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33화 (28/877)

응급 의학과에서 탕 봉합을 받은 모든 환자를 수부외과 재활실에서 찾을 수 있었다.

탕 법 항목이 응급 의학과에 막 생겨난 상태인 데다 완전한 재활 체계가 잡히지 않아서 수부외과 재활실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환자들도 옛창고를 개조한 응급 의학과 재활실이 아닌 넓고 밝은 수부외과 재활실을 선호했다.

금 주임 일행이 도착했을 때, 수부외과 환자 열 몇 명이 굴근건 손상 재활실에서 각자 재활 운동 중이었다. 하시모토 지로는 팔짱을 끼고 흥미 가득한 얼굴로 그들을 지켜봤다.

“이 환자 중 절반은 완전한 수부 기능을 회복할 수 없습니다.”

“테스트도 하지 않고 어떻게 그렇게 결론짓는단 말입니까?”

자신만만한 하시모토의 발언에 왕해양이 버럭거렸다.

“테스트해 봐도 결과는 같습니다. 테스트 결과로 설득해 보세요.”

“그럴 거 없습니다.”

자신감에 넘쳐서 턱을 치켜든 하시모토의 모습을 보며 금서는 고개를 저었다. 자기 과 의사가 외국 전문가와 다투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게다가 그의 생각도 하시모토와 비슷했다. 환자의 수부 고정 상태를 보면 환자가 수술 후 어느 단계인지 짐작할 수 있어서 회복 상태만 봐도 간단한 테스트를 한 것과 동일한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그런 안목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하시모토의 비범함을 알 수 있으니 왕해양은 은연중에 기가 죽었다. 하시모토는 재활실에서 환자들의 동작을 관찰하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선진국과 선진 지역의 의료인은 모두 공감할 겁니다. 수부 수술, 특히 복잡한 수술은 기능 회복이 최우선으로 고려할 원칙이라는 걸요. 여러분은 환자 손만 꿰매놓았을 뿐, 움직임을 보장하지 못했죠. 아주 무책임한 일이랍니다.”

“그러니까 당신 얘기는 회복할 수 없는 손가락은 잘라버리는 게 낫단 말입니까?”

중년에 접어든 왕해양은 그런 이론엔 언제나 콧방귀를 뀌었다. 그런데 하시모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의료 자원 부족 문제는 객관적으로 봐도 실존하는 문제입니다. 기능을 회복할 수 없는 손가락을 절단해서 의사와 의약 자원을 절약해야만 다른 환자가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저희는 지금도 환자들이 받아야 할 혜택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그런가요? 운화 병원 수부외과에서 자주 환자의 도움 요청을 거절하거나 경상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보낸다고 알고 있는데요.”

왕해양은 말문이 막혔다. 창서성에서 이름을 날리는 운화 병원에는 천릿길도 마다치 않고 찾아오는 환자들이 몰리고 있어서 부담이 큰 것도 당연했다. 그러니 병세가 심각하지 않거나, 혹은 운화 병원에서 치료하기 적합하지 않은 환자는 트랜스 하거나 진료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었다.

“지금 중국 국내 추세가 그렇습니다. 양방향 트랜스는 일반적인 일이에요.”

금서는 그런 질문을 한두 번 받은 것도 아니라서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하시모토는 굵고 짧은 목을 흔들어 댔다.

“세계의 추세를 따라 절지율을 높인다면 환자 만족도를 더 높일 수 있을 테지요.”

“환자로서는 제 기능을 하는 것만큼 완전한 신체가 중요합니다.”

왕해양은 이야기하면 할수록 분통이 터졌다.

“중국인은 신체 발부 수지 부모라는 말이 있듯이 신체를 꼭 기능성 작용으로만 보지 않습니다. 절지율이 낮다고 해서 꼭 성공률이 낮은 것도 아니고요.”

“의사의 체력엔 한계가 있죠. 6시간이나 걸려 실패한 굴근건 봉합을 두 건 하느니 차라리 4시간 들여 성공한 굴근건 봉합 한 건 하는 게 낫습니다. 이 사람들이 모두 그 응급 의학과 젊은 의사가 수술한 환자입니까?”

“지금 여기에서 응급 의학과에서 온 환자는 두 명뿐입니다. 나머지는 다 수부외과 환자예요.”

