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해양 주임을 배웅한 응급실은 다시 바쁜 모습과 바쁜 척하는 모습으로 돌아갔다. 능연에게 한두 마디 툴툴대는 사람은 있었지만, 일부러 그를 찾아 말을 걸거나 일을 시키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능연은 개의치 않았다. 어릴 때부터 친구들과 무리 지어 어울리는 편이 아니었으며, 대학에 들어가서도 그에게 말 거는 건 대부분 여학생이었다. 그는 오히려 며칠 동안 느끼지 못한 평온한 날을 즐기는 마음으로 구석을 찾아 핸드폰을 들고 게임 아이콘을 클릭하면서 뇌리에 있는 초급 보물 상자를 열었다.
“또 스태미너 포션이야?”
눈을 치켜들자 상자에서 뿜어진 익숙한 녹색 빛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도 요즘은 스태미너 포션을 은근히 기다리는 중이었다. 기대보다 퀘스트나 보상이 적었기 때문이었다.
초급 보물 상자를 얻은 것도 한참 전이었고 그동안 얻은 포션도 8개에 불과했다. 그리고 하나를 사용해서 지금은 7개밖에 없었다. 한 달에 적어도 열흘은 밤을 새워야 하는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 스태미너 포션 7병은 소중히 여길 만한 물건이었다.
능연은 다른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는 작은 녹색 병을 챙기고 게임이 시작되기 전을 틈타 머릿속으로 시스템에게 질문을 던졌다.
‘시스템. 누가 운화 병원 탕 봉합술 최강자냐?’
- 당신입니다.
시스템의 답변에 능연은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브론즈 3의 게임 여정을 시작했다.
운화 병원 응급 의학과 휴게실은 열 평 남짓했다. 중간에 낡은 책상 몇 개가 대충 놓여 있고, 사람들은 평소에 집에서 싸 온 도시락 혹은 배달 음식을 먹을 때 그 책상을 쓰곤 했다. 책상 중간에 녹색 식물이 몇 그루 있었다.
책상 주위에 의자를 몇 개 놓고 구석에 걸상을 놓으니 길가에 있는 포장마차 같은 느낌이 났다. 햇볕이 충분히 비추는 남향 휴게실은 눈이 부시지 않을 정도라 딱 좋았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문을 열고 들어온 레지던트 두 명의 눈에 책상 가득 내리비춘 햇볕과 구석에서 게임을 하는 능연이 보였다. 그러자 한참 이야기를 나누던 두 사람은 동시에 말을 멈췄다. 그들은 왠지 모를 어색함을 느끼면서 능연이 있는 반대쪽 구석으로 조용히 가서 앉았다.
“에휴, 밖에 나가서 밥이나 먹자.”
신체 건장한 레지던트 연문빈이 능연을 흘겨보며 선배 의사 티를 팍팍 냈다. 곁에 있던 레지던트는 움직이기 귀찮은 표정을 짓다가 능연을 보고는 갑자기 부담을 느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가자.”
“능 선생, 우리 먼저 간다.”
“네.”
두 사람이 동시에 몸을 일으켜 밖으로 향하다가 연문빈이 저도 모르게 인사했다. 능연은 짧게 대답하고 바로 핸드폰 화면에 집중했다.
휴게실을 나가 멀리 벗어난 다음, 연문빈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나 왜 걔한테 인사한 거지?”
“그러니까. 왜?”
“왜지?”
그런 물음을 던진 건 연문빈만이 아니었다.
휴게실은 초짜 의사들의 쉼터였다.
주치의, 부주임 그리고 주임 중에는 의국을 좋아하는 사람, 수술실을 좋아하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대다수 의과 의사는 수술실에 있는 걸 편안해했다. 살점을 자르고 꿰매면서 인류를 구제하는 일이 그들에겐 그야말로 힐링이었으니까.
젊은 레지던트와 실습생도 수술실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들어갈 기회가 별로 없었다. 전자 차트 시스템을 도입한 이래 초짜 의사들은 컴퓨터 앞에서도 즐거움을 전혀 느낄 수 없어져서 의국에 있는 재미가 줄었다.
전자 차트 한 부는 평균 만 글자로 구성되는데 복사, 붙여넣기를 한다고 해도 매주 이삼십 명 환자를 마주했다. 그러다 보면 차트 입력하는 업무도 토 나올 정도로 막중한 일이 되었다. 차트 외에도 투약, 오더, 회진, 수술 어시스턴트, 공부, 시험 준비, 주임 말동무, 부주임 말동무, 주치의 말동무 같은 중책들이 있었다. 그러므로 중년 의사들이 별로 없는 휴게실에 앉아 있는 것이 초짜 의사들에겐 가장 빛나는 시간이었다.
능연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를 느끼기 전까지······ 는 말이다.
탕 봉합법은 누가 뭐래도 4급 난도에 해당하는 어려운 수술이었다. 물론, 수술이란 단순히 난이도로 구분하는 것은 아니지만, 4급 수술을 할 수 있는 건 의사 중에 능력자에 속했다. 혹은 그런 수술은 사실 초짜 의사들이 꿈꾸는 수술이라고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이론적으로 탕 봉합술은 선임 주치의를 퍼스트 어시스턴트, 레지던트 두 명을 세컨드 어시스턴트로 부릴 수 있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레지던트 혹은 실습생이라면 누구든 차라리 옥상에서 바람을 쐬고 말지, 휴게실에 있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특히 핸드폰 화면을 내려다보며 진지하기 짝이 없는 능연을 볼 때마다 왠지 모르게 진지한 선배 의사가 떠올랐다.
하지만 능연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신나게 게임을 즐겼다.
동지전 팀 코치의 회복 속도가 빨라서 다른 과로 트랜스 됐지만, 그들은 여전히 고마워하면서 능연을 그들 클럽의 소모임에 가입시켜 주었고, 그들이 연습할 때 끼워주곤 했다.
음성 채팅을 할 때 그들이 자주 ‘졌다’, ‘난이도 높이자’ 같은 소리를 해도 능연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능연!”
그때 누군가 휴게실의 문을 세게 밀고 들어갔다. 진단의학과에서 실습 중인 왕장용이었다. 그의 흰 가운은 금방 빤 듯 깨끗했고 다림질도 잘 되어 있었다. 겉모습이 멀끔해서 의사가 아닌 자동차 딜러나 부동산 딜러 같았다.
“오늘은 제때 퇴근하냐?”
“응. 좀 전에 위챗으로 물었잖아.”
게임이 잘 풀리지 않아서 능연의 표정이 심각했다. 그가 조종하는 캐릭터인 정교금을 적의 추격을 피해 도망시키느라 그의 오른손 검지는 왼손 엄지를 보조하며 액정 위에서 미친 듯이 움직이고 있었다. 우수한 외과 의사인 능연은 당연히 모든 손가락을 자유자재로 사용했다.
“전에 물었을 때도 그렇다고 했지만, 결국 야근했잖아. 일단 가자. 진만호도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
“죽으면.”
왕장용이 재촉해도 능연은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않았으나,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능연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