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좀 쉴게요. 30분 뒤에 불러 주세요.”
능연은 <중화 위중 응급 의학>을 겨드랑이에 끼고 휴게실로 갔다. 그는 보물 상자를 열 조용한 곳이 필요했다.
마연린과 연문빈은 그가 자신의 논문을 읽으러 간 줄 알고 내심 부러워했다. 병원에서 의사란 잘생겼든 못생겼든, 보통이든 잘 잊히게 생겼든, 논문을 발표해야 좋은 의사였다.
아직 인턴인 마연린은 태세 전환이 빨라서 능연이 사라지고 나자 곧 연문빈에게 눈짓하고는 헤헤 웃었다. 연문빈은 ‘아부쟁이’라고 욕하고 싶은 걸 꾹 참았다.
그러나 연문빈이 비록 허리가 두껍고 엉덩이에 문신이 있으며 딥 스쿼트로 돼지를 들고, 벤치 프레스로 양을 올린대도 그는 문명인이었다. 그래서 연문빈은 오른 주먹을 왼손바닥에 올리고 우두둑 소리를 내며 굵은 팔뚝을 불끈 세울 뿐이었다.
마연린은 다시 ‘하하하하’ 웃고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듯 구석으로 가서 태블릿을 만지작거렸다.
이른 아침 휴게실은 조용한 편이었다. 일찍 출근한 초짜 의사들은 회진으로 바빴고, 회진할 필요 없는 의사는 일찍 올 필요가 없었으니까. 능연은 텅 빈 휴게실로 들어가 바로 문을 잠그고 시스템을 불러 보물 상자를 열었다. 은색 중급 보물 상자가 천천히 열리더니 은색 스킬북 하나가 나타났다.
“괜히 사람 없는 곳을 골랐네.”
능연은 몸을 일으켜 문을 돌려 잠금장치를 풀고 스킬북을 읽었다.
- 국부해부 경험: 수부 해부 3,000번 경험 획득
스킬북 묘사는 간단했고 거의 한순간에 사라졌다. 동시에 능연의 뇌리에 순식간에 방대한 지식이 쌓였다.
‘수부 해부 3,000번?’
단조롭고 반복적인 지루한 해부였으나 그것들이 가져다준 정보는 참으로 알찼다.
두꺼운 축에 속하는 각화층은 힘주어 찔러야 한다. 피지선과 털이 없는 피부는 수부 해부 특징이었지만, 특수한 사람도 있었다. 피부 융기선이 많은 것도 수부의 특징이었다. 충분한 피부 말초 신경 때문에 의사들이 촉진할 때 장갑을 끼지 않는다. 말초 감각을 통해 기구로 얻을 수 없는 많은 정보를 얻어낸다.
장무지외근, 단무지신근, 장무지신근, 장요측수근신근, 단요측수근신근 등 근건 명칭에 익숙해질 만큼 능연의 수부에 대한 지식이 상당한 위치에 올랐다.
넓게 보면 사람들은 보통 모두 다섯 손가락이고 비슷한 구성이라 별 차이가 없지만, 현미경 아래 사람의 수부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뚱뚱한 사람, 마른 사람, 근육이 발달한 사람, 골격 발육 부진인 사람이 있듯이.
수술과 해부를 거쳐야만 익숙해질 수 있는 과정이 그렇게 통째로 능연의 머리에 기억되었다. 수부 해부를 3천 번이나 한 사람이 있을 거란 생각도 못 했지만, 3천 번 해부를 하면 수부 의학의 세계가 그토록 명확해질 줄은 더욱 상상하지 못했다.
해부를 3천 번 한다는 게 대체 어떤 개념이란 말인가. 매일 시체 두 구를 해부한다고 치자. 3천 번이면 무려 1천5백일이 걸렸다. 5년 동안 쉬지도 않고 해부실에서 매달려야 할 시간이었고 그럴만한 시체도 있어야 가능했다.
시체 해부 전문으로 2, 30년 일한 법의학자도 그만큼 해부한 사람은 드물 테지. 특히 초짜 시절 해부 수와 질을 따지면 더 확 줄었고, 정상 지역의 비정상 사망 사례도 그렇게 많지 않아서 3천 번 해부를 달성하는 건 대부분 법의학자에게도 한정 없는 목표였다.
역사에서는 WYN 학파의 리더 로키탄스키가 3만 건 이상 해부하는 데 1827년 10월부터 1866년 3월까지 39년 걸렸다고 전해진다. 그 기간은 인류 해부학의 전성기였으며 거기다 로키탄스키는 프로 병리 해부학 교수였다. 그의 연구 방향이 바로 해부였고, 하는 일이 바로 해부였다. 학교에 프로 조수와 학생들이 해부를 책임지고 전성기의 빅토리아 대학이 그의 뒤에 있었다.
로키탄스키 서거 150년이 지난 지금, 병원과 대학에서는 이제 해부를 많이 하지 않는다. 시체 가격이 엄청나게 비싼 데다가 공급받기도 어려워서 한 해 200구 시체만 있어도 대단하다고 할 정도였다.
병원은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도 했고, 가족 동의를 받을 인력을 동원하기도 귀찮은 데다가 결과 진단 착오로 밝혀진 케이스가 2/3가 넘어서 소송 문제를 읽으킬까 봐 두려워서 시체 해부를 꺼렸다. 그렇기에 21세기 의사는 수부 해부 3천 번은 고사하고 3백 번만 해도 진귀할 정도였다.
능연은 3천 번 수부 해부 경험을 얻은 것은 그랜드마스터급 맨손 지혈 기술을 얻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용도만 따지면, 매일매일 전쟁터에 나가야 하는 의사나 되어야 수부 해부 경험이 쓸모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렇게 예를 드는 것도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수부 국부해부의 응용 범위가 좁아서 그런 스킬이 중급 보물 상자에서 나왔는지도 모른다.
능연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이내 포기하고 물을 한잔 따라서 의자로 돌아왔다. 햇볕 아래 손을 치켜들고 천천히 살피기 시작하자 머릿속에 무수한 디테일이 펼쳐졌다.
완벽한 손바닥 뼈, 손가락 뼈, 장무지신근, 지신근, 시지신근, 소지신근, 충양근······.
