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13화 (13/877)

응급실은 종합 병원이 아니니 복잡하고 심각한 위급 환자가 생겼을 때 응급실 의사의 책임은 바이탈 사인을 안정시키고 해당 과로 트랜스 하는 것이다.

출혈이 멈추지 않는다는 건 절대로 안정적인 상태가 아니란 의미였다. 그리고 출혈이 계속된다는 건 상태가 심각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어떻게 했나?”

곽종군은 느긋하게 물었다. 응급실에는 별 해괴한 증상이 다 있고 급해서 속 끓여봐야 해결되는 문제는 없었다. 곽종군의 그런 모습에 주치의 조낙의도 침착해졌다.

“지혈약을 주입하고 얼린 소금물과 노르에피네프린을 사용했습니다. 적혈구와 혈장도 신청했고요. 그리고 도파민도 주사했습니다. 벌써 1400ml 정도 수혈했습니다.”

그의 말을 들은 곽종군은 우선 핸드 라이트로 환자의 동공을 살핀 후 과감하게 대답했다.

“응급 수술 준비해, 시험적 개복술(exploratory laparotomy)로 혈액량을 늘리자고.”

“지금 바로 말씀입니까?”

조낙의는 확신이 서지 않는 듯 물었다. 지금으로선 내부 출혈이 확실한지 알 수 없었다. 실수로 배를 열었다가는 잘못하면 환자 몸에 칼을 두 번이나 댈 수도 있었다.

“목숨부터 구하고 치료해야 할 것 아닌가!”

“쇼크예요!”

곽종군이 이를 악물며 말하는 순간, 간호사가 고함쳤다. 응급실에는 쇼크 환자가 많다지만, 처치 중에 쇼크가 오는 건 그다지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환자를 주시하던 능연은 그때 바로 몸을 돌려 칸막이로 들어가 손을 씻기 시작했다.

“좀 비켜 봐.”

같은 조였던 레지던트가 비집고 들어가 옆에 있는 수도에서 손을 닦기 시작했다. 능연은 살짝 몸을 틀어 자리를 내주고 빈틈없이 손을 씻었다.

“응급실이 바빠지면 하루에 환자를 몇이나 받아야 하는지 몰라. 평소엔 알콜겔로 씻고 그냥 자연 건조해. 그러다가 손 다 짓무른다.”

레지던트는 능연의 진지한 모습을 보더니 좋은 마음으로 한마디 건넸다.

“수술 준비하느라요.”

능연은 간단하게 대답하고 두 손이 뜨겁도록 손을 비벼댔다. 처치실에서 지내는 며칠 동안 환자만 꿰맨 게 아니라, 병원 내부에도 익숙해져 있었다.

“무슨 수술?”

레지던트는 의아한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병원 과실은 모두 팀이 나뉘어 있었고, 팀마다 주임 의사 혹은 부주임 의사가 이끌며 한 명 혹은 그 이상의 환자를 책임졌다. 응급 의학과도 마찬가지로 의사는 팀으로 환자를 담당했다.

실습생은 엄격하게 팀이 정해져 있지 않지만, 능연은 오늘 곽 주임 밑에 있었으니 수술실에 들어가려면 당연히 곽종군의 팀을 따라 들어가야 했다. 레지던트 눈에 곽 주임은 지금 수술실이 아니라 위급 환자 베드 앞에서 정신없이 바빠 보였다.

저런 응급 상황인데, 심부름이나 하면 다행이지 무슨 수술을 한다고. 레지던트는 저도 모르게 입술을 삐쭉거렸다.

환자가 쇼크가 왔다는 건 2급 위중 상황에서 1급 위급 상황이 되었다는 뜻이었다. 위급 환자는 응급실에서 가장 골치 아픈 존재여서, 수술을 한다고 해도 주치의조차 그 수술실에 들어갈 수 있을지 없을지 몰랐다. 다른 말로 이야기하면 위험 레벨이 올랐다는 이야기였다.

능연은 세면대를 벗어나 손을 닦으며 응급실로 돌아가 실리콘 장갑을 꼈다. 진지한 수술은 응급실에서 보기 드물었다. 능연이 손가락을 치켜들고 장갑을 끼는 엄숙한 모습에 의사들이 적잖게 의아해하며 곁눈질했다.

“패기 쩐다, 쩔어.”

