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턱을 넘자마자 익숙한 소란이 그들을 맞이했다. 의사, 간호사, 환자, 환자 가족 할 것 없이 전부 좁은 처치실을 돌아다녔다. 이곳의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만으로도 초조함이 느껴졌다.
오 선생과 이 선생은 처치실의 다른 존재와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그들은 각각의 기회를 소중하게 여겨야 했고, 탁구공이든 골프공이든 배구공이든 차별 없이 전부 제거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주 선생님, 이분들 전부 봉합 기다리시는 거죠? 저희가 도울까요?”
오 선생은 일단 자신이 아는 근무 의사에게 말을 건 뒤, 침대 위에 앉아 있는 문신한 불량배들을 보며 군침을 흘렸다. 레지던트들은 응급실에서 수술 경험을 쌓으면서 근무하는 의사의 성격도 파악하는 법이다. 주임과 부주임은 자주 나오지 않아 모르겠지만, 주치의급에서는 주 선생이 그들에게 가장 기회를 잘 주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을 달리 해석하면 주 선생이 마음씨 좋고 게으름 피우는 것을 좋아하는 못생긴 사람이라는 의미이기도 했지만.
주 선생은 문신한 불량배에게 느긋하게 데브리망을 해주며 대답했다.
“봉합은 해야 하는데, 이제 내 환자 아냐.”
“네? 바뀌었어요?”
오 선생이 깜짝 놀라 두리번거렸다.
응급실도 침대로 책임을 분배했다. 주치의나 연차가 많이 쌓인 레지던트는 적으면 하나, 많으면 십몇 개의 침대를 관리했다. 자신의 침대에 환자가 오면 바로 책임지는 식으로 진행해 일 처리 절차를 줄였다.
주임 의사나 부주임 의사는 증상 자체만 신경 쓰고 일상적으로 찾아오는 잡다한 환자는 모두 주치의와 레지던트에게 맡기는 식이었다. 오 선생은 앞에 있는 침대 모두 주 선생의 책임이라 생각했고, 다른 레지던트들도 그렇게 파악하고 있었다.
“상처 처리는 다들 능 선생님을 찾더라고.”
주 선생은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일인 듯이 말했다.
“능 선생님은 어느 분이십니까?”
흔치 않은 성이다 보니 오 선생은 주위를 둘러보며 낯선 얼굴을 찾으려 했다.
“저기 계셔.”
주 선생은 능연이 있는 방향으로 살짝 손짓했다. 그래도 토박이인 주 선생은 잠시 이 병원을 거쳐 갈 ‘무림 고수’를 치켜세우는 게 마음속에서 우러러나지는 않았다.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의 칸막이 방에는 능연이 앉아 있었다.
“실습생 아닙니까?”
오 선생은 너무 놀란 나머지 목소리까지 흔들렸다.
“아는 사람이야?”
주 선생도 놀랐다.
“오늘 실습생이랑 같이 온 사람입니다.”
“네가 잘못 알았겠지.”
주 선생은 실소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의술 실력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능연의 현란한 손놀림은 무수한 연습을 거친 결과였다. 지금까지 봉합한 피부를 다 합치면 작은 섬 하나를 채울 정도였다. 이런 능 선생이 실습생일 리가!
오 선생은 상황 파악이 덜 되긴 했지만, 정신은 여전히 연습 기회에 쏠려 있어 대충 웃은 뒤 화제를 돌렸다.
“환자가 많은 것 같은데, 제가 도와 드리러 가는 게 좋겠죠?”
옆에 있는 이 선생도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허허, 환자들이 원하는지 물어보는 게 나을 거야.”
“의사를 고르는 응급 환자가 있다고요?”
오 선생은 의아해했다.
“저 사람들이 고른다는데 어쩌겠어.”
주 선생은 오 선생을 힐끔 보며 말했다. 말문이 막힌 오 선생과 달리, 이 선생은 생각을 바로 실천으로 옮겼다. 그는 유니콘 문신을 한 인상이 가장 좋은 불량배를 찾아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상처 아프시죠? 이리 오시면 제가 봉합해 드릴게요.”
유니콘을 좋아하는 남자가 폭력적이지는 않겠지, 하고 생각했다.
인상 좋은 불량배는 이 선생을 귀찮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능 선생 기다릴 겁니다.”
