르셀로나가 알아서 미끄러져 주었다.

기쁜 사고(?)를 친 건 우리 팀 다음 가는 바르셀로나의 라이벌 에스파뇰.

에스파뇰은 무려 캄 노우 원정에서 1-1 무승부를 수확하며 길었던 우승 레이스의 종언을 알렸다.

2007-2008 시즌 이후 3년 만에 찾아온 라리가 트로피였다.

우승 확정 후 2군 선수들이 출전한 38라운드에서 알메리아와 비기며, 최종 성적은 33승 5무로 마무리.

무지막지한 기록들을 써 내려간 시즌이었다.

굵직굵직한 것들만 요약해도 아래와 같았다.

1. 1931-1932 시즌 이후 79년 만의 무패우승

2. 단일 시즌 최다 승점(104점)

3. 단일 시즌 최다승(33승)

4. 최다 연승(27연승)

레알 마드리드의 역사적인 시즌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역시 에이스인 나, 정백강의 활약을 빼놓을 수 없었다.

라리가 : 31경기 51득점 26어시스트

챔피언스리그 : 11경기 17득점 6어시스트

코파 델 레이 : 9경기 11득점 10어시스트

전체 : 51경기 79득점 42어시스트.

무리뉴 감독의 철저한 체력 안배와, 엄마의 입원으로 인한 한국행 등으로 결장한 경기가 꽤 많음에도 불구하고 비정상적인 숫자들을 쌓아 올렸다.

충격, 경악, 공포, 환상, 광란, 압도.

그 어떤 수식어를 갖다 붙여도 부족해 보이는 퍼포먼스였다.

‘생태계 파괴자’ 정백강의 최대 피해자는 메시.

리가 33경기에서 39골을 넣고도 12골이라는 큰 차이로 득점왕을 놓치는 황당한 사태를 겪어야만 했다.

그나마 경쟁자라 여겨졌던 메시를 확실하게 누르며 축구계를 평정해 버린 내게 거물들의 찬사가 쏟아졌다.

“우리는 정백강이란 역사 그 자체를 목격하고 있다.”(펠레)

“정백강이라면 아마 나를 넘을 수도 있겠지. 어쩌면 이미 넘었을지도 모르고.”(알프레도 디스테파노)

“뮌헨에 가장 데려오고 싶은 선수가 누구냐고? 무슨 그런 바보 같은 질문을 하는가. 당연히 정백강이지.”(프란츠 베켄바워)

“주제 무리뉴 감독이 부임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라리가 우승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정백강까지 영입됐을 때는 주변에 이렇게 말하고 다녔다. ‘어쩌면 이번 시즌, 트레블을 할지도 몰라.’”(지네딘 지단)

개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건 네덜란드, 아약스, 그리고 바르셀로나의 초 슈퍼 레전드인 요한 크루이프의 말이었다.

“정백강? 그는 명백히 바르셀로나의 축구 철학에 반하는 선수다. 아마 내게 권한과 충분한 돈이 주어지더라도 영입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레알 마드리드에서 뛴다는 사실은 날 괴롭게 만든다.”

* * *

2011년 5월 28일.

잉글랜드 축구의 성지인 웸블리 스타디움은 엄청난 흥분에 휩싸여 있었다.

팬들뿐만 아니라 선수도 마찬가지였다.

“여기까지 오다니. 정말 믿을 수가 없네요.”

‘웸블리 첫경험’을 앞둔 아자르부터 해서,

“그래, 이제 우승할 때도 됐지.”

아직 빅 이어를 들어보지 못한 라모스,

“씨발, 조금 쫄리네?”

긴장을 욕으로 승화하는 페페까지.

다들 각자의 방식으로 이번 시즌 최고의 경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반면 나와 카시야스 주장, 알론소 등 ‘우승 유경험자’들은 상대적으로 여유로워 보였다.

“백강, 지금 한국은 완전 뒤집어졌겠는데?”

주장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마 그럴 거예요. 이런 일이 언제 또 생기겠어요.”

한국 팬들의 기도가 하늘에 닿은 것일까.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박지승 선배를 선발 명단에 포함시켰다.

포지션은 왼쪽 윙어.

공격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아자르를 제어하기 위한 선택으로 보였다.

한편 결승전 매치업에 대해서 세간의 대체적인 평가는 우리 쪽으로 기울었다.

