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8화 (8/877)

모든 사람이 응급실 문 옆에 줄을 섰다.

“교외의 모 공장에서 폭발사고가 일어났습니다. 보일러가 유발한 사고로 추정되고, 지금 현장 피해자들이 이쪽으로 이송되고 있습니다.”

응급 의학과 주임 곽종군이 차분한 목소리로 소란을 잠재웠다.

운화 시 같은 공업 도시에는 워낙 사고성 손상 환자들이 많다 보니, 응급 의학과에는 대응 절차가 이미 마련되어 있었고, 레지던트들도 이런 상황을 꽤 많이 겪어 보아 익숙했다.

유일한 신인인 능연은 처음 혼자서 물 마시는 기린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육식 동물의 습격보다는 어떻게 다리를 벌려서 몸을 낮춰야 하는지 걱정하는 어린 기린처럼 말이다.

나이가 들면서 점차 못생겨져도 자상한 성격은 변함없는 주 선생이 능연을 발견하고는 웃으면서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주었다.

“능연아, 넌 나만 따라다니면서 내 지시대로 일을 처리하면 된다.”

능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주 선생은 마음 놓고 능연에게 봉합을 맡길 수 있었다. 하지만 환자의 문제는 변화무쌍하니 경험이 부족하면 잘못 치료할 가능성이 매우 컸다. 프라모델은 레고와 달라 조립할 때 저지른 실수를 나중에 수습하기 힘들었다. 같은 원리로 의사도 실수하면 소름 끼치게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다. 그들에게 모든 환자는 한정판 프라모델인 셈이었다.

능연은 주 선생 뒤에서 숨을 고르며 쉴 새 없이 바빠질 그 순간만을 기다렸다. 30초 후, 저 먼 곳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준비하도록.”

곽종군이 침착하고 근엄하게 말했다. 그에게 지금 이 순간은 일상의 일부였다. 어떤 일에 몸과 마음을 다하는 나날도 ‘일상’이 될 수 있었다. 병원도 병원이지만, 인생 자체부터 정신력과 체력을 많이 요구하니까.

능연의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처음으로 공식 트랜스포머 피규어를 샀을 때도 이랬던 것 같다.

첫 번째 구급차가 눈 깜빡할 사이에 입구에 도착했다. 구급차 안에 누워 있는 피범벅이 된 몸이 보였다.

“응급환자 구역으로.”

곽종군은 재빨리 상태를 파악해 지시를 내렸다. 첫 번째 그룹이 한 치의 망설임 없이 환자 곁에 다가갔고, 그들의 하얀 가운은 금세 빨간 피로 물들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입구를 지키며 다음 구급차를 기다렸다.

곧이어 구급차가 차례대로 몰려왔다. 네 번째 구급차부터 피해자가 스스로 차에서 내려올 수 있자, 곽종군의 지령도 그때부터 ‘처치실로.’로 바뀌었다.

주 선생은 능연을 끌고 다섯 번째 구급차를 맞이했는데, 능연은 총 6명의 피해자를 만났다. 눈썹 쪽의 피부가 찢겨 갈라진 상처가 이중 가장 심각해 보였다.

“데브리망과 수처를 해야겠군.”

주 선생은 겉보기에 엄숙해 보였지만, 속은 고요한 호수처럼 평온했다. 능연이 자기 팀에 있다는 것은 무조건 편하게 일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능 선생님, 처음부터 너무 힘 빼지 마세요. 구급차는 계속 몰려올 거니까요.”

왕가가 수술 준비를 하며 능연을 타일렀다.

오늘은 능연이 운화 병원에서 실습을 시작한 뒤 가장 바쁜 하루였다. 구급차까지 왔으니······. 그는 하얀 이빨 드러내며 웃었다.

“그럼 좋죠.”

10명을 치료해야 초급 보물 상자를 얻을 수 있으니, 환자가 모자라 퀘스트를 못 끝낼까 걱정했던 능연이었다. 구급차가 밀려오면 당연히 좋을 수밖에.

