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25화 (25/877)

수술실에서 나온 능연은 곽종군에게 인사하고 바로 샤워실로 향했다. 응급 의학과 수술실은 표준 레이아웃대로 지어져 있었다. 지금은 수술실이 네 칸밖에 없고 샤워실엔 칸막이가 있었다. 능연은 뜨거운 물로 샤워하면서 조금 전에 했던 수술을 떠올렸다.

지금까지 한 수술 중에 가장 통쾌한 수술이었다. 데브리망을 할 때도 그런 기분이 든 적 있지만, 너무 간단한 수술이라 시간이 너무 짧아서 느껴볼 새도 없이 끝나곤 했다.

조금 전 두 시간 반짜리 수술에서 그는 두 시간 내내 바삐 움직이면서 정신을 바짝 긴장시킨 채 흥분된 시간을 보냈다. 과정을 생각하면서 통쾌했고, 결과를 생각해도 통쾌했고, 통쾌한 생각을 하면서 통쾌했다.

물기를 닦고 나와서 이제 어디로 가나 생각하던 참에 구석에서 졸린 얼굴로 기다리는 주 선생을 발견했다.

“대충 씻고 나오지. 기다리다가 잠들 뻔했네.”

“일 안 하세요?”

하품하는 주 선생의 말에 능연은 의아한 듯 물었다.

“그럴 리가. 대신할 사람을 찾았을 뿐이지.”

그 말에 능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제 처치실에서 하던 데브리망에 흥미를 잃었지만, 응급 의학과 휴게실에 각 과 레지던트, 실습생, 연수의들은 콜 받을 기회만 기다리고 있었다.

“돈 주러 왔다.”

“수술비요?”

“덤덤한 줄 알았는데 꽤 똑똑하구만. 곽 주임님이 나더러 설명하라더라. 미리 말해두는데, 이 수술비는 원래 곽 주임님 거야. 주임님이 너한테 주는 거니까 다른 건 생각하지 마.”

수술비를 나눠야 한다면 주 선생도 자신의 수술을 남에게 넘기지 않을 것이다. 수술비는 원래 집도의의 몫이고 실습생에게 나눠 줄 필요가 없다. 그런데 돈은 곽종군 통장으로 들어가니, 혹시 오해할까 봐 일부러 주 선생을 보내 해명하게 한 것이었다.

돈 문제인 만큼 주 선생은 일부러 비어 있는 방을 골라 들어가 문을 닫았다.

“우리 병원은 지금 3급 병원 비용 제도를 따르고 있어. 수술비는 물가관리국에서 제정하는 거고 멋대로 바꿀 수 없지. 바뀐 의료 규정에 따라 50% 지급돼. 즉, 의료 종사자는 수술비에서 50%를 가져가는 거지. 다른 병원에 비하면 두 배는 넘는 금액이야. 그리고 그걸 어떻게 분배할지는 과에 달렸지.”

주 선생은 능연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우리 과는 2:1로 재분배해. 그러니까 집도의가 2/3, 어시, 간호사, 마취의가 나머지 1/3. 사실 우리 병원 전체가 그런 식이지. 구체적으로 말하면 네가 오늘 한 수술은······.”

주 선생은 프린트해 온 리스트를 꺼내 들었다.

“굴근건 재생술을 했지, 번호는 331521014, 여기 보이지? 2급 병원 수술비는 1,210위안, 3급은 1,344위안. 우리는 3급이니까, 1,344위안이겠지? 또 손가락 하나 추가하면 210위안. 그래서 오늘 총합이 1,544위안. 응급 의학과에 1차 분배되는 금액이 777위안. 집도의는 거기서 2/3니까, 네가 받을 돈은 518위안. 알아들었어?”

“알아들었습니다.”

돈에 큰 관심 없는 능연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히히. 넌 이제 우리 병원 고수입자다. 연차 높은 주치의의 돈을 가져가니까 말이야.”

“직책마다 달라요?”

“당연히 다르지. 엄청 다르지. 엄격하게 규정대로 가자면 연차 낮은 레지던트는 1급 수술밖에 못 해. 조금 더 높은 레지던트가 2급 수술. 연차 낮은 주치의가 3급. 그 단계까지 가면 모든 걸 상급 의사 지도를 따라야 하지. 근데 넌 오늘 3급 수술을 했으니까, 집도의도 당연히 연차 높은 주치의로 기록되겠지?”

병원도 다른 사업과 마찬가지로 이중적인 기준이 있었다. 말이 엄격한 규정이지 따지고 보면 원래 따라야 하는 규정이다. 엄격한 규정이라고 표현하는 규정엔 합동 진료 제도, 개별 활동 금지, 청탁 금지 등이 있었다. 능연은 느릿느릿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레지던트가 수술 한 번 하면 수술비는 고작 100위안 정도야. 적으면 7,80? 데브리망은 하루에 서너 건 해도 다 해서 100위안 정도지. 어시도 마찬가지야. 너희 팀 연문빈 봐라, 남은 259위안에서 또 나누면······ 한 150위안 받으려나? 나머지 100위안 정도로 간호사 두 명, 마취의 하나. 그러니까 의사는 참······ 박봉이야.”

“그럼 하루에 수술 세 번 하면 여 선배가 500위안 받고, 그럼 한 달에 만5천 위안?”

“야, 이 미친놈아. 한 달에 20번 수술도 많고, 30번이면 쓰러져 죽어. 그런데 90번이라니······.”

능연의 눈빛이 명확하게 이상해지자 주 선생의 목소리가 점점 기어들어 갔다.

