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47화 (36/877)

병실에 있던 이화민은 벌써 깨어나 있었다. 수부를 깁스로 고정한 채 버둥대면서 병실을 바꿔 달라고 고함치고 있었다.

“이 병실에선 회복이 잘될 거 같지 않다고요!”

우리 응급 의학과에서 처음으로 한 신경 문합술인데, 회복이 잘 안 되면 안 되지.

곽종군이 눈살을 찌푸렸다. 대장의 심기가 불편해지자 간호사들이 다급하게 앞으로 나가 다정하게 왜 그러냐고 물었다.

“병실 바꿔 줘요.”

“병실은 왜요?”

간호사들은 의아한 듯 물었다.

“병실이 온통 초록색이잖아요. 나는 초록색을 접하면 안 된다고요.”

“왜요?”

“사주에 나무가 많아서 초록색 옷도 못 입어요. 그러니까 초록색 방은 더 안 되죠. 빨리 방 바꿔 달라고요. 초록방에서 회복이 잘될 리가 없어요. 안 바꿔주면 병이 안 낫는다고요.”

이화민은 불편한지 몸을 버둥거리면서 대답했다. 간호사는 만족스러운 듯 양팔을 허리춤에 대고 곽종군을 바라봤다. 곽종군은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다. 병실 시설에 문제가 있는 줄 알고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사주에 나무가 많다고 하니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마무리 봉합까지 마친 환자라, 진심 어린 감사라도 얻어낼 생각이었던 능연도 살짝 유감이었다. 지금 이 이화민라는 환자에게 감사를 받기란 어렵겠지.

“몰라요. 병실 안 바꿔 주면 퇴원할 거야. 난 녹색 병실에서 지내기 싫어!”

이화민은 다시 고함치면서 병상에서 내려오려고 버둥댔다. 그저 시늉일 뿐이었지만, 가족들까지 옆에서 거들었다.

“하지만 저희 병실은 모두 초록색입니다.”

곽종군은 성질을 누르면서 어떻게든 상황을 무마해보려 말을 꺼냈다.

“녹색은 나무 많은 사람한테 안 좋아요. 병실 몇 개는 다른 색으로 칠하는 게 좋을걸요?”

“무슨 색으로요?”

“분홍이요! 분홍으로 칠해줘요.”

이화민의 제안에 곽종군이 침착하게 물었다.

“왜 분홍이죠?”

“분홍은 금을 부르거든요. 제 사주에 금이 부족하다고 하네요.”

잠시 멍해졌던 곽종군은 상대가 농담이 아님을 깨닫고 화가 나서 바로 돌아서 병실을 나왔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척골신경을 머리에 연결한 줄 알겠네.”

“마취가 덜 깼나 봅니다.”

병실 앞에서 곽종군이 툴툴거리는 말에 주 선생이 낄낄거리며 대답했다. 능연은 신기한 느낌까지 들었다. 그는 마취 상태의 환자를 처음 접했고, 그때는 사람을 살린다는 성취감까지 있었었다.

“신경 전도 검사나 해봐. 저 여자 신경 회복 상태 체크해서 보고하고 회진은 잡지 마.”

“네.”

“제대로 성공해야 할 텐데. 성공률만 나오면 앞으로 수술 환자는 얼마든지 있어.”

곽종군은 기대에 차서 능연을 바라봤다. 운화 병원에서 지금 진행하는 신경 문합술은 주로 정중 신경 같은 주요 신경이었다. 정중 신경(median nerve, 正中神經)은 두꺼워서 고장 나도 어렵지 않게 수습할 수 있으나, 작은 범위의 외상은 어려웠다. 거기다 신경 손상이 있는 합병 증세는 대응하기 힘들고 전개할 수 있는 수술 방법도 적었다.

하지만 곽종군이 생각하기에, 능연이 할 수 있는 건 개인적으로 어느 정도 연습하는 것뿐이고, 단련할 수 있는 시간과 케이스가 필요했다. 아까 슬쩍 말한 대로, 일정한 성공률만 나온다면 앞으로 능연이 그 수술을 계속할 수 있도록 지지할 생각이었다.

주 선생은 고개를 돌려 능연을 바라보면서 그가 알아들었는지 아닌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신경 전도 검사 결과 나오면 보고 드리겠습니다.”

“이번 건 별 희망 없는 거 같으니까, 앞으로 케이스가 생기면, 꼭 정리해 두라고.”

능연은 여전히 간단하게 대답했고, 곽종군은 상관없다는 듯 툭 내뱉었다.

운화 병원, 신경내과.

“됐어요, 거기 두세요. 나머지는 제가 할게요.”

전도 검사실 여의사 조월은 웃는 듯 마는 듯 의자에 기대고 앉아 있다가 연문빈이 스트레처 카를 벽 쪽에 잘 붙여놓자 그제야 입을 열었다.

