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24화 (24/877)

그날 저녁, 제약 회사 영업팀 사역하는 룸 안을 살피고 있었다.

“요즘 어디든 회식 자리로 말이 나올 수 있으니까, 장소 고를 때 좀 조심스러워. 너무 호화로운 데보다 작고 깔끔한 이런 레스토랑이 더 나아. 일단 음식이 중요하고 디테일이 좋아야지.”

사역하는 올해 32살로 이제 막 창서 제약 회사 운화 지점의 영업과장이 되었다. 강인한 성격에 딱 부러지는 일 처리로 유명한 사역하는 듣는 사람이 질릴 정도로 당부하고 또 당부했다.

“얘, 넌 탑모델이었던 만큼 몸매가 끝내줘. 그런데 하나, 좀 웃어. 넌 웃어야 부드러워 보여.”

“누님, 난 그런 일 안 해.”

모델이라는 남자가 싱긋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22살인 황무사는 여러 대회에서 상을 받았었고 우연히 인연이 되어 사역하를 만나 창서 제약 회사에 들어가게 됐다. 황무사에게 모델이나 제약 회사 영업 사원이나 별 차이 없었다. 얼굴로 일하고 몸매를 살짝 드러내 주면 실적이 올랐다. 인생의 전환점으로 나쁘지 않은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사역하는 황무사를 흘겨보면서 혀를 찼다.

“누가 그런 일 하래? 그냥 좀 웃으라는 거지. 알았어?”

“알았어.”

“주 원장은 운화 병원 실세 중 하나야. 가까워지면 나쁠 거 하나 없어. 사모님 킬러라는 네 별명 부끄럽지 않도록 잘해.”

말은 그렇게 해도 별걱정은 하지 않았다. 황무사를 팀으로 끌어들인 후, 의료계 여자 보스들은 사역하만 보면 함박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황무사는 사실 사진발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고 무대 매너도 그저 그랬다. 그러나 런웨이를 떠나 현실 생활로 돌아온 그는 사역하가 봐온 남자 중에 가장 잘생긴 남자였다. 특히 부드러운 미소를 지을 때, 실례되는 말을 하지 않을 때는 엄청나게 매력적이었다.

사역하는 그를 킹 카드로 사용했고 황무사도 제값을 했다. 그가 몇 번 나서서 밥 먹고 차 마시고 한 것만으로 계약 세 건을 따냈다. 킬러급 영업 사원이라고 불릴 만했다.

똑똑똑.

종업원이 문을 두드리며 그들이 기다리는 손님이 도착했음을 알렸다. 사역하는 재빨리 거울로 모습을 체크하고 황무사에게 고개를 돌렸다.

“잊지 마, 많이 웃고, 말은 적게.”

그러자 황무사가 별생각 없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문이 열리고 주 원장이 먼저 들어온 다음 곽 주임이 들어왔고, 그다음에······ 꽃미남?

세상 풍파를 겪었다고 자신하는 사역하의 눈에 황무사는 자기가 만나본 남자 중에 가장 잘생긴 남자였다. 얼굴 굿, 이목구비 굿, 몸매 굿굿, 웃으면 더 굿굿굿. 그런데 눈앞에 남자와 비교하니 황무사는 전혀······ 아니올시다였다.

사역하는 그때 정말 이 말이 너무 하고 싶었다.

‘꽃미남, 제약 회사 영업할래요?’

잠시 넋을 잃었던 사역하는 바로 정신 차렸다. 사역하가 어떤 사람인가. 버버리를 걸치고 까르띠에를 차는 커리어우먼이었다. 잘생기면 뭐? 꽃미남이면 뭐? 사역하는 전문가다운 미소를 지으며 그들에게 인사했다.

“곽 주임님, 주 원장님. 안녕하세요. 다시 만나게 돼서 기쁘네요. 원장님, 살 더 빠지셨네요.”

“우리한테만 인사하면 쓰나. 자, 이쪽은 능 선생이야. 우리 운화 병원 응급 의학과 탕 봉합술 집도의.”

곽 주임과 나이가 비슷한 주 원장은 온몸에 샤넬을 걸치고 스마트한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엄마 미소를 지으며 능연을 소개하고 있었다.

“능 선생님 안녕하세요. 이쪽은 저희 회사 영업 사원 황무사입니다.”

사역하가 먼저 손을 내밀어 능연과 악수한 다음 황무사를 소개했다. 황무사는 주 원장 맞은편에 서서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자자, 앉지. 앉아서 이야기하자고.”

주 원장의 시선이 황무사의 얼굴을 휙 스치고 지나가자 황무사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황무사는 다급하게 원형 테이블 한쪽으로 다가가 다시 주 원장 앞에 얼굴을 내비치며 매력 가득한 미소를 선사했다.

“우리 능 선생 좋아하는 거 좀 시켜 봐. 젊은 사람이니까 잘 먹을 거 아냐. 우리야 뭐, 아무거나 먹으면 되지.”

주 원장의 부드러운 모습에 황무사는 필살기, 비타민 같은 시그니처 미소를 꺼내 들었다. 그러나 주 원장은 전혀 변함없는 얼굴로 웃으며 능연을 바라봤다.

“능연, 레드 와인? 아니면 화이트? 아니면 다른 거? 꼭 술 안 마셔도 되니까, 마시고 싶은 거 마셔.”

어느새 자리가 무르익어 술잔과 음식이 계속해서 비워지고 채워졌다. 사역하는 와인을 들고 사람들과 건배한 다음 자리로 돌아갔다.

“주 원장님, 곽 주임님. 근건 파열도 MRI(핵자기공명)로 찍어야 하죠? 환자가 올 때마다 영상의학과로 갔다가 왔다가, 불편하지 않으세요? 앞으로 탕 봉합술을 키우면 하루에도 몇 건이나 생길 텐데 줄 서다 날 새겠어요. 아예 한 대 더 구매하시는 건 어때요?”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리던 황무사는 하마터면 콜라를 뿜을 뻔했다.

‘통도 크지.’

MRI 기계 가격은 천차만별이지만, 국산형도 3백만 위안에서 시작하고 수입 최신형은 천만 위안 혹은 천5백만 위안도 일반적인 가격이었다. 그런 대단한 놈을 한 대 판다면 몸값도 훌쩍 뛸 것이 분명했다.

황무사는 22년 인생 경력을 모두 동원해서 필사적으로 웃음을 쥐어짰다. 그가 상상하는 그 미소는 브래드 피트, 탐 형, 베컴, 젊은 시절 디카프리오, 양조위, 금성무, 키아누 리브스, 조니 뎁, 진관희, 알랭 드롱, 니콜라스 케이지······ 의 미소였다.

주 원장의 시선이 사역하의 얼굴을 스치고 곽종군, 황무사를 지나 능연 앞에 멈췄다.

“탕 봉합법을 위해서 MRI를 산다면 능연이 정말 유명해지겠네.”

“우리 응급 의학과를 위해서 사는 거 아닙니까? MRI 필요하긴 하죠. 응급 병동에 MRI 하나 없다는 것도 참. 환자들이 너무 기다리거든요.”