능연의 뇌리엔 시스템 제시어가 뜨고 있었다.

- 퀘스트: 탕 법 수련

- 퀘스트 내용: 달마다 탕 수술 10건 완성을 퀘스트 한 번 달성한 것으로 간주함

- 퀘스트 보상: 초급 보물 상자

“능연, 이리 와서 케이스 좀 보고 골라 봐.”

곽종군이 소문을 낸 이래, 탕 법으로 굴근건 파열 수술을 받으려는 사람들의 정보가 사방에서 몰려들었다. 그중 일부는 각지 병원에서 보냈고, 일부는 제약 회사 영업부서에서, 그리고 그의 옛 동료, 부하, 옛 전우들이 보낸 소식도 있었다.

의사들이 새로운 기술 혹은 논문을 발표하면 환자가 많이 필요했는데, 그럴 때 인맥이 아주 중요해진다. 곽종군이 보름 전쯤에 소식을 퍼트렸으니, 한창 피드백이 올 시기였다. 그의 책상 위에 쌓인 케이스만 해도 벌써 일곱 건이었다. 그중 다섯 건은 최근에 다친 환자였고, 두 건은 예전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환자였다.

능연은 오래된 환자 파일을 한쪽에 밀어놓고 다섯 케이스를 우선 읽었다.

“다 하죠. 최대한 빨리 오라고 해주세요.”

능연의 말에 곽종군은 일단 멈칫하고는 곧 입을 쩍 벌렸다.

“환자가 없을까 봐 걱정할 필요 없네. 일단 그날, 그날 환자부터 고르고 차근차근히 하자고. 내가 탕 봉합법은 잘 몰라도, 한 번에 하나씩 하는 게 유리하지 않겠나?”

그가 명령이 아닌 상의하는 말투로 이야기하는 것도 능연이 잘 해왔기 때문이다. 전날 봉합한 환자는 24시간이 지나자마자 바로 피동 운동을 시작했는데 모든 기능이 정상 기준에 달해서 수부외과 주임 왕해양도 놀랐다.

능연이 한 세 건의 탕 봉합술이 모두 성공한 셈이었고, 게다가 회복 상태도 좋았다. 맨 처음 수술했던 마문화는 다른 외상 때문에 아직 입원 중이었지만, 탕 봉합만 따지면 일반 6주 표준을 달성해서 집에서 재활해도 될 수준이었다. 이는 병원 측이든 의사 측이든 성공적인 첫 발자국이라고 봐도 될 만한 성과였다.

능연도 바로 그런 이유로, 자신이 지금 마스터급 탕 봉합술을 완벽하게 터득했다고 자신했고, 퀘스트도 받았으니 멍하니 기다릴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므로 그는 곽종군과 완전히 다른 결론을 내렸다.

“환자를 쌓아둘 생각은 없습니다. 오늘 이 다섯 환자를 모두 준비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허허 웃던 곽종군은 능연이 농담을 즐기는 스타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떠올리고 웃음을 거뒀다.

“하루에 다섯 명은 말도 안 되고. 하루에 하나씩 하자고. 좀 더 숙련된 다음에 하지.”

곽종군은 그가 수술실에 있을 때만 해도 격일, 혹은 사흘에 한 번씩 수술을 배정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하루에 하나로 좁혀준 것도 능연이 수술을 아주 잘해냈기 때문이다.

병원은 매우 냉혹하고 능력을 따지는 곳이라 천부적 재능이 있는 의사는 더 쉽게 기회를 잡고, 더 많이 이해받는 것이 현실이었다.

“할 수 있습니다.”

능연은 고집을 부렸다. 열흘에 고작 수술 10건을 한다면, 한 달 내내 해도 스태미너 포션 3개밖에 얻을 수 없었다.

“혹시 돈이 필요하다면 내가 방법을 찾아보겠네.”

곽종군은 능연이 고집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다가 문득 떠오른 듯 그렇게 말했다. 수술 한 번에 5백 위안, 다섯 번 하면 2천 5백 위안. 능연이 돈의 노예가 된 건 아닌지 걱정스럽기도 했다. 하루에 2천 5백 벌기가 어디 쉬운 일이란 말인가.

“돈 때문이 아닙니다.”

“수술비 벌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고?”

“아닙니다.”

곽종군이 능연의 눈을 똑바로 보고 물었지만, 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온종일 병원에 흰 가운 입은 채 있고, 샤워실도 있는 데다 열정적인 간호사들이 보낸 음식과 과일도 있는데, 돈이 왜 필요하단 말인가. 그가 유일하게 돈 쓰는 곳은 답례 선물을 살 때뿐이었다.

“지금 자네에게 중요한 건 기술 연마지 돈이 아닐세. 그리고 다른 건 더 생각해선 안 되고.”

곽종군이 고심한 말투로 말했다.

“기술 연마하려면 수술을 많이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묻는 능연의 말에 곽종군이 입을 뻐끔거렸다. 기술 연마를 위해서라면 영상을 보거나 책을 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다 같은 현역 의사인데 그렇게 거짓말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우선 두 사람을 고르게. 하나 먼저 하고, 자네 상황을 본 다음 괜찮을 것 같으면 자네에게 맡기고 아니면 수부외과로 보내겠네.”

곽종군의 책략은 간단했다. 우선 두 명을 골라놓고, 탕 봉합에 가장 적합한 환자를 능연에게 시키고 나머지는 수부외과 왕해양 주임에게 보내거나, 아니면 그의 진료팀 누구에게 맡기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능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탕 봉합은 3급 수술인 만큼 환자의 상황에 따라 걸리는 시간도 다르다. 그러니 우선 하루에 두 건을 시도해보는 것은 나쁘지 않은 선택이리라.

