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시, 환자는 예상보다 더 늦게 부모, 아내와 형제 둘과 함께 응급실에 도착했다. 긴장한 응급 의학과 보안 요원이 순순히 그들을 안으로 들여보냈다.
곽종군은 다소 피곤해 보였는데, 능연을 마주하고도 당부를 많이 늘어놓지 않았다. 할 말이 있으면 수술실에서 해도 상관없으니 말이다.
연문빈은 긴장도 되고 흥분도 됐다. 수술실 경험은 수십 수백 번 있었지만, 기껏해야 1, 2급 수술이었고 탕 봉합법 같은 수술은 거의 접하지 못했다.
집도의인 능연이 실습생만 아니었다면, 그의 어시스턴트도 분명 해당 수술에 익숙한 주치의나 선임 레지던트, 혹은 곧 주치의로 진급할 레지던트 수준의 사람이었을 것이다. 대개 그런 사람들은 고강도의 훈련을 필요로 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24시간 내내 병원에 머무르며 실력을 키우는 상황이라 일반 레지던트보다 훨씬 훌륭했다.
그에 비하면 연문빈은 이제 막 레지던트가 된 초짜였다. 사실 그게 아니면 능연 조수를 할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연문빈은 기계적으로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손을 깨끗이 씻고 역시 기계적으로 수술실로 향했다.
1번 수술실에 불이 환하게 켜지자 옛 창고 방보다 훨씬 밝아 묘하게 자신감을 불러왔다. 주변을 둘러보고 간호사, 마취의가 아직 안 온 것을 확인한 연문빈이 능연을 바라보며 물었다.
“능 선생. 이제 수술 시작인데, 뭐 당부할 거 있어?”
“족발 조린 국물 버리지 마세요.”
막 샘솟은 연문빈의 자신감이 와장창 산산조각이 났다.
“준비됐나?”
마스크와 모자를 쓴 곽종군이 손을 치켜들고 수술실로 들어왔다. 연문빈과 왕가는 저도 모르게 허리를 곧추세웠다.
“자료 봤지? 어떤가?”
“전형적인 2구역 굴근건 파열이었습니다. 성공할 확률이 높습니다.”
싱긋 웃으며 묻는 곽 주임의 말에 능연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자신감, 좋지. 우리끼리 이야기하는 건 괜찮지만 가족 앞에서 성공률 얘긴 꺼내지 말게.”
곽종군은 초짜인 능연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을 덧붙였다.
“환자는 자기가 살아날 확률이 적다고 생각하지 않아. 다들 나는 성공 확률이 높은 환자야! 의사가 잘못한 거야! 라고 우기지. 됐다, 일단 됐고, 지금 할 수술은 성공률이 높은 것 같군. 시작이 좋아. 하하하.”
능연이 보기에 그 자리에 있는 사람 중에 가장 긴장한 사람은 오히려 곽 주임 같았다. 확실히 평소와 달리 그의 이야기에 논리성이 떨어졌다.
세팅, 소독, 재확인.
곽종군은 메스조차 들지 않고 바로 능연에게 집도하라고 지시했다.
“네.”
능연은 아무 말 없이 바로 환자의 손가락을 살며시 뒤집어 보다가 펜을 들어 절단선을 그었다.
손아귀에 철근이 찔려 엄지 굴근건 파열이 일어난 환자였다. 절단 부위가 드러나지 않은 위치라 절개구를 만들어야 했다.
곽종군은 아무런 말 없이 지켜보기만 했다. 그는 일반 외과 출신 군의관이었고, 외상에 관해 깊이 연구해 왔다. 지금은 화상으로 전과했어도 근건 봉합 경험이 없는 건 아니었는데, 손가락 굴근건은 처음이었다. 능연의 성공 케이스를 이미 확인한 곽종군은 지금은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능연은 메스를 들고 깊게 숨을 들이쉰 다음 힘을 주고 서서히 절개했다. 마스터급 단속 봉합법과 비교하면 그의 절개 기술은 기껏해야 입문 단계였다. 그는 한동안 데브리망을 하면서 쌓아온 경험에 기대어 손을 놀렸지만, 데브리망과 달리 절개는 더 정교하고 까다로웠다.
능연은 4, 5분 동안 한 층, 한 층 그어갔는데, 이는 외과 의사 평균 시간보다 훨씬 느린 속도였다. 마취의 소가복은 의아한 듯 능연을 힐끔댔지만, 뭐라고 말을 꺼내진 못했다. 곽종군도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열었습니다.”
능연은 온몸에 땀이 삐질삐질 흘렀다.
그때, 그의 뇌리에 시스템 소리가 울렸다.