“능 선생님, 손금 보시는 거예요?”
“수부 해부 생각하느라고요.”
왕가가 문을 열고 들어와 손바닥을 보고 있는 능연을 보고 물었다. 능연이 변함없이 손바닥을 바라보며 대답하자 왕가는 눈을 둥그렇게 뜨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꽃미남이긴 하지만 정말 이상한 사람이야. 어떻게 이런 대화를 하냐고. 후우, 그래도 참 잘생겼다.’
“능 선생님, 내 손금도 봐주세요.”
왕가가 앞으로 다가가 새하얀 손을 능연 앞으로 내밀었다. 마침 비교 대상을 찾던 능연은 바로 손을 잡아끌고 찬찬히 바라봤다.
“소지신근 옆에 무늬는 두드러지지 않고, 뼈는 잘 만져지네요. 일반인보다 좀 작고 특이할 것은 없네요.”
왕가는 거의 기절할 것 같은 기분이 되어 몸을 비비 꼬았다.
‘손 잡았어, 손. 손 잡았다고, 손.’
“후우.”
능연은 살며시 한숨을 내쉬었다. 의학에서 해부가 고차원의 범주에 들려면 전형적인 모델이 아니라 특이한 것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만 진정으로 학술 의미나 의학 의미를 갖춘 성과를 얻게 된다.
예를 들어 해부의 창시자 메르켈은 선천성 기형 연구로 출발했다. 로키탄스키의 가장 중요한 논문은 <심장내막결함>이고, 가장 주목받는 동맥 질환 도감은 보기 드문 결정성 동맥 주변 염증이다.
특이할 것 없는 왕가의 손은 좀 전에 3천 건 수부 해부한 경험을 얻은 능연에겐 연구할 만한 가치가 없었다. 능연이 왕가의 손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자, 왕가는 실망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참 만에 정신 차린 왕가는 아까 왜 한숨을 내쉬었는지 능연에게 물었다.
“새끼손가락이 좀 짧길래 중절이 좀 짧은가 싶어서 만져 봤는데, 그 정도는 아니더라고요. 참, 수술 준비된 건가요?”
“네.”
능연은 아쉽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 모습에 왕가는 달려들어 그를 물어 버리지 못해 한스러운 기분이 되었다.
“지신근(extensor digitorum) 기능 회복 수술 시작합니다.”
집도의 능연은 수술대 앞에 서서 마음을 편안히 달랬다.
“네.”
그의 곁에 어시스트로 선 연문빈은 기운이 펄펄 넘쳐 보이기까지 했다. 머릿속에 갑자기 생각이 뒤엉킨 마연린은 팔짱을 끼고 구석에서 조용히 지켜봤다. 마취의 소가복은 기기 밑에서 둥그런 의자에 앉아 다른 의자 하나를 밟고 있었다.
능연은 우선 펜으로 선을 그리고 전문가급 핑거팁 그립 스킬로 환자 두 근육 사이에 메스를 그었다. 칼이 환자의 피부에 닿는 순간, 능연의 뇌리에 복잡한 정보가 쏟아졌다.
손바닥 쪽의 피부가 더 단단하며 지신근 바깥쪽은 얇아지고, 손바닥 중심과 소지신근 쪽은 다시 두꺼워진다. 그래서 메스를 댈 때 피부만 그어내려면 칼을 쓸 위치를 잘 조절해야 했다.
누구나 아는 이론이지만, 정말 메스를 잡고 잘해낼 수 있는 의사는 많지 않았다. 대다수 의사는 무턱대고 자르기만 했으니. 어차피 능력이 거기까지라 별도리가 없었다. 예후가 좀 안 좋고 상처가 흉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능연이 했던 첫 수술은 상황이 더 안 좋았다. 정확한 길이도 파악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지금의 그는 달랐다.
현재 능연의 머릿속엔 3천 번 수부 해부 경험이 담겨 있었다. 환자의 손을 보는 순간, 피부 경도와 두께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절개해 보니 과연 짐작대로였다.
얇은 지방층을 베어내고 근육 부분으로 들어갔다. 칼 쓰는 동작도 더욱 수월해졌다. ‘백정이 소 잡듯’이라고 형용하곤 하지만, 생각해보면 백정도 소를 3천 번이나 잡지 못한다. 소 발굽 해체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게다가 현미경 아래서 해부한다는 것은 더욱 불가능하다.
백정에게 현대 해부 방식으로 소의 완벽한 구조를 보증하면서 전면적으로 해부하라고 하면 할 수 있을지를 떠나서, 그렇게 해부한 소는 먹지도 못할 상태가 되겠지.
“오늘 되게 순조로운 것 같다.”
연문빈은 능연의 동작이 순조로운 걸 보고 의미 없이 말을 걸었다. 대화 없는 수술방은 간이 안 된 생선처럼 맛이 없었으니까.
“네, 그런 편입니다.”
“점점 잘하네.”
“네.”
능연은 대화에 맞장구를 쳐주고는 다시 고개를 숙여 과정을 열심히 기억하면서 수술을 진행했다.
모든 수술 과정은 거의 비슷했다. 수술대 앞에 선 외과의는 머릿속으로 정확한 수술 방식을 그리는 게 먼저였다. 그러곤 자신이 정확한 위치를 선택했다고 믿고, 정확한 수술 방법으로 끝냈다고 믿고, 사고 없이 수술을 수월하게 끝냈다고 믿는다.
사고 없이!
의사들은 사고가 생길 수 있다는 걸 알지만, 그 사고도 자신이 예상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발생하길 바랐다. 바꿔 말하면, 사고가 없길 바란다는 말이었다. 의사 눈에 완벽한 수술이란, 착착 진행되어 어떤 사고도 없는 수술을 뜻했다.
의사들은 새로운 수술 방식을 시도하지만, 그전에 방대한 사전 작업을 먼저 진행한다. 탕 법을 변이한 M-탕 법은 탕금파가 8년이란 세월을 투자했다. 환자들은 자신에게 어떠한 특수 상황도 생기는 것을 더욱 바라지 않으니 의사들이 어쩔 수 없이 임상에서 발휘하는 것이다.
치익.
근건이 드러나는 동시에 수술실 문이 열렸다.