능연이 환자를 고르자 곽종군은 사전에 왕해양에게 연락해서 사정을 설명했다. 그는 두 번째 환자는 바로 왕해양에게 넘길 생각이었다.

능연은 병례를 뒤적이면서 진지하게 두 사람을 골라 곽종군에게 넘겼다. 의사는 만능이 아니고, 탕 법도 만능이 아니었다. 탕 법 수술받기 적합한 환자를 고르는 일이 능연이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곽종군은 능연이 고른 병례를 한 번 보고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 고르라고 했어도 그 두 사람을 골랐으리라. 두 환자 모두 서른이 안 된 공장 직원이었고 하나는 열상, 하나는 찰상이었는데 모두 전형적인 케이스였다. 게다가 젊고 건강하니 회복도 빠를 테고 만족스러운 효과를 보겠지.

환자를 고른 능연은 자료를 가지고 나가서 자세히 읽으면서 구체적인 수술 방안을 구상했다. 그와 동시에 두 곳의 구급 센터는 전화를 받고 운화 병원으로 달려왔다.

두 시간 뒤, 능연이 수술실에 나타났다. 곽종군은 한 시간 더 늦게, 새 수술복을 입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능연의 실력이 탄탄하니, 슬슬 고삐를 느슨하게 쥐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마취의 소가복은 목이 빠지라 기다리던 곽종군이 나타나자 쪼르륵 달려가 굽실대면서 간호사에게 특별히 부탁해 받은 의자를 바쳤다. 곽종군은 의자에 바로 앉지 않고 의아한 듯 소가복을 힐끔 쳐다봤다.

좀 전에 두 시간짜리 회의하느라고 좀이 다 쑤실 정도였다. 그 사정을 모르는 소가복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의자 두 개를 밀면서 구석으로 돌아갔다. 그는 혹시라도 순회 간호사가 들어왔다가 빈 의자를 보고 화를 낼까 봐 계속 수술실 입구를 힐끔거렸다.

“다 했습니다.”

능연은 가위로 봉합사를 자르면서 고개를 돌려 곽종군을 바라봤다.

“두 번째 환자 도착했습니까?”

“오긴 왔네만······.”

곽종군은 머뭇거리면서 고개를 숙여 일단 환자를 검사했다.

30분 후, 능연은 다른 수술실에서 메스를 들었다.

이번 환자의 상태가 조금 더 복잡했기에 수술은 두 시간 동안 이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수술을 마쳤을 때는 딱 오후 근무가 시작될 시간이었다.

의국으로 돌아간 능연은 묵묵히 곽종군을 바라봤다.

1분.

2분.

3분······.

따가운 시선에 두피가 다 저릿해진 곽종군은 털이 부드럽고, 거대한, 눈빛이 형형하고 끝내주게 잘생긴 사냥개가 노리는, 늙은 흰 토끼가 된 기분이었다.

“그렇게 할 일이 없으면 가서 좀 쉬게. 내일은 굴근건 파열 환자 세 명 준비하겠네.”

곽종군이 위엄을 부리며 그렇게 말했다.

연문빈은 이러다 죽는 게 아닌가 싶었다.

어제 환자 두 명의 차트를 작성하느라 수술이 끝나자마자 빈칸 채우기 놀이를 하다가 밤 9시에 겨우 퇴근했다. 2만 자가 넘는 차트에 환자 두 명의 병력을 상세하게 묘사하는 것은 3년 동안 차트를 써온 연문빈에게도 도전이었다.

생각해보면, 방학 숙제를 하루 만에 몰아서 베낄 능력이 없던 어린아이는 의사가 될 재목이 아니었다. 집안이 병원을 운영하면 모르겠지만.

사실 차트만 쓰는 거라면 연문빈도 불평하지 않았을 것이다. 병원이란 원래 힘든 일이고 레지던트가 하루에 1만 자를 쓰는 것은 흔한 일이니까. 탕 봉합법 병력은 참고본이 없어서 쓰기 조금 더 어렵다고 해도 말이다.

그러나 아침에 작업이 시작될 즈음, 연문빈의 아주 조금 남은 의지력조차 깨끗하게 사라졌다.

7시, 병원 도착. 환자 회진.

8시, 탕 봉합 수술을 받을 다섯 환자 차트 외우기.

8시 반, 신이 난 곽주임의 회진팀 합류, 각종 질문과 답변 진행. (좋은 쪽으로 생각하자면 주임이 탕 법 환자를 중시한다는 것)

9시, 수술실 합류. 순회 간호사와 각종 수술 전 준비.

탕 법은 응급 의학과에서는 아직 어색한 수술 방법이었다. 순회 간호사가 탕 법에 필요한 도구들을 외울 리도 없고 능연과 곽종군의 수술대 습관도 마찬가지였다. 그 모든 것은 연문빈의 책임이었다. 수술 중에 간호사가 도구를 찾느라 허둥댄다면 상급 의사가 불호령을 칠지도 모른다.

연문빈은 능연이 성질을 내는 것을 본 적은 없지만, 그 모습을 절대 보고 싶지 않았다. 능연은 안 그래도 진지한 성격이었다. 외과 의사가 수술대에 오르면 개새끼 지수가 3급은 오르는 원칙에 근거해서, 연문빈은 차라리 수고를 좀 더 하는 걸 선택했다.

