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39화 (866/877)

“운화 병원 의사입니다.”

“저쪽에도 부상자가 있어요. 아직 어린애예요.”

“저희가 찾아볼게요.”

경찰이 배를 부여잡고 애써 손을 들어 어딘가 가리키자 주 선생이 먼저 나섰다. 능연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경찰의 상처를 살피고는 소 사장에게 술을 좀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포비돈 있어.”

소 사장은 침착하게 대답하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 계산대 밑에서 구급상자와 커다란 포비돈 병을 들고 돌아왔다. 일반 가정에서 다 쓰기도 힘든 양에 능연은 의외라는 듯 소 사장을 바라봤다. 물론 소 사장은 다 쓴 경험이 있어서 구매했을 가능성이 크겠지만. 사용량이 많다면 당연히 대용량이 싸니까.

사방에 들리던 고함 소리, 현장을 에워싼 열기, 머릿속에 가득한 망상들은 능연이 구급상자를 여는 순간 모두 사라졌다.

응급 의학과에서 오랫동안 실습한 능연에게 단순히 칼에 베인 상처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데브리망을 할 때도 이미 여러 번 처리했었다. 물론 눈앞의 상처는 좀 깊긴 하지만.

아무튼, 그렇다고 소홀하지는 않았다. 응급실에 2주 동안 있으면서 깨달은 이치가 있었다. 멀쩡한 사람이 갑자기 이상해지거나, 아무래도 안 될 것 같던 환자가 며칠 뒤에 멀쩡하게 복도에서 인사를 하거나 했으니.

배 안의 상처가 보이지 않으니 관찰하면서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능연은 소 사장에게 가위를 달라고 하고는 바로 소독한 다음 제복을 찢었다. 상처에 포비돈을 뿌리자, 지켜보는 소 사장 볼이 다 실룩거렸다. 능연은 포비돈 1/3을 단숨에 쏟아부었다.

포비돈은 매우 빠르게 상처를 소독했고, 많은 양의 피를 헹궈냈다. 두려워서인지, 아니면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인지, 조금 전까지 용감했던 경찰의 안색이 지금은 창백해져 있었다.

“괜찮아요. 그렇게 크게 다친 건 아닙니다.”

능연은 낮에 했던 심폐소생술 환자를 떠올렸다.

“정말요?”

“네, 안 죽어요.”

경찰의 쉰 듯한 목소리에 능연은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소 사장에게 포비돈을 부어 달라고 해서 손을 씻었다. 하지만 안 죽는다는 말에 오히려 경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죽을 수도 있다는 거야?’

에피네프린 효과가 점점 사라지는 바람에 서서히 통증이 느껴지자 경찰은 이를 악물었다.

“정말 안 죽고 살아남으면 그놈을 반드시 잡고야 말겠어. 멍청한 새끼, 찌르는 것도 제대로 못 하냐.”

능연은 손을 뻗어 상처 주변을 쿡쿡 눌러봤다. 드라마에서 그렇게 하는 것을 본 적 있었다. 깨끗한 거즈로 환자의 상처 주변을 힘껏 누르면서 지혈하는 것이다. 훈련을 받지 않은 일반인에게 가장 적합한 응급 처치였지만 그렇게 좋은 방법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이렇게 하면, 내출혈을 제어하기 어려운 건 둘째 치고, 몸을 압박하면 2차 상해가 생길 수도 있다. 부상자는 자신의 운이 좋길 기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능연에게는 더 많은 선택의 길이 있었다. 일단 체격 검사 기술로 환자의 복부를 더듬으며 진단한 다음 판단을 내렸다. 맨손 지혈을 위해 감염되지 않도록 손도 여러 번 씻었다. 먹자골목 안에서 일어난 사고인 만큼 포비돈을 많이 사용하는 건 분명 좋은 선택이리라.

“능 선생은 주 선생 동료야. 주 선생이 응급 의학과니까, 능 선생도 응급 의학과일 거야. 그죠?”

피가 계속 뿜어져 나오자, 소 사장은 긴장된 상태에서도 경찰을 안심시키려 애썼다.