곽종군이 사람들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와 웃는 얼굴로 말을 꺼냈다.
“할 일들 해. 능 선생 실력 구경하려고 친구 몇 명 데리고 온 거니까.”
곽종군과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사람들이 그의 뒤에서 수술복을 입은 채 서 있었다. 그들은 목을 빼고 수술대 앞으로 다가가더니 마연린의 시선을 가려 버렸다. 하찮은 인턴은 당연히 끽소리 못하고 조용히 뒤로 물러나 자리를 비켜주었다.
마취과 의사 소가복은 여전히 안정적인 자세로 둥근 의자에 앉아 있었지만 그다지 편하지는 않았다. 오늘은 다행히 의자를 세 개나 받아오지는 않았다. 운명이구나 싶어 오히려 통쾌함을 느꼈다. 어차피 세 개를 받아도 곽종군 일행에게 뺏겼을 테니 말이다.
“잘 봐두라고. 이게 바로 우리 운화 병원 응급 의학과 탕 봉합술이야. 무인 구역에 가장 적합한 방법이지.”
곽종군은 뿌듯한 듯 사람들에게 소개했다. 하지만 능연은 고개도 들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봉합을 진행 중이라 그럴 여유가 없었다. 다행히 곽종군이 데리고 온 사람들은 모두 대단한 의사들이라 어느 정도 상황을 알아볼 수 있었다. 하여 다들 그를 방해하지 않도록 말없이 지켜보기만 했다.
바늘을 찔러 실을 빼고.
매듭을 묶고 실을 자르고.
능연의 동작이 어찌나 빠른지,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어디까지 꿰맸는지 놓칠 지경이었다. 그렇게 속도가 빠른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전엔 국부해부에 익숙하지 않아서 시간을 많이 들여 시도해야만 했고 바늘이 들어가는 힘, 실을 마무리하는 길이 등등, 모두 사전에 예측해야 했다.
예를 들어 흡수되는 실과 그렇지 않은 실의 선택도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적용하고, 실 종류에 따라 자르는 길이도 달라진다. 너무 길게 남기면 유합하기 어렵고, 너무 짧게 자르면 위치가 틀어서 봉합이 풀릴 수도 있다.
능연이 점점 손에 익어할수록 보는 사람들도 들떴다. 외과 의사라면 누구든 속 시원한 수술을 하고 싶어 한다. 다른 사람이 하는 속 시원한 수술을 지켜보고만 있어도 통쾌하기 마련이었다.
“다 됐습니다.”
매듭을 묶은 능연은 연문빈에게 선을 자르도록 했다. 서걱 움직이는 가위 소리에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허전해졌다.
“벌써 끝났나?”
“백 주임, 더 보고 싶은가 보네?”
곽종군은 서비스 정신으로 다음 수술은 언제냐고 물었다.
“환자는 벌써 도착했습니다. 지금 2번 방에서 수술 준비 중이고요.”
“능 선생, 자네 바로 할 건가? 아니면 좀 쉬다가 할 텐가?”
냉큼 나와서 설명하는 마연린의 말에 곽종군이 물었다.
“지금 바로 하겠습니다. 손가락 하나죠? 그럼 30분이면 될 겁니다. 다음 환자 바로 준비해 주세요.”
“아, 응.”
시계를 내려다보며 능연이 하는 말에 마연린이 재빨리 대답했다. 그 자리에 있던 의사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다가 백 주임이 하하 웃기 시작했다.
“곽 주임, 정말 대단한 걸 구경시켜 주는군.”
“수술 몇 개 더 구경하면 우리 응급 의학과 실력을 잘 알 수 있을 거야.”
말을 마친 곽종군은 사람들을 수술실 밖으로 내보냈다. 그후 다시 돌아와 능연에게 몸 상태가 어떤지 물었다.
“연속으로 수술할 수 있겠나?”
“괜찮습니다.”
능연은 묻는 이유도 되묻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그럼 해보게. 수술 퀄리티는 보장해야 하네. 자네가 잘만 하면 앞으로 도움이 될 사람들이야. 힘내게.”
“네.”
그 말에 능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의 뒤에 서 있던 연문빈은 닭 피라도 맞은 것처럼 부르르 몸을 떨었다.
곽종군은 응급 의학과 수부외과 휴게실에서 백차를 끓여 사람들 앞에 놓인 찻잔에 부었다.
“대접이 이래서 미안허이.”
“좋은 차구만 뭐. 운화 병원 녹두떡 유명하단 말도 진작에 들었지. 줄 서서 사가는 사람도 있다며?”
통통한 백 주임이 차를 홀짝이더니 손으로 녹두떡을 잘랐다.
“우리 식당에 곽 요리사가 소주 사람이거든. 그쪽 지역 녹두떡이 살짝 기름져서 우리 운화 사람 입맛에 맞는다네. 이따 가기 전에 내가 한 상자씩 선물할게, 집에 가지고 가서 맛들 보라고.”
곽종군도 웃는 얼굴로 녹두떡을 하나 집어 들어 베어 물었다.
“녹두떡 한 상자로 우리를 매수하려고?”
“매수라니. 그냥 공평하게 기회를 쟁취하고 싶은 것뿐이야.”
“지금 이게 불공평한 거지.”
백 주임은 두어 입 만에 녹두떡을 먹어 치우고는 짧고 뚱뚱한 손가락으로 차를 즐겼다.
그는 군병원 외상과를 졸업한 후 바로 산부인과로 전과했다. 아마도 그의 손가락이 작고 예뻐서 그랬으리라. 20년 전의 병원 환경은 지금과 매우 달랐는데 남자 산부인과 의사는 인기가 없었다. 백 주임이 그 작은 손으로 매우 훌륭하게 위급한 임산부를 구한 바람에 응급 의학과에 간 지 채 삼 년도 되지 않은 그를 산부인과에서 빼앗아 갔다.
기기 설비가 그다지 발전하지 않았던 그 시절엔 남편이 타 지역에서 일하는 임신부와 위급한 임산부가 많았고 백 주임은 그 작은 손기술로 사람 목숨을 여럿 살려 생명과 가정을 지켜냈다.
