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18화 (18/877)

너스 스테이션.

당직 서던 어린 간호사가 능연을 보더니 좋아서 어찌할 줄 몰랐다. 그리고 연차가 좀 되는 유 간호사도 능연을 보고는 기분 좋은 듯 물 한잔 건넸다.

“능 선생님, 이제 당직도 서는 거예요?”

“감사합니다. 네, 오늘부터 당직 섭니다.”

능연은 물컵을 받아들고는 간호사가 비켜준 등받이 의자에 앉아 주변을 둘러봤다. 그가 주변을 살피는 동안, 주위에 몰린 간호사들도 그를 관찰했다. 그러다 그와 눈을 마주치면 다급하게 고개를 숙였다.

“능 선생님 피부 정말 좋으시네요.”

어린 간호사 하나가 용기 내서 한 말에 다들 바로 공감했고, 누군가가 어떻게 관리한 거냐고 물었다.

“엄마가 클렌징이랑 비누 주셨고, 로션도 사주신 거 쓰는데요.”

다른 사람이 똑같은 대답을 했다면 마마보이라고 욕을 먹었겠지만, 흥분해서 정신없는 간호사들에겐 능연의 대답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며 오히려 탄성까지 자아냈다.

“어머니 참 센스 있으시네요.”

“어머니가 관리할 줄 아셔서 다행이네요.”

“우리 시어머니 참 좋은 분 같아, 그지?”

모자에 파란 줄 두 개가 그어진 유 간호사는 이미 결혼한 몸이라 꽃미남을 잠시 감상한 후 헛기침을 두 번 하면서 분위기를 환기한 다음 입을 열었다.

“선생님, 여기 계실 필요 없어요. 환자 오면 바로 콜 드릴게요.”

“관찰 병실은요?”

“거기도 당직 간호사가 있어요. 환자 없을 때 한숨 주무세요. 아 참, 선생님. 어떤 증상에 관심 있으세요? 그런 환자 있으면 불러드릴게요.”

“수부 근건 손상이요.”

능연이 실습생인 걸 떠올린 유 간호사가 특별히 묻자, 능연은 곧바로 대답했다. 탕 봉합법을 손에 넣었지만 실험실 쥐로 테스트한 게 전부였다. 모두 순조롭기는 했으나 실전 경험이 없어 시도해보고 싶던 참이었다.

“그러고요? 일반 봉합은 이제 관심 없나요?”

“낮에 하는 거로 충분해서요.”

노트에 적으면서 묻는 유 간호사의 말에 능연이 솔직하게 대답하자, 간호사도 고개를 끄덕였다. 의사들은 다 그렇다. 다들 처음에만 특별하게 생각하지, 같은 수술을 반복하면 할수록 신선함이 줄어서 질려 했다.

실력도 일정한 속도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서 처음에 10번, 20번에서 50번까지는 눈에 띄게 실력이 올라갔지만, 그보다 더 돌파하려면 수백 번은 반복해야 했다.

능연이 응급실에서 보낸 며칠 동안 거의 데브리망을 했다. 많이 한 날은 하루에 50번도 넘게 했고 평균적으로 30번은 했으니 이제 밤새워까지 꿰맬 필요는 없었다. 그동안 정상적인 자세로 할 수 있는 봉합은 대부분 해봤으니, 그 방면에서 실력을 올리려면 해부 구조가 좀 더 특별한 사람이라든가 외상이 특수한 사람을 만나는 수밖에 없었다.

이론적으로 ‘진심 어린 감사’를 표할 환자를 갱신할 때가 됐는데, 안타깝게도 다음 날이 금요일이라 곽 주임이 어떤 방식으로 회진할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리고 ‘진심 어린 감사’는 돌발적인 경우가 많아서 그다지 달갑지도 않았다. 그는 확실한 보상이 더 좋았다.

보상을 떠올린 능연은 아직 전문가급 ‘단속 수직 매트리스 봉합’ 기술을 써본 적이 없음을 떠올렸다.

“음낭 파열 환자가 있으면 불러 주세요.”

“아······. 네.”

어쨌든 경험이 풍부한 편인 유 간호사는 특별히 이상한 표정을 짓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스테이션에 앉아 있던 간호사 일고여덟 명은 그 틈을 타 능연을 힐끔거리며 눈요기를 즐겼다.

특이 취향인가? 못생긴 남자라면 괴상한 특이 취향이겠지만, 꽃미남의 특이 취향은 그의 유니크함을 나타낼 뿐이었다.

“가시죠.”

능연이 같이 온 레지던트를 불렀다. 선임 레지던트는 너스 스테이션 앞 복도를 어슬렁거리면서 물도 마시고, 차트 채우는 것도 도와주고, 의자도 당겨주다가 아예 컴퓨터 앞으로 달려가 차트를 살피는 데도 아무에게도 관심받지 못했다. 그러다 능연이 부르는 소리에 묵묵히 그를 따라 휴게실로 돌아갔다.

“잘 거면 지금 자야 해. 좀 있으면 부르러 올걸?”

레지던트는 옷을 입은 채 침대로 쓰러졌다. 능연도 그 말에 동의했다. 그를 포함해 7명의 의사가 당직을 서고 있었지만, 주 선생은 직접 출동할 필요 없는 이선 의사였으니 6명만 있는 셈이었다. 그 나머지 6명으로 싸움 난 사람이나 교통사고 같은 사건을 만나면 속수무책이 되겠지. 능연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

잠결에 몽롱한 상태에서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 ‘왜 또 나야’ 같은 소리, ‘적당한 적응 증후군이 없어’, ‘좀 더 자게 둬’ 같은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그렇게 편하게 자고 일어나 보니 벌써 다음 날 아침이었다. 능연은 습관적으로 물을 마시려고 머리맡에 있는 서랍으로 다가갔다가 뚜껑을 열지 않은 생수병, 도자기 머그잔 그리고 새 세면도구를 발견했다.

[능 선생님. 어제는 수부 근건 외상 환자가 없어서 그냥 주무시게 뒀어요. 소독한 컵이니까 안심하고 사용하세요. 의사의 길은 길고 험난하니까 쉴 땐 쉬고 일할 땐 일하고, 잘 조절하셔야 해요. ^^]

세면도구 위에 붙은 메모를 읽고 있는데 퍽 하고 문이 열리더니 레지던트 하나가 머리에 새집을 지고 구부정하게 들어와 그대로 침대 위로 쓰러졌다. 그리고 몇 초 만에 드르렁거리면서 코를 골았다. 그러다 가끔 경련이 오면 몸을 부르르 떨면서 코골이를 멈췄다.

아침 8시, 능연은 주 선생을 따라 한 바퀴 병실을 둘러본 다음 차트를 정리하고 퇴근하겠다고 인사했다.

3급 회진 제도를 시행 중인 운화 병원은 환자 담당 일선 레지던트는 1급으로 매일 적어도 두 번 병실을 돌아야 했다. 주치의인 이선 의사는 2급으로 하루 한 번, 주임, 부주임급 삼선 의사는 주에 한두 번 병실을 돌아야 하는 규정이 있었다. 초짜들에겐 주임, 부주임 의사가 없는 날이 상대적으로 수월한 날이었다.

“들떴겠지만 그래도 집에 가서 푹 쉬도록 해. 아니면 못 견딘다.”

주 선생도 능연을 붙잡지 않았고 다만 당부하는 말을 덧붙였다.

“잘 잤어요.”

“젊다고 몸 혹사하지 말란 말이야. 밤샘은 1급 발암 요소야. 쉽게 보지 마.”

“네.”

주 선생이 짐짓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하는 말에 능연은 달리 대답할 말이 없었다. 뭐라고 대답한단 말인가. 밤새 쿨쿨 잤다고?

오히려 옆에 있는 레지던트가 무언가 이야기하고 싶은 표정이었는데, 하품이 터져 나온 사이 주 선생이 손을 휘휘 내저으면서 졸리면 가서 자고 괜찮으면 남아서 일하라고 선수를 쳤다.

“아니요! 집에 가렵니다. 이러다가 과로사하겠어요.”

“이 새끼, 게으름 피우는 걸 배워서는.”

단호한 레지던트의 말에 주 선생은 껄껄 웃고는 능연을 바라봤다.

“너도 어서 들어가. 마침 금요일이니까 이틀 쉴 수 있겠네. 소중한 시간 잘 보내라. 실습생 생활 끝나면 그런 일은 없다.”

능연은 몸을 비틀어대며 고개를 끄덕였다. 휴일은 소중한 것이다. 적어도 병원 밖에서 신선한······ 미세먼지라도 맡을 수 있으니.

하구 진료소 입구에 붉고 노란 불빛이 오늘도 맡은 바 임무를 열심히 수행하고 있었다. 옆에 있는 작은 식당, 이발소, 소형 마트에도 달린 같은 불빛이 번쩍번쩍 거리를 밝히고 있었다.

능연네 병원 수액실에서 수액을 맞고 있는 사람 수가 조금 늘어난 듯했다. 침대가 모자라서 의자에 앉은 채로 핸드폰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

“어때? 오늘은 바빠 보이지?”

능결죽은 아들을 보자마자 함박웃음을 지었다.

“독감 유행해요?”

능연의 기억 속에 병원에 사람이 넘칠 때는 독감이 유행하거나 환절기 감기 철뿐이었다.

“독감보다 더 잘 벌어. 양 사장 일이 소문이 나서 동네에서 유명해졌어. 이럴 줄 알았으면 폭죽이라도 터트릴걸.”

능결죽은 능연의 어깨를 잡아끌어 허리를 굽히게 하면서 나지막이 속삭였다.

“상구 쪽에서 온 사람도 있어. 일부러 우리 병원에 오겠다고 온 거라니까?”

“상구가 뭐 얼마나 떨어져 있다고요.”

무슨 대단한 비밀이라도 있는 줄 알고 허리를 숙였던 능연은 아버지를 흘겨보면서 투덜댔다.

“요즘 사람들이 얼마나 게으른데. 건물 밑에 있는 식당도 내려가기 귀찮아서 배달시키는 세상이다. 10분이나 걸어서 우리 병원에 왔다는 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아니? 참, 오늘 점심엔 생선찜 먹을 거야. 그 노금령이라는 아가씨가 어제 커다란 생선을 보냈지 뭐냐? 펄쩍펄쩍 뛰는 걸 어항에 담아 뒀다가 막 처리했어.”

“돈은요?”

능결죽이 손으로 생선 크기를 어림잡아 보여주자 능연이 물었다.

“안 받겠대. 네가 그 아가씨 사업에 도움이 됐다며? 그래서 고마워서 주는 선물이더라고. 그래서 네 엄마가 답례를 줬지. 네 엄마가 직접 짠 모자, 꽤 좋아하더라.”

“그럼 됐네요. 저 게임 좀 할게요.”

능결죽, 도평 부부는 20년간 능연이 받아오는 선물에 작은 답례를 해왔던 터라 그런 쪽으로는 능숙했다. 능연도 마음을 놓고 정원에 있는 선베드에 털썩 드러누웠다.

“눈 조심해라.”

당직을 서고도 지친 기색 없이 멀쩡히 돌아온 아들의 모습에 능결죽도 들떠서 안으로 들어갔다. 진료소 운영이라는 게 사실 작은 가게 장사와 큰 차이가 없어서 돈을 벌려면 주인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수시로 손님 말 상대도 되어주고 약값도 좀 깎아주고 하다 보면 골목에 사는 사람들 집에 쌀이나 기름, 아니, 감기약, 혈압약, 해열제 같은 약이 떨어지면 바로 하구 병원을 떠올리기 마련이었다.

능결죽이 돈 드는 와이프를 먹여 살릴 수 있는 것도 그런 현명함과 노력 덕분이었다. 하지만 작은 진료소에서 벌 수 있는 돈은 그 정도가 다였다.

능연은 편안한 자세로 누워 핸드폰을 꺼내 들어 ‘왕자 영광’ 어플을 클릭하고는 동지전에게 게임 요청을 보냈다. 몇 분 만에 다시 ‘브론즈 3’ 레벨로 떨어진 능연은 새로운 여정을 유쾌하게 시작했다.

오후에 동지전 팀은 특별 훈련이 있다고 했고, 능연은 웅 선생과 함께 나이든 환자 몇을 살폈다.

진료소마다 자주 오는 단골 환자가 있는 법이다. 만성 질환을 수액이나 약으로 완화하려는 환자, 나이 들어 기력이 쇠한 환자, 스스로 병에 걸렸음을 의심하며 수액이나 맞으려는 환자 등 별별 유형이 다 있었다.

노인들은 항상 수다스러웠고 의사나 간호사에게 처방을 내리는 사람도 있었다. 웅 선생은 일반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혈압을 재고, 청진기로 심장 소리, 호흡 소리를 들으면서 가장 기본적인 신체검사를 해주곤 했다.

능연은 장식으로 귀와 눈을 달아 놓은 사람처럼 질문도 별다른 설명도 하지 않았다.

마스터급 단속 봉합술, 그랜드마스터급 맨손 지혈법이 있어도 내과 쪽으로는 실습생 수준에 불과했기에 웅 선생 같은 노련한 의사 앞에서 딱히 그가 나설 만한 상황은 없었다.

“연이는 성격이 좋으니 병원에 실습 나가서도 의사들의 이상한 습관을 배워올 일은 없겠구만.”

능연의 그런 태도에 몹시 흡족한 웅 선생이 웃으면서 말했다. 능연도 그를 따라 미소 지었다.

“네가 그렇다는 게 아니라, 어떤 병원엔, 특히 삼갑 병원 의사들은 작은 병원에 오면 항상 감 놔라 배 놔라 뭐라도 된 것처럼 군단 말이지.”

“실력이 그만큼 되니까요.”

연자는 25킬로 왼 다리, 25킬로 오른 다리를 부지런히 놀리며 병원을 오갔다. 체력 하나는 끝내줬다. 자신을 오렌지 캣이라고 부르는 연자는 매일 핸드폰 헬스 어플로 만 보 이상 기록될 만큼 움직였지만, 몸무게는 여전히 태산처럼 굳건했다.

“삼갑 병원 의사도 이런저런 사람이 있겠지. 작은 병원에도 좋은 의사가 있듯이 말이야. 게다가 요즘 병원이랑 의사는 다 자동 분류되는 거나 마찬가지란다. 특히 외과 의사는 말이지. 갑상선 절제술에 능숙한 의사가 있다고 쳐, 그럼 환자를 볼 때마다 갑상선 절제술을 할 수 있을지부터 고려한다고. 아니면 다른 의사가 갑상선 환자를 그쪽으로 보내거나. 의사뿐이 아니야. 병원 진료과 구분도 아주 정밀해졌잖아. 그런 의사들이 작은 병원에서 다양한 증상의 환자를 만나면 이러쿵저러쿵할 자격이 있을 거 같아?”

능연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운화 병원에도 그런 의사가 있었다. 치과에 유명한 구강의가 있는데, 투명 교정(Invisible bracketless technique) 전문가인 그는 그 교정 외에는 다른 진료는 전혀 하지 않았다.

능연도 원한다면 탕 봉합 방면에 정통한 전문가가 될 수 있었다.

