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 자동으로 눈이 떠진 능연이 벌떡 일어났다. 그는 10분 만에 샤워를 마친 후 출근 준비를 끝냈다. 흠잡을 것 없이 주변을 정리한 그는 쏜살같이 집을 나섰다.
인생의 첫 번째 차는 능연의 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예전에는 새벽 5시, 혹은 그보다 늦게 집에서 나갔다. 새벽 4시는 버스가 다니기 전이고 차 잡기도 어려웠던 터였다. 걸어 다니는 것도 좋았지만, 매일매일 그럴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차가 있으니 달라졌다. 능연은 최고 속도로 미친 듯이 달렸다. 운화 병원에 도착하니 아직 4시 반도 채 되지 않았다.
“시간 절약되네.”
능연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주차장 안쪽에 차를 댔다. 곽종군이 특별 허가를 내준 응급 의학과 소속 탄력 주차 자리였다. 특별 방문자나 고액을 주고 스카우트해 온 의사 등을 위해 남겨둔 자리였다.
실습생인 능연에게 탄력 주차 공간을 내주어도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탕 수술이 어렵고, 한 달에 100건 수술하는 게 얼마나 대단한지는 둘째 치고, 능연이 응급 의학과 전체에 가져다준 수입으로 평균 2, 3백 위안은 더 버는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다른 의견이 있을 리가 없었다.
능연은 후진 주차한 다음 양쪽을 둘러보고 차가 정중앙에 잘 자리 잡았는지 확인했다. 그러고는 양옆, 앞뒤 간격이 똑같은 것까지 확인하고서야 수술실로 향했다.
새벽 4, 5시는 수술실이 가장 한가한 시간대였다.
지난밤 수술은 거의 끝났고, 끝내지 못했다면 삼선 의사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할 시간이었다. 아침 수술은 아직이었다. 응급 수술이 아니라면 일반적으로 의사들은 그렇게 일찍 수술을 배정하지 않았다. 7, 8시쯤에 진료과에서 가장 중요한 회진이 시작하는데, 두 시간 만에 수술을 끝낼 수 있다고 확신하는 의사는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능연은 회진을 돌 필요가 없었다. 지금 응급 의학과에서 그의 위치는 수술 전문 의사와 비슷했다. 능연에게 포지션을 지정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는 그저 회진보다 수술을 하길 원할 뿐이었고, 곽종군도 그의 뜻대로 하게 두었다.
능연의 부속품 취급당하는 연문빈과 마연린에게는 더더욱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한 사람은 퍼스트 어시스턴트를 하고, 나머지는 회진 돌고. 그게 암묵적인 룰이 되었다.
심지어 그들은 능연보다 30분 일찍 병원에 나왔다. 연문빈은 하품하다가 능연을 보고는 다급히 손으로 입을 가렸다.
“괜찮으세요?”
“다섯 시간 잤나?”
연문빈이 쓴웃음을 지었고, 능연은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적어도 6시간은 자야 메스가 잘 잡혔다. 그동안 경험한 바에 따르면 6시간도 못 잔 수술에서는 반응도 느리고 효과도 좋지 않았다. 그래서 지난밤에는 8시쯤에 잠자리에 들었다. 일찍 잘 수 없는 날은 차라리 수술 한 두 건을 줄이더라도 수술 시간을 뒤로 미뤘다.
그러나 레지던트의 수면 시간까지 보장할 수는 없었다. 능연이 하루에 수술을 네다섯 건 하는 만큼 차트도 써야 했다. 그리고 그만큼 회진 돌 환자가 늘어났다. 게다가 재활도 참고할 부분이었다.
요즘 병원은 한마디로 레지던트를 착취해서 돌아가는 시스템이었다. 연문빈과 마연린이 있으니 능연은 그런 잡무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능연은 MRI 사진을 툭툭 쳐서 수술실 백라이트에 끼워 넣고 판독하면서 생각에 잠겼다. 연문빈과 마연린은 더할 나위 없이 부러운 듯 그를 바라봤다. 그들에게 MRI 판독은 이뤄내기 어려운 성과였다. 모든 의대생은 MRI 관련 수업을 배우지만, X-ray나 CT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MRI 판독을 임상의가 배울 수 있도록 시도하는 병원은 없었다.
