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10화 (10/877)

전화를 끊은 노금령은 손에 든 맥주병을 내려놓고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신발을 고쳐 신으면서 덤덤하게 말을 꺼냈다.

“이취야. 오늘 누가 똥개네 나이트 급습한다고 그러지 않았어?”

황갈색 미니 승합차가 정수로에 있는 주차장에 속도를 줄이며 멈췄다. 뒤를 바짝 따르던 검은색 혼다 오토바이도 날렵하게 방향을 틀어 승합차 왼쪽에 멈춰 섰다.

노금령은 헬멧을 젖혀 올리고 앞쪽에 번쩍이는 KTV ‘순금’의 네온사인 간판을 바라봤다. 이취는 핸드브레이크를 내린 다음 창문을 내렸다.

“노루야, 똥개는 우리랑 지킬 건 지키는 사이니까. 넌 구경만 하고 끼어들지 마라.”

“알았어, 걱정할 거 없어.”

노금령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대답했다.

“어휴, 약속한 거다? 넌 들어가지 말란 말이야. 횡단보도 건너기만 해 봐. 바로 네 오빠한테 전화할 거야.”

이취는 운화에서 유명한 양아치로 벌써 스물여덟이나 되었다. 온종일 노루야, 노루야 하며 노금령을 따라 다녔는데, 주요 임무는 소식책 겸 보디가드였다.

그는 열세 살부터 과거에 수산물 도매 시장이라고 불렀던 어시장을 어슬렁거렸다. 그때 시장의 보스는 취왕(臭王: 냄새왕)이었고, 그 아래 취자 붙은 부하들이 수두룩 있었다. 이취는 취자가 앞에 붙은 항렬에 들지 못했고 따로 숫자 2를 붙여 만든 이취라는 닉네임으로 그 바닥을 누비기 시작했다.

나중에 경찰이 어시장 불량배를 소탕했을 때 이취는 나이가 어려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그 후로 그 생활이 점점 재미없어졌고 나이가 들수록 안정된 직업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에 노금령네 노점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생선도 팔고 배달도 했다. 그러면서 가끔 수산 시장 밖에 노점을 차리는 상인들을 위협하는 재미로 지냈다.

그러다가 노해산의 직계도 아니고 주먹으로 밥 먹고 싶은 생각도 없던 그에게 노해산이 여동생의 보디가드를 맡겼다.

오토바이 위에 비스듬히 앉은 노금령은 긴 머리를 쓸어 넘기고 옷깃의 지퍼를 끌어 올리면서 씨익 웃었다.

“횡단보도 건널 때 오빠한테 전화하면 늦지 않겠어?”

“사고 치지 말자, 응?”

이취는 한때 주먹 쓰던 기세를 전혀 느낄 수 없는 모습으로 실실 웃었다. 사실 노금령도 그가 아무 짓도 하지 않길 바라고 있었다. 노금령은 길 건너에 번쩍거리는 ‘순금’이라는 간판을 바라봤다.

“우선 짱뚱어한테 전화해 봐. 왜 아직이야.”

“버스 타고 오느라 좀 늦을걸? 7시에 배달하느라 태우러 못 갔어.”

노금령은 지루한 듯 핸드폰을 꺼냈다. 삼십 분 넘게 기다리자 머리를 붉게 염색한 짱뚱어가 나타났다. KTV도 점점 시끌벅적해졌다.

“이제 들어갑니까?”

“아니, 우린 그냥 불구경.”

짱뚱어가 흥분해서 하는 말에 이취가 고개를 저었다.

“불구경도 들어가서 해야죠.”

공을 세우고 싶어 안달 난 짱뚱어가 발을 동동 굴렀다. 그는 아직 스무 살도 되지 않았고, 이름을 날리기에 딱 좋은 시기였다.

이취는 술배를 문지르며 들어가기만 해보라고 눈을 부릅떴다.

“불구경이 아니라, 불나게 때려줄 테니까 그렇게 알아.”