“웅 선생은 이제 노인병 전문가가 되었지.”

만성 허리 통증을 겪는 노인 하나가 실실 웃으면서 끼어들었다.

“완전히 홈닥터 아닙니까. 미국이었으면 일 년에 수천, 수만 달러 벌었을 텐데.”

“그럼 나도 그런 돈을 낼 능력이 있어야 하게!”

웅 선생이 하는 농담에 사람들이 모두 하하 웃으면서 좀 전까지 심각하던 분위기를 싹 날려버렸다. 능연은 조용히 수액실에서 빠져나왔다. 그는 자주 환자들에게 둘러싸이곤 했는데, 너무 자주 있는 일이다 보니 환자들을 볼 때 친밀감도 느꼈지만 귀찮기도 했고, 심지어 피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띠리리. 그때 능연의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 능연 씨, 병원 왔는데 왜 없어요!

노금령의 맑고 높은 목소리가 핸드폰 너머에서 들렸다.

“오늘 쉬는 날이에요.”

- 어, 그럼 어쩌지. 새로 산 구급차에 환자 가득 채워서 왔는데. 우리 회사 이제 창평구 병원에 귀속됐거든요. 구급차 면허도 있고 안에 기계랑 약도 가득하다고요. 그리고 파트타임 의사도 고용했는데!

노금령의 목소리가 점점 흥분으로 가득해서 높아졌다. 능연은 잠시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 어릴 때부터 여자들한테 이런저런 별별 선물을 잔뜩 받아 봤지만 환자 선물은 처음이었다.

의대를 같이 다닌 여자 동창들도 고작해야 같이 해부하자며 실험용 토끼를 들고 왔을 뿐인데.

“아니면 듀티 표 보내줘요. 당신 일하는 날, 환자 보내줄게요.”

노금령은 재빨리 떠올린 해결방법을 제시했다. 일하는 시간엔 환자를 보내고, 퇴근하면 데이트하면 되겠네. 노금령은 완벽한 자신의 아이디어에 감탄했다.

“어떤 환자인지 물어보렴. 보고 우리 병원에서 받아도 되잖아.”

- 아, 맞네. 당신 집도 병원이지.

어느새 귀를 쫑긋 세우고 능연 곁으로 다가간 능결죽이 하는 말을 들은 노금령은 순간 깨달은 듯 목소리를 높였다.

“어떤 환자인가요?”

능결죽이 아예 핸드폰을 뺏어가 묻자 노금령은 한참 머뭇거렸다.

- 다 외상 환자예요. 제일 심한 게 머리를 맞은 환자고요.

“그러고요?”

- 어깨를 베인 사람도 있고, 맞아서 피를 토한 사람도 있고, 온몸에 멍든 사람도 있고······.

“머리를 맞은 사람은 CT를 찍어 봐야 하니까, 우리 병원엔 해당 안 되고, 토한다는 사람도 마찬가지겠네요. 그 사람들은 운화 병원에 그냥 둬요. 그 멍들었다는 사람, 아가씨가 의사 고용했다면서요? 머리 다쳤는지 한번 보라고 하고 선천적 심장 질환 있는지 물어봐요. 있으면 그 사람도 운화 병원에 두고 없으면 그 어깨 베였다는 환자랑 같이 여기로 보내요.”

잠시 고민하던 능결죽은 전문가답게 다다다 지시했다.

“우리 병원은 지금 구급차 한 대에 5, 아니, 25위안 줍니다. 구급차 비용은 환자가 내는 거고요.”

- 구급차로 환자를 병원에 보내는 데도 돈을 받는다고요? 운화 병원에서는 한 번도 준 적 없는데요?

“운화 병원은 환자가 남아도니까요. 아, 맞다. 피를 너무 많이 흘린 환자는 안 돼요. 우리 병원에서 수혈은 못 합니다. 외상 봉합 위주로 치료하거든요.”

- 잘됐네요. 제가 찾은 환자가 다 외상 환자예요.

노금령과 신나게 통화를 마친 능결죽이 핸드폰을 능연에게 넘기면서 ‘외상 봉합은 문제없지?’ 하고 물었다.

삐뽀, 삐뽀.

창평구 병원 마크를 단 구급차가 ‘하구 진료소’ 앞에 정차했다.

표정이 굳은 두 젊은이가 절뚝거리면서 스스로 차에서 내려 병원 입구에 나란히 서서 ‘하구 진료소’라는 글씨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우리 오빠 어깨, 바로 이 병원에서 꿰맨 거야. 지금 어떻게 됐는지 봤지?”

노금령은 사뿐한 걸음으로 다가가 문 앞에 서 있는 능결죽에게 인사하고 곧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두 젊은이는 입구 양측에서 번쩍거리는 불빛을 보며 계속 생각에 잠겨 있었다.

“진료소는 병원보다 싸니까, 우리도 너희 생각해서 데리고 온 거야.”

“됐어. 진료소면 뭐 어때. 전엔 야매로도 꿰맸는데, 아무 일 없더구만.”

운전석에서 내린 이취가 하는 말에 어깨를 잡고 있던 젊은이는 통증으로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그들은 진료소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나무 그늘에 누워 핸드폰을 보는 젊은 의사 곁에 노금령이 웃는 얼굴로 뭐라고 이야기하는 모습을 봤다.

“환자 왔다, 그만해.”

손님을 왕으로 여기는 능결죽이 싹싹하게 그들을 맞이했다.

작은 진료소와 큰 병원의 차이도 바로 그런 점에 있었다. 작은 진료소를 찾는 손님은 다시 찾게 되기 마련이다. 사실 진료소 손님은 대부분 재방문 손님으로, 몸이 약한 동네 주민은 해마다 진료소를 찾고 만성 질환 환자는 자주 가서 상비약을 처방받곤 했다.

그러나 큰 병원은 다르다. 특히 외과는 서너 번 재방문하게 되면 마지막엔 요양 병원으로 가야 한다.

능연의 핸드폰에서 게임 배경 음악이 들렸다.

“급할 거 없어요. 이렇게 멀리 오는 동안에도 아무 일 없었는데, 몇 분 차이 난다고 무슨 일 생기겠어요.”

노금령이 생긋 웃으며 하는 말에 환자들의 얼굴이 샛노래졌다.

“그만할 거예요. 대신할래요?”

“어? 아니, 나 게임 잘 못 해요.”

능연이 핸드폰을 건네자, 노금령은 평소에 왜 게임을 하지 않았는지 후회했다.

“뭐 어때요, 나도 맨날 져요.”

의사 가운으로 갈아입은 능연이 손을 씻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하자, 얼떨결에 핸드폰을 건네받았던 노금령은 고개를 숙이고 진지하게 게임 방식을 살폈다. 그러다가 돌연 휙 고개를 들었다.

내가 능연 핸드폰을 들고 있어! 능연 핸드폰이 내 손에 있다고. 게임에서 나가기만 하면······.

“이쪽으로 오세요.”

능연은 이제 백정이 소를 잡듯 능숙하게 데브리망을 했다. 특히 어깨처럼 흔한 부위는 일반적인 찰상 외에 특이한 상처를 봐도 그다지 특별하게 여기지 않았다.

임상의학 측면에서 사람마다 다른 해부 구조는 의사의 큰 골칫거리였다. 전형적인 ‘내장 전위증(Situs Inversus)’처럼 모든 장기가 반대 위치에 있는 사람이 그런 경우였다. 정상적인 심장은 왼쪽에 있는데 내장 전위증 환자의 심장은 오른쪽에 있다. 수백 번 같은 유형의 수술을 해온 외과의에게 이런 현상은 항상 콘크리트 바닥에서 농구를 해오다가 갑자기 나무판자 위에서 농구를 하는 선수처럼 적응할 시간이 필요해서 몇 번 만에 수준 있는 수술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지금 능연은 오히려 그런 희귀한 구조의 환자를 만나고 싶었지만, 어깨를 다친 젊은이는 매우 평범한 인간이었고, 밖으로 뒤집힌 근육과 피부 조직마저 평범하기 짝이 없었다.

“웅 선생님, 저기 멍든 환자 처치 좀 해주세요.”

능연은 눈앞의 환자에게 집중했다. 아무리 일반적인 환자고 일반적인 데브리망이면 된다지만, 그래도 수술 환자였다. 능연은 조심스럽게 환자의 상처를 소독하고 국부 마취제를 놓았다.

“시작합니다.”

평소에 사나운 불량배도 바늘이 몸을 파고 들어가자 태연한 척 먼 곳을 바라보며 딴청을 피웠다. 멀리 벽에 붙은 시를 읽을 생각도, 가까이 눈앞에 있는 바늘을 쳐다볼 생각도 들지 않았다. 바늘이 들어갔다가 나왔다가, 매듭을 묶고 붕대를 감았다.

“연이가 참 잘 하는구만.”

“동작이 좀 어색한데? 의사 같지 않아.”

“의사가 아니면 뭔데.”

“음······. 길에서 멜론 파는 사람 같은데? 저것 좀 봐. 썩은 부분을 도려내고 씨를 파내고. 쓰는 도구가 달라서 그렇지, 딱 그건데?”

할 일 없는 노인들이 진료실 창문 밖에 서서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어깨를 다친 청년은 눈을 부릅뜨고 노려볼 뿐 어쩔 도리가 없었다.

“흉터, 크게 남아도 됩니까? 아니면 덜 남게 할까요?”

“큰 흉터를 바라는 사람도 있답니까?”

“있죠. 그런 사람 몇 봤는데요? 흉하면 흉할수록 좋다면서 크게 흉터를 남겨 달라는 환자도 있었어요.”

“큰 건 얼마나 크고, 작은 건 얼마나 작은데요?”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능연의 경험담에 환자가 멍해졌다가 눈썹을 찡그리고 물었다.

“작은 흉터는 거트(gut: 양의 창자로 만든 장선)로 꿰매거든요. 그래서 잘 아문 다음엔 색이 좀 드러나는 정도의 봉합선만 남아요. 실밥 뽑을 필요도 없고요. 다만 좀 비쌉니다. 그리고 큰 흉터는 손가락 네 개 넓이 정도까지 만들 수 있죠. 티 나게 칼자국을 낼 수도 있고요. 남들이 보면 뼈가 보이는 것처럼 느끼게 말이에요.”

“그럼 큰 흉터로 하죠!”

상처 입은 젊은이가 갑자기 깨달은 듯 목소리를 높였다. 한마디로 맞춤형 문신 같은 흉터를 가지게 된다는 말이네. 어차피 칼에 찔렸는데 작은 흉터를 고른다는 건 바보 같은 짓이지.

능연이야 뭘 고르든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는 순식간에 봉합을 마치고는 흉측한 흉터를 거울로 환자에게 보여준 다음 붕대를 감기 시작했다.

- 성과: 환자의 진심 어린 감사

- 성과 설명: 환자의 진심 어린 감사는 의사의 최대 포상

- 보상: 초급 보물 상자

능연의 눈앞에 금빛이 번쩍였고, 그 뒤로 어깨를 부여잡고 멍청하게 웃는 젊은이가 보였다.

멀리서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들리자, 연자가 휠체어를 문 쪽으로 끌고 가 환자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그전에 보낸 환자가 아직 수액을 맞고 있을 때, 노금령이 세 번째로 환자를 보내왔다.

능연도 기지개를 켜고는 구급차를 맞을 준비를 했다. 쉬는 날도 봉합해야 했지만 별 불만은 없었다. 학교에 있을 때부터 무미건조한 매듭 묶기를 수천 번 반복했던 것처럼 지금은 데브리망을 무미건조하게 수천수만 번 반복할 뿐이었다.

의학이란 바로 그런 반복을 통해 익숙해지는 기술이었다. 이론도 중요하지만, 경험에서 쌓이는 가치를 무시할 수 없었다.

능연에게 게임이 일종의 기분 전환이듯 데브리망도 마찬가지였다. 둘 중 어느 것이 더 재미있느냐는 게임이 순조롭게 잘되는지, 아니면 재미있는 봉합 케이스인지에 달려 있었다.

“둔부 자상, 상처가 비교적 깊군.”

“등 부위 부상. 심하진 않아요. 봉합하게 이리 누워요.”

“다리 부위 상처인데 소독해야겠네요. 웅 선생님, 드레싱 부탁드려요.”

능연은 환자 하나를 붙잡고 바로 치료를 시작하는 게 아니라 응급실에서처럼 우선 환자를 일일이 살펴보면서 분류했다. 이는 실습생이 된 다음 터득한 방법이었다.

운화 병원 응급실에서도 환자는 몰릴 땐 몰리고 없을 땐 없어서 구급차 한 대로 환자 네다섯 명이 몰려오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럴 때마다 의사가 곧바로 손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치료 순서도 선착순이 아니라 중경에 따라 우선 구분 짓는 게 당연했다.

구급차를 두 번 맞이하는 동안 웅 선생과 연자는 능연의 속도에 익숙해졌고, 능연도 그들과 같이 일하는 동안 운화 병원에 있는 것보다 편안함을 느꼈다.

운화 병원 응급실 의사는 아무래도 순순히 능연의 조수가 될 리 없었고 기껏해야 조금 거들어 줄 뿐인데, 웅 선생과 연자는 찰떡같이 협조하니 효과가 더 좋을 수밖에 없었다. 봉합할 때도 능연은 꿰매기만 하고, 실 처리나 매듭은 웅 선생에게 넘기면 되니 훨씬 수월했다.

“됐어, 세 명 다 꿰맸네. 하나 남았는데, 어떻게 꿰맬 생각인가? 여자인 데다가 상처 부위가 어깨야. 어려울 것 같으면 병원으로 보내고.”

마지막 환자 붕대 처치를 마친 웅 선생이 마음이 놓이지 않는 듯 말하고는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노금령을 바라봤다.

“아가씨, 이 환자는 어디서 데리고 온 거요? 여자가 어디서 이렇게 다쳤지?”

“KTV에서 술 취해 있더라고요.”

노금령은 환자를 보는 건지 능연을 보는 건지 모를 시선으로 간단하게 대답했다.

“아니, 지금이 몇 신데 벌써 술에 취해서······.”

“요즘 오후에 할인하잖아요. 저렴할 때 먹고 마신 다음 밤에 꼬치 먹으러 가는 사람 많아요. 돈도 아끼고 좋잖아요.”

도무지 모르겠다는 웅 선생에 노금령은 태연하게 대꾸했다.

“잘 꿰맬 수 있어요? 얼마나 더 걸려요?”

나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진한 화장을 한 여자가 술기운이 사라지는지 상처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줄곧 상처를 내려다보던 능연은 ‘10분’이라고 간단히 대꾸하고 연자에게 실을 가지고 오라고 시켰다.

“5-0이요. 거트 있나요?”

“잠시만. 그 실은 너무 비싸.”

웅 선생이 다급하게 능연을 말렸다. 능연이 가지고 오라고 시킨 실은 미용 용도로 쓰는 실이었고 가격이 매우 비쌌다.

“그럼 어떻게 해요?”