위치로 돌아간 레지던트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곽 주임님이 아무리 예뻐해도 위급 환자를 맡길 리가 없잖아. 대체 뭔 생각이래.”

“이제 막 실습생 됐잖냐. 차차 깨닫겠지.”

고개를 돌려 쳐다본 주 선생이 별일 아니라는 듯 한마디 했다.

“쫓겨나지 않으면 다행이지. 출혈 과다로 쇼크 온 상태라 개복을 하냐 마냐, 이러고 있는데 대체 제가 뭐라······. 엄마야!”

“왜 소리를 질러!”

레지던트는 이야기하다 말고 꽥 고함을 질렀고, 깜짝 놀란 주 선생이 상대방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다가 그대로 멍하니 굳었다.

능연이 주치의와 곽 주임 사이에 서서 환자 복부의 열린 상처 안으로 손을 집어넣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을 본 모든 응급실 의사가 놀라 입을 쩍 벌렸다. 기술도 없는 상태에서 바로 손을 쓰다니, 살해 현장인가. 정상적으로 진행하는 수술에서도 이러는 법은 없었다. 레지던트는 폭발하는 곽종군의 모습을 떠올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저런 식으로 명을 단축하는 실습생은 처음이야.”

능연을 옹호해주고 싶어도, 주 선생은 뭐라 둘러댈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놀람 등수를 따지자면 그 장면을 바라보는 의사 중에 곽종군이 1등일 것이다. 이틀 동안 지켜봐 온 바에 따르면 능연은 세심하고 신중한 청년이었다. 곽종군의 상상력이 두 배로 늘어난다고 해도, 능연이 사람 목숨이 달린 응급 처치 중에 갑자기 손을 뻗으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능연! 어서 손 떼!”

환자에게 2차 감염이 일어날까 봐 직접 손을 댈 수 없어서 곽종군은 고함만 쳤다.

“환자 간포막하 출혈 위치가 아주 좋지 않습니다. 봉합하기도 어렵습니다. 빨리 지혈하지 못하면 출혈 과다가 올 겁니다.”

능연은 단 한마디로 자신의 행동을 해명했다. 그의 이유 있는 해명에 곽종군과 조낙의는 모니터만 바라봤다.

“주임님, 피가······ 멎었습니다.”

조낙의는 제가 무엇을 본 것인지 의심하는 표정으로 떠듬떠듬 말을 이었다. 곽종군은 더욱 놀랐다. 능연이 맨손 지혈법을 사용한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응급실, 특히 현장 구급할 때 널리 쓰는 방법이었다. 가장 자주 쓰는 지압법은 두부 출혈 시 측면 동맥을 눌러 경부 출혈을 막고, 경동맥을 눌러 팔의 출혈을 막는 데도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그러나 능연의 말대로 간포막하 출혈이라고 해도 어떻게 위치를 확인한단 말인가. 그리고 어떻게 압박한단 말인가. 맨손 지압을 그 정도로 할 수 있는 의사는 군 병원 안에서도 극히 드물었다.

실습생은 상응하는 실전 경험도 없는데, 대체 어떻게 해낸다고 저런단 말인가. 어떻게 저렇게 간 크게······.

“주임님?”

조낙의가 그를 재촉했다. 시간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환자의 상황은 그야말로 시시각각 변화한다. 곽종군은 유심히 능연을 바라보다가 초시계를 맞추고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능연! 스트레처 카 위로 올라가. 환자 건드리지 않게 조심하고. 조 선생 자네는 나랑 수술실로.”

맨손 지혈로는 대량 출혈을 잠시 막을 뿐이었으니 수술을 해야 한다. 불려온 레지던트 둘이 곽종군의 지휘하에 능연을 스트레처 카 위로 올렸다. 이어서 사람들이 스트레처 카 위의 환자와 능연을 밀어서 수술 안으로 들어갔다.

능연의 첫 수술 경험은 의료 부속물 형식으로 이뤄졌다. 지혈 효과를 보장하기 위해 능연은 팔을 뻗은 채로 한 시간을 버텼는데, 팔을 꺼냈을 때는 온 팔뚝에 감각이 없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덕분에 평소에 볼 수 없는 각도로 근거리에서 수술을 관찰했다. 의대생으로서 상당히 귀한 경험이었다.

“출혈 지점이 간포막하라는 걸 어떻게 알았나?”