영상의학과 본과 졸업생도 MRI를 완벽하게 판독하지는 못했다. 병원은 현실 무대였다. 배운 것이 쓸모 있고 없고는 그 무대에서 잔혹하게 재연된다.
“특별한 건 없네요. 시작할게요.”
MRI를 판독할 수 있게 된 능연은 메스를 드는 게 훨씬 평온했다. 그전엔 영상학과에서 넘겨주는 설명으로 수술에 부적합한 점은 없는지 판단하는 게 최선이었으니까. 근건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끊어졌는지에 관해서는 미리 알 수 없었고, 무조건 뚜껑을 열어 봐야 알 수 있었다.
대부분 외과의는 다 그랬다. 사전에 이런저런 예상을 해도 결론은 하나였다. ‘열고 보자.’
뚜껑을 열었을 때, 예상과 부합하는 것이 제일 좋았고, 그 다음으로는 배운 내용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경험한 적 있는 상황이면 그다음으로 좋았다. 가장 최악의 상황은 ‘헐, 이게 뭐람?’이고.
MRI 판독이 가능한 외과의는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었다. 물론, 완벽하게 피할 수는 없었지만.
“아침 드셨어요?”
능연은 수월하게 환자의 손가락을 가르면서 사람들에게 물었다.
“응? 웬일이냐?”
평소에 잡담하는 법이 없는 그였기에 연문빈이 의아한 듯 경계하며 물었다.
“여러분 졸릴까 봐요. 이야기하면 좀 낫지 않아요?”
“그치, 너랑 이야기하면 확실히 그렇겠지.”
당직 간호사가 풉 웃음을 터트렸다. 격려받은 기분이 든 연문빈도 미소 지었다.
“그럼 이야기 좀 해요. 아침 드셨어요?”
“먹었다.”
“뭐 드셨어요? 족발?”
이야기하면서 근건을 꺼낸 능연이 안심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MRI 사진이랑 같네요. 어려울 거 없겠어요.”
“저기, 그냥 이야기하지 말고 하자.”
왠지 어색하단 생각에 연문빈이 그렇게 제안했고, 능연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연문빈이 졸릴까 봐 일부러 수다를 떨려고 한 것인데, 조용히 수술할 수 있다면 그에게는 더 좋은 일이었다.
수다스러운 수술실은 모래가 섞인 고기 같은 느낌이었다. 먹을 수는 있지만, 기분이 껄끄러운 그런 것 말이다.
소가복은 힐끔 기기상의 수치를 확인하고는 둥근 의자를 옮겨 구석으로 가서 핸드폰 게임을 시작했다.
스마트폰이 생긴 이래 마취의의 생활이 크게 달라졌다. 예전의 마취의들은 24시간 동안 여러 수술실을 뛰어다니면서 번 돈을 쓰지도 못한 채 살았다. 그런데 스마트폰이 생긴 다음, 마취의는 병원에서 명절을 보내는 것처럼 보냈다. 24시간 내내 수술실을 바꿔가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느라 버는 돈이 모자랐다.
수술 한 건이 끝나고 또 다른 수술. 예정된 수술 4건이 끝났는데 겨우 7시였다. 수부 해부 지식과 사지 MRI 판독 능력을 터득한 후, 능연의 수술시간은 더욱 빨라졌다.
능연은 아직 미련이 남았지만, 새로운 환자가 없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는 혹시 일찍 일어나 훈련 중인 환자가 있을까 싶어 재활실로 갔다.
굴근건 손상 같은 수부 수술은 수술 후가 더 중요했다. 응급 의학과에서 빌려 쓰는 수부외과 재활실에 벌써 환자 네 명이 일분일초를 아까워하며 훈련하고 있었다.
“능 선생님. 일찍 오셨네요?”
“안녕하세요. 제가 좀 볼까요?”
“안 그래도 한 번 봐달라고 부탁하려던 참이에요.”