능연의 판단은 단순했다. 흉터를 작게 남기려면 봉합선이 보이지 않도록 얇은 실을 써야 했다. 진료소에 오래 있었던 웅 선생은 경험이 풍부한 만큼 고려하는 것도 많았다. 그는 능연을 끌고 옆으로 가서 꿰맬 수 있는지 제대로 생각하라고 했다.

“할 수 있어요.”

능연은 간단하고 힘있게 대답했다. 그는 마스터급 봉합 기술의 소유자였다. 그런 상처도 처리하지 못한다면 창피한 일이었다.

“제대로만 한다면 이런 작은 진료소에서 그 실을 쓰는 것만으로도 돈을 좀 벌긴 하지. 그래도 5-0은 너무 얇은 거 아냐? 0호 쓰지 그러나?”

반신반의하며 고개를 끄덕이던 웅 선생이 물었다. 5-0호 실은 직경 0.1mm, 즉 머리카락 세 가닥 정도 되는 굵기였고, 0호는 4-0으로 좀 더 두껍고, 꿰매고 난 후 상처가 잘 벌어지지 않았다.

웅 선생은 능연이 컨트롤 하기엔 좀 더 굵은 실이 좋으리라 생각했다. 봉합을 시작한 다음에 실을 바꿀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다 괜찮아요. 다만 5-0을 쓰는 게 효과가 더 좋으니까요.”

능연은 어느 실을 쓰든 잘 꿰맬 자신이 있었지만, 환자의 행동을 예상할 수 없으니 조금 굵은 실을 써서 봉합 효과를 보장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여기서 말하는 굵은 실이라는 것도 사실 상대적이라 0호만 해도 응급실에서 흔하게 쓰는 가장 얇은 실이었고, 보통 의사들도 처리가 힘들어서 쓰지 않는 종류였다.

웅 선생은 확신이 들지 않는 얼굴로 잠시 능연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능 사장!”

“왜? 돈 받으라고?”

목소리를 높여 부르는 웅 선생의 모습에 2층에서 도 여사와 차를 마시던 능결죽이 찻잔을 내려놓고 아래로 내려갔다.

“비슷해. 능연이 5-0실로 봉합을 하겠대. 환자하고 이야기 좀 나눠봐. 다른 병원은 실 길이로 비용을 받으니까.”

“아, 흡수되는 실 말이지? 참 엉큼한 개인 병원도 많다니까.”

능결죽은 그렇게 말하면서 진료실 안으로 들어가 친절한 얼굴로 환자를 마주했다.

“4mm 좀 넘는 상처라니까, 그냥 4mm로 치고 50% 할인해드리지 뭐. 아들, 잘 꿰매라. 공부시킨 값은 해야 할 거 아니냐.”

“미용 수술할 줄 아는 거죠? 어깨 드러나는 옷 자주 입으니까, 흉터 남으면 안 돼요.”

능결죽이 하는 말에 술이 완전히 깬 환자가 긴장한 듯 능연을 보며 물었다. 연자는 육중한 두 다리를 놀리며 4-0, 5-0 거트를 들고 나왔다.

“두 가지 다 흉터는 안 남아요. 이게 5-0, 더 얇아서 흉질 가능성이 좀 더 낮은데, 나중에 관리를 잘해야 해요. 그리고······.”

“얇은 거로 할게요.”

능연이 두 가지 실을 환자 앞에 내밀고 설명하는데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환자가 끼어들었다.

“두 개 다 얇은 겁니다.”

웅 선생이 못마땅하다는 듯 입을 삐쭉이며 하는 말에 환자가 ‘더 얇은 거로’라고 고쳐 말했다. 봉합 전 주의 사항을 설명한 능연은 긴말하기 귀찮아져서 손을 휘저어 사람을 내보내곤 실 봉지를 찢었다.

0호보다 얇은 실은 일반적으로 바늘과 함께 포장되어 있고 바늘귀가 없는 것이 특징으로, 생산 단계에서 바로 바늘에 꿰어져 봉합 시 환자 피부에 대한 외상을 줄여줬다. 그리고 포장할 때도 일반 봉합사는 5개, 10개 한 세트로 포장되는데 바늘이 딸린 얇은 실은 하나씩 포장되기 때문에 더 고급스러워졌다.

그러나 의사라고 꼭 얇은 실을 선호하는 건 아니었다. 봉합을 일종의 테스트로 본다면, 7호실은 합격 점수가 30점이라 쉽게 통과할 수 있고, 0호실은 60점으로 기준이 높아져서 신중히 해야만 했다. 5-0은 80점이라 온 정신을 집중해야 겨우 해내는 의사도 있고, 아무리 애를 써도 합격하지 못하는 의사도 있었다.

물론, 무슨 시합이든 압도적으로 100점 만점을 내는 사람은 있는 법이다. 예를 들어 마스터급 봉합술을 터득한 능연이라면 5-0, 6-0은 말할 것도 없고 10-0도 손쉽게 해치울 수 있었다.

“됐어요. 눈 떠도 돼요. 상처에 물 안 닿게 조심하고요. 가능하면 움직이지 말고요.”

능연은 다른 봉합 환자와 별 차이 없이 처치를 끝내고 습관적으로 주의 사항을 읊었다. 곁에서 돕던 웅 선생은 실의 굵기에 전혀 영향받지 않고 가볍게 움직이는 능연의 모습에 적잖게 충격을 받았지만, 티 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오히려 환자가 다소 긴장하고 불안한 듯 입을 열었다.

“아까 말한 대로 혹시 흉터가 남으면 환불뿐 아니라 배상해야 해요! 흉터가 안 남으면······ 나중에 내 친구들이 다치면 여길 소개할게요.”

능결죽은 대번 고개를 끄덕였다. 의사는 아니지만 그가 보기에 능연의 기술이 비싼 값을 부르는 다른 의사보다 떨어질 리 없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그는 앞으로 이런 식으로 진료소에 환자가 넘치게 되면 시간제 의사를 하나 더 고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능연이 운화 병원에 있는 동안 정상 영업을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는 진찰실 옆 창고를 바라보며 그의 상징인 후덕한 웃음을 지었다.

월요일, 능연은 아침 일찍 일어나 직접 계란 프라이를 굽고 죽을 끓여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걸어서 병원으로 출근했다.

도평 여사가 운전을 못 하기 때문에 능연 집에는 차가 없었다. 능결죽은 도평 여사가 필요로 하지 않는 소비품은 필수품으로 취급하지 않았고, 중고차 가격은 뚝뚝 내려가기 때문에 살 생각도 하지 않았다.

능연은 차가 없어도 별 상관없었다. 의대를 다닐 때도 그랬지만, 병원에서 실습하는 지금도 차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물론 시스템이 트랜스포머를 한 대 선물하면 모를까.

“능연, 옷 갈아입고 수술실로 들어와.”

의국은 몹시 분주했고 능연도 바로 콜을 받았다. 그는 바로 들고 있던 물건을 내려놓으며 당직 간호사에게 무슨 일인지 물었다.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났어요. 환자가 오는 중입니다. 심각한가 봐요. 현장에 나간 의사랑 같이 올 거예요.”

당직 간호사는 밤을 꼬박 새워 충혈된 눈으로 능연을 바라봤다.

“현장에요?”

“헬리콥터요. 보험 중에 헬리콥터 구급 되는 게 있거든요. 전화만 걸면 헬리콥터로 우리 병원이나 성립 병원으로 환자를 이송해요. 우리도 이삼 개월에 한 번씩 그런 환자를 받아요.”

“그렇군요.”

“직접 헬기 부르는 건 비싸거든요. 한 시간에 만 위안 정도 들걸요?”

“오.”

“삼 만이던가.”

“오.”

“능 선생님, 화이팅!”

더 할 말이 없어진 간호사는 주먹을 움켜쥐고 팔뚝을 흔들었다.

“고마워요.”

능연은 한숨을 내쉬었다. 출근하자마자 응급 상황이 닥치다니, 준비운동도 없이 경기장에 들어가는 기분이라 내심 걱정이 됐다.

그는 처치실을 가로질러 복도를 꺾어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수술용 탈의실은 5층에 있었다.

운화 병원 수술실엔 탈의실만 해도 60평 정도였다. 샤워실, 화장실 등 모든 설비는 삼갑 병원 표준에 따라 지어졌는데, 표준이란 삼갑 병원 모든 병원에 통용되는 한 층짜리 수술실을 뜻했다.

그렇게 호화롭게 지을 수 있는 것도 운화 병원 응급실의 마르지 않는 재원, 혈액투석실이 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 병원의 혈액투석실은 독립되어 있으며 특히 2급 병원은 요독증 환자로 벌어들이는 치료비가 어마어마했다. 그보다 낮은 등급인 3급 병원, 예를 들어 삼을 병원인 창평구 병원의 혈액투석실도 다른 외과 벌이를 합친 것보다 훨씬 비쌌다.

하지만 운화 병원은 어떻게든 응급 의학과를 키우려고 안달인 곽종군이 혈액투석실이 별도로 운영되도록 지켜만 보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그는 오히려 혈액투석실을 응급 의학과에 통합시켜 수술실, 투석실에 공용 탈의실을 만드는 등 응급 수술 조건을 극대화해서 응급센터로 확장할 여지를 남겨두었다.

“심장 내과, 심장 외과 도착했어? 일반 외과랑 정형외과 다시 한번 재촉 해봐. 수부외과에도 연락해서 수술 준비됐는지 확인해 봐.”

능연은 탈의실에서 홀딱 벗고는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나오자마자 조낙의의 목소리를 들었다.

조낙의는 일요일 당직이었는데 교대 전에 전화를 받은 바람에 버티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1번 방 준비됐어요.”

“그럼 1번 방으로 해.”

1번 수술실은 응급 의학과에서 가장 큰 수술방이었고 설비도 가장 완벽해서 오늘처럼 사람 많은 수술에 적합했다. 지금까지 들려온 소식만 해도 환자의 상태는 최악이었고, 온몸에 외상이 여러 군데라고 하니 수술을 동시에 진행해야 할 가능성도 있었다.

조낙의는 양쪽을 둘러봤다. 그의 곁에는 당직 레지던트 두 명에 실습생인 능연밖에 없었다. 전신에 중상을 입은 환자를 대응하기에 터무니없이 모자란 숫자였다. 레지던트 한 명이 초짜 실습생 둘보다 훨씬 나았지만, 저 레지던트 둘은 이런 수준의 수술엔 전혀 쓸모가 없었다.

“능연, 퍼스트 어시해.”

조낙의는 재빨리 그렇게 결정을 내렸다. 평소에 능연에게 호감은 없었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어쩔 수 없었다. 의사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갈등이 있다고 해도 사람 목숨 앞에 그보다 급한 건 없으니까.

“네.”

능연은 짧게 대답하고 조낙의 맞은편으로 가 퍼스트 어시스턴트 위치에 섰다. 레지던트 두 명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볼 뿐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몇 분 후, 수혈팩을 매단 환자가 수술실 안으로 들어왔다.

“아직 의식 있습니다. 공동 반응 정상, 척추, 복부, 사지 외상 출혈. 내출혈 의심이 있습니다.”

“혈액검사 하고, X-ray 찍어. 초음파, CT도 가지고 와. 다른 과는 아직이야? 왔으면 들어오라고 해, 트랜스 할 겨를이 없어. 여기서 그냥 하라고 해.”

조낙의는 일사불란하게 지시를 내리고는 재촉하듯 말을 이었다.

교통사고 환자는 언제나 복잡했다. 여러 과가 모여서 진행하는 응급 수술이고 조낙의가 잠시 진두지휘할 뿐이었다. 그는 환자의 바이탈 사인을 안정시키고 수술할 만한 체력이 있음을 확인할 책임이 있었다.

인구가 천만에 가까운 운화 시는 하루 평균 교통사고가 다섯 건 정도 일어났다. 그 사고로 평균 1명이 죽고, 5명이 다친다. 그토록 높은 사고 빈도에 운화 병원은 거의 이삼일에 한 번씩 교통사고 환자를 받았는데, 거기엔 경상 환자도 중상 환자도 있었다. 가벼운 환자는 소위 빨간약이라는 요오드팅크만 바르고 집으로 돌아가고 심한 환자는 여러 과가 합동 진료를 진행했다.

운화 병원 응급 의학과는 훌륭하지만 개흉 수술은 할 수 없었고, 일반 외과는 십이지장까지는 가능해도 간담, 췌장 문제는 다루지 못했다. 정형외과는 진료비를 벌려고 2급과 극히 드물게 생기는 3급 수술까지는 단독으로 진행하지만, 상태가 심각한 환자는 진료비를 독점하자고 단독으로 하겠다고 고집할 수 없어진다.

“대퇴부 지혈대 끊을 준비할 거야.”

수액, 혈액이 모두 준비된 것을 확인한 조낙의는 다른 약품도 확인하고는 능연 들으라고 그렇게 상기시켰다.

“네.”

능연은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했다. 환자의 상황이 복잡하긴 했지만, 외상 부위를 따로따로 살펴보면 그다지 어려울 것은 없었다. 그는 환자의 외상 부위를 주시하면서 조낙의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시스템, 이 세상에서 맨손 지혈법이 가장 훌륭한 사람이 누구지? 어떤 경지까지 할 수 있어?”

-이 세상에서 맨손 지혈법이 가장 훌륭한 사람은 아담 뢰플러 데이비스입니다.

능연이 머릿속으로 묻는 말에 시스템이 첫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 관련 문헌을 뒤졌을 때 그런 이름을 본 것 같은 기억이 떠올랐다. 그는 기억을 되살리며 다시 질문했다.

“그랜드마스터급 맨손 지혈법도 다시 등급이 나뉘어? 그 사람은 어떤 수준인데?”

-그랜드마스터급은 다시 등급이 나뉘지 않습니다. 아담 뢰플러 데이비스의 창조성 맨손 지혈 기술은 전설급으로 세계 제일입니다.

“전설급도 있구나. 그럼 나는 몇 등인데?”

-당신이 터득한 맨손 지혈 기술은 전 세계 126등, 중국 13등, 창서성 2등, 운화 시 1등입니다.

“창서에 나보다 강한 사람이 있다고?”

능연은 그랜드마스터급 위에 전설급이 있고, 자신보다 강한 사람이 창서성에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능연, 무슨 생각하는 거야!”

조낙의가 지혈대를 잘라내자 대퇴부 외상에 바로 피가 뿜어져 나오는데도 능연은 넋이 빠진 모습이었다.

“능연, 거즈 압박! 능연!”

“네!”

바로 대답을 듣지 못하자 조낙의의 음성이 높아졌고 능연은 현타라도 맞은 듯 기운 없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동시에 그의 손이 번개처럼 상처를 뚫고 들어가 환자의 넓적다리를 움켜쥐었다. 솟구쳐 나오던 피가 순식간에 줄어들었고 바로 자취를 감추었다.

그랜드마스터급 맨손 지혈이란 일반 교통사고 환자에게는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쓰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거즈 같은 건 필요도 없었다.

능연은 서서히 조낙의의 리듬에 적응해나갔다. 수술대는 집도의의 천하였고 아무리 잘난 의사도 어시스트할 때는 집도의에 맞춰서 움직여야 했다. 같은 원리로 마취과 과주임이 마취의로 온대도 집도의의 템포에 맞춰 약을 써야 했다.

