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이 아주 잘됐습니다.”
곽종군은 수술실 바깥쪽 문으로 걸어 나가, 초조하게 기다리는 환자 가족을 향해 그들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전했다. 한데 모여 있던 가족들은 순간 기뻐했고, 여자들은 눈물을 보였다. 그는 몇 마디 위로를 전한 다음 어드바이스를 내린 후 그곳을 벗어났다.
환자가 스트레처 카에 실려서 가족들과 함께 밖으로 나간 후에야 곽종군도 한숨 돌렸고, 뒤따라 나오는 능연을 향해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능연도 똑같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
요즘 수술실은 다기능형이라 수술실 내부는 같아도 출구는 여러 개였다. 환자들은 병실과 가장 가까운 통로로 움직였고, 의사는 가능한 한 그 길을 피해서 다녔다.
연문빈은 허둥지둥 능연의 뒤를 따랐다. 꼭 친구랑 처음으로 PC방에 가는 기분이었다. 그런 작은 행복, 작은 갈등, 작은 아쉬움, 작은 기대로 기분이 완전히 들떠서 어쩔 줄을 몰랐다.
“능 선생, 이제 우리 뭐 하지?”
연문빈은 당장에라도 탕 봉합을 3백 건을 더 하고 단숨에 국내 유명인사가 되고 싶은 마음에 온몸이 근질거렸다.
“차트 쓰는 법 알려 주세요.”
능연의 말에 연문빈은 순식간에 케플러 76B 알버트 아인슈타인 행성에서 지구로 끌려 내려왔다.
“내가 너한테 차트 쓰는 법을 가르쳐?”
그렇게 되뇌던 연문빈이 갑자기 깨달은 듯 목소리를 높였다.
“실습생 시작할 때 차트 안 써봤어?”
“네, 별로 쓴 적이 없어서.”
“그럼 대체 뭘 했는데?”
“데브리망, 맨손 지혈, 이제 탕 봉합이요. 아, 응급 의학과가 첫 실습과거든요.”
연문빈은 더할 나위 없이 복잡한 심경으로 능연을 바라봤다. 첫 마디를 들을 때만 해도 외과 의사가 할 일은 다 한 것 같았는데 뒤에 말을 들어보니 확신이 섰다.
‘이 새끼, 아무것도 안 했다는 거잖아.’
“데브리망을 했어도 차트는 썼을 거 아냐. 간단한 버전이라도. 그건 써 봤지?”
“몇 번 써 봤죠.”
“몇 번뿐이야? 나머지는? 설마 주 선생님이 쓰셨어?”
그렇게 묻던 연문빈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는 주 선생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아냐, 그럴 리가. 주 선생 그 게으름뱅이가 그럴 리가 없어.’
“다른 실습생이 써줬어요.”
능연도 의아한 듯 연문빈을 힐끔 바라봤다. 공작 폭발 사고가 있던 때 능연도 처치실에 있었다. 그땐 다들 너무 바빠서 그도 시간이 나면 바로 봉합을 거들었고 다른 쓸모없는 실습생들이 조수나 차트 쓰는 일을 했었다.
연문빈에게는 딴 세상 이야기 같았다. 그가 실습생 땐 어땠던가. 일 년 내내, 살갗 하나만 꿰매게 되어도 그날이 명절이었다. 물론, 동기 중에도 소위 천재 실습생이 있었고 기회가 좀 더 많았다. 데브리망도 금방 배우고, 봉합도 금방 하고, 수술실에서도 실수하지 않고, 훅맨 역할도 혼날 일 없이 척척 해내고, 석션도 잘하고, 피가 스며 나오지 않게 배도 잘 닫는 그런 동창들은 적게나마 맹장이나, 치질 같은 간단한 수술 기회를 잡기도 했다.
같은 천재라도 이토록 레벨 차이가 날 줄 몰랐다. 연문빈은 허허 소리를 내서 웃었다.
“실습생이 실습생을 다 부릴 줄이야.”
능연과 떨어지는 게 안타까워서 근처를 맴돌던 왕가 간호사가 놀란 얼굴로 연문빈을 바라봤다. 순간, 연문빈은 퍼뜩 정신 차렸다. 그랬다, 실습생이 레지던트도 부리는데, 실습생 부리는 것쯤이야 무슨 대수라고. 더 비참한 것은 그 레지던트가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이었지만.
연문빈은 아무 말 없이 능연을 데리고 의국으로 돌아가, 아무 말 없이 컴퓨터를 켰다. 그러곤 전자 오피스로 들어가서 길게 늘어진 문장들을 가리켰다.
“지금은 수술 전 중간 결산을 입력하면 돼. 입원 병력, 수술 전 검토 기록, 수술 기록 리스트, 그리고 어드바이스, 임시 어드바이스 등등······.”
수술 기록 리스트는 환자 성명, 성별, 과별, 침상 넘버, 수술 날짜로 시작된다. 그리고 간단하게 구성된 수술 전 진단, 수술 중 진단, 수술 내용, 수술 인원, 마취 방법, 마취 인원 등등.