- 신입 퀘스트: 환자 치료
- 퀘스트 내용: 굴근건 봉합 환자 치료
- 퀘스트 보상: 절개[핑거팁 그립(Finger tip grip. 메스 잡는 방법의 하나) 전문가급]
- 퀘스트 기한: 10일
능연은 바로 수술을 시작하지 않고 굴근건을 바라보고 있었다. 영상 자료를 여러 번 봐왔지만, 영상을 보는 실력이 떨어져서 직관적으로 살필 필요가 있었다.
능연이 뭘 하는지 잘 아는 곽종군은 묵묵히 기다렸다. 외과 의사는 모두 직접 보는 것을 선호했다.
외과 수술 발전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면 직관적 수술이 매우 빠르게 발전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심장 이식을 비롯한 장기 이식은 매우 어려운 환경에서 진행하지만, 외과 의사들은 여전히 앞다퉈 달려들었다. 혹은 환자들이 앞다퉈 몰려온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어찌 됐든, 외과 의사들은 복강경 혹은 다빈치 같은 수술보다 맨눈으로 직접 보면서 수술하는 것을 선호했다.
“더 크게 자르자.”
능연은 혼잣말하듯 중얼거리면서 수술을 시작했다. 그 말에 연문빈은 저도 모르게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저게 뭐야.
곽종군 역시 하고 싶은 말을 억지로 참았다. 메스를 두 번이나 대다니, 쪽팔린 일이었다. 하지만 능연은 그런 인식이 아직 없었다. 지금까지 대부분 처치실과 응급실에 있었고, 수술실에 들어온 적도 몇 번 없었다.
아직 수술에 관한 판단이 부정확한 능연은 시야를 좀 더 확보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러면 칼자국을 좀 더 길게 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야 그다음 과정이 좀 더 수월해지니까. 환자의 흉이 좀 더 많이 남겠지만, 근건 파열 수술에서 제일 먼저 고려할 문제는 흉터가 아니었다. 이러나저러나 흉은 남고, 길거나 짧거나 본질적인 차이는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근건 봉합은 큰 차이가 있다.
가장 좋은 상황은 수술 후 총 활동도(TAM. total active motion)가 100%에 달하는 것이다. 즉, 손가락 활동 범위가 보통 사람과 똑같은 TAM 평가까지 되는 게 베스트였다. 75%만 넘어도 훌륭했고, 일상생활도 문제없이 할 수 있었다.
마스터급 탕 봉합법은 85%에 달했고, 그 말은 100명 봉합하면 그중 85명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런 데이터는 무인 구역은 말할 것도 없고 봉합 난도가 더 낮은 근건 봉합에서도 보기 드문 수치였다.
대부분 일반 병원의 일반적으로 우수한 의사들은 굴근건 봉합에서 ‘가(可’) 표준에만 들어도 만족했다. 그러니까 활동도 50%에서 70%인 수치였다. 그런 데이터에 속하면 겨우 손가락을 쓸 수 있을 정도라 제한받는 작업이 많았다. 예를 들어, 청소, 밥 푸기, 계란 껍질 까기 같은 건 거의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대부분 병원에서 하는 굴근건 봉합에서 ‘가’까지 해낼 수 있는 사람도 85%가 안 된다.
능연은 일반 병원 일반 의사들이 어떻게 하는지에는 관심 없었다. 그의 목표는 고작 그 정도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역시도 자신의 봉합 성과가 어떨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니 가능한 성공 확률을 높일 수밖에 없었다.
“양쪽으로 당겨주세요.”
능연이 훅으로 피부를 당기면서 그대로 내어주자 연문빈은 조금 긴장했지만 순조롭게 건네받아 바깥쪽으로 당겼다. 같은 동작을 몇 번 반복하고 나니 근건이 확실하게 시야에 드러났다.
그의 마스터급 기술로 판단한 바로는, 확실히 근건이 너무 많이 드러나긴 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난도를 내리고 성공률을 높일 수 있었다.
환자의 근건이 끊어진 지 벌써 스무 시간 가까이 되어가므로 근건 좌상 혹은 손상은 불가피했고, 성공률과 회복률이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능연은 차라리 상처가 크게 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물론, 그의 메스 잡는 실력이 너무 떨어지기도 했다.
능연은 여전히 바로 손을 대지 않고 드러난 근건을 유심히 살폈다. 인체 굴근건은 손가락을 구부릴 수 있게 하는 근육이다. 손목 쪽에서 굴근건 다섯 개가 손가락 끝까지 뻗어 있다. 해부도를 보면 손목에 묶인 고무줄 다섯 개가 손가락 끝으로 뻗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굴근건 굵기는 핸드폰 충전기 선 굵기 정도인데 탄력과 강도가 매우 좋다. 봉합이 어려운 이유도 바로 탄력과 강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굴근건의 강도는 근건의 파열을 막고, 굴근건의 탄력은 기능을 유지한다. 전자를 잃는 것은 수술 실패를 의미하며, 후자도 마찬가지였다.