노금령은 아무 말 없이 핸드폰을 만지다가 가끔 고개를 들어 KTV 입구를 힐끔거렸다. 그리고 얼마 후, 맞은편 빌딩에서 드디어 오래 기다리던 고함과 함께 싸우는 기척이 들렸다. 벌떡 일어나서 고개를 빼고 봤더니, 곧 KTV에서 뛰쳐나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렇게 무리로 움직이는 사람들 말고 분명 몸 어딘가를 누르며 비틀비틀 혼자 나오는 녀석들이 있기 마련이었다. 둥지를 털린 매 무리 중에 길 잃은 귀여운 것들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가자!”

노금령은 승합차 문을 열고 해물 담는 큰 수레를 가리키며 끌고 나오라고 눈짓했다. 용도는 모르지만, 두 사람은 그의 뜻을 따랐다. 수레를 끄는 일이야 시장에서 매일 하는 일이었다.

노금령은 긴 다리로 성큼성큼 내디디며 빠른 속도로 주차장을 벗어났다. 곧 화려한 셔츠를 입은 불량배를 발견했는데 그는 피투성이가 된 채 가로등에 기대 힘없이 앞을 보고 있었다.

“끌고 와.”

“뭐?”

“수레에 태우라고!”

“아니, 왜?”

짱뚱어와 이취 모두 눈을 껌뻑였다. 특히 이취는 의아하게 여겼다. 불구경만 하면 되는데, 노금령이 왜 저러는지 알 수 없었다. 싸움 구경이란 상류 사회 사람들이 오페라를 즐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느긋하게 감상만 하면 되지 직접 나서는 건 저급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잠시 생각하던 노금령은 다친 사람을 막무가내로 끌고 가는 건 너무 치사한 것 같단 생각에 직접 가로등 쪽으로 다가갔다.

“차로 병원에 데려다줄 수 있는데, 병원비 낼 돈 있어요?”

“넌 노루? 노루왕도 오는 건가?”

노금령을 알아본 남자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병원 갈 거냐고요.”

“전화 걸어서 돈 가지고 오라고 할게요.”

그가 입은 화려한 셔츠는 피와 흙으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불량배는 한참 만에 핸드폰을 꺼냈다.

“신형 아이폰이네. 됐어. 1,000에 해줄게. 짱뚱어, 지갑 좀 뒤져봐.”

“600위안 정도 있어.”

노금령의 생각을 읽은 짱뚱어는 재빨리 움직였다.

“이취, 차용증 하나 끊어주고 병원에 데리고 가. 우리 배달할 때 쓰는 거 있잖아. 2,000위안, 아니, 할인해 줄게요, 1,600위안만 내요. 핸드폰은 나한테 맡겨 놓고. 오케이면 사인하고, 싫으면 다른 사람 찾지 뭐.”

오빠 밑에서 이삼 년 동안 해온 일이라 말도 술술 나왔다. 이취도 늘 쓰던 차용증이라 술술 써서, 가로등에 기댄 채 손으로 상처를 누르고 있는 불량배에게 건넸다.

“이름이 뭐냐?”

“불닭.”

“불닭? 아니, 이름이 뭐냐고! 민번이랑.”

불닭은 잠시 멈칫하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싸움도 웬만큼 끝났고,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도망가거나 아니면 적을 뒤쫓아서 근처엔 아무도 없었다. 승패가 어찌 되었는지 몰라도 상처 입고 남은 사람들은 알아서 할 수밖에 없었다. 건달 사회에서 싸움 난 다음 뒤처리해준다는 소린 들은 적도 없고, 다들 알아서 구급차를 부르던가 아니면 택시를 타고 가거나, 그것도 아니면 경찰차를 타고 갔다.

구급차는 기본요금이 50위안에 1킬로에 7에서 10위안이 붙고 어떤 건 기사 비용과 돌아가는 비용도 붙고, 의사나 간호사까지 있으면 출장비도 붙는다. 택시나 경찰차는 비용이 별로 안 들지만, 피를 차에 흘렸다간 잘못하면 세차비를 내야 한다.

피를 따라 몸에 힘이 서서히 빠져나가고 있음을 느낀 불닭은 더 기다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왕길, 신분증은 지갑에 있고.”

힘없이 말하는 불닭의 말에 이취는 웃어 보이고는 차용증에 적고 사인을 받고 피로 지장까지 찍었다.

