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메이트와 함께 즐거운 식사를 마친 능연은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아무리 기분이 좋아도 주에 한 번 밥을 할까 말까인 어머니 도평 여사가 연달아 밥을 할 확률은 매우 낮았다.
능결죽 씨는 오히려 부지런했다. 다만, ‘노동’과 ‘미식’ 사이엔 그다지 연관 관계가 없어서 능연은 그 도시에 있는 대학을 다니면서도 집에서 밥 먹는 일이 드물었다.
골목으로 들어서서 안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점점 어두워졌다. 몇 년 전에 일괄적으로 설치한 가로등이 줄지어 고장 났다. 시정부 작업 인원들이 때가 되면 수리하러 와서 전구를 바꾸곤 했지만, 그러는 동안 가로등은 군데군데 고장 난 상태였다.
다행히 길 양옆에 가게들이 아직 열려 있어서 빨강, 노랑, 녹색 불빛이 교차하면서 몽롱하게 빛났다.
사람들이 모이는 시간엔 하구 지역도 꽤 떠들썩한 동네였다. 근처 오피스 빌딩에서 일하는 직장인들도 이곳에서 밥을 먹고 시간을 보내면서 주사를 맞곤 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흩어진 시간에는 가로등과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불빛만 있어서 조금 무섭기도 했다. 골목 안의 가게가 모두 문을 닫으면 더 불안했다.
능연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조용히 골목을 가로질렀다. 잠시 후, 하구 진료소의 빨갛고 노란 불빛이 보였다.
진료소 대문은 벌써 닫혀 있어서 옆에 있는 작은 문으로 출입 가능했다. 저녁엔 수액 맞으러 오는 사람도 없고 약을 팔러 온 영업 사원도 뜸해서 밤엔 진료소를 열지 않았다. 거기다 골목을 조금만 벗어나면 24시간 약국이 있었으니까. 그곳은 약도 다양했고 포인트 적립까지 해주는 바람에 진료소는 경쟁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안에서 음식 냄새가 퍼져 나오자 코를 킁킁대던 능연은 엄마가 만든 음식임을 확신했다.
엄마가 밥을?
능연은 의아해하며 걸음을 서둘렀다. 북쪽으로 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한 상 가득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왜 왔니?”
“별로 안 바빠서.”
아들을 본 도평 여사가 의아한 듯 묻자 능연은 잠시 침묵하다가 대답했다.
“밥은?”
“먹었어.”
“그럼 됐네. 채식 요리를 했거든. 국물이라도 좀 마실래? 동한생이 산에서 내려왔는데, 한 끼도 안 먹었다지 뭐니.”
도평은 마음이 놓인다는 듯 다시 수저를 놓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열 살 정도 된 동자승 하나가 빨개진 볼을 하고 안으로 들어오다가 능연을 보고 반절을 하며 인사했다.
“능연 시주님, 안녕하세요. 보살님 감사합니다. 목욕물이 아주 따듯했습니다.”
도평에게도 반절을 하며 인사하는 씩씩한 동자승의 반질반질한 머리가 꼭 작은 축구공 같았다. 천진하고 어린 그 모습에 도평은 기분 좋게 웃으면서 동자승을 끌어당겨 머리를 쓰다듬었다.
“동한생, 예의도 바르지.”
“보살님, 얼굴은 문지르지 마세요. 로션 발랐단 말이에요.”
“아아아, 그래그래. 지금부터 잘 가꿔야 귀여움을 유지할 수 있지. 우리 연이처럼 말이다.”
동자승의 얼굴이 굳어지는 모습에 깔깔거리던 도평은 금세 한숨을 내쉬며 발돋움을 해 아들의 머리를 만졌다.
“너무 커서 이제 재미없어.”
“사부님이 약 심부름시켰니?”
자리에 앉은 능연은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그 대신 도평의 품에서 동자승을 구해냈다. 그러고는 반질반질하고 부드러운 머리통을 쓰다듬었다.
“네, 그렇습니다.”
동자승은 때가 되면 산에서 내려와 약을 사서 돌아갔다. 처음엔 어른을 따라 왔지만, 지금은 혼자서도 잘 다녔다. 그는 머리와 볼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고분고분하게 능연 곁에 앉았다.
“사부님이 아침에 거사님들 환약을 만드시다가 갑자기 위가 아프시대서요. 비상약 사오라고 하셨어요.”
“주지 스님 또 위장병 도지셨니? 나 전에 위 아팠을 때 주지 스님이 만든 환약 먹었는데? 왜 스님은 안 드시니?”
“사부님 말씀이 환약은 근본을 치료하는 약이지 비상약이 아니랬어요.”
도평이 의아한 듯 묻는 말에 동자승은 허리를 살짝 굽혀 대답했다.
“맞는 말이네. 맞네. 내가 몇 년 전에 먹었던 약이 있는데 효과가 아주 좋단다. 그건 근본 치료도 하고 비상약으로도 쓸 수 있어. 내가 찾아볼게. 이따 가지고 가서 사부님 드리렴.”
