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 선생 왔어?”
연문빈은 능연에게 자신의 근면함을 어필하려고 30분 전에 병원에 도착했다.
의사라는 생물은 나이와 생김새를 불문하고 결론적으로는 근면하고 학구적인 의사를 좋아한다. 실력은 천부적인 능력이기도 하지만 땀으로 이루기도 한다.
의사들은 모두 그 이치를 알고 있고, 능력 있는 의사일수록 이를 일찍 깨닫는다.
연문빈은 재능은 몰라도 노력은 비벼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체력이 좋은 연문빈은 지난밤 9시에 퇴근하고 병원에 있는 헬스장에 가서 40분 동안 몸을 단련했다. 그는 180cm가 넘는 몸을 곧추세우고 팔을 뻗어 거의 가로막을 듯이 의국 문을 잡았다. 그러고는 순박한 미소를 지으며 능연을 바라봤다.
“능 선생, 회진 준비 끝냈는데 이제 시작할까?”
“벌써 했어요.”
능연이 하품하며 대답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벌써 4시간이나 지났는데 스태미너 포션도 안 마신 상태라 피곤하긴 했다.
“벌써 회진을 했다고?”
연문빈은 멍해졌다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어제 쉬었으니까 오늘은 두 시간 일찍 왔죠.”
두 시간이라는 말이 폭탄이 터지는 것처럼 연문빈의 귓전에 울렸다.
“새벽 다섯 시에 와, 왔다고?”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고개를 끄덕인 능연은 4시 좀 넘어서 왔다고 대답했다. 연문빈은 초조해져서 눈을 부릅떴다.
나보다 재능 있는 사람이 있으면 나는 어쩌라고.
그런데 그 사람이 나보다 더 부지런하면, 정말 어쩌라고.
거기다가 잘생기기까지 하면, 정말 정말 어쩌라고.
어쩌라고!
“분류해주세요.”
능연은 회진하고 기록한 차트를 연문빈에게 넘겼으나, 연문빈이 곧바로 반응하지 못한 사이 훈련의 마연린이 등 뒤에서 나왔다. 그는 ‘내가 할게’라고 노트를 받아들고 의국 서류함 위에 놓았다.
병원 의국엔 사방에 ‘사정 동의서’, ‘위급 통지서’, ‘퇴원 설명서’ 등등 각종 문서가 가득한 서류함이 널려 있었다. 환자의 병력과 회진 기록도 그 안에 분류하며 평소에 주임과 서류 담당실에서 한 번씩 추출 검사를 한다. 병원 평가할 때는 병원 자체에서 검사하고, 제대로 쓰지 않거나 안 쓴 문건이 있으면 반년이라는 시간에 거쳐 새로 쓰곤 한다.
그 과정은 초등학생이 숙제를 베끼고, 교사가 수업 방안을 베끼고, 공산당원이 사상 보고서를 베끼는 과정과 별 차이가 없었다.
더 먼저 온 연문빈은 인턴 마연린에게 선수를 뺏기자 화가 나서 발을 동동 굴렀다.
“어제 회진할 때 3번, 7번 침상 환자 부기가 있어서 내가 약을 쓰고 다리를 올리고 열 찜질하라고 오더내렸어. 9번 침상은 어지럼증을 호소하길래 주 선생님 모셔서 살펴보고 진정시켰고.”
“그저께 봉합한 환자 상태도 아주 좋아. 마취 이상 반응도 없고.”
연문빈에 뒤질세라 마연린도 한마디 덧붙였다.
“맞아, 환자들 예후가 아주 좋아.”
연문빈도 다시 한마디 보탰다. 능력, 노력, 외모 모두 떨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 생긴 초조함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지만, 일은 계속해야만 했다.
그는 레지던트이고 지금도 해당 책무를 이행하고 있었다. 매일 회진과 환자 상태를 살피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업무였다. 병원에서 환자와 가장 밀접하게 접촉하는 의료 종사자는 바로 레지던트와 간호사였다.
