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뚝배기로 발롱도르-143화 (144/176)

143화

[레알 마드리드, 2011 수페르코파 들어올리다!]

[2차전 3-0 완승… 골득실서 앞서며 트로피 쟁취]

[또 바르셀로나의 발목 잡은 ‘정백강 포비아’]

우우우우우우우—

우리 팀의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캄 노우를 가득 메운 관중들이 일제히 야유를 퍼부었다.

레알 마드리드에 대한 저주가 아니었다.

끔찍한 경기를 펼친 자신들의 응원팀 바르셀로나 선수들에게 향하는 질책이었다.

결국 복수에 실패한 호날두는 휘슬이 울리자마자 뒤도 안 돌아본 채 라커룸으로 들어갔다.

소심한 녀석 같으니라구.

누가 유니폼 교환이라도 요청할까봐 겁이라도 났나?

최대 라이벌에게 또 한 번 무릎을 꿇게 된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 경기 후 인터뷰에 임했다.

- 충격적인 역전패다. 패인은 무엇이라 보는가?

“1차전 대승 후 방심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겠다. 원정에서 너무나도 좋은 성과를 거뒀기 때문에 홈 경기를 너무 쉽게 생각했다. 또 이른 시간에 실점을 하면서 준비했던 게임 플랜이 꼬인 것도 문제였다.”

- 지난 시즌부터 레알 마드리드에게 모든 트로피를 빼앗기고 있는데?

“원래 팀의 분위기란 사이클을 타기 마련이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던가. 앞으로 벌어질 정말 중요한 승부에서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겠다.”

답변을 마치고 일어서는 과르디올라 감독의 얼굴은 보기 안쓰러울 정도였다.

계속 이런 식이면 정말 경질당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으니…

이어서 무리뉴 감독이 마이크 앞에 앉았다.

과르디올라 감독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아주 행복한 표정이었다.

- 환상적인 승리다. 결과를 예상했는가?

“경기 시작 전에 선수들에게 말했다. 부끄러운 경기는 하지 말자고. 솔직히 이기기만 해도 만족이었는데, 우승까지 하게 돼서 매우 만족스럽다.”

- ‘LCD’를 상대로 무실점에 3득점을 했다. 대단한 저력을 보여줬는데 그 힘은 어디서 나왔다고 보나?

“뭐 특별할 것도 없다. 우리 팀 선수들은 원래 뛰어나다. 그러니까 트레블도 한 게 아니겠는가? 1차전에서 생각 외로 얻어맞은 게 오히려 좋은 자극이 되었고, 그 결과가 2차전으로 연결되었다.”

마지막 인터뷰이는 1골 1어시스트로 MOM에 선정된 나, 정백강이었다.

- 포츠머스 시절부터 한 시즌도 거르지 않고 트로피를 수집하고 있다. 오늘도 하나 추가했는데, 심지어 우승을 결정한 모든 경기에서 골을 넣었다. 알고 있었나?

“전혀 몰랐는데, 듣고 보니 그랬던 것 같다. 훌륭한 동료들과 코칭 스태프들이 함께 했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였다. 물론, 나 역시 잘했다는 건 부정하기 힘들겠다. 하하하.”

- 세 번째 골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공식 어시스트로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사실상 골을 만든 거나 다름없는데?

“우리 팀을 만난 상대 수비진이 크게 착각하는 게 있다. 나만 막으면 어떻게든 될 거라고 믿는 거다. 지난 시즌 우리 팀이 각종 대회에서 터뜨린 골이 총 171개다. 내가 넣은 골의 2배가 넘는 수치다. 오늘처럼 나만 붙잡고 늘어진다면 오히려 고마운 셈이다.”

- 혹시 호날두와는 이야기를 좀 나눴는지?

“전혀. 나는 딱히 할 말이 없다. 아마 호날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뭐, 냉정하게 들릴 지도 모르겠지만 이제 동료도 아니지 않은가?”

- 본격적인 시즌이 곧 시작된다. 목표가 있다면?

“올해도 내년에도, 그리고 은퇴하는 그 순간까지도 나의 대답은 동일할 것이다. 출전한 모든 대회에서 정상에 서는 게 유일한 목표다.”

* * *

2011년 8월 25일.

챔피언스리그 32강 대진 추첨이 있는 날이었다.

공식 사랑방인 우리 집에 모여들기 시작하는 블랑코스(Blancos)의 전사들.