환자의 바이탈이 정상으로 돌아오자 곽종군은 일반 외과에 통보하지 않고 직접 수술을 집도했다. 그는 일반 외과 출신이었고, 응급 의학과로 온 지 오래됐다고 해도 외과 밥을 제일 오래 먹었다.

능연은 팔뚝을 주무르면서 조금 전의 느낌을 더듬었다.

“출혈이 너무 커서요. 환자 복부 정면이 다 열렸는데 혈흉이나 그런 현상은 없길래 피가 나오는 상황을 유심히 관찰했습니다.”

능연은 그랜드마스터급 맨손 지혈법을 몸으로 기억했을 뿐 아니라 상응하는 지식도 갖추게 됐다. 현장 경험이 없어서 직접 손으로 만져본 입체적인 느낌이 부족한 것 외에 능연의 맨손 지혈법은 정상급 의사 수준이 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상대적으로 곽종군은 응급 의학과 주임이지만, 맨손 지혈 수준은 초짜 의사보다 조금 높을 뿐 전문가급에도 훨씬 못 미쳤고 마스터나 그랜드마스터급은 더 비교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할 일 없이 맨손 지혈법을 연구할 이유도 없었다. 곽종군은 갑자기 훈련받을 때 지도교수와 천재 동창에게 밀렸었던 악몽을 떠올렸다.

“자네 대체······ 어디서 배운 건가?”

곽종군도 거기서부터 물을 수밖에 없었다. 능연은 잠시 고민하다가 과감하게 ‘질문 종결책’을 꺼내 들었다.

“집에서 배웠습니다.”

“자네 집안 병원?”

“하구 진료소입니다.”

“우리 병원과 가깝지 않은가. 하구 골목 아래 동네 진료소가 있단 말이지?”

잠시 생각에 잠겼던 곽종군은 그곳이 어딘지 생각해냈다.

“하구라면, 우리 응급 의학과로 자주 환자를 보내는 병원 아닌가? 그런 기술이 있다면······.”

하구 진료소는 다른 동네 병원과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 감기 같은 가벼운 병이 주요 수입원인 곳이었다. 물론 가끔 복잡한 병, 예를 들면 급성 맹장염을 복통인 줄 알고 찾은 환자, 자궁외임신인데 배가 아파서 병원에 간 환자, 급성 췌장염으로 배를 부여잡고 병원에 간 환자도 있지만, 지난번 칼국수 가게 양 사장 같은 경우도 능연이 아니었다면 하구 진료소에서 간단한 처치를 하고 운화 병원으로 트랜스 됐을 것이다.

곽종군이 하구 진료소을 알리라곤 전혀 생각 못 한 능연은 차라리 시간을 끌기로 했다.

“진료 의사한테 배웠습니다.”

“자네 병원에 그렇게 대단한 진료 의사가 있단 말인가?”

옆에서 조수를 하던 조낙의가 끼어들어 한마디 했다. 어쩐지 태도를 바꿔 추켜세우는 그의 모습에 능연은 희한하게 불편해졌다.

“대단한지 아닌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한 달밖에 못 배웠거든요.”

“한 달 만에 배웠다고?”

“맨손 지혈 기술은 재능이 중요하다고 하더라고요.”

조낙의가 말도 안 된다는 듯 되물었지만, 능연은 수술실 분위기는 아랑곳하지 않고 진지하게 대답했다.

조낙의는 들이받힌 기분이 되어 목이 다 꺾이는 느낌이었다.

야, 나 주치의야! 주치의가 실습생 보조를 해야겠냐?

조낙의는 무심결에 곁에 있는 어린 간호사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그들이 능연을 바라보는 눈빛을 발견했다. 그들은 감탄한 눈빛, 그리고 자신은 한 번도 받아 본 적 없는 뭐라 표현해야 좋을지 모를 눈빛으로 능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낙의는 복잡한 기분으로 다시 능연을 바라봤다. 초등학교 때 숙제를 하지 않은 아침에 숙제를 걷는 반장을 바라보는 기분이 들었다.

“간 상태는 괜찮군.”

곽종군은 지혈을 마친 후 밖으로 나온 장과 대망막을 처리하고 마음이 가벼워져서 말투도 부드러워졌다. 조낙의도 정신을 차리고 목을 빼고 관찰하면서 동의했다.