비록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이번 시즌 EPL을 제패하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보여준 경기력은 예전의 그 강력하던 맨유와 비교하면 모자람이 느껴졌다.

흔들리는 와중에서도 꾸역꾸역 질 경기는 비기고, 비길 경기는 이겨 가면서 리그 우승과 챔스 결승 진출을 이뤄낸 건, 상당 부분 퍼거슨 감독의 사기적인 능력에 의존한 바가 컸다.

현시점에서 세계 축구계의 양강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와 바르셀로나를 토너먼트 중간에 만나지 않았다는 행운도 있었고 말이다.

저명한 축구 평론가 한 명은 우리의 승리를 점치며 이렇게까지 말했을 정도였다.

“레알 마드리드가 빅 이어를 들 확률이 99%다. 결승전 장소가 잉글랜드라는 것, 오직 이것만이 맨유가 기댈 수 있는 1%의 가능성이다.”

도박사들의 예상 역시 압도적으로 우리 쪽 손을 들어주는 상황.

그러나 무리뉴 감독은 이런 주변 분위기를 철저히 경계했다.

“다 바보 같은 이야기야. 누가 뭐래도 맨유는 ‘위닝 스피릿(Winning Spirit)’을 가지고 있는 팀이다. 방심은 절대 금물이야. 우리가 오히려 언더독(Underdog)이라는 간절함을 가지고 경기에 임하길 바란다.”

선수들 앞에서 열변을 토하는 무리뉴 감독의 얼굴은 평소보다 상기되어 있었다.

무리뉴와 퍼거슨은 지금까지 각각 두 번의 빅 이어를 들어올린 상태.

오늘 이기는 사람은 1970년대 리버풀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전설적인 감독 밥 페이즐리와 함께 3회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쌓게 된다.

최고 권위의 대회에서 최다 우승 기록의 주인공이 된다는 건 감독으로서 대단한 영예.

‘스페셜 원’을 자임하는 무리뉴 감독에게 굉장히 욕심나는 타이틀일 수밖에 없었다.

“이 승부는 누가 더 탐욕스럽게 승리를 갈구하냐에 따라 결정된다. 가진 모든 걸 불태워버리겠다는 각오로 달려들어라. 알겠나?”

“네! 감독님!”

* * *

필드 위에서 오프닝 공연이 벌어지는 동안, 양 팀 선수들이 길고 좁은 통로에 나란히 섰다.

“선배님, 오랜만이에요.”

연락이야 종종 하지만 지승 선배의 얼굴을 보는 건 남아공 월드컵 이후 처음이었다.

“그러게. 컨디션은 어때?”

“아주 좋습니다.”

“그것 참 불행한 소식이네.”

농담을 던지면서 특유의 살인미소를 뽐내는 지승 선배.

웃고는 있지만 긴장한 티가 역력했다.

2007-2008 시즌 맨유가 첼시를 꺾고 빅 이어를 들어 올렸을 때, 지승 선배는 토너먼트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고도 결승 명단 제외라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그런 기억이 있으니 오늘 경기에 대한 간절함이 더욱 크겠지.

“우리, 잘하자. 많은 분들이 보고 계시니까.”

“넵, 파이팅해요.”

자, 개인적 감정은 딱 여기까지.

잠시 후에는 피 터지게 싸워야 할 상대였다.

“입장하실게요!”

누가 잉글랜드 아니랄까 봐, 왕실의 근위병 복장을 한 장정 네 명이 앞장서서 트로피를 옮겼다.

그 뒤를 따라 들어서는 22명의 전사들과 에스코트 키즈.

Glory! glory, Man United-

As the Reds Go Marching On! On! On!

맨체스터에서 런던까지 한달음에 달려온 팬들이 우렁찬 목소리로 응원가를 열창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역시 원정 경기를 뛰는 느낌이다.

그래도 뭐, 이 정도 핸디캡은 있어야지 더 재미있지 않겠는가.

살짝 기가 죽은 듯한 더브라위너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너무 얼지 마, 케빈.”

“네? 넵!”

반응을 보아하니 한 15분은 헤맬 각이다.

자, 핸디캡 하나 추가요.

“페어플레이 부탁합니다.”

주심을 맡은 헝가리 출신의 커셔이 빅토르 심판이 양 팀 주장인 카시야스와 네마냐 비디치를 불러 당부했다.

