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51화 (40/877)

우에노가 도착한 다음 날, 운화 병원은 진작 만들어 둔 ‘일본 게이오 대학 전문가 진료’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명성이 자자한 게이오 대학의 이름은 다음 날 번화 연합 진료 대기표 30개를 10분 만에 완판시켰다. 그 덕분에 오후까지 연장 진료한다고 선포할 수밖에 없었고, 연달아 나타난 브로커들이 대리 접수비를 500위안까지 올리면서 번호표 30개를 더 받아갔다. 더 비싸게 받으면 환자들은 차라리 북경이나 상해로 갈 수도 있을 지경이었다.

번 주임은 그런 변화가 은근히 기뻤다. 많은 의사가 진료비는 11위안은 자신의 노동을 존중받지 못하는 값이라고 생각했다. 30개 대기표 중에 말도 안 되는 떼를 쓰는 환자나 치료비를 물어내라고 소란을 피우는 환자라도 나타난다면 11위안은 더욱 굴욕적인 비용이 되겠지.

브로커들이 500위안까지 올려준 진료비에 저절로 고개가 치켜 올라갔다. 오후에 만5천 위안 정도는 되어야 점심도 저녁도 안 먹고 일할 가치가 있다. 그의 수입은 변함없이 인당 3.3위안에, 그나마도 우에다하고 반 나눠야 했지만, 존중받은 기분만은 달랐다.

500위안이나 쓰고 병원에 오는 환자들은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가벼운 증상으로 온 환자도 아니고 대부분 번화의 20년 내공을 톡톡히 발휘할 수 있는 환자들이었다. 그래서 그도 더 신경 써서 진료에 임했다.

그러나 모든 환자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고 어떤 환자는 재진 방향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모든 환자에게 유용한 진료 결과를 낼 수 없게 되자, 한 번도 500위안이란 진료비를 받은 적 없는 번화는 조금 불안해졌다.

그러나 환자들은 재진 방향을 들은 것만 해도 천 번 만 번 감사를 표하며 돌아갔고, 환불을 요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리 접수가 좋은 점도 있긴 하네. 적어도 환불해 달라고 하진 못하니까 말일세.”

“왜 환불해 달라고 하는 건데요?”

번화는 일어로 말했지만, 우에노는 요점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마도······ 환자들은 의사가 좀 더 쓸모 있는 해결 방안을 내야 한다고 생각해서겠지? 그래야 진료비를 받을 자격이 된다고 말이야. 게다가 대리 접수비는 더 비싸니까.”

“의사가 신도 아니고요. 기도하는 사람이 소원이 안 이뤄졌다고 바친 제물을 회수하는 거 봤어요? 아,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를 했군요.”

“아닐세. 자넨 원래 쿨한 사람 아닌가.”

우에노가 다급히 사과하자 번화는 일본에 있었을 때처럼 그를 칭찬하고는 바로 다음 환자를 불렀다.

두 사람의 진료 범위는 굴근건 손상뿐만 아니라 수부외과 각 항목도 포함되어 있었다. 진료는 의사 자신의 상황만 고려할 수 없고 진료과나 진료팀 상황도 고려해야 했다.

치료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가장 기본으로 고려하고 고칠 수 없는 환자는 큰 병원으로 보내거나 받은 다음에 트랜스 보낸다. 그다음은 해당 진료과의 주력 수술 항목인지 아닌지 봐야 한다, 예를 들면, 번화가 없는 동안엔 탕 법은 운화 병원 주력 수술 항목이 아니었다. 그래서 탕 법으로만 고칠 수 있거나 탕 법으로 수술해야 효과가 더 좋은 환자는 그동안 수부외과에서 받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은 진료과의 수용 능력이었다. 정상급 병원에서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는 현상인데, 일반 환자는 지방 병원에서 처리하기 힘든 병에 걸려야 더 나은 병원에 입원한다. 그런 경우가 아니면 환자를 받을지 아닐지는 대부분 병원 운영 상황이 어떤가에 따라 결정된다.

몇 개월 동안 연수를 나가 있던 동안, 본인이 소속된 진료팀이 굶어 죽을 뻔했으니 이제 환자를 대거 받아야 할 때였다.

20개 넘는 대기표 환자 중 12명을 진료한 우에다는 뜨끔해져서 일어로 저도 모르게 번화에게 말을 걸었다.

