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에 참여하는 사람이 늘어나자, 이번에 참여한 응급 의학회 위원의 자부심도 늘어났다. 강연을 들으러 오는 사람이 많으면 강연자가 그만큼 존경받는다는 뜻이니, 그만큼 통쾌한 일도 없었다.
높은 사람들의 연설이 왜 항상 구구절절 긴 줄 아는가? 바로 통쾌하기 때문이다.
의학 전문가로서 환자에게 인정받는 성과? 이미 이뤘다. 하지만 동종 업계에서 인정받기는 여전히 멀고 멀었고 끝이 없는 과정이었다.
청중이 열 명밖에 없으면 강연이라고 할 수 없고, 50명이라도 대단할 것이 없었다. 자신의 강연을 듣기 위해 자발적으로 온 사람이 적어도 백 명은 되어야 조금 재미있어졌다.
운화 시를 통틀어 응급 의사도 얼마 없다. 스물 몇 개 있는 삼갑 병원에 의사가 몇백 명 근무하고 있을 뿐이고, 얼마 안 되는 삼을, 삼병급 병원까지 쳐도 그 수가 많이 늘지 않았다. 다른 과 의사들을 불러내기는 더욱 어려웠다. 다들 바쁘고 힘든 사람인데, 주절주절 늘어놓는 이야기를 누가 듣고 싶어 할까.
수하 초짜 의사들은 주임이 급하게 굴면 급해지고, 찾는 게 있으면 나서서 찾아야 하는 존재들이었다. 그러므로 자유로워 보이는 점심 식사는 사실 주임의 강연을 들어줄 사람을 찾느라 암운이 감도는 우울한 시간이었다.
“진 선생, 2시에 들을 강연 결정했어? 3번 홀 오지 그래?”
“왕 선생, 지난번에 자체 수혈 논문 썼지? 이번에 우리 주임님이 그 주제로 강연하셔.”
“전 선생님, 또 뵙는군요. 오늘 강연 몇 개나 들으실 생각입니까?”
빵 두 개를 허겁지겁 먹은 주 선생이 다시 레스토랑 안을 서성거렸다. 오전엔 병원으로 출근해서 업무를 처리한 다음, 포럼장으로 와서 심부름을 하고 있었다.
곽 주임을 도와 깃발을 흔들고 고함치는 일을 한두 번 한 것도 아닌데, 오늘은 정말 땀 냄새가 날 정도로 바쁘게 뛰었지만 별 성과가 없었다. 그는 능연 곁에 털썩 주저앉으며 투덜거렸다.
“오늘은 사람도 많이 왔는데, 왜 이렇게 사람 모으기가 힘들지?”
“사람 모아야 해요?”
능연은 베이컨을 건네러 온 여자에게 살며시 미소 지었다. 그 후 접시를 테이블 가득 늘어선 음식 사이에 놓고는 입 안에 소고기를 삼키고서야 겨우 되물었다.
“안 하고 손 놓고 있으면 다른 사람이 끌고 가니까. 지금 부지런히 사람 모아둬야지, 이따 강연할 때 사람이 없어 봐. 곽 주임님 얼굴이 어떻겠······ 하아, 상상하지 말자, 말아.”
그 모습을 상상하던 주 선생은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곽 주임님 얼굴 때문에 사람을 모아야 해요?”
“그뿐이 아니고. 요즘 기술 발전이 얼마나 빠르냐? 그런 신기술을 다 어디서 듣겠어?”
능연은 모르겠다는 듯 주 선생을 바라봤다.
“네 가지 통로가 있지. 첫째, 병원 정책. 위에서 채택하고 싶은 기술이 있으면 자료를 우리한테 보내지. 둘째, 의사가 알아서 배우는 거야. 논문, 동영상, 책 이런 걸 보면서. 세 번째, 제약 회사 소개를 통해서. 네 번째, 바로 이런 의학 포럼을 통해서야. 대장이 위에서 이야기하고 우리는 밑에서 듣는 거지. 아무리 몰라도 어느 정도는 귀에 들어올 거 아니야. 나중에 필요해질 때가 오면 대장의 기술이 이거였구나, 싶어지는 거지.”