“간단하게 봉합하면 될 상처라서 누가 하든 다 똑같습니다.”
이 교수는 연습 기회를 한 번이라도 더 붙잡기 위해, 여자친구 대하는 것보다 더 상냥하게 유니콘 문신을 한 남자를 대했다. 하지만 유니콘 문신은 피식 비웃기만 했다.
“내가 무슨 햇병아리인 줄 아나. 너네 운화 병원에 내가 지금 몇 번 오는지 알아? 다 똑같다고? 내 팔뚝에 있는 수컷 노루 보이지?”
“노루였습니까?”
이 선생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뿔이 하나밖에 없는 노루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요즘은 문신하기 전에 <동물의 왕국>도 안 보나?
“여기 다니는 어떤 병신 의사가 상처를 삐뚤어지게 꿰매는 바람에 유니콘으로 문신을 고칠 수밖에 없었잖아! 네놈이 잘못 꿰매면 어떡하려고 하시나.”
옆에 있던 불량배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말 대가리로 바꾸면 되지! 하하하!”
“그럼 당나귀 대가리로 착각할 거 아냐!”
“당나귀 대가리는 좋게 말해 준거야! ‘거기’가 그나마 크잖아. 노새라고 하면 난리 나겠지.”
예전에도 이런 대화를 나눴는지, 불량배 몇 명끼리 시시덕거리며 배꼽 빠질 정도로 웃어댔다.
“단미호(斷尾虎), 왜족룡(歪足龍), 목나한(木羅漢)! 너희들은 뭐가 잘났다고 낄낄거리냐.”
유니콘 문신을 한 불량배가 주먹을 쥐고 팔을 휘둘렀다. 피투성이 유니콘이 귀여워 보일 정도였다.
오 선생은 웃음을 참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단미호라고 불리는 불량배의 팔뚝에 꼬리가 이상한 호랑이 문신이 있었고, 왜족룡이라고 불린 불량배의 문신을 자세히 보면 용의 복부를 가린 구름이 실은 어설프게 비뚤어져 있는 발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럼 목나한은 왜 목나한인 걸까.
의사는 난제 푸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오 선생은 직업에 걸맞게 열심히 고민했다.
목나한은 오 선생의 시선이 점점 불쾌해져 끝내 성질을 냈다.
“원랜 십팔나한(十八羅漢)이었다고, 멍청아.”
오 선생은 잠시 멍해졌다가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문신한 부분에 상처가 생겼으니 어쩔 수 없습니다.”
그는 웃음을 참으며 설명했다.
“초기 상처는 지금 흉터보다 더 컸을 것으로 추정되고 근육도 말려 올라갔겠네요. 상처 부근 괴사 부분을 제거한 뒤 다시 봉합하면 당연히 예전과 달라지겠죠.”
“못 하면 못 한다 하면 되지, 거참 말만 많아.”
불량배의 불평을 듣자 오 선생은 정색했다.
“제가 봉합을 못 한다니요. 봉합도 상황과 조건을 따져야 합니다. 제가 하고 싶은 모양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요.”
“그럼 성형외과 의사들은 자기 마음대로 봉합하는 거냐?”
유니콘 문신이 신경질을 냈다. 지금 상태의 문신은 그나마 여자애들이라도 좋아해 주지만, 말 머리나 당나귀 머리 같은 것으로 전락하면 큰일이었다.
오 선생은 논리적인 반격에 할 말을 잃었다. 잠시간 고민 끝에 그는 조금 위축된 목소리로 말했다.
“하여튼 기술보다는 상처의 상태가 문신 봉합이 예쁘게 나오는지를 결정합니다. 운에 따르는 일이다 보니, 성형외과 의사도 흉터를 조금 작게 만들어 줄 수밖에 없을 겁니다.”
유니콘 문신은 큰 소리로 웃었다.
“아이고야, 하마터면 속을 뻔했네. 능력도 없는 게 허풍은 열심히 떠는 걸 보니 병원에서 노는 의사구먼. 능 선생님 좀 봐봐, 뭐든 잘 꿰매잖아. 당신은 그냥 실력이 안 되는 거야.”
주위에 있던 불량배들도 능 선생을 칭찬하며 오 선생의 실력 부족을 비웃었다. 오 선생의 얼굴은 금세 빨개졌다.