지금 백 주임은 창서성 산부인과 병원 임산부 보건과 주임으로 영전하여 임산부 응급 의학과, 산부인과 1, 2, 3과, 위험 임산부과, 출산 전 진단 센터, 분만 센터를 관할하며 곽 주임보다 더 여유롭게 살고 있었다.
백 주임은 곽종군의 원군 중 가장 힘 있는 사람 중 하나이기도 했다.
경력 많은 의사로서 백 주임은 그간 의학 고수를 많이 봐왔다. 국내외 대타 의사도 많이 봤기에 그는 능연의 나이가 아무래도 못 미더웠다.
“이번에 우리가 이렇게 온 것도 자네 과 실제 상황을 알아보러 온 것 아닌가. 자네가 준비한 수술을 즐겁게 봤고, 이제 돌아가서 회의할 때 무슨 말을 해주길 바라나? 운화 병원 응급 의학과에 스물 몇짜리 초짜 의사가 재능이 아주 뛰어나서 30분 만에 무인구역 근건 문합술을 했다고? 회의에 온 사람들이 다 웃느라 회의를 진행 못 할 텐데?”
“30분이든 아니든,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아까 수술 봤잖나?”
“그래, 잘하긴 하더군. 그렇다고 해도 너무 허풍 떨면 안 되지. 운화 병원에 그 번 주임이라고 있지 않나? 부주임이던가? 그 의사도 탕 수술을 30분에는 못 하지. 하지만 빠르다고 잘하는 것도 아니지 않나? 다들 오래 의사질 해온 사람인데, 그걸 꼭 말로 해야 아나.”
“잘했는지 못 했는지는 환자 예후를 보면 알지.”
백 주임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하는 말에 곽종군은 인내심을 가지고 그의 물음에 답했다. 오래 알아 온 사이인 만큼 주거니 받거니, 합도 잘 맞았다. 곁에 있는 사람들도 각자 생각에 잠겨 있었다.
가까운 사이인 만큼 묻지 못한 말이 있었는데 두 사람이 나누는 이야기에 답을 얻었다. 백 주임은 슬쩍 미소 지으면서 곽종군을 향해 턱을 치켜들었다가 녹두떡을 하나 집어 들었다.
“안 되겠네. 오늘 다이어트 계획을 자네가 다 망쳤어.”
“그래, 그래, 내 탓이다.”
곽종군이 하하 웃으며 호응하자 한의학을 전공하는 포 주임이 싱긋 웃었다.
“녹두떡이 몸에 좋다는 건 명나라 의학자 이시진도 이야기하지 않았나. 더위를 피하고 병을 피할 수 있다고 말이야.”
사람들은 차와 곁들여서 녹두떡을 깨끗이 먹어치우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수술 준비됐습니다.”
“시작하라고 하게. 금방 가겠네.”
차와 떡을 어느 정도 즐긴 후에 누군가 나타나 보고하자 곽종군은 사람들의 잔에 차를 다시 채워주며 15분 정도 각자 볼일을 보고 다시 모여서 수술실에 가자고 권했다.
“역시 세심하군.”
백 주임은 그길로 화장실로 달려갔고 다른 의사들도 개인사를 처리했다.
단일 손가락 봉합하는 데 능연이 30분 걸린다고 한 것에 대해 다들 허황하다고 생각하여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곽종군조차 그가 지나치게 자신에 넘친다고 생각했다.
무인 구역이 아닌 근건 봉합이라면 30분도 가능했다. 오히려 시간이 남을지도 모른다. 데브리망 같은 경우에도 각종 근건 문합술을 사용하는데, 근건 두 가닥을 같이 꿰매면 되어서 매우 간단했다. 실력이 좋은 의사는 조금 매끄럽게 봉합하고 실력이 떨어지는 의사는 조금 삐뚤게 꿰맬 뿐, 큰 차이는 없었다.
그러나 일반 근건 문합술과 탕 법의 가장 큰 차이는 봉합 강도가 다른 것이었다. 흔한 Kessler법은 단선 봉합이다. 그러니까 실 한 가닥을 한쪽 근건에 넣으면서 동시에 다른 쪽 근건을 연결해 두 근건을 이어붙이는 식이다. 더블 Kessler법은 실 두 가닥으로 하나는 넣고 하나는 빼서 고리를 만드는 것이다.
탕 법은 실이 세 가닥인 데다가 근건 과도 손상을 막기 위해 실의 당기는 힘이 매우 정교해야 한다. 간단한 덧셈 뺄셈으로도 탕 법에 필요한 시간이 적어도 Kessler법의 세 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강도는 세 배 이상이 되어야 한다.
사실상, 탕 법으로 단일 손가락 봉합을 한 시간 안에 한다면 매우 빠른 편이었다. 수술 중 의외 상황까지 생각하면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까지도 정상 범위 안이었다.
그러니 능연이 말한 30분은, 적어도 운화 시에서는 매우 허황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의 마스터급 탕 법은 이미 시스템이 검증한 바와 같이 운화 제일의 실력이었다. 3천 번 수부 해부 경험까지 얻으면서 능연의 근건 수술 스킬은 한층 더 높아졌다.
그는 두세 번 만에 환자의 수부 피부를 절개해 파열된 근건 위치와 상태를 파악하고는 바로 실을 꿰서 잡아당겼다.
봉합은 의대생이 가장 먼저 배우는 기술이고, 능연도 가장 먼저 획득한 능력이었다.
마스터급 탕 봉합에 마스터급 단속 봉합법을 더하니, 능연은 여유롭게 트랜스포머 수준으로 근건을 꿰맬 수 있었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환자의 얼굴을 힐끔 보고 고개를 흔들며 다시 수술을 진행했다.
치익.
수술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곽종군과 백 주임 등 몇 사람이 웃고 떠들면서 안으로 들어섰다. 바로 그때 그들은 능연이 가위를 달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체크.”
“거즈 체크.”
거기까지 들은 의사들은 넋이 나갔다. 수술이 끝났다는 말임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사람들은 일제히 곽종군을 바라봤다.
“이런 식으로 연극을 하는 건 재미 없지.”
“이게 연극이면 차라리 수술대 위에 있는 걸 다 먹어 치우는 퍼포먼스를 하겠네. 능연! 벌써 끝났나?”