전자식으로 입력하지만, 내용을 프린트해서 종이 차트로 만들 수 있었고 안에 들어가는 내용 구성은 종이 차트로 기록할 때랑 똑같이 번거로웠다.
“샘플도 다 있어. 사실 간단하거든······.”
연문빈은 항목 하나하나 설명하기 시작했다. 실습생이 차트를 쓰러 올 때가 바로 레지던트가 꾀피우기 좋은 때였다. 해마다 실습생이 여러 과를 돌면서 실습했고, 레지던트들이 차트 쓰는 법을 가르쳤다. 그것도 여러 번.
연문빈도 그것에 익숙했다. 게다가 차트 시스템 자체가 간단한 모듈이어서 단순한데 번거로운 작업일 뿐이었다. 진지하게 설명을 들은 능연은 차트 설명에 따라 타닥타닥 타이핑을 시작했다.
“수술 전 진단, 첫 번째. 엄지 근건 파열. 두 번째, 근건 좌상······.”
능연의 탕 봉합법은 진단, 병의 경과까지 모두 마스터급이었고 부족한 것은 차트 쓰는 방법뿐이었다.
“복사해서 붙여넣어도 돼.”
연문빈이 웃으면서 하는 말에 능연은 두 문단을 복사해서 붙였다. 그런데 다시 차트를 작성하다 보니 온몸이 어딘가 불편했고 삭제하고 나니 다시 편해졌다.
타닥.
타닥타닥.
타닥타닥타닥.
경쾌한 키보드 소리가 다시 듣기 좋게 울려 퍼졌다. 이번엔 연문빈이 온몸에 불편함을 느꼈다.
‘복사가 왜? 뭐?’
당연히 좋은 방법이다. 복사하고 붙인 다음 수정하면 빠르고 편했다. 그래서 똥고집 노인네들이 직접 타이핑하라고 강조해도 초짜 의사들은 못 들은 척했다.
연문빈은 복사해서 붙인 다음 수정하는 것을 차트 입력하는 가장 정상적인 방법으로 여겨왔다. 새로운 기술, 새로운 수술법이 아닌 이상, 일부러 고생길에 들길 바라는 사람은 없지 않나. 그런데 능연이 망설이지도 않고 직접 타이핑하는 쪽을 선택할 줄은 정말 몰랐다. 게다가 빠르기까지 했다. 별로 생각할 게 없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차트 한 부를 치려면 만 자 가까이 쳐야 하니 손이 아플 것이다. 연문빈은 능연의 순진함을 비웃고 싶었지만, 웃음이 나지 않았다. 천부적인 실력으로 우쭈쭈 받는 사람인데, 무슨 자격으로 차트를 타이핑한다는 이유로 비웃는단 말인가.
연문빈은 감탄하고 또 개탄하는 심정으로 약동하는 능연의 손가락을 바라봤다. 의학의 길에 대한 새로운 지식이 늘었다. 그와 동시에 능연도 마음으로 개탄하고 있었다.
‘복사해서 붙이고 수정하다니, 그야말로 이단이야. 고기 넣은 채소 만두 같잖아.’
그는 필수 선택이 아니라 다행이라 생각하면서 한 문단을 마치고 새로 한 문단을 시작했다. 그래도 속도가 느린 편은 아니었다.
차트는 필력을 따질 것도 없었고 그냥 알아볼 수 있게 내용을 쓰면 됐다. 나열이든 뭐든 앞뒤 문장이 이어지지 않아도 알아볼 수만 있으면 다 OK였다. 사실 선배 의사의 요구가 엄격하지 않다면 대충 써도 다 통과였다.
단일 항목 스킬북에서 완전한 탕 봉합법의 기능을 얻었으니 차트 쓰는 법도 당연히 마스터급이었다. 게다가 직접 집도도 했으니 앞에 나열할 검사 데이터만 조사하면 되어서 훨씬 수월했다.
능연은 차트를 다 채우고 검사한 다음, 새로운 차트를 열어 입력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왕가 간호사가 잰걸음으로 다가와 꽃미남의 뒷모습을 감상하다가 입을 열었다.
“능 선생님. 처음에 수술한 환자분, 이제 주먹을 살짝 쥘 수 있대요.”
수부외과에서 주먹을 살짝 쥔다는 것은 수부 기능이 회복됐다는 일종의 지표였다. 가볍게 쥔다는 것은 정상인이 주먹을 쥐는 것과 달리 손가락 끝이 손바닥에 닿기만 하면 된다. 손가락 끝도 살짝 구부러지면 되고 완전히 구부러질 필요는 없다. 근건 손상 정도에 따라 24시간에서 3주 사이에 그 상태가 되면 이상적인 상황으로 본다.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의 근건이 기본적으로 유합됐음을 나타내고, 파열 리스크가 크게 줄어든다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각종 재활 동작도 시작할 수 있고 보폭도 늘릴 수 있다.
의료적 관점에서든 환자 회복 관점에서든 아니면 경제적 관점에서든 빠르면 빠를수록 좋았다.
능연이 병실에 도착했을 때, 곽종군은 이미 수부외과 왕해양 주임과 즐겁게 웃으며 검사하고 있었다. 환자 가족도 기분이 좋아 보였다. 교통사고 때문에 생긴 마이너스 영향이 점점 사라지고 신체가 회복된다는 것은 기쁜 일이었다.
