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45화 (34/877)

“이화민, 맞나요?”

“응. 31살, 여성. 낙상 후 딱딱한 물건에 손바닥 관통······.”

수술실로 들어온 능연은 연문빈의 리포트를 들으면서 필름들을 살폈다. 그의 요청에 따라 응급 의학과 수술실에 이동식 백라이트 판이 생겼다.

병원이란 그런 조직이었다. 실력 있는 사람이 요구하는 건 모두 들어준다.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건 실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뜻이었다.

조금 천박하게 표현해보자면, 목숨값은 얼마일까. 목숨을 사는 데 얼마나 들까. 수준 높은 의사를 고용하기 위해 병원은 적잖은 돈을 투자한다. 병원 책임자가 될 자격이 있는 간부는 실력 있는 의사를 단순히 수술비와 병원비로 계산하지 않았다.

물론, 그런 수준 높은 의사의 실력은 다른 의사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높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의사와 운동선수는 비슷하다고 볼 수 있었다.

보통 수준의 의사는 보통 수준의 운동선수였다. 정상에 오르기 위해 힘들고 죽을 거 같아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관심을 주지도 않는다. 5년, 8년, 심지어 10년 동안 죽어라 연습해서 실력이 일정 수준에 올라도 외부인은 알아주지 않고, 업계 사람들도 돌 취급한다.

수준 높은 의사는 적어도 성급 운동 대회에서 순위를 갖는 운동선수와 비슷하다. 조금 큰 삼갑 병원의 요구는 더욱 엄격해서 올림픽 출전 자격이 있어야 하고, 그것도 아니라면 적어도 앞으로 몇 년 안에 그런 수준까지 오를 잠재력이 있어야 한다.

능연은 누가 봐도 그런 잠재력이 있는 의사였다. 100건이 넘는 탕 봉합 수술이 바로 그의 밑천이었다. 병원 고위층들은 번 주임하고만 비교해봐도 능연의 가치를 대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번 주임은 이미 성에서 이름난 수부외과 전문가였다. 성내 수부외과 관련 회의 센터에서 전국 굴근건, 근건 회의를 열 땐 그에게도 반드시 초대장을 보냈다.

탕 봉합만 따지면 번 주임은 창서성 내 손꼽히는 정상급 전문가였기에, 해당 환자가 발생하면 다른 의사들은 그를 가장 먼저 떠올렸다.

능연이 운화 병원에 온 시간이 짧고 신분이 애매해서 병원 자체로는 아직 그의 위치를 정확히 정하지 못했다. 하지만 응급 의학과 내부에서 능연은 이미 특별 대우를 받고 있었다. 올 타임 수술실 사용 권한, 상한선 수술비, 필요한 의약 소모재료 전액 제공, 반 전문 어시스턴트와 인턴 등등.

물론 능연이 보여준 능력은 그 이상으로 놀라운 것들이었다. 그의 ‘우수’ 등급 퇴원 환자들은 전국 어느 병원에 가져다 놓아도 놀랄 성과를 보일 것이다. 연문빈은 요즘 경외심을 가지고 능연을 대했다.

“척골신경 손상, 맞죠?”

“척골구에 신경 손상이 있긴 해.”

사전에 사진을 본 능연이 확인차 묻는 질문에 연문빈은 멈칫하다가 냉큼 대답했다. 연문빈은 그간 능연의 스타일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신경 손상을 주의하는 모습은 또 처음이었다. 작은 신경 손상은 봉합을 하지 않아도 되고, 조금 큰 건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더 심하면, 즉 소위 합병 신경 파열 같은 경우는 응급실로 들어오지 않는다.

요즘 병원 진료과는 질환을 선택한다. 복잡한 질환은 더 대단한 병원으로 보내기 마련이고, 병원은 일반적으로 익숙한 케이스만 맡아서 성공률을 높였다.

능연은 전엔 신경 봉합을 하지 않았고, 심각한 신경 손상 환자는 선별해서 밖으로 보냈다. 합병 골절이 심각한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지금은 할 수 있게 됐고, 마침 수술 징후가 있는 환자를 만났으니 봉합을 진행해도 될 상황이었다.

“근건 봉합 마치고 척골신경속막 봉합하도록 하죠.”

능연은 재빨리 결정을 내렸다.

예후가 좋아 보이는, 심하지 않은 1기 봉합(1기 시점에서 바로 봉합을 하는 것)의 경우 수술을 하지 않고 봉합을 하는 것만으로도 신경 손상 회복에 대한 효과가 좋다. 그러니 수부신경 손상 수술에 있어서 수술을 할 수 있는 조건은 생각보다 까다롭다.

게다가 봉합이 잘된 신경이 봉합 안 한 신경보다 좋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신경 봉합을 선호하는 의사는 극히 드물었다. 특히 신경외과 이외의 진료과는 피할 수 있으면 피했다. 물론 봉합하기 어렵다는 것이 첫 번째 원인이었다. 간단히 말해서, 삼갑을 제외한 병원에서 신경 봉합을 할 수 있는 의사는 손에 꼽혔고, 잘할 수 있는 의사는 더 드물었다. 그러니 잘 봉합하지 못할 바엔 차라리 안 하는 게 나았다.

