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뚝배기로 발롱도르-157화 (158/176)

157화

삑- 삑- 삑—

경기 종료를 선언하는 휘슬이 알리안츠 아레나에 길게 울려 퍼졌다.

무리뉴 감독이 양팔을 펼친 채 넥타위를 휘날리며 필드 위로 뛰쳐 나왔고, 그 뒤를 벤치 멤버들과 코치진이 따랐다.

최종 스코어 3-2.

1990년 이후 첫 챔피언스리그 2연패.

그리고 무엇보다 역사상 유래가 없는 2년 연속 트레블의 위업이, 독일 축구의 성지인 뮌헨에서 달성되었다.

나는 동료들과 기쁨을 나누기 전에 가장 먼저 메시에게 다가갔다.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주저앉아 있는 모습이 애처로웠다.

“리오?”

소리내어 부르자 그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곤 내가 내민 손을 붙잡고 일어나는 메시.

양 팀의 에이스가 서로를 끌어안았다.

별다른 말을 하진 않았지만 마음만은 고스란히 전해졌다.

- 축하해, 백강.

- 고마워. 좋은 게임이었어.

경기 전 티토 감독의 공언대로 ‘잔재주 없는’ 힘싸움이었고, 최근 벌어진 엘클라시코 중에서 가장 터프한 승부였다.

비록 패했지만 티토 감독의 은퇴 경기로 손색이 없는 멋진 한판이었다.

우리 팀을 응원하기 위해 독일까지 날아온 팬들은 ‘La Undécima(11번째 우승)’라고 적힌 대형 현수막을 흔들며 기쁨을 만끽했다.

“이야! 이거 기분 진짜 끝내주는데?”

어느새 크로아티아 국기를 몸에 두르고 나타난 모드리치가 잔뜩 들뜬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 맘 이해하죠. 저도 첫 우승 때 그랬어요.”

짐짓 거만한 태도로 팔짱을 낀 채 말하는 빅 이어 선배(?) 더브라위너.

모드리치가 귀엽다는 듯 6살 어린 중원 파트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씨발!”

“씨이발!”

“씨이이바알!”

역전 이후 바르셀로나의 파상공세를 끝끝내 버텨낸 센터백 콤비 라모스와 페페는, 서로 마주보며 누가 누가 더 차지게 욕을 하는지 대결하는 중.

고작 31살에 챔스 4회 우승이라는 대업을 달성한 카시야스 주장이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벤제마는 프랑스 대표팀 대선배이자 자신의 멘토 격인 지네딘 지단 사무총장과 찐한 포옹을 나눴다.

각자의 방식으로 우승을 자축하는 한바탕 축제의 시간이 끝나고 시상식이 거행되었다.

먼저 준우승팀 바르셀로나부터 시상.

메달을 받는 선수들의 얼굴에 허망함이 가득했다.

특히 눈에 띄는 건 너무 울어서 눈이 팅팅 부은 피케와, 완전 똥 씹은 표정을 하고 있는 호날두였다.

피케에겐 좀 미안한 감정도 있네.

그리고 날두 너는 성질만 좀 죽였어도 나랑 같이 기뻐하고 있었을 텐데 말이지.

어쩌겠니, 그것도 다 자기 복인 것을.

“다들 올라가자.”

다음은 대망의 우승팀 시상.

무리뉴 감독이 앞장을 섰고, 그 뒤를 따라 레알 마드리드의 전사들이 위풍당당하게 계단을 올라갔다.

아자르는 걸어가면서도 환호하는 팬들에게 계속 손을 흔들며 깨방정을 떨었다.

“백강! 오늘도 환상적이었네. 아마 내년에도 이 자리에서 볼 수 있겠지?”

미셸 플라티니 UEFA 회장이 우승 메달을 걸어주면서 말했다.

“물론이죠. 꼭 그럴 겁니다.”

발롱도르 3회에 빛나는 전설적인 미드필더가, 한국에서 온 리빙 레전드와 뜨거운 악수를 나누었다.

메달 수여가 끝나고 드디어 빅 이어를 들어올릴 차례.

“이케르 형! 이번엔 좀 폼나게 들어 봐. 작년엔 너무 멋이 없더라고.”

라모스가 카시야스 주장을 놀려댔다.

“이 녀석이… 그럼 네가 들래?”

“아니, 양보할게. 나는 형 은퇴하고 나서도 기회가 있으니까.”

주장이 발끈하자 라모스가 능글맞게 웃으며 대꾸했다.