마흔을 조금 넘긴 마문화는 건강 상태도 양호했고, 운화 병원의 수준 높은 응급 처치 덕에 심각한 후유증 없이 회복하고 있었다. 헬리콥터 구조 덕도 꽤 작용했다. 빨리 치료받은 만큼 회복도 빨랐고 수부 기능은 특히 더 그랬다.
중국엔 매년 10만 명 이상이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50만 명 이상이 다친다. 무료 혹은 저렴한 헬기 서비스를 확장할 수 있다면 아마도 매우 큰 확률로······ 재정이 붕괴할 것이다.
곽종군을 비롯한 사람들은 수부 회복에 가장 관심을 가졌다. 운화 병원 응급 의학과는 수많은 사람을 구했고, 거의 매일 사망 직전에서 살아났다. 마문화는 탕 봉합술의 첫 환자로 기록되었다.
어느 병원 어느 과에서도 처음 시도한 수술 방법을 매우 중시한다. 첫 성공은 해당 수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의사가 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고, 그 병원에서 가능하다는 소리기도 했다.
왕해양은 이번에도 환자의 기능 테스트를 진행했다.
“부기가 가라앉았어. 잘 회복되는 거지.”
두 사람은 전부터 손발이 잘 맞았다. 왕해양이 그렇게 말한다는 것은 정말로 회복이 잘되고 있다는 뜻이었다. 곽종군은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퇴원 맞출 수 있겠어?”
그 말은 환자의 다른 부위 외상 퇴원 조건과 함께 수부 기능이 회복되겠냐는 뜻이었다.
“수부외과 기준으로 굴절도 5도 이하, 압력 75%, ADL(Activities of daily living: 일상생활 동작) 합격이면 되네. ADL은 마 선생님이 수부 외상만 있는 게 아니라 다른 부위 외상 회복도 고려해야 하니까 좀 더 늦어질 수 있지만, 어쨌든 내가 보기에 매우 이상적이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일상생활할 수 있는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죠.”
좋은 소식을 들은 가족들은 마음이 점점 더 가벼워졌다. 그 모습에 왕해양이 싱긋 웃었다. 그가 수부외과를 선택한 것도 성취감이 비교적 크기 때문이었다. 절단이든 재이식이든 근건 봉합이든, 잘되면 잘된 거고, 성과를 바로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었다.
마문화 수술은 본인이 한 것이 아니지만, 환자가 미라 상태에서 일상생활로 복귀할 수 있는 걸 지켜본다는 건 어찌 됐든 기쁜 일이었다. 곽종군은 기뻐할 이유가 더 많았다.
“왕 주임, 그럼 이제 능연이 오늘 한 수술 성과를 보러 가겠나?”
“오늘 막 한 건 그다지 볼 게 없을 걸세.”
병실을 나와 웃는 얼굴로 묻는 곽종군의 말에 왕해양은 그렇게 대답하긴 했어도, 그를 따라 옆 병실로 들어가 막 수술을 마친 환자의 상태를 살폈다.
환자, 보호자들이 감사 인사를 했지만, 이번엔 왕해양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좀 전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수술을 막 마쳤을 뿐이라 잘됐는지 아닌지 지금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능연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순수히 수행 의사 신분으로 곽종군 뒤를 따랐다. 그는 조금 전에 마문화 가족의 ‘진심 어린 감사’로 초급 보물 상자 하나를 새로 얻었다. 마문화 씨는 벌써 초급 보물 상자 두 개를 능연에게 선사했다. 또 하나는 ‘같은 의사의 칭찬’이었다. 모두 스태미너 포션이었지만, 그것도 좋은 물건이었다.
“아까 환자, 신경 써서 관찰하게.”
“네.”
병실에서 나와 왕해양을 배웅한 곽종군의 말에 능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몰래 녹색 약물을 챙겼다.
“1번, 5번 침상 환자 맡고, 글피쯤, 회복 상태가 괜찮으면 새로 한 건 하지.”
곽종군이 자기가 짠 스케줄 표를 설명했다. 사흘에 한 번 새로운 탕 수술을 한다는 것은 곽종군으로서는 나름 텀을 둔 것이었다. 하지만 능연에 대한 믿음은 상당히 컸다.
“네.”
능연은 곽종군이 예상한 바와 달리 변함없이 간결하게 대답했다. 곽종군은 능연이 손이 근질근질할 거라고 예상하면서도 혹시나 부담스러워할까 봐 걱정했었는데, 능연의 반응은 그 어느 쪽도 아니었다.
“저녁에 간단하게 식사나 같이하지. 주 원장도 올지 모른다네. 7시에 같이 나가세.”
곽종군은 능연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 주임과 부원장이 밥을 산다면 그 누구도 거절하지 않을 테니까.
“저녁 회진은요?”
“세컨 어시한테 넘겨.”
능연의 질문에 곽종군은 잠시 그 어시스턴트의 이름을 생각하다가 직접 연문빈한테 이야기할 테니 시간 맞춰 출발하면 된다고 덧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