그리고 9시 반, 드디어 소원 성취.

창평구에서 트랜스된 야간작업 인부 수술로 연문빈은 60분 동안 훅맨을 하고, 수술실 청소를 돕느라 15분 더 보냈다. 그리고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감옥에서 보내온 환자를 맞았다. 떨어져서 다친 환자란다.

시간이 오래 지체된 바람에 근건 좌상이 심각해졌고, 능연은 80분이나 걸려서 파멸된 손가락을 꿰맸다. 훅맨을 끝낸 연문빈은 수술실을 청소하다가 세 번째 환자가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연문빈은 멘붕 상태가 되었다.

시계를 힐끔 보니 벌써 오후 1시가 지났다. 6시간 동안 쌀 한 톨 물 한 모금 먹고 마시지 못한 것은 둘째 치고, 아침에 먹은 죽을 내보낼 시간도 없었다.

연문빈은 수술실 청소할 정신도 없었다.

“간호사님, 저 화장실 좀······.”

“혼자 하라고요?”

올해 42살인 응급 의학과 순회 간호사 우간은 지식, 힘 그리고 밤샘으로 무장한 완벽한 버전의 사나운 여자였다. 손에 묻힌 피가 특수 부대 군인보다 많은 그가 연문빈이 도망가게 두지 않았다. 그녀는 바로 수술 물품을 연문빈에게 안겼다.

“두 주임 수술 준비도 해야 합니다. 선생님이 가시면 저도 몰라요.”

연문빈은 털어놓을 수 없는 고충이 이어졌다. 배설 문제는 입에 올리면 갑문(閘門)을 여는 것과 마찬가지라 생각하는 힘이 방수하는 힘보다······.

하지만 간호사님의 엄숙한 표정에 연문빈은 참기로 했다.

수술실로 돌아가지 않아도 그만이었다. 하지만, 레지던트인 그는 나이든 간호사에게 밉보였다가 어떤 결과를 맞이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수감된 범죄자가 간수에게 밉보이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다행히 간호사님이 그를 정말로 비뇨기과에 보낼 생각은 아니어서 몇 분 동안 이어진 실랑이 끝에 대사면을 내려주었다.

“급하면 다녀오세요. 다음엔 기저귀를 입든지 알아서 하시고요. 오늘 수술 두 건으로 200위안 넘게 벌었잖아요. 돈 아껴서 어디다 쓰려고요.”

연문빈은 말대꾸할 새도 없이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1시 반이 되어 겨우 식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운화 병원 응급실엔 진료팀이 모두 다섯 팀이 있고 수많은 실습생과 연수의가 있어서 구내식당도 제법 괜찮았다.

연문빈이 닭다리를 먹을까 소고기를 먹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곽종군의 위엄 있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급할 것 없네. 트랜스가 다 그렇지. 30분, 1시간 지체되는 거야 뭐 자연스러운 일이지. 시내로 들어오면 차도 막힐 텐데 말이야.”

그리고 ‘비는 시간에 수술 한 번 더 하자’고 말하는 능연의 목소리도 들렸다.

“어이쿠. 자네 진짜, 수술병이 나 젊을 때보다 심하구만. 나도 한때는 그랬지. 하루에 수술을 다섯 번 하고 말이야. 끝내고 나면 힘들긴 해도 어찌나 통쾌하던지 말이야. 하하하.”

곽종군이 털이 긴 동물 소리를 내며 크게 웃자 연문빈은 소름이 돋았다.

“그럼 저도 내일 다섯 건 해도 되나요?”

능연의 대답이 연문빈의 귀에 꽂혔다.

“너무 많아. 젊음을 너무 믿지 말게. 두 번은 아무것도 아닌 거 같아도 세 번, 네 번은 또 다르다네. 다섯 번 하고 나면, 머리가 텅 비지.”

곽종군의 웃음소리는 여전히 소름이 끼쳤다. 연문빈은 식당 문손잡이를 잡고 밀고 나갈까 말까 갈등했다. 그때, 능연의 침착한 목소리가 느릿느릿 들려왔다.

“낮에 다 못하면 밤에 하면 되죠.”

연문빈은 단호하게 문을 열고 나가면서 속으로 울부짖었다.

‘능 선생. 능르신. 너는 간이 좋지만, 난 아니라고. 나 되게 힘들게 대학 붙었거든. 툭 하면 밤새우고 하면서. 의대는 더 힘들었고, 실습생은 더, 더 힘들었어. 내가 겉보기에 25살 같아도, 간 나이는 45살이라고······.’

연문빈은 어떻게 하면 능연을 설득할 수 있을지, 아는 단어를 모두 조합하고 모든 지혜를 동원했다.

그때 맞은 유리문과 입원 병동 정면의 측문이 동시에 열렸다.

“아이쿠, 능 선생. 마침 여기 있었네. 곽 주임님도 계셨네요.”

훈련의 마연린이 이상할 정도로 찬란하게 웃었다.

“능 선생님, 능 선생님! 아, 곽 주임님.”

올해 겨우 17살인 실습 간호사 정어함이 포니테일을 예쁘게 묶고 청춘을 발산했다.

고개를 돌려 두 사람을 바라본 능연이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곽주임은 ‘음’ 하고 대답하면서 위엄을 과시했다.

“저기, 능 선생님. 과일 좀 가지고 왔어요. 이따 입가심으로 드세요.”

정어함이 입을 오물거리면서 신경 써서 사 온 예쁜 바구니를 내려놓았다. 바구니 밑에 새빨간 복숭아가 하나 있고 중간에 비파, 대추, 금귤 그리고 용안 한 무더기가 그 사이사이에 있었다.