능연을 알아본 환자가 열정적으로 그를 맞이했다. 환자는 기분 좋은 듯 일부러 다친 손으로 그를 불렀다. 환자는 전혀 다친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능숙하게 움직이면서 이런저런 동작을 시작했다. 대추를 3개를 잡았다가 돌렸다가 올렸다가 내렸다가 하면서 자유자재로 손을 움직였다.
능연이 몰입해서 관찰하자 얼마 후에 시스템에서 띵 소리가 났다.
- 성과: 환자의 진심 어린 감사
- 환자의 진심 어린 감사는 의사의 최대 포상
- 보상: 초급 보물 상자
진심 어린 감사로 얻은 보물 상자는 오랜만이었다.
그 전에 받은 ‘진심 어린 감사’는 모두 대장이 곁에 있을 때나 얻은 것이었다. 곽 주임이 능연을 칭찬하고 환자가 ‘수술 끝내주게 성공했음’을 알게 된 후에야 진심 어린 감사 보물 상자를 얻은 셈이었다.
탕 환자 중 아직 퇴원한 환자는 없었다. 굴근건 봉합 수술은 회복시간이 길고 마지막 결과가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으니 대장도 수술 경과에 대해 함부로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 탓에 능연이 진심 어린 감사를 받을 기회는 적었다.
갑자기 찾아온 초급 보물 상자에 능연은 저도 모르게 생각에 잠겼다. 아직 퇴원도 하기 전에 ‘진심 어린 감사’를 하다니. 그러나 더 곰곰이 생각해보니 전에도 퇴원할 때 받은 건 아니었다.
‘그러니까······ 내가 그동안 회진을 너무 안 한 거지?’
능연은 심사숙고하면서 자아비판을 시작했다.
‘탕 법 연마 퀘스트 때문에 수술량을 늘리느라 연 선생님께 회진을 보냈지. 그러지 말아야 했어. 일반 주치의는 대부분 레지던트 보내지만, 난 주치의가 아니잖아. 내가 왜 그랬지?’
능연은 아래턱을 문지르며 계속 생각했다.
이번 ‘진심 어린 감사’는 대장도 없이 환자를 보자마자 받은 것이었다. 그것으로도 여러 가지를 설명할 수 있었다.
우선, ‘진심 어린 감사’는 얼굴을 마주해야 받을 수 있다는 것. 둘째, 그렇다고 해도 대장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
“선생님, 제 손에 문제 있나요?”
신나게 대추를 가지고 놀던 환자는 능연이 아무런 대꾸가 없자 뜨끔해졌다.
“손 어떤 거 같으세요? 잘 회복된 거 같으세요?”
‘진심 어린 감사’가 나타나는 계기를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어서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환자는 더욱 당황했다.
“그 말씀은 어쩐지 선생님이 학생한테 시험 잘 봤냐고 묻는 질문 같네요.”
“하하, 운동 기능 분석을 한 번 해봐야 알겠지만, 아까 환자분 동작 보니까 아마 큰 문제 없을 것 같습니다.”
“휴우, 그렇담 다행이네요. 아이고, 진짜 선생님 아까 얼마나 놀랐다고요. 아, 맞다. 저 그 테스트 했어요. 결과는 우수예요.”
“잡는 힘은요? 힘쓸 수 있으세요?”
“네. 10kg짜리 박스도 옮길 수 있어요.”
헤헤 웃던 환자는 한참 만지작거리던 대추를 내려놓았다.
“환자분이 왕식 님 맞으시죠? 46세. 집에서 유리창 설치하다가 오른손 검지, 중지를 찔렸고요. 지난주 환자분 재활 리포트 봤었습니다.”
“네네, 맞아요. 저예요. 능 선생님 기억하시네요. 수술 잘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다른 사람한테 물어봤더니, 제 손이 이렇게 빨리 좋아지고 회복이 잘된 건 정말 운이 좋은 거라고 하더라고요.”
능연은 아무 말 없이 웃었다. 그는 그렇게 심하게 다친 축엔 들지 않았으나 의학엔 ‘하지만’이란 없었다. 가벼운 외상이라고 해도 완벽하게 회복된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런 관점에서 왕식의 운이 좋은 것이 맞았다.