“곽 주임. 홍문연(鴻門宴: 초청객을 모해할 생각으로 연 연회. 항우가 유방을 모함하려고 홍문에서 연 연회)이라도 열 셈이야? MRI는 무슨, PET도 사달라고 하지 그래?”

껄껄 웃으며 말을 거드는 곽종문의 말에 주 원장은 와인을 머금으며 그를 흘겨봤다.

“PET 사주시면 이 검남춘(劍南春: 중국 8대 명주 중 하나)을 한 병 싹 비워 보이겠습니다.”

곽종군은 주 원장이 빈정대는 것을 개의치 않았고, 오히려 술이 확 깨는 느낌까지 들었다.

“한 병뿐인데 곽 주임이 다 마시면 우리 능연이는 뭘 마시라고.”

“전 이거면 충분합니다.”

주 원장이 웃으면서 하는 말에 능연이 술병을 들고 자신의 잔을 채운 다음, 병을 곽종군 쪽으로 밀었다. 바이주 반 근을 마셔도 전혀 취하지 않을 주량이었고 평소엔 그 반 정도를 마시는 게 딱 좋았다.

주 원장은 다시 엄마 미소를 지으며 능연을 바라봤다.

“마시고 싶은 만큼 마셔. 그렇지만 너무 많이 마시지 말고. 외과 의사는 술을 많이 마시면 안 돼. 병원에서 전화 올지도 모르니까.”

“주 원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원장님, 제가 한 잔 드릴게요.”

억지로 웃느라 떨리는 광대를 진정시키며 황무사가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들었다. 그는 PET가 바로 양전자 단층 촬영 기기이며 아무거나 골라도 평균가 2천만 위안인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2천만 위안!

술을 마시는 게 지금 곽종군에게 도움이 된다면, 콜라병에 노촌장주(흑룡강성 저가 소주)를 가득 채우고 배 속에 담즙이 가득할 때까지 마실 수 있을 것 같았다.

주 원장은 매너 있게 잔을 기울였다가 와인에 입술을 살짝 가져다 댔고, 황무사는 바이주 잔에 가득 찬 술을 한입에 털어 넣었다. 속이 활활 타오르는 느낌에 그가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가 금세 미소 띤 얼굴로 바꿔 치웠다.

‘미소, 그것은 나의 무기.’

황무사는 속으로 자신을 응원했다.

“능연이 우리 운화 병원 응급 의학과 첫 탕 봉합 수술을 해낸 건 축하할 만한 일이죠. 앞으로도 잘 서포트 해줘야 하지만, 진지하게 말씀드립니다만, MRI를 들일 생각은 없습니다. 수술실을 늘리는 것도 불가능하고요. 하지만 적당한 현미경은 사도 괜찮을 거 같아요.”

주 원장은 능연을 향해 잔을 들어 보이고 와인을 살짝 머금었다가 입안에서 잠시 굴렸다. 그러고는 웃는 얼굴로 능연을 다시 바라봤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운화 병원 전체로 보면 번 부주임이 벌써 탕 봉합 수술을 한 적 있죠. 운이 안 좋았다고 할 수밖에 없네요. 아니면 정말 응급 의학과에 힘을 실어줄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능 선생이나 번 주임 모두 독자적인 방향으로 탕 봉합 수술을 진행했습니다. 첫 사례만 따지는 건 우리 응급 의학과에 너무 불공평한 일입니다.”

곽종군은 기회를 잡은 김에 거세게 밀어붙였다. 그러나 주 원장은 웃기만 할 뿐 아무런 말이 없었다. 황무사는 살짝 자리를 틀어, 주 원장의 시선에는 들어가지만 정면으로 보이지 않는 위치로 옮겨갔다. 그리고 미소를 지었다.

미친 듯이.

미소가 총알이라면 황무사는 기관총이고, 미소가 포탄이라면 황무사는 기관포이며, 미소가 계란이라면 황무사는 바로 영계였다.

“그게 또 운화 병원 특징이죠. 제가 상대해 본 병원 중에 새로운 과목만 해내면 돈이면 돈, 기계면 기계 원하는 대로 다 해주는 곳도 있었어요. 그 과목만 시작하면 비용은 문제도 아니잖아요? MRI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우리 운화 병원 검진비 정도면 일 년이면 본전 찾아요, 원장님.”

사역하의 말에 주 원장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사역하는 금세 방향을 틀었다.

“MRI는 됐고요. 능연 선생님이 했던 탕 봉합 이야기나 해요. 다른 병원에선 하고 싶어도 못 하죠. 얼마나 힘이 들겠어요. 전에 들어보니까 새로운 수술법 하나 시작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라던데요. 파종하는 것만큼 힘들다고. 씨를 병원에 뿌려서 성목으로 키우기도 몇 년 걸리는데, 파종까지 하려면 십 년은 걸리잖아요. 얼마나 힘들겠어요.”

“능 선생은 옮겨 심어진 셈이네.”

“능연은 우리 병원에서 싹 트고 자란 꿈나무 의사죠. 능 선생 탕 봉합법은 집에서 전수받은 거랍니다.”

냉큼 보태는 곽종군의 말에 주 원장은 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참 내. 잘도 그런 소리를. 집에서 전하는 탕 봉합법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설날마다 손가락 12개씩 얼렸다가 한 달에 한 번씩 열두 달 연습한대요?”

주 원장의 말에 애써 미소를 유지하던 황무사가 드디어 뿜었다.

“손가락 12개 있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하하하.”

“네 손가락 두 개 자르면 12개 되겠네.”

사역하가 무서운 얼굴로 황무사를 노려봤다.

‘이 바보 같은 놈. 웃기만 하고 말은 하지 말라는 게 그렇게 어려워?’

“제 기억에 삼사 년 전에 우리 번 부주임이 자주 탕 봉합 전문가를 우리 병원에 초청해서 수술했던 것 같습니다. 부주임이 어시하면서 배웠고요. 그렇게 따지면 삼사 년 배워놓고 일본 연수를 간 거네요. 우리 능연이 아낀 돈 만해도 MRI 한 대 값은 나오겠습니다. 적어도 수술실 하나는 더 늘릴 수 있어요. 그리고 재활실 설치할 돈까지도요.”

“대타 한 번 부르려면 적어도 2, 3만 위안은 들죠. 거기에 차니 숙소니 이런 부대 비용도 있고. 각종 토론회도 돈이 많이 들어요.”

곽종군이 분통 터진다는 듯이 하는 말에 사역하는 제약 회사 영업과장의 신분으로 말을 거들었다.

현재 병원들은 대타를 불러 배우는 방식을 매우 선호했다. 자기 병원 하나를 연수 보내는 것보다 수술에 능한 의사를 병원으로 불러오는 게 진짜 기술을 캐내기도 쉬웠다. 대타로 일하는 의사들은 돈도 많이 벌고 의사들의 부러워하는 눈빛을 받으며 기술까지 가르치니, 당연히 직업 만족도가 높았다.

