슥.
슥슥.
날이 막 밝자마자 정원에서 청소하는 소리가 들렸다.
능연은 몸을 뒤척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버지가 소파에서 주무셨나?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나셨지?’
2층에서 세수한 후, 옷을 갈아입고 나서 아래층으로 내려갔더니, 집 앞 도로가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었다. 심지어 길가에 있는 배수로도 물로 깨끗이 씻겨 있었다. 가까운 곳에 길쭉한 뒷모습이 열심히 청소를······.
‘응? 길쭉?’
능연은 요즘 점점 세탁기처럼 변하는 능결죽의 몸매를 애써 떠올리며 의아해했다. 머리가 이상해진 동네 주민이라도 있나?
“능 선생님. 안녕하세요.”
한창 청소하던 황무사가 문이 열리는 소리에 내심 한숨 돌리면서 인사했다. 능연이 조금 더 늦게 나왔다면 허리가 부러질 뻔했다고 생각하면서.
능연이 의아해하는 표정을 짓자 황무사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요우타오하고 또우장을 좀 사 왔는데, 좋아하실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다른 것도 좀 사서 문 앞에 뒀는데, 제가 가서 가지고 올게요.”
황무사는 빗자루를 짊어지고 잰걸음으로 달려가서 하구 진료소 대문 옆에 있던 대나무 바구니를 들어 올렸다. 그 안에는 골목 끝 가게에서 산 것 같은 아침 식사가 족히 5, 6인 분은 포장되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능연은 멍해져서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 황무사를 바라봤다. 선물을 자주 받긴 하지만, 이렇게 실용적이고 통 큰 선물은 드물었다. 일반적으로 여자들이 보낸 음식은 브랜드 품이라든가, 수입품이라든가, 특산물이라든가, 아니면 수제라든가, 아무튼 집 근처에서 파는 요우타오 물량 공세는 처음이었다. 남자는, 남자는 역시 선물 고르는 데 서툴렀다.
“회사를 대표해서 감사 인사하러 왔습니다. 뭐 도울 일 없나 해서 왔어요.”
황무사는 영업 커리큘럼에서 배운 내용을 돌이키며 조심스러운 말투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능연은 다소 미심쩍은 듯 그를 바라봤다. 그는 창서 제약 회사 영업 사원 황무사를 머리가 좀 이상한지 멍청하게 웃기만 했던 남자로 기억하고 있었다.
“능 선생님 덕분에 요즘 회사 매출이 늘었습니다. 주문은 곽 주임님이 했지만 사실 다 능 선생님 덕분이죠. 그래서 오늘 다른 일정이 없는 틈에 일부러 감사 인사를 전하려고 이렇게······.”
점점 제약 회사 영업 사원 업무에 적응해나가고 있는 황무사는 특히 여자 고객 앞에서 그윽한 미소를 짓는 법과 남자 고객 앞에서 경박하게 웃는 기교를 훌륭하게 터득했다.
런웨이를 걷을 때만큼 멋있지는 않아도 이제 젊음으로 밥 벌어먹는 것도 질렸고, 인간 존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싶은 황무사는 오히려 제약 회사 영업 일이 더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했다.
“정원 정말 잘 꾸미셨네요.”
황무사는 당황스러워 보이는 능연의 모습에 활짝 웃었다.
“아, 들어오세요. 저 안쪽에 앉으세요.”
능연은 그제야 예의 바르게 그를 정원 중간에 있는 돌 테이블 쪽으로 안내했다. 황무사는 빗자루를 문 옆쪽에 세워두고 바구니를 들고 들어가면서 몇 마디 칭찬을 늘어놓았다. 그는 음식을 테이블 위에 놓고 능결죽과 도평이 아래층으로 내려오는 걸 기다리는 동안 능가의 주방을 익히면서 우유를 데운 것도 모자라 계란 프라이까지 해서 나왔다.
주방에서 바삐 움직이는 황무사의 뒷모습을 보면서 도평 여사는 저절로 고민에 빠졌다.