곽종군은 억울해서 꽥 고함을 질렀다.
“예. 30분 예정이었는데, 21분 걸렸습니다.”
능연은 고개를 들어 시계를 보면서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마연린을 바라봤다. 그는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아까 수술 시작 전에 알려드렸는데······.”
“수술 시작한 건 알고 있었네.”
곽종군은 손을 휘휘 내저었다. 기름진 녹두떡은 확실히 변비에 효과적이었으나 화장실을 다녀오느라 늦었다고 할 수는 없었다.
“다음은 얼마나 걸리겠나? 다음 수술도 단일 손가락이지?”
“환자는 벌써 3번 수술실에 대기 중입니다.”
마연린이 가로채 대답하는 말에 곽종군이 능연을 바라봤다.
“계속할 수 있겠나?”
“가능합니다.”
간단하게 대답한 능연이 연문빈을 바라봤다.
“나머지 봉합은 선생님한테 맡겨도 되죠?”
“어? 응! 그럼!”
회진은 늦었지만 수술할 기회를 잡은 연문빈은 순간 기뻐해야 하는지 걱정해야 하는지 생각하기도 전에 대답했다. 능연은 수술복을 벗어 쓰레기통에 넣고 다시 손을 씻었다. 그러고는 다음 바로 3번 수술실로 향하면서 곽종군을 바라봤다.
“그다음 환자 좀 재촉해 주십시오.”
계속할 수술이 있고, 환자만 있다면 능연은 힘들고 말고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알겠네. 이번 수술 잘하게.”
“네.”
3번 수술실로 들어간 능연은 문 쪽에 걸린 MRI 사진을 보면서 간호사가 입혀주는 수술복으로 갈아입었다.
“자네들 먼저 보고 있게. 난 전화 좀 걸고 오겠네.”
곽종군이 다른 사람에게 웃으며 말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치익.
치익.
곽종군이 10분 만에 돌아왔을 때, 백 주임 등 몇 사람이 멍청한 얼굴로 수술대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들 그러나? 시작했나?”
“거의 다 해간다네! 제왕 절개도 이렇게 빠르지 않다고!”
백 주임이 펄쩍 뛰었다. 곽종군도 놀라서 고개를 들어 능연을 바라보고는 헛기침을 두 번 했다.
“시간만 빠르면 뭐 하나, 퀄리티도 중요한 거 아닌가.”
“예끼 이 사람!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기는.”
입을 삐쭉거린 백 주임이 지금은 똥똥하고 짧아도 한때는 가늘고 짧았던 손을 내려다봤다.
‘이 능연이라는 놈도 근건 봉합에 천부적인 어떤 특이점이 있는 거 아닐까?’
“연문빈! 어디야?”
전화기를 든 왕가가 화가 나서 고함쳤다. 전화를 받은 연문빈은 즐거운 말투로 껄껄 웃으며 수술실이라고 곧 끝난다고 대답했다.
“아직 안 끝났다고?!”
왕가는 놀랍다는 듯 전화를 바로 끊고 코너를 돌아 2번 수술실로 들어갔다.
“연문빈! 능연 선생님 이제 수술 시작할 건데 지금 여기서 뭐 하냐고!”
“응? 아직 시작 안 할걸?”
한창 신나 있던 연문빈은 순간 무언가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시작을 안 하긴, 지금 3번 방 환자도 끝나고 1번 방으로 다시 갔는데!”
그 말에 연문빈은 넋이 나가 버렸다. 조금 전에 마친 봉합은 혹시라도 문제가 생길까 봐 일부러 속도를 줄인 바람에 평소보다 느리긴 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어도 지금보다 많이 빠르진 않았으리라.
그냥 일반 봉합하는 것도 아직인데, 탕 법으로 수술을 마쳤다는 것이 더 놀라웠다. 연문빈은 스트레이트 훅을 두들겨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가 다시 어지러워졌다.
“얼마나 걸리냐고!”
“금방이면 돼. 5분? 길어도 10분.”
연문빈은 어쩐지 뜨끔했다. 손가락 봉합 같은 건 그도 자주 하는 수술이었지만 그래도 시간을 줘야 할 거 아냐.
“난 못 기다리니까, 끝내고 알아서 3번 수술실 가서 환자 봉합해.”
“아, 응. 3번 수술실 환자 정말 끝났어?”
“20분 걸렸나? 그 정도였어.”
연문빈이 미심쩍은 듯 묻는 말에 왕가는 뿌듯한 듯 대답했다. 연문빈은 고개를 숙여 환자를 내려다보며 내심 수술에 숙달될수록 양적 변화가 질적 변화도 일으키는 것인가 생각했다.
“능 선생 다음 수술은 몇 신데? 나도 서둘러야겠다.”
“그럴 필요 없어. 곽 주임님이 정배 선생님 부르셨어.”
고개를 치켜든 왕가가 백조처럼 그 자리를 떠나자, 연문빈은 머리가 어질거리는 느낌이었다. 정배는 곧 치프가 될 선임 레지던트라서 연문빈보다 훨씬 높은 지위에 있는데, 능연의 어시스턴트를 시키다니. 그도 달가워하지 않으리라.
하지만 관점을 바꿔서 생각해 보면, 곽종군 입장에서는 치프 레지던트라도 그냥 레지던트일 뿐이겠지. 여유가 있을 땐 레지던트 심정도 고려하겠지만, 여유가 없을 때는 심정 따위 알 바 아닐 게 분명했다.
확실히 정배는 조금 언짢은 기분으로 1번 수술실에 있었다. 다만 곽종군이 곁에서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었고, 다른 병원 주임들도 잔뜩 있는 자리라 어쩔 도리가 없었다.
병원의 일반 의사, 특히 주치의 아래 의사들은 조심스럽다는 말로도 지금 상황을 설명하기에 부족했다. 그야말로 살얼음판을 걷는 분위기였다.
의사란 원래 시간이 흐를수록 편해졌지만 위로 오르는 길은 가시밭길 같은 직업이었다. 대 주임에게 밉보이느니 능연의 어시스턴트 따위, 대수도 아니었다.
