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뚝배기로 발롱도르-158화 (159/176)

158화

피파 발롱도르 : 4회(2010-2013)

피파 올해의 선수 : 1회(2009)

피파 베스트 11 : 5회(2009-2013)

UEFA 올해의 선수 : 3회(2011-2013)

EPL 득점왕 : 1회(2007-2008)

세리에 득점왕 : 2회(2008-2010)

라리가 득점왕 : 4회(2010-2014)

유러피안 골든 슈 : 7회(2007-2014)

챔피언스리그 득점왕 : 6회(2008-2014)

월드컵이 열리는 2014년 6월 시점에서 내가 쌓아 올린 ‘개인 수상’ 커리어였다.

‘월드 사커 올해의 선수’나 ‘옹즈도르’ 같은 잡다한(?) 것들을 뺀 게 저 정도였다.

여기에 우승 경력까지 들어가기 시작하면 뭐…

2009-2010 시즌부터 2013-2014 시즌까지, 무려 5년 연속 트레블로 설명 끝이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랴.

현 시대 최고임은 이견의 여지가 없었고, 역대 순위에서도 대다수의 전문가들이 넘버원 자리에 내 이름을 적어 넣었다.

다만 아주 보수적인 극소수의 매체에서는 ‘과연 펠레를 넘었다고 볼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이유는 딱 하나였다.

지상 최고의 대회, 월드컵 트로피가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축구의 나라인 브라질에서 대표팀 생활을 한 펠레와 나의 월드컵 성적을 단순 비교하는 데는 무리가 있었다.

펠레가 줄리메컵을 세 번이나 들어 올리는 데는 디디, 가린샤, 카를로스 알베르토, 니우통 산투스, 자이르지뉴 등 축구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선수들의 도움이 컸으니까 말이다.

내가 열 번을 죽었다 깨어나도, 한국에 태어나는 이상 절대 가질 수 없는 수준의 동료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역사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항상 존재하기 마련.

이런 저간의 사정 때문에 이번 월드컵에서 내가 보여줄 활약에 쏠린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았다.

하필 개최지가 펠레의 조국인 브라질이라는 사실도 흥미로운 대목이었고.

* * *

서울에서 출정식을 마친 월드컵 대표팀은 브라질로 떠나기 전에 우선 미국 마이애미행 비행기를 탔다.

마지막 평가전인 가나와의 경기를 치르기 위해서였다.

“어이, 슈퍼스타.”

“오랜만이야, 변절자.”

“내가 떠난 게 아냐. 재계약 제의가 안 왔다구.”

“그랬구나… 변절자.”

인테르를 떠나 최대 라이벌 밀란으로 이적한 문타리와 간만에 즐거운 농담 따먹기.

“그나저나 어떡하냐. 너희 조 장난 아니던데.”

“하아… 그러게나 말이야.”

가나가 속한 G조는 이번 월드컵에서 첫손 꼽히는 ‘죽음의 조’였다.

언제나 무시할 수 없는 저력의 팀 미국, 호날두가 이끄는 포르투갈, 현재 피파 랭킹 2위이자 강력한 우승 후보인 독일까지.

물론 세 팀에게도 가나가 까다로운 상대임에는 분명했다.

비록 평가전이었지만 본선 개막 전에 전력을 점검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기 때문에 팬들의 관심도는 매우 높았다.

결과는 1-1 무승부.

서로 부상만큼은 절대 피해야 하는 경기였기 때문에 신중하게 게임을 풀어갔고, 나와 조던 아이유가 한 골씩을 주고받으며 훈훈하게 끝났다.

과르디올라 감독이 전반전 종료와 동시에 나를 불러들인 것도 승부에 영향을 미쳤다.

소속팀에서나 대표팀에서나 관리 하나는 기막히게 받는단 말이지.

가나전을 끝으로 대회 전 모든 일정을 마무리한 우리는, 드디어 결전의 장소 브라질에 입성했다.

베이스캠프는 브라질 남부에 위치한 인구 30만 규모의 도시 포스두이과수.

그 유명한 ‘이과수 폭포’가 있는 곳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관광지였다.

“와… 바글바글하네.”

버스에서 내리기 전, 방주호가 구름처럼 몰려든 취재진과 팬들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우리 때문에 온 거 아냐. 백강이 보러 온 거지. 어쩌면 감독님까지?”

맏형 차도리 선배가 예의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뭐,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

도리 선배의 예상대로, 버스에서 내리기가 무섭게 기자들이 나를 둘러싸고 질문 공세를 펼쳤다.