다만, 스카우트와 비교해서 성과가 늦게 나타나는 문제가 있었다.

주 원장은 여전히 웃기만 했다.

“번 주임은 상황이 다르죠. 탕 법만 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재활실은 저도 찬성합니다. 수술실도 뭐, 완전히 불가능한 건 아니에요. 그렇지만, 응급 의학과 하나 때문에 리모델링 할 수는 없잖아요?”

“정형외과도 수술실 늘리려고 하던데요? 제가 이 주임하고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그 정도까지 이야기가 진전된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곽 주임이 큰 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

“번 주임은, 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과가 중요합니다, 저는. 탕법으로 근건 봉합하는 건 전국은 말할 것도 없고 전 세계 범위로도 선진 기술입니다. 우리가 먼저 시작하기만 하면, 내년 이맘때쯤이면 성과를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원장님.”

“그래요, 그럼 신속하게 성공하길 바랍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곽종군과 잔을 부딪친 주 원장은 다시 고개를 능연 쪽으로 돌리면서 내일 같은 곳에서 다시 한잔하자고 말했다. 원래 절약 정신이 있는 능연은 1/3 정도 남아 있는 술을 힐끔 보고는 바이주 잔으로 3잔 정도 나올 분량임을 계산하고는 술잔에 따르기도 귀찮아서 그대로 병을 집어 들고 주 원장과 건배했다.

그 모습에 주 원장은 작년에 주사 맞은 히알루론산까지 발산하며 웃음 지었다.

황무사는 능연이 한 대로 자기 앞에 있던 술을 잔에 넘실넘실 채우고는 단단히 결심하고 눈을 질끈 감고 단숨에 비웠다. 그리고 사역하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주 원장을 향해 새하얀 치아와 혓바닥, 편도를 드러내 보였다.

사람들은 흡족하게 자리에서 일어났고 차에 타기 전에 주 원장이 사역하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자네 회사 젊은이, 핵자기공명 기계만큼 하네.”

한편 응급 의학과 관찰 병실에서는 환자 두 명이 다친 손을 힘겹게 움직이고 있었다.

연문빈은 흰 가운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단추를 푼 채 복도에서 서성거렸다. 이를 3번 왕복하다 4번째 걸음을 뗐을 때 왕가가 그를 불렀다.

“연문빈!”

왕가는 옅게 화장도 하고 앞머리도 귀엽게 내렸지만, 여전히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호칭 없이 이름을 불렀다.

“운동할 거면 영상의학과 병동 헬스장으로 가!”

“운동할 틈이 어디 있다고 그래. 환자 회복 상태는?”

“어느 환자?”

“누군지 알 텐데?!”

“능 선생님이 수술한 건데 회복이 잘 안 될 리가 있어?”

“두 번째 환자는 오늘 특별히 더 신경 써야 해. 부기가 빠지지 않으면 약물을 써야 한단 말이야.”

연문빈은 안타까울 정도로 얼마 없는 지식을 쥐어짜며 당부했다. 어찌나 단순한 내용인지, 어드바이스라고 부를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그래도 왕가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해마다 믿음직스럽지 못한 의사가 있었으니, 연문빈은 첫 번째도 아니고 마지막도 아닐 것이다.

그리고 어드바이스의 효력이 어떤지는 간호사들이 더 잘 알고 있었다. 아무래도 환자를 제일 가까이 살피는 것도 그들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담당하는 과 환자의 지금 상태가 어떤지, 정상인지 아닌지, 간호사들은 대부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다.

“능 선생, 오늘 당직이야?”

“응.”

왕가의 얼굴에 저절로 웃음꽃이 피었다.

“그럼 나도 당직 서야겠다. 둘이 같이 살피는 게 더 수월하겠지.”

연문빈은 의국으로 돌아가 시간 조정을 신청했다. 그와 가까운 위치에 있는 책상에 앉은, 외모가 평범한 나머지 사람들이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레지던트가 연문빈의 말을 듣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순간, 그는 아직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어느 사건을 떠올렸다.

그날 저녁, 능연은 왕장용과 진만호하고 식당에서 밥을 먹고 시간을 보내다가 처치실로 돌아가 콜을 대기했다.

운화 병원 규모쯤 되는 병원은 응급실에 부속된 처치실에서도 꽤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능연은 데브리망을 몇백 번 하는 동안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 번씩은 꿰맸고, 이제 가끔 혀가 끊어진 환자를 만나면 오히려 흥미롭게 여길 정도였다.

큰 병원과 작은 병원은 환자 수부터 많은 차이가 났다. 그리고 또 그런 이유로 의사들의 실력 차이도 점점 벌어졌다. 같은 삼십 대 응급 의학과 주치의라도 평생 작은 병원에 머문 의사는 복잡한 증상의 환자를 만나면 바로 트랜스해 버렸다. 그러나 큰 병원 응급 의학과 주치의가 얼마나 다양한 환자를 만나는가 하면, 예를 들어 의사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외상을 만들어 봐야겠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아마 매우 창의적이고 운도 좋아야만 할 정도로 별 상처를 다 본다.

사람들은 자신의 화를 자초하는 능력을 과대평가해서는 안 된다. 왜냐면, 그보다 더 뛰어난 능력으로 화를 자초하는 사람은 널리고 널렸기 때문이다. 다만, 그런 사람들은 보통 후손을 남기기가 어려워서 대대손손 전설로 내려오기가 어렵다.

응급 의학과 의사가 바로 그런 사람들을 똑똑히 지켜봐 온 산증인이었다.

연문빈은 관찰병실과 처치실을 왔다 갔다 했다. 중환자가 없는 시간엔 주치의가 나타날 일도 없으니, 야간 당직 서열은 레지던트가 사실 주도자였다. 물론, 중환자가 있을지 없을지는 모두 운에 달렸고 어떤 날은 골프공 하나만으로 경험이 별로 없는 레지던트를 곤란하게 만들 수도 있다.

길 가다가 맥주병에 다리를 찔려 온 환자를 꿰매느라 20분을 보낸 연문빈은 습관적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그래도 능연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절로 눈썹이 찌푸려졌다.

“능 선생 어디 갔어요? 아까부터 안 보이던데?”

“휴게실에서 책 보실걸요?”

지나가던 간호사를 붙잡고 물었더니, 고개를 갸웃거린 간호사는 명쾌한 답변을 내놓았다.

“휴게실에 있다고요? 휴게실에서 책을 본다고요?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연문빈은 무언가 잘못됐음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어린 간호사가 덧니를 드러내며 생긋 웃었다.

“아까 환자 가족이 과일을 좀 주셔서 능 선생님한테도 가져다드렸거든요. 책 읽고 계시던데요? 아주 진지하게.”

“아······.”

아무래도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들어 다시 입을 열려는 참에 환자 하나가 손을 부여잡고 들어왔다. 그러자 간호사가 슉 하고 사라졌고, 연문빈은 피하기도 그래서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다. 환자는 손을 감싼 티셔츠를 풀어 보이며 얼굴을 찡그렸다.