능연도 지금까지는 마찬가지 상황이라 능력도 안 되는 일을 쓸데없이 맡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능력이 생겼다.

연문빈은 주저하며 수술 전 준비를 시작했고, 능연은 필름을 더 들여다봤다. 그는 백라이트 판에 문외한이 보면 혼란스러워할 MRI, X-ray 사진을 잔뜩 늘어놓고 흥미진진한 얼굴로 살펴봤다.

마스터급 MRI 판독 기술이 가져다준 경험은 임상의로서는 새롭게 눈을 뜬 기분이었다. 해부한 후에야 느낄 수 있는 생생함을 미리 느낄 수 있자 그 기술에서 헤어날 수가 없었다. 그 정보는 영상의학과 의사에게 얻은 단편적인 내용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유용했다.

영상의학과 의사라도 해도 충분히 프로가 아니면 내용이 부실했다.

미래에는 의사의 판독 능력이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직 그리 보편화되지 않았다. 따로 훈련받지 않은 본과 졸업생에게 MRI는 신이 쓴 편지나 마찬가지로 전혀 알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마스터급 판독 능력이 있는 능연은 대부분 영상의학과 의사보다 훨씬 나았다.

자신의 첫 신경속막 문합술을 잘해내기 위해 능연은 오래도록, 자세히 필름을 들여다봤다. 그는 근건 신경 봉합 순서, 메스 전개 방향 등을 뇌리에 떠올리며 고민했다.

이전에 하던 탕 봉합은 고정된 수술 기술이라 다른 것을 건드리지 않고 차례대로 착착 진행해 나가기만 하면 끝이었다. 그런데 신경 문합술까지 하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는 원래 있던 다리에 새로운 다리를 하나 설치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일반 다리는 규칙적인 설계에 따라 건설하면 되지만, 교차교는 고려할 것이 많았다.

연문빈을 비롯한 사람들은 의아했지만, 조용히 상황을 지켜봤다.

“시작하시죠. 굴지 기능 재건술, 척골신경속막 문합. 오늘 수술은 다른 날이랑 다르니까 다들 바짝 신경 씁시다.”

수술대 앞에 선 능연은 그렇게 말하면서 핑거팁 그립으로 메스를 잡고 12cm 정도의 칼자국을 냈다.

연문빈은 정신을 집중하고 바라봤다. 레지던트 생활을 오래한 만큼, 집도의가 칼자국을 내는 것만 봐도 많은 것을 예상하곤 했다. 개인 습관을 차치하고, 같은 집도의가 같은 수술에서 칼자국을 크게 낼수록 어려운 수술이었다.

수술 후 부위의 외관을 매우 중시하는 의사인 능연이 표준보다 큰 자국을 내는 모습에 연문빈은 즉각 경계했다. 능연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그는 거즈를 들고 앞으로 나섰다.

능연은 빠른 수술을 추구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천천히 환자의 근육층을 메스로 갈랐다. 연문빈은 더욱 적극적으로 수술에 참여했다.

익숙한 굴근건 봉합에 능연은 신경 써서 속도를 낮췄음에도 매우 빠르게 끝이 났다. 그러고는 바로 신경속막 문합술을 시작했다.

인체 신경은 케이블 같은 구조였다. 핵심은 여러 개의 속막이고, 이 부분이 기능을 발휘했다. 속막은 케이블 안의 트위스트 페어선이고, 외막은 케이블 껍질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다른 것은 말초신경은 자가 유합 능력이 있는 생물성을 띤다는 점이었다.

그런 것에 기초한 신경 문합술은 일반적으로 세 가지 종류가 있는데, 외막 문합, 속막 문합, 외막 속막 동시 문합으로 구분되었다. 보통 겉을 봉합하고 속은 알아서 자라도록 두는 외막 문합을 가장 많이 사용했다.

신경이 잘 자랄지 아닐지, 의사가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어도 완전히 제어할 수는 없었다.

속막 문합은 더 심했고, 난도도 더 높았다. 외막 문합은 그나마 맨눈으로 진행할 수 있었지만 속막 문합은 완전히 불가능했다. 연문빈은 다소 걱정스러운 듯, 마이크로 글래스를 쓴 능연을 바라봤다. 연문빈은 안경을 쓰지 않아서 능연의 조작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었다. 심지어 실도 잘 보이지 않았다. 10-0호 봉합사의 움직임은 사람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정교했다.

“속막은 확실히 견고하긴 하네요.”

“돼지 껍질보다?”

능연이 갑자기 하는 말에 연문빈은 멈칫하다가 궁금한 듯 물었다.

“훨씬요. 족발 껍질 같네요.”

능연이 잠시 고민하다가 하는 말에 연문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됐습니다.”

“벌써? 속막은 여러 개 아냐?”

“다 꿰맸습니다.”

능연이 니들홀더로 매듭을 묶으며 봉합이 끝났음을 알리자 연문빈은 의아한 듯 물었다. 그러자 능연은 한숨을 쉬고는 마무리 봉합을 시작했다.

’이 수술이 중요해서 그래. 괜찮아, 괜찮아.‘

마무리 봉합을 준비하던 연문빈은 멍해졌지만, 자신을 위로하면서 조수 노릇을 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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