수술이 진행됨에 따라 봉합 난도가 조금씩 높아졌다. 하지만 능연의 숙련도가 더 빨리 올라갔다. 그는 이제 데브리망은 식은 죽 먹기로 해냈다.

단순히 수술 기술만 따지면, 같은 수술을 서른 번 하면 실력이 상당히 는다. 맹장염 같은 간단한 수술은 서너 번만 하면 웬만한 의사는 혼자 수술대에 나설 수 있다. 백 번 정도 하면 그야말로 숙련된 의사가 되었다. 맹장 수술을 많이 해 본 주치의는 복강경 없이도 환자 복부에 작은 구멍을 내고 팔을 뻗어 바로 찾아낼 수 있었다.

능연이 터득한 마스터급 단속 봉합법은 단속 봉합에 제한되어 있지만, 데브리망같은 작업은 능연 혼자 힘으로도 백 번 넘게 해봤으므로 시스템 기술 없이도 잘해 낼 수 있었다.

실습생이 된 이래 실제로 조작해 본 것들이 모두 그의 경험으로 녹아들자, 동작이 재빠르고 정확해졌을 뿐 아니라 집도의 조낙의와도 완벽하게 합이 맞았다. 이제 몇 바늘 꿰맸을 뿐인데, 능연은 벌써 조낙의의 습관을 파악해냈다.

이제 조낙의가 방향만 틀어도 능연은 그의 생각을 추측해 낼 수 있었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조낙의는 능연의 어시스트를 받는 게 마사지를 받는 것보다 훨씬 편안하게 느껴졌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조낙의는 사실 능연이란 실습생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너무 거만해!

너무 커!

너무 잘생겼어!

너무 빨리 배워!

어쨌든, 조낙의는 키 크고 잘생기고 빨리 배우기까지 하는 실습생이 아주 ‘못마땅’했다. 그러나 능연이 수술대 앞에 선 후 조낙의는 말로 설명하기 힘든 ‘마땅함’을 느꼈다.

너무 순조로웠다. 출혈 포인트가 하나하나 제어되고, 상처가 하나하나 봉합되고, 환자의 혈압, 심박이 차츰 안정되자, 조낙의의 마음속에 성취감이 폭발할 듯 가득 찼다. 특히 곁에 다른 과 동료들까지 있으니 잘 빠진 스포츠카와 미녀를 가진 것보다 훨씬 통쾌했다. 의학 용어로, 도파민 분비 과다로 대뇌피질 해자가 꽉 찬 느낌이었다.

조낙의는 고개를 들어 능연을 바라봤다. ‘모르는 사람 접근금지’라는 태도는 변함 없었지만 그 모습이 옛날처럼 싫진 않았다.

“팔은 네가 꿰맬래? 할 수 있지?”

조낙의는 능연에게 포상을 내리기로 했다. 수술대에서 어시스턴트에게 독립적인 기회를 주는 건 가장 큰 포상이었다. 의사같이 늦게 싹트는 직업은 초기에 얻는 그 어떤 성장의 기회도 매우 소중하게 여기기 마련이었다.

교통사고 환자의 외상은 대부분 하반신에 집중되어 있었고, 어깨 상처는 상대적으로 심각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일반 데브리망보다 까다로웠다.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조낙의는 능연에게 그 부분을 넘기기로 결정 내렸다.

능연에게 연습 기회를 주면서 동료 앞에서 얼굴을 알릴 기회도 준 셈이었다. 물론, 능연이 제대로 잘 꿰매야만 했다. 아니면 집도의인 조낙의는 언제든 그에게 준 권력을 거둬들일 수 있다.

능연은 변함없이 침착한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간단하게 알았다고 대꾸하고는 간호사를 바라봤다.

“심스 시저(Sims Scissor).”

수술용 가위가 능연의 손바닥에 놓였다. 조낙의는 간호사가 도구를 능연에게 건네는 속도가 자신에게 건네는 것보다 어쩐지 더 민첩한 것 같다고 느꼈다.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둘러싼 심각한 수술이 아니었다면 분명 간호사를 놀렸을 것이다.

“거즈.”

“컷팅.”

직접 나설 기회를 얻고 난 다음에도 능연의 리듬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수술실 밖에서 기다리던 일반 외과 레지던트는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그런 모습에 놀라면서도 부러워했다.

일반 레지던트에게도 모처럼의 기회였지만, 능연에게는 사실 이제 별로 특별하지 않았다. 능연은 이제 레지던트보다 훨씬 많은 콜을 받고 있었다.

데브리망만 봐도 응급실 레지던트는 3년이란 긴 시간 동안 심화 훈련을 받으면서 10번만 해도 데브리망은 통과하지만, 여전히 어시스턴트로밖에 설 수 없다.

물론, 응급실 레지던트가 터득해야 하는 기술은 데브리망뿐만 있는 게 아니라서 이론상으로 심폐소생술 5번, 위세척 2번, 심장제세동 5번, 기도삽관 5번······ 같은 항목도 있다.

하지만 모든 항목의 수준을 완벽히 지키는 교육 과정은 손에 꼽힐 정도였다. 대부분 교육생은 알아서 임상 경험을 쟁취하면서 기회가 되는 대로 백번이고 이백 번이고 데브리망을 한다.

지금 능연이 무엇이 부족한지 따지자면, 바로 수술실에 올 기회가 적다는 것이었다.

“커브 시저(curved scissors).”

능연은 고개를 들고 잠시 목을 움직였다. 스크럽 간호사가 커브 시저를 건네고는 그 틈을 타 능연을 잠시 뚫어져라 바라봤다. 간호사의 심장이 쿵쿵대는 소리가 밖으로 들릴 정도였지만 능연은 아무런 느낌이 없는 듯 차가운 얼굴이었다.

능연이 의사라는 직업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수술실 환경 때문이었다. 성격상, 공무원이 되었다면 동료들에게 생트집 잡혔을 테고, 엔지니어가 됐다면 고객 클레임 대상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술실에서는 하찮은 수술을 할 때도 그가 출혈 포인트를 두 번 체크한다는 이유로 재촉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능연은 손을 움직이면서 필요한 도구를 또렷하게 요구했다.

“0호 봉합사.”

“핀셋.”

“거즈.”

그 목소리를 듣던 조낙의는 조금 우스운 기분이 들었다. 일반적으로 의사는 그런 식으로 도구를 달라고 하지 않았다. 특히 주치의 이상의 선임 의사는 대부분 잡담을 하고, 능글거리는 의사들은 야한 이야기를 하면서 도구가 필요할 때면 그냥 손을 내밀거나 아니면 직접 가져오곤 한다.

좋은 간호사와 한 팀이 되면 의사가 필요한 도구를 입에 올릴 필요도 없이 간호사가 알아서 의사 손 위에 도구를 올려놓았다. 의사에게 익숙할 대로 익숙한 장면은 간호사에게도 마찬가지라서, 그들은 의사가 다음에 뭘 필요로 하는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능연은 아직 그런 경험도 없고 간호사하고도 익숙하지도 않으니 당연히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모스키토 포셉(혈관 핀셋).”

“포셉.”

“마이크로 글래스(Microscopic glasses).”

능연이 또박또박 소리를 낼수록 조낙의는 재미있어했다. 그러나 그의 미소는 오래가지 못했다.

“마이크로 글래스로 뭐 하려고?”

자기 일을 하던 조낙의는 뭔가 잘못됐다 싶어 퍼뜩 고개를 돌렸다. 능연은 벌써 환자의 손을 똑바로 놓고 바늘을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수부 파열, 혈관 문합과 근건 봉합입니다.”

능연은 고개도 들지 않고 조낙의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 말투는 도구 간호사에게 말을 걸 때보다 훨씬 성의가 없었다.

“누가 근건 봉합하래? 넌 상처만 처리하고 근건 봉합은 수부외과에 넘기면 돼!”

조낙의가 얼굴을 찌푸린 채 고함쳤다. 데브리망은 응급 의학과 일이라 누가 봉합해도 상관없지만, 근건 봉합이나 혈관 문합은 그들의 영역이 아니었고 이론상 그들 누구도 할 수 없는 작업이었다.

“아까, 팔은 저한테 맡긴다고 하시지 않으셨나요?”

능연이 잠시 말을 멈췄다가 조낙의가 한 말을 반복하며 상기시키자 그는 펄쩍 뛰었다.

“내가 팔이랬지? 손이 팔에 포함되냐?”

“아닌가요?”

“상처 몇 군데 처리하라고 한 거라고! 수부 근건 봉합을 하라는 게 아니고!”

조낙의는 동작을 멈추고 한 손으로 핀셋을 잡은 채 어이없다는 듯 능연을 바라봤다.

“아.”

능연은 알겠다는 듯 그렇게 소리를 내놓고도 동작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익숙한 리듬으로 계속 손을 놀렸다.

“야! 너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일부러 이러는 거지? 내 말이 맞지? 맞네, 일부러 이러는 거네.”

조낙의는 제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는 능연이 근건 봉합 수술 한 번 하려고 일부러 모호하게 대답하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에게도 고인물급 봉합 기술이 있다면, 그 역시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근건 봉합술이나 혈관 문합술을 하려고 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조낙의는 능연의 맨손 지혈을 처음으로 목격한 주치의이며 그의 봉합 수준도 잘 알고 있었다. 기술 수준으로만 따지면, 그는 능연의 실력을 믿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팔 봉합을 맡기지도 않았을 테니. 그러나 의사라면 잘 알듯이 기회를 쟁취하기란 쉬운 것이 아니었다.

그가 실습생이던 시절만 봐도 그랬다. 항상 지도교수 곁을 따르며 차 심부름에, 차트 기록에, 음식 배달에, 시키는 대로 다 하고 웃는 얼굴로 대하면서 얻은 보상이 무엇일까? 바로 폐복 한 번 할 기회였다.

이유 없이 수술할 기회를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조낙의가 처음으로 맹장 수술을 했을 때는 세 시간이 걸렸는데, 그중 한 시간은 개복하고 맹장을 찾는 데 썼고 두 시간은 거즈 찾는 데 썼다. 더 정확히 말하면 마지막 한 시간 동안 지도교수가 직접 거즈를 찾았다.

아직도 그날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지도교수는 별로 화를 내지 않았다. 적어도 평소에 그가 실수할 때보다는 화를 덜 냈다. 그에게 맹장 수술을 맡기기로 했을 때 지도교수는 이미 사고가 생길 걸 예감한 것이다. 그리고 거즈가 사라진 게 맹장이 사라진 것보다 나으니까.

그 후로 조낙의는 순조롭게 맹장 수술을 했고, 적어도 거즈 찾았던 경험이 있어서 그리 오래 걸리지 않게 되었다. 바로 그런 점이 관건이었다. 초짜 의사들은 첫 기회만 잡으면 바로 두 번째, 세 번째 기회를 잡을 수 있고 그 뒤로는 같은 유형의 기회가 셀 수 없을 만큼 눈 앞에 펼쳐졌다.

처음이란 언제나 험난한 것이다. 실험용 쥐가 되길 원하는 환자는 없고, 지도교수는 쉽게 마음을 놓지 않지만, 병원은 의사의 실력을 검증하려고 했다.

모든 환자, 모든 지도교수, 모든 병원이 바라는 의사는 다음과 같다. 마흔 전후의 에너지 충만하고, 명문대학 박사 출신의 이론이 충분하며, 30년 이상의 연구 경험이 있고 시야가 넓고, 40년 이상의 임상 경험이 있어 경험이 풍부한, 50년 이상의 인문 사고와 이치에 통달한, 열 살 아이의 호기심을 가진, 스무 살 청년의 진취심이 있는, 서른 살 성인의 진중함에 마흔 살 중년 이력이 있고 쉰 살 장년의 성숙함과 예순 살 노년의 느긋함이 있으나 대머리가 아닌 의사.

조낙의가 운화 병원에 들어올 때는 더 험난했다. 하지만 처음 폐복하고 맹장 수술을 했을 때 그는 기술적 장애를 극복할 수 있었다. 다른 학생들보다 수술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결국 운화 병원의 의사가 되었다. 그리고 정말로 대부분 동창생보다 수술을 잘하게 되었다. 특히 시 부속 병원으로 가거나 구 부속 병원, 현급 병원에 간 동창 혹은 아예 의사의 길을 포기한 동창과 비교해서 말이다.

조낙의는 기회의 가치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분노했다. 그의 눈에 능연은 그야말로 도둑놈이나 마찬가지였다.

존경과 순종도 없이 수술대에 올라오자마자 바로 근건에 손을 대?

조낙의는 ‘이 몸도 아직 근건 수술 몇 번 못 해 봤다’라고 고함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상처 부위는 다 처치했습니다. 아직 피가 스며 나오는 부분은 바로 꿰매지 않으려고요. 수부 근건은 최대한 빨리 봉합하겠습니다.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능연은 재빨리 손을 놀리면서 말했다. 그에게는 그렇게 말해도 될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수부 봉합 경험도 있고, 그의 봉합 기술로 현재 환자의 다친 부위를 충분히 커버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시간도 그의 편이었다.

조낙의가 다른 부위의 상처를 처리하려면 아직 한참 걸릴 것이고, 주변에 그를 도울 조수도 레지던트 둘뿐이니, 능연이 수부 봉합을 한다고 해서 시간이 지체될 리도 없었다. 오히려 더 효율적이었다.

“내가······.”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조낙의는 말도 잇지 못했다.

내가 시간이 지체될까 봐 두려워서 이러는 줄 아니?

그렇다, 사실 두려웠다. 그보다 더 두려운 건 의료사고가 날까 봐서였다. 팔의 상처는 봉합이 잘 되든 아니든 사실 큰 상관 없었다. 레지던트 아무나 불러서 꿰매도 문제없었다. 기술에 따라 상처가 흉할지 아닐지, 빨리 회복할지 아닐지, 그 차이만 있었으니까.

그러나 수부 기능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수술 때문에 손의 기능이 잘못된다면 고소당하거나 병원 앞에 현수막이 걸릴 수도 있는 문제였다.

“능연, 모든 동작을 멈추고 손 떼!”

환자의 손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능연의 모습에 조낙의가 드디어 강하게 나왔다.

“확실해요? 저 지금 탕 봉합법 쓰는데, 도중에 멈추면 환자의 근건 손실이 불가피합니다.”

능연은 차가운 눈으로 조낙의를 힐끔 쳐다봤다. 실력과 수술 중 판단력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조낙의처럼 책임 문제만 따지고 수술 중 판단력을 완전히 잃은 의사라면, 정신 질환 테스트에서 불쌍할 정도로 낮은 평가를 받을 것이다.

너, 너무 비열한 거 아니냐?

아직 긴가민가하던 조낙의가 다시 분통을 터트렸다.

“누가 너더러 탕 봉합법을 쓰래!”

“환자의 2구역 굴근건 파열 위치가 마침 탕 봉합법을 쓸 적합한 구역인데, 당연히 써야 하는 거 아닙니까?”