피식, 무시하는 듯 웃던 하시모토가 금세 웃음을 감추면서 앞쪽을 가리켰다.

“흠, 제가 맞춰 보겠습니다.”

하시모토는 맞추기 게임을 하는 것처럼 손가락으로 사람들을 이리저리 가리키며 고민에 잠겼다. 그런 그의 악취미를 잘 아는 번화는 조용히 그를 지켜봤다. 아까 환자를 관찰하면서 어느 정도 결론을 내린 하시모토는 지금 주위 의사들의 표정을 더 유심히 살폈다.

후배 의사를 관리하는 직책을 어깨에 짊어진 일본 의과 대학 부교수 하시모토 지로는 예리한 통찰력으로 파헤친 진실을 폭로하는 놀이를 가장 즐겼다.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비범한 의술과 예리한 통찰력을 가진 의사 하시모토 지로!

환상 속에 잠시 즐기던 하시모토가 다시 고개를 들고 맨 오른쪽 환자 두 명을 가리켰다.

“우선 저 두 사람은 배제하죠.”

하시모토는 안전한 제거법으로 한창 재활 중인 두 사람을 골라내고는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제가 틀린 게 아니라면, 저 두 사람은 번 선생만큼 상당한 실력을 갖춘 의사가 수술했겠죠? 아마도 금서 주임님?”

하시모토는 그렇게 말하면서 사람들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자신의 뛰어난 의학 기술로 냉철하게 분석해 진상을 추론해 내는 그 순간을 가장 좋아했다.

통역사는 착실하게 그의 말을 사람들에게 전했다. 하시모토는 사람들의 입가가 올라가는 것을 보고 놀랐다.

“에? 금서 주임님이 수술한 게 아닙니까?”

하시모토는 저도 모르게 왕해양을 바라봤다. 아까 왕해양을 무시했는데, 지금 그의 수술을 칭찬한 셈이니 그래서 사람들이······. 사람들이 비웃는 이유에 대해서 내릴 수 있는 유일하고 정확한 해석이었다.

“저 두 사람이 바로 응급 의학과 능 선생의 환자입니다. 그러니까 응급 의학과 젊은 의사가 집도해서 진행한 수술 말이죠.”

금서 주임은 이야기하면서 슬쩍 미소 지었다.

“능 선생이 지금 이런 평가를 듣는다면 매우 기뻐하겠군요.”

금서 주임은 웃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러자 하시모토의 얼굴이 바로 굳었다. 맞추기 게임을 오래 즐겨온 만큼 실수할 때도 있었지만, 이토록 머쓱한 적은 처음이었다.

“번 주임, 테스트 한 번 해봐도 되겠습니까? 카네코 츠바사 법으로요.”

중국에서 자주 사용하는 수부 기능 평가인 금자익 법과 달리 하시모토가 자주 사용하는 방법은 카네코 츠바사 법으로 난이도가 더 높았다. 이 평가 방법은 일본인 카네코 츠바사가 발명한 수부 동작 검사법으로 모두 열 가지 세밀한 동작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의 말에 따라 번화가 꺼낸 검사용 박스에 나무 블록과 플라스틱 공이 담겨 있었다.

번화는 응급 의학과 환자 두 명을 찾아가 상황을 설명하고 첫 번째 환자를 불러 테스트를 진행했다.

“먼저 오른쪽 칸에 있는 큰 공을 하나하나 왼쪽으로 옮겨 주세요. 시간이 빠를수록 점수가 높습니다. 제가 하나, 둘, 셋 하면 시작해 주세요.”

곁에서 설명을 마친 번화가 초시계를 꺼내 세팅을 마치고 숫자를 셌다. 그러자 환자가 날렵하게 큰 공을 옮겼는데. 보통 날렵한 게 아니었다.

그 모습에 하시모토의 표정이 벌써 굳어 버렸다. 큰 공에서 작은 공으로, 작은 공에서 커다란 블록으로, 작은 블록으로, 다시 둥그런 판자로······. 수술 후 3기에 접어든 환자는 놀랍게도 마지막 금속 막대까지 순조롭게 끝냈다.

그가 막대를 작은 빨간 구멍에 찔러 넣는 것을 본 하시모토는 드디어 자신이 큰 실수를 했음을 깨달았다. 두 환자에 대한 평가는 안정적으로 우수 이상 레벨이었다.