십여 년 동안 공부하며 단 한 번도 성적 상위권을 놓치지 않았으며, 수능 성적 등수는 상위 1%에 속한 그였다. 5년 동안 학사 생활을 성실하게 보낸 그는 추천 학생으로 대학원에 입학해 4년 내내 담당 교수의 심부름꾼이 되었고, 끝내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성내 가장 유명한 운화 병원에 입사했다. 그래도 그는 긴장을 풀지 않고 밤낮없이 더 열심히 공부하며, 응급실에서 경험 쌓을 기회를 붙잡았건만······. 오늘 유니콘 문신을 한 불량배에게 의술 실력을 조롱당한 것이다.
오 선생은 조용히 혀를 찼다. 봉합 따위, 이제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는 몸을 일으켜 능 선생이 있는 곳에 다가갔다.
봉합은 그냥 봉합이지, 그걸로 무슨 예술을 해?
그는 걸어가는 내내 속으로 투덜거리다 드디어 능연의 봉합 과정을 보게 되었다.
평범함은 찾아볼 수 없는 손놀림이었다. 능연의 손을 따라 이동하는 니들과 봉합사를 보면, 문외한도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그가 요란 떤다고 비난할 생각이 조금은 있었다. 하지만 환자의 등에서 머리통이 찢어진 독수리가 서서히 원상 복귀되는 장면을 목격하자, 그런 말을 뱉어낼 수가 없었다.
능연은 심사숙고를 거친 뒤 니들을 움직였다. 만약 독수리 문신을 다른 사람이 봉합했다면 쪼개진 머리 부분은 다시 붙지 않았을 것이다. 보통 의사들은 문신 같은 것은 당연히 신경 쓰지 않으니 말이다.
기술이 정교한 의사가 드물게 있긴 하지만, 따져 보자면 의사는 생명을 구조하는 사람이지 문신사가 아니었다. 정교한 의술은 환자의 피부 내부에 사용하지 피부 겉면에는 사용할 필요가 없지 않나.
레지던트와 달리 대부분 의사는 에너지에 한계가 있다. 오 선생은 잠시 울컥했다.
잠시 후, 그는 흥분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신의 자존심 따위 구겨 버리고, 레지던트 특유의 뻔뻔함으로 무장하고서는 능연 뒤에 섰다.
“능 선생님, 봉합 정말 잘하시네요! 어떻게 연습하신 거죠?”
그는 음색을 높여 목소리를 최대한 밝게 만들었다. 레지던트의 학습 정신은 이토록 철저했다.
10명의 봉합을 완성할 참이었던 능연은 임무 완수 후 들어올 경험치를 기대하고만 있었다. 그 와중에 갑작스러운 질문이 들어오자, 그가 얼떨결에 대답했다.
“스타터 패키지에서 받았습니다.”
오 선생은 잠시 어리둥절했다가 큰 소리로 웃었다.
“능 선생님은 정말 재밌는 분이시군요. 방금 휴게실에서 만나지 않았습니까? 실습생과 함께 오셔서 교수라고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의대에서 시간제로 일하시나요?”
“저는 이번에 들어온 실습생 능연이라고 합니다. 재미있는 사람은 아닙니다.”
능연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스타터 패키지에는 봉합술밖에 안 들어 있어서, 드레싱(dressing)을 제대로 마치려면 집중력을 온통 쏟아부어야 했다.
오 선생은 ‘실습생’이라는 세 글자에 이미 기가 막혀 능연의 말투 따위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는 눈만 껌벅이다가 허벅지를 세차게 때렸다.
“그럴 줄 알았어! 그럴 줄 알았어.”
실습생은 졸업하지 않은 의대생일 뿐이라, 레지던트를 보면 보통 ‘선생님’이라고 불러야 했다.
하지만!
하지만······.
이 친구 봉합술 정말 기가 막히는걸?
오 선생은 나무 위의 복숭아가 분홍색으로 익은 그해 여름을 떠올렸다. 30세의 그는 생활비를 모아 Giant사의 ATX 자전거를 인터넷에서 구매했다. 대학교 1학년이었던 후배가 입학 선물로 받은 BMW 330으로 그 자전거를 집 문 앞까지 배달해주기도 했다. 그때 그는 여자친구랑 함께 열심히 공부하며······.
왜 눈물이 앞을 가리는 걸까?
