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층.
환자는 칼국수집 사장이자 주방장인 남자였다. 수건으로 감싼 손에서 새빨간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같이 온 아르바이트생은 옆에서 어쩔 줄 몰라 소리만 질렀다.
늙은 웅 선생이 뒤뚱거리며 마당에 뛰어나왔다.
“십 년 넘게 면을 썬 양 사장이 손을 썰어?”
웅 선생이 돋보기를 끼고 손 상태를 살펴본 뒤 뱉은 첫 마디였다.
“칼이 도마에서 떨어질 때 머리가 어떻게 됐는지 손을 뻗어서 잡았습니다.”
양 사장이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이어서 말했다.
“피가 많이 흐르는데, 이거 멈출 방법 없을까요?”
그는 십여 년 동안 면을 썰면서 손을 다친 적도 많았다. 이 골목에서 장사를 오래 해왔으니 하구 진료소의 수준도 이미 파악하고 있어서, 이곳에서 지혈만 하고 큰 병원에 가서 치료를 부탁할 생각이었다.
웅 선생은 이 상황이 당연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허, 정신없는 사람이네! 일단 내가 봐줄게. 구급차는 불렀어? 상처가 깊지 않아도 병원까지 걸어가지 마라! 그러면 피가 더 나올 거야.”
능연은 계단에서 이 말을 듣고 자기도 모르게 손으로 눈을 가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명색이 진료소인 곳에서 칼에 베인 응급 환자를 두고 먼저 생각한 것이 치료가 아니라 트랜스라니. 정말, 하구다웠다.
망설일 틈이 없었다. 능연은 곧바로 1층에 걸린 흰 가운을 입으며 환자에게 다가갔다.
“제가 치료해 드리겠습니다.”
그가 결정을 내리는 순간, 시스템에서 알림이 떴다.
-스타터 퀘스트: 실력 발휘
퀘스트 내용: 양충수의 손을 치료한 뒤 만족스러운 예후 얻기
퀘스트 보상: 초급 보물 상자 1개
능연은 시스템의 기습적 알림에 이미 적응이 되어 잠시 멈칫했을 뿐, 금방 아무렇지 않게 해야 할 일을 했다. 삐쩍 마른 웅 의사는 능연을 힐끗 보기만 했다.
“연자 씨, 환자 있으니 어서 내려와 보소!”
웅 의사는 은퇴한 지 10년이나 되었지만 갓 졸업한 실습생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잘 알기에 능연에게 그 어떤 도움도 바라지 않았다.
연자는 하구 진료소의 간판 간호사이자 유일한 간호사였다. 90kg 정도인 그녀는 두 사람이 하는 만큼의 일을 할 수 있었다. 낡은 나무 바닥에서 ‘쿵쿵쿵’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연자가 이쪽으로 빠르게 다가오고 있나 보다. 그녀의 발소리는 듣는 사람에게 특이한 안정감을 주었다.
“뭐 하면 되나요?”
연자의 목소리는 발소리만큼 힘찼다.
“양 사장 상처를 다시 처리할 거라네.”
웅 의사는 양 사장을 데리고 처치실에 들어가며 구경하러 온 사람들을 내쫓았다. 능연은 그 틈을 타 처치실에 들어섰다. 칼에 베인 상처라면 오늘 온종일 십여 차례 처리했으니, 웬만한 치료는 자신 있었다.
진료소의 처치실은 보통 주사를 놓거나 실밥을 풀 때 사용했다. 대형 병원이 부근에 있는 경우, 사람들은 접수 대기를 불사하고 응급실에 봉합을 받으러 가지만, 실밥을 풀 때는 접수하고 진찰받는 것을 귀찮아하니 말이다.
물론, 진료소도 보건당국의 규정에 따라 창상 드레싱이나 소독에 필요한 장비를 갖추어야 했다.
웅 의사는 느긋하게 양 사장이 손에 두른 수건을 풀었다. 능연은 옆에서 홀로 봉합 도구가 들어 있는 가방을 풀었다.