바구니를 내려놓은 정어함은 능연을 향해 생긋 웃어 보이고는 다람쥐처럼 뽀르르 도망갔다. 곽종군과 능연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인턴 마연린 쪽으로 돌아갔다.

“그게, 고향 특산물을 좀 가지고 왔거든요. 나눠 먹으려고.”

압박감을 느낀 마연린이 떠듬떠듬 말을 이으면서 재빨리 손에 든 종이봉투를 내려놓고 안에서······ 말린 생선 두 마리를 꺼냈다.

진공 포장된.

비교적 큰 생선은 눈이 볼록했다.

비교적 작은 생선도 눈이 볼록했다.

슬쩍 뒤적거린 곽종군이 능연을 바라보자 능연은 어떻게 먹는 거냐고 물었다.

“간장에 졸이면 돼. 땅콩도 넣어도 되고. 아니면 가지랑 같이 졸여도 되고. 두부도 되고, 콩도 되고. 삼겹살이랑 같이 졸이면 더 맛있지.”

“바라는 게 뭔데요?”

능연은 중간 과정을 생략하기로 했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그러자 마연린은 잠시 멍해졌다가 얼굴을 붉혔다. 곽종군 앞이라 어쩐지 부자연스러웠다. 그러나 잠시 망설이던 마연린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어시로 받아 줄 수 있을까? 탕 수술방에 들어가고 싶어.”

능연의 탕 수술이 어떤지, 응급 의학과 의사들은 똑똑히 봤다. 주치의와 레지던트들은 배우고 싶어도 체면 문제가 있었지만 마연린은 개의치 않았다. 그는 수부외과 인턴이었고 응급 의학과에서 두 달 머물면 바로 다른 과로 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배워둔 기술은 내 것이 되리라 생각했다.

말을 꺼내고 나니 마음이 가벼워진 마연린은 아까보다는 쉽게 말을 이었다.

“며칠 전에 네가 했던 탕 봉합 영상 봤거든. 나 어시 잘할 수 있어. 탕 수술은 시간도 길잖아. 그러다가 연 선생님 힘들어 죽겠다.”

“아니, 전혀!”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연문빈이 성큼성큼 능연 앞으로 다가가 마연린을 바라봤다.

“죽기 전에 내가 전화할게. 네 그 말린 생선······.”

연문빈은 이야기를 하면서 곁눈으로 능연을 힐끔 보고는 뭔가 느낀 것처럼 말을 멈췄다. 그는 헛기침을 하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말린 생선은 내가 가지고 가서 족발이랑 같이 졸일게.”

그리고 능연을 향해 싱긋 웃어 보였다.

“말린 생선이랑 같이 졸이면 족발이 더 탱탱하고 부드러워져. 씹는 맛이 좋아지거든.”

연문빈은 냄비 가득 족발을 졸여서 점심쯤 수술실 휴게실에 가지고 갔다.

병원 수술실 자체는 청결한 환경이지만, 수술실 주변에 대한 요구는 그렇게 엄격하지 않았다. 사실 엄격하게 굴 수도 없었다. 예를 들어 가까운 곳에 있는 소독 센터 일회용 용품 창고에 소독액이 수백 상자 쌓여 있었다. 일회용 장갑, 마스크, 각종 플라스틱 비닐 그리고 의료 기기까지.

박스는 보통 택배 기사가 나르는데, 들어올 때마다 샤워하고 들어오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니 수술실 밖에 사무실, 탈의실과 휴게실을 배치하는 것도 당연했다.

연문빈이 졸인 족발 냄새가 향긋하게 퍼졌다. 순식간에 각 수술실에서 나온 의사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아침부터 아무것도 못 먹었어.”

“난 어제부터.”

“난 밥을 먹은 적이 없다.”

사람들은 ‘체면’을 차리면서 족발을 들고 뜯었다. 능연도 가장 토실한 족발 하나를 골라, 장갑을 낀 손으로 먹기 시작했다.

“족발은 능 선생이 사고 내가 졸였지. 오래 졸인 국물로 계속 졸인 거라 안전하고 맛있어.”

“네가 국물을 직접 졸인 거야? 계속 보존하고?”

수술 참관 명의로 수술실 휴게실에 온 주 선생이 저도 모르게 연문빈을 힐끔 봤다.

“사실 간단해요. 한 번 졸였던 국물에 남은 고기 찌꺼기를 잘 골라내고 거름망으로 또 한 번 거른 다음에 나머지는 냉장고에 넣어 보관했다가 며칠 뒤에 다시 고기 넣고 끓이면 맛이 더 깊어지죠. 이 국물로 닭을 졸여도 맛있고요. 돼지갈비, 버섯 등등.”

“그럼 다음에 버섯 좀 졸여 봐. 버섯 좋잖아. 웰빙이고. 오후에 와서 돈 가져가. 매번 능연더러 돈 내라고 할 수 없잖아.”

주 선생이 다리를 두드리며 그렇게 말했다.

“난 닭!”

“돼지 허벅지!”

“닭 날개나 닭발도 좀 졸여 봐. 맞다, 닭 꼬치도 살 수 있나?”

“오리 날개도.”

너도나도 한마디씩 보태는 모습에 연문빈은 멍해졌다.

“야, 잘 적어 놔. 헷갈리지 말고.”

곁에 있던 정배도 한마디 거들었다.

