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뚝배기로 발롱도르-145화 (146/176)

145화

2011년 9월 27일, 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 별로 반갑지 않은 손님이 방문했다.

이번 시즌 EPL 개막과 동시에 연승 행진을 달리며 선두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강호 맨체스터 시티였다.

이제까지의 상대 전적은 0승 0무 0패.

오늘이 우리와 맨시티의 첫 번째 대결이었다.

양 팀 모두 100년이 훌쩍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걸 생각해 보면 의외였다.

단순히 인연이 없었다고 볼 수도 있었지만, 조금 삐딱하게 보면 그만큼 맨시티가 지금까지 유럽 무대에서 존재감이 미미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물론 과거는 과거일 뿐.

두 클럽이 쌓아 올린 역사는 차이가 날지언정, 이번 매치업에 대한 세간의 예상은 50 대 50에 가까웠다.

조별리그 지난 경기에 대한 평가가 반영된 시각이었다.

“레알 마드리드는 물론 강한 팀이지만, 못 이길 상대는 아니라고 본다. 지금 우리 팀 선수들은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고 있다.”

맨시티의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은 경기를 앞두고 상당한 자신감을 표출했다.

홈에서 열린 도르트문트전에서 통한의 무승부를 기록하긴 했지만, EPL에서는 전승을 달리고 있었으니 ‘근거 있는’ 자신감이었다.

한편 호사가들은 만치니 감독의 인테르 감독 경력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2004년부터 2008년까지 네라주리를 이끌었던 만치니 감독은 세리에 3연패, 코파 이탈리아 2연패라는 업적을 달성했으나 챔스에서는 영 부진했다.

빅 이어를 간절히 원했던 인테르의 마시모 모라티 구단주는 결국 우승 청부사로 무리뉴 감독을 선택했고, 만치니는 씁쓸하게 쫓겨나다시피 팀을 떠나야 했다.

드러내 놓고 말을 하진 않았지만, 만치니 감독 입장에서는 상당한 굴욕이었을 터였다.

어떠헥 보면 이번에 합법적으로(?) 복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셈이었다.

“이제 좀 살 만해 보인다?”

“그럼요. 아주 쌩쌩해요. 헤헤…”

“감기 도질라. 이참에 아이스크림 좀 줄여.”

“그건 너무 어려운 미션인데… 형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노력해 볼게요!”

모스크바에서 걸린 감기가 안 떨어져서 라리가를 3경기나 결장한 아자르가 잉글랜드의 거목을 상대로 복귀전을 치를 준비를 마쳤다.

다행히 결장 기간 동안 약체팀들을 만났고, 여름 이적시장에서 데려온 카예혼과 알틴톱이 공백을 잘 메워준 덕분에 무난하게 3연승으로 마무리하긴 했다.

끝없는 승리를 이어가고 있었지만, 리가 경기에 나서는 선수들은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긴장 속에 있었다.

리가 우승 최대 경쟁자인 바르셀로나 역시 기록지를 ‘승리’로 도배하고 있었기 때문.

절대 엉뚱한 팀에게 승점을 빼앗겨선 안 됐다.

“다 모였나?”

“네, 감독님.”

수페르코파 이후 최대 빅매치를 앞둔 무리뉴 감독의 마지막 주문은 짧고도 굵었다.

“자, 나가서 트레블 팀의 위용을 보여주고 와라.”

* * *

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원정팀 맨시티의 선축으로 경기가 시작되었다.

만치니 감독이 사전에 지시한 패턴이 있었던 듯, 아무 망설임 없이 최전방으로 롱패스를 때려 넣는 빈센트 콤파니.

원톱으로 나선 세르히오 아게로가 득달같이 달려들며 공을 받았지만 부심의 깃발이 올라갔다.

지난 시즌 구성된 이래 계속해서 호흡을 맞춰 온 우리 4백 마르셀루-라모스-페페-아르벨로아 라인의 오프사이드 트랩은 거의 아트의 경지였다.

모스크바전에서 실점 안 한 게 신기할 정도로 형편없는 수비를 했기 때문에, 오늘은 더 굳게 마음먹고 나온 네 사람이었다.

“여기요!”

푹 쉬다 와서 그런지 목소리부터 힘이 넘치는 아자르가 손을 들어 공을 요구했다.

투웅-

알론소의 땅볼 패스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아자르에게 전달되었다.

“크아악!”

비명을 지르며 잔디 위에 나동그라지는 아자르.

맨시티의 수비형 미드필더 가레스 배리의 태클이 너무 깊었다.