수술 전 준비를 마친 정배는 정갈한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머리카락만큼 긴 수염을 가린 다음에 수술대 곁에 섰다. 능연은 그를 힐끔 보고는 펜으로 환자의 손에 선을 그렸다.
이번 환자는 손가락 세 개를 다친 환자였다. 한 손가락은 근건이 모두 파열되었고, 하나는 손상, 또 하나는 간단한 봉합만 필요했다. 벌써 네 번째 탕 수술이라, 곽종군이라도 더 쉬운 케이스를 찾기 힘들었다.
백 주임 등 몇 명은 숨을 죽이고 무영등 아래서 벌어지는 움직임을 지켜봤다. 그들은 능연의 수술 실력을 확실히 볼 필요가 있었다. 곽종군의 탕 항목이 성공인지 아닌지 판단하고, 그의 업적을 크게 부풀려 협회 이사장에게 보고할지, 아니면 나중에 있을 골칫거리를 피해 여기서 접을지 판단하기 위해서였다.
능연은 머릿속 가득 수부 해부에 관한 정보를 떠올리고 있느라 주변 사람의 시선은 전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는 원래 사람들의 시선에 익숙했다. 언제 어디서든, 사람 앞에 나타나기만 하면 당연히 화제의 중심이었고, 사람이 많은 곳일수록 더 그랬다.
수술실의 사람들이 더 음흉한 눈빛으로 그를 지켜본다고 해도 능연은 아무렇지 않았다.
메스가 가볍게 환자의 피부를 그었다. 상대적으로 강인한 수부 피부는 저항력이 별로 없어서 유심히 관찰해야 함몰을 알아볼 수 있었다.
정배는 곁눈으로 능연을 힐끔 봤다. 핑거팁 그립은 가장 흔한 메스 쥐는 방법이었다. 엄지를 칼등 아래 두고 손목의 힘으로 조작해서 상처를 길게 자르기에 적당하지만, 세밀하지 못한 단점이 있다.
물론 수술 시야를 확보하기엔 충분했다. 정배가 내심 자신과 능연의 실력을 비교해보니, 비슷하거나 그보다 조금 밑이거나 할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가 수술을 맡았다면 수부에는 펜슬 그립을 선택했을 것이다.
힘을 쓰는 포인트가 손가락에 있는 펜슬 그립은 짧은 거리의 세밀한 작업에 적합했다. 정배는 제가 펜슬 그립을 쓰면 지금 능연보다 능숙하게 메스를 쓰리라 생각했다. 그러자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물론 이는 시야 확보를 위한 메스질일 뿐이지만, 예후에도 조금의 차이밖에 없지만, 속도도 그다지 차이 나지 않지만, 그래도 어쩌면 체면을 조금 차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석션.”
그 말에 정신을 차린 정배가 고개를 돌리니 수술할 부위가 완전히 드러나 있었다. 깔끔하게 확보된 수술 시야를 보니 저도 모르게 수염을 쓰다듬을 뻔하다가 억지로 참았다. 그러고는 곧 석션한 후 소독을 하고 식염수 매트를 깔았다.
외과 의사들은 익숙한 수술 시야를 가장 선호한다. 그래서 그들은 매번 같은 위치에 조작해서 같은 조작 면을 끌어내고 혹시 불가능한 위치라면 방향을 바꿔 다음으로 익숙한 조작 면을 전개했다.
능연은 신경 써서 조작 면을 확보했다. 소독하고 매트를 까는 건 번거롭지만 빠질 수 없는 과정이었고, 그 방면은 특별히 잘하고 못할 것도 없으니 그런 일은 대부분 어시스턴트에게 맡겼다.
백 주임을 포함한 몇몇은 거기까지 지켜보면서 슬슬 미심쩍은 마음이 들었다. 대단한 수술 장면을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냥 일반 수준의 수술이었기 때문이다.
백 주임이 고개를 틀어 곽종군에게 물으려는 찰나, 수술대 분위기가 확 변했다. 능연은 아무렇지 않게 근건 하나를 뽑아내 니들 홀더를 바로 찔러넣었다.
들어가고 나오고, 나오고 들어가고.
수술실에 있던 사람들의 안색이 무더기로 굳어 버렸다. 그냥 저렇게 찔러 넣는다고?
근건을 꺼내서 바늘을 그냥 찔러넣으면 문제가 될까? 물론 아니다. 다만 일반적으로 의사들은 그 전에 다른 조작을 했다. 어떤 의사는 2, 30분을 써가며 근건을 다루기 쉽도록 다스렸다.
그런데 능연은 그런 과정 없이 바로 근건을 눈앞에 꺼내는 동시에 최적의 상태로 조절했다. 이는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얼마 없는 어려운 동작이었으며 탄탄히 다진 실력이 없으면 시도도 하지 말아야 할 동작이었다.
그러면 바늘이 들어가고 나오고, 나오고 들어가고 반복하는 건 문제가 있을까? 물론 그것도 아니다. 봉합이란 결국 바늘이 들어가고 나오는 과정이니, 그 과정이 얼마나 정교한가에 달려 있을 뿐이었다. 같은 바느질이라도 의사의 기술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오고, 거대한 차이를 불러오기도 했으니까. 액이 많이 나오거나, 오래 걸리거나, 손상을 쉽게 일으키거나, 체력이 소모되거나, 환자가 선호하지 않거나.
그래서 간단한 바느질이라고 해도 해본 의사들은 바로 구역을 3, 6, 9 등분으로 나눴다.
특히 백 주임 등은 처음부터 수술을 지켜봐 왔으니 능연의 목적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그리고 그가 제대로 판단했음을 이해했다.
우선 환자의 일부 근건을 벤 이유는 그 부분에 명확한 손상이 있어서일 텐데, 그럼 그 때문에 과하게 짧아진 근건은 어떤 식으로 보충할 생각일까.
두 곳의 혈관을 따듯하게 한 이유는 근건에 손상이 심해서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치지만, 그 때문에 근건 유착이 생긴다면 그 선택이 정확하다고 할 수 있을까?
쥐 죽은 듯 숨을 죽인 사람들은 머릿속에 이리저리 떠도는 생각을 정리했다. 그 짧은 십몇 분 동안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신분을 잊고, 모든 권모술수를 떠나서 순수한 의사 신분으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약 10분 뒤.