“짱뚱어, 컴온.”

“예압!”

힘차게 부르는 이취의 말에 짱뚱어도 정신을 퍼뜩 차렸다.

돈도 벌고, 얼마나 좋단 말인가. 그는 힘차게 수레를 끌고 주차장으로 가서 생선을 넣을 때처럼 뒷좌석을 눕히고 불닭을 태운 다음 차 문을 닫고 수레를 끌고 돌아갔다.

이취는 차용증을 하나 더 써서 불소라는 사람의 사인과 지장도 받았고 짱뚱어가 다시 그를 차에 태웠다.

“금노루 님! 이거 되게 좋은 생각인데? 아무나 네 명만 태워도 한 번에 만 위안이야. 핸드폰이나 시계로 더 벌 수 있고.”

“전엔 노루라고 부르더니 돈이 보이니까 이제 금노루 님이냐?”

흥분해서 꽥꽥대는 이취의 말에 노금령은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몰랐다.

“나야 늘 아가씨처럼 모셨잖냐. 금노루 님, 역시 머리가 빨리 돌아가. 앞으로 생선 배달하지 말고 인간 배달이나 하자.”

돈이 벌리니 쪽팔릴 것도 없었다. 게다가 노금령이 아니면 이런 방법으로 누가 돈을 벌까. 차나 사람 조달은 둘째 치고, 습격 소식을 알아내는 것보다 중요한 건 물건을 맡아주고 사인받은 차용증을 현금으로 바꾸는 일이었다. 그들 뒤에 노루왕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불량배들은 보통 현금을 들고 다니지 않는 데다가 당장은 사인하고 지장 찍어도 나중에 빌린 사실을 인정한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러나 노루왕 돈을 고작 몇천 위안 떼먹을 사람은 없었다. 노루왕도 분명 자기 여동생이 새로 뚫은 사업 루트를 지지할 것이다.

“일단 많이 안 다친 사람부터 골라.”

노금령이 저쪽에 있는 다리 다친 사람을 가리켰다. 사실, 많이 다친 사람일수록 그들의 제안에 더 솔깃하겟지만, 고작 실습생인 능연이 심하게 다친 사람을 잘 치료할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치, 가벼운 상처가 좋지. 안전하잖아. 그리고 자리도 덜 차지해서 두어 명 더 집어넣을 수도 있어.”

이취도 고개를 끄덕였다. 곧 그들은 평소에 생선을 담던 승합차에 불량배 다섯 명을 태우고 시내를 달렸다.

“운화 병원으로 가.”

노금령은 오토바이에 자물쇠를 채운 다음 짱뚱어를 뒷좌석으로 내쫓고 조수석에 탔다. 이취는 액셀을 밟으면서 룸미러로 뒷좌석을 바라봤다.

“금노루 누님이 마음이 좋아서 그렇지, 우리야 너희들 가까운 아무 병원에 던져놓고 2,000위안 받아도 된다고. 안 그래?”

뒷좌석에 있는 불량배들은 다 같은 패거리가 아니라서 서로 눈을 부릅뜨고 욕설을 내뱉던 중이었다.

“금노루 누님이 얼마나 좋은 사람이냐? 이렇게 너희를 병원에도 보내주고, 돈도 빌려주고 말이야. 3개월에 이자는 10%. 싸지? 동의하면 사인하고 싫으면 내려.”

불량배들은 그저 몇 마디 투덜대다가 사인했다. 안 그래도 돈도 별로 없고, 치료받으려면 돈은 있어야 하는데 어디에서 빌리나 다 같았다.

“운전 좀 빨리해요. 서두르면 한 번 더 할 수 있단 말이야.”

짱뚱어가 안절부절못하며 재촉해도 이취는 신이 나서 활짝 웃었다. 노루왕도 소액 대부업을 하고 있었다. 돈을 빌려주면 이자를 받는 건 당연했다.

환자를 보낼 때마다 능연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노금령도 미소를 지었다.

늦은 밤, 운화 병원은 어렴풋한 불빛 아래 거대한 종교 조각상처럼 우뚝 서 있었다.