“연이 때문에 우리 집에 와서 밥하고 그랬던 건 다 예쁜 여자애들 아니었나요? 사실 저번에 생선 손질하던 여자도 성격이 좀 강해서 그렇지 괜찮았는데······.”
“마누라, 무슨 생각하는 거요. 제약 회사 영업 사원이야. 우리 연이가 의사니까, 선물 보낸 거라고. 그거 아냐.”
“아니에요?”
“아니야. 왜 우리 진료소에도 가끔 제약 회사 영업 사원 오잖아요. 그 양반도 수액 들고 올 때마다 이것저것 도와주고 가잖아요.”
“당신 태도 마음에 안 들어.”
“응?”
도평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거 같아서 웃음을 참으며 이야기를 나누던 능결죽은 순간 당황해서 눈을 껌뻑였다.
“전 이제 병원 갑니다.”
능연은 손에 든 요우타오를 다 먹고 손을 툭툭 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능 선생님, 능 선생님! 병원 가서 계속 수술하실 거죠?”
“당연하죠.”
주방에서 국을 들고 나오던 황무사가 다급하게 불러 묻는 말에 능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깜빡했네요. 곽 주임님이 전해 달라고 하셨어요. 오늘은 병상이 꽉 차서 내일 수술하는 게 좋겠다고요. 내일 환자가 퇴원하면 침대가 비니까 그때 탕 봉합 수술 다시 해요.”
황무사는 집안일에 익숙한 모습으로 앞치마에 손을 닦았다.
“침대가 없다라······.”
단숨에 탕 봉합 수술을 13건이나 했는데 다들 아직 퇴원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즉, 응급 의학과 관찰병실에 있는 환자 절반이 능연의 환자였다. 응급 의학과엔 진료팀이 다섯 팀이 있으니, 지금쯤 침대에 환자를 늘리고 있으리라.
“수술방 하나 더 만드는 것도 주 원장님이 동의하셨어요. 있는 방에 침대랑 이런저런 기구 좀 들여서 연결하면 돼요. 오늘 아침에 이미 시작했으니까 며칠이면 될 겁니다.”
그런 업무들도 당연히 모두 창서 제약 회사에 맡겼다. 능연은 그런 건 전혀 상관없었는데, 병원에 가서 수술을 할 수 없다니 갑자기 무료해졌다.
“병원 가지 말고 진료소에서 일해. 우리도 지금 환자가 늘었단 말이다. 금노루에서 보낸 봉합 환자도 있고. 이따 전화해서 묘 선생 오늘은 오지 말라고 할게.”
그런 아들의 기분을 읽었는지, 아니면 아내에게 태도 지적을 받고 회피하려는 건지, 아니면 순수히 쩨쩨해서 그런 건지, 능결죽이 그렇게 말했다.
“묘 선생이 누군데?”
“파트타임 의사. 봉합 전문으로 고용했거든. 에스테틱 봉합도 할 수 있대.”
능결죽은 보란 듯이 손가락 두 개를 치켜들며 겨우 그 돈으로 고용했다고 자랑했다.
“한 달에 2천 위안?”
웅 선생보다 훨씬 싸다는 생각에 능연이 의아한 듯 묻자 능결죽이 답답한 듯 혀를 찼다.
“하루 2백! 한 달에 2천으로 누가 온다고.”
“저희 회사에서 고용하는 운전기사는 하루에 300도 작다고 옥신각신하는데요.”
황무사가 계란김국을 담고 나오다가 한마디 거들었다.
“그거랑은 다르지. 운전기사는 구하는 데가 많잖아요. 겸직 의사 구하는 데가 어디 많습니까? 안 그래요? 그러니까 이런 건 시장경제라고 하는 겁니다.”
황무사는 당연히 반박하지 않고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오늘 알바비는 아꼈네. 능연, 네가 봉합해.”
능결죽은 기쁜 얼굴로 두 손을 비볐다.
“나 요즘 수술 한 번에 5백 위안 받는데요?”