능연은 봉합 전에 이미 환자의 근건 파열 상태가 적합하지 않으면 탕 봉합이 아닌 일반적인 단속 봉합법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어떤 방법을 쓰든 마스터급이니까.

사람의 굴근건은 총 다섯 부분으로 나뉘며 2구역은 손가락 두 번째 마디부터 손바닥 바로 앞까지 포함된다. ‘무인 구역’이라 불리는 가장 처치하기 복잡한 구역이었다. 남통 대학의 탕금파 교수가 나타나기 전까지 그곳을 제대로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무인 구역’이라고 불려 왔다.

능연이 얻은 탕 봉합법은 완벽하게 ‘무인 구역’이 가진 문제를 해결한 성과였으며, 그동안 연습실에서 자가 테스트를 할 때도 마스터급이 아닌 전문가급 기술로도 수술 성공률 70~80%를 달성했었다. 다른 봉합법과 비교해 두드러진 장점이 있는 기술이었다.

자신감에 넘쳐 간단하게 대답하는 능연의 모습에 조낙의는 말문이 막혔다. 그는 집도의이고 능연보다 직급이 훨씬 높은 주치의였지만, 뭐라고 대답할 말이 없었다. 의사는 실력으로 말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표면상으로 선배 의사는 후배 의사에게 막강한 장악력을 행사하지만, 그건 직책 문제가 아닌 실력 문제였다. 후배 의사가 잘못한 걸 발견한 선배 의사는 당연히 비 오는 날 먼지 날 때까지 욕할 수 있다. 그리고 보통 신나게 욕한 선배 의사가 후배 의사의 실수도 고쳐주면서 그의 책임을 덜어주니까 후배 의사도 순순히 욕을 먹는다. 그러니 선배 의사가 후배 의사에게 행하는 권력은 기술과 책임 위에 세워진 권력이었다.

능연이 하는 수술을 넘겨받을 능력이 없는 조낙의는 그 순간 수술대를 지휘할 힘을 잃었다.

“계속합니다.”

조낙의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자 능연은 다시 고개를 숙이고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수술실에 있던 간호사, 레지던트, 그리고 수술 준비를 하던 의사들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능연을 한 번 보고 다시 조낙의를 한 번 봤다. 그들은 가십을 즐기는 것 같은 표정으로 두 사람을 지켜봤다. 큰 구경거리가 생기자 삼복더위에 커다란 눈덩이가 얼굴로 떨어졌다가 가슴에 콕 박힌 것처럼 속이 시원해졌다.

탕 봉합법은 다조합 건내 봉합법이라고 불리며, 이름으로 짐작할 수 있듯이 다조합을 채택하고 보통은 3세트 나일론 봉합사로 근건을 봉합한다. 이런 방식으로 봉합한 근건은 인장 강도가 Kessler법과 더블 TSUGE 법보다 훨씬 좋고 근건 뒤쪽의 혈액 순환을 파괴하지 않았다.

다만, 다른 근건 봉합법과 비교해서 가느다란 근건을 3세트 나일론 봉합사로 꿰매야 해서 난도가 높았다. 능연이 멈출 수 없다고 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였다. 1/3을 마쳤는데, 나머지를 이어 하기엔 난도가 더 높아지고 다른 봉합 방법을 채택하는 건 더욱 어려웠다. 조낙의가 수술을 이어서 할 수 없는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조낙의가 억지로 하려고 들면 근건 봉합은 할 수 있지만, 탕 봉합법은 접해 본 적이 없었다. 탕 봉합법은 일반 단속 봉합법과 방법이 아예 달랐다. 수부 2구역에만 적합한 봉합법이라 적용 범위가 매우 좁았고 사람 손바닥 면적 1/5에만 적용되는 방법인 데다가 난도가 지극히 높았다.

거기다 응급실 훈련 정책은 전체 의과생 상대로 하다 보니 주치의인 조낙의도 탕 봉합법을 접한 적도 없고 말로만 들어봤을 정도였다. 하다 말고 멈출 수 없다는 말을 들은 이상, 뭐라고 반박할 수도 없었다.

지금 나더러 어쩌라고? 그만두라고 명령해?

조낙의는 사방을 둘러봤다. 수술실은 무법 지대가 아니다. 수술실에서 집도의의 권력이 높다 해도 결정을 내리는 동시에 책임도 따르는 위치였다.

물론, 그만두도록 강제 명령을 내릴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런 다음에는?

환자가 수부 기능을 상실하여 소송이라도 걸어온다면 어쩐단 말인가. 송사 문제를 고려하지 않는다고 해도 병원 내부 심의를 통과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잘못하다가 소송에 걸리면 4, 5년 안엔 부주임으로 승진할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하고 정말 재수 없으면 건강검진 센터로 전출될지도 몰랐다.

아니면 수부외과 대장을 모셔와 도와 달라고 부탁할까?

수술실 안에 숨이 막힐 것 같은 적막감이 감돌았다.

“스킨 훅.”

“글래스.”

“핀셋.”

능연은 다시 마이크로 글래스를 쓰고는 표준적인 방법으로 명확하게 도구를 요구했다.

“곽 주임님 수술실로 모셔와.”

안절부절못하던 조낙의는 결국 대장을 부르기로 결정 내렸다. 하지만 역시 자기 과 대장을 먼저 불렀다. 이것도 대역을 찾을 때 기본으로 지켜야 하는 룰이었다. 그와 동시에, 신이 나서 수술 장면을 지켜보던 일반 외과 의사들은 뒷걸음질 쳐서 문 오른쪽 아래에 있는 푸시 버튼을 눌렀다. 그러곤 문이 완전히 열리기도 전에 그 틈을 비집고 도망쳤다.

“후강, 너 탕 봉합법 할 줄 아냐?”

일반 외과에서 응급 의학과로 지원 온 레지던트가 눈썹을 찡그리고 물었다. 수부외과의 분류가 더 세밀할 뿐, 일반 외과와 수부외과는 원래 한 가족이라 레지던트들끼리는 꽤 친하게 지냈다.

“그런 걸 왜 묻냐?”

병원 진료과는 매일매일 응급 의학과의 긴급 합동 진료 요청을 받았다. 어떨 때는 하루에 두어 번 요청이 들어오는데, 그럴 때마다 주치의나 부주임 의사를 보냈다가는 해당 진료과는 다른 일은 할 생각을 말고 매일 응급 의학과 연락만 기다려야 했다.

그래서 응급 의학과 합동 진료 요청이 들어오면 각 진료과는 우선 레지던트를 보내 상황을 파악하고 현장에서 처리할 수 있으면 하고 처리할 수 없는 환자는 자기 진료과로 트랜스해서 처리하곤 했다. 응급실에 있는 설비도 다 함께 쓰기엔 부족하니 말이다.

오늘 같은 경우도 일반 외과는 서둘러 수술을 진행해야 하는 응급 수술이고 수부외과는 조금 기다렸다 진행해도 되는 수술이라 한 사람은 문 안에서 대기하고 한 사람은 문밖에서 대기했다.

“안에서 지금 탕 봉합법으로 수술한다.”

“말도 안 돼. 번 주임님 지금 일본에 연수 가셨는데?”

일반 외과 레지던트가 실실 웃으며 하는 말에 후강이 바로 고개를 내저었다.

“너희 수부에 탕 봉합할 줄 아는 사람이 번 주임님밖에 없다는 거지?”

“번 주임님만 탕 봉합법을 해도 되는 거지.”

외과 레지던트의 말을 후강이 고쳐주었다.

수부의 무인 구역을 처음 돌파한 것은 물론 탕 봉합법이지만, 벌써 20년 전의 일이고 다른 기술도 발전해 왔기 때문에 어떤 방법을 쓰는 게 더 좋을지는 환자의 상황에 달려 있다.

일반인 생각으로는 의사는 당연히 여러 장점을 받아들여 다양한 방법을 학습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보통 의사들은 여러 방법이 있다는 것만 알고 그중에 한 가지 방법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곤 한다.

학생들이 공부하고 시험문제를 푸는 것과 같았다. 간단한 문제도 해법이 여러 가지 있는데 한두 개만 깨우쳐도 나중엔 지속해서, 끊임없이, 오랫동안 자신이 익숙한 해법으로 문제를 푸는 것과 같은 원리였다.

의사들이 새로운 기술을 연습하는 덴 본전이 많이 들어서 몇 가지 병행할 수 있는 기술을 배우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그리고 어떤 특정 수술법으로 수술해야 하는 환자가 있다면, 일반적으로 대타를 초빙하거나 아예 환자를 그 병원으로 보내기도 했다.

운화 병원 수부외과에서 탕 봉합에 능숙하고 자주 쓰는 의사는 번 부주임 하나였다.

“네가 들어가서 봐봐. 이제 우리 운화 병원에 탕 봉합법을 쓸 줄 아는 의사가 번 주임 말고도 있으니까.”

후강은 주변을 정리하고는 미심쩍은 듯 버튼을 밟아 수술실 문을 열었다.

치익.

외과 레지던트인 후강은 알아서 구석 자리로 가서 목을 빼고 수술실 안을 들여다봤다. 무영등이 비추는 곳에 시야가 탁 트여서 환자의 수부 2구역을 누군가 수술하고 있는 장면이 똑똑하게 보였다.

탕 봉합법을 자연스레 뇌리에 떠올린 후강은 순간 멍해졌다.

치익.

그 순간 초록색 수술복을 입은 곽종군이 수술실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인가?”

“능연이 허락도 없이 범위를 넘어 수술을 시작했습니다.”

오면서 소식을 들은 곽종군이 침울한 목소리로 묻자 조낙의가 조르륵 달려가 일러바쳤다.

“그런가?”

“예.”

곽종군은 능연을 바라보며 물었고, 능연은 고개를 숙인 채 손을 멈추지 않고 대답했다. 능연이 그렇게 순순히 인정할 줄 몰랐던 조낙의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규정 위반인 걸 알면서 왜 수술을 진행한 거지?”

“근건 수술을 진행하기 전엔 규정 위반인 걸 몰랐습니다.”

곽종군은 의아한 듯 물었고, 능연은 실습생 수첩에 그런 내용이 없었다는 걸 잠시 떠올리고는 대답했다. 곽종군과 조낙의도 멍해졌다. 그들도 그제야 능연이 실습생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이 녀석이 아직 실습생이라고?!

수술실에서 팝콘을 튀기던 의사들도 속으로 고함쳤다. 조금 전까지 시원해하며 불구경하던 마음이 갑자기 싹 사라졌다.

“수술실에서는 집도의가 절대 권력이다. 집도의의 요구대로 움직여야 할 뿐 아니라 네 행동, 특히 비정규적인 행동일 경우엔 더욱더, 집도의에게 우선 보고하고 허락을 구해야 해. 알겠나?”

“알겠습니다.”

엄숙하기 짝이 없는 곽종군의 말투에 능연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좋은 기술이라도 절차는 밟아야겠지.

그가 어릴 때 친구 몇이 돈을 모아서 산 변신 로봇을 누가 조립할지 결정하는 건 경험과 기술에 달렸고, 적어도 작은 로봇을 몇 번 조립해 본 사람이라야 손을 댈 수 있는 것과 같으리라. 어렵사리 사 온 비싼 변신 로봇에 결함이 남기라도 하면 마음이 너무 아프니까 말이다.

수술대에 누워 있는 환자도 당연히 기술 있는 의사의 절차를 따른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능연도 잘 알고 있었다.

“다음에 수술실에 들어올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겠나?”

곽종군은 뒷짐 진 채 능연을 응시하며 딱딱한 음성으로 물었고, 능연은 잠시 진지하게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집도하면 되나요?”

“수부외과 들어오라고 해. 수부외과! 지금 있어?”

조낙의는 능연을 그대로 두고 보다간 그 자리에서 터져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한창 상황을 구경 중인 의사들을 둘러봤다.

“여기 있습니다. 그런데, 번 주임님이 안 계셔요.”

후강이 손을 들었지만 이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덧붙였다.

“번 주임이 없으면, 금서 주임은?”

“탕 봉합법은 번 주임님 특기고, 금서 주임님은 평소에 그 기술을 안 쓰십니다.”

금서 주임은 수부외과 과주임이었다. 레지던트 생활 오래 하다 보면 눈치가 생긴다고, 후강은 바로 곽종군의 생각을 읽어내고 대답도 하면서 상기시킬 겸 대답했다.

아무리 과주임이라고 해도 평소에 익숙하지 않은 기술을 경솔하게 쓸 리가 없었다. 후강의 대답에 곽종군은 수술대 옆으로 다가가 마이크로 글래스를 쓰고 환자 손가락을 유심히 살폈다.

수부외과 수술을 한 적은 없지만, 응급 의학과 의사에게 근건 봉합술은 낯선 기술은 아니었다. 테두리가 깔끔한지 아닌지, 봉합이 단단히 됐는지 아닌지, 주변에 손상을 많이 입혔는지 아닌지 정도는 현미경으로 판단할 수 있었다.

능연이 마스터급 탕 봉합술로 봉합한 근건은 당연히 각 항목 지표에 부합했다. 적어도 곽종군이 트집을 잡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곽종군의 두 눈이 현미경 뒤에서 반짝였다. 그는 한참 후에 긴 한숨을 내쉬면서 계속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곽 주임님, 저 자식이 계속하게 두실 겁니까?”

“그럼 어쩔 텐가?”

되묻는 곽종군의 말에 잠시 머뭇거리던 조낙의는 속으로 콧방귀를 끼며 이제 책임은 곽 주임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환자가 나중에 손을 못 쓰게 돼도 이제 나랑은 상관없지 뭐.

곽종군은 뒤로 몇 걸음 물러나 자리를 비워줬고 능연은 살짝 목을 풀어준 다음 간호사에게 글래스를 달라고 지시했다.

“니들 홀더.”

“핀셋.”

간호사가 마이크로 글래스를 능연에게 씌워주자 그의 시야는 완전히 환자의 수부에 집중되었고, 더는 다른 사람의 시선과 생각을 의식할 필요가 없어졌다. 조낙의는 짜증이 나서 발가락 끝이 다 간질거릴 정도였다. 그는 한쪽 상처 부위 처리가 끝난 후 위치를 바꾸는 틈을 타 곽종군 귓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곽 주임님, 능연이 지금 하는 근건 처리를 끝내면 나머지는 수부외과로 넘기시죠.”

“우리가 할 수 있는데 왜 굳이.”

곽종군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조낙의를 힐끔 보는 눈빛엔 불만이 가득했다. 그 눈빛에 조낙의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 정신을 차렸다.

그래, 곽종군이 어떤 사람이란 말인가. 응급실을 키우는 데 국내에서 가장 앞장선 사람이다. 그것을 위해 논문을 얼마나 많이 발표했던가. 갖가지 회의에서 한 연설은 그보다 훨씬 많았다. 그 연설의 핵심은 응급실 규모화, 전문화였다.

병원의 다른 의사가 말하기를, 곽종군은 소외과(마이너 서저리. minor surgery)와 소내과를 세우려고 온 힘을 기울였으며 그것 때문에 10년 전부터 응급 의학과에서 맹장 수술을 하고 자궁외임신 처치를 해왔다고 한다.