니들홀더, 무구(smooth) 포셉, 유구(toothed) 포셉. 티슈(tissue) 포셉, 동맥(artery) 포셉, 직선형과 곡선형 의료용 가위, 타울 클립(towel clip)······.
능연은 하나하나 확인했다. 외과 처리 중 가장 쉬운 편에 속하는 봉합이라도 기구는 하나도 빠지면 안 되니까.
“내가 빨리 처리해주지. 일단 소독부터······.”
웅 의사가 손을 씻고 과산화수소수 용액을 양 사장의 손에 부으려는 찰나.
쏴아악.
능연이 수도꼭지를 켜고는 규정에 따라 7단계 손 씻기를 시작했다. 웅 의사는 사레에 걸렸지만, 간신히 기침을 참았다.
“능연아, 소독 뒤에 지혈만 하면 된다.”
세상에는 말로 설명하기 힘든 것도 있는 법이다. 웅 의사에게 해줄 말이 없으니 능연은 미소로 회답했다.
웅 의사는 피가 흘러넘치는 손을 뿌리치고 능연이 무엇을 하려는지 캐물을 수 없었다. 그는 다시 양 사장의 손에 시선을 옮기고 소독약을 뿌렸다.
“칼에 베인 상처라서 괴사 조직 제거는 쉬울 거라네. 다만 상처가 깊다 보니, 근육을 다쳤을 수도 있겠어. 운화 병원에 가서······.”
“여기부터 제가 맡겠습니다.”
능연은 웅 의사가 소독 절차를 마치자마자 장갑을 낀 채 스툴에 앉아 양 사장의 몸을 돌려 자신을 마주 보도록 했다. 양 사장도 놀랐고, 웅 의사와 연자도 근심 어린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같은 골목에 사는 이웃이니 양 사장은 능연이 의대생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하지만 이론과 실전 사이의 괴리가 얼마나 큰지는 사회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지 않을까.
양 사장은 어금니를 물며 고통을 참았다.
“이거 가벼운 상처 아니지?”
“손바닥 상처일 뿐입니다. 절단되지 않았으니 중상이라고 할 수는 없어요.”
“절단이라······.”
능연은 나름 위로한답시고 한 말이지만 ‘절단’이라는 단어가 양 사장을 불안하게 만들 줄은 몰랐다. 병에 걸린 환자는 보통 자신의 병세를 누가 말해 주지 않아도 어느 정도 파악했다. 반대로 응급실 환자는 모두 예상외의 사고로 다친 것이라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할 수 없기에, 의사가 말하는 대로 믿곤 했다.
양 사장은 불안이 일렁이는 눈으로 웅 의사를 바라보았다. 환자는 의사의 한마디 한마디에 흔들리기 마련이다. 의료 지식이 얼마 없는 사람들이다 보니, 몸과 마음이 위태로워지면 전문가나 전문가처럼 보이는 존재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평상시라면 대형 병원에 가서 상처를 처리했겠지만, 피가 줄줄 흐르는 상처를 붙잡고 10km를 이동하는 것은 지금 상황에서 모험처럼 느껴졌다.
“능연아, 대형 병원으로 옮기는 게 좋지 않을······.”
웅 선생의 말을 뒤로하고 능연은 이미 포셉을 들고 치료를 시작했다.
“아얏!”
“데브리망을 먼저 한 다음, 마취 후 수술을 해야 2차 감염이 생기지 않습니다. 조금만 참아 주세요.”
능연이 고개를 돌려 연자를 찾았다.
“연자 누님, 2% 리도카인을 1%로 희석해 주시고, 과산화수소수와 요오드도 준비해주세요.”
괴사 조직 제거와 봉합은 병원에서 계속 보고 실천한 터라, 절차에 따라 차례대로 해나갈 수 있었다.
연자는 웅 의사가 가만히 있는 것을 보고는 능연의 지시대로 움직였다. 웅 의사는 능연이 틈도 주지 않고 의료용 가위로 작업을 바로 시작해 버리자 반대할 타이밍도 놓쳐 버렸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망설일 틈이라도 있었을 텐데, ‘마스터급 봉합술’로 1분 이내에 몇십 번 봉합할 수 있는 능연이다 보니 틈을 찾기 힘든 것은 당연했다.
