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되자 당직이 아닌 의사들은 하나둘씩 병원을 떠났다. 특히 주임 의사와 부주임 의사가 집으로 돌아가자, 의국의 긴장된 분위기가 확 풀렸다.
운화 병원 응급 의학과는 일반 삼갑 병원보다 훨씬 규모가 컸으며 주임, 부주임급 의사가 다 합해서 6명이나 되었다. 다섯 치료팀으로 나눠 진료를 보고, 당직 시간이 되면 팀마다 레지던트 한 명을 남겨 일선으로 굴리고 주치의 한 명이 당직을 선다. 그래서 밤마다 의사 여섯 명이 응급실을 지켰다.
다른 주치의들은 번갈아 이선 근무만 섰는데, 그 인원만 해도 다른 병원 응급실 총인원보다 많았다. 물론 야간 진료수만 해도 다른 응급실에서 온종일 하는 진료수를 따라잡을 정도였다.
주 선생은 선임 레지던트와 능연을 이끌고 관찰 병실을 한 바퀴 돈 다음 휴게실로 들어갔다.
“우리 응급 의학과 의사들이 쓰는 휴게실은 총 네 개. 두 개는 일선 의사가 쓰고, 이선, 삼선에서 하나씩.”
주 선생은 그렇게 설명하면서 휴게실 방문을 열어 안을 보여줬다. 일선 의사는 주로 레지던트, 실습생 그리고 연차가 낮은 주치의로 이뤄져 있었고, 과실에서 배정한 당직 휴게실은 4인용 작은 방이었다. 화장실은 있는데 샤워실은 없어서 2층 침대가 놓여 있는 대학 기숙사보다 시설 수준이 떨어졌다.
이선 휴게실도 마찬가지인데 2인실이며 2층 침대 하나가 놓여 있어서 그렇게 좁은 건 아니었다. 일선 휴게실도 2인실이지만 조금 더 넓었고 비즈니스호텔 스탠다드룸만 한 크기였지만 욕실은 없었다.
주 선생은 계급감이 강렬하게 느껴지는 휴게실 세 개를 능연에게 보여준 다음 휴게실에 임자가 따로 있는 건 아니라고 설명했다.
“당직 의사는 누구든 쓸 수 있어. 다음 날 개인용품만 잘 챙겨 나오면 돼.”
“이불은요?”
“간호사들이 병실 침구 교환할 때 같이 바꿔줘.”
“너무 바쁠 때는 그냥 머리맡에 놓고 갈 때도 있으니까, 그럴 땐 직접 바꾸면 돼.”
주 선생의 말에 사람들이 이름도 기억하지 못할 만큼 평범하게 생긴 레지던트 하나가 웃으면서 끼어들어 진지하게 자신의 경험을 공유했다.
“사실 응급실 당직은 잘 시간도 없어. 밤에 응급 환자가 꽤 많거든. 뭐, 주 선생님은 잘 주무시지만.”
“쯧쯧쯧. 어린 놈의 시키가 버릇없이!”
주 선생은 장난치는 얼굴로 레지던트의 말을 자르며 끼어들었다.
“내가 잠시 졸 시간이 있고 없고는 다 너희들한테 달렸지. 너희들이 환자를 치료하고, 그걸로 해결되면 굳이 내가 나설 필요 있냐? 마찬가지로 내가 해결하면 이선 의사는 나올 필요 없이 편하게 자면 되는 거고. 우리가 열심히 해서 삼선까지 불러내지 않는 게 중요하단다. 주임이나 부주임 선생님까지 불러냈다가는 욕먹을 게 뻔하니까 말이다.”
“맞아, 맞아. 평소에 안 그러던 주임님들도 밤에는 성질이 더러워지지.”
레지던트가 힘껏 고개를 끄덕이며 주 선생의 말에 동의했다.
“그리고 또 하나. 능연 너, 단독 행동하지 마. 다른 선생님들 따라다니다가 시키는 것만 하라고. 알았어?”
“네.”
주 선생이 진지하게 당부하는 말에 능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의사 면허를 받은 것이 아니니 독자적으로 진료해서는 안 되겠지. 낮에는 다른 의사도 많다지만, 밤에는 그렇지 않으니 더 주의해야 하고.
“일선에서 우선 해결하고 안 되면 이선 의사 부르고, 그래도 안 되면 삼선 선생님께 전화를 드려. 밤엔 술 취한 환자가 많으니까 특별히 주의하고. 환자의 안전도 중요하지만 너도 조심해야 해. 무슨 일이 생기면 일단 도망쳐. 우리 병원 문은 자물쇠가 단단하니까, 걸어 잠근 다음에 전화해. 쪽팔릴 거 없어. 일단 살아 있어야 쪽이든 뭐든 팔지.”
능연은 그런 경험이 없으니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야. 나 이제 삼 년 차인데 그런 경우는 딱 두 번 봤다. 보통은 그냥 고함 좀 치고 그러는 정도야.”
“일 년에 한 번이면 많은 거 아니냐? 군대도 우리처럼 위험하진 않겠다. 됐다, 됐어. 아무튼, 만사 조심하고 가서 일 봐라.”
레지던트가 실실 웃으면서 하는 말에 발끈하던 주 선생은 휘휘 손을 내저어 두 사람을 쫓아냈다. 그러고는 이선 휴게실로 돌아가 문을 닫고 의자에 다리를 뻗고 누워 느긋하게 신문을 뒤적였다.
일 욕심 없는 의사는 주치의가 되면 꿈같은 생활을 즐길 수 있다. 운이 좋으면 밤새 출동할 필요도 없이 레지던트가 받는 것보다 두 배나 되는 당직비를 꼬박꼬박 받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