능연은 담담하게 자기 그릇에 국을 덜었다. 능결죽은 곧바로 황무사를 바라봤고, 황무사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잠깐 놀란 표정을 짓던 능결죽이 바로 큰 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가 아쉽다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아이고, 우리 진료소도 언젠간 그런 수술을 할 수 있으면 좋겠네. 아빠가 8······ 6백 위안 줄게.”
아침 9시, 하구 진료소 영업 시작.
제일 먼저 병원을 찾은 환자는 수액을 맞으러 온 진료소의 오래된 단골 노인이었다. 그는 아침을 먹고 느긋하게 진료소를 찾아 도장을 찍었다.
덩치 큰 간호사 연자는 육중한 팔을 놀리며 능숙하게 노인의 팔뚝을 두드렸다. 그러곤 생긋 웃으며 다른 육중한 손으로 바늘을 혈관에 꽂고 링거에 연결해 위치를 조절했다. 그 모든 과정이 매우 순조로웠다.
단골손님은 모두 주기적으로 수액을 맞으러 오는데 횟수를 거듭하면서 연자는 어딜 찌르면 좋을지, 누구의 혈관이 약한지를 훤히 꿰뚫게 되었다.
약 30분쯤 후, 본채 응접실에 벌써 단골 일고여덟 명이 앉아 있었다. 노인들은 수액 맞는 시간이 오래 걸려서, 다들 점심 전에 돌아갈 계산을 하고 진료실을 찾았다. 그들은 흡족한 듯 각자 좋아하는 경치를 볼 수 있는 자리에 누워, 하늘을 보고, 수다를 떨고, 책을 읽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책을 읽던 사람이 가장 먼저 졸기 시작했다.
써넣어야 할 서류를 다 쓴 웅 선생은 응접실 문 쪽에 있는 작은 테이블 뒤로 돌아가 신문을 착 펼치고는 진지하게 읽기 시작했다. 가끔 환자들이 뭐라고 질문을 해도 신문에서 눈을 떼지 않고 대답했다. 사실, 단골손님은 다들 고질병이라 물음도 다 거기서 거기였고, 웅 선생이 생각할 필요도 없이 대답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가끔 환자의 물음에 고민할 필요가 있을 때, 웅 선생이 내는 결론은 언제나 ‘병원에 가서 검사해보라’였다. 물론, 그는 외국 종합병원 의사처럼 어느 과에 접수해야 하는지 안내해주었다.
따르릉.
맑은 종소리가 골목에 울려 퍼지자 2층에서 차를 마시던 능결죽이 웃음을 드러냈다.
“금노루 구급차 오네.”
“저게 구급차라고요?”
능연이 놀라서 묻는 말에 능결죽은 웃음을 지었다.
“당연히 아니지. 저건 묘 선생 자전거. 시간 맞춰서 출근하거든.”
설명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능결죽은 이내 설명을 덧붙였다.
“금노루네 구급차가 보내는 첫 번째 환자는 아무리 빨라도 10시쯤이거든. 묘 선생은 금노루네 환자가 있는지 확인하고, 있으면 좀 빨리 오고 아니면 오후에야 와. 사실 묘 선생도 힘들게 일한단다. 저녁엔 화월 병원 응급실에서 일하고 낮엔 우리 병원을 자전거로 다니거든. 탄력 근무하게 해준다니까, 200위안도 OK한 거지.”
“정식으로 근무 안 해요?”
“뭐 사고를 쳤는지 아르바이트밖에 할 수 없는 모양이야. 묘 선생이 미용 수술을 잘하고, 말도 잘해서 우리가 꽤 짭짭하게 벌었지. 네가 좀 도와주면 오늘은 둘이서 일하고 120위안만 받으라고 이야기해볼 텐데 말이야.”
능결죽이 이야기하면서 능연을 흘겨봤지만, 그는 들은 척도 안 했다. 돈이 필요하면 엄마한테 달라고 하면 됐기에 굳이 아르바이트할 필요가 없었다.
“검사하는 건 도와드릴 수 있어요.”
잠시 고민하던 능연은 그렇게 말했다. 아침에 병원에 가서 환자들 신체 진찰할 생각이었는데, 쉬라고 하니 집에서 하는 게 좋겠다 싶었다.