왕가는 능연이 이런 반응을 보일 줄 몰라 잠시 경악했지만, 곧이어 ‘능 선생님은 역시 멋진 척하는 남자들이랑 달라.’라고 감탄했다.

이때, 평범한 외모에 연차도 부족한 레지던트가 환자로 가득한 처치실을 둘러보며 물었다. 이 레지던트의 이름이 뭔지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다.

“환자가 더 오면 다 응대 못 할 거 같은데요.”

“센터에서 우리 쪽으로 환자를 당분간 보내지 않을 거야. 하지만 그것도 상황에 따라 다르지.”

사람들이 ‘주’라는 성까지는 기억해주는 주 선생이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제 일반 환자는 안 보내더라도, 중증 환자가 너무 많으면 결국 우리한테 보낼 수밖에 없을 거야. 또 환자 가족이 요구한다거나 환자 스스로 우리를 찾아오면 우리가 책임져야 해.”

“이번 사건 피해자들은 전부 우리 병원으로 몰리겠죠.”

도와주러 온 레지던트가 입을 삐죽였다. 운화 병원은 운화 시뿐만 아니라, 소속된 성에서도 최고의 의료수준을 자랑했다. 한참 기다려야 순서가 오는 외래진찰을 받으러 먼 곳에서 찾아오는 환자도 있는 마당이니, 응급 상황이 생기면 가장 먼저 생각날 수밖에 없었다.

“현재 상황으로 봤을 때, 다른 진료과로 이송될 환자는 바로 이송될 거야. 아무리 바빠도 버티는 방법밖에 없어. 환자가 왔는데 다른 병원에 가라고 내쫓을 수 없잖아? 나중에 운화 병원 등 대형 병원은 항상 과부하 상태로 운영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겠지. 경험을 쌓으면서 체력 배분하는 방법이랑 급선무를 구별하는 방법을 터득해야 해, 알겠나?”

주 선생은 몰려오는 일에 놀랄 나이가 아니어서 말하는 목소리도 태연했다. 레지던트는 그 말을 듣고 똥 씹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능연이 불쑥 튀어나와 질문했다.

“책임진 환자를 다 처리하면 다른 팀을 보조해도 되겠네요.”

주 선생은 고민해 본 적 없는 일이라 질문을 듣자마자 의아해했다. 내 일 끝나면 쉬면 되지 않을까. 매일 힘들어 죽겠는데, 쉴 땐 쉬어야 하지 않을까.

“도와준다는 사람을 막을 사람은 없겠지.”

주 선생은 실습생 장려 차원에서, 그리고 실습생과 간호사 앞에서 중년 남성의 능글거림을 감추기 위해서 이렇게 대답했다.

“그럼 우리도 속도를 냅시다!”

주위에 있던 레지던트들은 능연의 말에 피가 끓어올랐는지, 모두 정신을 번쩍 차렸다. 하지만 주 선생은 한마디로 레지던트들의 꿈을 깨부쉈다.

“능연아, 넌 얌전히 날 따라와.”

주 선생이 평범한 실력의 의사라고 과소평가하면 안 된다. 그래도 병원에서 십여 년 동안 일했으니, 사람 보는 눈은 정확했다. 능연이 스스로 일반 봉합 치료를 잘 완성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기에 그가 단독으로 봉합하는 걸 허락한 것이다.

그것은 매우 중요한 과정이라, 대부분 1년 차 레지던트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방금 꿈이 산산조각이 난 평범한 레지던트만 해도, 주 선생은 그가 단독으로 데브리망 하는 걸 불안해했다.

능연이 안심할 만한 데브리망을 홀로 진행할 수 있다는 건, 새로운 문제를 만들지 않으면서 업무 스트레스를 분담할 능력이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평범한 레지던트는 아직 주 선생의 지도 감독이 필요하고, 때로는 일일이 가르쳐야 할 수도 있어서, 주 선생으로서는 직접 하는 게 차라리 낫다고 생각했다.