제일 크고 넓은 데다가 가족도 없으니 회합 장소로는 제격이었다.

지난 시즌 우승팀인 우리 팀은 당연히 포트 1에 속해, 상대적으로 여유 있게 추첨을 지켜볼 수 있게 되었다.

“백강 형은 피하고 싶은 팀 있어요?”

오늘도 피스타치오맛 아이스크림 한 통을 장전해 놓은 아자르가 물었다.

“딱히 없어. 상대가 우리를 피하고 싶겠지.”

“오오… 역시 멋있으세요.”

나의 대답에 더브라위너가 감탄사를 내뱉었으나, 사실은 만나기 싫은 팀이 많았다.

어쩐지 말로 꺼내는 순간 현실이 되는 징크스 때문에 입을 다물고 있었을 뿐이었다.

추첨자로 처음 등장한 인물은 파울 브라이트너.

1970년대를 주름잡은 독일 대표팀과 바이에른 뮌헨의 레전드로, 우리 팀에서 뛴 경력도 있는 인물이었다.

브라이트너의 시원시원한 손길 속에 포트 1에 속한 팀들의 조 배정이 빠른 속도로 완료.

우리 팀은 D조였다.

사실상 진짜 추첨은 지금부터 시작.

두 번째 추첨자로 등장한 인물은 내게도 아주 친숙한 사람이었다.

“영웅이 등장하셨군.”

손뼉까지 치며 조국의 대선배를 격하게 반기는 페페.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전설 루이스 피구 형님이 무대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엄습하는 불길한 기운.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저 형님이 끼어들었을 때 내 인생에서 뭐가 잘 된 적이 없었다.

- CSKA 모스크바.

피구 형님이 가장 먼저 뽑아든 팀은 러시아의 강호 모스크바였다.

“어우, 러시아 원정은 생각만 해도 토 나와. 나도 딱히 피하고 싶은 팀은 없는데 딱 한 곳, 모스크바만 아니면 돼.”

라모스가 몸서리를 쳤고, 나와 카시야스 주장이 동시에 라모스를 째려봤다.

“왜 그런 눈으로 봐?”

- D조입니다.

역시는 역시였고,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 법이었다.

말 한 마디 잘못 했다가 역적이 된 라모스가 여기저기서 매서운 눈총을 받았다.

“그래도 다행이다. 밀란이 아니라서.”

이 와중에 혼자 기뻐하는 한 사람.

친정팀과의 2년 연속 조우를 피한 카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전력으로만 보면 포트 2의 최강팀은 밀란이 맞았다.

다만 모스크바보다 훨씬 좋은 선택지들이 많았는데, 하필이면 빡센 팀이 걸린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한편 카카가 그렇게도 피하고 싶어했던 밀란은 H조의 바르셀로나와 함께 하게 되었다.

이렇게 큰 엿을 선물하시다니.

피구 형님, 역시 인테르의 레전드다우십니다.

포트 3 팀 배정을 위해 피구 형님에 이어 나타난 인물은, 무려 기사 작위를 갖고 있는 분이었다.

1966 월드컵에서 잉글랜드의 우승을 이끌었던 보비 찰튼 경이 행사 참석자들로부터 존경의 박수를 받으며 등장했다.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로 알고 있는데 여전히 정정하신 모습이었다.

앞서 라모스의 선례를 봤기 때문에, 모두들 숨을 죽인 채 추첨 과정을 지켜보았다.

올림피아코스는 F조, 바젤은 C조, 아약스는 A조…

상대적 약체로 보이는 팀들이 하나하나 자리를 찾아가면서 불안감이 증폭되었다.

그리고,

- 맨체스터 시티.

- D조입니다.

“크헉!”

“이런 씨발, 좀 너무하네.”

마르셀루가 단말마의 비명을 터뜨렸고 페페도 걸쭉한 욕설로 짜증을 표출했다.

만수르 구단주의 든든한 지원 아래, 지난 시즌 FA컵을 제패하고 EPL에서는 3위에 오르며 돈을 쓴 효과를 제대로 본 맨시티.

이번 이적시장에서도 세르히오 아게로, 사미르 나스리, 가엘 클리시, 스테판 사비치 등을 ‘폭풍 영입’하며 진지하게 EPL 우승후보로 거론되는 팀이었다.

“우리가 조 1위 하고, 맨시티가 2위 먹겠네. 그래도 이 정도면 무난하지 뭐.”