다분히 의도적으로 보이는 거친 수비였다.

우리 팀의 돌격대장인 아자르가 날뛰지 못하게, 미리 기를 꺾어 놓겠다는 의도가 엿보였다.

“너 이 새끼야! 일부러 그랬지?”

얼굴을 붉히며 배리에게 달려든 선수는 카시야스 주장도, 부주장 라모스도, 성깔 더러운 페페도 아닌 더브라위너였다.

마냥 순둥이인 줄만 알았는데, 절친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 눈깔이 확 돌아가버린 모습이었다.

“으으…”

살인 태클의 타깃이 된 아자르는 계속 발목을 붙잡은 채 낮은 신음을 흘렸다.

식은땀까지 흘리는 걸로 봐서 상태가 매우 나빠 보였다.

황급히 의료진 투입.

골키퍼라서 운신이 어려운 카시야스 주장 대신, 라모스가 주심에게 곧장 달려갔고 피 냄새(?)를 맡은 페페도 스멀스멀 문제의 현장으로 올라왔다.

그냥 내버려 뒀다간 난투극이 날 것 같아서, 나는 가장 흥분한 더브라위너를 뜯어 말렸다.

“케빈, 이제 진정해.”

“형, 잠깐 이것 좀 놔 보세요. 이거 분명히 고의라니까요?”

“알아, 알아. 쓰레기 같은 짓이지. 근데 더 이상 충돌하면 너도 경고야. 좀만 가라앉히자.”

빠르게 아자르의 상태를 체크한 의료진은 벤치에 교체 사인을 보냈다.

본인도 기대했을 복귀전이 허무하게 끝나는 순간이었다.

배리에게 옐로카드가 주어지는 선에서 일단 상황은 마무리되었다.

우우우우-

베르나베우의 관중들은 일제히 주심에게 야유를 퍼부었다.

이런 악성 태클은 당연히 퇴장 아니냐는 항의였다.

카예혼이 몸도 제대로 못 푼 채 아자르의 교체 멤버로 필드를 밟았다.

배리의 태클 덕분에 후끈 달아오른 경기 분위기.

우리의 프리킥으로 경기가 재개되었다.

뻐엉-

파울 위치가 하프라인 부근이어서 당연히 짧게 연결할 줄 알았는데, 알론소가 넓은 시야를 과시하듯 반대쪽 측면으로 로빙 패스를 띄워 보냈다.

어느새 오버래핑한 마르셀루의 왼발에 안착하는 공.

파울에 대한 설왕설래 때문에 어수선한 틈을 제대로 노린 멋진 패스였다.

오늘 알론소, 컨디션 장난 아닌데?

마르셀루가 그대로 측면을 파고드는 동안, 벤제마가 중앙 쪽으로 움직이며 상대 수비를 현혹했다.

도르트문트전에서 치명적 실수로 페널티킥을 헌납했던 라이트백 마이카 리차즈가, 이번에도 판단 미스를 범했다.

마르셀루를 견제하지 않고 벤제마를 따라가 버린 것이다.

덕분에 마르셀루가 완벽한 크로스 기회를 잡았다.

“바로 올려!”

아까 대승적 차원에서 더브라위너를 말리긴 했지만, 사실은 나도 매우 화가 난 상태였다.

내가 아끼는 동생을 그따위로 건드리면 ‘주옥’된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터엉-

경쾌한 파열음을 내며 날아오는 크로스.

맨시티의 센터백 콤비 중 콤파니는 193cm, 졸리온 레스콧은 191cm의 장신이었다.

그러나 열받은 정백강의 뚝배기 앞에서는 둘 다 허수아비나 다름 없었다.

투콰앙- 철썩-

분노 게이지를 가득 담아 내려찍은 헤더슛이 골문 왼쪽 상단을 꿰뚫었다.

스피드건으로 재어 보진 않았지만 이 슈팅의 체감 속도는 최소 시속 160km.

반사신경 좋기로 소문난 조 하트 골키퍼가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Gran Cabeza!!!

Gran Cabeza!!!!!

아자르의 갑작스런 부상 이탈로 조금 침울해져 있던 관중들이 ‘위대한 머리’를 연호하며 기운을 되찾았다.

자르야, 보고 있니?

형이 해냈다.

* * *

[이것이 유럽 챔피언의 힘… 레알 마드리드, 맨체스터 시티 5-0 완파하며 D조 선두 유지]

[정백강, 4골 1어시스트 맹활약… 승리 일등공신]

아자르의 부상은 내 안의 흑염룡을 일깨웠고, 맨시티에게 재앙을 가져왔다.

