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43화 (32/877)

다음 날, 능연이 손 세차한 제타를 끌고 출근했다. 그러곤 곧바로 수술 5건을 배정해 달라고 하자 간호사들이 입방아를 찧었다.

물론 수술 5건이 포인트가 아니었다. 능연은 최근 한 달 동안 하루에 5, 6건 수술을 해오고 있었으니까. 번 주임은 이미 일본으로 돌아갔고 운화 병원 근건 봉합은 의료계의 인정을 받은지라 능연이 수술량을 늘리고 싶으면 언제든 늘릴 수 있었다.

그러니 간호사들이 관심사는 능연의 수술량보다 그가 타고 온 제타였다.

“아직 실습생이잖아. 그러니까 아직 학생인 건데, 차가 있어. 집이 잘사는 게 분명해.”

예쁘장한 간호사 하나가 진지한 얼굴로 평가했다.

“중고차라던데? 별로 안 비싸대. 누가 그러는데 산타나급이래.”

다른 예쁘장한 간호사가 진지한 얼굴로 평가했다.

“중고차면 어때. 중고차라도 깨끗하게 세차하면 새 차 같은데. 중고차 두 대 사는 게 번쩍거리는 새 차 한 대 사서 여자 꼬시는 거보다 훨씬 낫지. 능연 선생님이 그만큼 책임감 있다는 소리야.”

또 다른 예쁘장한 간호사가 진지한 얼굴로 평가했다. 그 말에 너스 스테이션에 앉아 있던 간호사 몇 명도 뒤쪽으로 돌아 나와 흥미진진한 얼굴로 대화에 끼어들었다.

“능 선생님 지난달 수술비만으로도 지금 저 차 살 수 있을걸? 그러니까 어쩌면 능 선생님이 사신 걸지도 몰라. 책임감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저금으로 차 사는 남자, 안전감 있지 않아?”

“차 있으면 능 선생님이랑 놀러 갈 때 좀 멀리 나가도 되겠다. 좋다, 좋아.”

“야, 네가 왜 능 선생님이랑 놀러 가.”

“어찌 됐든 능 선생님도 이제 드라이버네. 야, 이러다가 이상한 애가 우리 능 선생님 꼬셔 가는 거 아냐?”

화제가 민감한 주제로 전환되자 간호사들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우리 차라리 모임 하나 만들어서 같이 놀러 갈래?”

왕가가 좋은 생각이 난 듯 건의했다. 능연 수술실의 수석 기구 간호사인 왕가는 능연과 교류가 잦았다. 기구를 건네면서 슬쩍 손이 닿는다거나, 땀을 닦을 때 넓은 능 선생의 가슴에 살짝 기대거나, 다 시도해 봤지만 병원 밖에서 만난 적은 없으니 가장 적극적으로 나섰다.

“회식 금지령 모르니? 괜히 사고 치지 마라.”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은 유 간호사를 비롯한 선배 간호사들은 미소 지은 채 지켜 보고 있었지만, 말투만은 단호했다.

“더치페이하면 되죠.”

“그래도 안 돼. 지난번에 성립 병원에서 생일 파티한 거로 경고 먹었잖아.”

“경고받으면 그만이죠, 뭐.”

유 간호사의 말에 왕가는 입을 삐죽였다.

“수간호사님한테 그렇게 말해 봐. 한 달 동안 당직시키실걸?”

유 간호사가 콧방귀를 끼며 하는 말에 간호사들은 입을 다물고 몰래 시선을 교환했다.

오후가 되자 왕가는 30분 일찍 깨끗하게 씻고, 화장하고 아이섀도도 연하게 바른 다음 수술실로 향했다.

능연은 다른 사람들이 거의 준비를 마쳤을 때 안으로 들어왔다.

“능 선생. 저쪽 수술은 잘했어?”

“네, 열어 봐도 MRI로 본 거랑 별 차이 없더라고요.”

마연린이 웃으며 하는 말에 능연은 기분 좋은 듯 대답했다.

예전의 능연은 MRI를 판독할 줄 몰랐다. 대부분 의사도 그와 비슷해서, 겉으로는 진지하게 살피는 것 같아도 다 영상의학과에서 전해 준 글을 참고했다. 열심히 공부한 소수의 의사만 대충 알아볼 뿐이나, 그 효과는 영상의학과에서 준 자료보다 못할 때가 많았다.