무리 중에서 가장 회복이 빠른 두 사람을 골랐는데 그게 틀린 선택이 될 줄을 누가 알았을까.

“제 스승님이 언제나 저에게 그렇게 말씀하셨죠. 너는 개그맨이 될 소질이 없다고. 하하하. 멋대로 판단하는 게 아니었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일본인의 전통적인 사과 방식이 갑자기 튀어나오자 오히려 수부외과 주임들이 안절부절못했다. 외국 친구의 체면과 양국의 교류 문제를 고려해서, 금서 주임이 앞장서서 이해한다고 그를 안심시켰다.

대화 분위기가 드디어 정상적으로 변했다.

잠시 후, 재활실 문이 다시 열리고 곽종군, 주 선생, 능연, 연문빈과 일반 레지던트들이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안으로 들어왔다.

“곽주임, 주 선생. 능 선생.”

금서 주임이 예의를 갖춰 그들에게 인사했고 통역을 들은 하시모토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 탕 법을 할 줄 안다는 능연 선생입니까?”

“그렇습니다.”

“잠시만요! 말하지 마세요! 제가 맞춰 보겠습니다.”

하시모토는 질리지도 않았는지 곽종군부터 주 선생, 능연, 연문빈을 천천히 훑었다. 능연을 볼 때 조금 더 오래 멈췄지만, 결국 일반 레지던트에게 시선이 멎었다. 그리고 하시모토는 성큼성큼 그 앞으로 다가가 친절하게 손을 내밀었다.

“당신이 바로 능 선생이죠?”

“이분입니다.”

보다 못한 금서 주임이 다급하게 능연을 앞으로 밀었고 하시모토는 당황한 듯 능연을 바라봤다. 아까 테스트 장면을 떠올린 하시모토는 저도 모르게 깊은 생각에 빠졌다.

‘젊은 의사가, 실력도 좋고, 잘생기고. 이런 건 드라마에도 없었다고!’

이런 의사가 세상에 있을 리가 없다. 그런데 심지어 이런 의사를 직접 만나다니.

하시모토는 짧고 굵은 목을 흔들거리며 뻗었던 손을 슬그머니 거둬들여 자신의 얼굴을 만지다가 다급히 내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공항에서 바로 호텔에 가서 팩이라도 하고 오는 건데.’

하시모토는 후회가 돼서 죽을 것 같았다.

하시모토는 겸손을 가장한 의심 가득한 모습으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능연이 거의 말을 하지 않는 모습에 하시모토의 의심은 독버섯처럼 커졌다. 사실 의심할 만도 했다. 눈앞의 능연은 거의 완벽한 스타 의사의 모습이니.

일류 실력에 잘생기고, 키 크고, 웃을 때 멋지고, 눈빛도 부드럽고, 피부는 매끈하고······.

해마다 스타 의사가 나타났지만 이렇게 잘생긴 스타 의사는 대부분 날조된 것이었다. 그런데도 세계 각지엔 끊임없이 스타 의사가 나타났다. 왜? 이익이 실로 거대하기 때문이었다.

스타 의사의 효과는 무궁무진했다.

미국 보험회사는 돈을 아끼기 위해 환자를 인도로 보내고, 영국은 국민 의료 보험 시행 후 응급 평균 대기 시간이 13시간이나 되며, 일본 대학병원은 부정부패로 유명하지만, 여전히 세계 의료의 지표 역할을 한다. 왜냐고? 바로 스타 의사가 대거 탄생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돈으로 목숨을 살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메이요 클리닉이고, 심장이 안 좋으면 클리블랜드에, 암 확진 받으면 앤더슨에, 나이 들면 홉킨스에 간다.

그러면 중국 병원에서 스타 의사를 만들고 싶으면 어떻게 할까?

하시모토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실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싶었다. 중국 의사에게 그럴 실력이 어디 있단 말인가.

하지만 아이돌 외모에 일류 실력까지 갖췄다면, 지역급 스타 의사라고 홍보할 수 있다. 적어도 각종 매체를 통해 노출되면 운화 병원의 인기도 올라가고 중국에서 지역급 강자가 된다.

하시모토는 이제 번화조차 못 미더워졌다. 아무래도 번화가 자신을 이용해 운화 병원과 능연 선생을 홍보하려는 것만 같았다. 자신은 게이오 대학병원 정형외과 부교수고 앞으로 몇 년만 있으면 교수가 될 수 있다. 그러니까 중국 병원 과주임 정도 되는 위치란 말이다.