처치 시간이 짧을수록 결과가 좋게 나오고 환자의 불만도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법이었다. 게다가 경험 없는 사람에게 주의해야 하는 포인트를 일일이 집어줄 필요도 없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여섯 환자의 상황을 보아하니 업무량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면 능연조차도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할지도 몰랐다.

환자는 공장 폭발사고의 피해자라 여러 곳에 상처를 입었을 것이고, 오염물의 종류도 다양할 것이다.

주 선생은 수술용 글러브를 낀 뒤 눈썹 쪽을 다친 환자부터 세척을 시작했다. 그는 우선 수술용 알코올로 상처 부근의 기름 얼룩을 닦아낸 뒤 상처를 덮은 거즈를 새것으로 바꾸었다. 이어서 의료용 솔에 항균 소독액을 묻혀 세심하게 피부를 닦아 멸균 증류수로 소독액을 씻어냈고, 다시 솔로 피부를 문지른 뒤 소독 거즈로 상처를 닦았다.

익숙한 절차라도 다 끝내니 10분이 훌쩍 지났다. 고개를 들었을 때, 능연은 벌써 옆 침대에 누워 있던 환자의 자잘한 다리 상처를 봉합해놓았다.

“능연아, 이 환자 봉합해줘.”

주 선생은 아예 능연을 불러다 일을 맡기고는 옆 침대로 가서 방금 능연이 한 봉합을 검사했다.

치료를 빨리 끝내려고 하다가 실수하는 일이 종종 있다 보니, 능연도 그랬을까 봐 걱정된 탓이었다. 하지만 능연의 봉합은 보면 볼수록 놀랍기만 했다.

환자의 다리에는 폭발 잔해를 맞아 생긴 상처로 가득했다. 열 곳이 넘는 상처는 깊이와 크키가 다 달랐는데, 능연은 상처의 상황을 전부 파악해 봉합법을 바꿔가며 봉합을 했다.

능연은 한쪽에 매듭을 짓는 단순 단속 봉합과 창상을 연속으로 연결한 뒤 마지막에 매듭짓는 단순 연속 봉합을 상황에 알맞게 사용했고, 가장 크고 깊은 창상은 십자 봉합법을 사용해 X자로 연결했다.

그중 제일 놀라운 것은 무릎 밑 상처에 사용한 제륜 봉합이었다. 수술방에서는 자주 사용되지만, 응급실에서는 보기 힘든 봉합이었다. 단순 연속 봉합을 한 뒤 그 위에 봉합사를 서로 맞물리게 다시 봉합하는 거라 어렵기도 하면서 시간과 체력을 많이 소모해야 했다.

제륜 봉합은 연하고 얇은 피부에 사용하기 좋기도 하지만, 움직임이 많은 부위에 최적이었다. 하지만 의사들은 제륜 봉합을 하는 대신 ‘많이 움직이지 말라’는 말로 제륜 봉합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문제를 해결하곤 했다.

주 선생은 자신이 봉합 교육을 받는 느낌이었다. 능연의 봉합은 사실 참관 교육 때 본 것보다 훨씬 나았다. 상처와 알맞은 봉합법을 사용했으니 환자에게 어떤 문제도 생길 리 없었다.

무릎 쪽 창상에는 제륜 봉합을, 장력이 강한 창상에는 십자 봉합법을, 길이가 긴 창상에는 단순 단속 봉합을, 표면에 생긴 창상은 단순 연속 봉합법으로. 적절하게 봉합법을 바꾸어가며 치료 시간을 단축해 환자의 고통까지 줄여주었다.

기술을 많이 터득해야 선택을 더 정확하게 내릴 수 있는 것인가. 능연은 역시 의사가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었다.

“의사 선생님, 봉합 잘된 거 맞죠?”

의사가 하도 쳐다만 보니, 환자는 슬슬 불안해졌다.

“문제없다 못해 너무 잘됐습니다. 혹시 사진 찍어도 될까요? 실습생에게 예시를 보여줄 때 사용하고 싶을 정도네요.”