MRI 사진을 진정으로 판독하는 임상의는 매우 적었다. 영상의학과 의사도 장기적인 배움과 판독을 거치면서 겨우 각 위치의 참고선을 외우고 참수 계산을 하게 된다. 물론, MRI 사진을 판독할 수 있으면 외과에서 상당한 장점이 된다.

X-ray나 CT에 비해서 하이드로늄 이온으로 형상화된 MRI는 환자 신체 상황을 거의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수많은 사망 토론에서 알 수 있듯이 환자의 증상은 대부분 각종 영상의학과 사진에 드러나 있다. 다만 임상의는 보통 자신의 판단만 중시하고, 영상의학과는 보통 사진을 기초로 한 결론만 내기 때문에 사전에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마스터급 MRI (사지) 판단 능력을 터득한 능연은 그 기술을 굴근건 봉합 수술할 때, 머릿속에 근건의 nD(3D 이상) 이미지를 그려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로 인해 능연은 근건 상하좌우전후의 외부 특징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근건 내부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한 가지 아쉬운 건 MRI가 비싼 탓에 예약도 적고 환자에게 MRI를 찍어 보라고 쉽사리 요구할 수도 없다는 점이었다. 그것만 아니면 거의 반투시 용도로 쓸 수도 있었다.

“오늘은 바깥쪽에서 들어가겠습니다.”

능연은 펜으로 환자의 손바닥 측면에 선을 그렸다. 이는 흔한 방법이 아니라서 마연린은 눈꺼풀이 튈 정도로 놀랐다. 그는 요즘 탕 봉합에 관한 자료를 많이 읽어서 관련된 여러 케이스를 봐왔지만, 실전과는 크게 차이가 났다.

“능 선생, 아는 환자야?”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마연린이 혹시나 하고 묻는 말에 능연은 의아한 듯 그를 힐끔 봤다.

“아니, 내 말은 칼을 참 특이하게 대서.”

“MRI로 보니까 이쪽에서 봉합하는 게 봉합 강도를 늘릴 수 있을 거 같아서요.”

봉합 강도가 바로 봉합의 최종 지표였다. 봉합 과정 중 사용된 복잡한 기술은 모두 강도를 위해서였으니 능연은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그러자 마연린은 더 이상한 마음이 들었다. 그의 기억 속에 능연은 FM인 외과 의사로 그의 수술은 항상 규칙대로 착착 진행되어왔다. 능연의 수술 방식을 설명하라고 한다면, 탱크 같다는 말이 가장 적당했다. 어떤 적이든 앞으로 나가며 밀어붙이는 탱크 말이다. 장애물을 소탕하고 승리하거나, 실패하고 다시 하거나.

그런 능연이 갑자기 손바닥 측면에 칼을 대니, 마연린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뭐라고 할 말도 없었다.

능연은 순조롭게 환자의 근건을 꺼냈다. 손바닥 측면 근건은 역시나 약해져 있었고 파열된 흔적이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테두리를 자르고 봉합을 계속했다.

정면에 칼을 댔다면 똑같이 해도 20분은 더 걸렸을 테고, 봉합 후 예후도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능연은 순조롭게 수술을 진행했고, 그 모습에 다른 사람도 눈이 즐거웠다. 왕가는 더욱 감탄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능 선생님 수술 솜씨가 나날이 늘고 있어요.”

“하면 할수록 느는 거죠, 뭐.”

능연은 싱긋 웃어 보였다. 물론 수술 전에 한 시간 동안 MRI를 보며 수술 방안을 연구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예전엔 실력이 없어 MRI 사진을 판독하지 못하여 영상의학과에서 보낸 글만 읽을 뿐이었다. 그래서 간단하게 밑그림만 그린 후 열어보고 결정했으나 지금은 달랐다. 마스터급 판독 기술이 있으니 뇌리에 자연스럽게 그림이 그려졌다.

능연의 사고회로도 활발하게 돌아갔다. 탱크가 되고 싶은 사람은 없었다. 유연하게 할 수만 있다면 그도 당연히 그러고 싶었다.