“길에서 깨진 맥주병을 주웠는데, 던지다가 제 손이 베었어요.”

연문빈은 레지던트의 기본 논리적 사고를 동원하여 질문을 던졌다.

“왜 20분이나 늦게 왔어요?”

“차가 안 잡혀서요. 응? 근데 제가 20분 걸린 건 어떻게 아셨어요?”

환자는 눈앞의 의사가 법의학을 배운 게 아닐까 생각했다. 연문빈은 데브리망 키트를 손에 든 채 잠시 고민하다가 “빅 데이터죠.” 하고 대답했다.

20분, 또 20분.

연문빈은 두더지 잡기 고수가 된 기분이 들었다. 텅 빈 처치실을 내가 치워야 하나, 생각하면 새로운 환자가 들어왔다.

응급환자가 주로 출몰하는 시간인 11시엔 다섯 진료 팀의 레지던트 다섯 명이 모두 출동해서 처치실 환자를 모두 처리했다.

연문빈은 드디어 한숨 돌리면서 그 틈을 타 관찰 구역으로 갔다. 그러곤 탕 봉합 수술을 받은 환자를 살핀 다음 휴게실로 돌아갔다.

문을 열자마자 라벤더 향초 냄새가 났다. 연문빈은 의아한 듯 코를 킁킁댔다. 틀림없이 라벤더 향이었다. 땀 냄새는 하나도 나지 않았다.

연문빈의 사고회로가 작동하기도 전에 침대 머리맡에 기대 책을 읽고 있는 능연이 눈에 들어왔다.

“오셨어요?”

능연이 ‘예의 바르게’ 턱을 치켜들고 룸메이트에게 말하는 것 같은 투로 과일이 있다고 말했다. 어째서인지 능연은 자주 과일, 요구르트처럼 거절하기 힘든 작은 선물을 받았다. 그럴 때마다 그는 룸메이트들과 나눠 먹곤 했다.

연문빈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침대 머리맡으로 향했다. 그곳에 흔하게 볼 수 있던 옷, 충전기, 세면도구가 몽땅 사라졌고 크고 작은 접시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대충 둘러보니, 자몽 하나, 껍질을 벗긴 네모난 수박, 씨 없는 초록 포도 작은 송이, 리치 8개, 산대나무 네 잎, 대추 세 알, 블루베리 한 컵, 과일 주스 작은 병 하나, 모과 세 조각, 앵두 한 그릇, 고기만두 하나, 녹두떡 작은 박스, 애플베리, 화용과 접시······가 있었다.

“와, 제사상도 이렇게 다양하진 않겠다.”

“음료수 한 박스 사서 너스 스테이션에 주고 왔어요. 답례했으니까, 마음 놓고 드셔도 됩니다.”

능연은 어릴 때부터 선물은 답례로 돌려줘야 한다는 이치를 배웠다. 다만, 그는 언제나 단체로 답례품을 전했다. 일일이 전하기엔 복잡했고 수량도 너무 많아서 여러모로 불편했으니까.

연문빈은 욕설을 내뱉으며 손을 뻗어 리치를 덥석 잡았다.

“내가 미안할 게 뭐 있냐? 온종일 바빴거든?”

“환자 많았어요?”

“당연하지! 과일 주러 온 간호사들이 나오란 소리 안 하디? 쳇. 하긴 간호사들이 널 고생 시킬 리가 없지.”

연문빈은 갑자기 깨달은 듯 혀를 찼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었다.

“과일은 널 주고 환자는 날 부르고. 일을 안 하는 건 둘째 치고, 꿰매는 것도 네가 더 빠른데, 이제 널 안 부른다니.”

그 말이 끝나자마자 누군가 휴게실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간호사 하나가 흥분해서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다.

“능 선생님. 주무세요? 음낭 파열 환자 왔어요!”

“네! 바로 갈게요!”

줄곧 전에 획득했던 단속 수직 매트리스 봉합법을 써보고 싶어 했는데, 드디어 기다리던 환자가 나타났다. 능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신발을 신고 흰 가운을 걸치다가 무슨 생각이 난 듯 휙 고개를 돌렸다.

“보세요. 일하라고도 부르잖아요.”

“야! 욕이라도 하게 두면 안 되냐?!”

잠시 멍하니 있던 연문빈이 꽥 고함치자, 어린 간호사는 손에 리치를 들고 멍하니 서 있는 그를 노려봤다.

“멍하니 뭐 하세요. 어서 가서 어시하세요.”

응급실의 밤은 다소 너저분했다.

바닥에 버려진 옷과 쓰레기가 뒹굴고 수액걸이, 의자, 병상 위치도 흐트러진다. 구석에 있는 쓰레기통 쪽엔 구토물 같아 보이는 것을 덮은 천까지 있었다.

빠른 걸음으로 처치실에 도착한 능연은 커튼 달린 격리 공간에 들어가 있는 환자를 발견했다. 밖에서도 병상에 상반신을 기댄 채 허망한 눈으로 천장을 보는 남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능 선생님 들어오세요.”

유 간호사가 능연이 안으로 들어가자 커튼을 쳤다. 환자는 그래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뇌진탕인가요?”

“놀라서 그래.”

“아.”

환자의 모습에 그럴싸한 추측을 하면서 심한 뇌진탕이면 음낭이 문제가 아니겠다고 생각하던 능연은 병상 끝쪽에서 환부를 살피던 레지던트가 하는 말에 사타구니 쪽을 힐끔 보고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배는 안경을 쓰고 아래턱에 짧게 수염을 길렀고 머리카락도 수염 정도로 길었다. 내년에 치프 레지던트가 될 예정이고 살아남는다면 주치의가 될 것이다. 그 역시 오늘 당직인 일선 의사인데 그중에 경험이 가장 풍부했다. 실습생 3년, 레지던트 3년 동안 손에 거친 봉합은 몇천 번에 달했다.

“지금 관찰해 본 바로 뭐 떠오른 거 있어?”

정배는 유 간호사가 능연을 부르러 갔던 것을 알고 시험하듯 그렇게 물었다. 선임 의사들은 기분이 좋으면 후배 의사들을 테스트하고, 기분이 나빠도 테스트한다. 실습생이든 레지던트든 언제 어디서든 질문세례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

물론, 의대생은 학교에서도 그런 생활을 하고 능연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밝은 빛 아래 환자를 관찰하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단속 수직 매트리스 봉합은 겨우 전문가급 기술을 얻었을 뿐이라 배나 음낭을 꿰매는 데 쓸 수 있지만, 관찰하거나 진단하는 것은 역시 스스로 해내야만 했다.

다행히 능연은 진작에 그 방면의 지식을 쌓았고, 그는 진지하게 환자의 피범벅이 된 환부를 살피면서 대답했다.

“좌측 음낭 파열, 음낭 표면 그리고 연조직 내부에 먼지와 작은 자갈 조각들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상처면이 고환집막(tunica vaginalis)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집막은 괜찮은 것 같습니다.”