약으로 병을 치료하던 시대엔 외과는 보편적으로 궁핍했고 수술을 해도 돈을 벌지 못했다. 그래서 곽종군도 앞다퉈 수술을 했고 말리는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창서성 의약 위생 개혁’만 봐도 서비스 비용을 높이고 의약 가격은 내리는 것이 목표였다.

그래서 성내 약품 가격은 점점 시장가에 가까워졌지만, 수술비는 근 10배 가까이 높아졌다. 외과 일반 의사가 한 번 수술로 버는 수입은 10위안에서 100위안으로 늘었고. 그러니 다들 앞다퉈 수술실로 들어갔다. 그 탓에 운화 병원 응급 의학과에서 새로운 항목을 개척하려고 해도 쉽지 않았다.

능연이 만약 그저 근건 수복술 같은 걸 했다면 어쩌면 곽종군이 중지시켰을 수도 있다. 하지만 탕 봉합을 그 수준까지 해내자 당연히 말리지 않은 것이다.

조낙의는 속을 부글거리며 환자 대퇴부를 한참 주물럭거리다가 저도 모르게 능연을 흘겨봤다. 능연의 동작이 빠른 편은 아니었지만, 군더더기 없이 착착 진행되었다. 얼굴을 보지 않았다면 수백 수천 년 동안 같은 수술을 해온 늙은 요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 놈. 솜씨만 좋으면 뭐 하냐. 내가 주임이었으면 지금 바로 학교로 돌려보내고 앞으로 일자리 찾기도 힘들게 네 파일에 빨간 줄을 그어 줄 거다. SBS(시방새)

조낙의는 언짢은 마음으로 능연을 지켜봤다. 속으로나마 욕을 하고 나니 조금 시원해졌다. 조낙의가 하는 수술은 번거롭긴 해도 단순했고, 그는 능연이 기초적인 실수를 해서 주임에게 버림받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굳이 고개까지 들어 그를 노려보는 여유를 부렸다.

재빨리 매듭을 묶는 능연.

박리 중.

재봉합 중.

조낙의가 능연의 손놀림을 바라보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고, 마음속에 소인배 두 명이 생겨났다.

- 소인배 1: 혈관 문합술을 아무렇지 않게 해내고 있네, SBS.

- 소인배 2: SBS.

- 소인배 1: 혈관이랑 신경총(nervous plexus)을 순식간에 피했네. 얄미울 정도로 정확하군. SBS.

- 소인배 2: SBS.

- 소인배 1: 봉합 위치도 정말 신경 써서 고르는구나. SBS.

- 소인배 2: SBS. SBS. SBS. SBS······.

“수술실에 사람이 너무 많군. 다른 과 사람들은 밖에서 잠시 기다리도록.”

능연의 동작을 잠시 지켜보던 곽종군은 마음은 놓였지만, 오히려 더욱 흥분됐다. 그리고 그제야 주변 환경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의사들이 자주 규정을 지키지 않긴 하지만, 지금 사용하고 있는 LAF(Laminar air flow) 수술실은 원래 출입 인원을 제한해야 하는 수술방이었다.

곽종군이 입을 열자 수술을 이어받으러 온 다른 과 의사들이 재빨리 밖으로 나갔다. 조낙의가 망신당하는 꼴을 즐겁게 구경하고 있었지만, 한 과의 주임의 말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곽종군은 평소 불벼락으로 유명했다.

다른 과 의사들이 순순히 수술실에서 나간 후, 곽종군은 편안하게 기지개를 켜면서 마취의의 의자를 끌어 털썩 앉았다. 마취의 소가복은 키도 작고 몸도 허약했다. 곽 주임이 왔길래 열심히 일하고 있음을 보이려고 환자의 바이탈을 살피려고 자리에서 일어난 것뿐인데, 그 사이 의자를 빼앗긴 것이다.

그때, 소가복은 곽 주임의 턱이 세 번 들리는 것을 똑똑히 봤다.

그는 즉시 입시 때 600점 넘게 받았던 논리적 사고를 돌리며 분석하기 시작했다. 턱을 한번 드는 건 가려워서고, 두 번은 인사, 세 번은······.

“잠시 나갔다 오겠습니다.”

소가복은 날렵하게 버튼을 밟아서 문을 열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수술실을 떠났다. 마취의들은 보통 수술실을 이리저리 떠도는데, 마취의가 부족하여 한 사람이 한 수술실을 관리하지 못해 그럴 때도 있지만, 단순히 심심해서 그럴 때도 있었다.

병원에 있는 기기의 자동화 수준이 매우 높아서 바이탈 사인도 자동으로 모니터링하고, 약물 주사도 자동으로 조절하는 등 이을 급 병원에서도 보편화되어 있다. 그 밖에 목소리로 ‘혈압’, ‘심박’이라고 알려주기도 해서 집도의, 어시스턴트, 간호사에게도 도움이 되었다. 마취의는 기계와 의사의 목소리만 들으면서 이어폰을 낄 필요도 없이 대부분 작업을 훌륭하게 해낼 수 있었다.

마취의를 수술실에 남겨둔 위대한 발명품은 바로 핸드폰이었다. 옛날에는 문헌과 소설을 읽다가 지친, 단기간에 시험 볼 일도 없는 마취의들은 자주 수술실에 모여 구석에 앉아 장기를 두거나 포커를 치거나 하면서 누가 어떤 수술실에 들어갈지 정하곤 했다.

곽 주임은 수술실 문이 닫힌 걸 한번 보고 목을 가다듬었다.

“자, 이제 우리 과 사람들만 남았군.”

의사와 간호사 모두 진료과에 소속된 인원이고, 과에서 월급을 받고 과 리더의의 명령을 듣는다.

“임시 회의 좀 열어 볼까?”

관리하는 사람이 고작 몇십 명이지만 곽 주임은 리더의 기세를 충분히 발휘했다. 조낙의와 능연은 수술을 계속했다. 임시 회의를 여러 번 참가해본 조낙의는 수술을 멈출 필요 없는 걸 잘 알았고, 능연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의 성격이 그랬다. 무슨 일이든 진지하게 임했고, 주변 분위기에 신경 쓰면서 이것저것 따지지도 않았고, 그저 눈앞에 일을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능연, 일단 자네부터 혼내야겠네. 최근 두 번이나 독자 행동을 하고 기강을 무시했어. 이게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알고 있나?”

곽종군의 목소리가 유유히 전해졌다. 능연이 미처 대답하기 전에 다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른 병원이고 다른 의사 같았으면 규칙대로 딱딱하게 처리했겠지. 그러면 자네 파일에 오점이 남는 건 둘째 치고 졸업장도 못 받아!”

조낙의는 조금 속이 뚫린 느낌으로 능연을 쳐다봤다. 그러나 능연은 매우 진지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근건에 링을 끼우고 있었다. 그 곁에 팀을 이룬 스크럽 간호사도 날렵하게 움직이면서 사인이라도 받고 싶은 간절한 표정으로 능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낙의의 마음속 두 소인배가 하마터면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어찌 됐든, 두 번이나 규정을 어겼으니 벌을 받아야겠지. 능연, 자네는 지금 실습 기간이네. 실습이라는 건 실천하고 학습하는 것이지. 하지만 심각한 잘못을 했으니 징계도 필요하네. 인정하나?”

“인정합니다.”

곽종군의 엄숙하고 진지한 목소리에 능연도 진지하게 대답했다.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는다, 능연도 당연히 동의하는 바였다. 학생 생활도 그렇게 보내왔다. 그가 대답하는 동안에도 니들홀더를 쥔 손에는 미세한 진동도 생기지 않았다.

곽종군은 일부러 몇 초 텀을 두고 다시 말을 꺼냈다.

“한 달도 안 됐는데 다시 심각한 규정 위반을 일으켰으니, 의교과에 그 일을 설명하고 자네의 응급 의학과 실습 기간을 늘릴 생각일세. 총 실습 기간도 다른 사람보다 길어진다네. 의견 있나?”

“없습니다.”

능연은 고개를 숙이고 환자의 손을 보고 있었다. 수술실 의사가 자주 하는 포즈로 별 특별할 것 없이 서 있을 뿐인데,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편해지는 자세였다. 곽종군은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하는 거로. 자, 이제 두 번째 사안.”

“주임님?”

조낙의는 미쳐 버릴 것 같았다. 때리는 시늉만 하는 것도 아니고, 곽종군의 매는 아예 내려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실습 기간 연장하는 게 무슨 징계란 말인가. 누가 봐도 그가 능연을 응급 의학과에 붙잡아 두려는 수작이었다.

곽종군은 조낙의를 상대하지 않고 슬쩍 손을 내저었다.

“아까 수간호사한테 좀 알아보라고 했더니 3개월 동안 우리 응급 의학과에서 수부외과로 보낸 굴근건 손상 환자가 30명쯤 된다더군. 그럼 사흘에 한 번씩 굴근건 손상 환자가 들어왔단 소린데, 이건 적은 숫자가 아니거든.”

잠깐 말을 멈춘 곽종군은 능연을 바라보며 탕 봉합을 더 하고 싶지 않냐고 물었다.

“그래도 됩니까?”

“이번 수술을 잘 해낸다는 전제하에, 주치의가 허락한 상황에서는 해도 되네.”

곽종군은 미소를 띤 얼굴로 조낙의를 비롯한 의사들을 바라봤다.

“굴근건 수술은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지, 한참 하다 보면 병례를 제법 축적할 수 있을 거야.”

순간, 조낙의는 침착해졌다.

그랬다. 지금 자기 손에 있는 환자가 무인 구역인 탕 봉합 수술을 받고 있었다.

무인 구역이라고!

실습생이 무인 구역에서 수술을 펼치고 있었다. 비율을 따질 것도 없이 그 수술을 할 수 있는 사람조차 몇 없었다. 창서성 탑급인 운화 병원에도 그 수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하나였다. 그런데 앞으로 운화 병원 응급 의학과에서 달마다 탕 봉합술을 10건이나 해낸다니.

맹장 수술이나 자궁 수술 같은 2급 수술이 아니며, 운화 병원 입장에서도 매우 고급 수술이었다. 집행된다면 응급 의학과 연 총결산에도 한 획을 그을 수 있었다.

적극적으로 새로운 진료 방식을 사용해서 한 해 탕 봉합 수술을 120여 건을 진행, 전국 응급 의학과 의학계의 신기록을 달성하다!

이러다가 곽종군의 꿈인 마이너 서저리도 이룰 수 있을지도 몰랐다.

조낙의는 지금 환자의 상황이 어떤지도 모르고, 예후가 어떻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곽종군에게 응급 의학과에서 이런 수술을 진행한다는 건 엣지볼을 치는 걸지도 모른다고 상기시키고 싶었다.

하지만 정말로 입에 올릴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곽종군은 그의 말을 듣지 않으리라는 것도 예상할 수 있었으니까.

환자의 예후는 지켜보면 될 일이고, 능연이 보여준 봉합 기술만 봐도, 수술할 수 있는 환자를 골라서 하면 될 일이었다. 응급 의학과에서 남의 밥그릇을 가로채는 건, 어차피 응급 의학과를 키우고 싶어 하는 다른 병원에서도 똑같이 일어나는 일이라 별일도 아니었다. 정형외과 자체가 수술을 뺏고 뺏기는 재난 구역이었다. 정형외과가 24K 금붙이를 두른 졸부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대형 응급 의학과가 정말 실현된다면?

대형 응급 의학과가 정말 실현된다면······.

조낙의의 뇌리에 저절로 어떤 장면이 펼쳐졌다. 그의 아내가 루이뷔통 전문매장으로 달려가 백 하나를 긁은 다음 옆 건물 수입브랜드 특가 매장으로 달려가 두 개 150위안짜리 티셔츠도 긁을 여유가 있는 모습······.

상상만으로 뜨거운 눈물이 흐르는 장면이었다.

치익.

곽종군은 수술실의 문을 밟고 나가 탈의실로 향하면서 노래를 흥얼거렸다.

“푸른 하늘, 맑은 호수, 푸르른 초원······.”

그는 자신의 양 떼를 살피는 목장주처럼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목을 빼고 수술실 안을 들여다봤다.

기분이 아주 좋을 때 곽종군이 텅거얼(Teng Ge Er: 몽골 가수)의 노래를 흥얼거린다는 것을 응급 의학과 의사들은 다 알고 있었지만, 지금처럼 <천국>이라는 노래를 부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사랑해, 나의 집, 나의 집, 나의 천국, 야야야, 환자 좀 잡아봐. 농양이 생각보다 깊네, 일단 좀 뚫어야겠어.”

4번 수술실에서 수술하던 두 주임도 클라이맥스 부분을 따라 부르며 수하 의사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마취의 소가복은 컴퓨터 앞에 앉아 투약 데이터를 입력하다가 저장하고는 슬쩍 웃음 지으며 두 주임을 바라봤다.

“두 주임, 나 다시 1번 방 가볼게.”

“OK.”

두 주임은 긴 바늘로 진지하게 환자 환부를 찌르면서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했다.

외과 의사들은 6개월마다 강제로 심리 검진받아야 한다니까.

소가복은 웃는 얼굴로 수술실을 나오면서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그가 1번 수술실 문을 밟아 열었을 때, 상상했던 일촉즉발의 험악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소가복은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수술실에서 큰 소리가 나지 않았으니 다행이었다. 마취의는 원래 고된 직업이라 툭하면 과로사를 일으키는데, 싸움까지 말려야 한다는 건 너무 가혹했다.

그는 자기 의자에 편하게 앉아서 컴퓨터를 켜고 투약 기록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여기도 끝났고, 이제 마지막 하나만 남았네.”

손을 뗀 능연이 바로 ‘땀’이라고 목소리를 냈다. 그러자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던 간호사가 깨끗한 거즈로 능연의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았다. 작은 얼굴을 치켜든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조낙의는 부러움에 얼굴이 다 새파래질 지경이었다.

“내가 레지던트일 때는 ‘죄송하지만 땀 좀 닦아 주세요.’라고 말했었는데 말이지.”

조낙의는 똑똑한 남자였고 병원에서 오래 일한 만큼, 어린 애들처럼 ‘난 화났으니까, 너랑 말 안 해!’라고 티를 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대신 그는 빈정거리는 방식으로 화를 표현했다.

능연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어린 간호사가 뾰로통해졌다.

“언제 적 이야기하시는 거예요? 20년 전? 30년 전? 우리 세대는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하는 세대라고요. 능 선생님, 저런 가식적인 말투 쓰실 필요 없어요!”

“야! 나 겨우 서른아홉이라고.”

“어머, 몰랐네요.”

공격당한 조낙의는 몸까지 흔들어대며 열심히 반박했지만 어린 간호사는 입을 삐쭉 내밀고는 휙 돌아섰다.

간호사는 수간호사 밑에서 일하는 데다 병원에 간호부가 따로 있어서, 의사들은 주임이 되더라도 간호사의 일에 직접 간여할 수는 없었다. 수간호사에게 의견을 내면 냈지. 그래서 간호사들은 조낙의처럼 태클을 걸거나, 툭하면 야한 이야기를 꺼내면 기분에 따라 그냥 무시해 버리고 말았다. 조낙의는 할 수 없다는 듯 헛기침 두어 번 하고 다시 손을 놀렸다.