사람들은 환하게 빛나는 조각상 주변에서 조각상을 에워싸고 웃고 울고 고함치면서 자신의 두려움과 무기력함, 분노, 슬픔과 기쁨을 호소하고 있었다.

새벽 시간대 병원은 산부인과가 제일 바빴고, 그다음은 수술실이었다. 응급실이 바쁠지 아닐지는 운에 달렸다.

공장이 폭발하는 일이 벌어진 날을 좋은 날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일선 레지던트와 주치의는 말할 것도 없고 이선 주치의와 부주임도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심지어 삼선 주임 의사들도 모두 응급실에 남아야 했으니까.

새벽이 다 되어서야 의사들은 속속 응급실에서 나가 각자 알아서 음식을 찾아 먹었다.

다른 사람보다 일찍 나온 곽종군은 스트레스받는 응급실이 아닌 비교적 수월한 처치실로 향했다. 처치실에 들어가자마자 당직 레지던트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수군거리는 게 보였다.

“몇 사람째야?”

“적어도 50.”

레지던트 하나가 갱신되는 전자 차트를 보며 중얼거렸다.

“한숨도 안 잔 거야? 젊음이 좋군. 잉? 보고서 쓸 여유까지?”

“옆에 실습생 안 보여? 쟤가 쓰고 있잖아.”

“실습생 주제에 실습생을 부리는 거야?”

레지던트들은 처치실에 있는 능연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겉으로는 놀라고 빈정거려도 속으로는 부러워 죽을 지경이었다. 끝내주는 봉합 실력은 둘째 치고, 왕성한 스태미너가 더 놀라웠다.

수술을 연달아 열 시간이나 한 능연이 여전히 기운 넘쳐 보여서,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놀랍기만 했다.

곽종군은 레지던트 몇의 얼굴을 훑어봤다.

“너희들은 일 안 하고 여기서 뭐 하냐?”

“아, 곽 주임님!”

“주임님, 오셨습니까.”

당직을 서던 건 모두 막내들이라 곽종군을 보자마자 화들짝 튀어 올랐다.

“저희가 일을 안 하는 게 아니라, 환자들이 다 능 선생을 지명해서요.”

“아니 발 마사지샵도 아니고······.”

곽종군은 레지던트 사이를 뚫고 처치실을 지나, 간이침대 쪽으로 간 다음 능연의 등 뒤에 서서 상황을 자세히 살폈다. 지쳐서 잠들었다가 간호사가 깨우는 바람에 눈을 뜬 주 선생이 인사하려 하자 곽종군이 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능연은 두 시간 전에 스태미너 포션을 마신 참이라 체력이 한창 왕성할 때였다. 지금까지 환자를 52명 봉합하고 초급 보물 상자를 다섯 개 얻었는데 모두 스태미너 포션이 나왔고 그전에 얻은 보상까지 해서 총 6병이 됐다.

그 정도 수량을 얻었으니 하나쯤은 먹어보자 싶었다. 시큼들큼한 것이 막걸리 맛 같았지만 효과는 매우 특출했다. 능연은 하룻밤 푹 자고 일어난 기분으로 일하는 중이었다. 그의 동작은 정확했으며 바늘은 힘차고 안정적이었다.

곽종군은 심사하는 눈빛으로 날카롭게 허점을 찾으려고 그를 바라봤다. 전쟁도 겪은 나이 든 종군의인 그는 욕심을 부려 속도를 내는 의사의 결과가 어찌 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능연의 봉합 기술이 기준에 부합하고 환자도 인정한다 해도 태클을 걸어 눈앞의 젊은 의사를 제대로 눌러줄 생각이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의사도 굴리는 만큼 성장하니 말이다.

곽종군은 그런 마음과 진지하기 짝이 없는 눈빛으로 환자의 상처를 살폈다.

국부 마취 위치, 정확하군. 당연해. 상처 주변을 깨끗이 정리한 것도 필수고. 상처 끝을 잘 맞물린 것도 나쁘지 않군. 단속 봉합술도 뭐라 입 댈 것이 없군.

곽종군은 세부를 살핀 다음 전체를 다시 살폈지만 아무리 봐도 교과서에 실린 사진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야말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표준에 가까웠다.