사실 양 사장의 상처는 심각했다. 건파열(腱破裂)은 손의 정상적 기능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제대로 봉합하지 않으면 앞으로 힘이 들어가지 않아 정교한 조작을 해야 하는 손 작업이 힘들어지기도 한다. 운화 병원의 응급실에 보냈어도 주치의가 수부외과에 치료를 맡길 수준이었다.
양 사장의 상처를 의사 시점으로 판단한다면 문신한 불량배들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이었겠지만, 능연에게는 별 차이가 없었다. 그가 얻은 마스터급 봉합법은 운화 병원 대다수 의사의 실력보다 몇 배나 좋은 것이 당연한 얘기겠지만.
건 봉합은 운화 병원 응급 의학과 의사들에게 크나큰 도전이고, 수부외과에게는 흔히 처리하는 업무이고, 능연에게는 식은 죽 먹기였다.
칼국수 집의 주방장인 양 사장은 십여 년 동안 손재주로 먹고살아 손 기능이 반드시 온전해야 했다. 병원에 간다면 이상적인 봉합 치료를 받거나 평균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능연은 자신의 기술이라면 수술 후 부작용이나 합병증이 발생할 확률을 최저치로 낮출 수 있다고 믿었다.
응급실보다 속도가 조금 느렸지만, 그는 봉합에 열중하며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봉합은 끝났고 이제 드레싱할 차례예요. 상처는 항상 깨끗하게 해주시되 물이 닿지 않게 조심해 주세요. 약을 바르실 때는······.”
웅 의사는 넋을 놓고 봉합 과정을 지켜보았다.
운화의대 다니면 실력이 이 정도로 늘 수 있나? 하지만 실습 생활을 마치고 졸업한 뒤, 병원에서 표준화 훈련생으로 2년을 보내고 레지던트로서 2년을 보내도 홀로 이런 봉합을 해내기 힘들 텐데.
능결죽은 흥분했는지 연신 손을 비볐다.
“아들아, 네 수준이면 진료소에서 일해도 되겠구나!”
의사가 아니어도 본 것은 많아 실력 정도는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웅 의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봉합 과정을 지켜보았으니 걱정할 것도 없었다.
“실습해야 하는데요?”
능결죽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가는 봉급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웅 의사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봉급은 한 푼도 빠지면 안 되네.”
“허!”
능결죽이 반론을 하려는 순간, 누군가의 외침이 들렸다.
“아버지! 아버지! 어디 계세요?”
건장한 체격의 남성이 빠른 속도로 달려왔다.
“이제 걱정할 필요 없다. 봉합이 잘됐거든.”
양 사장은 절반 정도 붕대로 감긴 손을 들고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구급차 부르지 않았어요? 왜 이런 곳에서 봉합한 겁니까!”
아버지가 불안해 보이니 아들은 더욱 긴장해 눈을 부릅떴다.
“진료소에서 봉합 잘해줬는데 무슨 또 병원이야.”
같은 골목에서 사는 이웃이다 보니, 양 사장은 괜히 미안해져 작은 목소리로 아들을 타일렀다.
“호야, 너무 걱정하지 말고······.”
“걱정 안 할 수 있겠습니까! 손이 망가지는 건 인생이 걸린 큰일이라고요! 이 조그마한 진료소가 대형 병원이랑 수준이 같겠습니까?”
양호는 눈을 부라리며 흰 가운을 입은 웅 의사와 능연을 번갈아서 쳐다보더니, 시선을 웅 의사에게 고정했다.
“상처가 심각하지 않습니까? 진료소에서 손을 치료하다니요! 저희 아버지께서는 손으로 먹고사신다고요! 손이 원래처럼 돌아오지 않으면 평생 책임지실 각오나 하고 계세요.”
웅 의사는 턱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흐렸다.
“정상 기능이란 건 참 정의하기 어려운······.”
이때, 능연이 손을 탈탈 털었다.
“봉합 끝났습니다. 수술은 순조롭게 진행됐으니, 병원에 데려가셔서 검사받아보셔도 좋아요. 수술 후에는 물리치료를 잘 받으셔야 합니다. 그래야 정상으로 회복될 가능성이 커지거든요.”