“모스키토 포셉.”

“가위.”

수술실에 능연의 목소리만 들렸다. 탕 봉합법을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스크럽 간호사가 알아서 도구를 내밀 수 없으니, 이번엔 조낙의 역시 능연이 목소리로 지시를 내리는 것이 옳다고 인정했다.

곽종군이 얼마나 능연을 아끼는지 잘 아는 조낙의는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아도, 제가 주임이라고 해도 이런 의사는 아끼리라 생각했다.

병원에서 의사는 돈이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한다.

전국에 매년 15만 명 가까운 본과 의대생이 졸업하고 2만 명 가까운 석사가 졸업한다. 그런데 그들이 들어가고 싶어 하는 삼갑급 병원은 전국에 1,300개에 불과했다. 병원으로서는 오고 가는 실습생은 소모품이나 마찬가지였고, 레지던트, 일반 주치의도 그와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하나 가면 새로 하나 뽑으면 그만이었고, 오히려 누군가에게 일자리를 주며 생색을 낼 수도 있다.

하지만 한 구역에서 이름을 조금 날리고 특정 병력에 성과를 낸 의사라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속되게 돈으로 표현해보면, 실습생은 한 달에 600위안에서 1,200위안까지 수당을 받는다. 트레이닝 전 레지던트는 2천 위안, 트레이닝 후는 몇천 위안, 주치의는 만 위안 정도 받으면 괜찮은 편이었다. 정형외과, 안과 같은 졸부과나 되어야 3만 위안 정도를 꿈꿔 볼 정도였다.

그런데 이름을 알린 의사라면 다른 병원에 가서 수술을 도와주는 비용만 5천 위안이 넘고, 수술 시간이 길어지거나 다른 요구 사항이 있는 경우 한 번 ‘비도(飛刀: 나르는 칼. 중국 의사들의 출장 수술, 초빙 의사를 가리키는 은어)’로 나갈 때마다 일반적으로 1만 위안에서 2만 위안까지도 받는다. 실력이 더 좋은 의사는 여러 번 오가는 수고를 덜기 위해 심지어 한 번에 수술을 두 개, 세 개 잡아 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의사들이 이직할 때도 몸값 싸움이 치열하다. 어떤 수술에서 천 건 이상의 경험 있는 외과의는 위약금을 백만, 혹은 이백만이라도 지급하고 데리고 가려는 병원도 있다. 수술을 제대로 익히기까지 건당 5백에서 천 위안씩 들기에 의사를 새롭게 키우는 것보다 훨씬 이득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이유로 운화 병원 외과 부주임급 되는 의사의 위약금은 보편적으로 5백 위안까지 오른다. 해마다 의사들의 이직료에 관한 이런저런 소문이 계속 나돌고, 2, 3년이 지나면 그 소문이 사실이었음이 입증되곤 했다.

그런 방면으로는 의학계나 프로 스포츠계가 비슷했다. 실습생, 훈련의나 신인 선수는 기본 수입으로 겨우 먹고살고, 선임 레지던트, 주치의는 가장 레벨이 낮은 프로 리그전에 돌입한 선수와 비슷해서 자신의 스킬을 키우는 동시에 시합에서 목숨을 걸고 움직여야만 가족을 먹여 살릴 만큼 번다. 그리고 부주임급쯤 되면 지위와 명성이 생기지만 여유로운 생활은 아직 이른 단계고, 힘이 되어주는 소속을 떠나게 되면 그 바닥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되는 점이 선수와 비슷하다.

이름을 다소 알린 의사, 적어도 업계에서 알아주는 의사는 되어야 스타 선수처럼 선택의 여지가 있고 상대적으로 수입도 풍족해진다. 그리고 그에 맞춰 이적료 이슈도 생긴다.

조낙의는 아직 마취로 누워 있는 환자를 내려다보면서 속으로 그 환자가 바로 곽 주임의 시금석이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이 환자는 아마도 최고 대우를 받게 될 것이다. 그의 수부 기능이 기대한 만큼 회복되기만 하면, 곽종군은 능연에게 새로운 수술실을 내어 줄 것이다.

“다 됐습니다.”

능연은 이어서 검사를 시작했다. 속속 수술실로 돌아온 다른 과 의사들도 호기심을 누르지 못하고 몰려들었다. 능연은 신경 쓰지 않고 봉합 후 상처 부위를 진지하게 살폈다.

외출하기 전 창문을 잘 닫았는지 꼬박꼬박 확인하는 성격이니, 환자를 내보내기 전에 꼼꼼히 체크하는 것도 당연했다.

조낙의도 덩달아 속도를 올렸다. 그가 하는 작업은 드러내선 안 될 부분은 잘 덮고, 새어 나오면 안 되는 부분은 잘 봉합하고, 엮이면 안 되는 부분은 잘 격리하면 되는 단순한 작업이었다. 그리고 각 바이탈 사인을 안정시킨 다음 손을 떼면 된다.

능연이 자리를 벗어나기 전에 조낙의도 겨우 핀셋을 내려놓으며 끝났다고 외쳤다.

“잘됐다. 이제 쉴 수 있어.”

신난 듯 주먹을 쥔 어린 간호사는 받침대에서 내려오다가 조낙의를 한 번 올려다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자기 이마가 능연의 어깨춤에 닿은 걸 발견하고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히면서 생긋 웃었다.

“왕 주임, 수고스럽게 와줘서 고맙네.”

곽종군이 엘리베이터 앞에서 수부외과 왕해양 주임을 맞이했다.

왕해양은 나이 든 의사였는데 광대와 팔꿈치 뼈가 드러날 정도로 삐쩍 마른 모습이라 요즘 같은 인터넷 세대가 요구하는 체중에 매우 부합했다.

예전엔 정형외과 의사였던 그가 수부외과로 전과한 이유는 100킬로 거구 환자의 사지 절단술을 할 때 한쪽 다리도 옮길 힘이 없을 정도로 말랐기 때문이었다.

왕해양은 리프팅 시술을 받은 적 없는 얼굴에 친숙한 미소를 지으며 곽종군을 향해 웃어 보였다.

“이렇게 사근사근한 자네 모습을 보니 어색하구만. 곽벼락도 부탁할 때는 이런 웃음을 보일 줄 아는군?”

곽종군 뒤에 서 있던 주치의들이 하나같이 고개를 숙인 채 웃음을 참았다.

“자네가 와줘서 그런 거 아닌가. 기뻐서 그런 거지. 저녁에 바로 돌아가지 말고 술이나 한잔하자고.”

“됐네. 자네가 이렇게까지 나오니까 내가 다 뜨끔하네. 회의실 갈 거 없이 바로 병실로 가지 뭐.”

왕해양은 곽종군이 정말로 눈앞의 케이스를 신경 쓰고 있음을 눈치챘다.

“아이고, 미안해서 어쩌나. 그래도 내 부탁으로 와준 건데 물 한잔도 대접을 못 하다니 말이야.”

곽종군의 인사치레가 3m 밖에서도 들릴 정도였다.

“바로 병실로 가자고. 다들 바쁜 사람들인데 말이야.”

“그러지 그럼. 가서 능연 좀 불러서 바로 관찰 병실로 오라고 해.”

곽종군도 굳이 회의실에 가서 PPT를 보고 어쩌고 하기 귀찮아서 왕해양이 껄껄 웃으면서 하는 말에 동의하며 웃었다.

응급실의 관찰 병실은 입원병실 같은 곳이었고 잠시 상태를 살펴볼 필요가 있는 환자를 단기로 머무르게 하는 공간이지만, 실제 운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관찰 병실에 ‘3못’ 환자가 있기 때문이었는데, ‘못 고침’, ‘못 나음’, ‘못 돌아감’이었다. 3못 환자는 길게 1, 2년 동안 응급실에 남아 있는 일도 있었다.

원래 곽종군은 응급실을 요양원쯤으로 취급하는 환자들을 싫어했는데, 이번에는 그런 상황을 충분하게 이용했다. 그는 관찰 병실의 침상을 넓힌다는 명목으로 응급 공간을 몇 칸 비워내서 특별 병실로 사용했다.

원무과에서 한 번 시찰 나왔지만 모르는 척 눈감아 주고 말았다.

안으로 들어간 왕해양은 침대 4개가 있는 병실 한 칸과 수부외과에 있는 것과 똑같은 간이 재활 도구 몇 개를 보고 헛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내가 와서 다행이지, 금 주임이 봤으면 기가 막혔을 걸세.”

왕해양은 감정을 숨기지도 않고 곽종군과 금서 두 과주임을 비꼬았다. 승진 욕심 없는 주임 의사는 딱히 못 할 말도 없었다. 부주임이었다면 응급실에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환자 뺏어가는 곽주임을 도와 환자를 진찰하다니, 수부외과 의사로서 왕해양은 배신자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왕해양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과주임인 금서와 원래 서먹서먹했다. 어느 과든 과주임과 주임 의사는 남모르게 대적 관계였다. 하지만 왕해양은 과주임 자리를 노리지 않고 2과를 만들기를 바라지도 않는 데다가 더 끌어올릴 실력도 없었다. 그래서 치료팀 하나를 단독으로 이끌면서 진작부터 나 홀로 자유로운 상태로 보내고 있었다.

운화 병원에 벌써 여러 해 있어 온 곽 주임은 의사들의 관계를 알아도 너무 잘 알았다.

“자네 수부외과에도 우리 응급환자가 있는데 뭐. 왜? 금서가 필요 없다는 환자, 내가 받으면 안 돼? 그런 환자도 자네들이 먼저 골라야 해? 그런 법이 어디 있어. 안 그래?”

싱긋 웃으며 하는 곽종군의 말에 왕해양도 대답 없이 그저 실실 웃기만 했다. 환자 고르기는 응급 의학과와 다른 과 사이에 항상 있어 온 고질병이었다.

정상적인 병원 운영 방식대로 규정을 따르려면, 응급실에서 받은 환자는 응급처리 혹은 간단한 처치를 하고 해당 과로 보내야 했다. 그러나 규정은 규정, 집행은 집행이었다. 환자가 넘치는 좋은 병원은 어느 과든 응급 의학과에서 넘어온 환자를 모두 받지는 않았다. 그러다 보니 트랜스 제도가 선별 제도처럼 변했다.

고치기 어렵고 위험한 환자일수록 해당 과에서 꺼렸다. 예를 들어 말기 암 환자 같은 경우, 수술도 할 수 없는데 언제 생명에 위기가 올지 모르는 환자는 해당 과에서 거절하기 십상이었다. 노년 만성 환자도 마찬가지였다. 병세가 좋아졌다가 나빠졌다 반복하는 고령 환자를 제때 쫓지 않으면 침대를 오래 차지하고 누워서 과의 상금을 다 까먹고 만다.

그런데 운화 병원 수부외과 같은 엘리트 과에서 받은 환자는 다 운화 현지인도 아니었고 어떤 환자는 창서성, 혹은 전국 규모로 몰려왔다. 그러다 보니 수술량이 확보된 상황이라면 환자를 고르는 일이 불가피했다. 주임들의 연구 방향에 부합하는 환자가 최우선이었고, 치료 방안을 키울 수 있는 환자가 그다음이었다. 그다음은 환자가 소통하기 좋은지, 지급 능력은 있는지 등등을 살폈다.

환자 한 명 치료해서 과에 떨어지는 돈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일반적인 병례라면 고작 1, 2천 위안, 2, 3천 위안 정도였고, 만 위안까지 되는 케이스는 드물었다. 그런데 의료비 지급을 미루는 환자가 생긴다면 적자가 몇십만 위안까지 갈 수 있고, 의사가 인생에 회의를 느낄 정도로 과 실적이 깎일 수 있다. 정상인이라면 그런 일은 피하고 싶기 마련이다.

과와 병원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환자를 가능한 한 받지 않으려고 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어떤 환자들은 그대로 돌아가고 어떤 환자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응급 의학과에 남게 된다.

그동안 곽종군이 다른 과 환자를 떠안았던 것이 지금은 그의 무기가 되었다.

수부외과에서 환자를 고르면 자신도 트랜스 안 시키고 응급실에 남겨둘 수 있다는 곽종군의 말처럼 양측이 모두 할 말이 있으니 소위 옳고 그름이 없었다.

“이분이지?”

왕해양이 화제를 돌리면서 침상 앞으로 다가갔다.

다급하게 일어나 인사한 환자 가족이 주 선생의 권유에 따라 병실 구석으로 가서 서자, 흰 가운을 입은 응급 의학과 의사들이 침상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대장이 순시를 나선 만큼 격식을 갖추는 것도 당연했고 의사들도 그 참에 경험을 쌓았다. 물론 지금 그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능연이 진행한 탕 봉합술의 합격 여부였다.

“마문화 씨, 42세 남성. 자동차 사고로 응급실로 왔습니다. 두부 CT 음성, 경추, 사지에 각 등급 골절 다수 발생, 복강 내 출혈, 수술 3시간 진행, 왼손 굴근건 손상, 탕 봉합 수술 진행······.”

조낙의는 슬쩍 능연을 한 번 보고 계속 병력과 투약 방법을 읊어나갔다. 왕해양은 별다른 표정 없이 묵묵히 설명을 들었다. 지금까지 설명된 부분은 모두 배경 요소에 불과했고, 곽종군은 수부 봉합을 보라고 그를 부른 것이었다. 왕해양의 시선은 곧 능연에게 고정되었다.

능연을 본 적 없지만 ‘제일 잘생긴 녀석’이라는 곽종군의 말을 그대로 기억했다가 휘둘러 보고는 바로 목표물을 발견했다.

그 모습을 본 조낙의도 눈치 빠르게 설명을 마치고 곽종군 뒤로 물러섰다.

“어떻게 꿰맨 거지? 과정부터 곧바로 설명하게.”

왕해양은 일부러 그에게 준비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능연 본인은 별생각 없는 듯 앞으로 두어 걸음 걸어 나와서 바로 입을 열었다.

“첫 번째 바늘은 근건 근단 끝등판 바깥쪽 8mm 위치를 골랐습니다. 첫 매듭을 고정시키고 바늘을 횡으로 근건에 찔러넣어 왼쪽 끝등판 원단 6mm 위치에서 바늘을 빼고······.”

능연은 환자의 손등을 가리키며 손짓하면서 설명했다. 사실 왕해양은 탕 봉합술을 해본 적이 없고 평소에 Kessler와 더블 Kessler법을 사용한다. 그리고 편법으로 터득한 wilms법으로 손가락 이식 수술 등에 꽤 높은 성공률을 얻고 있어서 개인적으로도 높은 성취감을 느끼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복잡한 탕 봉합술을 그는 그다지 선호하지 않았다. 데이터로 보면 성공률을 10%에서 20% 정도 끌어 올리긴 했지만, 손 기능 회복 평점도 그 정도인 것에 비해 의사의 부담이 너무 높았다.