“기분 좋은 일 있으신가 봐요.”

“무슨 일이요?”

수술 이야기가 아니었다. 왕가는 자연스럽게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화제를 이끌었다.

“차 사셨잖아요. 다 봤어요. 아직 졸업도 하기 전에 차를 사다니, 능 선생님 진짜 대단하세요.”

“아버지가 사주신 거예요.”

그런 점은 전혀 마이너스 포인트가 아니었다. 꽃미남 가족이 화목하다는 증거였으니 말이다. 한마디만 틀어져도 가족과 원수지는 추남이야말로 사회악이었다.

“차 예쁘던데요? 둥글둥글하니 귀여워요.”

다른 간호사도 한마디 덧붙여 호응했다.

“1.6L 제타던데? 폭스바겐 괜찮지. 다 똑같이 생겨서 그렇지. 그래도 L형 후미등은 예쁜 편이야. 할로겐 등 바꾸면 좀 더 괜찮아질 건데······.”

“여자들은 자동차 잘 몰라요. 어쨌든 예쁘면 장땡!”

왕가가 마연린의 말을 잘랐다. 마연린은 인터넷에서 벌써 수십 번 제타를 검색했지만, 그런 티는 하나도 내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니까 여자 운전자가 사고를 내는 거예요. 좋은 차인지 나쁜 차인지를 떠나서, 일단 성능은 알아야지. 그래야 운전할 때 위급상황이 닥치면 재빨리······.”

“능 선생님, 퇴근할 때 우리 좀 바래다주면 안 돼요?”

마연린의 말을 듣고 싶지 않은 왕가는 사전에 상의한 내용을 단도직입적으로 입에 올렸다.

“하이디라오(훠궈 전문점) 가서 훠궈 먹으려고요. 하구 진료소 근처에 있거든요. 그런데 차 잡기 힘든 시간이라서요.”

“그래요.”

능연은 왕가가 준비한 이야기를 다 끝내기도 전에 시원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마연린은 입을 다물었다. 그 정도로 눈치 없는 바보는 아니었으니. 신이 난 왕가는 수술이 끝났을 때 펄쩍 뛰고 환호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꽃미남 공략법>을 통해 얻은 기술에 따르면, 여자가 먼저 출격하면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것보다 훨씬 성공률이 높다고 했다. 그리고 꽃미남에게 작은 부탁을 하는 것이 꽃미남에게 도움 주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라고도 했다.

왕가를 비롯한 간호사들은 능연에게 감사 표시를 한다는 명목하에 같이 훠궈를 먹자고 이야기하기로 미리 입을 맞춰두었다.

5명이 같이 하는 식사 자리긴 해도, 젊은 여자 4명이 같이 있으면 더욱 예뻐 보이는 시너지 효과도 있다. 그런 점은 한국 아이돌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 평균 이상인 여자들이 같이 있으면 따로 있는 것보다 훨씬 예뻐 보이는 법.

잠시 생각에 빠져 넋이 나갔던 왕가는 재빨리 정신 차리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러고는 너스 스테이션에서 다른 간호사 세 명과 함께 조잘조잘 대며 차 탈 때 일을 상의했다. 누가 조수석에 앉을 건지, 뒷좌석에 앉을 건지, 우호적이고 의미 있는 담판을 지었다.

그때 조낙의가 마침 너스 스테이션을 지나갔다. 그는 뒷부분만 듣고 간호사들이 차를 얻어타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얼마 전 BMW 320을 산 터라 조낙의는 묘하게 기뻐했다. 그는 이제 선임 주치의였다. 아직 부주임이 되려면 멀었지만, 몇 년 동안 주치의 생활을 하면서 모은 돈이 꽤 있었다.

이제 막 초급 단계에 든 레지던트에 비해서 주치의는 돈 들어올 구멍이 더 많았고, 조낙의도 BMW 320을 사고도 오래 마음 아파하지 않았다. 자금 출혈을 보상받기 위해, 조낙의는 밤샘 수술을 하고도 다음날 300킬로를 달려 자동차 동호회 모임에 참석하기도 했다.

그러나 자동차 동호회의 낯선 사람이 젊고 예쁜 간호사보다 병원 생활에 대한 이해심이 많을 리 없었다.