“저 없어도 됩니까?”

“필요 없어요. 밖에서 기다리세요.”

이화민을 힐끔 본 연문빈이 물었지만, 조월은 껄껄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 그게 개성이 좀 있는 환자니까, 조심하세요.”

“괜찮아요, 하루 이틀인가요?”

조월이 연문빈을 흘깃 내려다봤다. 조월의 짜증 난 표정에 연문빈은 잠시 망설이다가 그대로 진료실에서 나갔다. 그러곤 의자에 걸터앉아 긴 한숨을 내쉬었다. 요즘 연달아 며칠 마무리 봉합을 하지 못해서 손이 다 근질거렸다.

조월은 가볍게 콧방귀를 끼면서 개성 있는 환자는 널리고 널렸는데 누가 누굴 걱정하냐고 생각했다.

그는 외과 레지던트를 한심하게 여겼다. 능력도 없고, 프로의식도 없고, 그런데 거만하기 짝이 없는 레지던트들. 게다가 언제든 실력 있는 대장이 될 수 있다는 듯 고개를 치켜들고 다니면서 툭하면 지적질.

조월의 눈에 그런 레지던트들은 더러운 일을 하는 고집불통으로밖에 안 보였다.

수술실 안은 깨끗해도 시간이 흐르면 병원균이 넘치기 마련이었다. 외과 의사들이 입는 하얀 가운도 아침엔 깨끗해도 매일 핏자국이 묻었다. 일반인이 평생 접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일 것이다.

그에 비해 조월은 자신의 작업 환경은 편안하다고 생각했다. 전도 검사실은 일반적인 사무실과 비슷했다. 컴퓨터에 연결된 기기를 환자 피부에 가져다 대면 나머지는 모두 컴퓨터가 알아서 하니까.

외관으로 보면 심전도보다 조금 더 복잡한 검사일 뿐이며, 병원 전체에서 보면 가장 수월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외과의의 작업 환경과 완전히 다른 세상이라는 것을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조월은 마음속으로 ‘우리는 달라, 다르다고’ 하며 노래했다.

“신경 쪽 전문 의사예요?”

옆으로 누운 이화민의 팔에 색깔이 선명하고 예쁜 붉은 비단 소맷자락이 드러났다. 조월은 마음속으로 부르던 노래를 멈추고 깔깔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도 검사 전문이에요. 신경이 아니라. 자, 소매 좀 걷어 보세요.”

조월은 그렇게 말하면서 직접 환자의 소매를 걷었다.

“손에 깁스를 하셨는데도 소매 있는 옷을 입으셨네요?”

“뒤에 단추 있거든요. 제 신경은 괜찮나요?”

“아직 모르죠. 아직 테스트도 안 했는데 그걸 어떻게 알아요.”

조월은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신경에 문제 있으면 중풍 오나요?”

“그건 뇌신경이고요.”

“그럼 제 뇌신경은 문제 없나요?”

“테스트 안 해봐서 저도 모릅니다.”

“선생님, 거짓말 마세요. 전 죽는 게 두렵지 않답니다. 가족한테 물어봤는데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아요. 다들 절 속이고 있는 걸 알아요. 다 절 위해서겠죠. 그런데 저는 알고 싶어요.”

“정말 몰라요, 저는.”

“선생님!”

이화민은 초조한 듯 몸에 덮고 있던 얇은 담요를 들치면서 일어나 목소리를 높였다.

“선생님! 저는 죽는 건 두렵지 않아도, 왜 죽는지 이유는 알고 싶어요! 멀쩡하면 뭐 하러 신경 검사를 하겠어요! 제가 정신병자도 아니고!”

이화민의 붉은 비단 전통 복장을 잠시 뚫어져라 바라보던 조월은 어딘가 이상함을 느꼈다. 이화민은 옷을 주목하고 있는 조월의 시선을 느끼고는 순식간에 표정을 풀었다.

“예쁘죠? 제가 디자인한 옷이에요. 노인들이 그렇잖아요. 붉은 옷이 길하다고. 그런데 제 오행은 분홍색이라, 가장자리를 분홍으로 마무리했죠. 중간은 특별히 금색으로······.”

“뭘 입은 거예요, 지금?”

“수의요!”

조월이 몸을 부르르 떨며 묻자 이화민은 엄숙하게 대답했다.

“이따 선생님이 머리에 문제 있다고 하시면, 이 옷 입고 옥상에서 뛰어내릴 거예요. 가족에 민폐를 끼칠 수 없어요!”

이화민은 진지한 얼굴로 조월을 바라보며 머리에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제대로 검사해 달라고 덧붙였다.

“자, 잠시만요.”

조월은 달달 떨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검사실 문을 열었다.

“여, 여, 연 선생님. 저, 저 좀 도와주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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