주치의가 되면, 특히 외과 주치의는 의사가 직접 회진을 돌 확률이 점점 낮아졌는데, 대부분 수술대 앞에서야 환자의 이름을 알게 될 정도였다.
주임이 회진하는 일은 그보다 적어서 회진도 주에 한 번 정도만 했다. 요즘은 병상 회전율 때문에 웬만한 환자는 사나흘이면 퇴원해서 그나마도 하지 않을 때가 있었다.
능연도 전에는 주로 수술 후 상황을 살폈다. 어차피 탕 수술밖에 할 줄 모르고 다른 일은 대부분 곽종군이 맡아서 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전문가급 신체 진찰 기술이 생겼으니, 일반 레지던트보다 훨씬 쓸모 있는 의사가 된 셈이다.
“3번 병상은 근육 유착이 좀 심합니다. 파열될 걱정보다 재활을 늘려야 할 것 같아요. 오더는 내렸으니까, 회진 돌 때 신경 써 주세요.”
“그래.”
“어.”
인턴 마연린이 재빨리 대답하자, 댓바람부터 출근한 연문빈은 김이 새는 기분이었다.
“참, 검사 항목을 늘려야 할 환자도 있어요. 특히 11번 병상. 초음파 검사 한 번 해야겠어요. 복부에 물이 찬 거 같거든요. 일반적인 수술 후 부종이 아닌 듯 보여요.”
실습생 신분인 능연은 처방이나 진단을 내릴 수 없어 모두 연문빈을 거쳐야 했다. 애초에 곽종군이 레지던트를 그에게 붙여 준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였다.
연문빈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도 간단한 증상을 처리하고 지침에 따라 처방하는 건 할 수 있었지만, 종합적인 판단을 내리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능연은 몇 마디 간단한 말로 장장 두 시간 걸렸던 회진 내용을 설명했다. 다른 직장인들의 업무가 그렇듯이 병원에서 일어나는 대부분 작업도 단순해 보여도 시간을 들여 할 수밖에 없다.
“오늘은 고를 환자가 몇 명이나 되나요?”
수술 스케줄을 살핀 능연이 물었다. 그것이야말로 그의 관심사였다.
“아까 잠깐 봤는데, 세 명 있더라. 우리가 했던 탕 수술 성공률이 높고 예후가 좋아서 다른 병원들도 적극적으로 협조하네.”
연문빈이 태블릿을 가지고 와 전자 차트를 불러내자 능연은 고개를 숙이고 내용을 읽었다.
의사는 실력만 통과하면 다른 건 문제도 아니었다. 트랜스 문제는 하급 병원에서는 상급 병원에 이래라저래라할 수 없었고, 환자의 일을 추궁할 수는 더욱 없었다. 그래서 대부분 상급 병원 의사들은 이래도 의사냐고 하급 병원을 무시했다.
하지만 하급 병원도 상급 병원에서 진행하는 기술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환자를 트랜스 보낸 의사들이 그 후 상황을 일일이 살피진 않아도 결과가 매번 좋으면 당연히 적극적으로 환자를 보낸다. 하지만 빈번히 문제가 일어나면 굳이 환자를 보낼 필요가 있을까? 그들에겐 다른 큰 병원으로 보내는 선택지도 있었다.
특히 작은 지역의 병원에서는 다들 더 좋은 병원으로 가려고 한다. 의사도 환자와 다 아는 사이고, 본인과 병원의 실력이 못 미쳐서 다른 큰 병원에 환자를 보낼지라도 그들이 최대한 좋은 치료를 받길 바란다.
하구 진료소에서 운화 병원에 환자를 보내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양 사장도 능연이 치료해서 그렇지, 아니었다면 능결죽도 그를 운화 병원에 보내서 치료 상황을 살펴본 후, 다음 환자를 운화 병원으로 보낼지 아니면 성립 병원으로 보낼지 고민했을 것이다.