“봉합이 끝났습니다. 상처는 항상 깨끗하게 해주시되 물이 닿지 않게 조심해 주세요. 운동할 때는 특히나 더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능연은 잘 봉합된 독수리 문신을 붕대로 감싸며 주의해야 하는 사항을 읊었다. 규칙 따위 무시해버리는 드라마 속 명의와 달리 능연은 규칙을 철저히 따르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수술 전과 후에 거즈 개수를 세는 업무, 약물의 무게를 밀리그램까지 따져야 하는 업무, 그리고 작은 흑점 하나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영상의학과의 업무 등을 좋아했다.
응급실 벽에 똑같은 주의사항이 적혀 있지만, 불량배는 마작할 때보다도 진지한 태도로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오 선생의 눈시울은 여전히 붉었다. 그가 기대해온 것도 바로 이런 장면이었다.
“능 선생님, 이제 제 차례지요?”
독수리 문신을 한 남자가 나가자마자 유니콘 문신을 한 남자가 웃으며 들어왔다.
“선생님, 이 남은 뿔을 꼭 살려주세요.”
능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상태를 확인해야 하니 앉아 주세요.”
남자는 얌전히 작은 스툴에 앉았다. 다친 부분이 능연을 향하도록 몸을 살짝 돌리자, 안을 보고 있는 오 선생과 눈을 마주쳤다. 두 사람은 그 상황이 불편했다.
“커튼 좀 쳐주세요.”
유니콘 문신을 한 남자가 수줍게 왕가에게 부탁했다.
“산부인과 검사도 아닌데.”
왕가는 투덜거리며 커튼을 닫아주었다. 능연은 그사이 한마디도 하지 않고 남자의 팔뚝을 보며 고뇌에 빠졌다.
조금 전, 시스템의 목소리가 말했다.
- 스타터 퀘스트 ‘환자 치료’ 성공!
불연속 수직 매트리스 봉합법(전문가급) 스킬 획득!
머릿속에 스킬 리스트도 함께 펼쳐졌다.
- 획득 기술.
* 병렬 봉합법(마스터급)
* 불연속 수직 매트리스 봉합법(전문가급)
스타터 패키지는 생각보다 유용했다.
마스터급과 전문가급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수로 따졌을 때는 스타터 패키지가 훨씬 경제적이었다. 안에 6가지 기술이 들어 있었으니까.
개수만 놓고 봤을 때, 스타터 패키지는 임무 6개를 완수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10명밖에 봉합하지 않았는데도 불연속 수직 매트리스 봉합법을 주는 것도 나름 임무 완성 동기를 유발했다.
능연은 스타터 패키지로 병렬 봉합법을 얻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두 부분을 잇는 이 봉합술은 혈관 문합부터 둔기로 맞은 상처 처리까지 사용할 수 있었다.
불연속 수직 매트리스 봉합법은 주로 느슨한 피부에 생긴 절단면을 처리하는 조금 특별한 기술이다. 노인의 하복부 피부 절단면은 상대적으로 늘어져 있어, 수술할 때 불연속 수직 매트리스 봉합법으로 외번(eversion)이나 감염의 확률을 낮추면서 상처가 아무는 속도를 높일 수 있다. 이 봉합법은 비뇨기과에서도 자주 사용하는 편이다.
능연의 눈빛이 불현듯 변했다.
새로운 기술을 얻었으니, 잘 사용해봐야겠군.
유니콘 문신을 한 남자는 능연의 눈빛을 보고 엉덩이에 소름이 가득 돋았다. 그러다 보니 목소리까지 가늘어지고 떨렸다.
“의사 선생님, 저 이제 팔뚝 못 쓰는 건가요?”
능연은 새로운 봉합 키트를 푼 뒤 수술 도구를 점검했다.
“방금 뭐라고 하셨죠?”
능연의 목소리는 조금 전과 달라진 부분이 없었지만 남자는 여전히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피투성이 상처를 지금까지 계속 처리해온 능연이 망설인 적 있었던가? 없었다! 전부 몇 분 안에 봉합을 끝내버렸다. 그런데 그랬던 그가 방금 자신을 오랫동안 응시하고 있지 않나.
“능 선생님, 제 팔뚝 이제 못 쓰는 건가요?”