다른 의사였다면 기능 분석에서 ‘우수’를 받지 못했을 수도 있고, 이렇게 빨리 회복되기도 어려웠을지 모른다. 게다가 같은 ‘우수’라도 차이가 있고 평가법마다 주목하는 포인트가 조금씩 다른데 카네코 츠바사 법은 더 까다로웠다.
운동 기능 테스트든 카네코 법이든 높은 평가를 받을 만큼 수부 기능이 거의 완벽하게 회복되었으니 환자가 기뻐하는 것도 당연했다.
수부외과 수술,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해서 굴근건 봉합 수술은 회복이 잘 되고 안 되는 것을 환자 자신과 가족들도 쉽게 판단할 수 있었다. CT를 본대도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심장 수술과는 달랐다. 뇌수술하고는 더 차이가 났다. 뇌수술 후 찍은 MRI 사진은 의사들조차 잘 알아보지 못하니 가족은 더 말할 것도 없겠지.
수부외과 수술은 환자가 재활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명확한 차이를 느꼈다. 최악은 혈관을 제대로 꿰매지 않아 혈액이 공급되지 않는 바람에 괴사로 인한 절지 상황이었다. 어떻게든 봉합은 했는데 오히려 기능을 잃게 되는 상황을 의사들도 최대한 피하려고 애를 쓴다.
부분 기능만 회복되는 것은 가장 많은 케이스였다. 뻗을 수는 있는데 구부려지지 않는 것, 움직일 수는 있는데 주먹 쥘 수는 없는 경우는 모두 회복이 잘됐다고 보기 어려웠다. 회복이 잘된 케이스는 의사의 말이 따로 없어도 환자와 가족이 예전 상태와 비교해보고 대충 짐작하곤 한다.
“손 좀 볼게요.”
능연은 왕식의 맞은 편에 앉아 그의 손을 잡고 간단한 테스트를 진행했다. 곁에 있던 환자들도 각자 재활을 하면서 왕식의 상황을 주시했다.
“잘된 거 같네요. 퇴원해도 되겠어요.”
“그렇죠? 제 손 좋아진 거 맞죠? 이제 문제없는 거 맞죠?”
뛸 듯이 기뻐하는 왕식의 모습에 능연은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잘됐다. 정말 잘됐다. 선생님은 모르실 거예요. 제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말이에요. 저는 회사에서 회계일을 하거든요. 일할 때는 제 손이 얼마나 세밀한 작업을 하는지 몰랐는데, 다쳐보니까 알겠더라고요.”
왕식은 능연의 손을 잡고 힘껏 흔들면서 흥분한 듯 말을 이었다.
“손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런 생각뿐이었거든요. 회복이 되더라도 완전히 정상은 아닐 텐데, 그럼 일은 어떡하나. 회계일을 하다 보면 1년에 한두 번 정도 엄청나게 바쁜 시기가 있는데 그때 이 손이 문제를 일으켜서 사람들한테 민폐 끼치면 어떡하나. 그런 생각들이요.”
능연은 원래 남의 말을 자르는 사람이 아닌 데다가 지금은 딱히 할 일도 없어서 미소 지은 채 그의 이야기를 들어 주었다. 다른 환자들도 이때다 싶어 손을 봐달라고 능연에게 다가갔다.
재활이란 때 되면 착착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 지루한 과정이었다. 일정 정도까지 재활을 진행하다가 눈에 띄게 회복되지 않으면 대부분 환자는 초조해지기 마련이었다. 의사인 능연은 위로를 건네며 사람들에게 안도감을 안겨 주었다.
그때 재활 센터 간호사 하나가 환자들을 테스트하는 능연을 발견하고 웃으며 다가갔다.
“여러분 운이 참 좋으시네요. 능 선생님이 봉합하신 거 맞죠? 능 선생님이 봉합하신 상처는 매우 깔끔하게 마무리된답니다.”
수술량이 늘어난 다음 능연은 마무리 봉합을 자주 연문빈과 마연린에게 넘겼다. 그러나 지금 재활 중인 사람들은 모두 이제 곧 퇴원해도 되는 능연의 초기 환자였다.
