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흩어져 아무도 없는 회의실은 매우 스산했다.
화면이 멈춘 98인치 TV 아래 각종 선이 너저분하게 나와 있었고, 테이블엔 잡동사니가 가득했다. 재떨이, 담배꽁초, 그리고 펼쳐진 책과 잡지, 신문이 나뒹굴었다.
하시모토는 탄탄한 가슴 근육과 무성한 털을 드러내며 셔츠 단추를 세 개 풀어 젖히고는 재킷을 구석에 던졌다.
번화는 테이블에 기댄 채 몸을 비틀고는 계속 영상을 보자고 했고 하시모토는 고개를 저었다. 하시모토가 리모컨을 건들지 않자, 번화가 몸을 일으켜 버튼을 눌렀고 화면에 수술실이 다시 생동감 있게 움직였다.
간호사가 능숙하게 수술대를 조절해 집도의 능연이 조작하기 쉬운 높이로 맞추기 위해 퍼스트 어시스턴트 마연린을 밟고 올라갔다.
“짜증 나는군.”
이미 여러 번 본 같은 화면에 하시모토가 짜증을 내며 투덜거렸다. 번화는 말투로 그 뜻을 짐작했다.
게이오 대학 병원에 있을 때부터 하시모토는 자신의 작은 키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가 받침대를 싫어하는 바람에 키 큰 어시스턴트들은 허리를 숙이고 작업해야 했는데, 정형외과는 수술 시간이 비교적 길어서 젊은 의사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물론, 교수의 어시스턴트를 할 때는 하시모토도 받침대를 썼다. 그러나 교수의 조수 노릇을 하는 것은 받침대와 더불어 좋은 기억으로 남지 못했다.
연속된 수술 동영상마다 능연의 수술대 높이를 조절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바람에 하시모토의 기분은 엉망이 되었다.
번화는 내심 흐뭇했지만, 그 기분도 오래가지는 않았다. 이어지는 수술 장면에 번화의 기분도 엉망이 되었다.
탕 법을 탐구했던 전문가인 만큼 능연의 조작을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움직임도 80% 이상 예측할 수 있었다.
매듭을 묶을 때 꽉 조이는 것은 무엇을 예방하기 위해서인지, 봉합할 때 위치를 살짝 트는 건 뭘 발견해서인지. 탕 법으로 수술해 본 사람만 알 수 있는 디테일이 펼쳐지자 감탄한 번화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나중엔 짜증이 났다.
특히 최근 영상을 볼 때, 능연의 실력이 늘었음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어느 정도 능숙해진 상태에서 실력을 대폭 올리기는 당연히 어렵고, 조금 올리기도 힘든데 동영상마다 능연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대부분 좋은 쪽으로 변화했고 가끔 안 좋아지기도 했는데, 그건 새로운 문제를 발견했을 때였다. 하지만 능연은 새로운 방법을 찾아 문제를 해결하거나 계획적으로 피했고. 그런 상황을 마주친 후에 능연의 실력은 다시 올라갔다.
동영상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본 것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빨리 배우고 빨리 느는 사람이 있다는 걸 믿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어쩌면 능연이 자신보다 실력이 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미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오리처럼 생긴 생물이 오리처럼 울고, 오리처럼 걸으면 그건 바로 오리라고.
어떤 의사가 수술을 나보다 능숙하게 하고, 수술 중 판단도 나보다 정확하고, 환자 예후가 내 환자보다 좋다면, 그는 나보다 좋은 의사인 것이다. 번화는 그렇게 결론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일본에서 서둘러 귀국한 것도 운화 병원에서 자신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의사, 특히 선임 의사에게 가장 중요하면서 가장 기초적인 것은 바로 환자였다.
최근에 했던 탕 수술로 능연은 운화 주변 근건 손상 환자를 싹 쓸었다. 운화 주변에 무인 구역 봉합을 할 수 있는 두 번째 고수가 없어서였다. 왕해양 같은 다른 의사들은 탕 봉합은 겸해서 하는 수술일 뿐이라, 케이스가 있으면 하고 없어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번화는 탕 법 수술을 하려면 능연과 다퉈야 한다. 그래서 능연이 탕 법을 많이 하면서 자신의 위치를 완전히 앗아갈까 봐 서둘러 귀국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늦은 것 같았다.
“중국에서 잠시 더 머물고 싶은데, 연수를 좀 미뤄도 될까요? 이런 부탁이 이상하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번화는 동영상을 잠시 멈추고 일어로 하시모토에게 물었다.
“이해합니다. 이런 상황이면 나라도 당황했을 겁니다. 사람이 당황하면 잘못된 선택을 하기 마련입니다.”