그가 한마디 할 때마다 병상의 환자가 부르르 떨었다. 환자가 태연자약하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정배는 의외라는 듯 능연을 힐끔 바라봤다.

“음, 꽤 자세히 관찰했군. 이것저것 배우기도 많이 배웠고.”

능연이 살짝 미소 지었다. 겸손한 대답을 잠시 기다리던 정배는 자신의 이마를 툭툭 치며 유 간호사를 바라봤다.

“나 누구랑 이야기하는 거니. 자, 네가 검사하면서 하나하나 설명해 봐.”

정배가 자리를 비켜주자 능연이 장갑을 끼고 앞으로 다가가 이리저리 살폈다. 눈빛에 힘이 하나도 없던 환자가 더 심하게 몸을 떨었다.

“다른 상처는 없습니다. 비선형 외상, 어느 정도 오염됨. 도로에서 그랬나? 흠, 아닌데······.”

책에서 얻은 지식을 암기했었던 경험만으로는 구체적인 실제 케이스 앞에서 정확히 분석하기 어려웠다.

“아까 내가 물어봤었어. 공원에서 보드 타다 그랬대. 보드에 왜 그 동작 있잖아, 계단 손잡이에 튀어 올라가서 타는 거. 그래서 어떻게 됐게?”

“보드 없이 사람만 먼저 올라갔겠군요.”

능연은 수수께끼가 풀린 느낌이 들었다. 정배는 손가락으로 딱 소리를 내고는 웃는 얼굴로 능연을 바라봤다.

“빙고! 손잡이 위에 완전히 철푸덕! 근데 그게 둥근 손잡이도 아니었던 거지. 그러니까······.”

“그러니까 파상풍 가능성도 고려해야겠네요. 파상풍 항독소 준비해 줘요.”

말을 잇는 능연의 모습에 정배는 어리둥절해졌다. 그냥 잡담하던 거 아니었어? 갑자기 일 얘기?

“출혈은 심각하지 않고, 정삭(精索)은······, 정상적인 정삭은 어땠죠?”

능연은 해부 수업 때 배운 내용을 회상하다가 주저하면서 물었다. 완전한 음낭이라면 칼로 베고 정삭을 꺼내 정상 형태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비교적 특수한 상황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해부구조라 섣불리 결론을 내기 어려웠다.

거기까지 검사하지 않았던 정배도 그 말을 듣고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다.

“비정상이면 일단 정삭을 틀어서 바로 잡아야 하는데······.”

“언제까지 <환주격격(還珠格格)>’(중국 드라마 <황제의 딸>. 환주還珠에 돌아온 구슬이라는 뜻이 있어, 불알 환자에 빗대 ‘불알을 돌려준다’는 표현) 이야기할 거예요?”

환자가 갑자기 목소리를 높여서 따지자 정배는 멍해졌다.

“환주격격이라니요?”

“좀 전에 금쇄(<황제의 딸>에 나오는 인물 이름. 정삭과 중국어 발음이 비슷함)라면서요. 환주에 나오는 금쇄 아니에요? 사람이 이렇게 심하게 다쳤는데 드라마 이야기하다니. 누가 이딴 병원에 데리고 온 거야.”

환자는 얼굴에 경련까지 일으킬 정도로 화가 난 채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배는 화도 나고 웃기기도 했다.

“뭔 환주격격이에요. 그게 대체 언제 적 드라마입니까? 환자분, 다른 사람은 보드 사고가 나도 별로 심하게 다치지 않는데 왜 심하게 다친 건지 아십니까? 그건 환자분 나이가······.”

“정 선생님! 약 어떻게 쓸까요?”

유 간호사가 다급히 말을 잘랐다. 의사와 간호사가 환자와 싸워봤자 손해였고, 일이 나기도 쉬웠다. 정배는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능연, 네가 설명해.”

“정삭이란 고정 고환이며 영양소를 운반하는 구조입니다. 동정맥, 수정관, 임파선, 신경······.”

능연은 책을 외우듯 한참 내용을 읊다가 환자를 마주 봤다.

“정삭이 정상인지 체크하는 겁니다. 여기에 문제가 생기면, 예를 들어 정삭 뒤틀림 같은 상황이면 수술해야 하고요, 어쩌면 고환을 절개해야 할 수도 있어요. 그럼 봉합할 필요도 없고요.”

능연은 유감이라는 듯 마지막 말을 내뱉었다. 환자는 끽소리도 하지 않고 허망한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며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고환이 조금 내려앉은 거 같아. 뒤틀림은 없네. 이런 위치 자체가 보기 드문 케이스인데.”

정배가 멈칫하면서 하는 말에 능연은 그가 가리키는 위치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데브리망 하자. 할 때 너무 심하게 분리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다른 문제가 없음을 확인한 정배는 능연에게 넘겨줄 생각으로 장갑을 벗었다. 원래 자기가 할 생각이었던 능연은 망설이지도 않고 앞으로 나가서 익숙하면서도 낯선 작업을 시작했다.

전문가급 단속 수직 매트리스 봉합법을 드디어 발휘할 순간이었다.

몇 분 후, 알을 둥지에 돌려놓았다.

능연은 만족한 듯 칸막이 칸을 벗어나며 오늘 당직은 꽤 보람 있었다고 생각했다.

바로 능연을 찾아낸 연문빈도 다급한 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능 선생. 5번 침상 환자, 부기 가라앉았어.”

“또 병실에 가셨었어요?”

시간을 보니 벌써 새벽이었다. 능연이 묻는 말에 연문빈은 보란 듯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냥 겸사겸사 가봤지. 부기가 이렇게 빨리 가라앉을 줄은 몰랐어.”

동시에 능연 눈앞에 시스템 제시어가 나타났다.

- 퀘스트 완성: 환자 치료

- 획득 보상: 절개(핑거팁 그립 전문가급)

음낭 파열 환자는 관찰 병실에 하루 머물다가 바로 퇴원했다.

병원을 떠날 때까지 환자는 넋이 나간 상태였으나, 의사들에게는 환부 위치가 조금 특이해서 재미있었던 것 외에 외상 자체는 전혀 새롭지 않았다.

“오히려 빨리 회복된 편이지.”

정배는 집도의 신분으로 퇴원허가서에 사인하고 아래턱에 수염을 쓰다듬으며 능연을 바라봤다.

“잘 꿰맸더라? 전에도 해 봤어?”

“저희 집이 진료소라서요.”

사람들이 호기심에 넘쳐 물어볼 때마다 쓰는 필살기를 오늘도 꺼내 들었다. ‘하구 진료소’ 이야기를 진작 들어온 정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의사 집안이구만. 근데, 거기에 음낭 파열 환자가 그렇게 많아?”

“노인분들 배 꿰맬 때도 자주 썼거든요.”

“진료소에서 수술도 해?”

배를 꿰맨다는 말을 의사가 들으면 당연히 개복 수술 후 봉합을 떠올린다.

“오래된 곳이라 그렇죠.”