잉글랜드를 떠난 지 2개월 남짓 만에 또 EPL 팀을 상대하게 된 모드리치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전쟁통에서 자란 이 강심장 미드필더는 어떤 상황에서도 멘탈이 흔들리는 법이 없다.

마지막 추첨자로 등장한 레전드는 그 유명한 ‘네덜란드 삼총사’의 일원인 루드 굴리트였다.

모 축구 게임 때문에 향후 한국에서 엄청난 인지도를 쌓게 되는 굴리트.

물론 실제 축구에서도 어마어마한 선수였다.

“하나쯤은 쉽게 가자, 진짜로. 아포엘이나, 오텔룰 갈라티? 저긴 또 어디야? 처음 들어보네.”

아르벨로아 말마따나, 러시아 원정에 맨시티면 포트 4에서는 좀 만만한 팀이 걸려주는 게 인지상정이다.

굴리트 형님, 좀 보여주세요!

-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 D조입니다.

지금 장난해?

* * *

[2011-2012 챔피언스리그 32강 대진 확정]

[레알, 맨시티, 도르트문트까지… 역대급 ‘죽음의 조’ 탄생하다]

맨시티 같은 팀이 포트 3이라니.

그리고 도르트문트가 포트 4라니!

이건 현재의 제도가 팀 전력을 100% 반영하지 못한다는 증거였다.

포트 2인 모스크바가 최약체로 보일 지경이었으니.

숙적 바르셀로나를 꺾고 수페르코파를 차지하면서 상큼하게 출발한 2011-2012 시즌이었건만, 챔스 조 편성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옥불로 들어간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경기는 UEFA 슈퍼컵.

이 빡빡한 일정은, 다 지난 시즌에 너무 잘했기 때문에 따라오는 부산물이었다.

지난 시즌 유로파리그를 제패하고 우리와 맞닥뜨린 팀은 공교롭게도 포르투.

2003-2004 시즌 빅 이어를 들어올리며 무리뉴 감독의 ‘스페셜한’ 커리어에 크게 일조했던 바로 그 팀이었다.

나름 스토리가 있는 흥미로운 매치업이었지만 전력 차 자체는 꽤 많이 난다는 평가였다.

무려 17골을 넣으며 유로파리그 득점왕을 차지한 라다멜 팔카오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한 공백이 크게 느껴졌다.

모나코의 스타드 루이 2세 경기장에서 열린 슈퍼컵 결과는 세간의 예상대로 흘러갔다.

팔카오와 투톱을 형성하다가 외롭게 혼자 남은 헐크를 중심으로 공격을 펼친 포르투는, 초반에 의욕적으로 밀어붙이다가 역습 한 방에 선제골을 얻어맞으며 크게 흔들렸다.

첫 골의 주인공은 볼 것도 없이 ‘결승전의 사나이’ 정백강이었다.

전반 13분, 마르셀루의 칼날 크로스를 그대로 꽂아 넣으며 생애 첫 슈퍼컵에서 데뷔골을 기록했다.

이어서 전반 39분에는 수페르코파 2차전에서 골맛을 본 벤제마가 내 헤더 패스를 하프발리슛으로 연결, 또 한 번 골망을 흔들었다.

가뜩이나 전력 차가 나는데 전반에 이미 두 골 차가 나면서 포르투는 심리적으로 완전히 무너졌다.

덕분에 후반전은 일방적인 우리의 흐름.

결국 최종 스코어는 5-0까지 벌어졌다.

나는 두 골을 더 넣으며 해트트릭, 모드리치도 중거리포로 이적 후 첫 골을 신고했다.

완벽한 승리를 거두며 슈퍼컵을 들어 올린 우리 팀은 라리가가 개막도 하기 전에 벌써 2관왕에 등극했다.

지난 시즌 트레블과 합치면 5관왕.

12월로 예정되어 있는 클럽 월드컵까지 우승한다면, 바르셀로나가 2년 전 달성했던 6관왕 위업을 우리도 달성하게 되는 셈이었다.

‘너희가 하면 우리도 한다’, 뭐 이런 느낌.

이 지독한 라이벌리의 다음 대결은 이제 명확했다.

역사상 그 어떤 팀도 달성하지 못한 ‘트레블 2회’의 위업을 누가 먼저 달성하느냐.

두 팀 모두 가진 힘은 충분했다.

어쩌면 이번 시즌에 불멸의 대기록이 나올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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