이런 말을 들을 정도라면······. 환자는 한시름 놓았다.

주 선생은 곁에 있던 왕가를 불러 사진 찍어 달라 부탁한 뒤 눈썹 쪽을 다친 사람을 확인했다. 능연은 한참 전에 캣것(catgut, 양의 장점막에서 뽑아낸 실)으로 봉합을 끝냈다.

‘에스테틱 실’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 봉합사는 인장력이 약해 응급실처럼 시간에 쫓기는 곳에서는 자주 사용되지 않았다. 특히 나이 든 의사일수록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일념이 강해서 상처가 다시 벌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에만 신경 쓰다가 흉터의 크기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또한, 봉합사가 가늘수록 바느질 수가 늘어나야 하니 보통 때보다 봉합에 시간이 더 걸렸다.

능연은 스스로 판단했을 때 적합한 것 같아서 사용했던지라 시간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주 선생은 능연의 봉합을 본 뒤 쓴웃음만 지었다.

“개인 병원에서 캣것을 사용하면 1cm 당 1,000~2,000위안을 받아야 해.”

능연은 눈썹을 치켜세웠다.

“제가 이익을 창출했다는 말씀이신가요?”

“환자분께 미리 말씀 안 드렸지?”

능연은 고개를 저었다.

“귀찮을 것 같으니 그냥 일반 봉합사의 비용으로 청구해. 나중에 내가 곽 주임님께 보고 드릴게.”

눈썹 쪽을 다친 젊은 청년은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후 연신 감사를 표시하면서 개인 병원의 장삿속을 비난했다. 그래놓고 속으로는 이익 창출을 운운한 능연을 조롱했을지는 모를 일이었다. 주 선생은 그저 웃기만 했다.

“능 선생님을 만나셔서 그런 겁니다. 다른 의사였으면 환자분의 상처를 이렇게 잘 봉합할 수 없었을 거예요. 이런 봉합이 아무리 짧고 쉬워 보여도 오랜 시간의 연습이 뒷받침해주어야 가능합니다.”

“그럼 흉터도 안 남겠네요? 저 아직 여자친구 없거든요.”

청년은 쑥스러워하면서 뒷말을 덧붙였다.

“흉터 안 생겨요.”

왕 간호사는 열심히 능연의 봉합을 옹호해주었다. 이 와중에 능연은 청년을 보며 진지하게 한마디를 해주었다.

“그렇다고 여자친구 사귀는 데 도움도 안 됩니다만.”

“능 선생님, 그런 말은 하는 거 아니에요.”

왕가는 허리로 옆에 있는 능연을 살짝 밀치면서, 웃음을 참으려고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침대 위에 누워 있던 청년은 폭발 사고만큼이나 큰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능연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입을 열었다.

“봉합사가 끊어질 수 있으니 표정 주의하세요.”

옆을 지나가던 두 실습 간호사들이 자신들도 모르게 속도를 늦추었다.

“능 선생님은 정말 세심하셔요.”

이어서 젊은 간호사들의 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끝났습니다.”

능연은 능숙하게 니들을 꼬아 봉합사를 거두었다. 그는 드레싱을 시작하자마자 주의사항을 환자에게 읊어주었다.

“다음 환자 들어오세요.”

“다음 환자는 없어요. 6명 모두 치료 완료입니다.”

왕가가 끼어들었다.

“벌써요?”

“능 선생님이 너무 빠르신 거예요. 주 선생님께서는 이제 두 번째 환자를 치료하고 있는걸요.”

왕가는 능연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며 쳐다보다가 마음을 들킬까 봐 고개를 숙였다.

잘생기고 상냥하고 능력 있고······. 재능과 미모를 겸비했으면서 예의까지 바른 이 남자가 바로 진정한 꽃미남이지 않을까.

능연은 그제야 퀘스트 진행도가 (3/10)으로 변한 것을 발견했다. 봉합한 환자의 수와 일치했다.