유니콘 문신을 한 남자는 상상력을 마음껏 펼치다 자신을 절망 끝으로 내몰았다. 그는 모든 것을 포기했다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큰 칼을 쓰면 안 된다는 게 강호의 규칙입니다. 그 새끼가 고기 써는 식칼을 가져와서 휘두르는 거 있죠? 맨날 저희가 수박 써는 칼만 가지고 다니니까 좋은 칼 못 사는 줄 알았나 봐요. 제가 불구가 되어버렸으니, 그놈들은 모두 감방에 갈 거고. 운화 시는 곧 시시해지겠죠.”
“무슨 소리를 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뿔은 다 봉합했습니다.”
능연은 눈 깜빡할 사이에 하나밖에 없는 뿔을 예쁘게 맞추어 주었다. 그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자신감이 생기는 기분은 통쾌한 법이다.
속상해하던 남자는 의아해하며 손을 벌벌 떨며 봉합된 상처를 만지려 했다.
“만지지 마세요! 물도 닿으면 안 됩니다!”
간호사가 유니콘 문신을 한 남자의 손을 막으며 아직 반응하지 못한 능연이 해야 할 대사를 외쳤다.
“상처는 항상 깨끗하게 해주시되 물이 닿지 않게 조심해 주세요. 운동할 때는 특히나 더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능연은 주의사항을 다시 말해 주었다. 간호사가 말했다고 그대로 끝낼 수는 없지 않은가.
“다음 환자분!”
왕 간호사가 커튼을 세차게 밀쳤다. 그녀는 시간 낭비 없이 업무와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능연은 조용히 방에 앉아 다음 불량배를 기다렸다.
바느질만 하다가 하루를 보낸 능연은 퇴근 시간이 되자 온몸이 뻐근했다. 다행히 실습생은 당직을 설 필요가 없어, 기숙사 사감에게 말한 뒤 집에 곧바로 갈 수 있었다.
병원이라는 생태계에서 실습생은 먹이 사슬의 말단이다. 그들은 연못의 녹조, 바다의 플랑크톤, 숲속의 곤충처럼 하찮아 보여도 반드시 있어야 하는 존재다. 병원과 의사 모두 실습생에게 무수한 요구를 하지만, 정작 그들이 어떻게 성장하고 있는지, 어디서 성장하고 있는지에는 관심이 전혀 없었다.
‘하구’는 운화 시 시중심의 남서쪽에 있었다.
운화 시의 폐수를 배출하는 도로로 쓰이던 곳이라 ‘하구’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여러 번의 공사를 거쳐 구정물이 흐르던 역사를 끝낼 수 있었지만, 주변 도시와 어울리지 않게 낙후된 모습까지 변화시킬 수는 없었다.
진료소 부근에는 질서 없이 엇갈리는 골목길이 많았다. 그 사이사이에 허름한 작은 집과 복도식 아파트가 많았지만, 능연네 집처럼 마당 있는 이층집도 있었다. 마당은 능연의 친할아버지가 남겨 준 것이었고, 아버지인 능결죽이 십여 년 전에 개조 증축했다.
환자가 끊임없이 방문해 약을 사가던 그 시절은 능가의 ‘전성시대’였다. 능연의 어머니 도평은 매일 쇼핑하며 무용과 다도를 배웠고, 시간 날 때 영화를 보거나 피아노를 치는 한가한 생활을 했다.
그렇게 살아도 돈이 남아돌아 능연네 가족은 집까지 새로 지었고, 녹나무로 ‘하구 진료소’라고 써진 간판도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능결죽은 누가 훔칠까 두려워 나무 간판을 마당 안에 걸어두었고, 십몇 년 된 조명 간판만 바깥에서 빨간빛과 노란빛을 깜빡이게 두었다.
현관문을 열면 수액실로 개조된 본채가 보였다. 안에는 일고여덟 명이 수액을 맞으며 서 있거나 누워 있거나 했다. 이 사람들이 하구 진료소의 주 수입원이었다. 약 장사는 대형 프랜차이즈 약국이나 인터넷 약국 때문에 빼앗겼고, 응급 처치 장사는······, 원래부터 없었다. 능결죽이 ‘의사’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능결죽 자신이 한 말을 빌려 설명하자면, 본인은 진료소를 운영하는 경영인일 뿐이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은퇴한 나이든 의사를 고용해야만 했고, 그 탓에 수입은 더 줄었다.
“다녀왔습니다.”