“환자가 너무 많은 거 아닙니까? 언제 다 봐요.”

“정 안 되면 트랜스하면 돼. 인심도 쓰고.”

번화는 우에다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설명했고 잘 알아들은 우에노가 아, 하고 입을 벌렸다.

“그러니까, 중국 병원은 환자를 선물처럼 주고받는다는 거죠?”

“이해력, 참······. 아까 화제로 돌아가서, 오늘 우리가 환자 진료를 많이 하면, 수술도 많아져. 이건 중국이나 일본이나 같겠지?”

“그럼, 어제 이야기했던 그 능연이라는 의사는요? 환자가 어디서 납니까?”

“지금 그거 신경 쓸 때가 아니야. 능연은 이 한 가지 수술밖에 못 해. 뭐, 수술 좀 한 거 같긴 해도 아직 나이가 어려서 전체 건수는 얼마 안 돼.”

우에다는 여전히 그가 신경 쓰여 물었으나 번화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래도 탕 법 200건은 한 거 같던데요? 그건 일본에서도 적은 숫자가 아닙니다.”

“200건이라도 해도 별거 아니야. 내가 일본에 있는 몇 개월 동안만 해도 100건 가까이한걸? 크게 떠벌리지 않았을 뿐이야. 국내에 있을 때도 적잖게 했고. 수십 번은 했었지. 게다가 내가 탕 법만 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굴근건 손상 수술은······.”

“앞으로 우리는 능연이 하다 죽을 만큼 수술을 많이 하게 될 거야. 게다가 우리가 하는 수술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의 수술은 줄어들겠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환자도 결국 자원이니까.”

잠시 껄껄 웃던 번화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하는 게 그에게도 좋은 일이야. 내가 돌아온다는 걸 알고 수술 횟수를 열심히 늘렸다더군. 그러니까 우리가 돌아오면 자신의 입지가 좁아질 걸 알고 있었다는 거지. 그래서 수술량을 늘리려고 노력한 거야. 별거 없어.”

“그런가요?”

“우에다 박사. 자네가 중국에 온 목표도 바로 수술 때문 아닌가. 얼마나 하고 싶은가? 2백? 3백?”

담담히 미소 지으며 묻는 번화의 말에 우에다가 얼굴을 붉히며 느긋하게 대답했다.

“제 목표는 6백입니다. 이미 4백 건 기록이 있으니, 거기에 6백을 더하면 수부외과 현역 중에 5등이 됩니다.”

“1년에 6백 건?”

“설마요.”

“중국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1년에 6백 건은 일도 아니지. 하루에 두 건 아닌가.”

“아노······ 일 년에 2백 일 일하잖아요.”

우에다는 일어를 섞어 쓸 정도로 혼란스러워했다.

“그렇게 따진다면······.”

“진료일에도 수술 못 하잖습니까. 그리고 합동 진료도 있고, 회의도. 그렇게 따지면 수술할 수 있는 날은 150일도 안 되죠. 150일 수술하려고 해도 추가 근무를 엄청나게 해야 할걸요.”

“그렇게 따진다면······ 평균적으로 하루에 4건, 확실히 많긴 하네.”

우에다의 빠른 계산에 번화는 다시 껄껄 웃었다.

“그러니까요. 하루에 2번도 적은 편은 아니죠. 그래서 저는 이 계획을 완성하는 데 3년 투자할 생각입니다.”

3년에 6백 건이라면 1년에 2백 건에 불과했다.

번화는 맞은 편에 앉은 환자에게 웃는 얼굴로 상황을 설명하고 진료를 끝냈다. 동시에 저도 모르게 일본에서 연수하며 보낸 시절을 회상했다.

요즘 일본인들 참 게을러. 하루 수술 4건, 많긴 하지. 그래도 평균적으로 3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데, 1년에 2백 건이라니, 그게 뭐 하자는 거야.

번화는 다음 환자가 자리에 앉아 건네는 검사 결과표를 받아 들고 읽으면서 우에다에게 일어로 말을 건넸다.

“그래도 당분간은 수술을 많이 해야 할 걸세. 능연이 최후의 발악으로 하루에 수술을 여러 건 하고 있거든. 이제는 기력도 다 떨어졌을 테지만, 그래도 수술 기회를 모두 애송이한테 넘기는 게 아깝지 않은가?”