응급실에 기회가 많은 것은 사실이었다. 신경외과 같은 경우 뇌수술할 때 두피를 드러내고 두개골을 열면 한 시간이 지난다. 밤을 새워서 수술하는 일이 잦으니, 레지던트가 수술에 참여하게 되면 세컨드 어시스턴트조차도 온종일 밖에서 대기만 해야 했다.

“그럼 다른 환자를 봉합하러 가겠습니다!”

능연은 주먹을 쥐고 일어섰다.

“능연아, 잠깐만.”

주 선생은 다급하게 격리 커튼을 살짝 들어 올렸다.

“네가 직접 찾으러 가지 말고, 간호사한테 일을 찾아 달라고 부탁해.”

“왜죠?”

“네가 인파 속에서 수처할 사람을 고르면 사람들이 다 네 주위에 몰리지 않겠니?”

굳이 그럴 필요 있나 생각하던 능연은 그 말에 곰곰이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

처음에 도착한 구급차 환자만으로도 응급 의학과 의사가 모두 출동했다. 운화 병원뿐만 아니라, 다른 우수한 대형 병원도 같은 상황일 것이다.

공장 폭발사고는 워낙 대형 사건이라 응급센터에서 무조건 환자를 대형 병원으로 이송시켰다. 하지만 워낙 대도시라 응급 환자는 다른 곳에서도 속출했다.

들어오는 구급차의 수는 줄었지만, 환자들은 여전히 응급실로 몰려들었고, 폭발 사고 피해자가 아니더라도 똑같이 초조해하고 있었다. 보통 때에는 빨리 치료를 받을 수 있겠지만, 오늘 같은 날은 모든 게 불확실한 게 사실이었다.

지금 바깥에는 적어도 20여 명의 환자가 환자 수보다 많은 보호자와 함께 애를 태우며 치료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가 현장에 가서 환자를 골라 치료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 짓은 살이 오른 양이 굶주린 늑대 소굴에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니.

“그럼 전 이곳에 남는 게 좋을까요?”

“그래. 넌 여기에 가만히 앉아서 기다려. 왕 간호사, 환자를 찾아와줘요.”

주 선생은 이 말을 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어깨에 살짝 힘이 들어갔다. 자신이 왠지 선배 의사의 가치를 발휘한 것 같아 조금 자랑스러웠나 보다. 방금 능연의 봉합을 본 뒤로 선배로서 부담감을 느낀 그였다.

왕 간호사는 미남을 도울 수 있어 매우 즐거웠다.

“그럼 제가 사람을 찾으러 갈게요. 어떤 환자를 찾으시는지 알려주세요.”

“봉합이 필요한 환자면 좋겠어요. 예를 들어 예상치 못한 상처로 조직이 찢어진 사람 말이죠. 아, 그리고 최대한 빠르게 치료를 끝낼 수 있는 환자면 좋겠습니다.”

주 선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준을 잘 세웠군. 급급하게 새로운 시도를 하면 안 돼.”

능연이 마주한 적 없거나 특수 환자를 고르면 골치 아파진다. 봉합에 재능있다 해도 이제 실습을 막 시작한 의대생이니, 복통이 심한 응급 환자가 충수염인지 오래된 변비인지 판단할 정도의 경험치는 없었다.

능연이 증상이 가벼운 환자를 찾으니 주 선생도 마음이 놓였다. 원래 일 배우는 레지던트도 쉬운 것부터 시작해 점차 어렵고 복잡한 문제로 경험을 쌓았으니까.

“담당 의사한테 내 이름 얘기해.”

왕가는 알겠다며 환자를 찾으러 나섰다.

처치실에서 돌아다니는 환자는 보통 다 경증 환자였다. 병원과 의사의 기준에 따라서 ‘경’과 ‘중’의 판단법이 달라지겠지만, 운화 병원은 일단 뇌경색, 심근경색, 팔다리 절단 등을 중증으로 여겼다.

하지만 환자도 자신의 병을 그렇게 여길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금물이었다. 누군가는 고양이에게 물리는 일도 대형 사건으로 생각해 SNS에 올려 친구의 친구에게 알리기까지 하니까.