큰 원한 관계가 없는 양 팀이지만, 워낙 중요한 경기이기 때문에 선수들이 감정적으로 고무되기가 쉬웠다.

특히 라모스와 페페는 중요 체크다.

까딱하다 흥분해서 퇴장이라도 당하면...

어우, 생각도 하기 싫다.

이런 불길한 상상은 고이 넣어두자.

삑-

경쾌한 휘슬과 함께 홈팀(?) 맨유의 선축으로 경기가 시작되었다.

우와아아아아-

방금 시작했는데 마치 골이라도 넣은 것처럼 고함을 질러대는 관중들.

그 기운을 받은 마이클 캐릭이, 뒤로 빼준 공을 잡자마자 최전방으로 한 번에 연결되는 로빙 패스를 시도했다.

퍼거슨 감독이 사전에 지시해둔 듯한 패턴이었다.

우리 수비진 뒷공간으로 침투해 들어간 치차리토가 왼발을 번쩍 들어 공을 트래핑하면서, 함성은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부심의 깃발은 이미 올라가 있었다.

이번 시즌 오프사이드를 하도 많이 당해서 맨유 팬들의 속을 썩인 선수가 치차리토였다.

오늘도 단 1분 만에 벌써 한 개 적립.

라모스가 프리킥을 짧게 연결하면서 경기가 재개되었다.

“다들 밀어붙여! 붙어 줘!”

맨유와 불륜 양쪽에서 살아 있는 전설인 라이언 긱스의 호통과 함께 맨유의 거센 전방 압박이 시작되었다.

이게 퍼거슨 감독이 준비한 필살기인가.

거의 위르겐 클롭의 도르트문트를 연상시키는 거칠고도 조직적인 압박.

전력이 열세일 경우 내려앉아서 수비하는 게 보통의 전략이었지만, 노련한 퍼거슨 감독은 그래 봐야 소용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페널티박스를 아무리 단단히 굳혀도 내 머리를 보고 띄워주면 그만이니까.

제아무리 정백강이라도 볼이 와야 힘을 쓸 수 있는 법.

아예 볼 투입이 제대로 안 되도록 전방부터 압박을 지시한 퍼거슨 감독의 판단은 옳았다.

살짝 당황한 우리 중원은 전진 패스가 여의치 않아 몇 번 볼을 돌렸다.

그러자 바로 야유가 나왔다.

우우- 우우우-

“어엇!”

으이구, 어째 불안불안하더라니.

결승전이라는 부담감과 거센 야유 때문에 심리적으로 확 위축된 더브라위너가 패스미스를 범했다.

아르벨로아 쪽으로 준다는 게 힘이 너무 들어가는 바람에 그대로 터치라인을 벗어났다.

근처에 있던 지승 선배가 먼저 공을 집어 들었고, 레프트백 파트리스 에브라가 스로인을 하기 위해 천천히 뛰어오고 있는 상황.

“안돼!”

찰나였다.

당연히 에브라가 던질 줄 알고 방심하고 있던 우리 4백 라인의 뒤쪽으로 치차리토의 검은 그림자가 날아들었다.

“헤이! 지(Ji)!”

에브라를 기다리던 지승 선배가 그 소리에 반응하며 기습적인 롱 스로인을 날렸다.

오프사이드 대마왕인 치차리토지만, 스로인 상황에서는 오프사이드 룰이 적용되지 않았다.

너무나도 어이없게 허용한 일대일 찬스.

터엉-

치차리토가 공 잡자마자 다이렉트로 때린 오른발 슈팅이 카시야스 주장의 손끝에 맞은 후, 맥없이 또르르 굴러가서 골라인을 넘었다.

과정도, 그리고 마무리도 ‘멋’이라고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골.

그러나 이것 또한 같은 1점이었다.

“으아아아아아!”

치차리토가 손으로 어시스트를 한 지승 선배에게 달려가 격하게 끌어안았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전반 6분 만에 터진 맨유의 선제골.

“이런 씨발 개 같은!”

페페가 욕지거리를 내뱉었고, 카시야스 주장은 허리에 양손을 짚은 채 허탈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문득 경기 시작 전에 무리뉴 감독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 맨유는 위닝 스피릿을 가지고 있는 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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