봉합 표준을 보여주는 사진이 실린 교과서는 병원 안 도서관뿐 아니라 온 세상에 널려 있었다.

그리고 응급 의학과 주임인 곽종군은 사진처럼 봉합하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임을 잘 알고 있었다.

일단 응급실에 들어오는 환자부터 교과서에 실린 것과 다른 다양한 상처를 가지고 온다. 게다가 두세 바늘만 꿰매면 되는 작은 상처도 위치나 상처 깊이, 조직 형태에 따라 달라진다. 교과서에 있는 모양을 대충 모방하기도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그리고 응급실에 오는 환자는 다 ‘응급한 환자’다. 상처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아프다고 고함치는 환자를 유심히 관찰하고 살필 여유가 없다. 응급실 의사들은 대부분 상황이 되는 대로 상처를 꿰맸고, 특히 나이 많은 의사들은 치료만 중시하지 겉모습 따위 아랑곳하지 않아서 두꺼운 실로 지네를 기워내듯 막 꿰매는 의사도 많았다.

그런데 능연은 열 몇 시간 동안 50여 명 봉합해 오면서 아직도 표준에 가깝게 꿰매고 있었다. 트집을 잡으려던 곽종군의 마음도 봉합되었고, 인재를 아끼는 마음이 화산처럼 치솟았다.

처음에 주 선생이 능연을 소개했을 때 단지 그의 젊음과 숙련도에 놀랐다면 오늘은 철저히 그를 인정했다. 이토록 정교하게 봉합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 연습했을까. 게다가 50명 넘게 연달아 봉합하면서도 이런 정밀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탁월한 마음가짐과 책임감이 있다는 뜻이었다.

잠깐만, 오늘 봉합 환자가 50명이 넘었다고?

곽종군은 얼굴을 찡그리며 곁에 있는 주 선생에게 어디 사고가 또 생겼냐고 물었다.

“사고가 아니라, 누가 환자를 계속 보내고 있습니다.”

한참 옆에서 긴장하고 있던 주 선생은 곽 주임이 화를 내는 게 아니라서 한숨 돌렸다. 곽종군은 그를 아무 말 없이 바라봤다.

환자를 당연히 누가 보내지, 아니면 하늘에서 떨어지냐?

“바로 이분입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주 선생이 노금령을 찾아냈다.

“금노루 헬스 서비스 컴퍼니입니다.”

막 하루 일을 마치고 살짝 지쳐 있던 노금령은 곽 주임의 드문드문 난 머리카락을 힐끔 쳐다보고 나른하게 입을 열었다.

“금노루?”

“환자 이송 회사입니다.”

곽종군은 머릿속에서 그 이름을 더듬었다. 노금령은 이취와 상의하고 만들어낸 업종을 입에 올렸다. 오빠 노해산보다 훨씬 더 쉽게 돈을 버는 노금령은 그날, 앞으로 그 사업을 정식으로 해보기로 단호하게 결정 내렸다. 그래서 금노루 헬스 서비스 컴퍼니라는 이름이 탄생하기에 이른 것이다. 노금령은 더욱 다정한 눈빛으로 능연을 바라봤다. 이 진지한 남자가 큰돈까지 가져다줄 줄이야.

환자 이송이라는 말에 곽종군은 입을 다물었다. 불법 택시는 병원, 특히 응급 의학과에서 관여하고 싶지 않은 이슈였고 그도 예외가 아니었다.

“주 선생, 능연의 수술 기록을 한 번 살펴보게. 앞으로 며칠 동안 실밥 풀고 새로 약 바르러 오는 환자들의 상황을 살피다가 별문제 없으면······.”

곽종군은 말끝을 길게 늘이다가 천천히 다시 입을 열었다.

“능 선생 자네는 오늘 하루 쉬고, 내일 일찍 나와서 하루 동안 내 수술방에 들어오게.”

그 자리에 있던 레지던트들은 할 말을 잃고 서로의 얼굴만 바라봤다.

실습생이 수술방에 들어간다고? 이건 완전히 로또잖아.

매듭을 묶은 능연은 고개를 들어 주 선생 한 번, 곽종군을 한 번 바라봤다.