왕가는 능연이 말한 조건에 알맞은 환자를 신경 쓰며 찾았다. 그녀는 가장 먼저 발견한 어깨 부상이 있는 건장한 남자를 파란 커튼으로 가려진 침대에 보냈다. 2cm 정도 되는 상처에서 출혈은 거의 그친 상태였고, 어깨에 난 상처다 보니 이보다 처리하기 쉬운 상처는 없었다. 능연은 순조롭게 데브리망과 봉합을 마쳤다.

책도 여러 번 읽다 보면 뜻을 저절로 알게 되는 듯, 의술도 마찬가지였다. 인간 근육 조직의 강도나 피부조직의 탄력을 제대로 파악하고 싶으면 끊임없이 환자를 실제로 접촉해야 했다. 이렇게 충분한 경험이 있어야 봉합 시 손에 힘을 얼마큼 주어야 하는지 판단을 내릴 수 있었고, 바로 이 판단력이 외과 의사의 생명이었다. 한두 바늘로 해결할지 아니면 아예 절단할지는 이론 지식과 경험을 종합해서 내려야 하는 결정이었다.

난제는 심장 수술이나 골드바흐의 추측(Goldbach's conjecture)처럼 수많은 간단한 문제가 한 곳에 뭉친 경우였다. 처음부터 어려운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 쉬운 문제를 많이 풀고 나서야 난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능력이 비로소 생기는 법이다.

능연은 판단력이 아닌 기술만 얻었다. 기술은 판단의 난도를 조금 낮춰줄 수 있을 뿐이지, 외과 의사가 갖추어야 하는 판단력은 결국 끊임없는 실천을 통해서 경험을 쌓아야 강화되는 것이다.

어깨 봉합은 복잡하거나 힘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유사한 봉합을 수백 번하면서 할 때마다 다른 점을 발견해야, 나중에 실제 수술할 때 환자의 위를 너무 작게 봉합하거나 장을 너무 많이 남기거나 하지 않는다.

능연은 지금 다시 눈썹 다친 사람을 봉합하라고 하면 반드시 인장력 있는 봉합사를 선택해 상처 열개 가능성을 낮출 것이다. 마스터급 병렬 봉합술은 환자의 표정이 다양하다는 것까지 알려주지 않았다.

“상처 위치가 조금 특이하네요, 어쩌다가 다치셨죠?”

주 선생이 자신이 책임진 환자의 치료를 마친 뒤 능연의 환자에게 물었다. 실습생의 치료를 감독 관리하는 것이 업무 일부라 신경 쓰는 것이지, 사서 고생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감독 대상이 능연이라 신경을 곤두세울 필요가 없어 잡담을 좋아하는 버릇처럼 물었을 뿐이다.

근육질 남자는 얌전히 대답했다. 그의 어깨 쪽 피부가 니들에 따라 살며시 떨렸다.

“벽에 박힌 나사에 긁혔습니다.”

“인테리어 중이셨나요?”

주 선생은 예전에 비슷한 환자를 만나본 적이 있었다. 건장한 남자는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마누라랑 옥상에서 빨래를 널 때 바람에 날린 옷을 피하려다가······. 파상풍 주사 같은 건 안 맞아도 되나요?”

주 선생이 작은 목소리로 감탄했다.

“새로운 케이스군요.”

“네?”

“음······.”

주 선생은 턱을 만지작거리다 말을 이었다.

“상처가 깊지 않으니 파상풍 주사는 안 맞아도 됩니다.”

“그래도 주사 한 방 놓아주세요. 그리고 의사 선생님. 혹시 몇 바늘 더 봉합해주셔도 될까요? 심각해 보이지 않으면 돌아가서 또 일해야 해요. 빨래 널면 또 다칠 수도 있고.”

남자는 진심을 담아 부탁했다.

“능연아, 십자 봉합법으로 봉합해드려라.”

주 선생은 비슷한 일을 겪어봤는지 이야기를 듣자마자 능연에게 지시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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