5분 만에 선제골을 터뜨리며 재밌는 게임을 시작한 나는, 23분과 37분에 두 골을 추가하며 전반전에 이미 해트트릭을 완성했다.

42분에 더브라위너의 중거리슛 골을 이끈 헤더 패스는 일종의 양념이었다.

후반 8분에 한 골을 추가하며 한 경기 5골 기록 한 번 세워보나 했는데 무리뉴 감독이 나를 막아섰다.

체력 안배 차원에서 호셀루와 교체해버린 것.

나한테 하도 얻어맞아서 저항할 힘을 잃어버린 맨시티는 공격에서도 이렇다할 성과를 얻지 못하며 0-5라는 참담한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다.

- 4골 1어시… 이게 사람이야?

- 한 단어로 정리할 수 있겠다. ‘수준차이’.

- 미쳤다… 돌았다… 역시 정백갓…

- 맨시티랑 돌문이랑 16강 간다던 놈들 어디 갔누?

- 대체 모스크바랑 붙을 땐 왜 그렇게 헤맸대??

- 진짜 감기 때문이었나 봄 ㅋㅋㅋ

- 모스크바는 겨우 이기더니 맨시티는 개발랐네 ㅋㅋㅋ 강강약약 지리네 ㅋㅋㅋㅋ

- 근데 오늘 정백강 평소랑 표정이 좀 다르지 않았음?

- ㅇㅇ 뭔가 개빡친 것 같더라

- 아자르 건드려서 그런 듯… 앞으로 레알이랑 붙는 팀은 절대 하드 파울하면 안되겠다 ㅎㄷㄷㄷ

- 그거 레알… 정백’갓’의 분노가 떨어질지니!!!

- 으잌ㅋㅋㅋㅋㅋ 손발 오글거려 ㅋㅋㅋ

러시아에서의 졸전으로 잠깐이나마 붙었던 의문부호를 일거에 해소하는 쾌승이었다.

‘못 이길 상대는 아닌’ 레알 마드리드에게 탈탈 털린 만치니 감독은 영혼이 빠져나간 듯한 모습으로 짧은 경기 소감을 밝혔다.

“정백강으로 시작해서 정백강으로 끝났다. 내 40년 축구 인생에서 그런 선수는 처음 본다.”

접전을 예상했던 경기에서 환상적인 승리를 거두며 기세를 탄 우리 팀은 트레블 팀다운 무적 포스를 완전 회복했다.

그리고 파죽의 연승 행진을 이어갔다.

도르트문트, 발렌시아, 세비야,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등 내로라하는 강팀들이 ‘폭군 레알’의 행진 앞에 줄줄이 무릎을 꿇었다.

수페르코파 1차전 패배 이후 무려 23연승.

오히려 지난 시즌보다도 강해진 것 같다는 평가가 심심찮게 흘러나왔다.

연승 기간 동안 평균 득실이 3.6 / 0.5였으니…

라리가 하위팀들의 약한 전력을 감안하더라도, 괴랄하기 이를데 없는 수치였다.

역대급 죽음의 조라던 챔스 D조도 6승 무패로 깔끔하게 통과했다.

적수를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우리 팀이었지만, 스페인에는 또 하나의 23승 1패 팀이 있었다.

볼 것도 없이, 숙명의 라이벌 바르셀로나였다.

수페르코파를 내주며 약간은 꺼림직하게 시즌을 출발했지만, 역시는 역시였다.

리가와 챔스에서 압도적인 전력을 과시하며 패배를 모르는 팀으로 거듭났다.

바르셀로나의 힘은 뭐니뭐니해도 최전방의 ‘LCD’와 뒤를 받치는 황금 미드필더진으로 대변되는 막강 공격력.

라리가 득점과 어시스트 순위를 보면 그 위용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득점

1위 정백강 27골

2위 리오넬 메시 20골

3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19골

4위 다비드 비야 13골

5위 카림 벤제마 12골

어시스트

1위 정백강 14개

2위 메시 12개

3위 호날두 10개

4위 사비 에르난데스 8개

5위 벤제마, 마르셀루 7개

두 부문 모두에서 압도적 넘버원인 나를 제외하면 바르셀로나 녀석들이 싹쓸이하다시피 했다.

어떤 상대든 만나는 족족 ‘뚜까패며’ 절정의 경기력을 선보이고 있는 두 팀.

이번 시즌 세 번째 엘클라시코가 가까워 오면서, 전 세계 축구팬들의 시선이 격전지가 될 캄 노우에 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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