“그러니까 자기가 개발한 기술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라는 거네요?”
“꼭 자기 기술이 아니라도 돼. 그래도 다들 입장이 있을 거 아냐. 우리 곽 주임님처럼. 회의 때마다 대형 응급 의학과를 외치니까, 곧 응급센터가 생기잖아. 요즘 얼마나 싱글벙글이시냐. 이번에 성공하면 앞으로 사람들이 운화 시 응급센터를 떠올릴 때마다 누굴 떠올릴까? 당연히 곽 주임님 아니겠어?”
주 선생은 뿌듯한 표정이었다. 대장의 세력이 커지면 그 밑에 사람도 많아지고, 그렇게 되면 자신이 게으름을 피워도 티가 안 나겠지. 5팀 중에 누군가 게으름을 피우면 바로 티가 나지만, 40팀 중에 25명이 게으름을 피운다면 그러려니 넘어갈 것이다.
“그럼 저도 곽 주임님 강연 들어야겠네요.”
“안 그럴 생각이었어?”
“재미있는 강연 들을 생각이었죠.”
능연은 루웨이(간장에 오뎅, 두부, 채소 등을 조린 음식) 한 접시를 먹고 슬슬 배가 불러 단호하게 빈 접시를 젓가락 받침대 위에 세웠다. 그러자 음식을 가져다 바치던 여자들은 아쉬움이 가득한 얼굴로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질투 나는 광경에 주 선생은 눈꺼풀이 팔딱팔딱 뛰는 걸 느꼈다. 아예 못 본 척 고개를 돌리다가 순간, 아이디어가 번쩍 떠올랐다.
“응? 능 선생 오후 2시 3번 홀 연설을 들을 거라고? 그래, 그럼 그렇게 하는 거다. 내가 미리 자리 잡아놓을게.”
“예?”
갑자기 연기톤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주 선생의 모습에 능연이 의아한 듯 그를 바라봤다. 주 선생은 세상을 통찰하는 미소를 지으며 여전히 큰 목소리로 대사를 읊었다.
“오후 2시 3번 홀 강연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더라고. 능연아 그 강연 들으려면 우리 지금 가서 자리 맡아야 해.”
“네, 알겠습니다.”
“잠시만, 나 전화 좀 하고.”
주 선생은 핸드폰을 꺼내 버튼 하나 누르지 않고 귀에 가져다 댔다.
“저기, 나랑 능연, 능 선생은 결정했어. 우리는 오후 2시, 3번 홀 강연 들을 거야. 응응응. 맞아. 곽종군 주임 의사 강연. 당연히 끝까지 들어야지. 응응응. 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고. 1시 40분에 만나.”
전화를 끊은 주 선생은 뿌듯하고 후련하고 기쁜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이유 모를 슬픔도 아주 조금 느꼈다.
오후 1시 55분, 곽종군은 백스테이지에서 3번 홀로 들어갔다.
그가 살짝 고개를 숙이자 머리카락이 에어컨 바람에 흔들렸다. 손에 쥔 강연 원고는 요즘 조금씩 시간을 내 정리한 내용이었다. 그는 한때 무수한 생명을 구했던 손을 내려다봤다. 길고 마른 주름 많은 손가락은 곧 에너지가 다 빠져 버릴 것 같았다.
실소하던 곽종군은 내심 자신을 위로하며 응원했다.
‘몸은 내리막길을 걷지만 경력은 정상에 있잖아. 내 생각을 전파할 수 있고, 대형 응급실을 잘 꾸려갈 수 있어.’
수많은 시간이었다. 중압감을 견뎌내고, 피로를 견뎌내고, 책임과 관례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포기와 유지 사이에서 뛰는 심장을 느껴온 수많은 시간. 지금 그 심장이 끊임없이 펌프질하며 대뇌에 피를 공급하면서 곽종군의 얼굴에 혈색을 돌게 했다. 그는 전에도 수백, 수천 번 그래왔던 것처럼 살며시 고개를 들었다.
백여 명이 들어올 수 있는 3번 홀에는 빈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통로에 서 있는 사람도 있었다. 곽종군의 노련한 심장이 맹렬하게 뛰었다.