우에다도 번화의 생각은 이해했다. 일본 병원에서도 수술 환자를 뺏는 건 다반사였다. 특히 이름 없는 의사가 수술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야 한다. 바로 그런 이유로 우에다도 중국까지 와서 운화 병원에 들어온 것이다. 바로 수술 기회를 늘리기 위해서 말이다.

환자의 수는 한계가 있으니 두 사람이 수술을 많이 할수록 능연이 할 수 있는 수술은 줄어든다. 그렇다면 능연이 하루에 수술을 몇 건을 하든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겠지. 어쩌면 바로 그런 날이 올까 봐 능연은 죽을 것처럼 지친 상태로도 수술을 빼앗아가며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우리가 먼저 환자를 고르면 돼. 하고 싶은 수술만 하고 나머지는 능연에게 던져주는 거지. 난 수부외과 부주임 의사잖아. 누가 능연을 선택하겠어.”

번화가 덧붙인 말에 우에다는 더욱 기뻐했다. 게이오에 있을 때 받아보지 못한 대접이었다. 그는 속으로 그렇게 된다면 수술 난도를 조정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수술량을 확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술도 올릴 수 있겠다 싶었고, 3년 동안 수술 6백 건도 불가능한 꿈이 아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안녕하십니까? 잘 부탁드립니다.”

우에다는 떨리는 마음으로 집도의 자리로 나서서 맞은편에 서 있는 번 주임을 비롯한 의사들에게 허리 숙여 인사했다.

굴근건 봉합 같은 수술은 그에게 모처럼의 큰 수술이었다. 앞으로 매일 이런 수술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우에다는 쾌재를 불렀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우에다는 진지한 표정으로 허리를 숙였다. 그런 그의 표정에서 번 주임은 지난밤 파티에서 ‘잘 먹겠습니다’라고 입을 떼던 우에다의 표정을 떠올렸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우에다는 온몸이 근질근질한 표정으로 메스를 그었다.

절개.

당김.

근건 박리.

봉합.

마무리 봉합.

수술 종료를 선포하면서, 우에다는 통쾌함에 몸을 부르르 떨면서 견딜 수 없는 듯 다시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너무 잘 협조해 주셨습니다.”

“우에다 박사도 아주 훌륭했네.”

번 주임이 고개를 들어 시계를 보니 4시간 반이 지나 있었다. 이제 막 탕 봉합을 시작한 의사로서 손가락 하나 꿰매는 것에 든 시간 치고 나쁘지 않은 성적이었다.

마취의 소가복이 크게 하품을 했다. 일본에서 온 의학박사 수술 마취를 하게 된 그는 운화 병원의 명예, 중국 마취의의 명예, 그리고 중국인의 명예를 위해 눈도 깜짝이지 않고 모니터를 주시했다. 투약 용량을 수시로 조절하느라 피곤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하필 수술 시간도 더럽게 길었다. 마치 교장이 갑자기 학생들에게 수업을 해주겠다고 해서, 몇십 분만 버티면 될 줄 알고 어쩔 수 없이 눈을 부릅뜨고 버텼는데 세 과목이나 이어질 줄 몰랐던 것처럼 말이다.

소가복이 또 한 번 하품했다. 24시간 당직을 서는 마취의는 많아도, 24시간 깨어 있는 마취의라면 하품하지 않고 버티지 못하리라.

“소 선생. 고생하셨습니다.”

우에다 박사는 의료 요원 하나하나 모두 붙잡고 감사를 전했고, 마취의 순서까지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챙겼다. 소가복은 개의치 않는 듯 손을 휘휘 휘둘렀다.

“고생은요. 제가 할 일인데요.”

“이해해주시니 감사합니다. 4시간짜리 수술이었는데 30분 연장될 줄은 몰랐습니다.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우에다의 말에 소가복은 의아한 듯 번 주임을 바라봤다.

“일본 마취의들은 다 사납거든. 특히 초짜한테 아주 각박하게 굴어. 그래서 소 선생이 화낼까 두려웠던 게지.”

“아······. 욕해도 돼요?”

소가복이 말꼬리를 길게 늘이며 하는 말에 번 주임은 멈칫하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요즘 젊은 사람들 유머 감각 따라잡을 수 없다니까.”