하시모토는 번화가 어쩌면 몇 개월 동안 거짓으로 행동해왔고, 운화 병원에 화가 난 척 자신을 끌어들이고는 젊은 스타 의사를 우연히 마주치게 해서 병원 홍보에 이용하려고 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렇게 쉬운 사람인 줄 알아?’

하시모토는 내심 그렇게 비웃었다. 순간, 어쩌면 번화가 몇 년 전부터 계획을 세웠을지도 모른다, 생각하자 그가 대단해 보이기까지 했다.

오늘 환자도 어쩌면 번화가 꾸민 일인지도 모르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맞는 것 같은데. 심지어 번화가 이 모든 것을 위조했을 수도 있어. 환자의 근건 고정 방식을 위조하고, 수술 시간을 위조해서 빨리 유합된 것처럼 꾸민 것이겠지.

“기회가 된다면 능 선생이 탕 수술을 하는 모습을 직접 보고 싶군요.”

하시모토는 대범한 척 하하 웃고 있었지만, 사실은 봐야겠다고 요구하고 있었다. 의사의 기술은 복잡하면서도 단순해서, 어찌 됐든 수술하는 모습을 직접 봐야 판단할 수 있는 법.

하시모토는 외모가 평범한 의사도 일류 실력을 갖춘다면 수술대 앞에선 멋진 법이라고 줄곧 믿어왔다. 잘생길수록 여자들에게 사랑받게 되고 집중력이 분산되어 의술과 점점 멀어진다. 얼굴로 스타 의사가 된 놈들은 수술대 앞에서 본질을 드러내고 못생겨진다고 여겼다.

고개를 살짝 치켜든 하시모토는 살로 접힌 턱이 두드러지지 않도록 목을 앞으로 길게 뺐다.

번화는 하시모토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물론, 아주 조금에 불과했지만.

번화는 여러 번 일본으로 연수를 갔었고 자주 하시모토와 교류하면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게 되었다. 속셈이 있고, 의심이 많고, 질투가 강한 데다가 못생기고, 피부가 안 좋은데 거들먹거리길 좋아하고 악취미도 있다. 심지어 동료와 환자를 기만하는 경향도 있어서 실력이 좋아 배울 점이 있는 게 아니었다면 상대하기 싫은 스타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대하고 싶지 않아도 어쩔 수 없었다. 일단 의혹을 해명해야 해서 통역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말을 꺼냈다.

“가장 가까운 수술로 잡으면 되겠죠? 능연 선생, 바로 수술할 수 있나?”

막 포럼에서 돌아온 곽종군의 안색이 휙 변했다. 그가 아까 미처 다 뿜지 못한 침을 내뿜을 기세로 눈을 부릅뜨자 곁에 있던 금서가 흠흠 헛기침했다.

“하시모토 선생이 수술을 볼 기회는 많을 테니, 구체적인 스케줄을 짜서 다시 알려드리겠습니다.”

금서는 일단 곽종군과 둘이 상의한 후에 결정을 내리고 싶었다.

“능 선생이 하루에 수술을 여러 번 한다고 들었는데 참관할 시간이 없을 리 있겠습니까. 하시모토 선생님도 바쁜 분이니 가능한 한 빨리 마련하는 게 좋겠습니다. 성립 병원과 278 병원에도 가셔야 하니까요.”

278 병원은 간부 요양병원으로 해마다 전문가를 불렀다. 번화도 바로 그런 이유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그쪽에서는 게이오 대학병원 정형외과 전문가인 하시모토를 당연히 반겼고, 번화가 전화 한 통 하자 왕복 비용까지 다 책임질 정도였다.

“최대한 빨리할 수 있으면 정말 감사하지요.”

하시모토가 허리를 굽혀 인사하니, 노인들은 아까 그가 얼마나 오만하게 굴었는지 잊은 듯 어찌할 줄 몰랐다. 어찌 됐든 하시모토는 게이오 대학 부교수나 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금서는 운화 병원이 일본 병원의 다른 수준 높은 의사와도 오랫동안 교류해 왔지만, 하시모토와 틀어지는 건 아쉽다고 생각했다.