다른 건 몰라도 말발만큼은 부주장이 주장보다 몇 수 위였다.

라모스 덕분에 살짝 삐친 주장이었지만, 트로피를 손에 쥐자 금세 얼굴이 폈다.

오직 빅 이어에만 존재하는 마술적인 힘.

우승해보지 않은 사람은 평생 느낄 수 없겠지.

마침내 주장이 하늘 높이 빅 이어를 들어 올렸다.

“이예에에에에에!!!”

엄청난 함성 속에 축포가 터지고 꽃가루가 휘날렸다.

아름다운 밤이었다.

* * *

2014년 5월 28일.

서울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월드컵을 앞두고 튀니지와의 평가전이 열렸다.

조별리그에서 만나게 될 알제리를 대비한 상대였다.

결과는 대한민국의 깔끔한 3-0 승리.

나의 고공 폭격은 원정 온 튀니지가 감당하기엔 너무 벅찼다.

머리로만 2골에 보너스로 1어시스트.

나의 헤더 패스를 받아 통렬한 왼발 중거리포를 꽂아 넣은 손형민은, 큰 대회를 앞두고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경기 종료 후에 곧바로 거행된 출정식.

초대형 빔 프로젝터로 쏜 선수들의 사진과 이름이 한 명씩 잔디 위에 떠올랐고, 장내 아나운서가 한껏 고무된 목소리로 분위기를 띄웠다.

- 대표팀의 든든한 맏형, 차! 도! 리!

2002년, 그리고 2010년.

무려 두 번의 4강 신화에서 주축 역할을 한 차도리 선배가 생애 마지막 월드컵을 치를 수 있게 되었다.

- 차세대 에이스를 노린다. 손! 형! 민!

박지승-정백강으로 이어지는 대표팀 에이스 계보를 누가 이을 것인가.

여러 선수들이 언급됐지만 가장 앞서나가는 건 바로 형민이었다.

본인의 생애 첫 월드컵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감이 컸다.

- 대체 불가능한 허리의 핵심. 기! 성! 영!

아나운서의 말마따나 대표팀 중원에서 성영이의 존재감은 독보적이었다.

EPL에서 많은 경험을 쌓으면서 한층 원숙해진 기량을 뽐내는 중.

- ‘중동 킬러’에서 ‘세계 킬러’로. 이! 건! 호!

자타공인 K리그의 지배자인 건호 선배는, 부상으로 인해 폼이 많이 떨어진 이창용을 밀어내고 대표팀에서 부동의 주전 라이트윙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22명의 소개가 끝나고 이제 딱 한 명의 선수만이 남았다.

시끌시끌하던 장내가 신기할 정도로 조용해졌다.

잠시 시간을 끌던 아나운서가 남은 힘을 쥐어짜내듯 절규했다.

- 그 어떤 수식어도 필요 없는, 세계 최고의 플레이어. 대표팀의 캡틴! 정!!! 백!!! 강!!!

우와아아아악!

앞서 22명에게 쏟아진 걸 다 합한 것보다도 커다란 함성이 상암벌을 뒤덮었다.

정백강- 정백강- 정백강-

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연호하는 6만 6000여명의 관중들.

이젠 익숙해질 만도 하건만,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우리 주장. 인기가 역시 쥑이네. 부러워라.”

옆에 서 있던 건호 선배가 껄껄 웃으며 내 어깨를 툭 쳤다.

몇 분이 지나도록 함성이 끝나지 않아서, 결국 아나운서가 정숙을 요구해야 했다.

겨우 진정된 후 소개되는 24번째 얼굴.

- 마지막으로 태극전사들을 이끌 사령탑! 펩 과르디올라!

나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대단한 반응 속에, 수트를 멋지게 차려 입은 과르디올라 감독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이 과르디올라라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 *

시계를 돌려 2013년.

우리 대표팀은 이란, 우즈베키스탄 등 4개국과 함께 월드컵 최종예선 A조에 속했다.

결과는 당연히 조 1위.

8경기에서 7승 1무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며, 8회 연속 월드컵 진출의 금자탑을 쌓았다.

나는 출전한 6경기에서 22골을 터뜨리며 아시아에서는 정백강을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을 똑똑히 증명했다.

사건이 발생한 건 이란과의 최종전을 치렀던 6월 18일.

진작부터 최종예선 이후 사퇴 뜻을 밝혀 왔던 최광희 감독은, 번복 없이 깔끔하게 감독직을 내려 놓았다.