“기억했어. 주 선생님은 버섯, 황 선생님은 닭, 유 선생님은 돼지 허벅지, 호 선생은 닭발, 닭 날개, 전 선생은 오리 날개.”

연문빈은 속으로 자기를 욕하면서 주절주절 읊었다.

“조림 모임 하나 만들자. 재료는 네가 사고 사진 찍어서 보내면 각자 돈 내면 되잖아.”

주 선생이 싱긋 웃으며 바로 정해 버리자 연문빈은 신이 나서 바로 핸드폰을 꺼냈다.

실습생 생활을 마치고 막 본과로 돌아와서 과실 분위기에 적응할 필요가 있던 참에, 조림 모임의 조림 선생이라는 모양새로 융합된 것은 썩 완벽하지 않아도 받아들일 만했다.

“능 선생. 너는?”

위챗 모임을 만든 연문빈이 특별히 능연에게 물었다. 사실상 능연은 요즘 그의 상급 의사나 마찬가지였다.

“족발이요.”

“아······. 응. 근데 다른 건 괜찮아? 어차피 졸일 건데, 만날 족발만 먹으면 질리지 않겠어?”

한결같은 능연의 입맛에 연문빈은 혹시 몰라서 한 번 더 확인했다.

“아뇨.”

능연의 눈빛은 진지했다. 그는 족발을 다 먹고 손을 깨끗이 씻은 다음 수술실로 돌아가 병상에 있는 환자의 손을 관찰했다.

“준비됐습니까?”

그가 손을 쳐들고 묻자 소가복은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꽤 안정적인 상태야.”

“바로 시트 준비할 수 있습니다.”

왕 간호사도 그렇게 대답하고는 이번 환자는 손가락 세 개를 꿰매야 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겠냐고 물었다.

“자세한 건 시작해 봐야 압니다. 왜 그러는데요?”

“다음 환자도 있다고 들어서요.”

“네, 오늘은 네 건이에요.”

능연이 입술을 핥자 상쾌한 느낌이 났다. 그 동작을 본 왕가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능 선생님. 요 며칠 계속 선생님 수술방에 들어왔잖아요. 어제 연달아 세 건 하고, 오늘도 아침에만 두 건. 조금 힘드네요. 다음 수술은 다른 사람한테 넘겨도 될까요?”

“응? 당연하죠.”

능연은 왕 간호사를 이해할 수 있었다. 간호사의 작업 스트레스는 의사보다 크지 않아도, 작업량은 적지 않다. 특히 스크럽 간호사는 온 정신을 다 집중해야 하므로 체력과 정신력 모두 만만치 않았다.

“새로 올 간호사는 탕 법이 아직 익숙하지 않으니까, 조금 천천히 하셔야 해요. 저랑 한 팀일 때처럼 그렇게 빨리하지 말고요.”

“알겠습니다. 좀 천천히 해볼게요.”

왕가가 뼈 있는 소리를 해도 능연은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크서클 좀 지우고, 팩 좀 하고 화장하고 다시 와야지.’

거기까지 생각한 왕가는 부드러운 말투로 다시 말을 꺼냈다.

“선생님은 힘들지도 않으세요? 수술하다가 졸면 안 돼요.”

“수술하면서 어떻게 졸아요.”

능연이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에게 수술실은 사람을 흥분하게 하는 멋진 공간이었다. 하지만 체력 분배 문제를 생각하면서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번 수술은 최대한 앉아서 해야겠네요.”

그러곤 비어 있는 둥근 의자를 당겨 털썩 주저앉아서 높이를 조절했다.

그 근처에서 마취약을 검사하던 소가복은 어이없어했다.

‘의자 하나 더 신청해서 다행이지. 그리고 대장도 안 왔고 말이야.’

그는 고개를 저으며 이것만 입력하고 저 구석에 있는 의자를 가지고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바로 그때, 능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연 선생님, 안 힘들어요? 의자 가지고 와서 앉으시지 그래요.”

멈칫한 소가복은 연문빈이 손을 치켜들고 발끝으로 의자를 조금씩, 조금씩, 조금씩, 수술대 앞으로 끌고 가는 걸 눈 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 미친 외과 의사놈들아. 수술실에서 의자를 찾아? 의자가 수술대 밑에서 자라는 버섯이냐?’

소가복은 어이없어서 웃음이 터질 지경이었다.

손가락 세 개를 다친 환자 탕 봉합 수술은 손가락 하나를 다친 환자 세 명보다 훨씬 힘들다. 선택할 수 있으면 능연은 당연히 손가락 하나 다친 환자 세 명을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자신에게는 선택의 기회가 없었다.

하루에 탕 봉합 네 건을 했다면 기본적으로 운화 주변 단순 굴근건 손상 환자를 싹 쓸어버린 것이었다. 운화 시는 백만 산업 대군이 있는 도시지만, 광주나 동관 같은 곳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후자는 전성기에 사립 수부외과 한 곳에서 하룻밤에 손가락 이식을 열 건 한다. 사실 사립 수부외과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발전된 도시인지 알 수 있었다.

현지 병원 야간 손가락 이식 수술 수만 봐도 그곳의 공장의 높은 가동률, 낮은 생산비, 높은 수익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번 수술을 어쩌면 4, 5시간 지속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능연은 주저하지 않고 스태미너 포션을 마셨다.

고작 24살인 이번 환자는 여자 친구도 없이 동료들과 같이 병원에 왔다. 앞으로도 손을 오래 써야 하니, 최대한 잘 봉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의과 의사는 신이 아니고 봉합은 유합의 기본일 뿐 재활이 중요하고, 예상치 못한 결과를 운에 맡겨야 하는 때도 많다.