도평은 이야기하는 도중에 벌써 방 안으로 걸음을 옮겼고, 동자승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짧게 경을 외우고는 도평의 등에 대고 ‘감사합니다, 보살님’ 하고 인사했다.
도평이 만든 채식 요리는 상당히 맛있었다. 식자재 본연의 맛을 유지하면서 기름기를 줄여 최대한 다른 식감을 내도록 정성 들여 요리했다. 불 조절도 잘해서 배추나 감자 같은 흔한 채소도 몹시 군침이 돌았다.
능연은 식욕을 절제하면서 볶은 채소와 찐 채소 몇 가지를 맛보고 시금치국, 버섯국, 죽순국을 마시고는 편안하게 소파에 누웠다. 그는 동자승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TV를 켜서 아무 채널이나 틀어놓고 보기 시작했다.
동한생은 가부좌를 틀고 소파에 허리를 곧추세우고 앉아 있다가 갑자기 머리를 통통 두드렸다.
“참, 종이 향을 가지고 왔었지.”
“종이 향?”
“응. 태우는 거요. 정신을 맑게 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줘요. 제가 산에서 딴 것들로 만든 거예요. 약재인 구릿대도 넣었고요.”
동한생은 아주 진지하게 설명하면서 이제 막 만들기 시작해서 효과가 있을지 잘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그 마음이 고맙구나.”
“사부님께서 보살님이 저를 거둬주시는 걸 당연하게 여기지 말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셨어요.”
기분 좋아진 도평이 곁에 앉아 있다가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하는 말에 동한생이 나긋나긋 대답했다.
동한생이 있는 12천사(12泉寺)는 운화 시 외곽에 있는 12천산에 있어서 버스를 타고 세 시간이나 가야 했다. 왔다 갔다 먼 길이라 도평은 동한생을 집에서 하루 재우고 다음 날 약을 들려 보내곤 했다.
동한생이 귀엽기도 하고 확실히 힘든 길이라 능결죽도 반대하지 않았다. 어차피 집에 남는 손님방도 있었으니.
작은 진료소는 원래 병원보다 융통성이 있는 법이다. 벌써 몇십 년 동안 하구 진료소를 운영해오면서 돈을 벌기도 손해 보기도 했다. 옛날엔 가구를 들고 와 약값 대신 내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래도 받을 건 받아야 했다.
요즘은 위챗 페이가 흥해서 하구 진료소에도 적절한 때에 시스템을 도입했고 신용카드도 진작에 쓰고 있었다.
능결죽은 은행에서 할부 시스템을 추진할 날이 오는 것도 벌써 대비하고 있었다. 한국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 같은 제도가 도입되어도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도평은 그렇게까지 깊게 생각하지 않았고 그저 기분 좋게 동한생의 머리통을 쓰다듬었다.
“그럼 나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스님 선물 받을게.”
“불붙일 때 쓰는 성냥도 만들었어요!”
동한생은 자신의 노동이 인정받자 함박웃음을 지었다.
도평은 향을 태울 도구를 준비해서 나왔다. 향냄새가 거실에 맴도니 중국풍 분위기가 넘쳤다. 도평은 평소에 차를 마시거나 도예를 할 때, 혹은 책을 읽고 꽃꽂이를 할 때도 향을 피워놓고 즐기곤 했다.
평소에 가장 자주 사용하는 향합은 바이올린 모양으로 조각된 단향목 장식품인데 현의 위치가 누공법(縷空法)으로 제조되어 눕혀서 종이향을 태우면 딱 좋을 모양이었다.
성냥을 켠 도평은 불꽃이 안정되길 기다렸다가 아래로 향하게 해서 종이 향 위쪽에 살짝 가져다 댔다. 그렇게 하면 종이향은 서서히 불이 붙고 한 번에 타버리지 않아서 오래 태울 수 있다.
“돈 주고 산 거보다 훨씬 좋네.”
도평은 코를 살며시 벌름거리며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능연과 능결죽이 서로 힐끔 보는 걸 보니 두 사람에겐 별 느낌이 없는 듯했다. 그러나 그들에겐 자주 있는 일이다 보니 따질 이유도 없었다.
“사부님께서도 제가 향 만드는 데 소질이 있다고 하셨어요. 보살님이 좋아하시면 다음에 더 많이 가지고 올게요.”
“음, 다른 냄새도 몇 개 만들어 봐도 좋겠는걸? 그래도 많이 가지고 올 필요는 없어요. 하루에 하나밖에 안 피우거든.”
“알겠습니다.”
동자승이 합장하며 하는 말에 도평은 다시 머리를 쓰다듬었고, 동자승은 하품하면서 대답했다.
“잘 시간 됐네. 가서 방 정리 직접 해.”
도평은 그럴 때는 또 주인 같지 않게 굴었다. 동자승은 태연하게 감사 인사하고 알아서 2층 손님방으로 올라가 침구를 꺼내 요를 깔고 베개도 챙겼다. 능 씨네 손님방에 아주 익숙한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