금서는 저도 모르게 곽종군을 바라보며 눈빛으로 대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쉰 넘은 곽종군은 눈을 부릅뜰 뿐, 대화할 줄 아는 눈망울이 없었다. 상대방이 중국어를 모르니, 자기가 화를 내도 통역을 거치고 나면 그 맛이 안 살아서 툴툴거렸다. 게다가, ‘흥’을 어떻게 통역한단 말인가.

금서는 한숨을 내쉬면서 아예 그의 곁으로 다가가 귓가에 소곤댔다.

“어쩌면 좋을까요?”

수부외과 의사인 번화가 일을 키웠지만, 원인을 따지면 응급 의학과에서 탕 환자를 뺏어가서 생긴 일이었다. 수부외과 환자를 뺏어간 셈이니 금서는 잘못한 게 없고 오히려 응급 의학과에서 잘못한 것이라 생각했다.

곽종군의 머릿속에 이런저런 생각이 떠올랐지만, 스스로 하나하나 부정하며 고개를 저었다. 하시모토의 요구를 가볍게 거절할 수도 있지만, 그건 해결 방법이 아니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능연을 바라봤다. 이번 일은 능연에겐 분명 기회였다.

하시모토의 추측 중에 하나 맞는 것도 있었다. 그의 출현으로 운화 병원은 어쩌면 정말로 스타 의사를 배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곽종군의 유일한 걱정은 능연이 현장에서 실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현미경 아래서 진행하는 근건 봉합 수술은 지극히 정밀한 작업인 데다 인체 구조도 저마다 차이가 있어서 실수할 가능성이 있었다. 곽종군은 특히 젊은 능연의 경험 부족이 가장 걱정이었다. 압박이 큰 상황에서 능연이 능숙한 의사들처럼 여유롭게 처리할 수 있을지, 자기처럼 백 명이 넘는 사람이 주시하는 가운데 변함없이 당당할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수술 참관은 일단 우리가 환자를 찾아야······.”

곽종군의 시선이 주 선생에게 향했다. 언제나 꾀가 많은 주 선생은 아까부터 사람들의 생각을 추측하고 있다가 곽종군의 부리부리한 눈빛을 받자마자 바로 앞으로 나섰다.

“동영상을 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아, 그렇군. 동영상이 있지.”

곽종군은 순간 주 선생이 좀 게으르긴 해도 머리는 휙휙 돌아간다고 속으로 칭찬했다.

“1호 수술방에서 진행한 수술은 여러 번 찍어 뒀으니 동영상이 아직 있을 겁니다.”

처음 몇 번 수술은 능연이 복습하는 데 쓸 겸 곽종군이 자리하지 않았을 때 지켜보는 데 쓸 겸 찍어둔 영상이 있었다. 운화 병원 1번 수술실은 자주 개방하지 않아서 문제지, 촬영 환경은 상대적으로 괜찮았다.

“그럼 먼저 동영상을 볼까요?”

의문문으로 끝을 맺었지만, 사실 곽종군은 이미 결정을 내렸다. 현장에서 수술을 보는 것에 비해서 동영상은 아무런 위험이 없었고 홍보 효과는 같으니까.

“동영상도 좋지요.”

하시모토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 선생 가서 가져와.”

지시를 내린 곽종군이 금서를 흘끔 보자 그는 장치를 준비하라고 시켰다.

잠시 후, 수부외과의 호사스러운 98인치 액정 모니터에 수술실 광경이 나타났다.

“환자 모가응, 35세. 단지 파열상.”

연문빈이 단상에 올라가 브리핑을 시작했다. 레지던트 겸 퍼스트 어시스턴트이니 모든 환자의 병력을 모두 훤히 기억하고 있었다. 오히려 집도의 능연은 그런 잡무를 기억할 필요가 없었고, 연문빈이 요약한 정보만 외우면 됐다. 알레르기나 수술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바이탈 사인 등등.

“이 환자가 바로 아까 선생님이 테스트한 환자입니다.”

왕해양은 연문빈의 설명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냉랭하게 덧붙였다. 번화는 손에 든 병력을 살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요, 이 환자가 아까 우리가 테스트한······.”

“잠시만요! 제가 맞춰 보겠습니다.”

하시모토가 번화의 설명을 막았다. 실눈을 뜬 그는 목을 쭉 빼면서 느릿느릿 말을 꺼냈다.

“첫 번째 환자 맞죠? 단지 파열 상처가 부합하고 상처 부위를 봐서······.”