“에?”
“내가 맞춰 보겠습니다. 이 병원에 남아서 저 의사와 경쟁하려는 거죠?”
하시모토가 입을 내밀고 화면 속의 능연을 마주 봤다. 모니터를 사이에 두고도 능연의 날카로운 눈빛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힘겹게 몸을 일으켜 TV를 껐다.
“네. 언젠가는 돌아와야 하고 그때 가서 다투느니 차라리 지금부터 손을 쓰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틀린 생각입니다.”
“왜 그런 건지, 알려 주시겠습니까?”
껄껄 웃으며 뜸을 들이는 하시모토의 모습에 그가 뭘 좋아하는지 잘 아는 번화가 물었다. 하시모토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흔들면서 대답했다.
“동영상이나 환자의 예후를 보면 알 수 있죠. 이미 번 선생은 능연보다 뒤처졌어요. 그럼 여기 남아 있을 의미가 있습니까? 앞으로 점점 더 뒤처질 겁니다.”
“······.”
“남은 연수 기간 실력을 올리고 새로운 기술을 배워서 중국으로 돌아와 절대적인 실력으로 밟아 버리는 게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하시모토가 손에 들고 있던 종이를 사정없이 구겼다. 하시모토의 말에 번화는 방향을 찾은 듯 눈을 크게 떴다.
“어이쿠, 시간이 이렇게 됐네. 하시모토 씨, 중국 음식 먹으러 갑시다.”
“그래도 됩니까?”
“그럼요. 큰 곳이 좋겠습니까? 아니면 작고 특색 있는 곳이 좋겠습니까?”
“특색 있는 곳으로 하죠. 나는 그런 곳이 좋습니다.”
이런저런 환상을 하는 하시모토의 눈도 번쩍 뜨였다. 그렇게 두 사람은 재빨리 아래로 내려가 건널목을 건너 골목을 지났고, 다시 건널목을 건너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30분 후, 하시모토 지로는 멀리 보이는 ‘운화 병원’이라는 큰 글자를 내다보면서 묵묵히 장갑을 끼고 롱샤 껍질을 깠다.
“이게 바로 요즘 중국에서 가장 인기 있고 특색 있는 음식입니다. 일본에 있는 동안 계속 생각이 나더라고요.”
번화는 흡족한 듯 국물을 마시고는 맨손으로 껍질을 벗겼다.
“몇 달 동안 롱샤가 제일 그리웠다고요?”
“네. 일단 드셔보세요. 그럼 알게 될 겁니다. 지금 우리보다 행복한 사람은 없을걸요?”
“흠, 그러네요. 맛있습니다.”
힘겹게 껍질을 벗겨 한 입 먹으니 하시모토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그렇죠? 인생에서 가장 큰 행복이란 바쁜 일과를 마치고 롱샤 한 바구니를 먹는 거라니까요.”
운화 병원 응급실 병동은 변함없이 불이 환했다.
하루에 수술을 세 건밖에 하지 못한 능연은 아무래도 마음이 불편했다. 집에 가도 딱히 할 일이 없다는 생각에 혹시 할 만한 수술이 있을까 싶어 다시 병원으로 돌아갔다.
운화 병원 영향권에 있는 인구는 천만이 넘었고 근건 봉합 같은 고급 기술을 필요로 하는 영향권은 더 넓었다. 그런 넓은 구역인 만큼 매일 고정적으로 생겨나는 근건 파열 환자가 있었다.
탕 수술을 세 건밖에 하지 않았다는 건 그 수량을 모두 먹어치우지 못했다는 뜻이었고, 환자들은 당연히 다른 병원을 찾았을 것이다. 이는 다음 날 수술을 많이 하고 싶어도 놓친 환자는 돌아오지 않음을 의미했다.
능연은 당연히 불만스러웠고, 다행히 밤에 한가해진 틈을 타 아예 직접 곽 주임에게 연락해서 다른 병원으로 가려던 환자를 다시 불러들였다.
밤에 새로 추가된 환자를 포함해서 결국 두 사람, 총 네 개의 손가락을 봉합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벌써 새벽이었다.
“능 선생님 힘들죠? 롱샤 좀 드세요.”
간호사들이 열렬하게 능연을 불렀다. 그가 거부하지 않자 간호사들은 아예 휴게실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능 선생님, 롱샤 드세요.”
“이게 더 커요.”
“식기 전에 어서 드세요.”
롱샤를 까서 능연 앞에 놓아주던 간호사들은 나중엔 아예 롱샤를 능연의 입에 들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