“능 선생님 봉합 실력은 우리 병원에서 공인한 실력이에요. 아마 재활실에 예전 환자 봉합 후 사진이 있을걸요? 한번 비교해보세요. 능 선생님 봉합은 예술이에요, 예술. 여러분이 선생님을 만난 건 정말 행운이라니까요.”
간호사는 능연 앞에서 그를 추켜세웠다. 남자들은 자신의 손에 대해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호기심에 구석에 있는 책자를 가지고 와서 넘겼다. 재활 센터는 사진을 찍어 두는 전통이 있어서 회복이 잘된 환자의 사진을 책자로 정리해두곤 했다. 홍보용으로 쓰기도 하고, 나중에 올 환자 자극용으로도 썼다.
남자 몇이 잡지처럼 엮인 책 한 권을 넘기면서 자신의 상처와 비교했다. 그랬더니 정말로 다른 점이 느껴졌다.
“이야, 이건 진짜 좀 조악한데?”
“손등에 상처가 이렇게 커서야 원. 외출할 때마다 사람들이 쳐다보겠는데?”
“어후, 이건 너무 징그럽다. 거의 사람 손이 아니야.”
수술이 비교적 잘된 케이스를 골라서 실었지만, 상처가 예쁘게 봉합됐다는 뜻은 아니었다. 바로 그런 점에서 능연은 다른 의사들과 달랐다.
수부외과는 전통적인 진료과라 나이 많은 의사들이 많았다. 대부분의 의사는 쉰을 넘었다. 그들은 봉합이 잘되었는지 아닌지를 중요하게 여기고 지체(肢體) 완벽도도 고려했지만, 봉합 후 남는 흉터 면적이나 흉터의 외관은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능연은 그걸 견딜 수가 없었다. 마무리 봉합할 때 피부가 완벽하게 맞붙지 않으면 온몸이 근질근질, 불편했다. 실이 틀어지거나 각도가 안 맞고, 바늘땀 간격이 안 맞는 건 더욱 못 견뎠다.
후반에 한 수술은 연문빈이나 다른 사람이 봉합하고 바로 붕대를 감으니까 능연은 모르는 게 약이라고 생각하고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직접 할 때는 어떻게든 예쁘게 봉합했다.
재활 센터 간호사들은 매일 흉터를 보기 때문에 흉터에 예민했다. 능연 자신도 주목하지 못한 디테일, 그리고 환자 스스로 의식하지 못한 부분을 간호사들은 일찍이 알아차렸다.
누가 예쁘게 꿰맸는지, 누가 한 수술 예후가 좋은지, 누구 환자가 상황이 안 좋은지, 의사와 환자들은 몰라도 간호사들은 다 알고 있었다.
띵!
띵!
띵!
‘진심 어린 감사’로 얻은 보물 상자 세 개가 능연의 손에 들어왔다.
“아이고 선생님, 우리는 멍청하게 뭐가 좋은지도 모르고 있었네요.”
왕식의 아내가 다급하게 감사 인사를 표했다.
“전에도 꿰맨 자리가 참 가지런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이게 대단한 기술인 건 이제야 알았네요.”
능연을 마주한 참에 환자와 환자 가족은 당연히 그 앞에서 능연을 칭찬했고, 진심인지 아닌지는 환자가 능연의 손에 넣어준 ‘진심 어린 감사’ 보물 상자로 확인할 수 있었다.
매일매일 재활실에서 죽치는 그들은 다른 환자들보다 회복이 빠른 걸 진작에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간호사까지 곁에서 부추기니 하나같이 대박 맞은 기분이 들었다.
능연은 줄곧 미소 짓고 있었다. 그 전에 탕 연마 퀘스트를 할 때 10번에 한 개씩 초급 보물상자를 얻었던 걸 생각하면, 진심 어린 감사의 가치가 더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그는 후반부 마무리 봉합을 연문빈이나 마연린에게 넘긴 걸 깊이 반성했다.