하지만 그리 조용하게 가진 않았다.

퇴임 기자회견에서 핵폭탄을 터뜨린 것이다.

“떠나는 마당에 후임 인선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건 그리 좋은 그림이 아니라는 걸 잘 안다. 그러나 아직 나에게 발언권이 있을 때 이 말은 꼭 해야겠다. 자, 솔직히 말해 지금 협회에서 물망에 올려 놓고 있는 사람들 중에 아무나 앉혀 놔도 16강은 무조건 갈 거다. 우리에겐 정백강이 있으니까. 예선 통해서 다들 보시지 않았나. 압도적인 세계 최고의 선수가 갖고 있는 파괴력에 대해서 말이다. 허나 반대로, 협회 리스트에 있는 누구도 정백강 같은 선수를 지도할 자격이 없다. 나도 마찬가지다.”

본선 진출도 확정됐겠다, 조용히 끝날 줄 알았던 기자회견이 특종으로 탈바꿈하는 순간이었다.

“내년 월드컵 때 정백강의 나이가 만으로 스물일곱이다. 선수 생활의 최절정기다. 한국 축구계의 보물 같은 선수가 가장 빛날 시기에 참가하는 월드컵인데, 협회가 앞길을 막아서야 쓰겠는가. 마땅히 세계 최고 수준의 명장을 데려와야 한다.”

이 기자회견의 임팩트는 실로 엄청났다.

모든 신문과 방송의 톱 기사를 모조리 차지했고, ‘최광희 작심 발언’이라는 키워드가 검색어 순위 1위를 독식했다.

뒤통수 제대로 맞은 축구협회는 즉시 반박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의 골자는, 예산 부족으로 인해 연봉이 높은 외국인 감독의 선임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간만에 일다운 일을 한 언론들의 집요한 취재에 의해 말도 안 되는 변명임이 금방 드러났다.

내가 피파 올해의 선수상을 처음 수상했던 2009년부터, 4년 연속 트레블(레알 소속으로는 3년 연속)을 달성한 2013년에 이르는 5년 간, 축협의 수입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비교 대상이 없는 슈퍼스타가 된 나의 압도적인 브랜드 파워 때문에 스폰서십을 체결하려는 기업들이 줄을 섰고, 금액 역시 천정부지로 뛰었기 때문이었다.

자체 수입이 폭증하면서 국가 지원금이 절반 이상 삭감되었을 정도였다.

비리가 심히 의심되는 축협의 신규 사업 몇 가지만 정리하면, 지구상의 어떤 감독이든 데려올 수 있을 정도로 축협의 주머니 사정은 풍족했다.

국민들의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결국 축협이 항복 선언을 하고 감독 공모 절차에 나섰다.

막대한 연봉 보장, 다른 대회 없이 오직 월드컵에만 집중할 수 있는 여건, 그리고 무엇보다 정백강이라는 세계 최고 선수를 지도해 볼 기회까지.

세계 각국에서 일자리를 찾던 감독들의 눈이 일제히 대한민국에 쏠렸다.

카를로 안첼로티, 파비오 카펠로, 유프 하인케스, 마르첼로 리피…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명장들이 말 그대로 줄을 섰다.

그 화려한 명단 가운데는 바르셀로나를 떠난 이후 야인(野人)으로 지내던 과르디올라의 이름도 있었고.

이미 능력에 대한 검증은 끝난 감독들이 너무 많이 지원하다 보니, 상상하기 힘든 촌극이 벌어졌다.

저마다 연봉을 깎겠다며 발벗고 나선 것이다.

갑자기 ‘최저 연봉 낙찰’ 비슷한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최종 승자는 과르디올라 감독이었다.

연봉 95억 원에 2년 계약.

유럽 클럽팀과 계약했으면 무조건 100억 원 이상의 연봉이 보장된 과르디올라 감독이었지만, 그의 선택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이 ‘축구에 미친’ 천재 감독의 취임 일성은 아래와 같았다.

“스페인에 있을 때 정백강에게 아주 심하게 당했다. 이제 그런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만으로도, 대한민국 감독이 된 보람은 충분하다. 내가 대표팀 경력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좋은 축구’를 한다면 그 무대가 어디든 간에 반드시 통할 거라 믿는다. 월드컵 개막까지 1년이 남았는데, 잘 준비해서 나를 선택한 게 틀린 결정이 아님을 증명하겠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