“네.”

“거봐, 내 말이 맞지. 응급 의학과 의사라니까 문제없을 거야. 이런 상태로 병원에 가도 능 선생이나 주 선생이 맡는 거라고. 그런데 병원 가는 시간이 줄었으니까 그만큼 더 좋은 거 아니겠어?”

“저 병원으로 갈래요. 운화 병원으로요.”

소 사장의 말에 갑자기 생각난 듯 경찰이 다급하게 말했다. 운화 시 구급차는 가까운 병원으로 환자를 보내는 것을 원칙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어서, 운화 병원으로 가겠다고 똑똑히 밝혔다.

“그럼 그럼, 운화 병원으로 가야지. 그럴 거야. 보라고, 지금 마침 운화 병원 의사들이 자넬 치료하잖아. 그러니까 안심해.”

“그런데 지금 상처 치료하는 거 맞아······ 아아악!”

출혈 과다로 점점 의식이 흐려지던 경찰이 꽥 고함쳤다. 능연이 그의 복부 근육이 느슨해진 틈을 타 손가락 두 개를 배 안으로 쑤셔 넣은 탓이었다.

“아이쿠, 세상에. 힘을 그렇게 주면 어떡해. 놔, 놓으라고! 그러다 큰일 나겠네!”

소 사장도 펄펄 뛰었지만 능연은 한숨 돌렸다. 복강 내 환경은 상대적으로 복잡했다. 근육이 가로막혀 있는 것 외에도 간담, 췌장, 폐 같은 중요 장기는 칼에 찔려도 바로 죽는 일은 거의 없다. 주로 칼이 어디를 찔렸는지가 중요했기에 능연은 아무래도 다치기 쉬운 비장을 주목하고 있었다.

능연은 손가락으로 살짝 비장다리(splenic pedicle)를 비틀어서 비장의 대량 출혈을 막았다. 수술대에서도 그런 식으로 조작했다. 수술실에 들어갈 즈음이면 배 안에 피가 가득할 것이고, 그런 상태에서 혈관 핀셋으로 바로 비장다리를 잡으면 매우 위험하다. 그래서 어시스턴트가 수술 시야를 확보할 수 있도록 피를 석션으로 빨아내고 난 다음에 혈관 핀셋을 쓴다. 그리고 손으로 비장다리를 잡아야만 피를 깨끗하게 빨아낼 수 있다.

그러니 맨손 지혈은 복강 수술의 기본 절차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등급을 구분하자면, 맨손 지혈 입문급 응용편 정도랄까?

“성함이?”

“장쇠요.”

별문제 없음을 확인한 능연은 절차를 밟기 시작했고, 머리가 어지러운 경찰은 두려운 상태에서 힘겹게 이름을 말했다.

“전조(*장쇠와 발음이 비슷함. 포청천 등장인물)요? 4품 시위?”

슬쩍 경찰을 쳐다본 능연은 그가 포청천이 한창 유행하던 때 태어난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에 고개를 저었다.

“머리 쪽 검사 좀 할게요.”

“장이요, 장. 아에 이응!”

“아하.”

다행히 경찰의 복부에서 흐르는 피가 점점 줄어들었다. 의료진이 아닐지라도 그랜드마스터급 맨손 지혈의 완벽한 효과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능연이 한시름 놓으려던 때, 주변이 다시 웅성웅성 소란스러워졌다.

“사장님! 능 선생님! 사장님! 능 선생님!”

“무슨 일이야?”

누군가 고함치며 달려오는 모습에 소 사장이 관중 사이를 가르고 앞으로 나갔다.

“주 선생님이 사장님한테 구급상자가 있다고 가지고 오래요. 아니면 능 선생님이 가지고 가시던가.”

앞치마를 두르고 있는 것을 보니 그 사람도 주변 가게 주인인 듯했다.

“구급상자는 왜요? 능 선생은 또 왜요?”

능연은 손가락을 안정적으로 환자의 몸에 꽂고 꼼짝도 안 한 채 자신을 3인칭으로 칭하며 물었다.

