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뚝배기로 발롱도르-141화 (142/176)

141화

[레알 마드리드, 수페르코파 1차전서 1-3 완패]

[‘이 갈고 나온’ 바르셀로나의 공격력 빛났다]

[호날두, 친정팀 상대로 득점 기록하며 포효]

전반 6분 만에 비야에게 선제골을 허용하며 불안하게 출발한 경기는, 다행히 5분 후 아자르의 크로스가 나의 헤더골로 연결되면서 균형을 맞췄다.

그러나 바르셀로나의 축구에는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앞의 두 골이 어디로 사라지기라도 한 것처럼 무심하게 계속되는 티키타카.

과르디올라 감독이 오프시즌 동안 팀워크를 더 가다듬은 듯, 모든 움직임이 유려하면서도 깔끔했다.

사정없이 몰리던 우리 팀은 전반 종료 직전 기어이 역전골을 허용했다.

주인공은 하필이면 호날두.

바르셀로나 유니폼을 입고 처음으로 터뜨린 골이었다.

자신에게 붙어 있던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꾼 득점이기도 했다.

메시의 두 번째 어시스트도 이때 나왔다.

오른쪽 측면에서부터 특유의 폭풍 드리블로 온갖 어그로를 다 끈 다음, 우리 4백의 배후로 침투하는 호날두에게 완벽한 스루패스를 찔러 주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킬러 패서와 피니셔를 한 팀에 모아 놓으니 말 그대로 재앙이었다.

호날두의 골로 기세가 오른 바르셀로나는 조급해진 우리 팀 선수들을 농락하듯 볼을 돌리며 점유율을 극한까지 끌어올렸고, 후반 33분 세 번째 골로 승부를 완전히 결정지었다.

피날레를 장식한 건 앞서 도움만 2개 기록했던 메시였다.

정말 인정하기 싫지만, 이 골이 또 예술.

메시가 박스 바깥쪽에서 라스의 압박을 이겨내며 호날두에게 전진 패스를 했고, 뛰어들어오는 메시에게 지체없는 리턴 패스가 연결되었다.

공을 받은 메시는 다시 반대쪽의 비야와 2대 1 패스.

딱 4번의 패스로 우리 수비진을 바보로 만든 후 깔아찬 왼발 슈팅이 골문을 갈랐다.

승리를 자축하는, 가장 바르셀로나다운 골이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브랜뉴’ 바르셀로나는 강했다.

페드로가 호날두로 바뀐 게 이렇게까지 클 줄이야…

경기 후, 과르디올라 감독은 원정 승리에 크게 고무된 모습이었다.

“오늘 경기의 가장 큰 수확은 자신감이다. 지난 시즌의 실패 이후 알게 모르게 선수들에게 심어져 있던 패배 의식을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 상대의 전력 누수가 없었음에도 완승을 거두지 않았는가? 남은 시간 동안 잘 준비해서 2차전도 가져오겠다.”

‘전력 누수’라고 에둘러 표현하긴 했지만, 정확히 표현하면 이런 의미였다.

- 아싸! 정백강 뛰었는데도 이겼당!!!

반대로 나는, 유럽 진출 이후 내가 출전한 경기에서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첫 패배를 기록했다.

물론 레알 마드리드에 소속된 이상 언젠가 한 번쯤은 일어날 일이었지만, 기분이 나쁜 건 어쩔 수 없었다.

열화와 같은 야유 세례 속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친 호날두는 이기고 나자 입이 풀렸는지 특유의 건방진 모습을 되찾았다.

“정말 끝내주는 경기였다. 90분 동안 지켜본 사람이라면, 어디가 더 강한 팀인지 확실히 알았을 것이다. 기분? 당연히 무지하게 통쾌하다.”

패자는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는 법.

이래서 절대 지면 안 되는 승부였는데…

매우 암울한 상황이지만 실낱 같은 위안이 있다면 2차전이 남았다는 사실이다.

바르셀로나 녀석들, 두고 보자.

* * *

엘클라시코 패배의 후유증은 컸다.

훈련장 분위기는 침울 그 자체.

평소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하는 아르벨로아조차 고개를 숙인 채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주요 매치업이었던 호날두에게 그야말로 영혼까지 털렸으니 그럴 만도 했다.

선배들이 죽상을 하고 있으니, 벨기에 듀오나 바란 같은 어린 친구들도 눈치를 볼 수밖에.

좋지 않다.