“오늘 한 건 다 데브리망이라 문제없을 겁니다.”

“그래야지.”

능연의 말투에서 오기를 느낀 곽종군은 그도 나름 오기를 부리면서 더는 능연을 지켜보지 않고 고개를 돌려 집으로 돌아갔다. 그와 동시에 능연의 눈앞에 시스템 안내가 떴다.

- 새로운 성과: 연속 50 봉합 완성 및 허가

- 보상: 중급 보물 상자

능연은 바로 보물 상자를 열지 않고 우선 집으로 돌아간 다음 방에서 상자를 열었다. 은색 보물 상자에서 은빛이 감도는 스킬북이 튀어나왔다.

- 1급 스킬북: 기초 스킬을 그랜드마스터급까지 끌어 올릴 수 있음.

능연은 저도 모르게 턱을 문지르며 생각에 잠겼다. 시스템의 레벨 중 ‘그랜드마스터급’은 ‘마스터급’을 넘는 최고 기술 상태였다. 마스터급의 단속 봉합술도 대단한데, 더 높은 ‘그랜드마스터급’이란 어떤 수준일까.

하루 동안 관찰한 결과, 운화 시에서 가장 좋은 대형 삼갑 병원 중 하나인 운화 병원에도 붕합 기술이 마스터급에 드는 의사는 몇 없었다. 범위를 넓혀 전체 운화 시를 봐도 몇 없으리라. 그럼 그랜드마스터급 봉합술을 얻을까?

능연은 그런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하나의 기초 스킬을 그랜드마스터급까지 끌어 올리는 것이라고 스킬북에 아주 명확하게 설명되어 있으니 마스터급 봉합보다 다른 스킬을 완벽하게 올리는 게 나았다. 능연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스킬북을 열었다.

슉 하고 뇌리에 스킬북이 펼쳐졌다. 스킬북 맨 위에 기초 내과와 기초 외과, 선택 항목이 있었다. 기초 내과는 회색이고 기초 외과는 반짝이고 있었다. 반짝이는 기초 외과를 선택했더니 선택 항목이 여섯 개 있었다.

- 노출++

- 절개++

- 분리++

- 지혈++

- 봉합++

- 배농++

“다 외과 기본 기술이네.”

의과 대학에 입학했을 때 기본 항목을 모두 배웠다. 책마다 다르게 분류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비슷했다. 이론상, 이 여섯 가지 기본만 잘 터득해도 외과 명의가 될 수 있었지만 일반적으로 한두 항목이 부족해서 보통 의사에 머물고 말았다. 의과대 학생은 졸업하기 전에 봉합 하나만 잘해도 상당히 괜찮은 새싹 축에 들었다.

처음 사용하는 데다가 스킬북의 가치도 잘 알지 못한 능연은 순서대로 클릭하지 않고 가장 필요한 항목인 ‘지혈’을 눌렀다. ‘지혈’을 선택한 순간, 이 메뉴에서 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는 걸 깨달았다.

- 조작성 지혈+

- 개입성 지혈+

- 이화 지혈+

- 외복용 지혈약+

네 개의 항목이 보이자, 능연은 잠시 고민하다가 ‘조작성 지혈’을 선택했다. 분류 선택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네 개의 항목이 더 펼쳐졌다.

- 결찰 봉합 지혈+

- 압박 지혈+

- 열 지혈+

- 맨손 지혈+

이래서 이 스킬북이 ‘1급’인가 보네. 스타터 패키지만큼 파격적이었다면, 어쩌면 더 높은 레벨인 그랜드마스터급 ‘조작성 지혈’을 얻을 수 있었을 텐데. 그렇다면 응급 의학과에서 얼마나 유용하게 쓰일까. 나중에 수술실에서 쓸 땐 그야말로 물 만난 고기 같겠지?

하지만 그보다 하나 아래 레벨이라도 상당한 수준이었다. 어쨌든 별로 힘들이지 않고 중급 보물 상자를 얻기도 했고.

능연은 ‘맨손 지혈’을 클릭했다. 이번엔 항목이 펼쳐지지 않았다. 금빛이 번쩍이며 맨손 지혈 뒤에 그랜드마스터급이라는 표식이 따라붙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내용을 깨우쳤다.