“피가 안 멈춰서 배를 열어야 한다던데요. 아니면 능 선생님이 지혈을 하거나.”

“갑시다. 소 사장님, 우리가 타고갈 만한 리어카 같은 거 있나요?”

우리란 능연과 장쇠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능연은 주 선생이 출혈 포인트를 찾지 못한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정통 외과의사는 복부 외상 환자를 만나면 머릿속으로 가장 먼저 개복 검사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부터 고민한다.

개복 검사는 가장 빠르고 직관적이다. 배를 열어 보고 구멍이 있으면 채우고, 잘렸으면 꿰매면 되니 간단하고 빠르고 효과적이었다. 물론 후유증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목숨을 잃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상황만 허락한다면 주 선생은 어쩌면 두말없이 식칼로 바로 배를 열었을지도 모른다. 조금 게으름을 피우긴 해도 복부 개방성 외상 같은 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만나온 실력과 경험이 충분한 십여 년 경력의 응급실 주치의이니 말이다.

다만 먹자골목 위생 환경도 환경이고, 소독약품도 없고 술도 가짜술일 가능성이 있어서 대충 개복하는 건 위험이 너무 높았다. 거기다 능연이 맨손 지혈을 할 줄 알고, 게다가 아주 잘하는 걸 아는 주 선생이라 쉽게 개복을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잠시 후, 소 사장이 채소 옮길 때 쓰는 리어카를 끌고 나왔다. 에워싸고 구경하던 사람들이 도와서 장쇠를 리어카에 올려주자 능연도 올라갔다. 그리고 다 함께 합심하여 능연과 장쇠를 먹자 골목 메인도로 쪽으로 밀고 갔다.

리어카가 흔들리자 능연은 손을 미세하게 조절해서 출혈을 안정적으로 제어했다.

사람들이 리어카를 끌고 갔다.

그리고 소 사장이 리어카 뒤를 따랐다

더 많은 사람이 리어카 뒤를 따르는 소 사장 뒤를 따랐다.

길을 지나던 더 많은 사람이 핸드폰을 치켜들고 360도로 돌려대며 사각 없이 사진과 영상을 찍었다. 그 사진과 영상이 썰렁한 자기 SNS를 불태워주길 바라면서.

먹자골목에 있는 ‘호문야연’이라는 식당은 해산물 전문 구이집으로 담강에서 직송한 생굴로 유명했다. 호문야연은 저녁마다 생굴을 길가에 늘어놓고 바로 먹고 마시게 하다가 점점 간이 테이블을 깔아 나가면서 매장 면적을 넓혔다.

하지만 오늘은 상황이 조금 특수했다. 원래 보행자길 위에 펼쳐두던 간이 테이블을 합친 상태로, 그 위에 올라간 주 선생은 자신의 옷으로 다친 소년의 목을 누르고 있었다. 그러나 피는 쉽게 지혈되지 않고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었다. 소년의 배에서 흘러나온 피는 주 선생의 옷을 적시고 테이블 위에 흘렀다가 의자와 바닥으로 떨어졌다.

“구급차 어디까지 왔는지 확인 좀 해 봐요. 환자 출혈이 심각하다고!”

“길이 막혀서 그런대요. 다 왔다더라고요.”

다급한 주 선생이 발을 동동 구르면서 몇 번이고 재촉했으나 가게 직원은 짜증이 나서 계속 비슷하게 대답했다. 주 선생은 그런 직원의 태도에 화가 치밀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비록 사람 목숨을 구하는 중이었지만, 남의 장사를 방해하는 것도 사실이니까. 주인이 별말 없이 도움을 주는데, 직원이 눈치를 주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괜찮아요. 당황하지 마세요. 그냥 칼에 찔린 거잖아요. 자주 찔려봐서 알아요. 의사 선생님 슉슉 꿰매면 이틀이면 퇴원해요.”

이제 갓 16살이 된 황금무는 겁도 먹지 않고 오히려 주 선생을 토닥이기까지 했다.

“내가 의사다, 인마.”