병원엔 연문빈을 비롯한 다른 레지던트가 있으니 긴급한 일이 없는 한 찾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능연은 당직을 서야 하는 것 말고는 거의 이선 의사 같은 생활을 했다.
검사라는 말을 들은 능결죽은 눈이 번쩍 커졌다.
“제약 회사에서 뭔 기술을 배운 게냐?”
차를 타던 도평이 손을 삐끗하더니 다급하게 아들을 바라봤다.
“뭔 기술이요?”
“처방 내리는 기술 말이다. 검사하고 나서 약 처방하는 거, 그거 배웠냐?”
능결죽은 대형 병원 수납원이라도 된 것처럼 눈을 번뜩였다.
“아뇨, 검사만 할 줄 알지 처방은 못 내려요.”
“그건 돈이 안 되잖아. 요즘 환자는 돈을 내는 만큼 얻는 게 있길 바란다고. 그냥 돈만 내면 손해라고 생각한다니까? 우린 동네 장사잖니, 너무 욕심을 부리면 안 돼.”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능연의 모습에 능결죽은 고심하는 말투로 말했다.
“그럼 검사하는 돈은 안 받으면 되죠.”
능연이 그렇게 말하며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능결죽이 재빨리 따라 내려갔다.
“그랬다가 매일 검사만 받으러 오면 어쩌라고. 검사 안 해주면 또 화 낸다? 그리고 문제가 생기면 약 팔려고 그런다고 생각하고 앞으로 믿지도 않을 거야.”
“좀 전에는 처방 내리라면서요.”
“그러니까. 의사랑 환자는 신뢰를 쌓는 게 중요해. 우리 진료소 보렴. 환자들이 처방받는 데 얼마 드는지 묻지도 않아. 다들 내가 돈 욕심 없는 걸 아는 거지. 아, 묘 선생 왔나? 여기 내 아들하고 인사하게. 운화 의대 학생이야. 지금은 실습생이지.”
능결죽은 막 진료소 안으로 들어온 묘 선생 앞으로 능연을 끌고 갔다. 마흔 정도 된 묘 선생은 딱부리 눈에 주부코라 풍파를 겪은 얼굴로 보였다. 그는 흰 셔츠에 흰 가운을 걸치고 강직성 척추염 환자처럼 허리를 곧게 펴고 서 있었다.
“묘탄생입니다.”
묘 선생이 담담하게 능연과 악수했다. 겸직 의사일 뿐이니 사장 아들 눈치 볼 필요가 없었다. 특히 시간당 고작 200위안 주는 사장이라 더욱더.
이야기를 나누는 새 삐용삐용, 구급차 소리가 들렸다.
“공사 현장에 철근이 떨어져서 머리를 다쳤답니다. 제가 나가볼게요.”
능결죽의 짐작대로 미리 통화했던 묘 선생이 간단히 설명하고는 바로 밖으로 나갔다.
“웅 선생님, 저 신체 진찰 연습 좀 하려고요. 제가 잠시 대신할게요.”
진료소에서 오래 담당 의사 생활을 해온 웅 선생도 평소에 하는 일이라고는 처방을 내리는 일뿐, 창연 절제술조차도 드물었고 조금만 복잡한 케이스를 만나면 바로 큰 병원으로 보내곤 했다. 능연이 대신하겠다니 웅 선생은 신문을 내려놓고 냉큼 자리에서 일어났다.
“돈 많이 들겠네.”
자리에서 일어나던 웅 선생은 능결죽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는 입을 뻥긋거리다가 못 들은 척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응? 연이 오늘 출근 안 했니? 웅 선생님, 우리 애 좀 봐주세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콜록거리는데, 또 감기 걸린 건 아니겠죠?”
할머니가 손녀 하나를 데리고 왔다.
“능 선생이 봐 줄 겁니다.”
“자, 이쪽으로 오렴. 이름이 뭐니?”