능결죽은 입구 옆쪽에 있는 아래채에 있었다. 그의 책상에는 항상 각종 장부와 진단서가 가득해, 내부 사정을 모르는 사람은 그를 매일 바쁜 사람처럼 생각하기 마련이었다. 사실, 그저 책상 정리를 귀찮아하는 것뿐이었지만.
“하얀 가운은? 왜 아직도 학생처럼 입고 다니는 거냐?”
능결죽이 일어서면서 아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운화 병원에서 뭐 많이 배워왔니? 큰 병원이 좋긴 좋지만, 규칙도 많으니 주의해야 해.”
능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요?”
“위에서 차 우리고 있어.”
“그럼 저는 차를 마시러 가겠습니다.”
능연은 왠지 모르게 목이 말랐다.
다행히 도평 여사는 십여 년간 빈둥거리며 여러 취미를 수준급으로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집에 와서 푹 쉬다 출근하는 것도 좋겠지. 병원에 가면 꼭 열심히 일하거라. 의사 면허증은 따야지. 우리 진료소에 걸어두면 지금처럼 의사 찾기 힘들지는 않을 거야.”
능결죽은 계단을 오르며 능연에게 말했다.
“웅 선생님이 봉급 또 올려 달래요?”
능연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뜻을 헤아려낼 수 있었다. 아니, 아버지가 어느 쪽으로 엉덩이를 뻗느냐에 따라 어떤 똥을 쌌는지 바로 알아챌 수 있다고 하는 게 더 올바르려나.
“매달 50위안씩이나!”
역시나. 능결죽이 마음 아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웅 선생은 진료소에서 고용한 은퇴한 노의사였다.
“봉급 올려줄 때가 된 것 같긴 해요. 골목에서 파는 만두 가격도 올랐잖아요.”
“새해에 25위안이나 올려줬어. 하여튼 넌 열심히 공부나 해. 언젠가 가업을 이어받아야 하니까.”
능결죽이 고개를 저었다.
“운화 병원에서 실습하는 아들보고 이 진료소를 이어받으라고요?”
도평은 2층 베란다에서 우아한 자세로 앉아 차를 우리고 있었다. 오래된 목제 선박의 나무로 만들어진 차 탁자가 우아한 분위기를 더해주었다. 능결죽은 도평을 보자마자 쩔쩔맸다.
“하하. 그게 말이죠, 나는 그저 아들에게 대책을 마련해 주는 거였습니다. 병원에서 일 못 하게 되면 집안 진료소를 운영해도 괜찮을 것 같아서 말이오. 아들! 그치?”
“전 일단 차 한 잔 마실게요.”
능연은 아버지를 무시하고 고풍스러운 찻장에서 여요(汝窯) 찻잔을 꺼내 뜨거운 물로 안을 행군 뒤 어머니에게 차를 부탁했다. 도평은 유리 숙우(熟盂)를 살며시 들어 버건디색 차를 찻잔에 따라주었다.
“2002년에 나온 숙성차야. 차 좋아하는 사람들이 평상시에 마시는 차지. 아버지가 뭐라 하든 신경 쓰지 마. 진료소는 자기가 알아서 하면 되고, 넌 병원에서 열심히 공부하면서 기술을 연마하면 돼.”
도평의 목소리가 뒤로 갈수록 처졌다. 아무래도 젊은 나이에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가 생각났나 보다. 능연은 똑바로 앉아 묵묵히 차를 음미했다.
능결죽은 쭈뼛거리며 녹두 케이크 하나를 새하얀 접시 위에 올려 차 탁자에 올렸다.
“나도 마누라님의 말에 동의한단다. 능연아, 넌 의술을 잘 갈고 닦으렴. 이른 시일 내에 자유로우면서도 봉급도 많이 주는 주임급 의사가 되어야 해. 그때 되면 우리 진료소에 네 이름이 적힌······.”
능결죽은 손으로 사각형을 허공에 그렸다.
“알겠어요.”
능연이 또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쿵! 소리와 함께 마당 대문이 열리는 찌걱 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의사 선생님 계세요?”
2층에서 차를 마시던 세 사람은 누가 마당에서 목청 높여 소리 지르자 금세 불안해졌다.
“문제가 생긴 것 같군. 내가 내려가서 보지.”
능결죽은 의술 쪽으로는 문외한이지만 진료소 경영만큼은 전문가였다. 능연은 찻잔을 내리고 아버지를 따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