주 선생이 으르렁거렸다. 칼에 찔려도 찔린 상태에 따라 천지 차이가 난다고 설명해주고 싶었다. 배 오른쪽 위, 결장을 찔렸다면 위험하긴 해도 대부분 병원에 갈 때까지 기다릴 수 있었다. 대장을 찔렸다면 쏟아져 나온 오물이 복강 대망막(Greater Omentum)을 좀 더럽히고 고생해서 그렇지, 그래도 병원에 가면 살 수는 있다. 그런데 지금 이 소년이 대체 어디를 찔린 건지는 하늘만 알았다. 동맥이 파열되지 않았다는 것만 알 뿐이었으나 그것이 중요하지 않을 정도로 피를 계속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걸 어린 소년에게 설명할 수 없었다. 사실을 알게 되면 아이가 포기할지도 모르니까. 차라리 모르면 몇 분이라도 더 버틸 수 있으리라.

“이봐, 의사 양반! 상처 알아서 누르고 있으라고 하고 와서 우리 좀 봐줘요.”

“당신 상처는 아까 내가 봤잖아요. 지금은 손을 뗄 수 없으니까 좀 참아요. 이 상태로 손 떼면 큰일 납니다.”

의자를 빼앗아 앉아 있던 젊은 남자가 어깨를 손으로 누른 채 주 선생에게 고함을 쳤다. 고개를 돌리 않아도 어떤 놈인지 잘 아는 주 선생이 차가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남자가 혹시라도 강제로 자기를 끌고 갈까 봐 마지막 말도 덧붙였다.

“이봐,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다 당신 책임이야.”

남자는 껄렁거리면서 옆에서 먹여주는 맥주까지 홀짝거렸다. 그가 정말로 트집을 잡으러 올까 봐 두렵긴 했다. 엄밀히 말하면 주 선생은 지금 불법 치료를 하는 셈이었다. 의사 면허는 지정된 병원에서만 유효하므로 병원이 아닌 곳에서 하는 치료는 중국 현행법상 불법이었다. 이를 일반인은 따지지 않겠지만, 병원이나 위생당국에서는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혹시라도 누가 고발하면 병원 높으신 분은 사람을 구했는지 아닌지 그런 건 상관하지도 않고 바로 철퇴를 내려치겠지. 사실 대단한 건 아니고, 최악의 경우 숭진이 1, 2년 미뤄지는 정도? 그래서 동기보다 수입이 평생 몇백 위안 적어지리라.

주 선생은 더할 나위 없이 답답한 심정이었다. 소가 식당에서 자주 사고가 일어나지만 환자들이 그런 상황을 잘 알고 있었고, 대부분 소 사장한테 발생한지라 별다른 문제가 일어날 일도 없었다.

소 사장은 사람도 좋고 말도 잘해서, 회진할 때 환자 병력을 일부러 외우지 않아도 주임들이 허허 웃으며 또 입원했냐고 인사하곤 했다.

주 선생은 응급실에 있으면서 소 사장 같은 단골손님만 보면 실실 웃으면서 맞이했다. 다만, 청소년 환자는 싫었다. 미묘하게 책임감이 느껴진 탓이다.

“능 선생 부르러 간 사람은? 구급상자는?”

품 안에서 점점 기운을 잃어가는 소년을 내려다보며 주 선생이 고함쳤다. 머리가 팍팍 돌아가는 의사가 아니라서 생활용품을 구급 도구로 쓸 줄도 몰랐다.

“지난번에 우리 형님이 입원했을 때, 우리가 간병하면서 귤을 먹었는데, 귤을 다 먹기도 전에 의사들이 쫓아내서 퇴원했거든요.”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정신이 흐릿해진 소년은 주 선생의 고함에 정신 차린 듯 헛소리를 했다. 주 선생은 피에 흠뻑 젖은 옷을 꾹꾹 누른 후 소년의 맥박을 짚어 보고는 드디어 결정을 내렸다.

“안 되겠다. 시간이 없어. 사장님, 주방에서 쓰는 칼 좀 가지고 와요.”

“괜찮은 거죠?”