능연은 앞에 놓은 의자를 툭툭 치며 물었다. 그것이 신체 진찰의 표준 절차였다. 신체 진찰은 간단한 기구만 사용하는 사람 대 사람의 검사라서 예의, 태도 그리고 의사의 차림이 중요했다. 의대에서 치르는 신체 진찰 테스트에서는 ‘환자 중심의’, ‘높은 책임감’ 또는 ‘의사의 덕목’ 같은 내용이 빠지지 않았다. 능연은 거울을 보고 웃는 연습까지 했다.
할머니 손을 잡고 온 일고여덟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는 치료받기 싫어하다가, 능연의 얼굴을 보자 태도가 묘하게 변했다. 그의 맞은편 의자에 순순히 앉은 아이는 수업 때처럼 두 다리를 모으고 나긋나긋하게 이름이 송설이라고 말했다.
“아하, 우리 송설 어린이, 먼저 편도 좀 볼게요. 자, 이렇게 해 봐요. 아.”
능연이 혀누르개(tonguedepressor)를 꺼내 포장을 벗기면서 아이에게 어떻게 하면 되는지 가르치자, 송설은 ‘아’ 하고 따라 하며 입을 벌렸다.
능연은 재빨리 누르개로 누르면서 라이트를 비춰보고는 손을 거뒀다.
“편도가 부었네요. 웅 선생님. 처방해주세요.”
처음부터 약 처방을 받아갈 생각이었던 할머니는 웅 선생이 처방전을 쓰는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목을 자꾸 만지시던데, 목이 안 좋으신가요?”
능연은 상대를 관찰하다가 웅 선생이 처방전을 다 쓴 걸 보고 할머니에게 물었다.
“응, 어제 베개를 너무 높이 벴나.”
“제가 한 번 봐 드릴까요?”
능연의 연습 욕구가 솟구쳤다. 할머니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곧바로 앞에 앉았다.
“먼저 목 부분 검사부터 할게요. 목 부분 동정맥 누를 거예요.”
능연은 잠시 관찰하다가 할머니 등 뒤로 가서 하나하나 설명하면서 검사하기 시작했다.
“림프샘은 문제없고, 갑상선도 괜찮은데, 고혈압이 좀 있으시네요?”
능연은 정신을 집중하고 자신의 첫 환자 목을 검사했다. 전문가급 신체 진찰 기능으로 정보를 대량 얻을 수 있었다.
“요 며칠 혈압이 안 좋아. 어제 재보니까 130에 90이더라고.”
“경추 활동도 좀 볼게요. 어깨 좀 올려보세요. 부신경 좀 볼게요. 음, 이것도 문제없네요.”
능연의 말에 노인이 기분 좋아했다. 목소리가 좋기도 했고, 특히 ‘문제없다’는 말이 좋았다. 나이가 많은 만큼 그 말이 제일 듣기 좋기 마련이었으니.
“혈압 때문에 목이 아픈 거예요.”
목 부분 검사를 마친 능연이 예의 바르게 웃으면서 결론을 내렸다.
“그럼 약은?”
“혈압 130은 괜찮은데, 90이면 좀 높네요. 그런데 약은 안 바꾸셔도 돼요. 음식 조심 좀 하시고요.”
떠보는 듯 묻는 말에 능연이 고혈압 지침에 따라 가볍게 의사 지시를 내렸다. 그에게 고혈압 같은 증상은 익숙한 편이었다. 할머니가 뭐라 더 묻기도 전에 할아버지 한 명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나도 진찰 좀 해다오.”
“어디가 불편하신데요?”
능연은 다시 예의 바르게 미소 지었다. 온몸 검사는 시간도 걸리고 꼭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먼저 병력을 묻고 환자 설명을 듣는 과정이 필요했다.
“기관지염이 좀 있어. 폐도 안 좋고. 고질병이지. 날이 추워지면 생기고, 건조해도 생기고.”
상세히 설명하는 할아버지의 말에 능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들으면서 폐 쪽에 청진기를 대고 소리를 들었다.
“소리가 맑고 깨끗하네요. 폐도 문제없어요. 혹시 걱정되시면 가슴 쪽도 볼게요.”