“사람이 참 많이도 왔네요. 잘못 오신 건 아니죠?”
슬쩍 농담을 던지고는 바로 후회했다. 뭔 이런 유치한 농담을.
사람들이 살짝 웃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이 많으면 청중이 더 적극적으로 피드백한다는 장점이 있었다.
더할 나위 없는 편안함을 느낀 곽종군은 크게 웃음을 터트렸고, 말투도 곽종군스럽게 변했다.
“이렇게 시간 내주시고 성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곽종군의 강연을 들으러 오셨다는 건, 여러분도 대형 응급센터에 관심이 있다는 거겠죠. 그런데, 오늘은 때가 아닙니다. 곧 응급센터 투표가 있거든요. 표를 끌어들이려고 한다는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오늘은 다른 주제를 가지고 왔습니다. 자체 수혈에 관한 주제입니다.”
그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계속했다.
“자체 수혈이란 말, 당연히 다들 들어보셨으리라 믿습니다. 자체 수혈은 일반 수혈보다 많은 장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금 서서히 퍼지고 있는 혈액 위기, 이건 홍보나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의사로서 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대응 방안이 바로 자체 수혈입니다.”
홀을 가득 채운 청중을 바라보는 곽종군은 기분이 매우 좋았고, 강연 효과도 덩달아 높아졌다. 청중이 점점 집중하면서 앞을 바라보자 기분이 더 좋았다. 얼마나 흥분했던지 두 번째 줄에 앉아 있는 능연과 주 선생을 알아채지 못할 정도였다.
그는 멀리 뒤쪽으로 시선을 두고 특정 인물을 바라보지 않은 채 웅장한 목소리로 기세등등하게 연설을 계속했다.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현직 의사였고, 알 만한 의사들은 거의 모였음을 확신했다. 삼급 병원 응급 의학과 의료 종사자는 더욱 좁은 바닥이니,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익숙했다.
낯선 의사들도 있고 여자 의사들의 비율이 좀 높긴 해도, 곽종군은 의사 특유의 동질감을 은연중에 느낄 수 있었다.
“자체 수혈엔 물론 폐단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관리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고요, 당장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그 균형을 잡을지, 그것이 바로 우리의 당면 과제입니다.”
흥분해서 이야기하던 곽종군은 끝낼 시간이라고 코치하는 손짓에 그제야 결론을 짓기 시작했다. 시종일관 조용히 앉아 있던 주 선생도 그제야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됐다. 적어도 일주일은 기분 좋게 보내시겠어. 우리도 잘 보낼 수 있다는 얘기지.”
주 선생의 잘 보낼 수 있다는 말은 즉 게으름을 피울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 능연은 힐끔 그를 바라봤다.
운화 병원 외과 회의실에 금서 주임, 왕해양 주임 의사 등 몇 사람이 진지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갑자기 귀국한 번화 부주임과 그와 함께 온 일본 의사 하시모토 지로도 조용히 그들 맞은 편에 앉아 있었다.
장년에 접어든 번화는 예리한 두 눈을 번뜩이며 집중했다. 그는 살며시 사람들을 둘러보며 미소 띤 얼굴로 입을 열었다.
“하시모토 지로 교수는 일본 게이오 대학병원 정형외과 부교수입니다. 수년 동안 수부 무인 구역을 전문적으로 연구해 오셨죠. 바쁘고 수술도 많은데, 겨우 틈을 내 우리 병원에 와주셨답니다. 며칠 계시는 동안 서로 많은 교류를 할 수 있길 바랍니다.”
하시모토 지로 귓가에 통역하여 낮게 속삭이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시모토 지로는 번화보다 몇 살 어려 보였다. 통통하고 작은 키에, 눌린 얼굴에 피부도 거칠었는데, 두 손이 유독 하얗고 부드러운 걸 보니 특별히 신경 써서 가꾼 듯했다.
금서 주임 등 몇 명이 하나같이 환영하는 마음을 나타냈다.
운화 병원은 운화 시 혹은 창서성 내에서는 정상급 병원이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게이오 대학에 비하면 당연히 약세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하시모토 지로는 예의를 갖춰서 몇 마디 대답했고, 금서 주임 등은 더욱 예의를 갖춰서 대답하면서 분위기가 더욱 좋아졌다.