“환자가 운이 좋네요. 주임님께서 완벽하게 봉합했으니 기능에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운뿐 아니라 실력도 좋았지.”

위급 환자를 구해낸 곽종군은 성취감으로 뿌듯해져서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나 순간 능연이 멋대로 한 행동이 떠올라 칭찬은 거기까지 하기로 했다.

“하지만 아무리 실력이 좋다 해도 규칙대로 해야 하네. 아무리 성공할 자신이 있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해선 안 돼. 알겠나?”

“네.”

능연도 절차를 지키고 싶은 사람이었다. 다만, 그가 따르고 싶은 건 기술 절차지 행정 절차가 아니었다. 실습생 신분이 아니라 주치의 혹은 부주임 의사가 당시에 맨손 지혈로 구급 처치를 했다면 온 과 사람들이 찬양했으리라.

능연은 제가 했던 행동들을 한 번 되짚어봤다. 배운 것을 써먹는 건 의학 분야에서도 합당한 일이었다. 의술이란 끊임없이 복습하면서 정진하는 것이다.

곽종군은 일부러 분위기를 삭막하게 만들었지만 잠시 시간이 흐르자 오히려 자신이 더 안절부절못했다.

“일반적으로 손으로 간을 누르면 간이 다칠 수도 있어. 간 쪽에서 생기는 합병증 절반이 다 유사하게 일어나지. 자네가 아까 보여준 솜씨는 제법 정교했어. 손가락 끝으로 누른 건가?”

고개를 숙인 채 손을 놀리면서 이야기를 늘어놓던 곽종군은 마지막엔 아예 고개를 들고 능연을 바라봤다.

원래 의사는 특수 케이스를 발견했을 때, 몸이 근질근질해지는 법이었다. 지금 곽종군이 딱 그랬다. 능연을 제대로 혼내줄 생각이었는데, 일단 자신의 호기심을 채우기 바빴다. 혼내는 게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손을 뻗었을 때, 위치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새끼손가락 두 번째 마디 안쪽 살로 눌렀습니다.”

“그리고 손으로 간을 감싸고?”

능연이 손으로 그리며 설명하는 모습에 곽종군은 잠시 생각하더니 머릿속으로 당시의 모습을 그렸다.

“간이 밀려날까 봐 손가락 마디로 제어했습니다.”

“그렇군.”

곽종군은 감탄한 듯 한마디 내뱉고는 더는 묻지 않았다. 이미 쉰도 넘은 나이라 배우고 싶어도 쉽게 배울 수 없는 기술이었다. 그리고 그런 기술을 배울 시간도 없었다. 다만, 능연이 어떻게 배웠는지 궁금할 뿐이었다.

“이따 폐복은 자네가 하도록.”

배를 여는 건 집도의의 책임이고 덮는 건 조수라면 모두 노리는 기회였다. 실습생에겐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레지던트들도 반년 넘게 지나야 겨우 폐복할 기회가 왔다.

능연이 데브리망을 제법 많이 해왔다지만 다 작은 수술이었고 보통 사람은 그런 처치를 수술로 인정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배를 덮으라니, 그 유혹적인 말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곽종군은 여전히 장을 뒤적이고 있었다. 그는 환자의 상처 입은 간이 구석으로 밀려났기 때문에 능연이 상처를 누를 때 새끼손가락을 쓸 수밖에 없음을 그제야 깨달았다. 그런 방법으로 장기 위치가 뒤틀린 문제를 해결하면서 2차 상해 문제도 대폭 낮춘 것이다.

새끼손가락을 그토록 영민하게 움직일 수 있다니. 새끼손가락은 과거 백 년 넘게 얼마나 많은 외과 의사를 괴롭혔는지 모른다. 수술실에서 평생 보낸 의사도 그런 솜씨를 가지기 쉽지 않았다.

그런데 수술실에 처음 들어오는 의사가 그걸 해냈다. 천부적 재능이란 말을 떠올린 그는 저도 모르게 탄식했다.

조낙의도 이상한 표정으로 능연을 힐끔거렸다. 내가 처음으로 배를 닫았을 때가 언제더라? 적어도 일 시작한 지 일 년쯤 지나서 아니었던가?