능연은 피범벅인 새하얀 근건을 응시하며 머릿속에 몇 가지 방법을 떠올렸다. 실력이 부족해서 수술 전에 미리 어떻게 할지 고민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시간을 그렇게 많이 허비하지는 않았다. 능연은 금세 손을 내밀며 니들 홀더를 달라고 했다.
왕가는 한숨 돌리면서 다급하게 니들 홀더를 건넸다. 능연이 또 메스를 달라고 할까 봐 조마조마하고 있던 차였다.
능연은 제대로 된 위치를 찾아 메스를 쓸 때보다 몇백 배는 능숙한 동작으로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바늘을 찔러 넣었다.
메스 잡는 건 서툴러도 봉합은 능숙했다. 소를 기르는 것과 소고기를 먹는 차이랄까.
니들 홀더를 들고 있자니 편안한 기분까지 들었다.
바늘 끝이 반짝이며 매우 정밀하게 움직였다.
능연이 니들 홀더를 드는 순간 마스터급 기술이 나타났다. 곽종군을 설복한 바로 그 기술이었다.
곽종군은 한쪽에서 능연의 동작을 보면서 즐겁기도 뿌듯하기도 했고 흡족하기까지 했다. 바로 그의 그런 실력 때문에 남태현까지 다녀온 것이었으니.
연문빈은 그보다 더한 전율을 느꼈다. 능연이 했던 첫 탕 봉합술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었고 아까 창고에서 그가 족발을 휘두르는 솜씨도 봤었다. 그러나 그가 직접 본 건 살아 있는 생명을 봉합한 것이 아닌 ‘초급’ 기술에 불과했다. 아까 능연은 그에게 보여주려고 한 것이라 자신이 갖춘 진짜 실력을 발휘하지 않았다.
지금 능연은 연문빈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움직였다. 연문빈이 해낼 수 있는 작업이면 그에게 맡기면서 작업 강도를 줄였고, 그가 감당할 수 없는 작업이면 아무 말 없이 혼자 알아서 다음 수술을 진행했다.
몇 분 만에 연문빈은 심각한 압박감을 느꼈다. 자신이 이 수술에서 비주류가 될 것을 알고 있었지만, 정말로 수술대에 올라 환자, 의사, 간호사를 마주한 상태에서 비주류가 되고 싶진 않았다.
게다가 실력은 실력이라, 신분으로 인해 실력이 갑자기 변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조금이라도 더 많은 디테일을 기억하기 위해 근건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능연도 그런 연문빈의 변화를 알아차렸다. 처치실에서 수없이 데브리망을 하는 동안, 주변 상황을 살피는 법도 진작에 익숙해져 있었다.
“족발 근건 꿰매는 거랑 비슷하죠?”
“응? 아······. 달라, 완전 달라.”
“오.”
뭐라고 설명해야 좋을지 몰라 능연은 짧게 반응한 후 더는 묻지 않았다. 연문빈은 꽤 실망했다.
조용해진 수술실에 가끔 도구를 요청하는 능연의 목소리만 들렸다. 마취과 소가복은 어쩐지 익숙하지 않은 분위기에 몸을 비틀었고, 그가 앉은 의자에서 끽끽 소리가 났다.
‘어우, 진짜 다이어트해야지. 30kg은 빼야겠는데. 아니야, 한 번에 너무 빼도 안 좋아. 25kg만 빼야겠다.’
소가복은 그런 생각을 하다가 따분한 듯 고개를 들어 수술대 쪽을 바라봤다.
‘저 눈빛 뭐야.’
곽종군과 눈이 마주치자 소가복은 대입 시험 때 높은 점수를 받았던 논리 사고로 분석하기 시작했다.
‘곽 주임님이 집도할 땐 수다 떨길 좋아하는데 오늘은 능연이 집도의고. 능연은 말수가 적다. 그런데 곽 주임님은 이야기 소리가 능연에게 영향을 줄까 봐 입을 다물고 있다. 즉, 곽 주임님도 따분하다? 그러니까 나를 저런 눈으로 보는 이유는, 의자 달라는 거지?’
소가복은 말없이 일어나서 몸을 쭉 뻗으면서 기지개를 켜는 시늉을 하려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굴었다.
쉭.
바퀴 달린 의자를 먼저 굴리기도 전에 의자는 벌써 마찰음을 내며 질질 끌려갔다. 곽 주임이 다리를 걸치고 한동안 볼 수 없었던 웃음을 드러냈다. 소가복은 괴로운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기지개 켜기도 귀찮아서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이러다가 40kg도 빼겠네. 안 돼, 안 돼. 너무 빠지면 큰일 나. 다음엔 간호사한테 잘 말해서 의자 하나 더 들여 달라고 해야겠다.’
“다 됐습니다.”
그렇게 말한 능연은 곧바로 자가 검사를 시작했다. 곽종군이 슉 하고 몸을 일으키면서 둥그런 의자를 수술실 구석으로 차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