양호의 심기는 더욱 불편해졌다.
“회복이 안 될 가능성도 있다는 말씀이네요.”
눈살을 찌푸린 능연이 무슨 말을 하려던 참에 능결죽이 가로막았다. 아들의 성격은 아버지가 잘 아는 법이니, 능결죽은 아들의 등을 잡고 뒤로 끌어당기며 재빨리 양호에게 말을 걸었다.
“그럴 수도 있지만, 그 확률은 매우 낮단다. 로또에 당첨될 확률 정도랄까? 회복 불가능 같은 그런 일이 정말 생긴다면, 그때 다시 처리할 방법을 생각해보자고.”
그 말을 들은 양호는 조금 누그러들었다. 자신의 아버지를 저주하는 꼴이 되니, 회복이 안 될 가능성이 크다는 대답을 기대할 수는 없지 않나.
“호야, 하구 진료소도 개업한 지 몇십 년이 된 엄연한 의료시설이란다. 이 골목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이웃을 치료했는데, 언제 문제 생기는 것 본 적 있니? 우리 진료소는 확신 없는 일을 억지로 하진 않아.”
능결죽의 말은 느긋하면서도 설득력이 넘쳤다.
양호는 화가 다시 조금 사그라들었다. 하구 진료소가 아무리 작다 하더라도, 골목 사람들을 치료해 준 엄연한 진료소였다. 자신도 대학 다니기 전에 조금이라도 아프면 이곳에 들락날락했었다.
“네 아버지 상처는 심각하지도 가볍지도 않아. 구급차가 오지도 않았고, 오는 길에 차가 막힐지도 모르는데, 우리가 그 시간 안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 하지 않겠어? 피를 줄줄 흘리게 놔둘 수는 없잖아.”
의학의 의자도 모르는 능결죽이건만 지금 이 순간은 오랜 경험이 있는 의사처럼 보였다.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우리가 못 미더우면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가서 재검사받아봐. 괜찮다고 생각될 때 진료소에 와서 치료비 내주면 되고. 어때?”
능결죽이 자신의 어깨를 토닥이며 배려해주니 양호는 더는 신경질을 낼 수 없었다.
“말은 참 잘하시네요.”
그는 잠시 생각한 뒤 말을 이었다.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가서 당신네 치료를 수습할 수 있는지 보겠어요. 문제없으면 그냥 넘어가겠지만,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다면······.”
그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화가 풀리지 않은 채 아버지를 진료소 문 앞의 휠체어에 들어 올리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멀어졌다.
연자가 팔짱을 끼고 쫓아가려고 하자 능결죽이 가로막았다.
“신경 쓰지 마. 이웃 상대로 장사하는 거니까, 나중에 돌려받으면 되지.”
진료소 경영 30년. 웬만한 문제는 전부 겪어 봤으니 이 정도의 일 갖고 흔들릴 리 없었다.
능연은 대문을 보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저 사람들이 검사를 다 마쳐야 퀘스트가 종료되겠구나.
다음 날.
능연은 어제처럼 운화 병원의 응급실로 출근했다. 실습생은 관리 규정에 따라 의사처럼 정시에 도착해서 출퇴근 카드를 찍어야 했다.
능연에게 어제와 다른 것이 있다면, 바로 어머니가 만든 점심을 들고 왔다는 점이었다.
도평은 주방과 낯선 사이였다. 한정된 시간을 그림, 음악, 춤, 다도, 전통의상 만들기, 사진, 자수 등 무한한 취미에 투자해야 하니 매일 반복해야 하는 집안일을 할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얼굴이 아름다운 만큼 학습능력도 좋아, 아주 가끔 요리한 음식을 먹어보면 ‘어제 같은 그릇으로 먹었던 건 개밥이었나?’ 싶을 정도로 실력이 좋았다.
그녀는 자신이 만든 도시락을 장려상처럼 능연에게 하사했다.
