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뚝배기로 발롱도르-139화 (140/176)

139화

“혀엉~ 보고 싶었어요.”

“못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오버는.”

“헤헷. 그래도 반갑다구요. 형은 저 안 보고 싶었어요?”

“그래, 보고 싶었다, 됐어?”

아자르의 깨방정을 보니 팀에 합류했다는 실감이 났다.

이곳은 미국 로스엔젤레스에 마련된 트레이닝 캠프.

이번 시즌 우리 팀의 오프시즌 일정은 굉장히 빡빡했다.

일단 미국 찍고 유럽에 가서 독일이랑 잉글랜드 방문했다가, 중국 투어 후 스페인으로 돌아가는, 매우 거지 같은 동선을 자랑했다.

하지만 우리는 프로 아니겠는가.

팬들이 기다리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간다.

팀을 떠난 누구처럼 ‘노쇼’ 같은 것도 없을 거고 말이다.

“진짜 대박인 것 같아요. 호날두 선배가 바르셀로나로 갈 줄이야…”

더브라위너는 인사를 나누자마자 호날두 이야기부터 꺼냈다.

이 초특급 이적은 팬이나 언론뿐 아니라 선수들 사이에서도 큰 화제였다.

떠난 선수가 호날두라는 것만 해도 엄청난 가십거리인데, 게다가 거래 상대가 바르셀로나였으니 그 파장은 말할 것도 없었다.

아울러 우리가 영입할 선수에 대한 추측도 난무했다.

최대 라이벌이 호날두에 파브레가스까지 영입하며 미친 듯한 전력 보강을 했으니, 우리도 뭔가 액션을 취해야만 하는 상황.

현재 전력도 절대 약하다고 볼 순 없었지만, 숙명의 라이벌 바르셀로나를 상대하려면 스쿼드의 뎁스(Depth)를 두텁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무리뉴 감독은 일단 바이에른 뮌헨에서 자유계약으로 풀린 터키의 축구 영웅 하밋 알틴톱에게 접촉,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알틴톱은 미드필더 전 지역에, 때에 따라서는 풀백까지 커버할 수 있는 자원.

한마디로 ‘만능 땜빵’이 가능해서, 길고 긴 시즌의 로테이션 운영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친구였다.

무엇보다 이적료 없이 데려왔다는 게 개꿀.

부상이 잦은 선수라는 게 단점이었지만, 건강하기까지 했으면 뮌헨이 진작에 재계약을 제의했을 것이다.

호날두가 마지막으로 남겨주고 간 선물, ‘실탄 1억 유로’는 아직 통으로 남아 있었다.

매우 뜨거울 것으로 예상되는 우리 팀의 여름 이적시장은 이제 막 시작이었다.

* * *

똑똑-

“누구지?”

“정백강입니다. 부르셔서 왔습니다.”

“들어와.”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감독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그만 자리에 딱 굳어버렸다.

“오랜만이군, 백강.”

“아… 안녕하세요.”

아니, 여기서 지네딘 지단이 왜 나와?

지난 시즌까지 기술 고문 역할을 했던 지단은, 이번 시즌 ‘디렉터 오브 풋볼’, 한국식으로 하면 ‘사무총장’에 해당하는 자리에 정식 취임했다.

조금 유치하지만 직급으로만 따지면 무리뉴 감독보다 높고 페레즈 회장보단 낮은 정도?

올해 겨우 만 39세임을 감안하면 굉장히 파격적인 인사라고 할 수 있었다.

역대급 선수이자 팀의 레전드인 지단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페레즈 회장이 아무리 밀어붙였어도 잡음이 심하게 나왔을 것이다.

“앉지.”

“넵.”

무리뉴 감독도 한 카리스마 하지만, 나와 워낙 오랜 시간을 같이 했다 보니 많이 편해졌다.

그러나 지단은, 어우… 포스가 그냥…

무리뉴 감독이 불러서 아무 생각 없이 왔는데 매우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내 흔들리는 눈빛을 캐치했는지, 지단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무리뉴 감독님과 다음 시즌 구상에 대해 의견을 나누던 중이었네. 감독님이 자네 말도 들어보면 어떻겠냐고 하시더군. 자네만큼 보는 눈이 뛰어난 선수는 처음 본다고 말야.”

“하하하… 과찬이십니다. 감독님이 저를 좀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으시거든요.”

윗선(?)에게 신뢰를 받고 관계 형성을 잘 하는 건 물론 좋은 일이다.

그러나 나는 어디까지나 선수일 뿐.

프런트 일에 지나치게 개입한다는 소문이 나면 좋을 게 없었다.