스태미너 포션을 막 마셔서 최상의 컨디션일 때 능연은 우선 검지 근건을 봉합했다. 중지와 약지보다 검지가 손가락 기능에 더 영향을 주므로 최대한 그 기능을 살리려 노력했다.

항상 세심한 능연은 오늘도 마찬가지였고, 오늘 세 번째 수술이라거나 연달아 손가락 세 개를 꿰매야 한다고 해서 느슨해지지 않았다. 그는 의자에 앉아 서서 할 때보다 편안함을 느끼면서 정신을 집중하고 봉합했다. 그러나 연문빈은 그 반대였다.

수술 과정에서 집도의는 수술을 조작하기 가장 좋은 위치에 서는 의사였다. 특히 현미경으로 하는 작업, 즉 집도의가 거의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좁은 범위 안에서 하는 수술에서는 더 그랬다.

그에 비하면 연문빈은 쉴 새 없이 움직여야만 했다. 매듭지을 때, 능연이 선을 왼쪽으로 보내면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보내면 오른쪽으로 가야 했다. 소독액을 뿌리거나, 식염수 매트를 깔거나 하는 작업도 집도의를 피해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해야 했다.

다 같이 서서 할 때는 연문빈도 좌우로 움직일 때 크게 힘들지 않았는데, 앉아서 작업하기 좋도록 높이가 낮아지니 움직여야 할 땐 계속 허리를 수그려야 했다. 한두 번이면 몰라도 수술이 몇 시간 이어지다 보니 허리가 부러질 것 같았다.

한 시간, 두 시간, 능연이 손가락 세 개를 모두 꿰매고 나면 저녁 식사 시간쯤 될 것이다.

능연이 마신 스태미너 포션의 효과는 여전했고, 그는 가위를 던지고 마지막 검사를 마친 후 활기찬 모습으로 다음 환자가 도착했는지 물었다.

“막 고속도로에서 내렸대요. 마침 퇴근 시간이라 차가 막히나 봐요. 아직 한 시간은 걸릴 거 같아요.”

간호사는 전화로 확인하고 돌아오면서 하품을 참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본 연문빈은 더 크게 하품했다. 당장에라도 바닥에 누워 한숨 자고 싶은 기분이었다.

“너무 힘들면 가서 쉬세요. 이 상태로는 다음 수술 못 해요.”

걸음을 비틀거리는 연문빈을 향해 능연이 말했다. 연문빈은 속으로 하하 웃었다. 온종일 수술하고 정신이 멀쩡한 정상인이 어디 있을까. 못하는 게 정상 아니야?

“그럼 휴게실에서 한숨 자고 올게.”

연문빈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수술실 정리하고 나서‘라고 덧붙였다.

“제가 치울게요. 어서 가서 쉬세요. 알람 맞춰놓으시고 이따······ 8시까지 수술실에 오세요.”

시계를 힐끔 보고 덧붙인 능연의 말에 연문빈은 냉큼 알았다고 대답했다. 사양하고 싶어도 그럴 처지가 못 됐다. 그는 굳은 다리를 끌고 일선 의사 휴게실로 돌아가 빈 침대에 몸도 다 눕히지 못하고 그대로 코를 골기 시작했다.

능연이 수술실 청소를 시작하기도 전에 우 간호사는 그를 내쫓았다.

“온종일 수술하고 죽을 것 같이 힘들 텐데, 이런 잡일 하지 말고 어서 가서 쉬세요.”

나무라는 말투로 말한 우 간호사는 인턴 하나를 붙잡고 돌아와 재빨리 수술실 정리를 끝냈다.

능연은 옷 갈아입을 생각도 없어서 바로 수술실 옆에 있는 휴게실로 들어갔다. 의국 휴게실과 달리 수술실 옆에 있는 휴게실에는 침대는 없고 의자만 있었다. 능연은 자연스럽게 핸드폰을 꺼내 들고 게임을 열었다.

“안 피곤해?”

구석에 틀어박혀 있던 주 선생이 의아한 듯 물었다.

“네.”

능연은 안 피곤한 정도가 아니라 힘이 남아돌았다.

“젊음이 좋긴 좋구나. 젊었을 땐 나도 그랬지. 당직 선 다음에도 공을 찼어. 지금은 안 돼.”

핸드폰을 들고 이리저리 만지는 능연을 보고 주 선생이 부러운 듯 말했다.

“당직 설 때 주무시잖아요.”

“가끔이지. 일어나야 할 때도 많아.”

핸드폰 액정을 응시하면서 미심쩍어하는 능연의 말에 주 선생은 껄껄 웃으면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휴게실의 분위기가 다시 느긋해졌다.

저녁 8시 40분, 환자가 도착했고 훈련의 마연린이 수술실에 제일 먼저 달려갔다.

작은 마을에 사는 마연린은 젊고 말주변이 좋아서 간호사들을 보면 누님, 누님 부르면서 말린 생선, 생선포, 생선 젓갈 같은 걸 나눠줬다. 그 덕에 그는 응급 의학과 사람들과 아주 빨리 친해졌고, 그래서 능연 다음으로 수술 콜을 많이 받았다.

그는 순회 간호사와 환자 이름, 성별, 침상 번호를 확인하고 알레르기를 확인한 다음 마취과 간호사를 도와 기기를 끌고 오고 파이프를 바꿨다. 그래서 능연이 올 때까지 아무도 연문빈을 불러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능연은 고개를 숙이고 환자를 살핀 다음, 수술 준비가 모두 끝났고 수술 인원도 다 도착했음을 확인했다.