중국 전통 문양이 그려진 3단 칠함에 구운 소고기와 거위 고기, 소시지, 상추, 청경채, 감자, 옥수수, 아보카도, 베르가모트, 드래곤후르츠, 밥이 가지런히 들어가 있었다. 그 위에 간장, 식초, 후추, 고추기름, 겨자까지 더해져 음식에 색을 입혀주니, 모양새만으로도 충분히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맛도 겉모습만큼 좋았다. 도평이 무언가를 마음먹고 하면 그 누구보다도 진지해졌다. 유일한 단점이라면 가끔 집안 통장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건데······.
“능연 씨, 이리 좀 와봐.”
사무실 문 앞을 지키고 있던 주 선생이 능연이 다가오는 것을 보자마자 손을 흔들었다.
“무슨 일이신가요?”
능연은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도시락을 올려두고 흰 가운으로 갈아입었다.
주 선생의 표정이 심각했다.
“주임님께서 우리를 불렀어. 난 네가 정말 의대 실습생인지 몰랐거든. 어제 네가 치료한 모든 환자를 다시 검사하셨다네. 아이고, 조금 더 일찍 말하지 그랬어.”
“어제가 실습 첫날이었습니다.”
능연은 역시나 병원의 암묵적 규칙을 알지 못했다. 마음씨 좋은 주 선생은 자신의 이마를 치기만 하고 더는 따지지 않았다.
“내 탓이지 뭐, 제대로 물어봤어야 했는데. 난 네가 봉합하는 걸 보고 연수받으러 온 의사인 줄 알았거든.”
같은 ‘공부’라는 목적으로 운화 병원을 찾아왔더라도, 실습생과 연수받는 의사의 실력과 지위는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다. 주 선생은 능연에게 설명할 틈도 주지 않고 바로 재촉해댔다.
“잡담은 인제 그만. 주임님께서 질문하면 모른다고 대답하지 말고 네가 봉합을 괜찮게 해서 시킨 거라 말해야 해, 알았지?”
“네.”
능연의 대답이 너무 간결하고 시원해서 오히려 주 선생의 말문이 막혔다.
“넌 겸손도 부릴 줄 모르니?”
“겸손이요?”
“내가 너한테 지금 이렇게 말하라는 것도 너를 책임져 주려는 거잖아.”
주 선생은 손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됐다 됐어. 주치의가 위탁하면 실습생도 직접 치료를 해볼 수는 있으니까. 주치의의 감독과 권한 부여 없이 네가 치료했다면 너랑 나, 쌍방 책임이야. 그러니까 반드시 내가 너에게 권한 부여를 했다고 대답해야 한다?”
아주 명확한 설명에 능연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치료는 교수님의 권한 부여와 감독하에 진행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렇지! 힘 빼도 돼. 나중에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동료가 될 수도 있잖아. 너 봉합 정말 잘하더라, 학교에서 배운 스킬은 아니지? 경험 있어 보이던데.”
“집안에서 운영하는 진료소에서 일을 좀 도왔을 뿐입니다.”
능연이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밖에 없었다.
“진료소를 운영하는 집이구나! 진료소 이름은?”
“하구 진료소입니다.”
주 선생은 이 특이한 이름을 마음속으로 외우면서 외국인이 운영하는 개인 진료소인지 궁금해했다.
응급 의학과 주임 곽종군은 얼굴이 쭈글쭈글한 나이 든 의사였다. 그는 질문 몇 개만 던지고는 금방 능연을 풀어주었고, 주 선생에게는 감독 관리를 잘하라는 말만 했다.
주임 사무실에서 나오자, 능연과 주 선생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쉰 뒤 서로를 마주 보며 웃었다.
“주임님은 예전에 군의관이셨어. 일할 때 항상 효율을 우선시하시지. 그렇다 해도 방심하지는 말도록.”
능연을 잘 감독하라는 당부를 들었으니, 주 선생은 어쩔 수 없이 몇 마디 늘어놓았다. 능연은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휴우. 의사는 다 재능이라는데, 네가 가진 재능은 정말······, 정말 좋더라.”
부럽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 주 선생은 10년의 노력 끝에 주치의 자리를 얻게 됐다. 그동안 직급은 아주 조금밖에 오르지 않았고, 이제야 실력이 조금씩 늘어나는 단계에 들어섰다. 그런 그가 보아도, 능연의 봉합 기술은 정말 하나의 경지에 도달한 정도였다.