“내가 BMW 산 것도 다들 모르겠지?”

조낙의는 ‘자전거 타고 웃는 것보다 BMW 타고 우는 게 낫다’라는 말을 떠올렸다. 그는 간호사들의 퇴근 시간을 기억했다가 핸드폰에 메모까지 했다.

퇴근 후, 조낙의는 바로 주차장으로 내려가 BMW를 몰고 우연히 지나친 것처럼 간호사들이 만나기로 했던 곳으로 향했다.

“왕간! 퇴근해?”

멀리 간호사들이 사복 차림으로 몰려 있는 걸 본 그는 바로 차에서 내려 차 문을 붙들고 고함쳤다.

“조 선생님.”

예의 바른 간호사 하나가 사근사근하게 인사하자 조낙의는 흐물흐물해져서 어디로 가는지 물었다.

“내가 태워줄게.”

새 BMW는 하얀 차체에 왁스까지 칠해서 반짝거렸다. 조낙의는 대범한 듯 BMW 지붕을 툭 쳤지만, 속이 쓰려 죽을 것 같았다. 그동안 아까워서 함부로 건들지도 못했건만. 오래 저축한 돈으로 산 차인데, 다른 엠블럼은 몰라봐도 BMW는 알아보겠지.

조낙의는 내심 뿌듯했다. 간호사들은 조낙의 한 번, 자동차 한 번 보고는 웃기만 했다.

“조 선생님, 괜찮아요. 우리 약속 있어요.”

왕가가 예의 바르게 대답하는 사이, 검은 소형차가 조낙의의 BMW 옆에 섰다.

정교한 예술품처럼 온몸이 반짝거리는 BMW에 비해 검은 제타는 짧고, 좁고, 낮고 예쁘지도 않았다. 눈 호강은 둘째 치고 기계처럼 투박하기까지 했다. 그런 차에 앉은 능연도 오늘은 조금 거슬릴 정도일 뿐 그다지 특별할 것 없어 보였다. 그 순간 조낙의의 마음속에 자부심이 가득 찼다.

오랜 시간 뿌린 씨앗을 수확할 때가 됐군.

“차 한 대에 다섯 명은 너무 많지 않아? 몇 명은 내 차 타.”

조낙의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BMW 세금으로 능연이 모는 똥차도 살 수 있으니까.

“왕가, 네가 조수석에 타.”

“우린 괜찮아요.”

“끼어서 타면 돼요.”

간호사들은 조낙의 말에 대답하면서 아까 약속한 대로 능연의 제타에 올라탔다. 몸집이 작아도 네 명이나 타니, 차가 꽉 찰 정도였다. 하지만 소형차는 곧 시동이 걸리더니, 유유히 조낙의의 시선에서 사라졌다.

조낙의는 아무도 타지 않는 텅 빈 BMW를 허망하게 바라봤다.

요즘 여자들 어떻게 된 거야? 인터넷에서 말하는 허영심에 가득한 소비주의 여자들은 다 어디로 갔냐고.

검은 중고 제타는 신나게 매연을 뿜으면서도 착실하게 도로 위를 달렸다. 능연은 허리를 곧추세우고 앉아 전방을 주시하며 제한 속도에 가까워질 때마다 액셀에서 살짝살짝 발을 뗐다.

추월이나 차선 변경도 거의 하지 않았고, 액셀을 끽끽 밟는 행동은 더더욱 하지 않았다. 묘하게 능연의 엄숙한 기척을 느낀 간호사들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다가 이내 대화마저 줄어들었다.

“도착했습니다.”

능연이 어느 빌딩 앞에 차를 세웠다.

“선생님, 우리랑 같이 식사해요. 태워다 주셨는데, 식사 대접이라도······.”

“오늘 엄마가 저녁을 하셔서요. 어서 올라가요, 예약 시간 늦으면 기다려야 하잖아요.”

네 여자는 어쩔 수 없이 아쉬워하면서 차에서 내렸다. 능연은 바로 시동을 걸고 슝 하고 차를 몰았다.

도평 여사가 저녁을 하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다. 새 자동차를 얻어 기분이 좋았으리라. 투자 비용을 따지자면 엄청난 원가가 든 저녁 한 끼라고 할 수 있었다. 참, 호화로웠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