“먼저 수술 시작하고 연 선생님한테 전화 걸죠.”

“내가 전화했었어. 피곤해서 미치더라고.”

마연린은 잠시 주저하다가 일단 자기가 하겠다고 덧붙였다. 연문빈이 피곤하기는 하겠다는 생각에 능연도 더는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펜.”

기구 간호사가 바로 사인펜을 건넸고 능연이 바로 허리를 숙여 선을 그렸다. 네 번째 환자는 200킬로 밖 저수지에서 왔다. 멀리서 왔지만 증상은 간단했다. 단일 손가락 굴근건 파열이라 어려울 것이 하나도 없었다.

행복하고 감격한 마연린은 처음으로 낙하산에서 뛰어내리는 병사처럼 몇 번이고 그 과정을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비행기에 있으니 계속 오줌이 마려웠다.

“메스.”

능연은 낮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들어 모니터를 살피면서 각종 수치가 정상인지 확인했다. 소가복은 모니터 아래에서 왼쪽 무릎으로 둥근 의자 하나, 오른쪽 무릎으로 둥근 의자 하나를 각각 누르고 꿇어앉아 있었다.

능연은 전문가급 핑거팁 그립으로 메스를 날렵하게 놀려 안정적이고 균일하게 칼자국을 냈다. 그의 눈빛에는 자신감과 웃음기가 가득했다.

‘탕 봉합법 연마’ 퀘스트를 받은 이래 열 번째 수술이었다. 초급 보물 상자에서 대부분 스태미너 포션이 나오지만, 탕 법 봉합 자체도 초급 보물 상자에서 나온 단일 스킬북으로 얻은 것이다. 확률을 분석해보면, 앞으로 좋은 걸 얻을 수 있다는 기대를 해도 좋았다.

특히 지금 능연으로서는 단순한 수술 방법이 기초 의학이나 임상 의학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기술보다 유용했다.

“저 왔습니다.”

수술이 시작된 지 30분 후에 수술복을 갈아입은 연문빈이 다급하게 수술실에 들어 왔다.

“다 끝나가요.”

능연은 고개도 들지 않고 한 손으로 재빨리 매듭을 묶었다. 연문빈은 행복함으로 미소 짓는 마연린을 쳐다보며 마음속으로 고함쳤다.

‘몇 분 더 잤다고, 그새 다른 어시를 부르냐?’

운화의 밤은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에 뒤덮였다.

밤 9시, 운화 병원 응급 병동에서 위를 올려다보면, 눈부신 형형색색 간판과 광고가 보였고 아래에선 경적만 들렸다.

아직 한창때인 어린 간호사 몇 명이 두려운 듯 길고 어두운 복도를 걸어가서 비품을 찾아내자마자 바로 뛰기 시작했다. 그들은 수술실이 가까워지자 겨우 속도를 줄이고 입을 가리고 웃으면서 주변을 살폈다. 그 모습이 꼭 선임 간호사에게 쫓기는 작은 동물들 같았다.

“능 선생님 아직 수술하시네. 정말 열심히 하신다.”

맨 앞에선 간호사가 목을 빼고 수술실 안을 들여다봤다.

“아침부터 계속하고 있어.”

“나도 좀 보자.”

세 번째 간호사가 두 간호사 사이를 뚫고 들어가 수술실 둥근 유리를 통해 안에 있는 능연을 바라봤다.

“뒷모습도 잘생겼네.”

“온종일 꼿꼿이 서 있어서 그래. 연습한 거 아닐까?”

“온종일 저렇게 서 있다니. 허리가 좋은가 봐.”

“그러게. 능 선생님 계속 저렇게 서 있던데.”

간호사들의 얼굴이 갑자기 붉어졌다. 그들은 한참 깔깔거리며 수다를 떨다가 순회 간호사의 발걸음 소리가 복도 끝에서 들리자 우르르 흩어졌다.

“끝났습니다.”

능연은 착착 수술을 마치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루에 수술 네 번, 손가락 7개 봉합, 누구에게라도 힘든 일이었다. 간호사, 어시스턴트, 마취의들도 한숨 돌렸다.

탕 법 같은 큰 수술은 소량의 에피네프린을 심장에 끊임없이 주입하는 것 같은 압박감이 있었다. 수많은 간호사와 마취의가 작은 수술에 참여할 때는 자기만의 작은 습관이 있다. 간호사 시험 준비하는 어린 간호사는 이어폰을 끼고 영어를 듣거나, 마취의는 스포츠 경기를 보며 내기를 하거나 하는 그런 것들 말이다.

그러나 큰 수술일 때는 위급상황이 아니더라도 다들 조심하기 마련이었다.

능연은 목을 주무르며 막 얻은 초급 보물 상자를 열었다.

은빛이 번쩍이는 책 한 권이 공중에 떠올랐다.

스태미너 포션이 아냐? 아까 그럼 괜히 마셨는데.

능연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은색 책의 첫 페이지가 자동으로 넘어갔다.

- 단일 스킬북, 진단학 스킬 획득 : 신체 진찰(전문가급)

능연은 무심결에 볼을 만지면서 이하선(耳下腺. 귀밑 쪽 큰 침샘) 정상 상태를 바로 확인했다.

“능 선생, 수술실은 우리한테 맡기고 어서 가서 쉬어.”

마연린이 적극적으로 하는 말에 능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도 선수를 뺏긴 연문빈이 벌떡 일어났지만,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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