결찰 봉합 지혈을 선택하지 않은 것은 스킬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결찰 봉합도 봉합 기술을 응용한 것일 테고 그저 방법이나 기술만 늘어날 것 같아서 선택할 가치가 없어 보였다. 나머지 압박 지혈이나 열 지혈도 괜찮아 보였지만, 기본적으로 의료 기기가 필요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응급 의학과에서 기기를 사용할 수 있기까지 얼마나 더 걸릴지 모른다. 그러니까 맨손 지혈이야말로 그가 당장 써먹을 수 있는 기술이었다. 의학 영역엔 좋고 나쁨의 구별은 없고 쓸모 있고 없고 차이만 있다. 게다가 맨손 지혈은 심도 있는 수술을 할 때 심장의학과, 신장의학과에서도 자주 쓰이는 기술이었다.

능연은 손을 뻗어 환자의 신장을 손바닥으로 쥐었다고 상상하며 엄지와 검지를 가지런히 두고 손가락 사이의 압력 균형을 잡고 지혈할 수 있도록 압박했다. 마스터급으로는 이처럼 여유롭지 못했을 것이고 전문가급이었다면 이런 식으로는 잘못하면 후유증을 유발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능연은 비몽사몽 잠들었다가 아침 식사 시간에야 깨어났다. 네댓 시간밖에 못 잤지만 상쾌한 데다가 푹 잔 느낌이 들었다. 1박2일 동안 백 명을 봉합하고 잠든 지 몇 시간 만에 에너지가 충만해지다니, 스태미너 포션의 효과는 참으로 대단했다.

앞으로 스태미너 포션만 충분히 있으면 잠잘 시간도 아낄 수 있을 것 같았다. 혹은 다른 용도도 있을 것 같은데, 어디다 쓸 수 있는지 아직 알 수 없었다.

세수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 아들 나왔네. 다들 보라고, 이게 내 아들이야. 양 사장 고친 게 바로 내 아들이라니까.”

능결죽은 한 손을 허리춤에 대고 다른 손은 수액을 맞고 있는 이웃들 쪽으로 휘둘러댔다. 수액을 맞고 있는 사람들은 꼼짝없이 능연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능연은 그래도 태연했다. 도평이 문학소녀 같은 부르주아라면 능결죽은 큰소리치는 재미로 사는 사람이었다. 능연은 유치원 때 처음으로 큰 상을 받았을 때, 그 점을 깨달았다.

“칼국수 집 양 사장, 손이 아주 깔끔하게 나았잖아. 거의 정상적으로 멀쩡하게 쓸 수 있대. 식구들도 기뻐서 난리야. 동네 사람들도 그 이야기를 듣고는 며칠 동안 너 한번 보자고 기다리고 있었단다.”

능결죽은 사실 허세를 떨고 있었다. 능연이 진료실을 들여다보니 환자가 한 사람도 없었다.

“자자자, 이리 와 앉아라. 어차피 오늘 오후에 쉬잖니.”

“제가 진료 본다고 해도 웅 선생님 월급은 나가는 데다가 제 보수까지 주셔야 할 텐데요?”

“집안일인데 그런 게 어디 있냐? 봐라, 손님도 확 늘었잖니.”

잠시 할 말을 잃었던 능결죽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말을 꺼냈다.

“환자가 손님은 아니죠.”

능연은 의사가 된 후, 그런 단어에 민감해졌다. 능결죽은 멍해지더니 곧 웃음을 터트렸다.

“의학은 내가 모른다지만 너는 장사를 몰라. 너도 생각해보렴. 진료받으러 오는 사람이 환자라고 불리길 바라겠니, 손님이라고 불리길 바라겠니?”

이번엔 능연이 멍해졌다.

“우리 진료소는 말이다, 동네 장사야. 동네 사람 잔병만 고쳐주는 게 아니라 마음도 고쳐주는 거란다. 손님, 하고 부르는 것만큼 이 사람들이 기쁜 게 또 어디 있겠니?”

능결죽은 오랜 시간 걸려 자신이 찾아낸 이치를 진지한 말투로 능연에게 늘어놓았다.