조낙의는 그때 자신이 얼마나 흥분하고 또 어색했는지 아직 생생히 기억했다. 처음이라서 흥분했고, 어색했던 것도······ 처음이라서였다. 전전긍긍하며 환자의 배를 만지작거리며 핀셋을 잡고 이리저리 흔들어댔던 그 꼴사나운 모습이 아직도 기억났다. 그리고 기다리다 지쳐 불만 가득했던 간호사와 마취의의 표정도.

정상적인 폐복 수술은 15분이면 충분했는데 30분도 넘게 걸리는 바람에 수술실에 있던 모두 퇴근이 늦어졌다. 매일 교대하는 의료진에게 초짜 의사는 달갑지 않은 존재였다.

그때 조낙의는 숨이 막힐 정도로 긴장했었다. 그런데 흥분한 듯하면서도 냉정한 능연의 모습에 짜증이 났다. 조낙의는 고개를 숙여 열린 배를 바라봤다.

이번에 할 폐복 수술은 정상적인 수술이 아니었다. 사고로 환자의 복부에 개방성 열상이 생겼기 때문에 데브리망 같은 방법으로 미리 처리했어도 일반 폐복과는 달랐다. 엄밀히 말하면 일종의 데브리망이었고, 처치실에서 하는 것보다 훨씬 수준 높은 수술이었다.

이런 실전 기회를 주다니, 곽 주임이 능연을 정말 좋게 평가한다는 말 외에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둘, 넷, 여섯, 여덟, 열······.”

“거즈 수량 맞습니다.”

간호사가 두 번이나 수량을 체크 한 후 그렇게 말하자 곽종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도 다시 두 번 세면서 재확인했다. 그리고 다른 것도 꼼꼼히 체크한 후에 출혈이 없음도 확인했다.

“닫아.”

집도의로서 임무는 거기까지였다. 이제 수술실을 나가서 쉬거나 다음 수술을 하면 되었다. 그러나 오늘은 실습생 능연이 처음으로 폐복하는 날인 데다가 정상적 수술도 아니라서 그는 바로 수술실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자리를 피해 주고는 뒤쪽에 서서 능연의 손놀림을 지켜봤다.

아무리 능연이 처치실에서 많은 봉합 경험을 쌓았다고 해도 큰 수술과 작은 수술은 달랐다. 춤으로 비유하면 클럽에서 혼자 춤추다가 무대 위로 올라가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것처럼 둘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었다.

그는 그동안 수많은 폐복 수술을 지켜봤었다. 위치를 잘못 꿰맨 의사도 있었고, 구멍을 낸 의사도 있었으며, 손이 미끄러져 핀셋을 환자 배 속에 떨어뜨린 의사도 있었다. 봉합을 잘못하는 건 자주 있는 일이지만, 그로 인해 유발된 후유증은 작은 의료 사고나 마찬가지라서 큰일이었다.

물론, 곽종군은 능연이 폐복을 완수할 능력을 갖췄다고 믿었다. 클럽에서도 남보다 눈에 띄게 잘 추는 사람이면 무대 구석에서 살짝 몸을 흔드는 것 정도는 무난하게 해내리라 믿었다.

곽종군이 능연 대신 이런저런 상황을 고민하는 그때, 능연 본인은 매우 명쾌했다.

처치실에서 보낸 며칠 동안 능연은 스스로 성장했다고 확신했다. 갖가지 상처를 봐왔고, 살아 있는 사람의 가죽과 살을 만지고 뚫고 매듭지으면서 직접 체험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마스터급 단속 봉합술을 얻어 막대한 자신감을 얻었다.

단속 봉합으로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못할 것이 없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에게 단순 봉합은 이제 두려울 것이 없었다.

“니들 홀더.”

능연의 엄숙한 오더에 간호사가 웃는 얼굴로 그의 손에 기구를 올려놓았다. 그는 집중해서 복부를 바라봤다.

폐복 수술은 보통 봉합과 달라서 근육층을 나눠 진행해야 했다. 게다가 절단면의 방식에 따라 봉합도 달라져야 했다. 오늘 환자는 우선 맨 아래층 복막을 봉합하고 복직근을 봉합한 다음 피부와 피하 조직을 봉합해야 했다.