너무 들떠서 잡다한 일은 다 어시한테 넘기는 게 아니었어. 중요한 문제를 생각 못 했네.
“우리 능 선생님은 탕 법 전문이에요. 생각해보세요, 그 작은 근건 꿰매는 게 얼마나 어렵겠어요. 능 선생님이 그걸 직접 다 하신 거라고요. 마무리 봉합까지 직접하신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데요.”
능연이 기뻐하는 모습에 간호사는 강조하듯 다시 말을 꺼냈다. 그 말에 환자와 가족들은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러고는 이때다 싶어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다. 능연은 그중에 중요한 질문을 골라 대답하고 나머지는 간호사에게 넘겼다.
재활 환자를 질리도록 봐온 간호사들이 식은 죽 먹기로 대답할 수 있을 정도의 질문이었다. 게다가 그 자리에 있는 환자 네 명 모두 회복이 잘된 케이스라 해괴한 질문도 없었다.
능연은 그 틈을 타 새로 얻은 보물 상자를 모두 열었다. 연달아 개봉한 결과물은, 당연히 모두 녹색 스태미너 포션이었다. 그동안 그가 모은 스태미너 포션은 모두 21개였는데, 약 한 달 동안 연속으로 당직을 서도 거뜬할 정도의 성과물이었다. 능연은 아무런 표정 없는 얼굴로 포션을 주머니에 넣었다.
예상한 결과였다. 아무리 심한 곳이라도 당첨 확률이 항상 꽝인 곳은 없는 법. 적어도 주방 세제 정도는 준비하겠지.
능연은 재활 센터에 앉아 묵묵히 새로 들어올 환자를 기다렸다. 운화 병원 재활실은 예약제로 운영했다. 8시부터 20분마다 새로운 환자와 가족이 들어왔다. 대부분 수부외과 환자였지만 가끔 응급 의학과 환자도 있었다.
환자들이 올 때마다 간호사는 질리지도 않고 능연의 ‘대단함’을 사람들에게 소개했다. 어차피 할 일도 없는데 수다 떠느라 허비하는 시간을 능연을 위해 쓰는 게 훨씬 즐거웠다. 간호사는 능연이 재활실에서 버티고 있는 것도 십중팔구는 환자와 가족의 인사를 받기 위해서일 거라고 생각했다. 이상한 일도 아니었고 변태스러운 일은 더더욱 아니었다.
오랜 시간 이 일을 해온 간호사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었다. 변태 의사는 이러지 않는다고.
10시, 미소를 유지한 능연은 ‘진심 어린 감사’와 초급 보물 상자를 네 번 더 얻었다. 그리고 창서 미술 학원 여성 강사 한 명도 능연을 부추기는 대열에 합류했다.
“제가 보기에 환자분 상처 위치가 별로 좋지 않네요. 그런데 능 선생님 봉합 기술이 너무 좋은 거죠. 일부분은 손금을 따라 꿰맸고, 또 다른 부분은 손가락 중간을 지나갔어요. 여기, 손가락을 지나간 부분이 최고예요. 보세요, 손가락이 더 길어 보이지 않아요? 그죠? 그런 느낌 들죠?”
“바느질 가늘게 된 거 보세요. 이렇게 얇은 실을 쓰다니, 자신 있으셨나 봐요. 우리 예술가는 알 수 있어요. 사실 너무 얇은 흉터가 오히려 더 눈에 띄거든요? 그런데 그것도 아주 가까이서 봐야 알 수 있지, 멀리서 보면 흉터가 전혀 보이지 않네요.”
“정말 감탄밖에 안 나오네요. 전에 수업받던 학생들한테 직선 하나 그리라고 해도 다들 삐뚤게 그렸는데 말이죠. 2, 3년 동안 수업받아도 선 하나 제대로 못 그리는 아이들이 많았거든요. 이것 보세요, 선생님 봉합선. 이걸 바늘로 꿰맨 거예요. 그냥 자로 그린 거 같지 않으세요?”