“여보! 그런 헛소리로 내 아들 물들이지 말아요.”

“물들인다니, 무슨 소리예요. 아니야, 아니야. 그냥 있는 대로 이야기할 뿐이지. 의사라는 건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고쳐야 한다니까. 이 말은 맞잖소?”

도평은 피식 웃어 보이고는 아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제 늦게 퇴근했니? 너희 병원도 참. 겨우 실습생인데 너무 굴리는 거 아니니?”

“야근해도 돈도 더 안 주지? 밥은? 병원 것들이 너흴 나귀처럼 부리는 데도 거기에 머리를 못 밀어 넣어서 안달이라니, 참.”

“됐어요, 됐어! 야근을 하니까 수술도 하는 거지. 실습생이라고 다 수술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 연이가 솜씨가 좋아서 그런 거지? 맞지?”

능연은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스터급 봉합술만 해도 솜씨가 좋은 축에 끼는데 이제 그랜드마스터급 맨손 지혈 기술까지 익혔으니 좀 대단해진 기분이었다.

“내 말이 맞았네. 아 참! 연아, 잠시만! 좋은 거 구해 왔어.”

도평은 다급하게 2층으로 올라갔다가 옥패를 하나 들고 내려왔다.

옥이라는데 색이며 느낌이며 냄새며 다 싸구려 같았다. 능연이 그 옥패의 질을 의심하는 것은 매우 합리적인 결과였다.

“영경암에서 구해 온 거야. 문수보살이란다. 원래 너 자격증 시험 칠 때 주려고 했던 건데, 내일 수술한다니 일단 지니고 있어. 이것 봐, 옥중의 옥이라는 화전옥이야. 조각도 좀 보렴. 얼마나 정교한지 말이야.”

도평은 진지한 얼굴로 능연에게 내밀었고 능결죽은 옥중의 옥 같아 보이지 않는 옥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얼마 주고 샀냐고 물었다.

“산 게 아니라, 구한 거예요.”

“얼마에 구했는데?”

“30위안이요.”

“화전옥이 30위안라고? 그 돈으론 한백옥도 못 사겠네.”

“왜 못 사요. 마음이라고요, 마음. 액수 문제가 아니에요. 영경암에서 구한 건데, 주지 스님이 직접 이야기했다고요, 정통 화전옥이라고. 30위안만 받은 것도 다 내 진심을 봐서 그런 거예요.”

“그 주지 스님이 당신 마음을 어떻게 알았답디까? 설문 조사라도 했대요?”

“평소에 도를 닦았으니까요.”

“불교에서도 도를 닦아요? 아, 아들. 어쨌든 귀한 옥패라니 잘 보관하렴.”

갑자기 위험한 기운을 감지한 능결죽은 바로 고개를 돌려 아들을 바라봤고, 능연은 아무 말 없이 옷 안에 옥패를 넣었다.

“예전에 네 엄마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잃어버린 적이 있단다.”

“다이아몬드 목걸이를요??”

“지금 네 엄마 목에 걸린 저거 말이다. 3위안에 네 엄마가 사 온 건데, 난 만 위안이나 들여서 비슷한 걸 찾아냈지.”

“그래도 다이아는 더 적어요.”

도평은 그렇게 말하면서 보란 듯이 목에 걸린 목걸이를 내밀었고, 중심에 있는 다이아몬드가 반짝반짝 빛났다.

“그래요, 내가 부족해서 그래요. 옥패 잘 간직해라. 30위안짜리라고 막 두지 말고. 네 한 달 월급으로는 진짜 화전옥패를 구하지 못할걸?”

“이거 잃어버리면 비슷한 거 구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단다. 똑같은 걸 구했는데, 다이아가 다 가짜지 뭐니. 화전옥패를 잃어버리고 백한옥으로 대신할 순 없잖니?”

능결죽은 화전옥에 힘을 주어 말했다. 능연은 그제야 아버지의 말을 이해했다. 지금 품고 있는 옥패가 돌이든 옥이든, 이제는 진짜 고급 옥이 되어 버린 것이다.

“가격이 참, 빨리도 오르네요.”

“그렇지. 폭등이지.”

능결죽의 표정이 한없이 진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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