검은 옷으로 어떻게든 배를 가려보려고 애쓰는 뚱뚱한 체격의 호문야연 설 사장은 별로 오래 고민하지 않고 주 선생이 달라고 했던 물건들을 들고 나왔다. 술 두 병, 날이 예리한 횟칼, 깨끗한 수건.

괜찮은 거냐는 말에 주 선생이 억지로 대답하며 눈썹을 찌푸렸다. 개복까지 결심한 상황에 이르렀으니 문제가 커졌다. 황금무의 가족이 말이 통한다면 아무 일 없이 지나갈 수도 있지만, 그게 아니라면 소년이 살아나도 주 선생은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할 수만 있다면 주 선생도 이런 사고를 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소독부터 하죠. 사장님 술 좀 따주세요.”

주 선생은 계속 상처를 누르고 있었다.

“술 두 병 원가 백 위안 좀 넘습니다. 이 돈은 줘야 해요. 사람 목숨 살리는 데 그런 게 어디있냐고 하지 말고요. 큰돈이라고요.”

주 선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결정을 내리고 심호흡을 했다. 그러곤 황금무를 테이블 위에 똑바로 눕히고 뚜껑 딴 술을 콸콸 부었다.

술 냄새가 사방에 진동하자 접시와 꼬치를 든 채 그들을 에워싸고 지켜보던 사람들이 코를 킁킁댔다. 벌써 동영상을 몇 개나 찍었는지도 모를 여자 하나는 재빨리 자리를 옮겨서 새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주 선생은 그저 못 본 체했다. 응급실에서 오래 일해오면서 가족의 관심과 카메라 렌즈 앞에서 살아남는 법을 진작 터득했으니.

술 한 병을 다 쏟아부은 주 선생은 설 사장에게 한 병 더 따달라고 부탁했다. 설 사장은 말이 떨어지자마자 병뚜껑을 따 그에게 건넸고, 그 순간 능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잠시만요! 나 손 씻을 건 좀 남겨 줘요.”

그 목소리에 몇 번이고 마음을 다지며 심호흡을 하던 주 선생이 근육이완제라도 맞은 듯 맥이 탁 풀렸다.

야외에서 수술하는 장면은 드라마에서도 많이 나오지만, 정상적인 의사는 병원에서 이선 의사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갖가지 문제를 마주친다. 이선 의사가 당직을 설 때 해결 못하는 문제는 삼선 주임에게 전화하는 일도 발생한다. 선택의 여지가 있다면 새벽 2시에 상급 의사에게 전화해서 나쁜 소식을 전하면서 어서 옷을 입고 병원으로 와달라고 말할 바보가 어디 있을까?

능연의 맨손 지혈 기술, 게다가 이미 상당한 수준임이 증명된 기술에 비해서 주 선생의 길거리 개복 검사는 너무 위험했다.

“이쪽으로 좀 옮겨줘요.”

능연의 큰 목소리와 함께 리어카가 덜컹덜컹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사진을 찍는 구경꾼이 점점 많아졌다.

평소보다 몇 배는 떠들썩한 광경을 지켜보던 설 사장은 능연의 얼굴을 보자 바로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가게 안에 홍보 포스터 가지고 와서 이 주변에 붙여. 많이 붙여, 다 붙여.”

설 사장은 그렇게 고함치면서 가게 안으로 뛰어들어가 ‘호문야연’이라고 적힌 삼각 깃발을 가지고 나왔다. 그 후 주 선생 뒤로 가서 눈을 반짝이며 카메라가 많은 쪽으로 깃발을 흔들었다.

“그쪽은 어때?”

“비장 진성 파열이 의심됩니다.”

열정적인 구경꾼 두 명의 도움을 받아 거의 기절 직전의 황금무를 리어카에 옮긴 다음 주 선생이 물었다. 세 가지 비장 파열 중에 진성 파열이 가장 심각했다. 대부분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죽거나 살아도 쇼크 올 가능성이 컸다.

“살릴 수 있어?”

경찰 장쇠는 의식이 흐릿해지는 가운데 애써 눈을 치켜뜨며 주 선생의 얼굴을 기억해 뒀다.