그러나 왕해양도 수부외과에서 혁혁하게 유명한 탕 봉합법에 대해서 매우 잘 알고, 탕금파가 수술하는 장면을 현장에서 본 적도 있었다. 그는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지식과 비교하면서 능연의 설명을 들었고, 듣다 보니 더 잘 이해하게 된 기분이 들었다.

잠시 시간이 흐른 후, 잘생긴 실습생을 힐끔 보던 왕해양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젠장! 곽가 놈이 이러라고 날 부른 게 아닌데. 혹시 실수라도 있는지 보라고 불렀는데 난 강의를 듣고 있었네!

“왕 주임, 무슨 문제라도 있나?”

계속 왕해양의 표정을 주시하고 있던 곽종군은 그의 안색이 변하자 가슴이 철렁해서 다급히 물었다. 그러자 왕해양은 잠시 침묵하다가 뭐라 말하기 힘든 얼굴로 아니라고 대답했다. 문제점을 찾을 수 없어서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몰랐던 것이다. 트집을 잡으러 온 주임 의사로서는 꽤 곤란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수부외과 근건 봉합은 원래 시스템적 요구는 낮고 기술적 요구는 높은 단순 수술이었다. 능연이 수술 스텝을 구구절절 조리 있게 설명하니 트집을 잡으려야 잡을 수가 없었다. 구체적 봉합 상황이 어떤지 보려고 환자의 근건을 다시 열어서 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왕해양의 말에 곽종군은 오히려 얼굴을 찌푸렸다.

“왕 주임, 할 말 있으면 하게. 뭐 감출 게 있다고 그러나. 응급 처치 중에 진행한 정밀 수술이라서 혹시 어디 빼먹은 거라도 있는지 제대로 살피려고 수부외과 전문가인 자네를 모셔 온 거 아닌가.”

그런 곽종군의 말에 구석에 있던 환자 가족이 감사한 표정을 지었다. 고속도로 사고는 환자가 몸이 갈가리 찢기지 않더라도, 반파 상태가 되어서 목숨만 붙어 있어도 다행일 정도로 큰 사고였다. 의사가 더 신경을 써줘도 얻는 것은 감사 인사 정도일 텐데 곽 주임이 손 기능까지 챙기는 모습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따 손 기능 평가를 해보세. 물론 지금은 막 수술을 끝낸 후라 상황이 좋지 않을 수 있으니, 일단 참고만 하세.”

왕해양은 헛웃음을 허허 웃었다.

손 기능 평가는 환자의 수부 기능을 체크하기 위해 수부외과에서 자주 하는 테스트였다.

왕해양은 우선 환자의 손을 붙잡고 부드럽게 문지르면서 간단한 동작을 몇 가지 하고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그제야 질문을 던졌다.

“환자가 스스로 손을 움직일 수 있나?”

“이 사람이 정신을 차린 날, 능 선생님이 움직이라고 하셨어요. 이게 좋은 건가요, 아니면 안 좋은 건가요?”

환자 가족이 가로채듯 대답하면서 혹시 모르겠다는 듯 덧붙였다. 그러자 왕해양이 눈썹을 꿈틀거리더니 헛기침을 하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움직일 수 있으면 좋은 겁니다. 못 움직이면 안 좋은 거지만요.”

“움직일 수 있어요! 다섯 손가락 모두요. 그런데 잘은 안 움직여요. 주먹도 아직은 못 쥐거든요.”

“아직은 주먹을 못 쥐어도 괜찮은 거죠?”

“그럼요.”

가족들이 좋아하자 왕해양은 조금 멈칫하다가 고개를 돌려 능연을 바라봤다.

“탕 봉합법이 장점이 있긴 있구만.”

능연은 미소 지은 채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고 곁에 있던 의사들은 어쩐지 있지 말아야 할 곳에 잘못 들어온 느낌이 들어 온몸이 간질간질해졌다.

왕해양은 환자를 주시하며 손가락을 하나씩 움직여 보라고 했다. 수술을 한 번 마치고 두 번째 수술을 기다리던 환자는 혼미한 상태에서도 왕해양의 지시에 따라 가능한 한 손가락을 움직였다.

환자의 손가락이 살짝살짝 움직였다. 팅팅 붓고 못생겼지만, 정말로 움직였다.

“선생님. 어떤가요?”

가족은 여전히 걱정이 가득했고 왕해양은 이번엔 확실한 말투로 대답했다.

“움직이는 것만 해도 대단한 겁니다. 움직인다는 얘기는 근건이 파열되지 않았다는 거고······. 아, 주먹 한 번 쥐어 볼까요? 완전히는 안 될 겁니다. 어디까지 되는지 한번 해봅시다.”

그의 지휘하에 반 미라 상태의 마문화가 왼손을 힘겹게 커다란 C 모양으로 만들었다.

“이제 안 움직이나요?”

환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가?”

이번엔 환자 가족뿐 아니라 곽종군도 물었다.

“이 정도면 괜찮아. 흠흠, 이제 손가락을 맞대 볼까요? 손바닥도요. 옆으로 해보세요.”

왕해양은 테스트하면 할수록 점점 놀랐다. 수부 근건 봉합의 예후에서 가장 골치 아프고 가장 중요한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근건 유착, 또 하나는 근건 파열이었다.

근건이 붙으면 손의 기능에 영향을 주고, 파열은 꿰매놓은 근건이 벌어지는 것이니 당연히 기능을 전혀 하지 못하게 된다.

두 가지 중에 어느 하나가 문제가 아니라 두 가지가 서로 상충한다는 것이 수부외과 의사에게는 큰 골치였다. 근건이 붙은 걸 해결하기는 쉽다. 수술 후 손을 빨리 움직이면 붙는 문제가 줄어든다. 붙는 건 서서히 일어나는 문제라 시간을 끌면 끌수록 더 심하게 붙는다. 그리고 근건이 파열하는 것을 막는 것도 간단하다. 손을 늦게 움직이면 파열할 확률이 더 줄어든다. 근건은 차차 자라는 것이기 때문에 버틸수록 근육이 단단하게 자란다.

그러므로 근건 유착과 근건 파열은 서로 상충하는 후유증으로 남는다. 빨리 움직이면 붙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파열 위험이 높아지고 그러다 찢어지면 재입원해도 재봉합 성공한다고 보장할 수 없다. 늦게 움직이면 파열 위험은 줄지만, 유착 문제가 심각해져서 손을 정상적으로 사용할 수 없을 수도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부외과는 두 갈래 길에서 열심히 시도하는 중이었다. 처음엔 수많은 수부외과 의사가 장기 이식 수술처럼 유착을 방지하는 약물을 찾아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길 바랐다. 혹은 유착을 낮추는 바르는 약으로 근건 파열 위험을 줄이는 동시에 근건 유착을 막을 수 있길 바랐다. 그러나 그런 결정적인 약물은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일찍 움직이되 근건 봉합 강도를 늘리는 것이 오랜 시간 유일한 노선으로 여겨져 왔다.

탕 봉합법은 그중에 가장 오래된 방법이었다. 세 가닥 근건을 함께 봉합하는 방법을 채택하여 봉합 강도를 늘리고 그 힘으로 더 빨리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왕해양이 선호하는 Kessler와 더블 Kessler법은 보통 수술 후 48시간, 빨라도 36시간 후에 강제로 움직임을 시작하게 하고 사흘 후에 환자 스스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한다. 그렇게 해도 근건 20%는 파열된다.

탕 봉합법은 24시간 이후에 곧바로 스스로 움직이게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왕해양은 전에 그 수술을 본 적은 있지만 환자의 예후를 살핀 적은 없었다. 그러나 지금 상황으로만 봐도 능연이 진행한 탕 봉합 환자의 예후는 매우 좋은 편이었다.

“우리 수부외과에서는 조기 활동을 강조해 왔습니다. 경험상 빨리 움직일수록 손 기능 회복이 빠르거든요. 그러나 구체적으로 얼마나 더 좋아지는지는 우리로서도 확실히 할 수 없습니다.”

왕해양은 환자, 그리고 곽종군을 향해 설명하면서 환자에게 예방주사를 놓아주듯 한마디 더 덧붙였다.

“가족의 말을 잘 들어야 합니다. 마지막 회복 상태는 지금 근건 상태, 그리고 봉합이 잘됐는지 아닌지에 달렸거든요. 그리고 환자분께서 얼마나 재활을 잘하는지도요. 특히 재활이 중요합니다.”

“그럼 봉합은 대체 어떤 상태인가요?”

환자 가족 중, 나이가 좀 있는 사람이 그렇게 물었다. 그는 아무래도 능연의 실력에 의구심이 들었다. 그의 눈에는 의사는 나이가 들면 들수록 좋은 의사였다. 지금 눈앞에 전문가처럼 말이다.

그러자 왕해양이 웃어 보이며 익숙한 듯 되물었다.

“얼마나 회복됐으면 좋겠습니까?”

“당연히 좋아야죠. 음, 적어도 생활할 수 있을 만큼?”

수술 전 거의 너덜너덜해졌었던 손을 떠올리면서 환자 가족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자기도 모르겠다는 듯 대답했다.

“문제없습니다. 그건 됩니다.”

가족들이 기뻐하자 왕해양은 거만하게 웃었다. 그동안 해온 근건 봉합만 봐도 사흘이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고 일상생활은 말할 것도 없고 공놀이도 할 수 있었다.

아니지, 참. 이거 내가 한 수술이 아니잖아.

순간, 왕해양이 뭔가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고개를 돌려 이번 수술을 진행한 젊은 의사의 엄숙한 얼굴을 본 왕해양은 순간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갑자기 지금까지 한 검사가 재미가 하나도 없어졌다.

얘, 아직 실습생이잖아.

새 병실엔 옛날 창고로 쓸 때의 서늘한 느낌이 여전히 감돌았고,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도 그리 강하지 않았다.

하지만 의사들이 점점 많아지자 의도한 건 아니지만, 환자 가족들이 느끼는 서늘한 한기도 줄어들었다. 특히 정중앙에 의사들에게 둘러싸인 나이든 비쩍 마른 의사가 신경 써주는 바람에 오랜만에 마음이 가벼워졌다.

“곽 주임. 손 기능 평가표 한 부 프린트 해주겠나? 지금 한번 해보세나. 수부외과 사이트에 있네.”

왕해양이 호기심에 먼저 나섰다. 그는 수부외과에서 오래 일한 터라 10년 전에 탕 봉합법이 막 시작됐을 때 수부외과에 적잖은 파란을 일으켰음을 알고 있었다. 특히 국내 수부외과 의사들에게 영향이 컸다.

어찌 됐든 중국인이 이룬 글로벌한 성과인 데다가 ‘국제 과학 기술 진보상’까지 받았었다. 현재 수부외과 강의 자료 PPT 안에 90년대 수부외과 발전을 거론한 부분엔 반드시 탕 봉합법이 포함되었다.

그러나 알고 있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은 다르다. 그 당시 배우지 않았던 왕해양은 점점 그럴 여력도 없어졌다. 물론, 그 당시에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해도 성공했을지는 모를 일이지만. 수부외과 밥을 먹으며 떵떵거리는 번 주임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젊은 나이에 부주임이 된 것은 그가 터득한 탕 봉합법의 공도 어느 정도 있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왕해양은 능연과 그의 기술에 더 큰 관심이 생겼다.

그때, 프린트 심부름 갔던 레지던트 하나가 종이 더미를 들고 돌아와 사람들에게 한 부씩 나눠줬다.

“여기서 바로 합시다. 여기 적힌 대로 하면 돼요. 내가 점수를 먹이겠습니다. 첫 번째 항목은 아까 했고요, 손가락 맞추기. 간단한 검지부터 할까요?”

왕해양은 하하 웃으면서 환자 가족에게도 종이를 건넸다.

“손가락을 안으로 당겨 보세요. 자, 이제 손목 관절을 돌려 보세요.”

왕해양은 항목 하나하나 점수를 먹였고, 첫 번째 항목의 점수는 모두 높지 않았다. 손목 관절 회전 항목 같은 경우엔 기준인 50도에도 미치지 못해서 위로 점수 1점을 받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환자가 거기까지 해낸 것만으로도 왕해양은 놀랐다. 근건 유합(癒合)은 원래 시간이 걸리고 일반적으로 수술 후 16주 후에야 퇴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수술 후 1단계만 해도 3주에서 4주 동안 유지해야 한다. 즉, 지금 한 테스트를 3주 후에 해도 그 정도 결과가 나올 것이다.

“환자분 다친 정도가 심각하지 않습니까. 수부 기능이 유지된 것만 해도 대단한 겁니다. 이제 앞으로 며칠이 중요합니다. 가족분들도 다 같이 여기 계시지 말고 시간을 나누세요. 한 분만 계시면 됩니다.”

왕해양은 평생 회진을 얼마나 많이 돌았는지 모른다. 그는 다시 한번 가족을 위로하고 특별히 당부까지 남겼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할 일이 생긴 가족들도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졌다. 왕해양은 환자에게서 시선을 돌려 살짝 몸을 틀어 능연을 바라봤다.

“능 선생, 내 기억엔 탕 봉합법이란 근건을 다듬는 거로 알고 있는데.”

“맞습니다. 근건을 깎아서 근건 성장을 자극하고 회복력을 키우는 겁니다.”

“확실히 회복이 잘 되는군.”

“환자분이 젊으시니까요.”

“예상보다 좋은가?”

“그건 저도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많이 해본 게 아니라서요.”

“능 선생이 아주 완벽하게 해냈구만 뭘.”

왕해양은 대화하면서 자연스럽게 ‘능 선생’이라는 표현을 썼다. 능연과 왕해양은 아무런 생각이 없었지만, 옆에 있던 레지던트 그리고 주치의들은 저절로 눈을 흘겼다.

외과 의사에게 선배 의사는 흉포하고 포악한 존재였다. 간단히 말해서, 욕설을 퍼붓지 않는 선배라면 다 좋은 선배였다. 게다가 대부분 누구누구 선생이라고 부르지도 않는다. 적어도 실습생을 그렇게 부르는 의사는 없었다.

“왕 주임, 우리 의국에 가서 차나 한잔하세.”

곽종군은 이제 병실에서 환자와 가족 앞에서 할 이야기가 없다고 생각했다. 왕해양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능연의 어깨를 툭툭 쳐서 같이 가자고 불렀다. 왕해양은 이야기 나누기 편하도록 능연과 나란히 서서 걸었고, 초짜 의사들이 말없이 그 뒤를 따랐다.

웅.

능연의 뇌리에 제시어가 나타났다.

- 성과: 칭찬

- 성과 설명: 같은 의사의 칭찬은 의사에게 가장 큰 보상

- 보상: 초급 보물 상자

능연은 전에 성과를 얻었을 때 나왔던 설명을 곧바로 돌이켜 봤다.

“전에 진심 어린 감사를 얻었을 때, 환자의 진심 어린 감사가 의사에게 가장 큰 보상이라며? 이제는 같은 의사의 칭찬도 가장이야?”

-그렇습니다.

능연의 질문에 시스템이 즉각 답변했다.

“‘가장’이라며.”

-중문(中文) 환경에선 허용됩니다.

능연은 한동안 말문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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