수술 시작한 지 30분 정도 되었을 때, 사람들은 서서히 정신을 차리면서 정상적인 생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런 C발.’
‘퍽!’
‘쉣!’
‘미친!’
다른 사람들은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고 백 주임만 그런 기분을 누르면서 남다른 생각을 했다.
“이봐 곽가야, 이따 저 능 선생 얼굴 좀 보자.”
“자네는 아직 자격이 안 될 텐데.”
곽종군은 잇몸을 드러내는 웃음을 지으며 능글맞게 대답했다.
“야 이 고집불통아! 잘 생각해보라고. 우리 임산부 보건원에 위원이 얼마나 많은가? 시로 넓히면? 이런 우수한 의사를 온종일 수술실에 가둬 놓는 것 자체가 범죄라고! 얼굴을 여기저기 드러내야 해!”
백 주임은 능연의 얼굴을 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새벽 네 시, 운화 시는 모든 소란이 잦아든 상태였다. 주정뱅이가 있는 세상과 그 주정뱅이를 치료하기 위한 병원에만 최소한의 소음이 유지되고 있었다.
하품을 한 연문빈은 응급 병동으로 들어가 흐느적거리면서 사람들과 인사를 했다. 그러고는 수술 구역으로 들어가 목욕실로 향했다. 목욕을 끝내고 새 수술복으로 갈아입은 후 수술실로 들어가 보니 정신이 말짱한 능연과 커피를 미친 듯이 들이붓는 마연린이 보였다.
“나 왔다.”
연문빈은 마연린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곤 캔 커피 하나를 빼앗아서 뚜껑을 따서 입으로 쏟아 넣었다.
“적어 두겠습니다.”
“그냥 싼 거 먹지 그랬냐. 인스턴트 타 마시면 되잖아. 다 같은 커피인데 무슨 차이가 있다고.”
“엄청나게 차이 나죠. 산미, 향기, 순도, 여운, 다 다르거든요.”
연문빈이 하하 웃으면서 하는 말에 마연린은 그를 흘기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새벽, 4시 18분에 지금 커피 맛 설명하는 거냐?”
“저도 시간 없어서 캔 커피로 타협한 겁니다.”
“돈도 많다.”
군것질을 한 연문빈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는 이제 마연린을 배척하지 않았다. 배척하려야 할 수도 없었고, 중요한 건 일주일 동안 능연의 수술량이 급증해서 날마다 네다섯 건이 이어진다는 점이었다. 훅맨을 하는 것만으로도 지쳐 쓰러질 것 같아서 오히려 마연린이 반쯤 부담하길 바라고 있었다.
사실 수술 다섯 번은 대부분 의사가 코웃음 치는 횟수였다. 선배, 스승, 매제, 마누라 남편, 남편 선배······ 의사들도 모두 하루에 다섯 번은 우습게 수술했다. 하지만 그 수술 앞에 ‘수부외과’, ‘신경외과’, ‘흉부외과’ 같은 특정 단어를 붙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대단한 의사들도 가끔 다섯 번 연속 수술하고 나면 한동안 수술실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물론 ‘안과’, ‘구강과’ 같은 단어가 붙는 일반 의사들은 하루에 다섯 건은 일도 아니었고, 특히 벼락부자인 안과 의사는 하루에 10건은 기본이어서 일반 주치의는 하루에 수술비를 천 위안도 벌었다.
연문빈도 처음엔 안과 의사의 수입을 부러워했었지만, 막상 갑자기 수술비를 천 위안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되자 부럽지 않아졌다.
옛날엔 추가 근무를 하고도 집에 가면 핸드폰을 보다가 잠들었었다. 하지만 능연이 수술 시간을 앞으로 당긴 후부터는 점점 늦게 잘 엄두를 못 냈다. 오늘은 아예 4시 반에 수술 시작을 잡으니 연문빈은 아예 인내심을 잃어버릴 지경이었다.
“수술할 수 있겠어요? 힘들지 않아요?”
능연은 스팀 타월로 손을 닦으며 조수 두 명에게 물었다.
“아니! 안 힘든데?!”
“괜찮아. 견딜 만해.”
연문빈은 큰 소리로 대답했으나 마연린의 목소리는 어쩐지 힘이 없었다.
“좋습니다. 오늘 수술은 세 건뿐이에요. 다 하나 아니면 두 개라 좀 서둘러서 7시에 끝내도록 하죠. 늦어도 8시를 넘기지 말자고요.”
연문빈과 마연린 모두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수술 세 건을 세 시간으로 잡은 건 능연으로서는 여유롭게 잡은 것이었다. 예기치 않는 사고에 대처할 시간을 한 시간이나 잡았으니 아마도 충분할 것이다.
연문빈은 못 견디고 하품을 한 다음 일부러 잡담을 시작했다.
“운화 응급 국제의학 포럼 9시 시작 아니야? 윈덤 호텔은 바로 코앞에 있으니까 8시에 출발해도 충분해.”
마연린이 미친 듯이 눈치를 주자 그는 뭔가 깨달은 듯 말을 멈췄다. 능연이 앞장서서 걷기 시작하자 마연린은 두려운 듯 눈을 찡그렸다.
“미쳤어요? 충분하다니요. 그러다가 수술 하나 더 집어넣으면 어쩌려고요.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거든요!”
“잠이 모자라다 보니 머리도 모자라졌나 봐, 내가.”
연문빈은 제 입을 톡톡 쳤다.
“어제 일찍 들어갔잖아요.”
“주문한 족발 6kg, 닭 두 마리, 그리고 오리 날개, 닭 날개 그런 게 와서 졸여놓느라 몇 시간 못 잤어.”
마연린이 마시던 커피를 건네며 “내 허벅지도 있죠?”하고 물었다. 그러자 커피를 홀짝거리며 마시던 연문빈은 바로 그를 노려봤다.
“삐쩍 말라서 허벅지 같은 소리 하네. 쯧. 졸여놨어. 통통한 놈으로. 이따 돈 내라.”