“부담 가질 필요는 없네. 자네 의견은 그냥 참고자료로 쓸 테니까.”

축구계 거물들은 독심술이 패시브 스킬인가?

지단이 마치 내 마음을 읽은 듯 손사래를 쳤다.

“아… 네…”

그러나 지난 시즌 더브라위너는 내가 데려온 것이나 다름없었고, 아자르 영입 때도 스튜어트 다우닝이라는 가당찮은 후보를 탈락시키는 역할을 했었다.

참고하는 것치고는 너무 말하는 대로 이뤄지니 부담을 안 가질 수가 없다.

나의 얼어 있는 모습을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던 무리뉴 감독이 입을 열었다.

“그래도 지난번보단 사정이 훨씬 좋아. 어지간한 선수는 다 영입할 수 있는 자금이 있으니까. 일단 이것부터 한 번 의견을 들어보지. 백강, 현재 영입이 가장 급한 포지션이 어딜까?”

대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이다.

어디 보자…

공격진에는, 딱히 주전급 선수는 필요가 없다.

정백강-벤제마-아자르 정도면 충분히 유럽 정상급 3톱이다.

바르셀로나의 메시-호날두-비야와 비교하면 약간 밀릴 수도 있겠지만, 그건 걔네가 비정상적으로 강한 거고.

조금 부족한 건 내 힘으로 메우면 된다.

다음은 수비진.

라모스-페페의 센터백 라인은 그냥 ‘닥월클’이다.

마르셀루 역시 완전체 풀백으로 거듭나는 중이고…

굳이 클래스를 따진다면 아르벨로아가 좀 떨어지긴 하지만, 마르셀루가 워낙 화려하고 공격적인 플레이를 즐기기 때문에 공수 밸런스를 맞춰준다는 의미에서 확실한 장점이 있다.

라커룸에서는 보컬 리더 역할도 겸하고 있는 데다가 무리뉴 감독의 신임도 높다.

카시야스 주장은 뭐, 완전 전성기 같진 않지만 그래도 이케르 카시야스고.

그럼 뭐, 답 나왔네.

“A급 중앙 미드필더가 가장 시급하겠죠. 공격진과 수비진은 괜찮은 백업 정도만 채워 넣으면 될 것 같고요.”

무리뉴 감독이 조금은 음흉하게 웃어 보이며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케빈은 더 성장해야 하는 녀석입니다. 지난 시즌 괜찮은 활약을 하긴 했지만, 약점이 분명하죠. 킥력과 활동량에 비해 다른 능력이 많이 부족합니다. 특히 탈압박 같은 세밀한 플레이는 거의 쥐약이죠. 이번 시즌 우리에게 도전하는 팀들은 케빈의 약점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겁니다. 라스도 좋은 선수지만 솔직히 공격 재능에는 한계가 있고요. 중원 보강이 없다면 알론소에게 과부하가 걸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브라보!”

지단이 껄껄 웃으며 박수를 보냈다.

“감독님이 백강을 부르자고 한 이유가 있었군요. 백강, 우리도 비슷한 생각이라네.”

그러자 무리뉴 감독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방금 정도 의견은 누구나 낼 수 있는 것이죠. 백강의 진짜 능력은 선수 보는 눈에 있어요.”

저기 감독님.

그게 사실은 딱히 보는 눈이 있는 게 아니라 제가 한 번 죽었었거든요.

차마 하지 못할 말을 가슴 속에 묻으며 나도 그냥 따라 웃었다.

“하… 하하…”

무리뉴 감독이 책상 위에 있던 서류철 하나를 내게 내밀었다.

“네가 말한 A급 미드필더 영입 후보군들이야.”

별로 보고 싶지 않은데, 어쩔 수 없지.

가장 윗장에는,

“누리 샤힌이군요.”

“그래. 잘 알겠지만 지난 시즌 분데스리가에서 가장 뜨거웠던 미드필더지. 별명도 재밌고. ‘왼발의 지단’이라던가?”

얘기를 듣던 진짜 지단이 한 마디 했다.

“나는 인정한 적 없습니다. 감독님.”

샤힌이 들으면 움찔할 것 같다.

이 양반은 무슨 농담을 해도 포스가 있네.

2번 후보는 사미 케디라였다.

“원래 지난 시즌 영입하려고 했는데, 잘 알다시피 누구한테 2억 유로를 쓰느라 여력이 없었지.”

하드 워커를 좋아하는 무리뉴 감독에게 있어 케디라만큼 구미가 당기는 선수도 없을 것이다.

“후보는 이 두 명이 답니까?”

“그 두 명이 내가 추천한 선수고, 우리 지단 총장님의 선택은 따로 있지.”