능연은 그렇게 말하면서 할아버지 등 뒤로 가서 섰다. 문제없다는 말에 안도한 할아버지는 연신 알았다고 대답한 후 그의 지시대로 심호흡했다.
뒤이어 단골손님들이 자기도 검사해 달라고 앞다퉈 능연을 불렀다. 막 도착한 다른 단골손님들도 그 장면을 보고는 수액을 맞지 않고 능연한테 검사받으려고 기다렸다.
능연의 예의 갖춘 미소는 친절하고 엄숙하기도 해서 사람들이 아주 좋아했다. 더 중요한 건 그가 사람들의 증상을 잘 맞춘다는 것이었다. 어차피 다 고질병이긴 해도 다들 확인하고 싶어 했다.
웅 선생은 노인들의 말벗이 되어 주는 일을 뺏기는 것을 기꺼워하면서 곁에서 지켜봤다. 안쪽에서 데브리망을 마친 묘 선생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실눈을 뜨고 그 광경을 바라봤다.
어느새, 길을 지나던 여자들이 조용히 진료대 앞으로 가서 줄을 서기 시작했다. 한창 신문을 읽던 웅 선생은 그 모습을 힐끔 쳐다보고는 자리에서 휙 일어섰다.
“연아, 좀 쉬지 그러니? 잠시 내가 진료 보마.”
“좋죠.”
18번째 검사를 마친 능연은 시스템에서 운화 시 순위가 하나 올라 1127등이 된 걸 확인하고는 몹시 흡족해하며 잠시 쉬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그를 기다리던 여자들은 잠시 당황하다가 맨 앞에 앉아 있던 여자가 먼저 몸을 일으켰다.
“아이고, 빨래 걷는 걸 깜빡했네.”
“아, 맞다. 빨래 걷어야지.”
“빨리 가야겠다.”
여자들이 어색하게 말하며 사라지자 진료대 앞은 다시 평화로워졌다. 웅 선생은 묵묵히 신문을 다시 펼쳐 들고 구기자차를 홀짝였다.
“안녕하세요. 저는 수술했던 의사 능연입니다. 회복 상태가 어떤지, 몸 상태 좀 체크하려고요.”
능연은 병상 앞에 서서 깊이 잠든 1호 침대 환자를 살며시 흔들어 깨워다.
“어, 능 선생님. 지금 몇 시예요?”
능연을 한 번 본다면 기억 못 할 리 없었다. 환자는 눈을 비비다 창밖을 보며 의아한 듯 물었다.
“다섯 시요. 조금 일찍 왔어요.”
“다섯 시에 회진을 해요? 너무 이른 거 아닌가요? 보통 7, 8시에 하잖아요.”
환자는 불만인 듯 그렇게 말했고, 잠에서 깬 환자 가족도 얼굴을 찌푸렸다.
“좀 자세히 검사해드리려고요.”
능연은 예의 바른 미소를 지으며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는 신체 진찰 기술이 익숙해졌으니 자기 환자도 진찰해보고 싶었다.
탕 법 수술을 받은 환자들은 외부 상처로 인한 환자가 많았고 재정이나 보험 문제로 모든 환자가 전면적인 검사를 받거나 해마다 혹은 6개월마다 건강검진을 받는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 응급으로 입원하면서 간단한 필수 검사만 받았고 그 이상의 검사를 받는 경우는 드물었다. 특히 비용에 민감한 환자와 가족은 근건 봉합에 필수인 MRI조차 받기 꺼렸다.
능연이 터득한 신체 진찰 기술은 영상검사나 화학검사를 대신할 수는 없는 일종의 진단 의학 보조 검사와 실험실 검사에 속했다. 그러나 기술이 달라도 목표는 같으니, 신체 진찰 기술로 질병의 단서를 잡거나, 이상을 발견하면 더 세밀한 영상 검사 혹은 실험실 분석을 받아 보라고 권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회진을 도는 의미이기도 했다.
사실, 지위가 있는 사람이나 부자들은 맹장 수술을 할 때도 풀세트 검사와 전문 진단을 받는다.