어떤 기술이든, 모종의 ‘경지’에 이른다는 것은 매우 고된 일이었다. 의학처럼 사람 목숨이 달린 일이라면 연습하기 더욱 힘드니, 아주 미세한 발전도 의사는 스스로 대단하게 여겼다.
능연의 실력은 나중에 그가 봉합만 해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로 좋았다. 줄곧 엄격하게 의사들을 관리해왔던 곽 주임이 능연에게 문책하지 않으면서 도리어 자신에게 지속적인 감독과 권한 수여까지 부탁한 것만 봐도, 이 실습생의 실력은 자명했다.
어마어마한 천부적 재능 덕분에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이 의대생이 그 정도의 봉합술을 터득한 것이겠지.
주 선생은 감탄을 마치고 어떻게 농땡이를 칠지부터 궁리했다.
“주임님께서도 동의하셨으니, 이제부터 봉합하러 오는 환자는 모두 자네에게 맡기지.”
능연은 바로 승낙했다.
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며 응급실에 들어섰다.
바깥에서 대기하던 레지던트와 실습생은 주 선생을 따라 처치실에 들어가는 능연을 몹시 부러워했다.
같은 시각, 양호가 아버지 양충수를 데리고 운화 병원의 수부외과 전문의 진료 대기 번호표를 받았다.
운화 병원은 운화 시에서 가장 유명한 병원이었다. 종합적 실력도 우수했지만, 수부외과의 실력이 특히나 출중해 업계 안팎의 인정을 받았다.
아버지의 재검사를 위해 들르는 것이니, 선택은 당연히 운화 병원이었다. 지극히 높은 명성이 혀를 내두를 만큼 환자가 많았는데, 다른 지역에서 온 환자도 있었다.
양호는 마누라에게 번호표를 미리 뽑아두라고 먼저 보낸 뒤, 아버지가 탄 휠체어를 밀며 수부외과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손을 뻗고 있거나, 움켜잡고 있거나, 무언가로 감싸고 있는 환자들만이 잔뜩 모여 있었다.
양호는 시끌시끌한 인파에 들어서자 현기증을 느꼈다.
“사람이 왜 이리 많지?”
양충수는 아들과 달리 오히려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나만 그렇게 조심성 없는 줄 알았냐. 일상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건 손이니까 그만큼 다치기도 쉽겠지. 칼국수를 오래 썰다 보면 가끔은 다칠 수도 있어.”
밤새도록 가족의 질책에 시달리다가 지금 동병상련의 ‘친구’를 보니 마음이 어느 정도 놓이면서 희망도 생겼다. 양호는 입술에 살짝 웃음기가 생긴 아버지를 보며 어이없어했다.
“아버지는 손으로 떨어지는 칼을 받아서 다치신 거잖아요. 좁아터진 진료소에서 봉합까지 받으시고. 그래서 여기 온 거예요.”
“사실 봉합 잘된 거 같아. 어제 응급실에서도 별문제 없다 하지 않았어?”
입으로는 이렇게 말했지만 양충수도 여전히 조금 불안했다.
“응급실에 있는 의사는 아버지의 상처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제대로 봐주지도 않았잖아요. 흥! 조그마한 음식점이니까 아버지께서 주방장을 하면서 사장까지 할 수 있었죠. 큰 음식점에 가면 주방장으로 받아주지 않을걸요? 같은 논리로 진료소랑 대형 병원은 비교할 수 없어요. 골목에 있는 하구 진료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곳에 오면 의사들 신발 들어주는 일도 맡지 못할걸요?”
“아비가 작은 음식점 열어서 창피하다는 말을 하는 거냐? 너를 별 탈 없이 키워 놓은 게 누군지 까먹었나 본데, 내가 널 제대로 안 키웠으면, 너도 하구 진료소의 단골이 됐을 거야.”
식당 사장은 말싸움에서 지는 법이 없었다. 양호는 아버지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하구 진료소의 휠체어를 힘차게 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