설명하기 귀찮아진 능연이 대충 대답했다. 처음부터 별 의미 없이 물은 것이라, 정배도 그냥 웃고 넘겼다. 그리고 곁에 있던 어린 간호사에게 화살을 돌리며 장난스럽게 물었다.

“아까 그 음낭 파열 환자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요?”

“뭐래요?”

막 직장에 들어온 간호사를 데리고 야한 얘기하는 걸 제일 좋아하는 정배가 응큼하게 웃었다.

“음경을 앞으로 쓸 수 있는지 없는지 묻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으로 봐서는 쓸 수 있을 확률이 크다고 했죠. 다만, 당분간은 자극을 주면 안 된다고. 그랬더니 환자가 바로 호텔을 잡잖아요. 여자친구가 너무 예쁘다나 뭐라나. 나이도 어려서 툭하면······.”

거기까지 이야기한 정배는 갑자기 목소리를 줄였다.

“서른 몇인 남자가 밴드 한다면서 보드나 타고, 근데 여친은 또 어리고 예쁘대. 호텔도 그냥 아무렇지 않게 잡고. 대체 이게 무슨 세상이야.”

어린 간호사는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에 줄행랑을 쳤다.

능연은 제가 데브리망한 환자를 살펴보러 갔다.

주치의는 레지던트와 간호사를 통해 환자의 상황을 살피지만, 능연은 아직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하루에 두세 번 병실을 도는 것도 많은 편은 아니었다. 그래도 침대 관리하는 레지던트보다야 편했다.

초짜 의사에게 침대 관리 작업은 무릎에 활액막염(synovitis)을 불러오는 작업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때는 괜찮아도 움직이려고 하면 무릎이 먼저 앓는다. 휴가도 없다. 오늘 환자가 퇴원하면, 내일은 입원하는 환자가 계속 들어와서 자리를 비울 수 없다.

거기다 주말이라고 마음 놓고 집에 있을 수도 없다. 돌발 상황이 없다고 해도 전날 마취한 환자가 잘 있나, 며칠 전 입원한 환자에게 내린 의사 지시에 변동사항은 없나 체크 하느라 집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도 전부 운에 달렸다. 늦잠도 불가능했다. 반드시 해야 하는 아침 회진에 혹시라도 늦었다가는 선배 의사한테 알이 조일 정도로 욕먹을 게 뻔했으니까.

가장 비참한 건 바로 연문빈 같은 레지던트였다. 일을 하자니 할 줄 모르고, 배우려고 해도 안 되고, 성장하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모르는 것이 점점 늘어나고······.

탕 봉합 수술을 받은 환자만 해도 연문빈은 이해할 수 없었다.

자료를 많이 읽었는데, 삼사일 지나면 수술 후 2단계에 진입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삼사 주가 지나야 한다. 두 환자의 회복이 빠른 것은 물론 좋은 일이지만 계속 신경이 쓰였다.

“부기 가라앉았고, 흉터는 조금 많은 편이네요. 활동 능력 좀 볼까요?”

갑자기 들리는 능연의 목소리에 등을 지고 있던 연문빈이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그는 즉시 그쪽으로 다가가 아는 척하고는 능연이 환자를 검사하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봤다.

솔직히 말해서, 능연의 검사 방법은 칭찬할 구석이 없었다. 모르는 사람이 봐도 왕해양이 검사했을 때와 얼마나 차이 나는지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검사는 검사일 뿐, 동작 요령을 제대로 설명하면서 환자의 상태를 살피는 게 주요 목적이었다. 그리고 수술과 비교하면 중요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일이라 원래 실습생들이 자주 하는 일이었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연문빈의 뇌리에 능연이 수술하던 모습이 저절로 떠올랐다.

‘어우, 촌닭 같았어.’

봉합 기술은 그토록 뛰어난 능연이 왜 메스를 쥘 때는 레지던트보다 못한 수준으로 촌닭 같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어쩌면 천재의 결함인지도 모르지.

“별일 없으면 먼저 돌아갈게요.”

“지금? 연습 안 해?”

회진을 마친 능연은 이제 꼭 해야 하는 일이 없었다. 능연의 절개 기술을 떠올린 연문빈은 멍해졌다.

“내일 수술 있으니까 정신수양 해야죠.”

능연이 말하는 수술이란 세 번째 탕 봉합 수술이었다. 마스터급 탕 봉합법이 있어도 안심할 능연이 아니었다. 학생 때도 시험 전날엔 시험 범위를 복습했고, 연필, 볼펜, 자, 메모지, 수험증까지 모두 체크하곤 했다. 대입 시험도 그랬지만, 쪽지시험도 그랬었다.

대충대충, 쉽게쉽게, 이런 단어는 능연의 머릿속에 없었다. 능연에게 수술은 바로 시험이었다.

연문빈은 능연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역시 너무 오만해. 그럴 시간 있으면 차라리 절개 연습이나 하지. 그럼 내일 수술은 덜 꼴사나울 텐데. 이번엔 중년 아재라 손에 흉이 남아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지만, 다음에 외모에 신경 쓰는 사람을 만나면 어쩌려고.’

고개를 돌리던 연문빈은 문득 어떤 생각을 떠올리고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설마? 절개 포기? 그럼 나한테 넘겨도 되는데.’

다음 날, 수술일.

제일 먼저 수술실에 들어간 연문빈이 시트 정리부터 검사까지 모든 일을 마치고 난 후에야 능연과 곽종군이 수술실로 들어섰다.

곽종군은 위풍당당, 능연은 옥골선풍, 연문빈은 압박심각······이었다.

“환자 이흥국, 21세. 개방성 외상. 검지와 중지에 굴근건 파열. 특히 중지는 심지, 천지 굴근건이 전부 파열되어 비교적 복잡합니다.”

사전에 자료를 봐둔 연문빈이 설명했다. 능연도 미리 자료를 봐두었기에 가만히 그 설명을 듣고 있었다. 곽종군은 지금 구해올 수 있는 굴근건 환자는 이런 환자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무인 구역이 무인 구역인 이유는 바로 수부 무인 구역 범위 안에 근건 분포가 지나치게 밀집되어서였다. 심지굴근건과 천지굴근건이 비좁은 건초에 연결되어 있어서 수술 후 유착이 심각하고 기능 회복이 이상적이지 않았다.

심지굴근건과 천지굴근건이 모두 손상된 상태라는 건 그것들의 활동성이 모두 강해져서 유착될 활률이 높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능연에게는 문제가 아니었다. 마스터급 탕 봉합술로 심지굴근건과 천지굴근건을 동시 해결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순서를 한 번 살핀 능연은 직접 만지면서 진찰한 다음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하죠. 탕 봉합법 2구역 근건 파열. 펜.”

능연이 손을 내밀자 그에게 집중하고 있던 왕가가 바로 펜을 올려놓았다. 동작이 스무스한 걸 보면 몇 번이고 연습한 것이 틀림없었다.

능연을 바라보는 왕가는 마스크를 끼고 있었는데도 미소가 보일 정도로 기뻐하는 얼굴이었다.