지고 나서 헬렐레 하는 것도 물론 좋은 태도는 아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찌들어 있는 것 역시 전혀 도움은 되지 않는다.

분위기를 좀 바꿀 필요가 있다.

저기압인 무리뉴 감독 상대로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건… 역시 나인가.

“저… 감독님?”

“할 말 있나?”

“오늘 훈련 마무리는 좀 다르게 해보시면 어떨까요?”

“다르게?”

“뭐, 미니 게임이라든가, 아니면 풋볼 테니스 같은…”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뚱딴지 같은 이야기.

하지만 무리뉴 감독은 역시 내 의도를 알아차렸다는 듯 씩 웃었다.

“풋볼 테니스라. 나쁘지 않은 생각인 것 같군. 리프레시가 좀 필요한 상황이긴 하지.”

풋볼 테니스.

말 그대로 축구공으로 하는 테니스고, 더 쉽게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그냥 족구다.

무리뉴 감독은 뭔가를 결정하면 시간을 끄는 법이 없다.

“집합!”

그렇게 성사된 월드클래스 축구선수들의 족구 시합.

“그냥 하면 재미없잖아? 저녁 내기해!”

원래는 기분 전환 삼아 가볍게 할 생각이었는데, 타고난 승부사 라모스의 제안에 따라 판이 좀 커졌다.

방식은 총 4개 팀이 펼치는 토너먼트.

우승팀은 비용 면제, 준우승팀은 10%, 결승에 못 오른 팀이 45%씩 부담하기로 했다.

각 팀 주장은 카시야스, 라모스, 마르셀루, 그리고 나.

사실상 주장의 신용카드에서 얼마가 빠져나갈지 결정하는 대결이었다.

1차전은 ‘팀 카시야스’ 대 ‘팀 라모스’.

“에이, 형이 주장인데 그래도 주전으로 뛰어야죠.”

라모스가 놀리는데도 카시야스 주장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세르히오, 뭘 모르는구나. 원래 에이스는 중요한 순간에 나가는 법이야.”

포지션 특성상 아무래도 발재간이 약할 것으로 추정되는 카시야스 주장이 후보를 맡고, 대신 모드리치-알론소-알비올이 출전했다.

이에 맞서는 ‘팀 라모스’는 라모스-더브라위너-알틴톱에 페페가 후보.

판정 시비가 없도록 무리뉴 감독이 주심을 맡았다.

아마 족구 심판 중 가장 몸값이 비싼 사람이 아닐까 싶다.

11점 내기 단판 승부 스타트.

“간다!”

라모스가 시작부터 왼쪽을 바라보며 오른쪽으로 차 넣는 ‘노룩 서브’를 선보였다.

그러나 알비올이 센터백답게 안정적인 리시브.

이후 알론소가 띄워준 볼을 모드리치가 시저스킥으로 마무리하며 첫 득점이 나왔다.

“그렇지 그렇지!”

신이 나서 아낌 없는 박수를 보내는 카시야스 주장.

리액션이 거의 챔스 결승급이다.

“서브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보여주지.”

호기롭게 외친 모드리치의 야심찬 서브가 라인을 살짝 넘어갔다.

“아웃!”

“인이지, 무슨 아웃이야?”

“눈이 삐었어? 아웃!”

“인이라니까아!”

등산 모임 아저씨들이나,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이나 싸우는 수준은 거기서 거기였다.

“나갔어.”

포청천 무리뉴 감독이 단호하게 아웃을 선언하면서 희비가 갈렸다.

처음엔 다들 좋아할까 의문이었는데,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몰입하는 모습이었다.

사실은 다들 패배로 인한 스트레스를 털어버리고 싶었던 모양.

1차전 최후의 승자는 ‘팀 라모스’였다.

듀스까지 가는 접전 끝에 15-13으로 승리.

“형이 안 나와서 좀 힘들었네요. 나왔으면 금방 끝냈을 텐데.”

결국 끝까지 뛰지 않았던 카시야스 주장은 라모스의 일침에 소리 없이 눈물을 삼켰다.

바로 이어지는 2차전은 ‘팀 정백강’ 대 ‘팀 마르셀루’.

볼 잘 다루기로 소문난 마르셀루-벤제마에, 공격수인 카예혼과 최고의 응원단장 아르벨로아가 포진한 ‘팀 마르셀루’는 강력한 우승 후보였다.

“형, 걱정 마요. 저 이거 진짜 잘해요.”

우리 팀은 대단한 자신감을 표출하며 나를 격려하는 아자르와 라스, 바란으로 구성되었다.