-먹자 골목에서 사람 구하는 거 구경 중

-경찰이랑 양아치, 누구부터 구할까?

-야식 먹으러 나왔는데 야식보다 더 신나는 구경

-완전 잘생긴 남자 봄

구경꾼들이 SNS에 이모티콘, 사진, 동영상, 셀카를 쉴 새 없이 올려댔다.

호문야연 앞은 쥐죽은 듯이 고요했고, 능연은 막 리어카에 오른 황금무에게 집중했다. 그의 한 손은 장쇠의 배에, 다른 한 손은 포비돈을 황금무의 온몸 위 아래로 부었다.

아무리 포비돈이 싸다지만 돈을 낸 소 사장은 마음이 아팠다. 20위안에 파는 막창 원가가 2.8위안이고 포비돈 한 병 살 돈으로 막창 10인분은 살 수 있고 막창을 팔면 지난번 병원에서 쓴 비용만큼 버는데 말이다.

“간을 다친 것 같은데? 출혈량이 커. 이러다 쇼크 오겠어. 구급차는 대체 왜 안 오는 거야.”

주 선생이 하는 말을 능연은 대답도 없이 듣기만 했다. 그는 손가락으로 배를 더듬으며 전문가급 신체 진찰 기술로 대강 진단을 내렸다.

주 선생은 별로 개의치 않았다. 외과 의사는 원래 다른 사람을 믿지 말고 자신만 믿어야 했다. 다른 의사의 말만 믿고 진단을 내리는 바람에 수많은 의료 사고가 일어났으니까.

“손 씻는 거 좀 도와주세요.”

진단을 마친 능연은 오른손을 내밀었다. 그 후 조금 전 주 선생이 소독한 칼을 받아들어 핑거팁 그립으로 메스를 잡고 상처를 겨눴다.

“누르세요.”

능연이 냉담한 표정으로 지시를 내리자 주 선생은 반사적으로 환자를 눌렀다. 능연은 바로 칼을 대서 복직근을 열었다. 그는 봉합할 때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크게 상처를 열고 손을 내밀었다.

“술 부어요.”

남은 술이 능연의 손에서 콸콸 흘러내렸다. 알코올이 날아가기를 기다리기도 전에 능연은 오른손을 서서히 황금무의 상처에 찔러넣었다. 주 선생은 그제야 능연이 뭘 하려는지 깨달았다. 황금무의 상처는 깊었지만 좁고 가는 칼끝으로 찔린 터라 그의 손이 거기까지 들어가지 않았던 것이다.

“아악!”

피를 흘리고 기절했던 황금무는 알코올로 잠시 마취됐다가 거세게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도와줘요.”

주 선생이 고함을 지르자 구경하던 남자 몇이 달려들어 황금무의 어깨와 다리를 눌렀다. 능연은 손을 조금 더 밀어 넣은 다음 멈추고 안을 더듬기 시작했다.

“간 파열이네요.”

조금 전까지 상처를 따라 흐르던 피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주 선생은 리어카에 엉덩이를 대고 주저앉아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능연의 왼손은 여전히 장쇠의 배에 꽂혀 있었고, 오른손은 황금무의 배를 만지고 있었다. 주 선생은 그것이 불가능한 일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수술대 앞에 서는 집도의는 모두 맨손 지혈 경험이 있었다. 칼이 삐끗해서 피가 쏟아져 나오면 거즈를 찾을 새도 없이 손으로 눌러야 했으니까.

시야 확보가 안 된 상황에서도 맨손 지혈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개복 검사는 배를 가르고 장기를 이리저리 헤집으며 출혈 포인트를 찾는 것이다. 그러나 그건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었다. 경험 많은 의사는 보통 장기를 헤집지 않고도 피가 솟구치면 바로 손으로 누르고 손가락으로 더듬어 출혈 포인트를 찾는다. 그래도 찾지 못할 때 장기를 헤집어도 늦지 않는다.

주 선생이 알고 있는 맨손 지혈법에 비해 능연의 기술은 보통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대체 하구 진료소 환자들은 어떤 환자들이었던 거야.’