소가복은 입을 삐죽였다. 3시간 걸릴 줄 알았던 수술이 4시간 반이나 걸릴 줄 누가 알았을까. 그것 때문에 계획이 완전히 틀어져 버린 소가복은 정말로 욕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일본 친구인 만큼, 그냥 미소로 화답할 수밖에 없었다.

“소 선생. 다음 수술도 부탁드려도 될까요?”

우에다는 이왕 했던 사람이 계속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여 다시 허리를 굽혔다. 잠시 고민하던 소가복은 한숨을 내쉬며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는 당연히 능연의 수술이 더 좋았다. 한 시간에 두 건 하는 때도 있는데 수술할 때마다 몇십 위안 벌이가 생긴다. 하루에 수술 10건을 하면······.

마취의들이 모두 능연의 수술실에 들어가려고 안달인 건 말할 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게 아니더라도 수술 시간 4시간 반은 길어도 너무 길었다. 소가복은 답답하다는 듯 시계를 내려다봤다.

“자, 이제 나도 수술하러 갑니다. 통역 이리와 봐요. 우리 오늘 수술 좀 오래해야 할 겁니다. 이러다 굴근건 봉합 환자 다 해치우겠네.”

그 말에 소가복이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웃음을 참느라 콜록콜록 기침을 터트렸다. 기구 간호사는 더욱 무시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사람들이 다 들리게 능 선생과 비교하면 차이가 난다고 중얼거렸다.

그 말에 번 주임이 휙 고개를 돌렸더니 간호사 하나가 기구 간호사 곁에 가서 고개를 치켜들고 나란히 서 있는 게 보였다. 병원에서 레지던트는 아무도 대우해 주지 않았지만, 부주임급 의사는 간호사 앞에서 어느 정도 위엄이 있었다.

하지만 간호사들이 뭉치면 그 어떤 의사라도 회피하기 마련이었다. 번 주임도 못마땅한 듯 앓는 소리를 냈지만, 실력은 수술로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수술실을 나갔다.

다음 날, 밤새 수술을 한 번화와 우에다 하야토는 다크서클이 내려앉은 눈으로 수술실에서 나왔다. 그러고는 비틀거리며 아침을 먹고 의국으로 돌아가 흡족한 듯 서로를 마주 보며 웃었다.

“어제 수술을 4건 했더니 아주 속이 시원하네요.”

일본 애니메이션 대사 같은 우에다의 말에 의국 사람들이 모두 그를 주시했다. 그런 그에 비해 침착한 번 주임은 일어로 입을 열었다.

“나는 겨우 5건 했네. 너무 오래 나가 있었더니, 국내 환경이 어색해서 연속으로 하기에 조금 낯선 느낌이야.”

“연달아 수술하는 게 이렇게 좋을 줄은 몰랐습니다. 다리가 좀 쑤시긴 해도 기분은 좋은데요?”

“아, 번 주임 나왔나? 어제 수술 잘 끝냈지?”

과 주임 금서가 리더의 기세를 드러내며 휘적휘적 의국 안으로 들어왔다. 초짜 의사들은 모두 고개를 숙여 그를 반겼으며 특별히 미소 지으며 반기는 의사도 있었다.

“아주 순조로웠죠. 우에다 박사 수술도 별 탈 없이 끝났습니다.”

“그럼 됐네. 그럼 오늘도 그렇게만 하게.”

“아, 네.”

금서 주임의 말에 습관적으로 대답하던 번 주임은 멈칫하고는 되물었다.

“그렇게만?”

“번 주임님 수술 배정표 책상 위에 올려 뒀습니다.”

“저기, 그렇게만 하라는 게 무슨 뜻인가요?”

레지던트가 낮게 하는 말을 통역해서 들은 우에다도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물었다.

“회진, 그리고 수술. 자네 수술 3건, 나도 3건······.”

번화가 멍한 표정으로 배정표를 들고 읽어 내려갔다.

“어젯밤에 겨우 수술 끝냈는데요?”

두려운 마음에 우에다가 몸을 부르르 떨면서 일어로 중얼거렸다. 번화는 그를 보다가 젊은 레지던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레지던트는 그 시선의 의미를 모르겠다는 얼굴로 번화를 바라봤다.

“이 사람들, 우리가 밤새 수술한 걸 모르는데?”

갑자기 깨달은 듯 일어로 말하는 번화의 말에 우에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니? 그걸 왜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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