“예, 맞습니다. 시작해도 될까요?”

왕해양이 그의 말을 자르며 묻자 수부외과 레지던트가 바로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동영상은 수술 시작 부분부터 플레이되었다. 좌측 2/3 화면이 수술 화면이었고 나머지 1/3이 수술실 광경과 모니터의 수치를 나타내고 있었다.

하시모토는 능연의 손놀림과 수술 시야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지켜볼 뿐 끽소리도 내지 않았다. 환자에게 이미 카네코 츠사바 테스트를 해본 만큼, 그는 이제 수술 중 문제엔 관심이 없었고 능연 자체를 중점적으로 관찰했다.

마스크와 마이크로 글래스를 쓰고 있어서 확실히 보이진 않았지만, 오뚝 솟은 콧대, 매끈한 피부, 단정한 허리와 흠잡을 수 없는 몸매는 아무리 봐도 적응되지 않았다.

이런 아이돌급 외모라면 학교 다닐 때 여자들이 가만히 두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이런 남자는 공부에 영향을 받거나 동아리 활동 하느라 청춘을 허비해야 하는데.

여기저기 유심히 살피던 하시모토의 시선이 간호사에게 떨어졌다. 젊은 간호사는 큰 눈에 기다란 속눈썹, 오밀조밀한 코가 몹시 귀여웠다. 거기다 바쁘게 집중하는 와중에 가슴도 매우 커 보였다.

하시모토는 외과의 기질이 발동해서 일어로 중국 간호사는 모두 예쁘다고 칭찬하며 능연의 여자 친구냐고 물었다.

“이름이 뭔가요?”

능연은 머뭇거리면서 연문빈을 바라봤다. 하루에 수술을 네다섯 번이나 하느라 기껏해야 왕가 정도 기억할까, 다른 간호사의 이름을 일일이 기억할 수 없었다.

“소몽설이라고 합니다. 당연히 능연 선생의 여자 친구도 아니고요.”

연문빈이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다른 레지던트가 참을 수 없다는 듯 툭 내뱉었다.

“소몽설은 병원에 들어온 지 일 년밖에 안 된 간호사입니다. 그런데 벌써 수술실 간호사가 되었죠. 미시엔(중국식 얇은 면)을 특히 좋아하고요, 매운 걸 아주 잘 먹는답니다. 아무리 먹어도 살이 안 찌는 스타일이에요.”

“능 선생 여자 친구가 아니군요. 안타까워라. 귀여운 분인데. 미시엔이란 꿔챠오미시엔(미시엔 중에 유명한 종류) 말이지요?”

목소리는 작았지만 술술 말하는 레지던트의 말에 하시모토가 통역을 통해 그렇게 물었고, 레지던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중국 병원 좋네요. 간호사가 예쁘면 의사들이 기운이 나잖아요. 저는 병원에서 늘 아줌마뻘인 간호사들······.”

하시모토의 말이 절반밖에 통역되지 않았을 때, 하시모토의 목소리는 더는 들리지 않고 일본식 거친 호흡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레지던트의 안색이 휙 변했다.

98인치 액정에 간호사 소몽설이 능연에게 가까이 가더니 무슨 말을 한 건지, 그의 가슴에 얼굴을 대고 힘껏 비비고, 비비고, 또 비비고······.

수술실 주임이 볼 수 없는 방향에서 젊은 간호사 소몽설이 행복을 만끽하는 표정이 분명히 드러났다. 간호사는 자기가 돌아온 방향에 카메라가 있는 걸 잊어버린 듯했다.

“아까 소 간호사가 무슨 말 했지? 뭐라고 한 거야?”

“땀 좀 닦겠다고요.”

레지던트는 지금은 자기가 말할 자리가 아닌 것을 잘 알면서도 긴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능연은 태연한 얼굴로 대답했다.

“땀? 땀을 저렇게 닦아?”

“아닌가요?”

수술실에서 몇 년을 보낸 레지던트의 음성이 흔들렸지만, 능연은 눈을 껌뻑이며 반문했다.

키가 큰 연문빈은 생김새가 평범해서 사람들이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동료 레지던트를 바라보며 동정하는 표정으로 웃었다.

수술실에서 십여 년 지내온 하시모토의 육중한 체중이 아니었다면 사람들은 그의 몸이 흔들리고 있음을 깨달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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