마지막 단계는 외관을 신경 쓰지 않는다면 제일 쉽게 할 수 있고 앞의 두 단계는 조금 고려해가며 진행해야 했다. 어찌 됐든 초짜 의사는 복막이나 복직근을 직접 만져 본 경험이 없으니 봉합할 때 잘 다루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조낙의는 내심 능연이 웃음거리가 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을 품은 채 수술을 지켜봤다. 초짜 의사가 실수하는 일은 일상다반사였다. 다들 실수하면서 성장하는 것이다. 수술실에서 혼나는 만큼 성장했으니까.

능연의 성장 과정을 보면 자신의 기분이 좀 나아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낙의는 남에게 말할 수 없는 기분을 품고 능연의 동작을 지켜봤다. 그러나 일 분도 안 되어서 조낙의의 생각 회로가 정지했다.

망할! 얘가 정말 막 의대 졸업한 실습생이라고?

일한 지 10년이나 되는 조낙의가 모셨던 유명한 의사가 한둘이 아니었다. 날고 기는 의사만 백 명 가까이 봐왔다. 안목만 따지면, 그의 안목은 몹시 쓸만했다. 그리고 능연의 기술도 몹시 쓸만했다.

흐르는 물처럼 순조로운 데다 보는 사람이 즐거운 폐복 수술은 그야말로 처음이었다. 능연보다 잘난 의사라면 폐복 수술을 할 필요가 없고, 그보다 못난 의사라면 할 일이 없을 테니 말이다.

“고인 물이네.”

조낙의는 인터넷 유행어를 내뱉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곽 주임이 그 말을 못 알아듣고 그게 무슨 뜻이냐고 되물었다.

“능연이가 아주 잘한다고요.”

그 외에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눈 빤히 뜨고 거짓말을 할 수 없지 않은가. 병원이란 환경에서 의사들이 가장 신경 쓰는 것은 역시 실력이었다. 아무리 상대가 싫어도 자조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수술대에서 티를 낼 순 없으니 말이다.

곽종군 눈에도 능연의 솜씨가 제법 훌륭해 보여서 내심 자신의 안목을 칭찬하던 중이었다.

“경험이 부족한 게 흠이니까, 시간 나는 대로 좀 데리고 다니게.”

“네.”

조낙의는 곽종군이야말로 눈 뜨고 허튼소리를 한다고 생각했다. 능연이 어딜 봐서 경험이 부족한 젊은이란 말인가. 어릴 때부터 해부하면서 자랐으면 몰라도.

“OK!”

능연은 마지막 매듭을 묶고 나서 살며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조낙의는 참고 있던 숨을 길게 내뱉었다. 그는 능연보다 훨씬 더 긴장한 듯했다. 능연과 곽종군 모두 의아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고, 그는 헛기침하더니 능연을 향해 우호적인 미소를 지었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표정이 안 보인다는 사실은 완전히 잊은 채.

그는 속이 후련해지는 공연을 본 기분이었다. 능연이 맨손 지혈했을 때, 새끼손가락 두 번째 마디를 사용한 것을 회상하면서 좋아하는 노래를 들은 팬처럼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자 의사인 조낙의는 드디어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수술을 본 것인지 깨달았다.

나라면 수술실을 나가자마자 바로 논문을 써서 SCI에 투고할 텐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과학 문헌 색인인 SCI는 수많은 과학 정기 간행물을 소장하고 또 그것들의 영향력을 평가했다. 과학자적 각도에서 보면 SCI 정기 간행물에 수록된다는 것은 부르주아급 계급의 상징이었다. 물론, SCI급 논문의 편수로 직책을 평가하여 상금도 받을 수 있었다.

학교나 연구소처럼 병원 의사들도 진급하려면 우선 논문이라는 난관을 통과해야 했다. 레지던트에서 주치의로든, 주치의에서 부주임으로든, 혹은 부주임에서 주임으로든 모두 논문이 있어야 했다. 주임 의사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과에서 지위, 특히 병원 체계에서 지위는 논문으로 확립되곤 했으니까.

다만 다른 학술 논문과 달라서 임상의가 논문을 쓰려면 우선 적당한 케이스가 있어야 했다. 임상의가 자신이 잘났음을 증명하려면 우선 잘난 수술을 하고 잘난 논문을 써서 광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낙의는 능연이 기껏 해봐야 SNS에나 올리겠지, 하고 생각했다. 동시에 제가 해낸 수술의 가치를 진정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때, 모든 검사를 마친 곽종군이 장갑을 벗으면서 수술이 끝났음을 알렸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능연을 바라봤다.

“논문 쓸 줄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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