외국 전문가를 초빙하는 일 자체가 어깨가 으쓱할 일인데, 번화가 하시모토 지로를 다 불러오다니, 금 주임은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기뻐했다. 하시모토는 헛기침하고 일본어로 입을 열었다.
“제가 듣기로는 이 병원에 젊은 응급 의학과 의사가 있다고 하던데요. 최근에 탕 봉합 수술을 수십 건 완성했다고요. 제가 한 번 볼 수 있을까요?”
그 말을 들은 금서 주임의 얼굴에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
“응급 의학과 수술을 보고 싶다면 준비해 보겠습니다.”
“수술도 보고 싶지만 수술한 환자가 더 궁금하군요. 수술 결과는 그 수술의 과정을 보여주니까요.”
“응급 의학과는 우리 수부외과 소속이 아니라서요. 응급 의학과 업무를 제가 결정할 수도 없고, 응급 의학과 회진은 더더욱······.”
금서 주임이 바로 그 요구를 거절했다.
“병실에 갈 거 있나요. 환자분을 모셔와서 수부외과에서 검사하면 되지요. 어차피 환자 재활을 우리 과에서 한다면서요? 정말 장난하나.”
번화의 말에 금서는 안색이 흐려져서 일을 크게 벌이지 말라고 눈빛으로 경고했다.
통역이 하시모토 지로에게 이야기를 시작하자, 금서 주임과 번화 모두 정신 차린 듯 말을 멈췄다. 하시모토 지로는 작게 고개를 내저었다.
“여러분은 지금 무인구역 근건 봉합 명성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반감을 느낀 왕해양이 눈살을 찌푸렸다.
“수부 무인 구역 근건 봉합은 의료 자원을 소모하는 수술입니다. 의사 한 명이 온 정신을 집중해서 여러 시간 투자해야 하는 수술이니까요. 우리 일본에서는 유사한 봉합 수술 한번 결정하는 데 아주 긴 시간 토론한 후 결정을 내립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렇게 무모하게 단숨에 수십 건을 진행하다니요. 좀 못마땅합니다. 중국 수부외과 수술을 높이기 위해 양으로 밀고 나가다니요. 이건 아주 잘못된 방식입니다.”
“하시모토 선생님······.”
작정한 듯 줄줄 내뱉는 하시모토의 말에 번화는 고개를 흔들었다. 하시모토는 그런 그를 슬쩍 보고는 말투를 조금 누르며 말을 이었다.
“횟수를 줄이고 집중하는 방안을 선택하면 의료진의 부담도 줄일 수 있고 봉합 성공률과 효율도 높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방향으로 노력하셔야 해요. 수술을 위한 수술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하시모토 선생님, 중국은 사정이 다릅니다. 수술이 필요한 환자가 너무 많아요. 멈춘다고 멈출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금서가 부드럽게 하시모토와 맞섰다. 하지만 하시모토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줄 선 환자가 많다면 단지(單指) 봉합, 심근건 봉합에 적합하지 않은 환자를 골라 과감하게 절지 수술을 해야지요. 그런 식으로 다른 환자에게 더 신경을 써야 합니다. 골초인 환자가 있다면 봉합이 아니라 바로 절단 수술을 해야 하는 것처럼요.”
니코틴은 혈관 경련을 일으키므로 봉합한 손가락에 괴사 현상이 일어날 수 있어서 단지 재이식 수술은 절대로 금기시했다.
“우린 환자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치료합니다. 환자가 금연하겠다고 하고, 봉합할 필요성이 있다면 우린 당연히 최소한의 기회를 줘야 합니다.”
왕해양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금연이 쉽나요? 환자가 따르게 하는 건 더 어렵죠. 미국 집중 의료 시스템엔 배울 점이 많습니다. 그래서 일본에서도 추진하고 있고요. 그런데 중국은······.”
하시모토는 주위를 한번 둘러보고는 미소 지었다.
“어쨌든, 우선 중국 병원 응급 의학과에서 봉합한 무인 구역 탕 봉합 수술을 일단 보고 난 다음 의료 개혁에 관한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나누는 게 어떻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