곽종군과 창서 제약 회사의 관계 때문에 많은 병원이 환자를 보내기도 했다. 적극적으로 보낸다고까지는 할 수 없어도, 다른 병원에서 운화 병원 수부외과 이름값으로 환자를 보낸 것도 있었다.
지금은 미묘한 변화가 생겼다.
운화 병원 응급 의학과 탕 수술 효과가 좋았다. 환자의 피드백이든, 응급 의학과의 피드백이든, 아니면 제약 회사 영업원의 피드백이든 모두 그 사실을 증명하기 충분했다. 그렇게 되니 각 병원에서는 안심하고 환자를 운화 병원으로 보냈다.
그 작은 변화는 결국 큰 차이로 드러났다. 운화 병원 응급 의학과로 들어오는 굴근건 손상 환자가 점점 늘어났으니 말이다.
특히 공업 지역에 있는, 수부외과가 없는 작은 병원은 동급 병원으로 환자를 보내지 않고 대형 병원으로만 환자를 보냈다. 지금 운화 병원은 트랜스 환자를 우대하기도 하고 치료 결과도 좋으니 당연히 제일 먼저 고려하는 대상이 되었다.
“그럼 셋 다 하죠. 수술 전에 진단 내리고 곽 주임님 오시면 제가 보여드릴게요.”
재빨리 태블릿을 살펴본 능연이 다시 연문빈에게 건네주었다.
“또 세 명이야?”
연문빈은 머리털이 삐쭉 서는 것 같았다.
“당연히 그게 다가 아니죠. 오후에 새로운 환자 정리해서 주세요. 그때 보고 결정하죠.”
능연이 웃으면서 하는 말에 연문빈은 진저리를 쳤다. 하루 잘 쉬고 와서 몸이 미묘하게 풀렸는데, 긴장감이 다시 몰려와 견디기 힘들었다. 그러나 능연은 태연하기만 했다. 수술이 있는 날, 없는 날 기분이 천지 차이였다.
“단손 파열 환자 둘, 하나는 손가락 둘 압상이네요. 좀 빠르게 해서 오전에 다 끝내죠. 음, 먼저 두 개짜리부터 할까요? 그거 끝내고 바로 이어서 하면서 시간을 절약해보도록 해요.”
신이 난 능연이 시간을 계산하자 연문빈은 점점 창백한 얼굴이 되었다.
“내가 수술 끝나고 연락해 볼게······.”
“내가 할게!”
툭 끼어드는 마연린의 모습에 연문빈은 뭐라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적당한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능연은 당연히 아쉬울 게 없었다. 전에 환자 연락은 모두 곽종군이 맡아 했지만, 언제까지 대장 주임님에게 맡겨 놓을 수는 없었다.
다른 의사 밑에서 잡일을 하느니 탕 봉합 수술에 참여하고 싶었던 연문빈은 몰래 주먹을 꾹 쥐고 흔들었다.
“맞아, 능 선생. <중화 위중 응급 의학> 최신 호에 네 이름 있더라? <시야 미확보 상태에서 맨손 국부 압박 지혈 간 봉합> 제목만 봐도 대박이다, 야.”
그 논문은 직접 발견한 것은 아니었고, 행정과에서 실습하는 동기가 알려준 것이었다. 병원은 의사가 발표한 논문엔 지극한 관심을 가지고 달마다 인원수, 논문 수와 영향 요소를 통계 낸다. 그리고 그런 일을 하는 건 대부분 마연린 동기인 젊은 의사들이다.
능연은 깜짝 놀라 잡지를 들고 휙 넘기다가 자신의 글이 실린 페이지를 찾아냈다.
- 운화 병원 응급 의학과, 능연.
제목 아래 적힌 논문이 눈에 들어오자, 동시에 시스템이 울렸다.
- 퀘스트 완성: 논문 한 편 완성할 것
- 보상: 중급 보물 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