- 무려 5년 연속으로 유럽의 모든 대회를 끝까지 다 뛰었다. 혹시 체력적인 문제는 없는지?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체력에는 나름 자신이 있다. 관리도 잘 받는 편이고. 다만 2018년 월드컵부터는 좀 버겁지 않을까 싶다. 그때는 나도 서른을 넘긴 나이니까. 하하하. 결론적으론, 문제 없다.”

- 기록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월드컵 통산 득점에서 14골로 역대 3위에 랭크되어 있다. 딱 두 골만 더 넣으면 호나우두를 제치고 1위에 올라서게 되는데?

“그렇게 된다면 대단한 영예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월드컵에서 골을 넣는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아마 우리를 상대하는 팀들도 나를 막는 방법에 대해 많은 연구와 분석을 하고 달려들 것이다.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기록 경신은 미뤄질지도 모른다.”

솔직히 마음에 없는 소리였다.

아무리 못해도 2골은 넣겠지, 설마.

- 남아공에서는 약체로 평가되는 팀을 이끌고 3위라는 대단한 업적을 세웠다. 이번 대회는 어떤가. 더 높은 곳을 보고 있나?

이보시오, 기자 양반.

거기서 더 높은 곳이면 결승이잖아.

우리 스쿼드는 보고 질문하는 건지.

‘예스’라고 하기엔 차마 자신이 없고, ‘노’라고 하기엔 너무 패기가 없어 보였다.

가까스로 표정 관리를 하며 두루뭉술하게 답변했다.

“글쎄. 구체적으로 어디까지 올라가겠다는 마음보다는, 한 경기씩 충실하게 치른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러다 보면 결과는 자연스레 따라오지 않겠는가?”

한바탕 인터뷰를 끝낸 후 숙소로 향하는데, 옆쪽에서 나를 바라보는 뜨거운 눈빛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니 대표팀 막내 손형민이 존경심 가득 담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렇게 봐? 형민아.”

“너무 멋있어서요.”

“뭐가?”

“선배님 방금 인터뷰요, 4개 국어로 하셨어요.”

대답할 때는 전혀 몰랐는데, 생각해보니 정말 그랬다.

한국어, 영어, 이탈리아어, 그리고 스페인어까지.

기자들이 내 외국어 실력을 아니까 그냥 자기네 나라 말로 질문했었구만.

“뭐, 별 거 아냐 형민아. 너도 유럽에서 계속 뛰다 보면 나처럼 될 거야.”

“그럴까요? 아직 독일어밖에 못 하는데… 선배님 본받아서 다른 언어도 좀 배워야겠어요.”

실제로 형민이의 독일어 실력은 수준급으로 알려져 있었다.

녀석, 공부 진짜 열심히 했을 텐데.

내가 어떻게 언어 천재가 됐는지 알면 깜짝 놀라겠지.

* * *

“여기 뭐어야아?”

“진짜 대애애박!”

대표팀 내 최고의 단짝인 기성영-이창용 콤비가 비명을 질렀다.

비단 둘뿐만 아니라 2010 남아공 월드컵에 참가했던 선수들은 모두 입을 떡 벌렸다.

“축협에 돈이 그렇게 많다더니, 사실이었나봐!”

내숭 없는 성격의 전성룡 선배가, 축협 관계자들이 듣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속엣말을 입밖으로 꺼냈다.

단출하다 못해 초라해 보이던 남아공의 숙소와 비교해 보면, 이곳의 시설은 초특급 호텔 수준이었다.

이게 다 ‘정백강 효과’란 사실은 언급할 필요도 없었다.

역시 성공하고 볼 일이야.

“자, 다들 방에 가서 짐 풀고. 1시간 후에 집합이다.”

과르디올라 감독이 통역을 통해 지시를 내렸다.

“네! 감독님!”

내 룸메이트는 형민이였다.

“제가 감독님한테 졸랐어요. 선배님하고 같이 방 쓰고 싶다고요.”

“그랬어?”

“네. 하나라도 더 보고 배워야죠.”

나에 대한 형민이의 존경심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절대적이었다.

“근데 내가 아는 감독님이라면 너랑 나랑 붙여준 이유가 있을 거야.”

“이유요?”

“내 입으로 말하긴 좀 민망하지만, 이번 대회 잘 치르려면 너랑 나랑 호흡 맞추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셨을걸? 감독님은 뭐든 허투루 결정하는 분이 아냐.”