여전히 미소를 지은 능연은 재활실에서 들리는 이런저런 소리를 들으면서 한 번씩 생겨나는 초급 보물 상자를 거뒀다. 10개까지 기다려 보기로 결심했고, 지금까지 7개를 누적했으니 곧 목표를 이룰 수 있었다.
“어머! 이게 뭐람!”
창서 미술 학원 강사가 깜짝 놀란 듯 갑자기 꽥 고함쳤다. 그러자 그 앞에 있던 환자가 다급하게 손을 거뒀다.
“이렇게 꿰매 놨더라고요.”
“이빨로 꿰맨 건가요?”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그러니까, 이건 다른 의사가 꿰맨 거겠죠? 수부외과 의사들은 다 이렇게 꿰매더라고요. 대충 대충. 선이 틀어져도 상관도 안 하고요. 우리 능 선생님이 한 수술은 이렇지 않다고요. 능 선생님 봉합은 그러니까, 한마디로 예술이에요.”
불만이라는 듯 투덜거리던 미술 강사가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나도 능 선생님한테 수술받은 거라고요.”
“에? 말도 안 돼. 누굴 속이려고요. 제 것 좀 보세요. 근건 봉합이라고 말 안 하면 그냥 작은 외상인 줄 알겠죠? 보라고요, 얼마나 깔끔한지. 그런데 당신 건 어떤데요.”
강사가 자신의 매끈한 상처를 들이밀자 맞은 편 환자는 자신의 삐뚤빼뚤한 상처와 비교하면서 의심하는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진짜 나도 응급 의학과에서 탕 법으로 봉합했어요. 봐요, 여기 팔찌, 응급 의학과로 되어 있죠?”
“응급 의학과에 초짜 의사가 들어왔나 보네요. 아니면 수부외과 의사가 임시로 꿰맸든가. 수부외과가 유명해서 그렇지, 주임, 부주임 선생님도 상처를 이상하게 꿰매더라고요. 이것처럼요.”
강사가 그게 뭐냐는 듯 고개를 흔들자 곁에 있던 간호사가 냉큼 나섰다.
“그래도 회복은 잘되고 있어요. 곧 퇴원하실 거예요. 보기 싫게 봉합됐다고 손 기능에 영향을 주는 건 아니잖아요. 못 믿겠으면 능 선생님한테 여쭤보세요. 어? 능 선생님 어디 가셨지?”
보물 상자 7개를 얻은 능연은 아무 말 없이 수술실로 돌아갔다. 초기에 직접 봉합한 환자는 이미 ‘진심 어린 감사’를 늘어놓았고, 후반에 연문빈 등이 봉합한 환자는······. 아마도 그들에게 진심 어린 감사를 받을 수는 없으리라.
탕 봉합 100번 하면서 겨우 보물 상자 10개를 얻었는데, 재활실에 앉아서 11개나 얻었으니 슬슬 수술실로 돌아가고 싶어서 엉덩이가 근질근질했다.
100번 수술하고 모두 직접 봉합하면 진심 어린 감사를 더욱 많이 받을 수 있겠지. 그런 생각에 저절로 그의 입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시스템, 상자 열어.”
샤워실로 들어간 능연은 샤워를 하며 명령을 내렸다. 7개 보물 상자에서 녹색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일제히 뚜껑이 열렸다.
“이게 뭐야?”
능연은 스태미너 포션 사이에 책 한 권을 발견했다.
- 단일 항목 스킬북. 파생 스킬 획득 : 현미경 하(下) 신경속막(束膜) 문합술(마스터급)
- 설명: 일종의 신경 문합술. 각종 이유로 완전 파열, 혹은 부분 파멸된 신경 수복에 사용.
능연은 포션을 챙기고는 바로 스킬북을 펼쳤다.
”이건 좀 대단한데?“
뜨거운 물로 샤워하던 능연은 새로 얻은 스킬에 감탄했다. 그때 수술이 있어 옷을 벗고 샤워실로 들어오던 조낙의가 능연이 감탄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샤워실의 거울을 보고는 고개 숙여 자신의 몸을 바라봤다. 그러다 고개를 비틀어 반투명 유리 뒤에 비친 능연의 실루엣을 보니 조낙의는 저도 모르게 우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