오전에 있을 수술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열 명이나 넘는 환자 신체 진찰를 해주려면 회진을 일찍부터 시작해야만 했다. 개인 의료팀이 있다면 환자가 완전히 자유롭게 시간을 선택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심지어 오후로 미뤄도 전혀 문제 될 게 없고.
“좀 일어나 앉아 주세요.”
능연은 침대 옆으로 가서 환자 상태를 관찰했고 간호사들은 병상의 커튼을 전부 열었다.
“세수 좀 하면 안 되나요?”
이불을 젖힌 환자가 투덜대며 묻자, 능연은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전신 검사하는 게 아니라 괜찮아요. 환자분 케이스를 살펴봤더니 책상에 오래 앉아서 일하고, 만성 위염도 있으시더라고요. 그래서 복부 위주로 검사하면서 머리도 조금 볼 거예요. 10분밖에 안 걸려요. 이따 세수하셔도 됩니다.”
말투와 내용만 보면 조금 딱딱했다. 하지만 그렇게 딱딱하게 말할수록 환자의 기분이 오히려 평온해지는 법이었다. 그러나 자리에 일어나 앉은 환자는 연달아 불평을 터트렸다.
“왜 하필 나부터 시작하세요. 마지막에 검사하면 한 시간은 더 잘 텐데.”
“환자분, 환자분은 다섯 시에 일어났지만, 선생님은 몇 시에 일어난 줄 아세요? 해가 뜨기도 전에 병원에 오셨어요. 야근비도 한 푼 못 받는데 오히려 택시비 들이면서요. 환자분은 검사 끝나면 다시 주무시면 되지만, 능 선생님은 계속 검사해야 하고 검사 끝나면 또 수술하셔야 해요.”
듣다 못한 간호사가 입을 삐죽였다.
“머리는 문제없네요. 이제 복부 검사할게요. 심호흡해 보세요.”
원래 일할 때 집중하는 능연은 간호사가 뭐라고 하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10분 후, 능연은 검사를 마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 문제 없네요. 재활 잘하시면 됩니다.”
간호사가 침대 커튼을 다시 닫았다. 환자와 가족은 그 말에 기쁘기도 했으나 같은 이유로 짜증도 났다. 능연은 신경도 쓰지 않고 2번 침대 환자를 깨워서 검사를 진행했다.
병례와 병력에 근거해 선택적 검사를 진행하기 때문에 능연은 여자 환자는 더욱 조심스럽게 대했다. 그가 흉부와 등 청진만 하자 오히려 환자가 아쉬워했다.
신체 진찰을 한 바퀴 돌고 나자 건강한 능연도 피로감을 느꼈다.
“능 선생님, 너무 열심히 하시네요.”
감탄한 당직 간호사가 마음이 아픈 듯 말했다.
“전에 체크 못 했으니 지금이라도 해야죠.”
당직 간호사는 능연이 시간과 에너지 문제를 해명하는 줄 알고 저절로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어제 겨우 하루 쉬시고 오늘은 또 일찍 나오셨잖아요. 이따 저녁에 힘드시겠어요. 여자 친구 만날 시간도 없으시겠네요.”
“여자 친구 없습니다.”
그 말에 간호사는 신나서 팔짝 뛰고 싶은 기분으로 ‘오오’ 소리를 내며 입을 가렸다. 능연이 그 자릴 떠난 후에도 혹시라도 소리를 지를까 봐 손을 내리지 못했다.
엄청난 소식이야!
“뭐 좋은 일 있어? 얘기 좀 해 봐.”
외모가 평범하여 존재감이 미약한 레지던트가 조금 일찍 출근하여 웃는 얼굴로 그에게 인사했다. 그는 간호사들과 좋은 동료 관계를 맺고 싶어 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손을 내린 간호사는 옷을 툭툭 털고는 타닥타닥 발걸음 소리를 내며 사라졌고, 점점 더 걸음을 서두르며 복도에 인기척을 가득 냈다.
“아무 일도 없으면 좋죠.”
레지던트는 자신의 동작이 쾌 쿨하다고 생각하며 손을 흔들었다. 그는 동료 관계가 안정적으로 깊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