과르디올라 감독은 축구, 그리고 승부에 대해 편집증적인 강박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룸메이트 배치에 의도가 없을 리가 없었다.

“와… 그렇게까진 생각 못했는데… 역시 선배님은 다르시네요.”

이렇게 또 숭배 1스택 적립.

어째 기분이 묘했다.

회귀 전의 형민이는, 내가 차마 바라보기도 힘든 슈퍼스타였으니까.

* * *

2014년 6월 12일.

세계인의 축제 월드컵이 드디어 성대한 막을 올렸다.

개막전은 개최국 브라질과 동유럽의 다크호스 크로아티아의 맞대결.

객관적인 전력에서는 아무래도 홈에서 통산 6번째 우승을 노리는 브라질이 앞선다는 평가였다.

그러나 축구라는 건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

뚜껑을 열어보니 선제골을 터뜨린 건 크로아티아였다.

전반 11분 이비차 올리치가 왼쪽 측면에서 올린 땅볼 크로스가 어정쩡하게 서 있던 마르셀루의 오른발에 맞고 골문을 갈랐다.

대회 첫 득점이 자책골로 나온 건 84년 월드컵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의미 있는(?) 기록을 세운 마르셀루는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고, 줄리우 세자르 형님이 그런 마르셀루를 위로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세상 기뻐하는 모드리치의 얼굴과는 너무나도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국가대항전에서 볼 수 있는 아이러니한 풍경.

마르셀루의 실수 덕분에 상큼하게 출발한 크로아티아였지만 역시 브라질은 브라질이었다.

팬들의 일방적인 응원 속에서 빠르게 안정을 찾고는, 이내 경기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브라질의 화려한 라인업 중에서도 가장 빛난 건 네이마르.

표면적인 포지션은 레프트윙이었지만 실제로는 좌우 중앙을 가리지 않고 프리롤로 뛰며, 저돌적인 돌파와 날카로운 패스로 브라질의 공격을 진두지휘했다.

패배에 지쳐 맨체스터 시티로 떠난 호날두의 대체자로, 바르셀로나가 열띤 구애 끝에 모셔 온 재능다웠다.

금방이라도 일을 낼 것처럼 날아다니던 네이마르는, 전반 29분 기어이 왼발 중거리포로 동점골을 성공시켰다.

첫 출전한 월드컵에서 터뜨린 기념비적인 득점이자, 자신이 ‘카나리아 군단’의 에이스임을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기세가 오른 브라질은 더욱 거세게 상대를 몰아붙였고, 크로아티아는 수비하느라 정신을 못 차렸다.

전반전에 추가 실점을 안 한 것만으로도 기적에 가까운 내용이었다.

일단 넘어간 흐름은 후반전에도 계속되었다.

모드리치가 고군분투하며 어떻게든 활로를 뚫어보려 했으나, 공격진의 삽질 속에 결과물을 만들지 못했다.

부동의 주전 스트라이커인 마리오 만주키치가 월드컵 본선을 놓고 치른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퇴장으로 1경기 출장 금지 징계를 받은 게 뼈아픈 상황.

대체자로 나온 니키차 옐라비치는 만주키치의 공백을 메우기에 기량이 너무 떨어지는 선수였다.

그나마 수비진의 분전 덕분에 후반 25분까지는 1-1로 잘 버텼으나, 또 한 번 네이마르가 모든 것을 뒤바꿔 놓았다.

왼쪽 측면에서부터 시작된 리드미컬한 드리블로, 노련한 라이트백 다리오 스르나와 24살의 유망주 센터백 데얀 로브렌을 완벽하게 농락하며 페널티킥을 얻어낸 것이다.

이어서 스스로 만든 PK를 깔끔하게 마무리하며 멀티골.

호나우지뉴와 카카의 뒤를 이을 새로운 영웅을 애타게 기다려 왔던 브라질 국민들에게, 네이마르의 맹활약은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소식이었다.

끈질기게 버티던 크로아티아 선수들은 역전 이후 전의를 상실했고, 오스카가 종료 직전 쐐기골을 터뜨리며 브라질이 3-1로 승리했다.

- 마르셀루, 좋은 구경 잘 했어. 그리고 루카에게는 위로를 보낼게. 힘내!

경기를 지켜본 라모스는 ‘레알 단톡방’에 위와 같은 메시지를 남겼다.

이튿날 자신에게 어떤 비극이 닥칠 지는 생각조차 못한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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