“그게 누굽니까?”

내가 묻자 무리뉴 감독이 지단을 바라보며 말했다.

“직접 말씀하시죠.”

“그러죠.”

지단의 입에서 나온 이름은…

“나는 토트넘의 루카 모드리치를 추천했다네.”

크…

이게 갓네딘 갓단의 안목인가.

점점 가물해지는 회귀 전의 기억을 더듬었다.

미래가 크게 바뀌지 않는 가정 하에, 세 명의 후보를 평가해 보면 다음과 같았다.

샤힌 : 쪽박

케디라 : 중박

모드리치 : 대박

모드리치가 누구던가.

지긋지긋한 메날두의 독주에 태클을 걸며 발롱도르를 수상한 천재 미드필더 아니겠는가.

내 1픽은 무조건 모드리치인데, 약간 걱정되는 건 무리뉴 감독의 눈치다.

똑같은 말이라도 좀 예쁘게 할 필요가 있다.

“제 의견을 말씀드리자면…”

두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 쏠렸다.

“샤힌 같은 경우는 좋은 선수지만 지난 시즌 퍼포먼스가 플루크(Fluke)일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제게 권한이 있다면 영입은 배제할 것 같습니다.”

무리뉴 감독의 얼굴에 아주 미묘한 감정의 동요가 드러났다.

얼른 수습해야겠다.

“케디라와 모드리치 중 하나를 고르는 건 정말 어렵네요. 둘 다 너무 좋은 선수라서요. 스타일도 많이 다르고요. 누굴 영입하더라도 큰 도움이 될 듯합니다.”

“그래도 굳이 한 명을 고르자면?”

대충 넘어가려 했는데, 지단이 집요하게 물어 왔다.

지금 상황을 굉장히 즐기는 것 같았다.

에라 모르겄다.

감독님, 죄송해요.

“꼭 골라야 한다면 제 취향은 모드리치이긴 합니다. 그러나 말 그대로 취향이…”

“백강이 모드리치를 택했군요.”

말을 끊어 버리는 지단.

마음을 그렇게 못되게 쓰니까 머리카락이… 아, 아닙니다.

지단 선배님,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 * *

내 발언이 영향을 미쳤는지 아닌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우리 팀의 타깃으로 최종 결정된 건 결국 모드리치였다.

토트넘 구단주 다니엘 레비는 “모드리치는 우리 팀의 핵심 선수”라며 어떻게든 지킬 뜻을 밝혔다.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었다.

레비 구단주의 발언은 이적료를 한푼이라도 더 받기 위한 언플에 불과하단 것을.

원체 우리와 토트넘 간의 관계가 좋기도 했고, 모드리치 역시 트레블 팀에서 뛰고 싶은 욕구를 숨기지 않았기 때문에 이적은 성사될 가능성이 높았다.

확률로 치면 약 99.99% 정도?

한편 모드리치 협상의 곁다리(?)로 두 건의 추가적인 영입이 진행되었다.

우선 우리 팀 유스 출신으로 지난 시즌 에스파뇰에서 괜찮은 활약을 보였던 윙어 호세 카예혼을 500만 유로에 데려왔다.

개인기나 드리블이 특출난 선수는 아니지만 지능적인 오프더볼 움직임과 헌신적인 수비 가담이 돋보이는 타입.

무리뉴 감독의 취향은 정말 소나무처럼 한결같았다.

카예혼이 무리뉴의 입김이 들어간 영입이라면, 나머지 하나는 지단 사무총장이 찍었다는 게 정설이었는데, 바로 18살의 어린 센터백 라파엘 바란이었다.

바란의 미래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나는 ‘역시 지단’이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주변의 대체적인 반응은 물음표에 가까웠다.

유소년 팀을 갓 벗어난 아무 실적도 없는 선수를 1000만 유로에 사온 건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센터백을 급히 보강해야 할 이유도 없었으니.

같은 프랑스 출신이라 오버페이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잇따랐다.

바란의 영입 논란과는 별개로 확실히 오프시즌 분위기가 바뀐 게 체감되었다.

지난 시즌까지는 무리뉴 감독이 전권을 쥐고 모든 사안을 결정했는데, 지단이 사무총장에 부임한 이후로는 권한을 반반으로 가진 채 팀을 운영하는 모습이었다.

호날두 이적 과정에서 페레즈 회장과 무리뉴 감독의 의견 충돌이 있었고, 무리뉴 견제 세력의 필요성을 느낀 페레즈 회장이 지단을 투입했다는 게 소식통들의 분석.

아직 두드러진 갈등 관계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미세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분명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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