“이봐, 라파엘. 응원 열심히 하라구.”

“네! 알겠습니다! 선배님!”

바란은 라스가 상당히 무서운 모양이다.

쯧쯧… 이 프렌치 커넥션 문제 있네.

마르셀루의 스핀 잔뜩 먹인 서브로 경기 시작.

방금 전 프랑스 후배에게 준엄한 지시를 내렸던 라스가 오른발을 갖다댔지만, 스핀이 워낙 세서 엉뚱한 방향으로 공이 튀었다.

허무한 서브 에이스.

“지금 뭐하는 거야?”

나의 핀잔에 라스가 고개를 숙였다.

“미… 미안…”

삐져나오는 웃음을 겨우 참는 바란의 표정이 킬포.

이래서 평소에 입을 함부로 털면 안 된다.

다시 한번 마르셀루의 서브.

“으억!”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또 한 번의 트래핑 미스.

“아무래도 안 되겠다. 교체하자.”

“그래…”

주장의 권한으로 라스를 들여보내고 바란을 긴급 투입했다.

터엉-

“그렇지!”

리시브가 이 정도는 돼야지.

역시 지단이 고른 선수라 그런지, 족구 실력도 수준급이다.

“갑니다!”

바란이 받아낸 볼을 높이 띄우는 아자르.

축구에서 족구로 종목은 약간 바뀌었지만, 공격 콘셉트는 동일하다.

마무리는 역시 머리지.

콰아앙-

정점에서 이마로 강타한 공이 수비 빈틈을 정확하게 찌르며 우리 팀 첫 득점이 나왔다.

공중에서 상대의 포진을 확실하게 읽고 시도하는 공격이라 막는 게 사실상 불가능했다.

끝까지 쫓아가봤던 카예혼이 허탈한 표정을 지었고,

“우~ 치사하다! 치사해!”

평소의 텐션을 되찾은 아르벨로아는 우리의 플레이에 야유를 보냈다.

“내기가 걸려서 어쩔 수가 없네.”

바란이 막아주고, 아자르가 올려주고, 내가 마무리하는 3박자의 완벽한 조화 속에 난적 ‘팀 마르셀루’를 11-9로 격파.

이제 결승전만을 남겨두게 되었다.

“헹, 공도 찰 줄 모르는 녀석이.”

더브라위너의 말에 아자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받아쳤다.

“아이고, 하여간에 입만 살아서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벨기에 듀오가 시작 전부터 으르렁댔다.

사뭇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막이 오른 결승전.

수비면 수비, 공격이면 공격, 종횡무진 날아다니며 클래스를 입증하고 있는 라모스가 더브라위너의 패스를 받아 호쾌한 헤더로 선취점을 올렸다.

“봤지? 백강! 나도 머리 좀 쓰거든?”

이것은 명백한 도발.

2010년도 피파 발롱도르 위너로서, 이런 반란은 진압해줘야 할 의무(?)가 있다.

“좋아, 제대로 붙어보자고.”

거의 엘클라시코만큼이나 치열했던 결승전은 혈전 끝에 ‘팀 정백강’의 승리로 끝났다.

최종 스코어는 18-16.

‘팀 라모스’가 무지하게 선전하긴 했지만, 일단 공중에 제대로 띄워놓기만 하면 무조건 득점인 우리 팀의 사기적인 공격력을 극복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분명 처음에는 재미로 시작했는데 경기가 끝나고 나니 선수들은 모두 탈진 상태.

심지어 거의 뛰지도 않은 페페와 라스까지 하도 소리를 질러서 목이 쉬었다.

“바르셀로나랑 경기 때 좀 이렇게 하지 그랬나.”

헥헥대는 제자들을 보며 무리뉴 감독이 껄껄 웃었다.

“이케르.”

“네, 감독님.”

“내 카드를 줄테니 그걸로 계산해. 모양 빠지게 몇 퍼센트가 어쨌니 하지 말고.”

“아, 아닙니다. 그럼 제가 사죠.”

“됐어. 덕분에 나도 간만에 즐거웠으니.”

무리뉴 감독은 그렇게 카드만 남긴 채 쿨하게 사라졌다.

“그럼 우린 뭐 때문에 이렇게 열나게 싸운 거지?”

멀어지는 무리뉴 감독의 뒷모습을 보며 내가 허탈하게 내뱉자 아자르가 멋없게 윙크를 하며 말했다.

“감독님처럼 우리도 즐거웠잖아요. 그거면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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