곽종군은 직접 메스를 댈까, 생각했지만 결국 그 말을 입에 올리지는 않았다. 절개는 보통 선배 의사가 후배 의사에게 내리는 포상이지, 반대의 경우는 한 번도 없다. 게다가 항상 곽종군이 절개를 해줄 수도 없었다. 어쨌든 능연 스스로 해내야 할 과정이었다.

곽종군이 연문빈을 힐끔 봤다. 이삼 년 동안 실습생으로 보냈었지만, 어찌 됐든 본과의 레지던트였으니 밖으로 내보낸 양 같은 존재였다. 우유를 짤 때가 되거나, 털을 자를 때가 되면 어쨌든 돌아와야 하는 양 말이다. 실습생 생활도 끝났고 실력의 황금기를 맞이했을 테고······.

지난번 수술 때 지켜본 연문빈의 모습도 나쁘지 않았다. 환자의 예후도 끊임없이 신경 썼다.

곽종군이 집도의고 능연이 퍼스트 어시였다면, 곽종군은 아마도 연문빈에게 메스를 잡을 기회를 줬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못 해도 지난번 능연의 절개보다 훨씬 나으리라.

연문빈은 곽종군의 시선을 즉시 알아차렸다. 주임이 자신에게 관심을 보인다는 것이, 좋은 일일까, 안 좋은 일일까.

연문빈의 작디작은 심장이 쿵쿵 뛰었다. 능연이 먼저 나서서 절개를 포기하고 그에게 넘기는 것이 가장 베스트라고 생각했다. 거기에 주임이 말을 거들어 준다면 더할 나위 없고.

그도 큰 욕심은 없었다. 다만 마음속에 무심결에 든 생각은 어제 능연이 연습을 안 한 거로 봐서 그냥 포기했거나, 아니면 절개 기술 쪽에 문제가 있는 걸 알아서 깨닫고 포기했거나, 였다. 그렇다면 능연이 절개를 포기하고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것이 당연한 절차겠지.

연문빈은 지난 밤 보드남의 알이 터진 상황을 뇌리에 떠올리며 겨우 마음을 진정시켰다.

“당기세요.”

능연의 목소리에 연문빈은 그가 벌써 선을 다 그렸음을 깨달았다.

‘주저하지도 않고 그렸네? 미리 생각해 둔 건가?’

연문빈은 혼자 중얼거리면서도 다급하게 앞으로 나서서 선이 그려진 부분이 잘 보일 수 있게 살짝 구부러진 환자의 수부를 곧게 폈다. 그리고 능연이 선택한 위치가 아주 좋음을 발견했다.

원래 있던 외상 주위로 상처 면을 확대하는 건 모순적인 선택이다. 하지만 매번 합리적인 방안을 찾아내는 것도 힘든 일이다.

수술을 리모델링에 비유한다면, 환자에게 원래 있던 외상은 공간 중간에 있는 서포트 기둥이나 마찬가지라서 없앨 수도 바꿀 수도, 그 위에 뭔가 설치할 수도 없다. 그리고 모든 건물의 기둥 위치도 제각각이라 리모델링 전에 실내 공간과 기둥의 관계를 잘 살펴야 한다.

완벽한 방안이란 어쩌면 존재하지 않고, 그래서 고심해서 비교적 합리적인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

능연은 메스를 움직였다. 핑거팁 그립은 매우 기초적인 메스 잡는 법이며 그다지 화려한 기술은 아니었다. 단 1, 2분 만에 능연은 벌써 필요한 시야를 확보해냈다.

곁에서 오염 방지 식염수 패드를 정리하던 연문빈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두 번이나 메스를 대던 능연이 눈 깜짝할 새 메스 고수가 되어 있었다.

이삼 년 동안 운화 병원의 각 과를 전전하면서 얻은 경험으로 봐도 대부분 진료과의 실력 좋은 의사 수준의 절개였다.

“절개 연습했나?”

놀란 곽종군은 유일하게 생각해낼 수 있는 합리적인 해석으로 그렇게 물었다.

“네.”

능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몇 번 시도하기는 했으니까.

이만하면 견문이 충분하다고 생각해 왔는데, 아직도 식견이 좁았다는 생각에 곽종군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사흘만 열심히 연습하면 절개 기술을 터득할 수 있다고 10분 전에 누가 말했다면, 말도 안 된다고 소리를 버럭 질렀을 것이다.

‘아니면, 지난번에 컨디션 난조였나?’

처음엔 그럴싸한 결론처럼 보였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지난번에 허둥대던 능연의 모습은 아무래도 컨디션 난조 때문은 아닌 것 같았다.

“당겨주세요.”

능연이 연문빈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훅맨 생활을 오래한 연문빈은 무의식적으로 피부를 당겨서 막 절개된 부분을 확장했다. 그러자 근건 두 가닥이 똑똑히 드러났다.

절개에서 제일 중요한 건 수술 시야를 넓히는 데 있었다. 능연의 절개는 더할 나위 없이 깔끔했다. 적어도 연문빈의 눈엔 트집 잡을 수 없을 정도였다. 직접 한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할 자신이 없었으니까.

연문빈은 가슴이 답답하고 당황스러웠다. 어제까지만 해도 능연이 오만하다고 생각했는데, 오기를 부릴 만했을 줄이야. 아무도 어제 그가 했던 생각을 모르지만, 스스로 수치스러웠다.

“능 선생 속도를 보면 모르는 사람이 봐도 고인물이라고 생각하겠어.”

헛웃음 지으며 하는 연문빈의 말에 능연은 담담하게 웃었다.

“다른 사람 생각이 뭐가 중요한가.”

놀라서 넋이 나갔던 곽종군도 정신 차리고 기뻐하며 입을 쭉 찢었다.

병원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과에 필요한 것은? 과주임이 필요로 하는 것은?

바로 능연 같은 인재였다.

의학의 길은 길고 길었다. 3년 봉합, 3년 절개, 3년 맹장 수술을 해온 45세 부주임, 53세에 겨우 주임 의사가 된 의사들은 당연히 병원의 핵심 인물이다. 그들은 군대의 중간 군관 같은 위치였고, 병원은 그런 중간 군관급 인물로 조성된 군관팀을 매우 중시하고 필요로 했다. 하지만 그 팀의 개개인은 별로 필요로 하지 않았다.

병원이 바라는 개인 의사는 지도자가 될 만한 인물이었다. 그들이 만약 그 군관팀에서 탈영한 능력자를 원한다면, 그건 그 사람이 천재거나 하늘에서 떨어진 복덩이거나 일 것이다.

“맞다, 능연. 자네 자주 족발을 사서 연습한다고 들었네만.”

“그랬습니다.”

곽종군이 갑자기 꺼낸 말에 능연이 간단하게 대답했다. 마이크로 글래스를 쓰고 이야기할 때도 템포가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다.