‘집안에서 배운’ 능연의 솜씨를 감상하며 힐끔 소 사장을 쳐다본 주 선생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몰려 있는 구경꾼들은 신이 나서 리어카 앞으로 다가가 이리저리 사진을 찍어댔다. 주 선생은 핸드폰을 꺼내 독촉 전화를 했다.

“먹자 골목 전체가 도로를 점령하고 운영하는 바람에 구급차가 못 들어오나 봐. 그래도 다 왔대.”

잠시 망설이던 주 선생은 차라리 차를 구해서 병원으로 바로 가자고 했다. 주 선생의 시선이 검은 옷을 입고 배를 가린 설 사장의 얼굴에 떨어졌다.

“설 사장님, 차 좀 빌려주실래요?”

“나 스포츠 카인데? 아우디 TT라 뒷좌석에 사람 못 타.”

“소 사장님 차는요?”

“한 대는 누가 빌려 갔고, 한 대는 물건 떼러 갔어.”

“아니, 그래도 사장인데 차 다섯 대는 있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차 있는 사람 없어요? 세 사람 태워서 병원으로 갈 수 있는 차요! 이렇게 기다리다간 큰일 나겠어요.”

지칠 대로 지친 주 선생이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능연의 맨손 지혈이 아무리 완벽해도 출혈을 늦추는 것일 뿐, 얼른 치료를 해야 했다. 그러나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주 선생이 다시 한번 소리 높여 물었지만 대답은 없었고, 아예 몸을 돌려 사라지는 사람도 있었다.

“도저히 안 되면 리어카 끌고 구급차 있는 데까지 나가야겠어. 적어도 조금 일찍 출발할 수 있겠지.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니, 진짜 인심 한번 고약하네.”

“음. 여러분! 서둘러 이 환자들을 운화 병원으로 옮길 차가 필요합니다. 일찍 도착할수록 사람을 살릴 희망이 커요. 차 있는 분 좀 도와주세요. 세차 비용은 우리가 부담할게요.”

능연은 무릎을 꿇은 채로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달에 한 수술이 100건 정도였는데, 건당 평균 수술비가 4, 5백 위안이었다. 시간 날 때마다 수술 한 바람에 돈 쓸 시간도 거의 없어서 능연의 주머니 사정은 넉넉한 편이었다. 세차비 따위, 그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제 차 쓰셔도 돼요.”

주변에 카메라 셔터가 울려 퍼지는 사이, 여자 하나가 발개진 얼굴로 용기를 내서 앞으로 나섰다. 능연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가 뭐라고 입을 열기도 전에 곁에 있던 중년 여자가 고함쳤다.

“바로 이 앞에 있어서 제 차로 출발할 수 있어요.”

“제 차는 SUV예요! 제 차가 더 좋을 거예요.”

“내 차는 벤츠 G야! 내 딸이 운전하면 돼. 뒷좌석 펼치면 네 사람도 문제없어.”

서로 경쟁하듯 차 자랑을 펼쳤다. 결국 가장 나이 많은 여자가 곁에 있던 딸의 팔을 잡아끌고는 벤츠 G의 위력을 발산하며 사람들을 시켜 리어카를 그쪽으로 끌고 갔다.

잠시 후, 그들은 모두 차에 올라탔고 수줍음이 많은 아가씨가 조심스럽게 액셀을 밟아 먹자골목을 벗어나 운화 병원으로 내달렸다.

“그래도 인심 좋은 편인데요?”

그제야 한숨 돌린 능연이 웃으며 주 선생을 바라봤다. 주 선생은 그저 허허 웃음을 터트릴 뿐이었다.

아파서 깬 건지, 아니면 흔들리는 자동차에 깬 건지, 소년 황금무가 눈을 뜨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여기가 어디예요?”

“병원 가는 길이야. 별일 없을 거야.”

“알아요. 내가 그랬잖아요. 칼에 찔리면 의사가 샥샥 꿰매면 된다고.”

미소 지으며 다정하게 설명하던 주 선생의 얼굴이 새카맣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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