낄낄거리던 연문빈이 수술실로 들어갔더니 능연은 벌써 선을 다 그려놓고 있었다. 연문빈은 아무런 말도 없이 수술대로 다가가 훅을 잡았다. 퍼스트 어시스턴트를 오래 하다 보니 점점 요령이 생겨서 뭘 해야 하는지, 집도의가 뭘 하려는 건지 기본적으로 명확하게 감이 왔다. 시간이 일러서 동작이 기계적이긴 해도 안정적으로 할 일을 마무리했다.
수술을 마친 능연은 다른 수술실로 갔고, 연문빈은 전처럼 남아서 마무리 봉합을 했다.
마연린은 다른 수술실에서 막 수술 준비를 마치고 능연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능연은 연달아 수술 세 건을 진행했다.
세 환자 모두 어제 오후에 굴근건 손상 사고를 당한 상태로 새벽에 운화 병원에 도착했다. 정상 상황이라면, 보통 그다음 날 이른 아침에 수술이 잡혔겠지만 능연은 수술을 몇 시간 당김으로써 대기 시간을 줄였다.
수술 세 건을 완성하고 한바탕 검사한 다음에 간호사가 환자 스트레처 카를 끌고 나갔다. 능연은 그제야 흡족한 마음으로 화장실에 들렀다가 시간이 아직 여유로운 걸 보고 느긋하게 세수를 하고는 옷을 갈아입었다.
그때, 그의 ‘탕 법 연마’ 퀘스트 진도도 (50/10)으로 늘었다. 그리고 스태미너 포션도 12병으로 늘었다. 그 후로 나타난 보물 상자는 큰 기쁨을 가져다주지 못했지만, 스태미너 포션 자체로도 만족스러웠다.
사실상 근래 2주 동안 곽종군이 끝도 없이 데려다 놓은 환자가 가장 그를 기쁘게 했다. 규모가 작은 병원이었다면 하루에 네다섯 번은커녕 하루에 평균 한 번도 어려웠으리라. 수부외과에서 호시탐탐 노릴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능연은 현재 상태에 몹시 흡족했다. 할 수술이 있는 데다가 절실한 환자를 도울 수도 있었다. 모든 상황이 질서정연하게 순조로우니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윈덤 호텔 컨벤션센터 문 옆에 대형 홍보 포스터가 세워져 있고, ‘운화 응급 국제의학 포럼’이라고 적힌 금색 글씨가 그사이에 눈에 띄게 적혀 있었다.
포스터에는 별 모양을 배경으로 응급 외과 의사 여러 명이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는데, 포토샵을 거친 곽종군, 백 주임, 그리고 수많은 운화 병원 대장들이 피라미드 모양으로 줄지어 있었다. 앞에 있을수록 머리가 컸고, 맨 뒤에 있는 건 비교적 낯선 젊은 의사였다.
잘생기고, 멋지고, 스마트했다.
“이 사람은 배우 같은데? 이름이 뭐지? 검색해 볼까?”
회의에 참석한 여자 의사 하나가 빙긋 웃으며 모멘트(일상 사진이나 짧은 영상을 올려 위챗서 관계를 맺은 사람들과 친교를 맺는 인앱 서비스)에 올릴 제목까지 다 생각해놓고 핸드폰을 꺼냈다.
“안녕하세요. 포스터에 있는 의사는 모두 응급 의학에 종사하는 의사랍니다. 이분은 아마 운화 병원 응급 의학과 소속일 겁니다.”
회의 준비를 맡은 창서 제약 회사 직원들이 사전에 지시받은 대로 말했다.
“운화 병원 뉴페이스?”
의사가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다는 듯 묻는 말에 제약 회사 직원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의사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포토샵이 너무 심한데?”
“이분은 전혀 안 했습니다.”
“말도 안 돼.”
“이번 회의 소개 책자에 다른 사진도 있는데 한 번 보실래요?”
직원은 잡지처럼 보이는 책자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제약 회사는 의사에게 주는 리베이트만으로는 관계가 유지될 수도, 길게 갈 수도 없었다. 하여 갖가지 학술회의와 학술 포럼은 진작에 제약 회사의 업무 중 하나가 되었다.
동시에 회사의 최대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서 최대한 많은 의사를 초대하는 것도 제약 회사의 목표 중 하나였다.
의사가 직원이 가리키는 대로 책자를 넘겼더니 맨 마지막에 정말로 잘생긴 의사의 사진 여러 장과 소개가 적혀 있었다. 사진 중 몇 장은 일상 생활 속 모습이 담겨 있었다.
“열 몇 건의 탕 봉합 수술 참여 및 성공? 곽종군 제자였어? 곽종군이 언제부터 수부외과 수술을 한 거야?”
혼잣말을 중얼거린 의사는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는 모멘트가 아닌 위챗을 열어 ‘언니’를 클릭했다.
“언니, 사진 보낸 거 봤어? 우리 조카님 눈이 아주 높다며? 이런 남자 어떤지 물어봐. 괜찮다면 지금 바로 윈덤 호텔로 오라고 해. 의사인데 잘하면 우리 집안사람이 될 수도 있겠는데?”
의사는 사진을 잔뜩 보낸 다음 위챗 통화를 눌러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비슷한 시간에 다른 여자 의사 두 명이 함께 호텔 지하 의류 매장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바로 직원이 다가가 싹싹하게 그들을 맞았다.
“우리 이 선생한테 어울리는 옷 좀 골라줘요. 몸매를 잘 드러낼 수 있는 거로. 학술회의에서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날 줄 누가 알았겠어.”
의사 하나가 하는 말에 직원이 단숨에 계절 신상품을 여러 벌 가지고 다가갔다. 의사들은 가격표도 보지 않고 옷을 걸치고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비춰봤다.
“언니도 사려고?”
“오늘 온 의사들 수준이 높아. 나도 마음에 드는 사람 만나면 어떡해.”
거울을 보던 이 선생이 의아한 듯 묻자, 다른 의사는 잠시 멈칫했다가 한참을 고민한 다음 대답했다.
“그럼 언니 남자 친구는?”
“그게 무슨 남자 친구야. 그냥 헬스장 카드지.”
“헬스장 카드?”
“없으면 하나 만들어야 하는데, 만들어 놓으면 쳐다보기도 싫은 거.”
일제히 웃음을 터트리는 두 사람의 미소에 플라스틱 질감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