“실습생인데 그래서 쓰나. 한 달에 몇백 위안 나오는 월급을 거기다 다 쓰겠구만. 연습 재료비를 사비로 쓰게 할 순 없지. 우리 응급 의학과에서 당장 연습실을 만들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의사들이 실력을 높일 수 있을 만한 환경은 제공해야 하지 않겠나? 안 그런가?”

곽종군은 열변을 토하다가 무슨 생각이 났는지 고개를 돌려, 둥근 의자에 앉아 있는 소가복을 바라봤다. 마취과 의사 소가복은 느릿느릿 자리에서 일어나 그렇다고 대답했다.

“족발이라고 비용 청구하면 좀 그러니까 이렇게 하세. 능연 자네 지금 의사 면허도 없으니 집도할 때도 내 이름을 쓰거나 연문빈의 이름을 쓰고 있잖나. 내 통장으로 들어오는 수술비를 자네에게 보내겠네. 사양하지 말고 받게. 일한 만큼 받는 거니까, 당연한 거지.”

처음부터 사양할 생각이 없던 능연은 간단하게 ‘네’라고 대답하고 수술에 집중했다. 연문빈은 부러워서 팔에 힘이 다 빠질 지경이었다.

병원에서 주임 이름을 집도의에 올리고 직접 집도하지 않는 수술도 수술비는 변함없이 주임의 몫이었다. 의학 제도 변경 전에는 푼돈이었지만, 지금은 제법 묵직한 금액이었다.

특히 집도의의 수술비는 어시스턴트, 간호사, 마취의를 다 더한 것보다 더 많았다. 족발이 얼마나 한다고, 주임이 작정하고 능연의 주머니에 손을 찔러주는 것이었다. 연문빈은 고개를 숙이고 반드시 탕 봉합법을 손에 넣겠다고 다짐했다.

뒤이어 그의 머릿속에 간장 조림 족발, 찜 족발, 구운 족발, 홍소 족발, 향라 족발, 냉채 족발,맥주 족발, 부자 족발, 옥수수 족발······ 등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세 번째 탕 수술은 매우 성공적으로 끝났다.

곽종군과 연문빈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능연도 자기가 잘했다고 생각했다. 학생이 시험 볼 때 점수를 예상하는 것처럼, 의사가 수술할 때도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좋은 느낌이 들 때마다 수술 결과도 좋은데, 보통은 기대보다 훨씬 좋았다.

매우 높은 확률로 환자의 상황을 예상 적중하기 때문이었다.

학생들이 시험 준비하면서 예측하고 족집게 문제를 찾듯이 의사도 수술 전에 비슷한 행동을 한다. MRI, X-ray, CT, 혹은 초음파, 컬러 초음파, 혹은 더 정교한 양전자 단층 스캐너 등 모든 영상학 정보에 각종 화학검사, 생체 조직 검사, 내시경 등이 모두 의사가 진단을 내리기 위한 정보가 되어준다. 그러니까 수술 전 진단은 의사들이 족집게 문제를 고르는 셈이고, 맞출수록 수술이 순조롭게 진행된다. 혹시 틀리면 평소의 경험과 준비된 상태에 따라 수술 결과가 달라진다.

현대 의학은 눈부신 발전을 이룬 것 같지만, 인체의 복잡함에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미미할 뿐이다. 중국의 지존급 거물 의사 부인이 암에 걸리자, 의사가 직접 우수한 제자들을 거느리고 전면적으로 진단하고 만반의 준비를 했다. 하지만 막상 개복했더니 암세포가 완전히 예상을 벗어났던 일이 있다. 그런 자책과 고통을 짊어지고 조금씩 가능한 한 암세포를 깨끗하게 치우면서 수술을 완성시키기까지, 다른 이성적인 선택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의사들은 모두 그런 상황을 피하고 싶어 하리라.

말하자면, 예상을 벗어나는 것이 의사들의 가장 큰 적인 셈이고 예상 적중은 성공의 전주곡이었다.

현대 의학 발전이란 끊임없이 전형적인 케이스를 확장하는 것이다. 의사들은 가장 중요한 진단을 내려야 한다. 질병이 어떤 유형의 케이스에 속하는지, 치료할 수 있는지, 어떻게 치료하는지에 대한 진단 말이다.

능연의 진단 능력이 아직 부족하다고 해도, 복잡한 내과 질병과 비교하면 외과 의사가 마주한 진단 환경은 상대적으로 단순했다. 환자의 굴근건 파열은 탕 법으로 해결할 수 있고 탕법 과정을 어떻게 조작하고 어떻게 판단하고 어떻게 계속할지는 능연의 문제 찍는 능력과 임기응변에 달렸다.

어쩌면 환자의 심지, 천지 근건이 동시에 파열된 것이 능연을 자극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앞선 두 번의 탕 법 봉합 수술이 능연의 수술 방법에 대한 지식을 넓혔는지도 모른다. 어찌 됐든, 원래 4시간으로 계획했고 실제로 조작하면 3시간 반 정도 걸릴 수술을 2시간 반 만에 종료 선고를 내렸다.

그러는 동안 능연은 일부러 속도를 올리지도, 속도를 올리기 위한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능연이 가위를 내려놓고 수술 종료를 선고했을 때, 연문빈은 멍청하게 주변 물건을 수습했고 곽종군은 둥근 의자에 앉아 시계를 올려다보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마취과 소가복은 1kg은 빠진 느낌으로 다리를 달달 떨었다. 그는 입시에서 600점을 받았던 기억력을 사용해서 다음에 곽종군의 수술에 들어올 때는 개인용 의자를 가지고 오리라 다짐했다.

“가도 됩니까?”

다시 한번 검사를 마친 능연은 모자란 의료 기기가 없는 것까지 확인하고 마음을 놓았다. 외과 의사가 할 수 있는 건 거의 다 했고, 이제 회복과 재활은 환자에게 달렸다.

“음. 수술 시간도 길었으니 어서 가서 푹 쉬게.”

정신을 퍼뜩 차린 곽종군이 둥근 의자를 멀리 걷어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매체 보도에서는 6시간 넘는 수술도 자주 나왔지만, 실제 병원 생활에서는 2시간 연속된 수술도 고된 축이었다.

장갑을 벗은 능연은 순서대로 모니터링 기기를 살핀 다음에야 곽종군을 따라 수술실을 나섰다.

수술실에서 일어나는 대부분 수술에서 모니터링 기기까지 챙기는 의사는 드물었다. 현대 모니터링 기기는 자동화 발전이 되어 보통 별다른 소리가 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없다는 뜻이었다. 어떤 때는 소리가 나도 상관하지 않았다.

능연은 그런 게 싫었다. 그는 자동화 기기를 인공지능보다 더 못 미더워했다.

“연문빈, 잊지 말고 환자 마취 상태 살피게.”

수술실을 떠나기 전, 곽종군이 당부했고 연문빈은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였다. 연차 낮은 레지던트는 나머지 잡일을 해야 하기 마련이었다. 바쁜 수술실에서는 간호사들까지 그들을 재촉하곤 한다. 다행히, 이제······ 습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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